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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완계마을 원문보기 글쓴이: 沙月
마지막 날 여행 마지막 날이다. 항상 그렇듯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게 마련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유럽 같이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닌 중국 정도는 4박 5일 정도의 일정이 가장 적당한 것 같다. 마지막 날이어서 체크아웃도 해야 하고 출발도 8시로 잡혀 있어 시간적 여유가 많았다. 7시가 좀 넘은 시간에 내려왔다. 어제 하나도 못 먹은 용진을 꾸지람까지 하면서 어쨌거나 좀 먹게 하려고 했지만 별무차이다. 녀석이 생각을 바꾸지 않는 한 어쩔 수가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체크아웃을 하느라 짐은 어제 미리 다 싸놓았고, 다시 올라가서 꾸려놓은 짐과 빠뜨린 것이 없는가만 확인을 하고 다시 내려왔다. 그래도 우리가 1등이다. 보니 세하와 울산에서 온 일행 하나는 어제 슈쉐이백화점에서 산 옷을 입고 나왔다. 지난 겨울 내가 홍챠오시장에서 산 붉은 남방을 입고 귀국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활기찬 북경의 아침. 연결버스, 이층버스 등이 보인다. 출발 시간이 늦어서 볼 수 있었던 광경.
호텔에서의 체크아웃도 아무런 문제가 없이 잘 끝이 났고 예정된 시간을 약간 넘긴 시간에 출발을 했다. 첫 관람지인 유리창으로 갔다. 유리창은 원래 오던 날 들르기로 되어 있던 곳인데 일기 사정으로 오늘로 미뤄진 것이었다. 중국의 인사동이라 불리는 곳. 이곳은 원래 말 그대로 자금성을 지을 때 “유리기와를 굽던 공장(琉璃廠)”이었다. 그러던 것이 성이 완공되자 그 원래의 기능을 잃어버려 낙방한 거자(擧子)들이 모여 그간 공부하던 책 등을 헐값에 팔아 노자로 삼던 것이 관행이 되어 지금 같은 골동품 거리가 조성된 것이었다. 중국이 아무리 넓어도 수 백 년 동안 팔릴 골동품은 없을 것이니 물론 그곳의 골동은 가짜가 99.9%이다. 전시된 것은 100% 가짜다. 그래도 한번 둘러볼 만한 곳이었다. 나는 주로 『고문진보』 여름 강의를 듣는, 그래서 나의 이번 여행 경비에 적잖은 도움을 줬던 고문진보반 수강생들의 선물을 살 작정으로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약간 지체가 되었지만 자금성 안내 책자 9권과 『전각소사전』, 그리고 『상용자자첩』을 샀다. 나도 약간 늦었지만 도장을 판다고 갔던 큰형님과 세하는 더 늦었다. 시간에 쫓기기 시작한 잘못 꿰어진 첫 단추였던 것 같다. 이런 코스는 사실상 빼도 무방한데, 중국의 가이드를 보면 코스에 있는 곳은 죽어도 다 가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물론 돈을 지불하고 가는 것이니 책임을 다하는 것이 도리이긴 하겠지만 좀 지나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고지식하게 전코스를 다 돌 것을 고집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가이드 현용남이 버스를 타면서 내게 “아무래도 올림픽 주경기장인 냐오차오(鳥巢)에는 못 갈 것 같아요.”라고 조금은 난감한 표정으로 말한다. 별로 신경을 쓸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오리려 내가 위로조로 이야기를 해줘야 했다.
북경의 인사동이라는 유리창 거리
유리창서 파는 당삼채 도자기 인형. 유리창의 골동은 일부러 흙까지 묻혀 고색창연하게 보이도록 위장을 하였지만 다 가짜다. 당나라 때 미인의 전형을 보여주는데 일행인 권비영 선생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다음 코스는 모두가 연결된 코스로 꿔쟈따쥐위엔(國家大劇院)과 천안문광장, 자금성, 경산공원이었다. 약 4시간 이상을 강행군을 해야 한다. 짐은 최대한 가볍게 해서 단단히 준비를 하고 내렸다.
중국 현대건축물의 큰 볼거리인 국가대극원
국가대극원은 오페라 하우스다. 중국의 최신 건축예술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이 안에는 세 개의 커다란 공연 홀이 있다고 한다. 당초 입장권을 예산에 넣었는지 안 넣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엇보다도 시간이 그렇게 넉넉한 편이 아니어서 단체 사진을 찍고 외부만 돌아 천안문광장으로 향했다. 얼핏 봐도 물위에 뜬 거대한 달걀, 아니 타조알 같은 모습이 중국의 야심찬 경제적 문화적 목표를 과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인민대회당을 돌아서자 보이기 시작한 분수를 뿜는 천안문
천안문광장은 왼쪽으로 돌아들어가기는 처음이다. 그래봤자 세 번 밖에 와보지 않았지만. 이곳은 국가박물원과 모주석 기념당, 그리고 인민대회당으로 둘러싸여 있는 곳이다. 13년 전의 기억은 가물가물하고, 지난 겨울의 모습을 떠올리니 비교적 한산(?)했다는 느낌이 드는데 성수기 휴가철을 맞은 이 날은 사정이 달랐다. 중국의 인구가 많다지만 몸소 느끼기에 아주 적합한 날이었던 것 같다. 어느 곳 하나 사람이 붐비지 않는 곳이 없었다. 단체 촬영 후 주어진 10여 분의 자유 시간은 광장 구석구석을 살피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인민영웅탑 너머까지 가서 모주석 기념당에 최대한 가까이 가보았다. 기념당에는 사람이 장사진을 치고 있다. 아마 개방 시간이었던 것 같다. 휴대품 하나도 없이 모주석의 시신만 구경하는데 2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용진과 함께 주마간산격으로 둘러보고 집결지로 갔다.
모주석 기념당 참관을 위해 장사진을 친 사람들
각종 여행사의 깃발로 뒤덮인 천안문광장 일대
"뿌뚱러(不動了: 움직이지 마세요)" 천안문 광장에서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하는 중국인 관광객들.
다음은 자금성이다. 언제나처럼 한번 들어가면 최소 여러 시간은 볼일을 못 보니 볼일부터 보고 오라고 한다. 볼일을 보고 가이드를 따라가는데 겨울과는 완전 다른 풍경이다. 천안문 앞쪽의 분수도 달라보였지만 역시 가장 볼만한 것은 사람 사람, 사람의 물결이었던 것 같다. 첫 북경여행 때 이곳 단문(端門)의 통로를 지나갈 때 사람들의 시끄러운 소리가 생각났다. 이곳에서는 가이드와 표를 사러간 이장휘 선생과의 사인 미스 때문에 금쪽 같은 시간을 약 30분이나 허비했다. 나중에 보니 이장휘 선생은 웃돈을 얹어주며까지 빠른 표를 샀는데, 집결지에 대한 서로간의 입장 전달이 잘 안 되었던 것이다. 일행은 이런 이유로 바쁜 가운데서도 오문(午門) 광장에 퍼질고 앉아 여유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했던가? 우리 뿐 아니라 다른 외국의 관람객들도 모두 원을 그리고 퍼질고 앉아 먹은 음식 찌꺼기나 포장지 등을 아무데나 자연스럽게 버렸다. 이것이 진정한 중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가장 많은 인파에 파묻혀 그 언제보다도 빠른 속도로 자금성이라는 사람으로 채워진 거대한 풀장을 헤엄쳐나와야 했다. 가이드도 상세한 설명은 포기한 상태다. 중요한 곳에서만 간단한 설명을 하고 궁전의 내부 등은 약간만 시간을 더 주고 직접 보고 오라는 식으로…… 물론 설명 없이 그곳에 가 봐야 별 도움도 안 되었겠지만 무엇보다도 사람이 너무 많아 접근조차 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지난 번과 다른 점은 광장 진입부터 자금성까지 계속 반대 코스로 돌아 1년, 아니 7개월여 만에 그래도 한 바퀴를 돌아보았다는 것이었다. 오른쪽으로 도니 자금성 내의 유일한 검은 기와지붕을 얹은 문연각을 눈으로 목격할 수 있었다.
외조(外朝)의 중심 건물인 태화전의 잡상. 신선과 용 사이의 상이 10개면 최고 등급의 건물이다.
왕실 도서관인 문연각은 불(火)에 약한 책을 수장하는 곳이어서 오행 중 물(水)에 해당하는 검은색(玄) 기와를 쓴 자금성 내의 유일한 건물이다.
빠른 속도로 자금성을 빠져나와 경산공원으로 갔는데, 이곳이야 말로 정말 아주 간단한 연결 코스였지만 이번 여행 중 나를 가장 흥분되게 한 코스였던 것 같다. 경산공원으로 이동을 하던 중에 자금성 화보를 파는 여자가 있었는데 중국답게 제각기 다른 금액을 주고 샀다. 내가 20원을 주고 사서 가장 싸게 산 것이 되었는데, 나중에 보니 거스름돈에 러시아돈으로 보이는 지폐가 70원이 포함되었다. 결국 거스름돈은 10원만 받은 셈이니 50원 짜리를 90원을 주고 산 셈이었다. 루블화의 환율을 집에 와서 찾아보니 원당 40원 가량하였다. 이것을 은행에 가서 바꾼다해도 5분의 1은 손해를 본 셈이었다. 이것도 여행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덕분에 구경하기 힘든 러시아 돈을 얻은 걸로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결국은 중국통이라는 나도 순간적으로 그들의 깜찍한 사기에 당하고 만 것이었다. 결론은 기념이 될 만한 중국에서 얻은 러시아돈을 조금 비싸게 바꾼 경우가 되어 버렸다. 사진에서 익히 봐왔던 그 자금성의 모습. 명나라 마지막 황제인 숭정제가 이자성에 의해 북경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목을 매 자결한 곳. 풍수지리설 때문에 자금성의 해자와 호수 등을 파면서 나온 흙으로 쌓은 인공산. 그러면서도 정교한 설계에 의하여 5개가 되는 정자의 위치 등을 미리 잘 배치하기도 하였다. 일행 가운데 시간적으로 촉박하여 오르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다. 괜히 자신들 때문에 지체되면 미안한 일이 생길 것 같아서 그랬던 것이다. 세련누나도 그 이유로 안 놀랐는데 정말이지 꼭 올랐으면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의외로 용진도 오르지 않았다. 올라갔을 때는 약간 비가 내렸는데 다행히 비는 더 이상 내리지는 않았다. 덕분에 희끄무레하게 운무에 덮인 자금성의 전경을 볼 수가 있었다. 다음에도 자금성은 포기를 하더라도 경산만은 꼭 올라야 할 것 같다.
경산공원에서 내려다 본 자금성의 전경
이것으로 모든 공식적인 일정은 끝이 났다. 점심을 먹으러 갔다. 와하하(娃哈哈)호텔이다. 와하하는 우리가 여행 내내 마셨던 생수인 캉쓰푸(康師傅)와 라이벌 그룹이라고 한다. 실제 무이산 여행 때는 거의 와하하 생수만 마셨던 기억이 있다. 이곳은 문을 연 지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아주 깨끗하였지만 가이드 말이 아주 고급 호텔은 아니라고 한다. 4성급이라고 한다. 이장휘 선생 말은 승덕과 노룡두의 현지 가이드 비용인 500원을 더 거두어주어 자기의 돈을 보전할 수 있었던 가이드가 선심을 써서 줗은 곳으로 안내를 한 것이라고 하였다. 하여간 마지막에 깨끗하게 정리된 호텔에서 맛깔스러워보이는 식사로 공식 일정을 끝내니 기분이 좋았다. 내몽고로의 일정이 사흘 더 남아 있는 이장휘 선생과는 이곳에서 작별을 하였다. 간단하게 예산 사용 경위를 말하는데 500원 정도 남았다고 한다. 초과 지출된 돈이 적지 않았을 텐데 용케 잘 맞췄다. 금산령이며 국가대극원, 올림픽 주경기장 입장료를 고스란히 아낄 수가 있었을 테이고, 급이 떨어지는 식사를 두 번 정도 한 셈 치면 거의 맞아떨어질 것이었다. 일행이 모두 내몽고 가는 경비로 보태 쓰라고 하였지만 또 생각 않은 것이 있다. 여행자 보험료는 나와 세련누나, 이장휘 선생 본인만 알고 나머지는 들었는지조차, 들었어도 그게 경비에 다 포함 되는 줄 알았을 것이다. 어쨌든 이별의 연속이다.
중국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했던 와하하 호텔
돈을 많이 벌게해 달라고 호텔 로비에 설치해 놓은 재신(財神).
공항으로 향했다. 보딩 수속하는 요령을 가이드가 간단히 소개하였고, 나머지 시간에는 이번 여행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졌다. 시간적 이유로 모두가 다 자기 의견을 말할 수는 없었지만 모두들 대단히 만족해하는 것 같았다. 내가 부여한 100점이 제일 낮은 점수였으니. 개인적으로 나는 식사를 거의 못 했던 용진이 때문에 신경이 많이 쓰였던 여행이었다. 그리고 김해공항에서 출국 심사 때의 아찔한 경험까지 있었고……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 것은 함께 한 일행들이었다. 완계피붙이, 세련누나 지인, 이장휘 선생 일행 등 세 군데서 이리저리 모인 23명의 집단이었는데, 이렇게까지 합목적적인 여행 그룹은 앞으로도 찾기가 힘들 것이다. 물론 개인적으로 좀 튀기도 하는 사람도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여행 알정에는 차질이 빚어진 경우가 단 한 번도 없었으니.
함께 했던 일행. 이렇게 합목적성에 맞아떨어지는 일행은 다시 만나기 어려울 듯. 태화전 앞에서.
가이드는 수하물을 부치는 곳까지도 따라들어올 수가 없었다. 여권이 없어서. 정이 많이 든 가이드였는데. 아무리 노옵션―노쇼핑 여행단이라지만 그래도 뭔가 고물이 떨어지기를 바라는 행동을 할 수도 있었을 터인데, 그런 내색은 이장휘 선생에게만 살짝살짝 몇 번 말했던 것으로 안다. 그리고 가이드치고는 비교적 깊이 아는 편이었고, 우리를 통한 학습태도도 좋았던 것 같고…… 우리를 태워갈 비행기가 연발을 하게 되어 좀 더 기다렸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찌감치 탑승구에 모여 차분하게 가까운 사람들끼리 모여 이야기를 하였다. 드디어 북경 상공을 떠서 김해로…… 용진은 거의 비행기를 타자마자 잔다. 나는 순간적으로 속이 좀 거북해서 화장실에 두 번 갔다. 창가 좌석에 앉아 자는 사람들을 귀찮게 하지 않으려고 제일 뒷좌석, 곧 올 때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올 때와 같은 일행으로 80살 먹은 할머니가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기도 하였다.
북경 서우두 공항을 갓 이륙한 모습
비행기가 도착을 하고 차를 맡긴 사람은 차를 찾고 하는 사이에 보니 딱 절반에 해당하는 울산 사람들은 이미 가고 없다. 작별인사라도 한번 제대로 해야 했는데…… 대구서 출발했던 사람들만 왔던 차에 그대로 몸을 실었다. 네비게이션을 단 세하 차가 한 차례 길을 잘못 들기는 했지만 나머지는 무사히 잘 왔다. 청도휴게소에 잠시 들렀지만 피자를 시켜놨다고 빨리 오라는 마누라 전화에 식사는 않고 인사만 하고 왔다. 집에 오니 이미 11시가 넘은 시간. 윤진이가 먼저 몇 쪽을 먹은 피자는 이미 식었지만 처형은 우리를 보고 가려고 늦은 시간까지 남아 아직 가지 않고 있었다. 지형이가 거의 눈물이 나올 것 같은 표정과 음성으로 “이 피자 정말 맛있다……”며 말을 흐려 애들에게는 상당히 힘든 여행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로서는 더 없이 좋았던 여행이 사람마다 이렇게 달라질 수도 있겠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나? 정말 좋은 여행이었지. 다음이 기다려지는……
청도휴게소에서 잠시나마 마지막 인사를 하러 가는 모습 |
첫댓글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시는군요. 감사합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글을 읽기 부담스러우시면 사진만 봐주시기를...
장가계의 저력에 다시한번 박수 보냅니다. 낯익은 얼굴도 있네요. 부러버라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