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의 지혜 (3) - 부연(附椽, 婦椽)
월출산 산마루에 붉은 노을이 물들 무렵.
드넓은 절터 한복판에 한 노인이 흰 수염을 날리며
못 박힌 듯 망연히 서 있었다. 간혹 깊은 한숨을 몰아쉬면서.
발아래 널려 있는 서까래를 번쩍 세워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아주 정중하게 다시 눕힌 후 자로 재기 시작했다.
석양빛마저 감춘 어둠 속에서도 노인은 되풀이하여 서까래를 쟀다.
『이상한 일이다. 아무래도 짧으니 알 수 없는 일이로구나.』
노인은 중얼거리며 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때는 신라 말엽.
왕은 날로 기우는 국운을 걱정하여 지금의 전라남도 영암군
월출산 기슭에 99칸의 대찰을 세우도록 명했다.
당시 왕궁 이외의 건물은 백 칸을 넘지 못하도록 국법에 정해져 있어
왕은 아쉬움을 금치 못한 채 99칸 대웅보전을 신라에서
가장 아름답고 웅장하게 건립할 것을 명한 것이다.
이때 서까래를 맡은 목공은 대목(大木) 사보라 노인이었다.
건물이 아름답고 웅장하려면 하늘을 차고 나를 듯 치솟은
지붕의 멋을 한껏 살려야 하며 그러기 위해선 서까래를 잘
다듬어야 했다. 이런 연유에서 당대의 뛰어난 대목
사보라 노인에게 이 일이 맡겨졌다.
팔순이 넘은 노인은 이 불사를 필생의 작업으로
삼아 온 정성을 다해 나무를 깎고 다듬었다.
젊은 목수의 도움도 마다하고 5백 개의 서까래가 상량을
며칠 앞두고 다 깎여졌다.
그런데 어인 일인지 낱낱이 자로 재면서 깎은 서까래가
도면보다 짧게 끊겨져 있었다.
노인은 재고 또 재 보았으나 한번 짧게 끊긴 서까래가
길어질 리 없었다.
『새로 나무를 구입할 수도 없고,
제 날짜에 법당을 지을 수 없으니 왕명을 어긴 죄 어이할까.』
노인은 절망을 되씹었다.
『80평생 나무와 함께 늙어온 내가 이제 평생을 건
마지막 공사에 실수를 하다니….』
국수(國手)의 말을 듣는 자신의 명예가 땅에 떨어져
비참해지는 것을 눈앞에 보는 것 같았다.
그는 서 있는 나무만 보아도 나무의 나이를 알았고,
껍질 속이 얼마나 굳으리라는 것도 알았다.
사보라 노인에게 있어 집짓는 일은 창조의 희열을 동반하는
예술이며 삶의 보람이었다.
노인은 절망의 밑바닥에서 안간힘을 썼다.
생명의 불꽃이 하루아침에 꺼지는 듯했다.
집에 돌아온 노인은 그만 자리에 눕고 말았다.
침식을 끊고 사람을 멀리했다.
온 생애가 마치 땅 속으로 잦아드는 것만 같았다.
노인은 평생 지은 집들을 하나하나 기억에 떠 올렸다.
맨 처음 스승에게 허락을 받고 끌을 쥐었을 때의 감회가
새삼 느껴지자 온몸에 전류가 감돌며 주먹에 힘이 솟았다.
『다시 시작해야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며느리가 갖다 놓은 약그릇을 드는 순간
손이 힘없이 늘어졌다.
『어떻게 무엇으로 다시 시작한단 말인가.』
노인은 다시 자리에 눕고 말았다.
밥상을 들고 들어온 며느리가 조심스럽게 상을 내려놓고
시아버지 곁에 단정히 앉았다.
『아버님, 저녁 진지 드셔요. 약도 안 잡수셨군요.』
『아니다. 생각이 없다. 상을 물리려므나.』
『무슨 걱정이라도 있으신지요.
며칠째 자리를 걷지 않으시니 염려가 크옵니다.』
『아무 일 아니다. 너희가 알 일도 아니고,
내가 무슨 병에 걸린 것도 아니니 걱정 말아라.』
『하오나 저는 이제 겨우 시집온 지 열흘이온데 집안에
우환이 있으면 모두 제 탓인 듯하와 송구스러울 뿐입니다.』
『아가야,
네 탓도 누구의 잘못도 아닌 내 잘못이니 심려치 말아라.』
『아버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하옵니다.
혹 저의 미욱한 지혜라도 도움이 도리지 모르오니
어서 사연을 말씀해 주십시오.』
노인은 며느리의 간곡한 청에 못 이겨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며느리는 눈앞이 캄캄했으나 아무 기색 없이 물러나와 마당에 섰다.
온 집안이 무거운 근심 속에 잠겨 있을 뿐 대책이 없었다.
상량을 사흘 앞두고 공사를 맡은 벼슬아치들은 영문도 모르고
사보라 노인의 병 위문을 왔다.
『사보라 노인, 이제 상량을 하고 서까래만 올리면 일은 거의
끝난 샘이니 빨리 부처님 은혜로 쾌차하길 바라겠소.』
노인은 말을 잃었다.
벼슬아치를 전송하고 돌아서는 며느리의 눈앞에 이상한 것이 비쳤다.
한 줄로 가지런한 서까래가 두 줄로 보였다.
처마 밑으로 바짝 다가가서 보니 다시 한 줄.
며느리는 비로소 깨달았다.
집안과 바깥 불빛이 어우러져 그림자가 그렇게 보인 것이었다.
순간 며느리는 시아버님께 뛰어갔다.
『아버님, 서까래가 짧게 다듬어졌다 하셨지요?』
『그래, 그렇다만 아기 네가 갑자기 웬일이냐.』
『다름 아니오라 짧은 서까래에 다른 서까래를 겹쳐 대면
더 웅장하고 튼튼하지 않겠습니까, 아버님.』
얼른 이해가 안가 한동안 망연했던 노인의 눈앞에
아직까지 없었던 날아갈 듯한 한 채의 건물이 보였다.
엷은 흥분이 노인의 전신에 생기를 돋구었다.
『그렇구나, 아가야. 부연(附椽)하면 된다.
그 육중하면서도 날렵한 몸매가 선하구나.
부연한 그 지붕의 멋을 감히 누가 흉내 낼 수 있겠느냐.
어서 채비를 차려라.』
『아버님 야심하온데 어떻게? 성치도 않으신 몸으로.』
『아니다. 가서 부연목을 재어볼 것이다.』
노인은 언제 누워 있었느냐는 듯 원기왕성했다.
드넓은 절터에서 온몸에 달빛을 받으며 기둥과 기둥,
대들보에서 처마 끝을 재는 노인의 날렵한 모습은
마치 춤을 추는 듯했다.
교교한 달빛 속에 흰 수염을 날리며 신들린 듯
부연을 켜기 시작한 노인의 표정은 엄숙 또 엄숙했다.
이리하여 세워진 도갑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부연식(附椽式) 지붕 건물이 되었다.
며느리가 도왔다고 해서 며느리서까래[부연(婦椽)]이라고도 한다.
지방 문화재 제42호였으나 1975년 화재로 전소되었으나
1979년 옛모습 그대로 다시 중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