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의 전통마을에 대한 조사 및 연구 보고회 식순
사회 : 김용기
▣ 개회
▣ 국민의례
▣ 내빈소개(김미경 부회장)
▣ 인사말씀
‣ 인사 - 금창헌 회장
‣ 축사 - 장욱현 시장님
‣ 축사 - 장윤석 국회의원
‣ 격려사 - 서중도 영주문화원장
▣ 경과 보고(김태환)
▣ 최종보고
‣ 김태환 / 추진위원장
‣ 이신옥
▣ 집필진 소개 및 회원 소개(사회자)
▣ 폐회
[최종보고회(출판기념회) 발표문]
영주의 전통마을(집성촌)에 대한 조사 및 연구
가. 사업 기간 : 영주시의 지원 2014년 3월 1∼2015년 12월 30
나. 사업 내용 : 영주지역 내 전통 마을에 대한 조사 및 연구
영주지역의 동성마을인 집성촌을 중심으로 그 역사와 위치, 자연 환경, 형성과정, 입향 시조, 마을을 빛낸 인물, 문화유산(각종 기 문, 관련 서류), 민속 및 전통 문화(제례, 동제, 마을 행사 등), 전 통 음식, 전설과 민담, 현재의 마을 경관 그리고 수 백년간 이어온 문화의 흔적을 조사하고 정리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다. 조사, 연구 대상
- 집성촌 : 23곳(2014년 12개 마을 / 2015년 11개 마을 )
- 이산, 시내 각 4곳 / 장수, 부석, 단산, 문수 각 3곳 / 안정 1곳/픙기 2곳
- 전통음식 23마을 조사 (음식 171종 조사)
- 올 칼라 600여페지 책자로 발간
라. 오늘(2016년 1월 25일) 출판기념회를 개최 함.
■ 영주의 전통마을 책 출판 보고
김태환 / 영주의 전통마을 조사 및 연구 추진위원장
전통마을 이란
마을이란 사전적 의미로 “사람들이 모여 생활을 하는 지역을 말하는데 촌락, 부락, 취락 등으로 불리어지기도 한다.”고 적고 있다. 이들 마을은 주로 동성 마을과 각성촌락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930년대의 한 조사에 따르면 당시 우리나라의 마을 총수는 28,336개로 이 가운데 14,672개가 동성마을인 집성촌이었다. 이당시 우리의 전통마을 가운데 반 이상이 집성촌이었던 셈이다.
집성촌은 사전적 의미로 “성씨가 같은 사람끼리 모여사는 마을”로 집 한두 동성동본의 성씨집단이 특정 마을에 대대로 거주하면서 마을의 인적 구성뿐만 아니라 운영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경우를 말한다.
집성촌이 형성된것은 삼국시대 또는 고려시대로까지 소급되기도 하는데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전국의 곳곳에 자리를 잡게 된다.
조선시대에는 남자가 장가를 가서 처가(妻家)살이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다보니 사위가 처부모의 터전을 이어받으면서 새로운 집성촌이 많이 형성되었다.
이러한 집성촌은 1948년 토지개혁으로 공유재산이 격감하며 쇠퇴해지다가 도시화, 자본주의화가 진행되면서 빠르게 해체되갔다. 지금은 그리 많지 않은 전통마을들이 집성촌이라는 이름으로 그 명맥을 겨우 유지해가고 있다.
영주지역 집성촌의 형성.
현재 영주지역의 성씨 수는 약 60여 성씨로 그중 대성(大姓)이 약 25여 성씨로 알려져 있다. 영주지역 집성촌은 이미 고려시대에 순흥 안씨 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 태동은 주로 려말선초로 보아야될것이다.
기존의 지역 토착성씨였던 민, 우, 정, 안씨 이외의 성씨들이 이 시기가 되면서 영주지역에 혈연적 연고를 바탕으로 정착하게 된다. 영주지역의 각 성씨들의 입향 유래를 살펴보면 고려의 폐망으로 인한 고려 절신들의 유입과 조선시대 단종 절신들의 유입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특히 조선시대 영주지역의 대표적인 집성촌들은 이들 절신들의 후손들에 의해 형성되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격으면서 재분화되어 수 백년 동안 이어져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들 영주의 집성촌들은 새로운 장소에 개척되기도 하지만, 이미 마을이 조성된 곳에 새로운 성씨가 들어와 점차 자기들의 마을로 변모시키는 경우가 더 일반적이다.
기존마을이 집성촌을 이루는 경우는 처가 등 혈연적 연고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 정착하는 방식과, 다른 성씨가 살고있는 연고가 없는 마을에 자리잡는 방식이 있다.
영주지역의 집성촌도 그 예외는 아니었다. 영주지역에는 지난날 70여곳의 집성촌이 형성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그 모습을 거의 찾아볼 수 없가 없으며 현재 52곳의 집성촌이 있는데 그중 9곳이 고려시대에 형성된 곳이다.
영주지역의 집성촌.
현재 영주지역의 집성촌은 입향성씨별로 분석해보면 약 52곳(옛 순흥, 풍기지역 9곳 제외)으로 이중 이산면과 시내가 11곳, 문수면과 단산면이 6곳, 부석면이 5곳, 장수면이 4곳, 평은면이 3곳, 안정면과 풍기읍이 2곳, 봉현면과 순흥면이 1곳, 옛 순흥과 풍기지역이 9곳으로 총 61곳이었으나 현재 입향지역을 지키고 있는 집성촌은 49곳이다.
영주에서 고려시대에 개척된 마을은 금계마을, 신천마을, 시르미마을, 머름마을, 만방마을, 병산마을, 성밑마을, 대룡산마을, 용암대마을 등 9곳이다.
영주지역에 성씨별로 입향하여 터전을 개척한것은 고려말에서부터 시작된다. 기존의 토착성씨와의 혼례관계 등을 통해 집성촌을 형성한 이래 려말 고려절신의 유입과 조선초 단종의 폐위로 인한 낙향 등으로 영주지역의 토착성씨와 어우러져 다양한 집성촌들이 형성된다.
영주지역 집성촌의 특징은 먼저 토착성씨에 의해 이루어진 집성촌과 고려절신이 형성한 집성촌, 단종절신이 형성한 집성촌, 처가곳에 터전을 잡고 형성된 집성촌, 아무런 연고없이 낙향하여 형성한 집성촌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영주지역 집성촌의 기본구조를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혈연관계였다. 영주의 집성촌은 혈연관계를 배경으로 하여 형성된 파(派) 단위의 씨족조직을 기반으로 한 혈연적인 결합을 통해 집성촌을 형성했다.
그중에서 절신들의 후손들이 형성한 집성촌이 전체 집성촌의 약 33%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처가곳이 13성씨 등 전체 성씨중 50%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지역에서 큰 성씨를 형성하고 있는 25개 성씨중에서는 절신들의 후손들이 형성한 집성촌은 80%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영주가 왜 선비의 고장인가를 확연하게 보여주고 있다.
영주지역의 집성촌을 성씨별로 살펴보면 안동권씨 4곳, 선성김씨 4곳, 연안김씨 3곳, 의성김씨 1곳, 청도김씨 1곳, 함창김씨 2곳, 여흥민씨 1곳, 밀양박씨 1곳, 반남박씨 6곳, 영해박씨 1곳, 달성서씨 2곳, 경주손씨 2곳, 양주송씨 1곳, 여산송씨 1곳, 순흥안씨 1곳, 단양우씨 1곳, 강릉유씨 1곳, 경주이씨 1곳, 우계이씨 1곳, 단양장씨 1곳, 인동장씨 2곳, 옥천전씨 1곳, 나주정씨 1곳, 영일정씨 1곳, 한양조씨 1곳, 양천허씨 1곳, 풍산홍씨 1곳, 창원황씨 3곳, 평해황씨 2곳 총 49곳이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 고려절신이 입향조인 성씨는 4개 성씨이다.
1)선성김씨(김로), 2)함창김씨(김중서,김중보,김중기) 3형제
3)순흥안씨(안조동), 4)안동권씨(사복재 권정)
● 단종절신이 입향조인 성씨는 15개 성씨이다.
1)여산송씨(동강 송계,귀암 송인창, 잠암 송원창)- 3부자, 2)달성서씨(돈암 서한정), 3)우계이씨(도촌 이수형), 4)양천허씨(석헌 허방,남재 허윤공,허지)- 3대절신, 5)공주이씨(두은 이진), 6)밀양박씨(청재 박심문), 7)단양우씨(청옹 우원도), 8)옥천전씨(휴계 전희철), 9)풍기진씨(기은 진흠조), 10)무송유씨(송사 유귀산, 유오산)- 형제, 11)순흥안씨( 서파 안리), 12)나주정씨(정사종), 13)연안김씨(김세형) -성삼문의 종매부, 14)창원황씨(황지헌)- 안정 대룡산 황씨
● 혈연적 관계로 영주지역에 입향한 성씨는 다음과 같다.
1)우계이씨 입향조 도촌 이수형← 문절공 김담의 사위), 공주이씨 입향조 두은 이진← 김숙량의 사위), 창녕성씨 입향조 부용당 성안의← 김륵의 종손서), 강릉유씨 입향조 유연성← 선성김씨의 사위), 2)진성이씨 입향조 온계 이해← 두암의 연안김씨 사위), 3)전주유씨 입향조 류영경← 희여골 창원황씨 사위), 4)덕산이씨 입향조 이유← 안영부의 사위), 5)여여산송씨 입향조 송계← 민용의 사위), 6)옥천전씨 입향조 전희철← 문손관의 사위), 7)평해황씨 입향조 황원로← 우평의 사위), 8)수성나씨 입향조 나이준← 배응경의 사위), 9)양천허씨 입향조 허윤정← 황전의 사위), 10)양고창오씨 입향조 오운← 허사렴의 사위)
영주 집성촌의 특징.
영주지역 집성촌의 특징은 려말선초의 고려 절신들과 조선초 단종 절신들이 영주로 대거 유입되면서 이루어진 절신들의 마을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절신들은 다시 영주지역과 혈연적 관계를 바탕으로 지역에 입향한 후 그곳에 정착하여 터전을 개척하고 하나의 마을을 형성게 된것이다.
이후 이들의 후손들은 혼례관계를 통해 다시 새로운 집성촌을 건립하게 되는데 이는 자연발생적으로 이루어 진다. 이와함께 인근의 안동지역이나 봉화지역에 비해 집성촌의 크기와 규모가 상대적으로 적으며 보존형태도 열악하다.
영주의 집성촌들은 지역의 정치, 문화, 사회 등에 전반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으나 지금은 집성촌 마을의 이름만 남아 있고 그 흔적마져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또한 집성촌의 중심인 종가 또한 현재 그 명맥마져 사라지고 있는 실정이어서 이에 대한 조사와 연구도 조속히 이루어져야 할 것 같다.
이번 조사와 연구를 통해 영주지역 집성촌의 성립과정과 그 특징을 정리할 수 있었으며 이를 통해 영주의 정통성과 정체성에 한발 더 다가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여력이 된다면 영주지역 종가와 종가의 음식에 대한 조사와 연구가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영주의 전통 마을 목차
총설 / 영주지역 전통마을에 대한 소고(小考) / 김태환(영주향토사연구소장)
1부. 충절이 살아 숨쉬는 마을
구산(龜山) 아래 불사이군(不事二君)의 구호 마을 / 최명환(강원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용암산 기슭에 자리를 잡은 선비 마을 대룡산/김미경(영주문화유산보존회 부회장)
500년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새내 마을 / 이원식(전 영일초등 교장)
3대 충절이 살아 숨쉬는 모계(茅溪) 마을 / 김미경(영주문화유산보존회 부회장)
2부. 영주에 마을 을 개척하다
살기 좋은 권선리 고랑골[高浪谷]마을 / 고현진(영주문화유산보존회 사무국장)
유물의 보고 꽃계 마을 / 고현진(영주문화유산보존회 사무국장)
안정평야를 바라보는 줄포 마을 / 최홍식(한국선비문화수련원 교육연구실장, 철학박사)
풍기 백리 희여골 마을 / 최성규(전, 국립공원관리공단 학예연구사)
3부. 퇴계 선생의 흔적을 간진한 마을
장수(長壽)와 사족(士族)의 마을 갈미 / 김미경(영주문화유산보존회 부회장)
십승지 마을 풍기 금계 / 윤지수
영남의 마지막 선비 마을 도탄 / 윤지수
번계(樊溪) 마을의 역사와 문화 연구 / 이정화(동양대 교수)
서천을 바라보는 한정마을 / 서성원(학예사)
4부. 독립과 신문명을 받아들인 마을
만석꾼 마을 부석면 화감(花甘) / 김태환(영주향토사연구소장)
무섬마을에 대하여 / 금창헌(영주시 학예사)
영화산이 품고 있는 아치나리 마을 / 조현두(한국선비문화수련원 총괄본부장)
청심예양(淸心禮讓)의 마을 어실/최홍식(한국선비문화수련원 교육연구실장, 철학박사)
독립운동가의 마을 토계(吐溪) / 김태환(영주향토사연구소장)
5부. 선비의 향기가 서린 마을
감실(鑑室)마을에 대한 소고 / 금창헌(영주시 학예사)
두월산 아래 위치한 두월마을 / 조현두(한국선비문화수련원 총괄본부장)
佳麗한 風光에 文行과 孝行이 빛나는 末巖 마을 / 김치묵(영주남부초등학교 교장)
秀麗한 風光에 科宦과 文行으로 繁盛한 友琴 마을 / 김치묵(영주남부초등학교 교장)
5백년 선비의 자취 간직한 파회(波回) 마을 / 김태환(영주향토사연구소장)
6부. 영주의 전통마을 음식 연구 / 박모라(경북대 교수) 이신옥(영주향토음식연구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