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엘리야가 먼저 와서 원문보기 글쓴이: zion
이글은 성경만이 판단의 기준이다 에서 인용한 글이다.
8. 일요일 준수의 기원과 역사.
증언 주이트
“왜 그리스도인들이 첫날에 예배를 드리게 되었는가는 아직도 문제로 남아 있다.... 모든 학자들은 한가지 점에서 일치된 견해를 보이고 있다. 즉 첫날은 그리스도인들에 의하여 부활의 기념일로 축하되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일요일을 지키는 것은 부활사건에다 그 근거를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 발생 과정을 정확히 설명하기란 용이하지 않다. 옛부터 인정되고 세계적으로 받아들여졌던 일요일 예배와 같은 관습이 그 정확한 기원에 대해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것은 정말 이상한 일이다.”. 주이트,56 일요일 준수와 기원의 역사.)
일요일을 주일(主日)로 옹호하는 대표적인 현대 신학자인 쥬이트(Jewett) 자신이, 자신이 주일로 옹호하고 있는 일요일이 왜, 어떻게, 그리고 언제 주일(主日)이 되고 예배일이 되었는지 근거와 기원을 알 수 없다고 한 증언은 정직한 증언이다. 그러나 참으로 그의 말대로 그것을 알 수 없다는 사실은 “정말 이상한 일”이다. 모르면서 지키고, 모르면서 옹호하고, 있다는 사실은 더 이상한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거의 온 세상 사람이 일을 쉬거나 예배하는 일요일이 까닭 없이 그렇게 되었을 리가 없다. 다음에 그 이유와 과정을 성경과 역사에서 살펴서 진실을 밝히고자 한다.
부당한 부활의 기념
쥬이트가 제시한 궁색한 이유처럼 그리스도의 부활이 일요일 예배의 근거라고 하지만 앞에서 언급 한대로 그것은 성경 적으로 인정될 수 없는 논증이다. 그 이유를 복습을 겸하여 아래와 같이 다시 요약해 본다. Bacchiocchi, 202-205.
가. 신약 성경에는 매주[일요일] 혹은 매년[부활절] 단위로 부활을 기념하라는 말씀이 일체 없다. 새로운 제도인 성만찬, 침례, 세족예식에 관하여 명백한 명령이 있다는 것과 너무나 대조적이다.
나. 신약성경에는 일요일을 “부활의 날”이라고 부른 적이 결코 없고, 언제나 “안 식후 첫날” 혹은 “매주일 첫날” (고전16:2)로 불렀다. 그리스도교 문서에서 일요일을 “부활의 날”로 명명(命名)된 것은 3세기 뒤의 일로서 매주 일요일을 부활을 기념하는 날로 정착시키는 일이 부자연스러웠음을 알려준다.. lbid. 203.
다. 부활은 그리스도의 지상 봉사를 끝낸 사건이 아니었다. 돌아가시기 적전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요19:10) 는 선언으로 그리스도께서는 지상 봉사의 끝을 알리셨다. 또한 하늘에서의 봉사 시작은 오순절로서 부활하신 당일이 아니었다. 성경은 부활을 날짜로 기념해야 할 아무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 않다.
라. 부할 하신 날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은 “나의 부활을 축하하기 위하여 모두 와서 함께 예배하자” 는 말씀이 아니었고,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마28“:10)는 활동을 촉구하는 말씀으로 일체 예배나 거룩함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셨다.
마. 부활을 성만찬과 연관하여 일요일의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는데, 일요일에 성만찬을 거행할 신학적이고 역사적인 이유도 없고, 시작부터 그렇게 하지도 않았다. (마26:20-29 ; 고전11:18-23). 성만찬은 부활의 기념이 아니라.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고전11:26)이다.
바. 부활절-일요일 발단이 된 유월절도 본래는 부활하신 일요일에 기념한 것이 아니라. 그해 1월[Nisan]14일이 해당되는 어느 날이나 준수했다. 그것은 본래 그리스도의 수난(受難) 의 기념 이였지 부활을 기념한 것이 아니었다.. Samuele Bacchiocchi, From Sabbath to Sunday(Rome; Tne Ponrifical Gregorian University Press, 1977),89-84.
사. 일요일 준수에 관한 초기의 기록들인 서기 135년경의 바나바 서신이나 거시 150년경의 저스틴 마터(Justin Martyr) 의 기록에 보면, 일요일이 부활의 기념이기보다는, “여덟째 날”로 “또 다른 시작”. Epistle of Bamabas.15. 8. 을 대표한 창조의 첫날. Justin Martyr, 1 Apology 67.
임에 의미를 두었음을 보게 된다.
아. 십자가에 죽으심은 성만찬으로 기념하듯 (고전11:26), 부활은 침례로 기념하도록 성경에 명시되어 있다.(벧전3:21; 롬6:5).
이상의 몇 이유들을 보더라도 일요일 준수가 부활에 기초했다는 논증은 성경 적인 것도 아니고 역사적인 것도 아니며 논리적인 것도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어디에 그 기초와 근거가 있는가? 주지(周知)된 대로 성경에는 그 기원과 근거를 찾을 수 없는 것은 일요일 예배 외에도 성탄절로 일컬어지는 크리스마스나 부활도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들이 성경에서 기원(起源)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 총회 (서기 49년경) 당시
사도 바울의 이방 선교로 야기된 교리 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소집된 제1차 그리스도교 세게 총회 격인 예루살렘 회의의 결의 사항을 살펴보자. 이방인이 그리스도인 이 되는데 장애가 된 할례등 의식들은 폐지하기로 결의했어도 안식일 준수 여부는 처음부터 문제로도 거론되지 않았다.(행15장). 같은 성전이나 회당에서 같은 안식일과 같은 성경(구약)을 사용하여 예배한 초기 그리스도인들과 유대인 사이의 차이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여부와 침례, 성만찬 등 의식 외에는 두드러진 것이 없었다.
안식일은 이방인과 유대인, 그리스도교와 유대교를 구별하는 조건이 결코 아니었다. 총회의 의장이었고 초대 교회 지도자인 야고보와 예루살렘 교회 장로들은 훨씬 후인 서기 58년경, 사도 바울에게 그리스도교로 개종 한 유대인 중에 “수만 명이.........율법에 열심 있는 자라”(행21:20)고 확인하였다. 그러므로 초대 교회 본부였던 예루살렘 교회가 안식일 대신 일요일을 준수에 앞장섰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 Samuele Bacchiocchi, "the Rise of Sunday Observance in Early Christianity", K. A. Strand(ed.), The Sabbath in Scripture and History(Washington, D.C.:Review and Herald Publisging Assn., 1982), 135.
예루살렘 멸망(서기70년)이후
구약(단9:26. 27)과 복음서 (마24:15. 16)에 다음과 같이 예언된 예루살렘의 대 파멸이 참으로 안식일을 폐지하고 일요일을 준수하게 된 계기가 되었는가? 예루살렘에서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마24:20)는 예수님의 권고에 따라 유대 그리스도인 들은 예루살렘을 빠져 나와 요단 동편 펠라(Pella)지방에 정착했다는 사실이 4세기 역사가 에피파니우스(Epiphanius .315-430)에 의하여 확인되고 있다. 그들은 “본래의 예루살렘 신앙 공동체의 직계 후손”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예루살렘 멸망 이후 오랫동안 안식일을 비롯하여 할례까지 준수했음이 보아, 예루살렘 멸망이 안식일 준수에 특별한 변화를 가져오지 않았음을 확인 시켜 준다 Bacchiocchio, from Sabbath to Sunday,171
예루살렘 멸망 이후 로마 황제 베스파시안 (Vespasian . 69-79) 은 산헤드린 회의와 대제사장 제도는 폐지하고 성전에서 예배는 금했으나, . 랍비들이 서기 80~90년 사이에 매일의 기도에 포함시킨 그리스도인에 관한 저주 (Birkath-ha-Minim). G, Kittel(ed.). 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New Testament, vol. 7,848, 849.
안식일 준수 자체를 법으로 금하지는 않았다.
바르-코게바 반란(A. D132-135)이후
유대인들에 대한 로마 제국의 증오가 더욱 피부로 느껴진 곳은 역시 수도인 로마였다. 동시에 이방인 신자가 다수였던 로마의 그리스도교회는. 롬 11:13, 16:. Ibid., 166.
핍박을 피하고 살아남기 위하여는 유대교에서 철저히 분리되어야 할 강박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괄목할 만한 두 사람이 비슷한 때 로마교회에 등장했다. 하나는 순교자로 알려진 교부 저스틴이요, 또 다른 하나는 영지 주의 이단자로 낙인찍힌 마르시온이었다. 그는 자신의 부도덕한 과거 때문에 구약과 구약의 하나님, 유대인과 안식일을 증오하였다.
유대인을 미워하던 당시의 분위기에 편승하여 심각한 영향을 미쳤던 그의 이단적인 가르침 가운데는 “안식일에 관하여 하나님의 작정이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이날에 금식”. Epiphanius, Adversus Haereses 42, 3, 4; Tertullian, Against Marcion 4, 12.
하라는 강조도 있었다. 로마교회는 그를 이단으로 출교 시키기는 했지만, 그의 가르침에 일치하게, 본래 즐겁게 잔치하던 안식일을 슬프게 금식하는 날로 정하여 역대의 감독[교황]들은 이를 법으로 강행했다.. Bacchiocchi, 188, 189.
아무리 엄격한 유대 종파들도 안식일에는 절대 금지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더 좋은 음식일 넉넉히 장만하여 잔치를 즐겼었다..Nathan A. Barack, A History of the Sabbath(New York:1965), 100, 101, 182. Jerusalem Talmud, Shabbat 15:3; Jubilees 50:10, 13.
초기의 그리스도인들도 유대인의 전통을 따라 안식일을 즐겁게 잔치하는 날로 보냈으며, 실제로 안식일에 금식을 강요한 로마교회의 처사에 대해 동방의 교회들과 암브로스감독, 당시의 밀라노 교회 등 서방의 중요한 교회들도 이를 적극 반대했다. . Kenneth A. Strand, The Early Christian Sabath(Ann Abor, Mich.:1979), 9~15, 25~42.
안식일을 금식 일로 만든 로마교회는 그 날에 행하던 성만찬이 금식을 깨뜨린다는 명목으로 그것마저 금함과 동시에 종교적인 모임도 제하기에 이르렀다. Eusebirs(of Caesarea), Historia, Ecclesiastica, Kirsopp Lake(trans.), The Ecclesiastical History, Loeb Classical Library(Cambridge, Mass.: Harvard Univ. Press, 1926~49), 5, 22; 7, 19.
“잔칫날이요 기쁨의 날이며, 종교적인 축제일이었던 안식일을 금식하는 날이요 슬퍼하는 날이요, 종교적인 아무 집회도 없는 날로 바꾸어 버린 것은 그리스도 인들로 하여금 안식일에 대한 숭경심 을 버리도록 강요하기 위해 로마교회가 취한 구체적인 방편들을 드러내 는 것이다. 반면에, 이러한 실천 사항은 안식일의 금식이 지난 후에 일요일을 기쁨과 축제 의 날로 드높여 지게 했다.. Bacchiocchi, "The Rise of Sunday Observance in Early Christianity",138.
19세기 루터교의 교회사가인 네안더(Augustus Neander)는, “동방 교회에서는 안식일에 금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규칙이었다.”.Augustus Neander, General History of the Christian Religion and Church, Joseph Torrey (trans.)(London: Henry G, Bohn, 1851), 422.
고 확인하고 있다. 그러나 “서방 교회의 여러 교회들 특히 로마교회와 스페인 교회는 유대인과 유대 주의자에 대한 적대감 때문에 안식일을 금식하는 날로 지키도록 이끌어 나갔다.” . Ibid.
로마교회의 이러한 적극적일 노력으로 안식일은 점점 어두운 그늘 속에 가려지고 일요일은 각광을 받는 축제일로 부각된 것이다.
그리스도와 태양의 날
쥬이트(Jewett)의 말처럼 2세기의 교부 저스틴(Justin Martyr)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억지로라도 그의 군주인 황제(Antonius Pius)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 .주이트, 123.
로마제국이 혹성 신들 가운데 최고신으로 높이기 시작한 태양을 위해, “태양의 날”[일요일 . the day of Sun)이라는 명칭을 그의 변증 서에서. Justin Martyr, I Apologia 67, 3~7, T. B. Falls(trans.). Writings of Justin Martyr(New York: Christian Heritage, 1948), 106, 107.
제일 먼저 사용한 그리스도교의 저자. 주이트, 123. 가되었다.
그는 자신의 저작에서 안식일을 철저히 부정하고 경멸하는 한편 일요일을 그리스도인의 예배일로 격상(格上)시키는 일에 적극적으로 추진시킨 최초의 사람이기도 하다. . Bacchiocchi, From Sabbath to Sunday, 223~233.
.
아래에 인용된 일요일 성수론자 주이트의 설명은, 그전까지 이교도의 숭배 대상 이였던 태양이 어떻게 그렇게 쉽사리 그리스도인들의 예배에 중심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는지 일면을 보여주고 잇다.
“그리스도인들이 ‘일요일’(Sunday)이란 말을 사용하게 되자 그리스도교 신학은 그 말이 빛을 상징하는 표현이라는 입장에서 해석하기 시작하였다. ... 창조 기사를 설명하는 데도 일요일이란 말을 가지고 하나님일 주일 첫날에 빛을 만들었다는 것과 그리스도는 세상의 빛이라는 것을 상징시켰던 것이다. 찬란한 영광 중에 승천한 후 그리스도는 지금 그의 진리로 우리를 비치고 있고 영원토록 우리의 빛이 되기 위해 재림할 것이라고 했다. 그리스도가 일요일에 재림한다는 전통이 세워지자, 그리스도인들은 그날에 서 서 기도를 하되 동쪽과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면서 했다....기원 4세기이래 일요일이 란 명칭은 그리스도교의 용어가 되어 있었다.” . 주이트, 124
이러한 주이트의 설명은, “밤의 어두움을 쫓는 ... 동쪽에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면서 기도를 드려진다”. Clement of Alexandria, Stromateis 7, 43, in Bacchiocchi, 255.)
는 2세기말 알렉산드리아의 교부 클레멘트(Clement . A. D 150-215)의 진술로 뒷받침된다. 그리고 “해뜰 때에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기 위해 기도하고...해질 때에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도할 것” Cyprian, De Oratione 35, in Ibid., 254.
을 권면한 3세기의 칼타고의 감독 키프리안(Cyprian .d A. D.258)의 기록도 잘 어울린다. 일반 자연신교에서 태양을 숭배하게 된 과정과 흡사한 우상 숭배적인 예배 현상이다.
로마교회와 부활절- 일요일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성력(聖曆)1월[니산. Nisan)14일 곧 유월절(諭越節. Passover) 을 그리스도의 수난 기념과 무교절의 영적 의미를 (고전5:6-8)새 언약에 연관시켜 오랫동안 준수해 왔다. (고전11:23-26). 그러나 유대인의 제1차 반란(A. D70)과 제2차 반란(A.D. 132-135)이후 유대인에 대한 로마제국의 증오가 심각해지고 마침내는 유대교가 불법 종교가 되자. 안식일 준수와 함께 이와 같은 유월절 수난 개념도 그리스도인을 유대인으로 오해시키는 구실이 되어 여기에서 벗어나려는 심리가 크게 작용했다.
앞에서 말한 대로, 안식일 대신 일요일 준수에 앞장선 것이 로마교회였듯이, 유월절 수난 행사 대신 부활절을 확립시키는 일에도 로마교회가 앞장을 섰다. 그리하여 2세기 중엽에 이르러 1월 14일 유월절 수난 기념일 대신에 유월절 다음에 오는 일요일을 부활절-일요일(Easter-Sunday) 로 날짜를 바꾸어 준수하려는 시도가 노골화되자 이를 반대하는 동방의 교회와 큰 충돌을 빚게 되었는데 이것이 이른 바 부활절-일요일 논쟁(Easter-Sunday Controversy) 이다. . Irenaeus, Litter to Victor in Eusebius, Ecclesiastical History v. 24. 2~17.
부활절-일요일을 반대한 편은 주로 사도 요한이 죽기까지 봉사한 소아시아 지역의 교회들로서 요한의 제자로 순교자가 된 서머나 교회의 감독 폴리카프를 (Polycarp . A.D.155)를 . Ibid., v. 24. 16, 17.
비롯하여 에베소의 이름난 감독 폴리크라테스(Po-lycrates. A.D 130-196) 등이 있었다. 이에 맞선 로마교회의 감독은 식스투스를(Sixtus . 116-126) 시작으로, Bacchiocchi, 200.
아니케투스(Ancietus. 154-165), 빅토르 1세 (Victor 1 . 189-199) 로. Ibid., 198.
이어졌다.
논쟁은 계속되었으나 유대인에 대한 로마인들의 증오심 때문에 시대적으로 유리한 입장에 서게 된 로마는 오랫동안 준수되어 온 안식일과 유월절 수난 기념일 대신 매주 일요일과 매년 부활절-일요일을 그리스도교의 예배일과 명절로 확립시키는 일을 쉽사리 수행할 수가 있었다.
그리하여, 321년 로마 황제 콘스탄틴(Constantine) 의 주재로 개최된 역사적인 니케아 종교회의(the Council of Nicaea) 칙령에 포함된 감독들에게 보낸 서한을 통하여 동방에 있는 교회들도 유대인과 함께 하지 말고, 로마교회와 같은 날을 부활절로 기념하라고 명령함으로써 오랜 부활절-일요일 논쟁에서 로마교회가 승리했음을 공인했다..Socrates, Historia Ecclesiastica 1,9. Eusebius, Life of Constantine 3, 19. in Bacchiocchi, 203, 204.
이러한 일련의 배경 때문에 부활절을, “로마교회-부활절”이라고 부르기에 이른 것이다.. C. S. Mosna, Storia della domenica, 17, 119, 333, in Ibid., 201, 202.
이렇게 하여 그리스도교의 최대 명절이 된 부활절의 진상은 무엇인가? 영어로는 “이스터(Easter)”, 독일어로는 “오스턴(Osterm)” 으로 불리는 이 명절은 그 근원을 전혀 성경에 두고 있지 않음을 교부들의 기록과 부활절-일요일 논쟁 역사를 살펴보면 당장에 알 수 있다. 다음은 5세기의 교회사가 소크라테스(Socrates . d 450)의 증언이다.
“이스터[부활절] 축제가 준수되었다는 지적이 신약 성경이나 사도 교부들의 기록 어디에도 없다. ... 주님이나 그의 제자들이 이것[부활절]이나 다른 축제를 명하신 적이 없다. 이스터[부활절]도 만은 다른 관습이 그렇게 수렵된 것처럼 교회가 [이교]의 옛 용어를 바꾸어 영구하게 한 것으로 돌려진다.”. The Encyclopedia Britannica, 11th ed.(1910), vol, VII, 828.
고대 앵글로∙색슨족들이 봄의 여신으로 섬겨 온 “오스타라”[Ostara 혹은 Eostre)를 위하여 베풀어졌던 다산(多産)을 비는 붐의 축제(祝祭)가 “이스터” 이다. “동쪽(Ost) 에서 태어나 땅의 새 생명을 가져오는 봄의 태양”. Francis X, Weiser, Handbook of Christian Feasts and Customs(New York: Harcourt, Brace & World, Inc., 1985), 211. Weiser, 211.
을 상징하기도 한 이 여신은 “부활절 달걀”이나 “부활절 토끼” 가 드러내듯 왕성한 생식(生殖) 과 다산(多産)을 약속했다.
그런데 이 봄의 여신 “오스타라”는 구약 성경에 나오는 고대 가나안의 다산의 여신 아스다롯(Astarte) .M. F. Unger, Archaeology and the Old Testament(Grand Rapids: Zondervan Publishing House, 1980), 174.
과 흡사한 비교종교학 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다.(삿2:13 ; 10:6 ; 삼상7:3.4; 왕상11:5,33) 가나안의 여신 아스다롯은 고대 앗시리아와 바벨론의 사랑과 다산의 여신인 “이슈타”(ishtar)와 같은 존재임이 밝혀졌다.. The World Book Encydopedia(Chicago: World Book Inc., 1986), 787, 788.
“여하튼 그리스도교의 부활절은 크리스마스처럼, 고대 이교의 축제를 대신한 것임이 분명한 것으로 여겨진다..The Oxford Dictkonary of the Christian Church(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74),437.
로마교회와 크리스마스
부활절과 함께 그리스도교의 최대 명절이 된 크리스마스 역시 앞서의 일요일이나 부활절-일요일처럼 태양숭배와 연관된 이교의 축제일이었음이 이교의 고대 문헌에서 확인된다. 크리스마스의 근원이 된 이교의 절기는 라틴어로 “디에스 나탈리스 솔 리스 인비크티”(dies natalis solis invicti) 였는데 그 뜻은 “정복할 수 없는 태양의 생일” 이였다.. Joseph A, Jungmann, The Early Liturgy: To the Time of Gregory the Great(South Bend: University of Notre Dame Press, 1962), 147.
“동지(冬至)가 지난 후 낮이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고 정복할 수 없는 항성[태양]이 다시 흑암을 이길 때인 ‘새로운 태양’ 의 생일인 12월25일을 축하하도록 매우 일반적인 준수가 요청되었다.”. Framz Cumont, Astrology amd Religion Among Greeks and Romans, 1960, 89, in Bacchiocchi, 257.
다수의 학자들에 의하여 거듭 확인되듯이. 예수님의 탄생일을 “12월25일로 선택한 것은 이교의 행사였던 “정복할 수 없는 태양”의 축제가 그 당시 대단히 화려하게 축하되고 있었기 때문이었음이 점차적으로 확실해 졌다.”. Jungmann, 147.
그리하여 4세기의 달력[Philocalian . A.D 354]에는 12월 25일이 아예 “정복할 수 없는 자의 생일”로 명명(命名)되어 있었으며, “로마 카톨릭 교회는 [패르샤의 태양신 교인] 미드라 종교(Mithraism)와 겨룰 목적으로 12월 25일을 택한 것으로 믿는다.”. Ibid.
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실제로 12월 25일을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축하한 것이 로마교회였음을 밝히는 달력도 발견되었고,."Chronography of 354"로 불리는 달력. T. Mommsen, Chronography of Philocalus of the Year 354, 1850, 631, in Bacchiocchi, 260.
로마 카톨릭 교회의 의식(儀式) 학자에 의해서도 거듭 확인되고 있다.
증언 카톨릭
“평화가 이룩된 후 로마교회는 이교도들이 믿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용이하도록 하기 위해, 그들이 이교의 축제에서 돌아서도록, 흑암의 정복자인 ‘무적(無敵)의 태양’ 미드라(Mithras)를 영광스럽게 하는 같은 날인 12월 25일을 그리스도의 임시적인 생일로 제정하는 것이 편리한 것을 발견했다.”. Mario Righetti, Storia Liturgica, II (Milano: Editrice Ancora, 1955), 67.
로마제국과 태양 숭배
일정한 종교가 없던 로마 사람들에게 태양은 자연숭배의 대상으로 걸맞았다. [옥스포드 교회사 사전]에 의하면, 로마에서 공식적인 태양숭배가 시작된 것은 기원전 67년 페르시아의 태양신인 “미드라가 소개되면서부터 였으며, 2세기말에는 콤모두스(Commodus . A.D. 180-192) 황제에 의하여 황실의 종교가 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아버지"(father)로 불리우는 제사장들에 의해 집행되는 태양신교(Sun Cult)의 의식이 그리스도교의 성례 전들과 너무도 흡사하여, 당시의 교부 터툴리안(Turtullian)은, 사단이 그리스도교의 성례 전을 그들이 모방하도록 미리 알려줬다고 할 정도였다. . The Oxford Dictionary of the Christian Church(1978), 924.
Gaston H. Halsberghe, The Cult of Sol Invictus(Leiden: E. J. Brill, 1972), 35.
이토록 2세기에 들어서면서, 특별히 황제들과 군인 및 고관들의 사적(私的)인 종교 가된 페르시아의 태양신은 “무적(無敵)의 태양”(Sol lnvictus Mithra)으로 불리우며 로마제국의 국교로 발돋움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공적(公的)으로는 “엘라가발루스(Elagabalus . 218-222)황제가 국교의 대상으로 드높인 태양신 (Sol lnvictus Elagabal)을 장엄한 신전에서 숭배하고 있었다. . Ibid., 35.
예수 님께서 탄생하시기 전 로마는 이미 혹성신(惑星神)의 이름을 딴 오늘날의 요일 명칭을 쓰고 있었음이 고대 문서들에 의해 밝혀졌다, . Bicchiocchi, 242~244.
2세기에 이르러 이 혹성 요일의 명칭은 더울 확신되었고 당시는 혹성에 포함되어. 고대에는 태양도 혹성의 하나로 분류되었다. 주이트, 123, 난하주 72.
토성일[토요일 . the day of Saturn] 다음인 둘째 날에 배정되었던 “태양의 날”곧 일요일(the dat of Sun) 이 2세기 초엽. Bacchiocchi, "The Rise of Sunday Observance in Early Christianity", in The Sabbath in Scripture and History, 140.
토성 일을 제치고 첫자리로 나오게 된 것은. Ibid. Bacchiocchi, From Sabbath to Sunday, 247.
태양숭배가 고조되던 시대의 분위기를 잘 반영하고 있다.
이교도들은 일요일에 공식적인 태양숭배 의식은 행치 않았지만 목욕을 금하고 휴식하고 잔치하는 날로 보냈음을 2세기의 교부 터툴리안 (Tertullian . 160-225)의 기록에서 찾게 된다.. Tertullian, Ad. Nationes 1. 13, Ante-Nicene Fathers, III, 123.
2세기 중엽에는 이미 태양의 날 (日曜日)을 첫째 날로 하는 오늘날과 같은 일[태양] 월[달] 화[화성]수[수성]목[목성] 금[금성] 토[토성]등 혹성 요일이 확립되어 있었다.. Vettius Valcns, Anthologiarum 5. 10, cd. G. Kroll, 26. in Baecchiocchi From Sabbath to Sunday ,250. 251.
그래서 로마의 초기 교부였던 저스틴(Justin Martyr)이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과 다르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하여 서기 155년경 로마 황제 [Pius)에게 변증서를 올리면서, 세번씩이나 “태양의 날”을 거론하면서 이 날에 그리스도인들이 한 데 모여 집회하는 습관에 관한 말을 하여 태양을 숭배하던 황제의 환심을 사려고 한 배경을 알게 된다.. Justin Martyr, 1 Apology 67, 3~7, Bacchiocchi, 251.
로마교회와 일요일 준수와 태양숭배
이상과 같은 역사적 증거를 통하여 확실하게 된 몇 가지 사실이 있다. 즉 서기135년에 끝난 바르-코게바(Bar-Kokeba)의 반란을 계기로 유대교가 하드리안 황제에 의하여 불법 종교가 되고 구약 성경 [토라]연구와 할례와 안식일 준수가 금지되자 그리스도교는 유대교와 구별되기 위하여 안간힘을 다했다. 특히 로마교회는 이 일에 앞장서서. 다음과 같은 역사적인 일을 시작했다.
○ 유대인과 그리스도인이 그 때까지 함께 준수해 오던 안식일을 로마 사람들이 선호(選好) 한 “태양의 날”인 첫째 날로 옮기기 위해 동방 교회들의 반대를 외면하고 안식일에 금식을 강요하고 성만찬을 금하는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하였다.. S. R. E. Humbert, Adversus Graeecorum Calumnias. 6, in Bacchiocchi, 194.
○ 초기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유월절 수난과 새 언약을 기념하기 위하여 지켰던 1월[니산]14일 대신 날짜를 무시한 채. 유월절 이후 첫 “태양의 날”[일요일]을 부활절- 일요일로 제정하고 동방 교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를 관철시켰다. 일요일과 함께 부활절 [이스터] 자체가 태양과 관련된 이교도의 축제였음이 명백한 사실이다.
○당시에 이미 민족 신앙이 된 “무적의 태양”의 생일인 12월 25일을 예수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일컫는 크리스마스와 일치시켜 태양신이 누리고 있던 영광을 그리스도에게로 전환시키는 계기를 삼았다.
이토록 엄연한 역사적인 사실을 염두에 둘 때 일요일 준수가 이교의 태양숭배와는 전적으로 무관하다는 아래와 같은 쥬이트의 변명은 어떤 면에서도 진실하지 않다.
증언 주이트
“ 태양 숭배는 먼 태고로부터 있었던 일이며 그리스도교 시대가 시작되었을 때 유대인의 일주일 중 첫날이 태양을 숭배하는 이교의 어떤 특별한 관계를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스도인이 일요일에 예배 드릴 때 그들은 그날을 ‘일요일’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주이트, 122.
변증
실제로 그리스도교 신앙이 당시의 시대적 분이기에 편승하면서, 태양을 향해 기도하는 등 그리스도인의 각종 종교의식이 태양숭배와 직접 관련되자, 그리스도인들은 “태양숭배자”(Sun-worshiper)라는 비난을 받기에 이르렀다. 2세기말의 서방 라틴교부 터툴리안(Tertullian)은 이에 대해 변명을 해야 했으며. Tertullian, ad Nationes 1, 13, Ante-Micene Father, III, 123.
5세기초의 로마 교황 레오1세(Leo 1 . d 461)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태양숭배를 하고 있는 것에 공격을 가하기에 이르렀다.. Bacchiocchi, 254.
또한 6세기초의 알렉산드리아 교부였던 유세비우스(Eusebius. c. 500)도 이 사실을 기록에 남기고 있다.
증언 교회사
“나는 태양을 숭배하고 그것을 향해 기도하는 많은 사람들을 알고 있다. 해가 뜰 때 그들은 기도하면서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라고 말한다. 이런 일이 태양숭배자들이나 이교도들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도 믿음을 떠나서 이교도들과 어울려 이 일을 한다”.. Ibid., footnote.
콘스탄틴 황제의 일요일 휴업령(A. D 321)
앞에서 언급한대로 2세기에 들어서면서 로마인들의 태양숭배 열이 높아지고 혹성 요일의 둘째 자리에 있던 “태양의 날” [일요일 . dies Solis)이 “토성의 날”[ 토요일. dies Saturni)을 제치고 첫째 날이 되는 등. Bacchiocchi, 247.
분위기가 한창 고조되었다. 바로 같은 때에 유대인의 제2차 반란으로 로마제국에 의하여 불법 종교가 된 유대교와 구별되기 위하여 안간힘을 쓰던 그리스도교, 특히 로마교회가 앞장선 서방 교회는 동방 교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로마의 태양숭배 분위기를 수용하는 적극적인 태도를 취했음을 확인했다.
때마침 동서로 나뉘었던 로마제국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콘스탄틴(Constantine. d.337)대제가 313년 밀라노 칙령(the Edict of Milan)을 내려 종교 자유를 허용하는 극적인 일이 일어났다. 그리고 잇달아 그리스도인들과 교회에 온갖 특전을 제공하는 일련의 조치를 취함으로써 그리스도인들의 더할 나위 없는 환심을 사게 되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황제는 321년 3월7일 다음과 같은 역사적인 칙령을 내렸다.
“존경스러운 이 태양의 날에 모든 판사들과 도시에 사는 모든 사람들, 그리고 장사하는 모든 사람들은 휴업하도록 하라 그러나 농촌에 사는 사람들은 하늘이 마련해 준 혜택을 상실하지 않도록 씨를 뿌리거나 포도나무를 재배함에 있어 그토록 적절한 때가 없는 수가 있으므로 적기(適期)를 놓치지 않기 위해, 이 날에 완전히 자유롭게 농경(農耕)에 종사하도록 하라".. Codex of Justinian, lib. 3, tit. 12, leg. 3, in Pgilp Schaff,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vol. 3(New York: Scribner, 1902), 380.
큰스탄틴 황제가 휴업하도록 명령한 날의 대상인 “존경스러운 태양”은 예수그리스도가 아니라, 황제 자신을 포함한 로마 사람들이 섬겨 온 “무적의 태양” 곧 “미드라”(Mithras) 태양신이었다.. F. F. Bruce, The Spreading Flame(Devon: The Paternoster Press, 1970), 299.
국내에서 발간된 [기독교 대백과 사전]에도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증언 대백과
“그리스도교 시대 초기에 로마 제국에서, 특히 로마 군인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던 수많은 동방 종교들 가운데 하나가 페르시아로부터 수입된 미드라 종교였다. 미드라는 태양신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해 미드라 종교는 일요일을 성일로 간주했다. 이러한 이교적인 종교의 추종자들이 이 날을 숭배한 것은 콘스탄틴 황제가 일요일을 제국의 휴일로 선정하는 데 공헌하였다.. 기독교 대백과사전, 제 14권(서울: 기독교문사, 1984), 116.
*[대영 백과사전]에도 일요일이 세계적인 휴일이 된데 대해 아래와 같이 쓰고 있다.
증언 대백과
“유세비우스(Eusebius . 260-340)에 의하면 일요일을 합당하게 준수하도록 하는 법을 최초로 제정한 사람은 콘스탄틴인데, 그는 전 로마 제국이 일요일을 규칙적으로 축하하도록 명령하였다.". Encyclopedia Britannica, 9th ed., art., "Sundau."
“서기 321년 그 [콘스탄틴]가 일요일을 일반적인 공휴일로 선포했을 때, 그는 그리스도인과 이교도를 함께 마음에 두었다.”. Atrhur E. R. Boak, A History of Rome to 565 A.D.(New York: the Macmillan Co., 1955), 433.
“태양의 날은 이교도 추종자들에 의하여 숭배를 받았고 그리스도인들에 의해서도 영광을 받았으므로, 이로써 이교와 그리스도교의 상충하는 관계를 연합시킨 것이 황제의 정책 이였다 .Ellen G. White, The Controversy(Mountain View, Calif.: Pacific Press Publishing Assn.,1950), 53.
“[콘스탄틴] 황제의 견해에 의하면,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그리스도께 예배하고 이교도들 은 그들의 태양신을 섬기는데, 두 종교의 예배의 대상이 근본적으로 같은 것이었다.”. H. G. Heggtvit, Illustreret Kirkehistorie, 202, in the SDA Bible Students' Sourse Bool, 1000.
콘스탄틴의 정책과 일요일 휴업령의 진상
콘스탄틴의 개종(改宗)은 명목적(名目的)이었으며, 그는 평생 태양숭배자였다.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뒤에도 고대 희랍과 로마의 태양신인 아폴로(Apollo)를 높이기 위해 주화(鑄貨)를 만들어 냈으며 죽기까지 이교[태양신]의 대제사장의 칭호[Pontifex Maximus]를 썼다. 그는 그리스도교와 이교를 동시에 유지하려는 정책을 썼다.. Kenneth S. Latourette, A History of Christianity(New York: Harpe & Brothers, 1953), 92, 93.
이러한 콘스탄틴 황제가 휴업하도록 명령한 날은 부활을 기념하는 그런 성일(聖日. holy day)이 아니라, 운동경기나 오락을 즐기는 세속적인 휴일(休日. holiday)에 불과했다.
태양의 이름으로 휴식을 명령한 이교 적인 정책을 교회 지도자들이 오히려 추진하고 환영한 까닭을 무엇인가? 처음에는 불법 종교가 된 유대교와 구별되기 위하여, 로마 제국의 환심을 사려는 것이 저의(底意)였다. 그러나 313년 밀라노 칙령에 따라 신앙의 자유가 허락되고, 명목적인 개종을 거친 콘스탄틴 황제는 성직자들에게 병역과 납세의 의무를 면제하고 사법상의 특혜, 하사금 지급 등 엄청난 특권을 부여하고, 교회의 사유재산과 유증(遺贈)까지도 허락하는 등 정치적 배려가 깊어지자 그리스도교는 금새 현실에 눈이 어두워진 퇴폐적인 정치 종교로 탈바꿈하고 말았다.. J. L. Hurlbut, The Story of the Christian Church(Grand Rapids: Zondervan Publishing House, 1970), 60.
성직 매매가 시작되고, 성직 쟁탈을 위한 정치적 수단이 동원되어 366년 로마교회 감독 다마수스(Da-masus)를 선출할 때는 폭력배들이 동원되었고, 415년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성직에 나섰던 히파티아(Hypatia)가 폭력배에게 맞아 죽는 일까지 벌어졌다.. Bruce, 295, 296.
일요일을 주일(主日)로 옹호하는 주이트(Jewett)도, “콘스탄틴이 일요일을 휴일로 지정한 것은 여기[일요일]에 대한 이교도들과 그리스도인들의 관심을 기술적으로 결합”시킨 것임을 인정하고, “그의 칙령은 주일(主日)성수의 발달 과정에서만 획기적인 사건이 되지 않고, 그의 정치적 영특성을 기념하는 기념비도 될 수 있”. 주이트, 137.
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것이 참으로 주일(主日) 성수(聖守)의 발달 과정인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출 20:8)는 하나님의 명령은 외면하고, 속(俗)된 휴일로 지정한 콘스탄틴의 명령에 따라 일요일을 성수(聖守)하는 것이 정상적인 그리스도 인의 양심일 수 있을까?
그리스도교 제1차 세계 총회인 니케아 종교회의(A.D.325)도 콘스탄틴 황제의 재정적인 지원으로 화려하게 열렸고 황제 자신이 임석하여 개회사를 하기에 이르렀다.. The Oxford Dictionary of the Christian Church, 967.
그리고 동서 교회가 부활절-일요일의 날짜 문제로 이견을 보이자 황제는 즉시 로마교회를 편들어, 모든 교회로 하여금, “로마와 알렉산드리아 의 고대 교회” 의 관습을 따르도록 명령하는 등.Eusebius, Life of Constantine 3, 19, Chronicon Paschale, PG 92, 83, in Bacchiocchi, 204.
세속의 황제가 교회 위에 군림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결국 200년 이상 계속된 로마제국의 픽박 을 “죽도록 충성”(계2:10)함으로써 이긴 그리스도의 교회는, 종교의 자유와 온갖 호의를 베풀면서 타협을 시도한 콘스탄틴 황제의 정책에 쉽사리 넘어간 것이다. 이것이 일요일이 안식일을 대신한 역사적 반증이다.
“콘스탄틴은 이 때에 옛 신앙과 새 신앙의 예배 자들을 한 종교로 연합시키기 위해 지칠 줄 모르고 일했다. 그의 모든 법령과 고안들은 두 종교의 혼합을 촉진시키는데 집중되어 있었다. 그는 합법적이고 평화스러운 방법으로 순화된 이교와 온건한 그리스도교를 함께 녹이려 했다.... ‘태양의 날’ 이 일반적인 휴일이 되어야 한다는 그의 명령은 그의 입장을 대표한 것이다. ...그리스도와 이교를 뒤섞고 혼합한 그의 일을 가장 쉽게 꿰뚫어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일요일 휴업 령 인 것이다.. Hcggtvcit, 202.
오늘날처럼 거의 온 세상이 일요일에 쉬게 된 것은 이상과 같은 역사적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일요일에 휴식하며 예배한 경위에 대하여 자신이 일요일 성수론 자인 주이트는, “일요일에 일을 하지 말고 쉴 것을 제일 처음으로 분명히 언급한 저자는 [2세기말의 교부] 터툴리안(Tertullian. 서기.200년경)이”라고 밝힌 후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증언 주이트
“이야기는 이미 언급한바 있는 콘스탄틴의 칙령과 함께 시작된다. 그 칙령일 공포되자 많은 사람들은 주일날[일요일]의 꽤 많은 시간 동안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된 것을 알았다.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게으름이란 과중한 노동과 같이 정신적 수양에 해로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의식적인 행위만 증가시킨 것이 아니라, 안식일에 대해 구약 성경이 규정하고 있는 엄격한 금령들을 빙자하여 쉬라는 요구에다 종교적 열성과 의무를 지우려 하였다. 그리고 일요일의 휴식에 대한 이 법은 시민법의 지지까지 호소하였다.. 쥬이트, 143.
그리스도교회의 공식적인 일요일 준수
주이트의 솔직한 증언대로 그리스도인들이 일요일에 공식적으로 쉬게 된것은 전적으로 콘스탄틴의 일요일 휴업령 때문이며, 쉬는 시간적 여유를 이용하여 그 때 그 때 이런 저런 종교 행사들을 덧붙여 온 것이 오늘날의 일요일 예배의식인 것이다.
이러한 경향에 부채질한 사람이 바로 가이샤랴의 감독으로 콘스탄틴 황제와도 가깝게 지낸 교회사의 비조(鼻租) 유세비우스(Eusebius of Caesarea. c.260-340)였다. 예수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성을 인정하지 않았던 유세비우스는 안식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음을 다음의 인용에서 보게 된다.
“우리[교회]는 안식일에 관한 모든 의무는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다 주의날[主日]로 옮겼는데, 이는 이날이 유대인의 안식일보다 더 권위가 있고, 높이 존경을 받고, 순서에서도 첫번이고 더 영예롭기 때문이다.. Eusebius, Commentary on Ps. 91(92):2.3, in the SDA Bible Studenrs. Bible Source, Book 877.
이토록 참람하고 모독적인 뒷바침을 통하여 촉진되어 온 교회 내에서의 일요일 준수가 마침내 364년경에 열린 “라오디게아 종교회의”(Council of Laodi-cea)에서 공식적으로 인준되기에 이른다.
“그리스도인들은 유대화하여 안식일에 게으르지 말아야 하며, 그날에 반드시 일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주의 날[일요일]을 특별히 존중히 여겨, 그리스도인으로서 가능하면 이 날에 일하지 말라. 그런데도 만일 그들이 유대화한다면 그리스도로부터 저주를 받을 것이다..Synod of Laodicea, Canon 29, as translated in Nicene and Aante-Nicene Fathers(Graahd Rapids:1971). Second Serics, vol. 14, 148
이상과 같은 사실은 1910년 1월 25일 교황 피우스10세(Pius x)로 부터 “사도적인 축복”(Apostolic Blessing)을 받은 [회심자를 위한 가톨릭교리 문답서]에서 아래와 같이 확인되고 있다.
문 : 어느 날이 안식일인가?
답 : 토요일이 안식일이다.
문 : 우리는 왜 토요일 대신 일요일을 지키는가?
답 : 카톨릭 교회가 라오디게아 종교회의에서 그 존엄성을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옮겼기 때문이다. Petcr Geiermann, C. SS. R.The Cohvert,s Catechism of Catholic Doctrihe, 1957 ed.(St Louis: B. Herder Book Ci., 1930),50
진상이 분명해졌다. 로마 황제 [콘스탄틴]는 제국 내의 이교와 그리스도교를 정치적으로 연합시키는 일을 위해 일요일을 활용하였고, 로마교회는 정치적인 권익을 제공하는 일요일을 발판으로 회심하지 아니한 이교도들을 그리스도교에 입문(入門)시켜 마침내 중세기를 지배하는 로마 카톨릭의 입지를 확보한 것이다.
이리하여 일요일에는 일하지 말라고 제안한 최초의 교부인 터툴리안 (Tertu-llian . d. 225)의 말과,. Vincent J. Kellly, Forbidden Sundaay and Fcast-Day Occupations(Washington: the Catholic Universiry of America Press, 1943), 203.
안식일에는 일하고 일요일에는 쉬라고 결의한 최초의 회의인 라오디게아 종교회의의 결의와, “존경 스러운 태양의 날”에는 일하지 말라는 최초의 법인 콘스탄틴의 칙령을. lbid. in thhe SDA Bible Studcnts, Source Book, 1437.
따르기 위해 “제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칠일에 쉬었음이니라” (출20:11)고 이유까지 밝혀 말씀하신 하나님의 계명은 유린해도 되는가? 그것이야말로, “너희 유전(傳統)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마15:3)하는 경우가 아닌가? 이에 관한 로마 카톨릭의 직설적인 증언을 아래에 인용한다.
증언 카톨릭
“만약 당신이 성경만을 따른다면 당신은 토요일[안식일]을 지켜야 할 책임이 있다. 왜냐하면 그날이야말로 하나님께 거룩히 지키도록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특별히 지시하셨기 때문이다. 일요일을 지킴으로서 비 가톨릭 신자들은 1800년간 성경의 제도가 아닌 카톨릭의 전통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 신자들처럼 토요일[안식일]을 지키는 사람들은 이점에서 그들의 덜미를 잡고 있는 것이다. . F. G. Lentz The Qucstion Box (New York: Christian Prcss Assn , 1900), 98. 99.in the S D A Bible Students, Source Book, 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