‘화요’의 성공 뒤에는 우리 전통방식을 계승하고 이를 현대화하는 데 공을 들인 광주요 조태권(62) 회장의 경영 철학이 숨겨져 있다. 조 회장은 지난 1988년부터 당대 최고의 도자기 전문가로 평가받던 부친(고 조소수 선생)의 가업을 이어받아 광주요를 경영하기 시작했다. “최고의 도자기를 만들어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자”는 게 조 회장의 생각이었지만 도자기의 고급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우리 음식문화 전반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아무리 좋은 식기를 만들어도 몇 천원짜리 한식이 주류인 우리 식문화가 개선되지 않는 한 최상의 도자기가 갈 곳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고품격의 음식문화를 만들어야 거기에 수반되는 음식, 식기, 술, 분위기 등도 가치를 부여받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주로 음식을 담는 식기 생산에 주력해온 그는 이때부터 음식산업 전반으로 사업영역을 넓혔다. 외국 음식에 비해 싸구려 취급을 받아온 한식에 가치를 부여하고 이를 통해 세계 시장에 진출하겠다는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것. 이러한 열정을 품고 그는 자신이 30대의 젊은 나이에 해외에서 무역업 등을 통해 벌어들인 막대한 재산을 모두 쏟아붓기 시작했다. “화요에 6년간 200억 투자… 이제야 결실” 한식 문화의 가치 창조에 올인하고 있는 조 회장을 지난 10월 5일 경기도 여주의 ‘화요’ 공장에서 만났다. 165㎝의 작은 키에 백발인 조 회장은 먼저 술 제조공장으로 기자를 안내했다. 공장 문을 열고 들어서자 효모가 발효되면서 나는 시큼한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술을 마시지 않아도 금방 취기가 느껴질 정도로 알코올 성분이 가득했다. 경기도 여주군 가남면 은봉리 소재 술공장은 3만㎡(9000평)의 부지 위에 발효 시설, 숙성 창고, 사무실동이 듬성듬성 들어서 있었다. 지하 숙성 창고로 내려가자 보통 사람의 키만한 수백 개의 대형 항아리가 눈길을 끌었다. 그곳에는 세계적 첼리스트 요요마(YOYOMA)의 클래식 연주가 흐르고 있었다. 조 회장에 따르면 ‘화요’는 최고급 수준의 음식과 최고의 식자재에 걸맞은 전통술이 있어야 한다는 판단에서 출발했다. 조 회장은 지난 6년간 200억원을 투자해 주류업에 뛰어들었고 지금도 적자를 메워가며 자신과의 싸움을 계속하고 있었다. 조 회장은 “내가 재산이 많지 않았다면 이런 무모한 도전은 하지 않았을 거다. 광주요를 맡고 음식에 손을 댄 이상 우리 식문화를 세계화하자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모든 걸 던지기로 마음먹었다. 그동안의 노력이 결실로 나타나고 있어 뿌듯하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외부 강연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우리 음식문화의 세계화를 촉구해 왔다. 도자기, 음식업, 주류업 등 광주요가 하고 있는 모든 사업에는 이런 철학이 그대로 배어 있다. ‘화요’는 만드는 방식부터 남달랐다. 우리쌀 100%를 원료로 전통방식에 따라 발효를 한 뒤 증류를 하는 것은 다른 주류의 제조과정과 같지만 숙성과정에서 우리 전통 옹기를 도입한 부분이 특색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위스키, 코냑, 와인 등이 숙성과정에서 오크(Oak)통을 사용하는 반면, 화요는 대형 항아리를 이용하고 있었다. 오크통은 술을 3번 정도 숙성하고 나면 폐기해야 하지만 흙으로 빚은 옹기는 반영구적으로 사용이 가능하다는 장점 때문에 선택했다고 한다. ‘화요’ 숙성에 쓰이는 옹기는 중국에서 OEM(주문자상표부착) 방식으로 만드는 것으로 1개당 가격이 40만~50만원 정도다. “옹기는 공기가 잘 통하기 때문에 술을 숙성시키는 데 있어서 가장 효과적인 용기다. 또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도 선조들의 지혜에서 내가 빌린 부분이다. 지하 숙성고에 음악을 켜둔 건 항아리 속의 술 분자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데 음악이 효과가 있다고 해서 도입했다.” “돈보다 중요한 것은 가치를 만드는 것” 화요공장에도 일부 주류를 오크통에서 숙성하고 있지만 실험 결과 항아리의 숙성 효과가 더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오크통에서 3년 정도 숙성된 술은 ‘태조’라는 브랜드를 달고 해외 유명 위스키와 경쟁할 수 있도록 최고급으로 제조해 약 2만병을 한정 생산할 계획이다. 화요 공장에선 요즘 대중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막걸리도 생산한다. 주로 일본에 수출하고 있는 막걸리 ‘낙낙(樂樂)’은 소주를 만들기 위해 쌀을 발효할 때 원액을 뽑아내 만든다. 주류 사업 진출 이후 조 회장에게는 운도 따라주고 있다. 좋은 술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가장 중요한 원료 중 하나가 바로 물인데, 우연한 기회에 공장부지에서 지하 암반수를 찾아냈다. “공장을 짓는 과정에서 어떤 물을 어떻게 공급할 것인지 고민이 많았는데 지하수를 파는 과정에서 땅 속이 암반인 걸 발견했고 150m 정도 파고 들어가자 깨끗한 암반수가 솟구쳤다.” 화요는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싱글몰트 위스키처럼 블렌딩을 하지 않은 채 원액으로 제조를 하기 때문에 직원들 사이에선 ‘싱글 라이스’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현재 화요는 17도·25도·41도 세 종류를 생산, 판매하고 있으며 내년 매출 5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대기업들도 화요의 상품성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최근 일부 기업에서 막대한 자금을 제시하며 매각을 타진해 왔지만 조 회장은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치를 만들어 그게 영원히 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지금 이 사업을 팔면 그동안의 노력이 모두 수포로 돌아간다. 우리 음식문화가 세계적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이 길을 계속 갈 것이다. 그게 내 숙명이다.” 식기세트 ‘모던라인’ 청와대 납품 광주요가 만든 식기세트 ‘모던라인’도 최근 청와대 국빈 만찬용 식기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모던라인은 2008년부터 광주요가 심혈을 기울여 연구하기 시작해 올초 완성한 백자 식기세트다. 조 회장이 직접 흙을 배합했고 유약도 독자적으로 개발했다. 모던라인은 청와대 납품 경쟁에서 “여백의 미와 유백색의 순결함을 식기로 재현해 한국의 아름다움을 식탁에서 느낄 수 있게 만들었다”는 호평을 받았다. 이번에 청와대에 납품한 모던라인은 한식·양식 코스용 만찬세트 등을 포함해 모두 160세트다. 영부인 김윤옥 여사는 대통령 관저에서 사용하는 모던라인을 ‘달항아리’라는 애칭으로 부를 정도로 강한 애착을 보인다고 한다. |
출처: 펄프 뒷골목 원문보기 글쓴이: kwon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