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 사회적 약자들을 파격적으로 끌어안고 모든 계급이 참여하는 그리스도교의 길을 열다
▣ 오귀환/ <한겨레21> 전 편집장 · 콘텐츠 큐레이터 okh1234@empal.com
△ 예수는 세계종교의 창시자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순교한 경우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
“그가 나신 곳은 이름 없는 한 벽촌
그의 어머니는 보잘것없는 시골 여인
그는 나이 삼십에 이르기까지 오히려 이름 없는 비천한 목수
…
그에겐 한권의 저서도 없으며
그에겐 아무런 지위도 없으며
그에겐 따뜻한 가정도 없으며
그에겐 큰 도시의 학문도 없으며
그에겐 큰 도시의 견문조차도 없이
그의 여행은 기껏 200마일도 못 되는 거리
…
진실로 그에겐 세상의 이른바 위대하다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이
그가 내어놓을 수 있는 이력서는 오직 그 자신의 한 몸뿐
그 자신의 삶은 또한 이토록 비참한 것
삼년의 전도와 사랑의 실천 끝에도
그에게 돌아온 것은 오히려 무리들의 배척
제자들의 배신과 부인
…
그러나 그 후 이천년이 흘러간 오늘
그는 오히려 인류의 역사를 영도해온 중심인물”
로마 점령 세력, 위협을 느끼다
오늘날 대략 18억~20억의 인류가 적극적으로나 소극적으로 그리스도교를 믿는 것으로 추산된다. 현 인류의 3분의 1 정도가 신자라는 계산이 나오는 셈이다.
그 신자들이 2000년 역사를 통해 인류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도 많겠지만, 확실히 그리스도교는 인류 문명에 가장 크고 깊은 영향을 끼친 요소 가운데 하나임에 틀림없다. 깊은 강도 작은 물줄기 하나에서 시작되듯, 그리스도교의 시원을 이루는 예수의 존재도 역사적으로는 매우 작고도 미약했다고 볼 수 있다.
예수는 기원전 4년쯤 로마제국에 정복돼 있던 유대의 베들레헴에서 마리아와 약혼자인 목수 요셉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생애는 대부분 <신약성서>의 4복음서인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에 기록돼 전해지고 있다.
‘마태복음’에 따르면 그의 족보는 유대인 최초의 통일국가를 세운 다윗왕을 비롯해 멀리는 이른바 ‘믿음의 조상’ 격인 아브라함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어머니와 아버지(혹은 ‘양아버지’)는 당시 모두 ‘일반 대중’인 ‘암 하아레츠’(Am ha’aretz)에 속하는 사람들이었다.
예수에게는 야고보, 요셉, 유다, 시몬이라는 4명의 형제와 적어도 2명의 누이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예수는 약 30살이 됐을 때, 세례 요한에 의해 요단강에서 세례(정확하게는 온몸을 물속에 들어가게 했다가 나오는 ‘침례’가 맞다)를 받았다.
세례 뒤 예수는 갈릴리에서 천국을 선포하고 병든 자를 고치기 시작했다.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 유대인 대중들에게 예수(가운데 상의 벗겨진 차림)의 처리를 묻는 로마 총독 빌라도(가운데 흰 토가 차림). |
곧 그의 주변에는 ‘오클로스’(Ochelos)인 민중들이 몰려들어 따르게 된다.
예수는 팔레스타인 지역을 두루 다니면서 이들 오클로스에게 새롭게 해석되는 하나님을 비롯해 심판과 자비 그리고 사랑 등에 대해 설교했다.
이와 함께 그는 병든 자와 불구자를 고치는 등 많은 기적도 일으켰다.
추종자들이 늘어가자 예수는 설교와 사역 활동을 더 폭넓게 펼치기 위해 제자 12명을 두었다. 나중엔 다시 70명을 더 두어 각처에 파송한다.
예수는 제자들이나 민중들에게 세련된 신학을 가르치는 대신 비유와 예화를 들려주며 설명했다. 비유는 재미있으면서도 교훈적이었다.
이 과정에서 예수는 당시 종교 지도자들의 잘못된 점을 자주 비판했다. 반면에 종교 지도자와 율법학자 등 정통 유대교도들은 그가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등 율법을 공개적으로 무시하는가 하면, 세리나 창녀 등 정결하지 못한 계층의 사람들과 어울린다고 비난했다. 예수를 추종하는 민중들이 늘어나면서 그의 영향력을 예의 주시하던 유대교 최고지도부와 로마 점령세력은 위험을 느끼기 시작했다.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은 로마제국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려는 무장봉기가 간헐적으로 벌어지고, 열심당 등 봉기를 위한 비밀결사들이 다각도로 활동하고 있었다. 결국 예루살렘에 입성해 설교와 사역 그리고 활발한 토론 활동을 벌이던 예수는 체포돼 ‘로마제국 식민지의 정치범’으로서 그 극악함으로 유명한 십자가형을 받고 숨진다.
‘자기’의 성채를 과감히 부숴
그러나 예수의 영향력은 그가 죽은 뒤 다시 부활했다는 소문과 제자들이 다시 불붙인 포교 활동 등으로 더 광범한 차원에서 더 강도 높게 확산되기 시작한다. 그리스도교가 인류 역사의 새로운 주인공으로 무대의 전면에 등장한 것이다.
불과 3년 남짓한 짧은 공생애(公生涯)에 예수가 이렇게 큰 일을 이룩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종교의 관점에서 분석해보자.
1. 유대교의 자기중심주의를 뛰어넘는 이타주의를 펼쳤다.
2. 유대교의 계급적 제한성을 극복해 당시 다수파인 사회적 약자의 마음을 얻었다.
3. 율법을 뛰어넘는 자비(또는 사랑)의 존재를 최고 가치로 승화했다.
4.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이방인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포교길을 열고 세계종교로 도약했다.
우선 이타주의의 관점부터 살펴보자. 이전까지의 종교는 ‘자기’라는 성채에 굳게 갇혀 있었다. 특히 모세의 율법으로 상징되는 유대교는 강력한 부권을 바탕으로 원시적 공동체주의의 가치를 밀어내고 개인 중심의 ‘사유화’와 인간 상호간의 ‘계약’을 절대화해왔다.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못한다. …너희 이웃의 소유는 어떤 것도 탐내지 못한다.’(십계명 중에서)
‘불이 나서 남의 낟가리나 거두지 않은 곡식이나 밭을 태웠으면, 불을 놓은 사람은 그것을 반드시 물어줘야 한다.’(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와 전했다는 ‘배상에 관한 법’ 중에서)
△ 예루살렘에 어린 나귀를 타고 입성하는 예수. 사람들이 ‘복되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임금님!’이라고 외치고 있다. |
이런 모세의 율법을 수천년 동안 자구대로만 고수해온 결과 예수 시대에 이르면 숱한 문제점이 드러난다. “그들(율법학자와 바리새파 사람들)은 지기 힘든 무거운 짐을 묶어서 남의 어깨에 지우지만, 자기들은 그 짐을 나르는 데 손가락도 꼼짝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더라도 율법상으로는 죄를 짓지 않는 사회에서 무엇을 더 기대할 것인가?
두 번째, 계급적 제한성의 해방 역시 대단히 주목할 만하다.
당시 유대교의 이른바 ‘정결제도’는 사람들을 엄격하게 차별하고 있었다.
예수는 이런 편견을 깨고 사회적 약자를 과감하게 끌어안았다.
그가 처음 사역을 나선 사마리아는 정통적인 유대인의 가치관에선 이방인과 혼혈이 득시글거리는 ‘더러운 땅’이었다.
나아가 예수가 만나고 접촉했던 사람은 어떤 사람들인가? ‘병든 사람’ ‘죽은 사람’ ‘피흘리는 사람’ ‘나병환자’ ‘혈우병 환자’ ‘창녀’…. 이건 완전히 ‘부정 타는 사람’으로서 사회의 냉대를 받으며 기피되는 사람들이 아닌가?
예수는 이런 이들을 파격적으로 끌어안음으로써 모든 계급이 참여하는 새로운 종교, 그리스도교의 길을 열었다.
예수를 신으로 승격시킨 교리상의 발전
세 번째, 예수는 율법보다 사람이 새로운 종교의 중심으로 자리잡아야 한다고 결정했다.
대표적인 것이 안식일 논쟁이다.
그에겐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는 십계명의 율법조차도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면 의미가 없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생긴 게 아니다.’(‘마가복음’ 2장27절) 나아가 건강상태, 사회적 지위, 인종, 종교 등에 따라 누가 의로우냐 거룩하냐 깨끗하냐 바르냐를 가르던 세계에서 과감히 탈피했다. 그런 차별과 장벽은 전면적으로 후퇴한다. 그 대신 새로운 판단기준을 제시한다.
‘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고,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하고, 헐벗었을 때 입을 것을 주고, 병들었을 때 돌보아주고, 감옥에 갇혔을 때 찾아주라.’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 엘 그레코가 그린 베드로(왼쪽)과 바울. 두 사람의 제자가 예수 이후 그리스도교의 발전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 |
마지막으로 이런 교리상의 발전을 바탕으로 그리스도교는 유대인이라는 한계를 넘어 이방인 세계로 빠르게 확산돼나간다. 세계종교로의 질적 변화에 돌입하는 것이다.
한편 나중에 예수를 신으로 승격시키는 교리상의 발전도 그리스도교의 확산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죽음 뒤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가 신의 일면을 그들에게 보여줬다는 믿음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에 따라 예수에게 기도드리는 일이 시작됐다. 결국 예수를 신으로 추앙하는 결정에 이르게 된다. 거의 300여년이 지난 4세기의 일이다. 예수를 성육신(Incarnation)으로 파악하는 교리는 서기 325년 니케아 공의회(주교회의)를 거쳐 성부-성자-성령이 하나의 하나님이라는 ‘삼위일체설’을 공식화한 서기 381년 ‘니케아 신조’로 발전한다. 카렌 암스트롱은 ‘인간의 형태를 하고 나타난 신’이라는 교리가 그리스도교뿐만 아니라 불교, 힌두교에서도 발전했으며 이런 교리를 통해 이들 종교가 활력을 유지 발전시킬 수 있다고 파악한다.
인간은 자신을 닮은 신만을 따르고 좋아하는데, 예수는 그 정점에서 인류를 유혹했던 것인가?
△ 로마권력과 하늘나라를 충돌시키려는 교묘한 음모에 대해 예수는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라는 말로 절묘하게 좌절시킨다. 당시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가 새겨진 로마 은화. 야후(www.yahoo.com)에서 ‘jesus’를 치면 약 3950만개의 예수 관련 사이트가 나온다. 이 가운데 경영 관련 사이트는 아직 소수이긴 하지만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현대 들어와 예수의 성공을 경영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그 강점을 전수받으려는 노력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고경영자 예수>(로리 베스 존스·한언 펴냄)는 △자아극복 △행동 △인간관계 형성 등 3개 분야에서 예수가 보인 강점을 분석하고 있다. 여기 제시된 84가지의 강점 가운데 설득력이 있거나 눈길을 끄는 것들을 정리해 소개해본다.
1. 자신의 사명에 충실했다: 예수는 자신의 사명을 인간들에게 더 나은 인생 행로를 가르치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자신을 교사이자 치유자로 보았다. 이 때문에 그는 ‘광야의 시험’에서 제시받은 몇 차례의 ‘사업 기회’를 단호히 거부했다. 자신의 사명과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 자신의 에너지를 절제했다: 어떤 여인이 군중 사이에서 그의 옷에 손을 대었을 때 예수는 돌아서서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고 묻었다. 그 정도로 자신의 에너지를 잘 알았다. 그는 사명을 확실히 알았기 때문에 불필요한 에너지가 빠져나가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 그는 제자들에게 자신을 추종하도록 애걸하지 않았으며, 그들을 조종하기 위해 에너지를 낭비하지도 않았다. 우리 자신의 일을 소홀히 하면서 다른 사람의 일에 참견할 때 우리의 에너지는 새어나가는 것이다.
3. ‘감사합니다’라고 말씀했다: 죽은 나자로에게 일어나라고 명하기 바로 전에 예수는 ‘항상 자신의 기도를 들어 응답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했다. 감사하는 마음은 열린 마음, 경청하는 마음, 신앙으로 충만한 마음을 의미하기에 리더십의 핵심요소다.
4. 남을 정죄하는 데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다:그는 남을 정죄하는 것도 막대한 에너지가 새어나가는 일로 간주했다. ‘이 몹쓸 종아, 나는 바로 네 입에서 나온 말로 너를 벌주겠다.’ ‘그러나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발하리라고 생각하지는 말라.’ 당신은 자신의 진취적인 활동에 지속적으로 마음을 쏟아라.
5. 모든 것을 살아 있는 것으로 보았다: 예수는 모든 것을 살아 있는 것, 가능성으로 가득 찬 존재로 보았다. 죄인들이란 다만 화음을 이루며 노래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일 뿐이다.
6. 팀을 결성했다: 그는 일단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게 됐을 때 지체하지 않고 팀을 결성했다. ‘나를 따르라’고 예수는 외쳤고, 그들은 주저하지 않고 따랐다.
7. 여성들에게 권한과 능력을 부여했다: 예수는 부활 뒤 가장 먼저 여성들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그 여성들의 사명은 더 의심이 많은 남성 제자들에게 가서 그들을 확신시키는 것이었다. 부활한 뒤 예수는 제자들과 함께 엠마오로 걸어가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도 제자들은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나 마리아는 거의 즉시 예수를 알아보았다. 하나님도 적당한 시기까지 비밀을 고수할 수 있는 처녀인 마리아에게 엄청난 계획을 최초로 말씀했다.
|
||||||
[온 + 오프 항해지도]
▶ 중고생 ▶▶ 대학생 이상 |
||||||
|
||||
|
||||
첫댓글 오직 사랑만을 얘기한 분이죠. 우리나라 기독교는 예수의 사랑을 너무나 소홀히 생각하는게 아닐까요? 이교도와 사회에 소외되고 버려졌던 나환자까지 껴안았던 예수. 그는 사랑의 혁명가, 영혼의 혁명가라고 생각합니다.(단지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예수가 사랑을 얘기했다? 예수는 사랑을 얘기하기 보단 전투와 혁명을 얘기한거지요. 당시 유대사회의 관습과 통념 , 로마제국주의 와의 갈등 그 모든것 속에서 사람을 중심에 두고 생각함으로써 기존 사회질서를 모조리 깨뜨리는 혁명가 그래서 죽을 수 밖에 없었죠. 그가 포교를 시작하면 읽은 이사야서에 그 핵심이
있다고 봐야겠지요 억눌린자에게 자유를 포로된자에게 해방을 ....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현재 세계최강의 보수적기독교 제국인 미국은 전세계인을 협박하며 이슬람을 치고 있지요. 자기만의 사랑 자기들끼리만의 사랑 국내 예수쟁이의 한계인지 태생적한계인지는 두고보야 겠지만. 예수의 메시지 그건 혁명!!!!
기독교의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 양면이 있지만 긍정을 확대하고 부정을 줄여나가는게 현재 기독교인의 신실한 자세가 아닐까 합니다.
예수는 한국법에 의하면 국가보안법 적용 받아서 국가 기관에 의해 살해 되었다고 봅니다. 반국가단체구성이나 선동 등 권력자들은 예수가 상당한 집단의 우두머리임을 두려워 하지 않았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