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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타임'지가 선정한 20C를 빛낸 100인 중 유일한 건축가인 르 코르뷔지에(1887-1965), 그의 본명은 샤를 에두아르 잔느레Charles Edouard Jeanneret. 1887년 스위스의 라쇼드퐁La-Choux-de-Fonds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공예학교를 나왔다. 78세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330여 개의 크고 작은 건축 도시 작품을 계획했고, 그중 100여 개 작품이 실현되었다. 실현된 대표작으로는 라 로쉬주택, 사보아주택, 마르세유의 위니테 다비타시옹, 롱샹 성당, 라투레트 수도원 등이 있다. 50여 권의 저서도 남겼으며, 대표작은 『건축을 향하여』, 『도시계획』, 『오늘날의 장식예술』, 『빛나는 도시』, 『인간의 집』, 『모듈러』 등이다. 미술과 조각 작품도 많이 남겼다.
목차
1911년 동방 기행의 여정 음악가인 나의 형 알베르 잔느레에게 몇 가지 인상들 라쇼드퐁 작업실의 친구들에게 쓴 편지 빈 다뉴브 강 부쿠레슈티 투르노보 터키 땅에서 콘스탄티노플 모스크 묘지 그녀 그리고 그들 카페에서 참깨 두 개의 동화, 한 개의 현실 이스탄불의 화재 기억의 단편, 귀환 그리고 회한 아토스 산 파르테논 신전 서유럽에서
여행은, 특히 젊은 시절의 여행은 때로 한 사람의 삶을 통째로 변화시킬 만큼 강렬한 경험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1911년, 스위스 출신의 젊은 건축학도는 친구 오귀스트 클립스탱과 함께 독일의 드레스덴을 출발하여 보헤미아와 세르비아, 루마니아, 불가리아를 거쳐 터키와 그리스를 횡단하는 장장 6개월의 긴 여행을 떠났다.
배를 타고 다뉴브강을 따라 내려오며, 또는 기차, 마차를 타거나 노새의 등에 올라타고 유랑하며, 스물네 살의 젊은이가 발견한 것은 단순히 이국적인 풍광만이 아니라 자신을 송두리째 변화시킬 만큼 강렬한 문화적 충격이었다.
‘햇빛이 잘게 부서지고, 장방형 건물 위에 우윳빛 돔 지붕이 부푼 빵처럼 얹혀 있고, 하늘을 찌르는 첨탑들이 솟아 있는, 백악처럼 새하얀 도시’ 이스탄불과 다뉴브의 푸른 물에 몸을 담그고 유유히 낮잠을 즐기는 물소 떼, 모스크의 높은 첨탑에 올라 예배 시간을 소리쳐 알리는 무에진... 잔느레는 여행 중에 자신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던져주는 인상을 강렬하고도 감동에 찬 필치로 묘사하고 수많은 스케치로 남겼다.
마침내 파르테논 신전 앞에서 잔느레는 전율했으며, ‘백여 개의 청동 나팔이 폭포처럼 아우성치는 소리’를 듣는 듯한 충격에 빠졌다. “지금까지 나는 왜 이 언덕(아크로폴리스)이 예술과 사상의 중심지가 되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신전으로서 다른 곳보다 더 완벽한 모습을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다른 사람들을 따라 파르테논 신전을 미의 기준이자 예술의 척도를 이루는 작품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왜 꼭 이곳이어야 하는가를 완벽한 공식과 논리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들을 이곳으로 이끌어 신앙고백을 강요한 것은 논리보다는 취향이었으며 머리가 아닌 가슴이었다. 그렇다면 거부하고 싶은 욕망에도 불구하고 한사코 우릴 이곳으로 이끄는 매력이란 과연 무엇일까? … 널따란 돌 위에 우뚝 선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나는 모든 생각들을 버렸으며, 그 웅장함 앞에서 분노마저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파르테논이 부정할 수 없는 예술의 ‘최고봉’이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젊은 날의 여행은 샤를 에두아르 잔느레라는 건축학도가 20세기를 대표하는 위대한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로 나아가는 첫 걸음 같은 것이었다. 그는 여행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통해 자신이 추구해야할 진정한 건축을 발견했으며, 건축가로서의 사명감을 일깨우고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정직한 재료에 시적 영감을 불어넣어 쓰임새 있는 작품으로 변모시켜야 하는 건축가로서의 고결한 사명을 나는 이곳에 와서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위대한 건축가들은 성모에게 바쳐진 이 땅에 수백 년 동안 계속된 악업惡業에서 벗어나기 위한 돌로 만들어진 안식처와 죄 지은 영혼들을 악행惡行에서 벗어나게 해줄 견고한 방을 만들어주었다. 그 절묘한 형태와 빛깔 그리고 신비한 비례로 말미암아 건축물들은 기도와 찬송이 하늘에 전해질 만큼의 제한된 빛만을 허용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고대 건축가에게 부여된 성스러운 소명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건축가들의 의도와 행위 속에서 순수성은 사라져 버렸다. 시간에 쫓겨 날림 작업을 해야 하는 우리들에게 그들의 규범은 사라진 계율과도 같은 것이다! … 스스로 돌이켜 보면 부끄러움이 앞설 뿐이다. 침묵에 쌓인 성전에서의 몇 시간은 내게 젊음의 용기와 정직한 건축가가 되어야겠다는 소명 의식을 일깨워주었다. 건축가가 아니라면 이곳 사원의 돔 지붕 밑을 지나면서 딱딱한 돌들이 내리는 엄격한 심판 앞의 두려움을 이해할 수 없으리라.
우리는 예술가로서의 엄중한 양심이 퇴색해 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 지금은 우리가 옛 건축가들과 대면하는 것을 피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그들의 분노가 우리에게 향하게 될 때, 너무나 초라하고 부끄러운 자신을 느끼는 날이 오리라. 이렇게 그들의 흔적은 나를 괴로움에 몰아 넣고 작품을 위한 설계도의 선 하나하나에 두려움을 갖게 만들었다….”
르 코르뷔지에의 이 기행문은 후에 자신의 고향 신문에 연재되었으며, ‘동방 기행 Le Voyage d'Orient’이라는 제목으로 1914년에 출간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출판이 무산되고 그의 서재에서 쌓여 있다가, 여행을 한 지 54년이 지난 1965년에 비로소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벌써 오래 전의, 한 서양 젊은이의 여행기가 우리에게 무슨 큰 의미가 있을까. 그러나 이 기행문은 앞서 말한 ‘목적’과 ‘문제의식’을 가지고 감행한, 그리고 한 젊은이의 인생에 크나큰 영향을 미친, 강렬한 여행의 기록이다.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위대한 예술가의 감상적이고 예민한 젊은 시절을 들여다보는 것, 백여 년 전, 전쟁의 상처를 입기 이전의 다뉴브 유럽인들의 삶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그의 ‘동방기행’을 읽으면서, 그리고 그의 스케치들을 보면서, 르 코르뷔지에의 여정을 따라가며 상상의 나래를 활짝펴고 새로운 여행를 시작한다.
이렇게 사색하는 여행, 낯선 환경과 사람들, 그들의 문화를 열린 마음으로 이해하고 통찰하는 여유가 있는 여행, 그러면 우리에게도 ‘우레와 같은 청동 나팔 소리’가 들려올지 모른다.
“드디어 반듯하게 선 신전들이 눈에 들어왔다. 황량한 풍경 속에서도 저들은 저토록 당당한 모습으로 서 있다. 강한 정신의 승리를 담고 있는 듯한 저 모습! 또렷한 청동 나팔 소리가 가슴 속에 울려 퍼졌다. 빈틈없어 보이는 정교한 엔타블레이처는 보는 사람을 초월적인 운명의 예감에 사로잡히게 만든다.
위대한 신전 파르테논이 나의 정신을 아득하게 하고 마침내 그 앞에 무릎을 꿇게 한다. 4시간을 걷고 1시간 동안 보트를 저어서야 파르테논은 바다 너머 우뚝 선 모습으로 내 앞에 그 자체를 드러낸 것이다... 청동 나팔 소리와도 같은 충격 속에서, 나는 이 신전 앞에서 넋을 잃은 채 몇 주를 보내야 했다. 그렇게 몇 주를 보낸 뒤에야 나는 정신을 차렸고, 비로소 폭풍우라도 몰아쳐 저 청동 나팔 소리를 내게서 거두어 가기를 희망할 수 있었다“ 자료출처;인터파크&알라딘 서평 편집하여 인용 p,s; 앞서 소개한 '댜뉴브'와 여정은 같지만 전혀 다른 책~~~ |
첫댓글 파르테논신전! 직접 보고서 다시 읽어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