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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청계문학회 원문보기 글쓴이: 자정
베트남 사람들
장현경
신 짜오!(안녕하세요!) 하노이 국제공항에서 나오자 화창한 날씨가 한국의 봄날씨 같아 외국에 왔다는 실감이 별로 느껴지지 않을 만큼 친근감을 느꼈다. 거리의 풍경이 그렇고 사람의 모습이 어쩐지 낯설지 않다. 이런 사람 이런 곳에 월남전이 있었단 말인가! 캄보디아는 거침없이, 프랑스와는 이엔비엔푸 전투에서 기습전으로 단번에, 중국과는 국지전에서 일치단결하여 완전 궤멸, 세계 최강국 미국도 인내력으로 물리쳤다. 세계에서 가장 전투를 잘하는 나라 베트남이 다른 나라와는 무언가 독특함이 있을 것 아닌가! 그것이 무엇일까? 베트남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하노이 시내의 오토바이 물결
공항을 벗어나는 순간 거리를 가득 메운 오토바이에 깜짝 놀랐다. 떼로 몰려다니는 오토바이에 교통이 불편하여 답답함을 느꼈다. 세계에서 오토바이가 가장 많은 나라 베트남, 자동차가 오토바이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나라, 그런 오토바이가 많은 사연은 이렇다. 2차대전 시 베트남은 약 3년 동안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 이때 일본은 엄청난 양의 쌀을 수탈해 갔다. 나중에 베트남 정부가 이에 대해 보상하라고 윽박질렀고 국제여론에 못이긴 일본은 그 대가로 오토바이를 내줬다. 오토바이가 많은 만큼 운전솜씨 또한 폭주족 뺨치는 수준이다. 장애물이 있거나, 도로가 좁아도, 차가 끼어들어도 절대 멈추지 않고 빵 빵 경적을 울리며 재빨리 빠져나간다. 베트남에는 시내버스가 없다.오토바이가 우리네 자동차 역할을 한다. 그래서인지 도로에는 노란색 중앙 분리선이 없다. 노란색 중앙 분리선을 사용하면 사고가 더 자주 난다고 한다. 군중 속에 오토바이는 무질서해 보여도 신호등 앞의 정지선은 잘 지킨다. 하노이 시내에 다가갈수록 피부로 느끼는 것은 그들의 경제발전이다. 세계에서 경제 발전 속도가 가장 빠르다는 베트남, 설명을 듣지 않아도 좌우 거대한 공단, 활기찬 모습, 오토바이의 군무에 경제가 춤추듯이 발전하고 있다. 가끔 보이는 한글 간판 중 베트남 쌀국수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서울에서 입맛을 익힌 나는 여행 내내 베트남 사람들이 아침식사나 간식으로 먹는 쌀국수만 한 번에 세 그릇을 먹어 보았을 뿐 전문 베트남 쌀국수를 먹어 보지 못해 아쉬워했다. 또한, 시장이나 거리에는 남성보다 여성이 더 많이 눈에 띄었다. 오랫동안 강대국들과 전투를 한 남성들은 지쳐 있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베트남 여성들은 부지런하고 순수하며 사랑스럽고 억척이기도 하다. 베트남 여성과 결혼한 한국 남성들도 이런 사실을 곧잘 얘기한다.
호찌민 영묘
넓고 깨끗한 바딘 광장을 보니 북경의 천안문 광장이 머리에 떠올라 호찌민 영묘가 더욱 위대해 보인다. 약간 긴장을 하며 들어간 호찌민 묘에는 소련에서 방부 처리를 해 온 호찌민의 시신이 생전의 모습 그대로 누워 있고 주변에는 근위병들이 근엄하게 지키고 있다. 베트남 국민에게 호찌민의 의미가 어떠한지는 그의 묘를 보면 충분히 알 수 있을 것 같다.
베트남 국회의사당
한국의 국회의사당을 보다가 베트남 국회의사당을 보니 너무 작아 의아해했다. 저 작은 곳에 의원들이 다 모여 회의를 할 수 있을까? 한국의 국회의원들이 이곳에서 회의를 한 번 해 보면 어떨까! 아마 마이크가 없어도 될 것 같다.
주석궁-영빈관
호찌민 묘를 지나 생가로 가는 길은 마치 산책을 하는 것처럼 주변이 잘 정돈되어 있었다. 노란색 건물이 강렬하면서도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호찌민이 3개월 기거했다는 주석궁은 규모가 작아 초라하게 느껴졌다. 꼭 경기도의 무슨 모텔 정도의 크기이다. 지금은 국빈을 모시는 영빈관으로 사용되며 호치민은 이런 주석궁을 마다하고 베트남식 전통가옥에서 집무를 보았다. 집이 협소하여 마치 원주민이 살던 집 같았다. 소박한 가구와 집기 초라한 회의실에서 호찌민의 검소함을 찾아볼 수 있었으며 국민이 왜 그를 존경하는지 베트남의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곳에는 호찌민을 위한 땅굴이 있었는데, 몇 년 전까지 북한에서 관리를 하였으며 지금은 공개하지 않는다.
호치민 박물관
호치민 박물관은 1990년 5월 19일, 호찌민 탄생 100년이 되는 날에 개관했다. 주로 호찌민 생가의 모형과 애용품 편지 전쟁 사진과 도구를 전시해 호찌민과 함께해 온 베트남 독립의 역사가 꾸며져 있고 곳곳에 호찌민이 활동한 사진과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다. 특히 서민들과 함께하며 소박하게 웃음 짓는 모습이 인상적이며 국민과 함께하는 민족주의자라는 인상이 든다.
연꽃모양을 본떠서 지은 一柱寺
리 왕조시대인 1049년에 지어진 일주사는 우리나라의 불국사만큼이나 유명한 독특한 건축양식의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아주 작은 사찰이다. 후사를 못 보던 리 타이통 왕이 보리수나무 밑에서 기도를 하던 중 관세음보살이 그를 연꽃이 있는 곳으로 이끄는 길몽을 꾸고 난 후 연꽃 모양을 닮은 절을 지어 천 일 동안 기도를 하여 왕비가 왕자를 얻었다고 한다. 일주사는 한 기둥 사원으로 중심에 기둥이 하나만 있어 멀리서 보면 물 위에 피어오른 연꽃처럼 보인다. 그 후에 후손이 귀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고 한다.
문학사원
1070년에 건립된 베트남 최초의 국립대학인 문학사원은 한국의 국자감과 같은 곳으로 공자와 그 제자들을 받들고 모시는 사당인 문묘가 앞쪽에 있으며 양쪽 홀에는 과거시험에 합격한 사람들의 비가 세워져 있다. 비를 받치는 거북의 머리를 만지면 머리가 좋아진다고 하여 머리가 반들반들하다. 문묘문 지붕에 있는 잉어 조각 물이 이곳의 상징이며 백성을 뜻한다. 문묘문 가까이에는 하마下馬라는 비석이 있는데 여기서부터는 출입자 모두가 말에서 내려 걸어갔다고 하니 그 상황이 민족단결의 한가지 원천이 아닌가 한다.
베트남에 살고 있는 54개 소수민족의 생활과 문화를 민족별로 전시해 놓은 곳이다. 주로 이웃나라에서 흘러들어와 자리 잡은 북부의 소수민족 중에는 몬족과 자오족이 있는데 이 중에는 멀리 미국에서 이주한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농 혹은 베트콩 모자”라는 베트남 전통모자는 현지인들이 사는 가격은 700원이고 관광객은 보통 1.400원 이상을 주고 산다. 최근 귀국할 때 많이들 가져온다.
하노이 거리의 이발소
하노이 시내 중심가 대로변의 거리의 이발소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많았다고 한다. 지금은 명물로 남아있으며 그냥 지나는 길에 한 장 촬영하려고 하니 주인이 눈치 채고 몸소 안내하며 자세를 취해 주었다. 그리고는 “1달러, 1달러”한다.
저녁 무렵 우리는 시클로를 타고 36거리[재래시장]를 중심으로 거리 구경을 나섰다. 시클로는 자전거 인력거이며 1인승이다. 50세의 운전자는 연방 “형님! 형님!”하며 제법 익숙한 한국말로 나름대로 주변을 설명한다. “미장원 이발소 국수가게 은행 우체국 아오자이 아가씨 예뻐요 극장” 등등 그에게서 외국인은커녕 10년 지기 지인처럼 가깝게 느껴졌다. 하노이에 사는 그는 한국에 한 번 가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한다. 그것도 눈 오는 겨울을 꼭 보고 싶다고 했다.
수상 인형극
수상인형극은 10세기 삼각주 홍강에서 수확을 끝내고서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인형을 만들어 논밭에서 공연하는 형태로 소박하게 시작 되었으며 지금은 주로 저녁에 출연진들이 장막 뒤에서 막대기와 줄로 인형을 조종하는데 50분 동안 한다. 모내기를 하는 농민의 모습, 나무를 타고 오르는 뱀, 고기를 낚는 어부, 전설의 거북 등 인형극의 내용은 베트남의 생활과 전설에 바탕을 두고 있다. 세계에서 유일하며 농한기 때 이런 놀이를 즐겼다고 한다. 안내서에는 한국인을 위한 한글 안내서가 있고 우측에는 베트남 전통 악기 연주와 해설자의 목소리를 동시에 들을 수 있었다.
베트남은 망자가 오래 생활했던 곳에 무덤을 만든다. 논에는 비석이 세워져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는데 공동묘지이다. 시신을 이곳에 매장한 후 몇 년 후에 다시 화장을 하여 납골당으로 옮긴다.
하롱베이 수상마을, 안개비가 내리고 있다.
하롱은 下龍의 베트남 발음으로 용이 내려와 앉았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 하롱은 카르스트 석회암 지형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모양의 섬들로 원근에 따라 운치를 더한다. 하롱베이는 1993년에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으며 세계 8대 비경에 속한다. 깊고 푸른 바다에 불쑥불쑥 떠 있는 3,000여 개의 기기묘묘한 바위섬 그리고 석굴들, 이런 바위섬과 석굴들이 자아내는 환상적인 분위기, 유람선의 넓은 테이블에 앉아 유유자적 세계의 무수히 많은 사람이 왔다 간 이곳을 보노라면 잠시나마 일상의 근심 걱정이 사라지는 듯하다. 또한, 섬들 사이로 고요히 흐르는 유람선이 한 폭의 그림 같다. 하롱베이 대부분의 섬들은 동굴의 크기와 수가 한국의 그것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크고 넓은 데다가 외부로 구멍이 뻥뻥 뚫려 있다. 수상마을 사람들은 연탄불에 요리도 하고 화초를 가꾸며 통통배로 멀리 학교로 통학하기도 한다.
항띠엔꿍(천궁동굴)의 내부, 하늘문
동굴에는 수천 마리의 원숭이들이 살았으며 사람과 동물형상을 한 종유석들이 많으며 나름대로 각각 어떤 전설을 갖고 있다. 여기저기에 커다란 종유동굴들 기기묘묘한 종유석에 적당히 만들어 놓은 조명들 정말 장관이다.
띠톱섬 전망대에서, 안개비가 자욱하다.
해발 30m 정도의 띠톱섬 정상에서 360도로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하롱베이의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하롱베이 안의 또 다른 명소인 항루언을 바나나모터보트를 타고 약 30분 걸려 사방이 산으로 꽉 막힌 천혜의 바다요새를 터널로 통과하여 구경할 수 있었다. 띠톱섬은 호찌민이 러시아 유학시절의 친구인 띠톱에게 선물한 섬이며 해수욕과 등산을 할 수 있다.
깟바섬 해수욕장
깟바섬이 하롱베이 섬 중에서 제일 크다고 하여 도착해보니 열대 숲이나 정글 같은 분위기는 별로 없고 한국의 60~70년대 시골 여름 같은 느낌이 든다. 월남전 때 하노이와 주변 섬과는 달리 이곳 깟바섬은 전쟁의 포화가 매우 심했던 곳이다. 이 섬의 절반 정도는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다양한 야생동물이 서식하고 트레킹도 가능하다. 아열대 기후의 깟바섬의 겨울은 우리나라 봄 가을 날씨와 비슷하여 해수욕이나 수영은 어렵고 휴양지로서 좋은 기후를 갖고 있다.
깟바섬 산책로에서
“노니는 뽕나무과에 속하는 과실로 지구 위에서 사시사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식물은 노니 뿐이다.”라고 한글로 광고되어 있다. 노니의 가장 중요한 성분은 프로제로닌 인 데 인체에 공급되면 제로닌이 생성되며 이 성분에 의해 체내에서 세포 입구가 개방되며 세포의 탄력증대, 혈액의 정화,단백질의 분자구조 등을 가져와 세포에 영양분을 쉽게 주입하게 된다. 가장 먼저 효과를 보는 것은 대장의 숙변 제거와 동시에 변비, 설사를 해결해 준다. 그 밖에 당뇨, 신경통, 관절염, 정력강화, 만성 피로, 장염, 피부미용, 노화방지, 골다공증, 암 치료 및 예방 등 노니는 면역기능을 자극하여 면역력을 높여 준다.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을 확실히 좋아한다. 그러나 그들의 역사를 조금 알고 내면적으로 조금만 깊이 들어가 보면 그들의 어쩔 수 없는 진실을 알게 된다. 한류 때문에 한국문화를 좋아하고 자기들보다 나은 경제력을 가진 한국이라는 나라를 좋아하는 것이다. 게다가 눈 오는 한국의 겨울을 좋아하고 가난을 벗어나고자 한국으로 시집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사람도 베트남 사람들을 좋아하는 것은 틀림없는 것 같다. 베트남은 사회주의 국가로 땅은 국가 소유이며 지상권은 개인이가진다. 건축 시 1세대당 4×8m의 땅을 주며 직급과 능력에 따라 그 이상의 땅도 확보할 수 있다. 따라서 건축은 좁고 길게 지을 수 밖에 없고 더운 여름에 바람이 앞문에서 들어와 뒷문으로 쉽게 빠져나가게 하기 위해서도 옆면에는 대부분 창을 내지 않으며 돈이 없어 앞면에만 페인트칠한다고 한다. 이렇게 아직은 사회주의 국가이지만 거리에는 두 대중 한 대가 대우의 라노스나 마티즈 혹은 현대버스 등 한국산 자동차가 질주하고 있다. “군중 속에는 적어도 한두 명의 라이따이한이 있겠지…”라고 생각하니 거리가 멀고 열대지방인데도 습성과 풍습이 비슷하고 한국인과 참 많이 닮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