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사기가 나레이션을 하고 디카가 나레이션을 한다. 사물이 이야기 한다는 것이 아주 소설적이며 재밌었다. 이글을 그대로 소설로 쓴다면 재밌을 것 갔다.
"사랑은 완벽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 아니다"
전주가서 처음 본 영화 <사물의 비밀>에 나오는 대사다. 그러고보면 우리는 좋아하는 사람이 나타날 경우 지금의 모습보다 더 완벽해지려고한다. 좀 더 잘 생겨보이고 싶고, 좀 더 있어보이고 싶고, 좀 더 무엇을 더해 상대방에게 어필하려고 한다. 아마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은 물질만능주의가 첫번째며 외모 지상주의가 두번째겠지. 세번째는 자신감의 부족이고.
하지만 바꾸어 생각하면 지금의 당신의 모습에서 무언가를 더하고 꾸며 그것이 상대방에게 어필이 된다고 치자. 그게 과연 진짜인가? 결국 당신의 본질은 상대방이 싫어했고, 당신의 본질이 아닌 어떤 것을 더해야 상대방은 당신은 좋아하는 것이다. 당신의 꾸며진 모습을 좋아하고 당신의 본질을 싫어한다면 그것이 이루어진 듯 무슨 의미가 있겠냐라는 거다.
서로의 속마음을 모른 채 지금의 내 모습은 당신이 싫어할꺼야, 그런 부정적 짐작에 우리는 참 많은 마음 고생을 한다. 나는 어떠냐고? 아유 묻지도 마라. 난 누군갈 좋아하는[!] 것을 무척 싫어한다.[어?] 나름의 트라우마와 피해의식이 강해서 나는 남들보다 2천만배는 자학에 쉽게 빠진다. 난 아직도 자기애를 믿는 사람이[!] 믿기지가 않는다[?]. 정말 누구보다 자신의 약점을 알고 내가 얼마나 못났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데, 그런데 자신을 좋아한다고? 기가 차는 일이다. 때려죽어도 나는 도저히 납득이 안간다.
그렇기에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안 그래도 자학에 빠진 내게 더 큰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한다. 남을 좋아하는 순간 인생랭킹 2천만등은 더 떨어지는 것이다. 완벽한 너를 좋아하는 내가 안 그래도 부끄러운데, 이건 거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까지 떨어지니. 누군가를 좋아해서 상대적으로 내가 너무 싫어지는. 그때부터 내 자신을 꾸미려고 한다. 좀 더 업그레이드 하려고한다.
어느정도의 업그레이드는 좋다. 하지만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업그레이드는. 업그레이드가 아니라 사기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런 본질을 버린 나를 싫어하는 너를 내가 좋아할 필요도 있을까?라는 의문에 도달하면 답없다. 젠장, 어떻게 해야하는건가?
그래서 영화는 이렇게 답을 낸다.
"사랑은 완벽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바보 둘이 서로의 본 모습을 솔직하게 좋아하는 것이 사랑이다."
나의 몇 백만원짜리 옷이나 자동차로 치장하는 그 모습이 아닌, 나의 추리한[?] 모습, 나의 별거 없는 모습 그것을 좋아하며 솔직한 서로의 모습에 빠지는 것. 그러나 우리는 어떤 사회적 가치관과 자학과 여러가지 요인으로 그건 도저히 좋아할 수 없을거라 생각하기에 소통은 오해를 낳고, 사랑의 허식은 더욱더 커지가는 것이 아닐까 영화를 보고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