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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문화원에 가면 - 9 | ||||
경주문화원의 봉덕사종 종각(鐘閣)이야기(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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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각 주변 분위기
그(봉덕사종)에게는 현재 살고 있는 인왕동 집 말고 경주문화원에 옛집이 하나 더 있다. 새집으로 이사 간지 벌써 40년, 그간 옛 집인 이 종각은 그대로 비어있다. 국립 경주 박물관 정문 안 저만치 봉덕사 종이 보인다. 마치 일회용 거대한 종이컵을 거꾸로 세워 놓은 것 같다. 언제나 그렇듯이 그 주위에 사람들이 많다. 학생들이 떠들썩하고, 관람자들이 북적된다. 가끔 종소리가 더엉 더엉 긴 여운을 남기며 울린다. 물론 녹음된 소리지만… 경주문화원에 있는 옛 종각은 빈집이라 조용하고 한적하다. 자식(종)을 떠나보낸 지 수십 년간, 이제 백수 고령에 몸은 늙어있지만 아직도 뭔가 기다리는 듯 눈과 귀를 열어놓은 채 그대로 서있다. 이 종각은 1915년 봉황대 쪽에서 종이 이리로 이사 올 때 함께 왔다. 사각형의 팔작기와 지붕인데 사방 돌아가며 나무 살로 보호막이 쳐져있다. 지금은 텅 비워 볼품없지만 20여 톤의 무거운 종을 매달고 수십 년을 버텨온 강골의 뼈대 있는 건물이다.
에밀레종에 얽힌 이야기
이 종은 신라35대 경덕왕이 아버지(성덕왕)의 명복과 나라편안을 빌기 위해 만들다가 아들 혜공왕(771)이 완성하였다. 구리 12만근과 35년이란 긴 세월이 소요된 만큼 종신제작의 어려움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훌륭한 종소리를 찾기에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고 전한다. 이 종은 가슴 저미는 저음 의 긴 여운이 어린애가 어미를 찾는 울음으로 들린다고 해 ‘에밀레 종’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에는 다음과같은 슬픈 이야기가 전해온다. 이 종을 만들기 위해 시주를 받으러온 스님에게 한 가난한 여인이 ‘시주할게 없으니 이 귀염둥이라도 드릴까요?’ 하고 농담을 던진 게 화근이 되어 어린애를 인주로 바치게 됐다고하고, 또 종장이 누이동생인 과부가 종 제작에 거듭 실패하며 추궁당하는 오빠를 위해 자기 딸을 몰래 바쳤다는 설도 있다. 내 기억으로 60년대 ‘에밀레종’이란 영화가 있었다. 김진규, 김지미, 최무룡씨등 당대의 유명한 배우들이 출연한 천연색 영화다. 종장이를 사랑한 여인이 그와의 사이에서 생긴 아기를 재물로 바친다는 줄거리로, 모성의 안타까움과 연정의 애틋함을 강조하여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작품이다. 이종에 담긴 에밀레 전설을 한 차원 더 승화시킨 또 하나의 슬픈 이야기로도 볼 수 있다.
성덕대왕 신종이 새집으로 이사 가던 날
1975년 5월 27일, 아침부터 시민들이 구 경주 박물관 종각(현 경주문화원) 주변 길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새 박물관으로 떠나는 봉덕사종을 보기위해서다. 시내 복판에서 항상 장엄하고 은은한 종소리를 들려주어, 사람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던 신종(神鐘)이 변두리로 옮겨간다니 서운하기도하고, 또 한편 저렇게 큰 종을 어떻게 옮기나, 그것도 궁금해서이다. (*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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