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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일시: - 1구간 2024. 4. 24.~25.(수,목) - 음력(5. 16.~17.), 일출 05:43~일몰 19:12
- 2구간 2024. 5. 3.(금) - 음력(3. 25), 일출 05:33~일몰 19:19
●산행지: 금적지맥 2구간 졸업
●산행코스: 쌍암재-분기점(430m)-구룡산(548.7m)-447.3m봉삼각점-갈티고개-예수사랑 교회앞-449.4m봉삼각점-수리티재-푯대봉(434.9m)-노성산(515.1m)-국사봉(550.8m)-노성리고개-503.6m봉삼각점-장선리고개-질신리버스정류장-거멍산/두루봉(493.5m)-문티재/동진휴게소-덕대산(575.1m)-금적산(651.9m)-듬치재/정방재-큰음달산(426.9m)-싸리재-403.8m봉삼각점-길마재-매봉(475m)-국사봉(475.1m)-364.5m봉삼각점-금강합수점/합금리
●먹거리: 생수3리터, 초코다이제, 빵5개, 초콜렛5, 사탕5/생수2.5리터, 쿨피스145cc2, 빵4개, 사탕5
●준비물: 스틱, 헤드랜턴, 바람막이, 고아텍스, 긴팔, 반팔, 반바지, 고아모자, 팔토시, 타이지, 손수건2, 스포츠타올, 면수건, 양말, 피부연고, 비상약, 부직포, 충전지3, 충전짹2, 휴지, 물티슈, 말방울, 띠지20
●거리: 약 63.3Km(43.4km+19.9km)
●소요시간: 29.47h(21.06h+8.41h)
●누구랑: 나홀로
●1구간 경비: 기차11,800, 식사9,000, 직행4,600, 택시28,300, 점심12,000, 기차10,700, 뒤풀9,000
- 2구간 경비: 택시7,300, 기차24,400, 시내버스, 기차16,700, 뒤풀이9,000원, 음료3,900
●1구간 날씨: 9~22, 첫날 낮에 한때 비, 둘쨋날 쾌청, - 2구간 날씨: 8~27, 쾌청
●산행경과:
* 4. 24.(수) 24.1km
- 11:15 : 쌍암재(雙巖峙, 290m)/ 회인내북로/ 571번지방도로
- 11:30 : 금적지맥분기점
- 11:48~53 : 구룡산(九龍山, 548.7m)/ 면계/ 삼리봉
- 12:02 : 515.3m봉 - 12:25 : 322m봉/ 삼각점봉
- 12:56 : 439m봉
- 13:03 : 442m봉/ 판석
- 13:22 : 갈티(葛峙)고개(375m)/ 구티재/ 2차선포장도로/ 면계/ 회인면- 내북면
- 13:37 : 느티재/ 생태터널/ 인가
- 13:45 : 샘봉(382.2m)
- 13:57 : 먹뱅이(429m)
- 14:22~29 : 451m봉
- 14:45 : 428m봉
- 14:51 : 426m봉
- 14:58 : 420m봉
- 15:23 : 423m봉
- 15:29 : 임도
- 15:45 : 424.3m봉
- 15:54 : 445.3m봉/ 삼면경계봉면/ (회인면, 내북면 → 수한면)
- 16:13 : 449.4m봉/ 4등삼각점(보은 420/ 1980 재설)
- 16:30 : 454.7m봉
- 16:50 : 389m봉
- 17:00 : 수리티재(車衣峴, 321m)/ 무궁화공원/ 육각정/ 수준점/ 25번국도
- 17:22~36 : 푯대봉(434.9m)
- 18:14 : 448.9m봉
- 18:35 : 478.9m봉
- 18:56 : 성황당
- 19:24 : 노성산(老城山, 515.1m)/ 면계/ 삼리봉(수한면 차정리, 회인면 건천리 → 송평리)
- 20:05 : 503.7m봉/ 갈고성
- 20:18 : 456.3m봉
- 21:20~40 : 휴식
- 21:55 : 국사봉갈림길
- ??:?? : 국사봉(國師峯, 550.8m)/ 면계/ 회인면 - 회남면
- 22:05 : 545m봉/ 삼면봉(수한면, 회인면 → 회남면)/ 국사봉갈림길
- 22:10 : 554m봉
- 22:27 : 570m봉
- 23:02 : 만산(504.5m)
- 23:24 : 노성리고개/ 용촌차정로/ 21번군도
* 4. 25.(목) 19.3km
- 03:45 : 출발
- 04:33 : 503.6m봉/ 삼각점/ 군면리계/ 삼리봉(보은 수한면 동정리, 안내면 용촌리 → 월외리)
- 04:55 : 541.8m봉/ 보은산
- 03:00 : 453m봉/ 갈림길/ 군면리계/ 삼리봉(옥천군 안내면 월외리, 보은군 수한면 동정리 → 장선리)
- 05:49 : 장선(長善峴)고개/ 575번 지방도로/ 안내수한로/ 575번지방도/ 군면계/ 옥천군 - 보은군
- 06:34 : 말목재
- 06:52 : 305.5m봉
- 07:05 : 질신리버스정류장/ 군면리계(보은군 수한면 질신리 - 옥천군 안내면 방하목리)
- 08:08 : 거멍산(黑山, 493.5m)/ 두루봉(甑山)
- 08:48~09:33 : 문티재(文峙, 320m)/ 동진휴게소/ 안내보은로/ 37번국도
- 09:48 : 416.8m봉
- 10:21 : 덕대산(德垈山, 575.1m)/ 덕대산성
- 11:03 : 424.5m봉
- 11:25 : 531.8m봉
- 11:35 : 544m봉/ 삼면봉(옥천군 안내면, 보은군 수한면 → 삼승면)
- 11:52 : 634.4m봉/ 묘지(스테인레스 울타리)
- 12:26 : 금적산(金積山, 651.9m)/ 1등삼각점/ 군면리계/ 삼리봉(보은 삼승 서원리, 옥천 안내 동대리 → 오덕리)
- 13:28 : 건부랑재/ 양회임도
- 13:50 : 346.5m봉
- 14:30 : 정방재(正芳峙, 240m)/ 듬치재/ 안내삼승로/ 502번 지방도로
* 5. 3.(금) 19.9km
- 07:18 : 정방재(正芳峙, 240m)/ 듬치재/ 안내삼승로/ 502번 지방도로
- 08:00 : 조천산성/ 성재산(425.8m)
- 08:05 : 큰음달산(426.9m)
- 08:25 : 360.4m봉
- 08:36 : 싸리재
- 08:48~54 : 행동식(아침)
- 09:15 : 495.6m/ 삼면봉(안남면, 안내면 → 청성면)/ 삼승분맥분기봉
- 09:29 : 403.8m봉
- 10:09 : 376.7m봉
- 10:18 : 길마재/ 동물이동통로/ 팔각정/ 면계/ 청성면 - 안남면
- 10:57 : 490.7m봉
- 11:11 : 안부/ 면계/ 삼리경계면(청성면 구음리, 안남면 도덕리 → 지수리)
- 11:24 : 매봉(鷹峰, 475m)
- 11:29 : 471.8m봉
- 11:56 : 462.7m봉
- 12:14~24 : 행동식(점심)
- 12:34 : 400.3m봉
- 12:54 : 국사봉(國師峰, 475.1m)/ 무인산불감시탑/ 면계/ 안남면 - 청성면
- 13:33 : 271.7m봉
- 13:47 : 열목재/ 열무재/ 원당마을 안부
- 14:07 : 열목재
- 14:41 : 364.5m봉/ 4등삼각점(보은 473/ 1980 재설)/ 리계/ 합금리 - 고당리
- 15:33~41 : 287m봉/ 행동식
- 16:28 : 합금리 하금마을/ 소나무민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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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적지맥(金積枝脈)이란
속리산 천왕봉에서 안성의 칠장산으로 이어지는 한남금북정맥이 구봉산(549m)을 지나 쌍암재로 내려서기 직전의 430m봉에서 남쪽으로 분기해서 구룡산(548.7m), 수리티재, 청원-상주고속국도, 노성산(515.5m), 국사봉(550.8m), 노성리고개, 거멍산(493.5m), 문티재, 덕대산(575.1m), 금적산(金積山, 651.9m), 듬치재, 큰음달산(426.9m), 싸리재, 국사봉(475.1m)을 지나 옥천군 청성면 합금리 하금마을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약 51.8km 되는 산줄기인데, 보청천(報靑川, 길이 69.3km)의 왼쪽 분수령이 된다. 금적지맥의 동쪽에는 불로천, 항건천, 거현천, 오덕천, 보청천 등이 금강으로 흐르고 있고, 서남쪽에는 대청호가 위치해 있다.
♤ 금적지맥 개념도
♤ 금적지맥을 지나는 동네
* 보은군(報恩郡)
동쪽은 경북 상주시, 서쪽은 대전광역시와 충북 청주시, 남쪽은 옥천군, 북쪽은 청주시와 괴산군에 접하고 있다.
서쪽에 대전광역시 동구, 북쪽에 괴산군과도 접경하는 부분은 있지만 충북과 대전의 사이에 대청호가 있어 교통로가 원활하지 못해 대전 동구와 직접 경계를 맞대고 있는 회남면 이외에는 교류가 많지 않으며 괴산과는 바로 통하는 도로가 비포장 임도 하나뿐이기 때문에 사실상 타 시군을 지나야만 한다. 충북 내에서는 옥천, 영동, 보은을 합하여 '남부 3군'으로 뭉뚱그려 표현할 때도 있다. 국회의원 선거구도 이 3개 군이 하나로 합쳐져 있다. 보은군은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보은과 상주 사이에 있는 화령이 있어서 상주에서 청주로 갈 때 반드시 보은을 거쳐야 했기 때문에 충주-문경에 있는 조령과 함께 경상도로 통하는 교통의 요충지였지만, 1905년 경부선 개통으로 인해 충청도와 경상도를 오가는 교통로가 추풍령으로 넘어가면서 화령과 조령을 통하는 교통이 붕괴되었다. 군 중심에 보은읍이 위치하고, 읍 주위를 나머지 면이 감싸고 있다. 대청호의 일부가 있기도 하고(대청댐 건설 당시 몇몇 지역이 수몰되기도 하였다), 중심 하천인 보청천은 옥천군 청산면을 거쳐 금강에 합류한다. 같은 도내 옥천, 제천, 영동과 함께 한여름 열대야가 없는 지역이기도 하다. 생활권 상으로는 청주와 대전 양 대도시의 영향권에 들긴 하지만, 대체적으로는 회남면 등 일부 서부지역을 제외하고는 청주 생활권에 가깝다. 한편 상주시와 인접한 동부지역(산외면, 속리산면, 마로면 등)은 경북 쪽의 영향을 일부 받기도 한다. 충북 청주시-대전광역시-경북 상주시를 연결하는 위치이면서, 전체적으로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분지 지형인 탓에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전략적 위치였다. 백제가 3세기 후반~4세기 초 기간 내내 충북에 잔존한 마한 목지국 지지 세력과 격전을 치를 때 목지국 잔여 세력과 백제 사이의 중요한 전장이었고, 마찬가지로 아신왕의 백제가 광개토대왕에게 연거푸 크게 졌던 4세기 후반~5세기 초에 고구려에게 빼앗긴 중요한 요지였다. 4세기 중반 고구려의 속국인 신라의 눌지 마립간이 고구려 장수왕에게 반란을 일으켜 경북 북서부를 수복함과 함께, 잔존 고구려군을 추격하여 몰살하는 과정에서 이 보은 일대까지 장악하게 된다. 이후 장수왕이 475년부터 작정하고 준비한 한반도 남부 정복 전쟁에서도 신라는 괴산과 대전 동부는 고구려에게 내주면서도 보은, 영동 만은 고수했다. 이후 신라는 백제의 동의 아래 삼년산성을 축조하여 대고구려 최전방 요새를 쌓고 고구려에게 청주-세종-대전 축선을 잃고 멸망 위기에 몰린 백제를 동쪽으로부터 지원해주게 된다. 신라 초기 보은군의 이름이 삼년산군(三年山郡)이었던 건 매우 당연한 얘기. 이후로 나제 동맹이 결렬된 후 보은군 북쪽 대부분이 신라 영역이 된 이후엔 대백제 최전방 요소로서 기능하게 되는데, 삼년산성으로부터 시작되는 신라의 백제 지원이 백제를 지켜내는 데 큰 도움이 되었던 걸 생각해보면 매우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백제 성왕이 신라에게 붙들려 죽게 되는 지역이 바로 이 삼년산성 근처였다. 『삼국사기』에 이렇게 여러 번 기록될 정도로 중요한 요새. 신라 경덕왕 때 삼년군(三年郡)으로 바꾸었다. 9주 5소경 중 상주에 속해 광역행정구역은 지금의 경상도 쪽이었다. 이후 900년대 초에 후백제가 추풍령 일대 신라 정예부대 및 요새들을 그럴듯한 설명이 가능하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도 쉽게 접수할 때 후백제의 영역으로 귀속되었고, 보은 지역은 백제의 악몽이었던 지난날과는 달리 이번에는 신라와 고려의 악몽이 된다. 후백제군이 보은 삼년산성에서 출발하는 진격 루트로 고려와 신라에게 여러 번 뼈아픈 패배를 안겨주며 그 지역적 중요성을 철저하게 입증했기 때문. 이전 백제는 대전 방향에서 동진이 예상되는 고구려군과 신라군의 움직임 탓에 처절할 정도로 종심 방어 체제를 갖췄고 그럼에도 여러 차례 타격을 입은 끝에 결국은 버티지 못하고 멸망했으나, 후백제는 보은군을 철저하게 틀어쥐고 있었던 덕택에 적어도 동쪽 방면 국경은 거의 걱정할 일 없이 충북과 경북을 제집처럼 드나들었고 그 결말은 바로 서라벌 기습이었다. 고려의 왕건 또한 삼년산성 근처에서 결정적으로 후백제에게 대패한 적이 있었을 정도. 그러나 후삼국통일 이래로 한반도 남부가 한 지역체 아래에서 내내 있었던 덕택에, 보은군의 전략적 중요성이 부각될 기회는 없게 된다. 고려 시대에도 경상도에 속해 보령(保齡)이라고 불렸다. 경상도에서 충청도로 옮겨진 것은 조선에 들어서였다. 보은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조선 태종 때 충남에 있는 보령과 혼동이 생겨 다시 보은으로 칭해진 이후이다. 1906년 청산군(이후 옥천군에 흡수)에서 현 내북면 지역을 편입하였다. 1914년 회인군을 흡수하였다. 1947년 속리면이 내속리면, 외속리면으로 분리되었다. 2007년 내속리면이 속리산면, 외속리면이 장안면, 회북면이 회인면으로 개칭되었다. 경북 상주시 화북면 중벌리, 운흥리(일명 '용화'라 불리는 지역)는 상주보다 보은과 더 가까워, 한때 보은군 편입을 요구하기도 했다. 속리산 국립공원이 가장 유명하다. 심지어 보은은 몰라도 속리산은 아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문장대'에서 내려다 보이는 장관이 그야말로 압권이다. 속리산 국립공원 내 사찰인 법주사도 유명하다. 이 절 경내에는 국사책에서 조선 후기 건축의 사례로도 나오는 '팔상전', 벼슬까지 받은 유명한 소나무인 보은 속리 정이품송 등 여러 유적을 포함하고 있어 함께 즐겨 볼 만하다. 천문대가 있는 구병산, 보은지역의 TV/FM중계소가 있는 금적산도 등산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속리산 못지 않은 보은의 명산이다. 그리고 '삼년산군'이라는 이름의 유래가 된 삼년산성도 이곳의 명물이다. 펑북 의주군 압록강변의 백마산성과 마찬가지로, 공식적으로는 단 한 번도 외적에 의해 함락된 기록이 없는 요새 중의 요새이다. 단,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따르면 현덕왕 당시 822년 김헌창이 반란을 일으켜 이 성을 차지한 기록이 있어서 유일한 오점으로 기록되고 있다.
* 옥천군(沃川郡)
충북 남부에 있는 군으로 대전광역시 남쪽에 위치하여 위성도시의 성격이 강한 지역이다. 삼국시대에는 신라의 고시산군인데, 통일신라시대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관성군으로 개칭하고 이산현·안정현을 영현으로 관할했다. 1018년(현종 9) 경산의 속현으로 병합되었다가 1143년(인종 21) 현으로 독립했다. 1313년(충선왕 5) 옥주로 승격되고 경산부 소속의 이산현·안읍현·양산현을 편입받았다. 조선초의 군현제 개편으로 1413년(태종 13) 옥천군이 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지방제도 개정에 의해 1895년 공주부 옥천군, 1896년 충북 옥천군이 되었다. 1906년 월경지 정리에 의해 두입지인 양내면·양남면을 영동군으로 이관해 면적이 줄어들었다. 1914년의 군면 폐합에 따라 청산군이 폐지되어 편입됨으로써 면적이 넓어졌다. 이때 군면 폐합도 이루어져 옥천군의 이내면·안내면·안남면은 그대로, 이남일소면이 이남면으로, 군내면·군남면이 내남면으로, 이남이소면·군동면이 동이면으로, 군서일소면·군서이소면이 군서면으로, 군북일소면·군북이소면이 군북면으로 폐합되고, 청산군 남면이 청남면으로, 서면이 청서면으로, 동면·군내면·북면이 청산면으로 통합되어 옥천군에 폐합되었다. 백두대간과 호서정맥, 금남기맥의 영향으로 500m 내외의 산지로 둘러싸여 전체적으로 옥천분지를 이루며, 곳곳에 구릉성 산지가 분포한다. 동부에는 팔음산(八音山,762m)·천금산(千金山, 465m), 서부에는 환산(環山, 581m)·용봉(龍峰, 437m)·망덕봉(望德峰, 420m), 남부에는 매봉·마니산(摩尼山, 640m)·월이산(551m), 북부에는 거멍산(494m)·덕대산(德垈山, 573m)·금적산(金積山, 652m) 등이 솟아 있다. 이들 산지 사이의 옥천읍·동이면·청산면·이원면 일대에는 산간분지가 발달했다. 금강이 군의 중부와 북부를 곡류하는데, 특히 이 군 일대에서 하천의 구배가 매우 크다. 그밖에 건천·서화천·월외천 등이 금강으로 유입한다. 금강 연안에는 평야가 거의 발달하지 못했으며, 경지는 주로 소하천 연안과 분지 내에 분포한다. 옥천읍 서산성 일대의 백제고분군을 비롯해 여러 개의 고분군이 있다. 이 지역은 백제와 신라가 다투던 곳이어서 산성들이 많이 흩어져 있는데, 청성면의 산계리토성, 군북면의 고리산성(環山城)과 노고성, 이원면의 마니산성 등이 있다. 경부선이 군의 남서부를, 경부고속도로가 군의 중부를 각각 동서로 통과하고 있다. 그밖에 충주-남원, 음성-무주, 대전-대구를 잇는 국도가 지나며, 옥천-대전간 시내버스가 운행되고 있다. 생활권이 대전에 형성되어 있으며, 근교 농공단지로 발전해왔다. 대전·청주 등 대도시에 인접해 있고 교통이 편리해 최근 경제성 작물을 중심으로 채소 등 원예작물과 특용작물 생산에 주력함으로써 농가소득증대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특히 포도·딸기·상추·배추·토마토 등이 생산되는데, 옥천읍을 중심으로 포도·사과·감의 재배가 활발하며, 군북면에서는 토마토와 배추, 군서면에서는 딸기 재배가 활발하다. 이원면 묘목특화지의 묘목이 특산물로 알려져 있으며, 동이면 조령리에 있는 금강유원지와 1991년에 개장한 안내면 장계리의 장계국민관광지에는 여름철에 많은 관광객이 모여든다. 장령산자연휴양림·정지용생가 등이 주요 관광지이다.
옥천을 말하다. ▶ http://san.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3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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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간별 세부거리
쌍암재-0.7km-지맥 분기점(430m)-0.6km-구룡산(548.7m)-4.2km-갈티고개-6.9km-수리티재(25번국도)-3.2km-노성산(515.5m)-4.1km-국사봉(550.8m)왕복-2.8km-노성리고개(22번도로)-2.5km-장선리고개/575번도로-3.2km-질신리버스정류장-2.8km-문티재(37번국도)-5.6km-금적산(651.9m)-3.4km-듬치재(정방재 502번도로)-3.9km-삼승분맥갈림길(495.6m)-2.8km-길마재-5.7km-국사봉(475.1m)-3.4km-364.5m봉-3.1km-합금리/금강합수점
♤ 구간거리
- 접속 0.7km(보은 쌍암재 ~ 지맥분기점)
- 지맥 분기점(430m) ~ 노성리고개(22번도로) 20.7km
-. 분기점 ~ 수리티재 11.8km
-. 수리티재 ~ 노성리고개 8.9km
- 노성리고개(22번도로) ~ 듬치재/ 정방재 17.8km
-. 노성리고개 ~ 문티재 8.9km
-. 문티재 ~ 듬치재/ 정방재 8.9km
-. 질신리삼거리 ~ 듬치재/ 정방재 11.8km
- 틈티/듬치재(정방재 502번도로) ~ 합금리 하금마을 19.9km
-. 길마재 ~ 보청천/금강합수점 12.5m
-. 삼각점봉 ~ 하금마을 3.1km
* 식수 공급지 및 산행 정보
- 보은 뱃들사우나찜질방: 043)543-0887, 8,000원
- 회인택시: 043-543-9876
- 늘티재: 인가 식수보충 가능
- 질신리마을: 식수보충 가능
- 보은택시: 010-5469-0203, 보은콜택시: 043)543-1512
- 문티재/ 동진휴게소: 산아래염소골 043)543-1233) 식당 뒤 수도/ 주유소(생수)
- 610번버스: 보은(18시 막차)~옥천~안내~문티재/동진휴게소~수한~보은
- 보은신흥운수: 043)542-2510, 옥천운수: 043)732-7700
- 보은군 삼승면 원남리 택시: 043)542-7102, 043)543-5918, 010-6380-6635
- 옥천콜택시: 043)732-4701
* 서울에서 금적지맥 분기점 내려가는 길
- 서울역-ktx-대전역-itx-옥천역: 05:12발 06:13, 06:25~06:36착, 24,400원
- 서울역 ~ 옥천역: 05:53, 07:15, 09:07~ , 2.25h, 11,800원
- 옥천시외버스공영정류소 ~ 보은시외버스터미널: 07:20, 09:40, 10:20,~ 0.40h, 4,400원
- 옥천 ~ 보은 시내버스터미널(610번): 06:40, 07:05, 08:15, 10:15, ~ 14:15, 16:15, 18:15, 19:00, 0.50h, 1,400원
- 옥천역 ~ 옥천시외버스공영정류소: 옥천역전에서 좌틀로 직진 도보 약 10분
- 옥천 ~ 정방재 시내버스터미널(521번): 06:20, 06:40, 07:30,~ 0.30h
- 옥천운수: 043)732-7700
- 서울 경부선 ~ 청주시외버스터미널 ~ 보은
- 동서울 ~ 보은시외버스공용정류장: 07:30, 09:30, 10:10, 11:50, 14.30h, 3.20h, 18,300
- 남부터미널 ~ 보은시외버스공용정류장: 14, 16:20, 18:20, 20, 2.50h, 15,900
- 센트럴시티 ~ 보은시외버스공용정류장: 07:05, 10:30, 17:30, 2.40h, 17,500원
- 보은시외버스공용정류장 ~ 법주리마을버스정류장: 120번(첫차 06:45), 0.30h, 터미널 오른쪽 택시승강장 버스정류장
- 보은시외버스공용정류장 ~ 쌍암재: 택시 28,400원
* 금적지맥 합수점에서 서울 올라오는 길
- 합금리 ~ 옥천시내버스터미널 281번버스: 합금리 하금마을발 13:10, 18:50, 0.35h
- 고당리 ~ 옥천시내버스터미널 502번버스: 고당리시내버스정류장 19시, 19:15, 0.30h
- 합금리 ~ 옥천역: 택시 2만원, 옥천택시: 043)731-2345, 043)733-0000
- 옥천시외버스터미널 ~ 서울: 옥천 ~ 대전복합터미널: 15:40, 19:15
- 옥천역 ~ 서울역: 10:19, 10:55, 13:13, 15, 15:58, 17, 17:48, 20:24, 21:37, 02.16h, 11,800~17,600원
- 옥천시내버스터미널(607번 버스) ~ 대전 → 신인동주민센터(501번 버스) ~ 대전복합터미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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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남호남정맥 신무산 뜬봉샘에서 시작된 금강이 충청으로 접어들며 백하지맥 갈기산에선 금산 적벽강을 지나온다. 부지런히 대청호로 향하는 금강을 각호, 팔음에 이어 금적지맥에서 재회한다. 보청천을 이끌고 금강으로 향하는 금적지맥은 시종 역동성 있는 원판 그대로의 마루금을 간직하며 요철 지형의 능선으로 오르내림이 만만치 않고 후반 국사봉(475.1m) 이후 잡목 가시지대가 아구리를 벌리고 있어 힘들기로 정평이 나있다. 금적은 한남금북정맥 보은에서 분기하여 보은과 옥천의 경계를 따르며 남진하다가 옥천 청성에서 보청천에 닫혀 마무리 된다.
금적지맥의 마지막 삼각점봉(364.5m)에서 지맥은 보청천과 금강의 합수점을 찾아간다며 갑자기 낭떠러지로 허리를 꺽는다. 지맥이 산자분수령원칙에 입각해 합수점을 향해야 한다는 어거지스러움을 여실하게 확인할 수 있는 장소인 것이다. 금적지맥은 364.5m봉에서 합금리로 들어서 2시간 가까이 산줄기 능선을 따라 약 3.1km 진행하다가 합금리 하금에 이르러 금강에 합수하는 산줄기우선의 원칙이 맞다. 162개 지맥 중에 합수점을 향하는 일부 지맥은 정맥이 입해처를 향하는 형상을 따른 산자분수령원칙의 닮음꼴에 불과하다. 억지춘향으로 산줄기를 꺽어 합수점으로 끌어가도 기껏 합수점을 향하는 지맥은 3~40개에 불과하다. 모든 지맥이 합수점에 이른다면 지맥에도 산자분수령원칙이 적용되는게 맞으나 원칙이란 그 분야 전반에 일괄적으로 적용되어야 원칙이지 일부 현상을 가지고 전체에 적용되는 원칙이라 우길 수는 없는 것이다. 애초 산경표에는 지맥 개념이 존재치 않았다. 산줄기를 세분화한 지맥은 신 산경표가 만든 것으로, 산줄기우선의원칙은 산자분수령원칙을 포함한 개념이다. 지맥의 끝을 합수점으로 주장하는 것은 여러 지맥에서 보듯 과도한 억지에 불과하며 주변에 합수점이 있다고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하겠다.
결론을 도출하자면, 지맥의 종착지는 바다와 강, 합수점과 섬이 될 수 있고 분맥의 종착지는 내와 천이 될 수도 있다. 그 중에 검증도 걸치지 않은 출처불명의 가설을 전제로 내세워 산자분수령원칙이 적용되는 합수점으로 가는 일부 지맥을 지맥의 전부인 양 원칙으로 호도한 분들이 있었다. 금적지맥과 팔음지맥은 합수점보다는 강으로 가는 지맥이 맞다. 산줄기 또한 물흐르 듯이 흘러야 순리에 맞다. 강으로 가는 지맥을 합수점으로 틀을려니 순리에 역행하는 억지가 생기고 산꾼들의 분열과 반목이 일어난 것이다. 그래서 그분들은 박성태선생님의 신 산경표를 폄훼하려 한 것인지 아니면 신 산경표와 필적할 만한 대단한 발견을 했다는 공명심을 얻으려 한 것인지 오해받기에 충분한 것이다. 이분들은 자신들의 과오에 대해 틀림없이 반성하고 사과하고 원상을 회복해야 한다. 돌아가신 조은산선배님도 이 부분에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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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암재(雙巖峙, 290m) / 571번지방도로/ 회인내북로
쌍암재는 한남금북정맥 산줄기로 보은군 회인면 쌍암리와 내북면 법주리를 이어주는 571번 지방도가 지나가는 창리에서 회인으로 넘어다니는 곳으로 주위에는 인삼재배 시설이 많이 보이는데 동저울고개라 부르기도 하고 법주리고개라고도 하는데 지명 유래는 고개 우측에 있는 쌍암리 능암마을에서 따온듯 하다. 능암마을은 고바위(곰바위) 능암사에서 유래된 듯 용이 승천한 용둠벙, 장사가 나온 굴재, 삼천명승군 웅암사 전설이 있는 회인군 동면 능암지를 1914년 일제때 쌍암리라 했다. 어둠이골 장고개 두 골짜기 아우러진 물 폭포되어 용둠벙에 떨어질 때 물보라위 일곱색깔 쌍무지개 능암 행운 정기로다. 주산 화봉 뻗어내린 기슭에 1500년대말 정주한 동래정씨 뒷말, 중뚬, 아랫말 집성촌을 이루고 충효인의예지 숭상한 곳이다. 고개 좌측에 있는 내북면 법주리는 본래 회인현(懷仁縣) 동면(東面)지역으로 버드나무가 많아 버드리(柳東)라고 부르고 구룡산(九龍山) 아래의 큰 골짜기가 되므로 법줄 또는 법주(法主)라 부르던 것이 마을의 지명이 되었다고 한다.
♤ 보은군 회인면(懷仁面)
충북 보은군의 서부에 위치한 면으로 동쪽으로는 내북면, 수한면, 남쪽으로는 회남면, 북서쪽으로는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 서쪽으로는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에 접한다. 맑고 깨끗한 청정지역으로 기후풍토가 과수농업에 적합하여 대추, 곶감, 배 재배 농가가 증가하고 있으며, 예로부터 고추, 마늘, 참깨의 주산지이다. 보은군 소재지에서 다소 떨어져 있으나 2007년 청주-상주고속도로가 준공되어 발전의 동력을 마련하였다. 회인은 충북 보은지역의 옛 지명으로 옛 회인현의 소재지인바 회인현은 본래 백제의 미곡현(未谷縣)이었다. 통일신라 때인 757년(경덕왕16)에 매곡(昧谷)으로 고쳤으며 연산군(燕山君:지금의 文義)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940년(고려 태조23)에 회인(懷仁)이라 고쳐 부르다 1018년(현종9)에 청주목(淸州牧)에 예속되었다가 뒤에 회덕(懷德)에서 파견된 감무(監務)가 관할하였다. 1383년(우왕9)에 따로 감무(監務)가 되었고 1413년(태종13)에 현(縣)으로 승격되었다가 1895년(고종32)에 회인군(郡)으로 승격되어 읍내(邑內), 동면(동面), 남면(남面), 서면(서面), 북면(북面), 강외면(강외面) 등 6면을 관할하였는데 일제강점기인 1914년 4월 군·면 통폐합시 폐군과 함께 북면은 청원군에 붙이고 그 외는 보은군에 흡수되고 명칭도 회북면이 되었다가 2007년 10월 1일부터 회인면으로 개칭되어 옛 지명을 회복하였다.
♤ 430m봉/ 금적지맥 분기점
준희선생님 금적지맥분기점 표지판과 백두사랑산악회 산패가 나무에 매어 있는 430m 분기봉이다. 쌍암재에서 인삼밭을 들머리로 빙돌아서 우회하여 올라서면 왼쪽은 한남금북정맥 오른쪽이 금적지맥이다.
♤ 461.1m봉/ 면계/ 삼리봉(회인면 쌍암리, 내북면 법주리 → 용수리)
주차장으로 내려서기 전 좋은 길을 버리고 왼쪽으로 오른 무명봉이다. 회인면과 내북면의 면계이자 삼리봉이다. 왼쪽으로 내려선 안부에서 이정표(구룡산/ 주차장)를 만나고, 지맥의 왼쪽이 내북면 법주리에서 용수리로 바뀌어 쌍암리와 용수리의 경계를 따른다. 숲길 나무 곳곳에 인공 새집들이 걸려 있다. 뻐꾸기 새집인가 좀 크다.
♤ 보은군 내북면(內北面)
보은군 북서부에 있는 면으로 남동쪽으로 산외면(山外面)과 보은읍, 북서쪽으로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加德面)에 접한다. 면역(面域)은 남북으로 길며, 산지가 많다. 서쪽 면계에 도원리 국사봉(局師峰, 587m)·구룡산(九龍山)이 남북으로 줄을 잇고, 중앙부는 구봉산(九峰山, 506m)·시루산(482m)이 있다. 그것을 분수령으로 북부에 속리천(俗離川)이 북류하고 남부에 보청천(報靑川)이 면의 서남부에 발원하여 면 남부에서 동남류하면서 곳곳에 하곡평야를 이룬다. 달천의 지류인 흑천이 서부에서 동북쪽으로 흐르고 있는데 면소재지인 창리를 중심으로 한 분지평야가 발달해 있다. 주산업은 밭농사로 고추·담배·감·인삼 등의 특용작물이 재배되고 있다. 봉황리는 고추의 주산지이며, 법주리는 인삼의 주재배지이며, 한우와 닭 사육도 활발하다. 중앙부를 괴산(槐山)~보은(報恩)을 연결하는 국도가 지나고, 지방도가 연결되어 있다. 문화재로는 이승칠 기념비(李承七紀念碑), 주산성(朱山城), 노고성지(老姑城址), 백봉사(栢峰祠), 보은 산성리(山城里) 성지 등이 있다.
♤ 구룡산(九龍山, 548.7m)/ 면계/ 삼리봉
충북 보은군 내북면 용수리 · 법주리와 회인면 쌍암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여지도서』(회인)에 "구룡산(九龍山)은 보은 속리산으로부터 와 주맥이 된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이후 『1872년지방지도』(회인), 『조선지지자료』(회인), 『한국지명총람』에 모두 표기자 변화없이 구룡산(九龍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구룡산 정상석과 정상표지판이 있다. 삼림욕 안내판도 서있다. 이정표(등산로<지선>/주차장) 등이 있다. 팔봉지맥이 조망이 된다. 지맥은 오른쪽으로 내려선다.
♤ 삼리경계면(회인면 쌍암면, 내북면 용수리 → 세촌리)
구룡산에서 약 300m 내려서며 지맥이 왼쪽이 내북면 용수리에서 세촌리로 바뀌는 지점이다.
♤ 보은군 내북면 세촌리(世村里)
보은군 내북면에 있는 세촌리는 면의 서쪽에 위치한 산촌마을로 경주 김씨가 대대로 살고 있어 세촌이라는 명칭이 생겼다. 자연마을로는 느리울, 바깥누리울, 안누리울 등이 있는데 느리울은 임진왜란때 명나라 사람 나학천이 이여송을 따라 나왔다가 길을 잘못들어 이곳에 이르렀다가 전쟁이 끝난 뒤에 돌아갔다고 한다. 바깥누리울 세촌리의 중심마을로 누리울의 바깥 쪽에 있는 마을이다.
♤ 515.3m봉
준희선생님 산패가 산벚나무에 매어 있다. 지맥은 우틀로 진행한다. 진행 방향 왼쪽으로 조망이 터지고 터진 곳으로 속리산 주능이 한눈에 들어온다.
♤ 445.9m봉(마모된 삼각점)
산패는 보이지 않고 삼각점 표면이 마모가 되어 알아볼 수 없다. 왼쪽 내림길로 내려선다.
♤ 성황당 안부/ 삼리경계면(내북면 세촌리, 회인면 쌍암리 → 고석리)
회인면 고석리와 내북면 세촌리를 잇는 안부로 성황당이 있던 무명 고개로 보인다. 지맥의 오른쪽이 쌍암리에서 고석리로 바뀌는 삼리경계면이다.
지맥이 잠시 면계를 벗어나 회인면 안으로 들어서서 갈티봉(378m)까지 진행합니다.
♤ 472.5m봉/ 삼리봉(회인면 고석리, 내북면 세촌리 → 회인면 갈티리)
이름 없는 성황당 안부에서 오른쪽 능선으로 치고 오른 봉우리로 삼리봉이다. 지맥이 우틀로 꺾어 면계를 벗어나 회인면 안으로 들어서며 고석리와 갈티리의 경계를 따라 내려선다.
♤ 454m봉
초가집 온돌방 구들장 용도로 사용하면 좋을 성 싶은 얇은 판석(판떼기 모양의 화강편마암)이 첩첩이 쌓여 있다. 우틀로 내려선다.
♤ 378m봉
서래야님이 갈티봉이라는 코팅지를 붙여놓은 곳이다. 지맥은 회인면 갈티리 내안으로 내려서며 갈티고개를 통과하여 420m봉에 오르고 다시 우틀하여 고석리와 경계인 느티고개로 향한다.
♤ 갈티(葛峙)고개/ 구티재/ 2차선포장도로/ 면계/ 회인면- 내북면
보은군 회인면 갈티리와 내북면 세촌리의 경계이다. 갈티리(葛峙里)는 회인면의 동북쪽에 위치한 마을로 오봉산, 서쪽에 노적봉 등 사방을 산이 둘러싸고 있어 골짜기가 많으며, 마을 앞으로는 회인천이 흐르는데 자연마을로는 갈티 등이 있다. 갈티는 갈티리의 으뜸되는 마을로 옛날에 칡이 많은 고개 아래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부무골은 작은 노적봉 너머에 있는 골짜기로 이곳에는 불무형의 명당이 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 420m봉/ 486.8m봉 갈림길
갈티재에서 올라서다 뒤돌아 보면 팔봉지맥 능선이 펼쳐지고 피반령이 넘어가는 고갯길이 보인다. 갈림길이라 알바 주의지점이다. 우틀로 꺽어서 내려서면 문패없는 묘지가 나온다. 등로를 따라 내려서면 순흥안씨 가족묘가 있다. 오른쪽 옹벽 끝나는 지점에서 묘지를 들머리로 잡목을 뚫고 능선으로 오르는데 크게 어렵지는 않다.
♤ 복우실재
보은군 회인면 부수리(富壽里)와 갈티리 경계에 있는 고개로 맞은편에는 동물이동통로가 보이고 근처에는 보은군의 특산물인 대추밭이 많이 보이고 왼쪽의 좁은 도로로 복우실 마을 가는 길이다. 회인면의 동쪽에 위치한 부수리는 부수봉이 우뚝 서 있고 중앙으로는 회인천이 흘러 하인천과 합수한다. 미곡 중심의 전형적인 농촌 마을로 자연마을로는 바깥모산(地山), 안모산(種山), 바락고개(發花恃), 숲거리, 우무실, 향교골(행교말, 校洞) 등이 있다. 바깥모산은 옛날에 큰 연못이 있었는데, 마을이 그 바깥쪽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안모산은 큰 못의 안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며, 북처럼 생긴 산이 있어 종산이라고도 하며 숲거리는 숲이 많아서, 우무실은 소없이 농사를 지어도 과일이 많아 먹을 것이 많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향교골은 회인향교(懷仁鄕校)가 있어 생긴 이름이다. 아미산성과 탑사리들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 382.2m봉/ 삼리봉(회인면 갈티리, 고석리 → 애곡리)
참나무에 준희선생님 산패가 매어 있다. 느티고개 생태통로로 내려서기 전 오른쪽의 잡목 사면을 헤치면서 올라선 봉우리이다. 삼각점은 여기서 찾을게 아니다. 오른쪽으로 70m 떨어져 있다.
♤ 보은군 회인면 애곡리(艾谷里)
애곡리는 본래 회인군 읍내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애티리와 보고곡리를 병합해 애티와 보고곡의 이름을 따라서 애곡리라 하고 회인면에 편입되었다. 애곡리에는 여러 자연부락마을이 있다. 현재의 애곡2리라고 불리우는 보고실을 기준으로 보고실의 바깥쪽에 위치한 바깥보고실, 보고실의 안쪽에 있는 안보고실이 있으며 현재의 애곡1리로도 알려진 애곡리의 가장 큰 자연마을인 쑥티리가 있다. 쑥이 무성하게 자라는 마을이라고 해서 쑥티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 마을은 예로부터 쑥을 먹은 황소가 넘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사람을 헤치는 일이 종종 발생해 황소를 사육하지 못했다고 하는 재미있는 설화도 있다.
♤ 느티고개/ 생태터널
382.2m봉에서 희미한 길을 따라 내려 느티고개 생태통로를 지나 내려선 임도에서 임도를 가로질러 능선으로 올라선다. 임도파는 임도를 따르다가 잠시 후 다시금 산길로 접어들면 잡목 무성한 427.4m봉을 좌틀로 내려선다.
♤ 안부
길흔적이 뚜렷하고 왼편으로 내북면 세촌리 대동마을이 보인다. 안부를 지나 올라선 능선 왼쪽으로 또 다른 임도에 내려선다.
♤ 450m봉/ 면계/ 회인면 - 내북면
임도를 지나 올라선 봉우리로 회인면 애곡리와 내북면 신궁리의 경계이다.
♤ 445.3m봉/ 삼면경계봉면/ (회인면, 내북면 → 수한면)
조금 전에 헤어졌던 임도를 다시 만나는 지점에서 살짝 오르는 봉으로 지맥의 왼쪽이 내북면 신궁리에서 수한면 율산리로 바뀌는 삼면경계봉이다.
♤ 보은군 수한면(水汗面)
모래가 많아 비가 와도 물이 귀하므로 수한(水汗)이라는 지명으로 불리며 역사가 깊은 고장이다. 수한면은 보은읍 소재지로부터 남서쪽으로 1.7 km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으로는 보은읍, 서로는 회남면과 회인면, 남으로는 삼승면과 옥천군 안내면, 북으로는 내북면을 경계로 하고 있다. 대체로 산지가 많아 서쪽의 항건산(恒乾山)·노성산(老城山)과 남쪽의 거명산·덕대산(德大山)·금적산(金積山)이 ㄴ자형으로 줄지어 있고 항건천(恒乾川)과 거현천(巨峴川)이 각각 북쪽으로 흐르고 있으나 경지(耕地) 형성은 빈약한 편이다. 임야가 전체면적의 70 %를 차지하는 중산간지로 주민의 대부분이 쌀, 고추, 오이 등 1차 산업에 의존하고 있으며, 최근, 비닐하우스와 노지를 이용한 오이, 배추, 고추 등 시설채소 농사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청주-상주간 고속도로가 지나고 국도 37호선이 남쪽 옥천으로 연결된다. 25번 국도는 보은과 청주로 연결되어 편리하다. 문화재로는 의병장 조헌을 추모하는 조중봉 후율사(趙重峯後栗祠:충북기념물 15), 보은 교암리 사지(報恩敎岩里寺址), 동정리(桐井里) 사지 등이 있다.
♤ 427.4m봉/ 삼리봉(수한면 율산리, 회인면 애곡리 → 건천리)
회인면 애곡리와 수한면 율곡리의 경계로 임도를 따라 잠시 걷다가 왼쪽 능선으로 올라선다. 오른쪽 사면에 보이는 임도를 따르지 않고 계속 마루금 능선으로 오르내리며 진행해도 무방하다.
♤ 보은군 회인면 건천리(乾川里)
회인면 건천리는 회인에서 보은으로 가는 25번국도 수리티재 아랫마을로, 본래 회인군 읍내면의 지역으로 자갈이 많아 냇물이 늘 말라 있었으므로 건천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건천리라 하고 회인면에 편입된 마을이다. 이 마을에는 보은군내에 있던 2역(驛) 7원(院)중에 공태원이 자리하고 있던 유서 깊은 마을이기도 하다.
♤ 424.3m봉
소나무에 준희선생님 산패가 매달려 있다. 등로 왼쪽 아래로 진골소류지가 보이는 곳을 지나 벌목지에서 오른 봉우리이다. 좌틀로 살짝 꺽어진다. 가야할 노성산과 국사봉이 바라보인다.
♤ 445.3m봉
안부로 내려 한고비 치고 오른 방구돌이 있는 봉우리로 오른쪽에 청원-상주간 고속도로가 보인다. 또 급내리막으로 이어진다. 가야할 노성산과 국사봉 능선 마루금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 449.4m봉/ 4등삼각점(보은 420/ 1980 재설)
준희선생님의 산패가 종전에는 영진지도에 따라 450.2m봉으로 표기되었으나 신형 449.4m봉 산패로 교체되어 참나무에 높이 매어 있다.
♤ 440m봉/ 삼리봉(회인면 건천리, 수한면 율산리 → 차정리)
삼각점봉에서 잠시 내려섰다 올라서는 440m봉에서 지맥의 왼쪽이 수한면 율산리에서 차정리로 바뀌며 우틀하여 내려선다. 금적산과 보은-옥천간 25번국도가 보이는 청주한공묘지를 지나 넝쿨지대를 오른쪽으로 우회하여 전망봉으로 올라서면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속리산 주능부터 구병산-팔음산-백화산(주행봉)이 차례로 조망되고 그 오른쪽으로 가야할 덕대산 금적산도 바라보인다.
♤ 보은군 수한면 차정리(車井里)
수한면 차정리는 수리티재 아래에 위치해 있다. 유난히 골짜기가 많아 마을 주변이 온통 골짜기와 고개로 형성되어 있다. 고개가 높아서일까? 수리티재에는 수많은 사연을 전해져 내려온다. 원래 수리는 높다는 뜻으로 높은 고개를 의미한다. 임진왜란 때 중봉 조헌 선생이 수레가 다닐 수 없을 정도로 고개가 험해 이곳에서 왜군을 물리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조헌 선생은 당시 옥천에서 후학을 양성하던 중 왜군이 보은까지 북상한다는 사실을 접하고 제자들과 후율사가 위치한 수리티재에서 매복하였다가 돌맹이만을 가지고 왜병 20여명을 격퇴하고 이에 힘을 얻어 금산전투에서 의병장으로 칠백의사와 함께 치열한 격전을 벌이다 전사하였다. 수한면 차정리에 있는 느티나무는 보은에서 가장 오래된 보호수이고 720여년의 수령을 자랑한다. 임진왜란 때 조헌 선생이 왜군과 싸우다가 이 나무에 말을 매고, 군사들과 휴식을 취했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고속도로와 수리티재가 내려다 보입니다. 여기서 수리티재로 내려섭니다.
♤ 454.7m봉
수리티재에서 올라선 푯대봉에서 노성산으로 향하는 마루금이 바라보이고, 고속도로와 수리티재가 내려다 보인다. 이후 좀 더 진행하여 신설도로가 있는 임도로 내려서고 오른쪽 묘지 있는 쪽으로 내려서야 편하다. 마루금을 고집하면 가시잡목길을 헤쳐야 한다. 하지만 10분 정도 진행하다 가시밭을 만나 왼쪽으로 우회하면 등로는 의외로 양호해진다.
수리티재 내려서기 직전에 새로운 임도가 개설되었어요. 임도를 따라 내려서면 쉽게 수리티재로 내려서고, 마지막까지 지맥 능선을 고수하여 내려서기도 합니다.
♤ 수리티재(車衣峴, 321m)/ 무궁화공원/ 육각정/ 수준점/ 25번국도
오른쪽으로 살짝 돌아가면 공원이 있다. 보은군 수한면 차정리 수리치에서 회인면 건천리 공태원과 야남골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지명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차의현(車衣峴)은 고을 서쪽 15리에 있으니 회인현과의 경계이다." 라는 기록이 있고, 회인현에도 "차의현(車衣峴)"이 등장한다. 이때 '차의(車衣)'는 '수리'의 받쳐적기법[訓主音從法]으로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유사한 표기 사례로 음성군 생극면·감곡면과 충주시 신니면·노은면의 경계에 있는 수리산(수레의산, 車衣山, 鷲山)'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후 『해동지도』에는 '차의치(車衣峙)'로 표기되어 있고 회인현 지도에는 보은현과의 경계에 차령(車嶺)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때 차령의 차는 수리의 훈차 또는 훈음차 표기로 보인다. 『여지도서』에는 "차의현(車衣峴)은 현 서쪽 15리에 있다 회인현 경계에 있다."라는 기록이 보이며, 동일한 표기가 『대동여지도』에도 확인된다. 『조선지지자료』(회인)에 '차령(車嶺)'이 기록되어 있다. 현재 수리티재의 동쪽 골짜기에는 수리치라는 촌락이 분포하고 있다. 임진왜란 때 중봉 조헌(趙憲)선생이 왜적을 격퇴시킨 곳으로 유명하며 수한면 장선리 피난봉은 조헌선생이 가족을 피신시키고 의병을 모집하여 단련시킨 곳으로 알려져 있다. 수리티재에서 보은 수한면쪽으로 가다가 오른쪽으로 꺽어지면 나오는 양회임도로 올라선다.
깃대봉이나 푯대봉이나 같은 말 아닌가요??
♤ 푯대봉(434.9m)/ 3등삼각점(보은 307/ 1980 복구)/ 무인산불감시카메라
푯대봉은 보은군 회인면 송평리에 있는 봉이다. 수리티재에서 10여분 거리에 있으며 3등삼각점과 sk통신기지국 통신탑이 설치되어 있다. 통신탑 정문 앞에서 왼쪽으로 올라선다. 435.5m봉에 올라서니 무인산불감시탑 울타리에 준희선생님 산패가 설치되어 있다. 푯대봉을 왼쪽 사면으로 우회하여 진행하면 조망터가 나온다. 오른쪽 벌목지로 당진-영덕간고속도로가 수리티교 회인터널을 지나 회인대교로 시원하게 뻗어나간다. 조망을 보고 되돌아 나와 통신탑에서 직진으로 내려선다. 진행할 노성산, 국사봉 등 금적지맥이 볼록볼록 튀어나오게 보인다.
♤ 보은군 보은읍(報恩邑)
수리터널 윗쪽 봉우리에서 당진~영덕간 고속도로와 그 너머 보은읍의 모습이 다가온다. 충북 보은읍은 1973년에 읍으로 승격되었으며 동쪽으로 속리산면(俗離山面), 북쪽으로 산외면(山外面), 서쪽으로 내북면(內北面)·수한면(水汗面), 남쪽으로 삼승면(三升面)·탄부면(炭釜面)에 접한다. 북동쪽의 수철령(水鐵嶺, 536m)과 함림산(含林山, 515m)을 중심으로 한 고산지대와 서쪽 평야 사이에 300m 안팎의 구릉지대가 펼쳐지는데 읍의 서쪽을 남류하는 보청천(報靑川) 연안의 하안 평야에서는 쌀·보리 중심의 주곡농업이 성하고, 무·배추·참외·수박 등 채소류와 참깨·들깨 등 특용작물이 생산된다. 그밖에 과수재배·양잠업·가축사육도 활발한데, 특히 대추와 황색 잎담배는 특산물로 꼽힌다. 교통은 청주∼상주·괴산∼영동 국도가 읍내에서 교차하고, 지방도로가 법주사(法住寺)와 옥천을 연결하고 있다.
♤ 시루봉(448.9m)
준희선생님 산패가 소나무에 매어 있다. 조망터에서 바라보는 조망이 시원하다. 아래 마을이 수한면 차정리 밤나무골이고 멀리 백두대간 능선이 지나며 동북쪽으로 구봉산과 속리산이 보인다.
♤ 무성산(478.9m)
참나무에 준희선생님 산패가 매어 있다. 우회길이 있다. 정상에서 직진하면 알바, 우틀로 가파르게 내려선다. 오른쪽 아래는 벌목지고 고속도로 너머로 멀리 팔봉지맥이 바라다 보인다. 왼쪽으로는 수한면이다.
새로 닦은 임도로 내려서며 좌우 두 노성산이 보입니다.
♤ 성황당고개/ 보은군 회인면 건천리 - 수한면 차정리
노성산 아래로 새로운 임도가 다듬어졌다. 조금 아래로 내려서면 회인면 건천리와 수한면 차정리를 잇는 돌무더기가 보이는 서낭당 고개이다. 동네 주민들도 제법 다녀선지 내려선 안부에 길이 좋다. 노성산을 향하는 등로는 처음엔 완만하다가 급경사 암릉지대로 변하여 나사처럼 돌아 올라가는데 구부능선에서는 나무가지와 바위를 잡고 힘겹게 정상에 오른다. 바닥에 눈이라도 있다면 올라서기 위험한 곳이다. 성황당고개에서 약 30분 진을 쏙 빼게 만든다.
보은 시내와 구병산능선이 바로 보이고 시계가 맑을 때는 왼쪽으로 멀리 계룡산까지 조망이 됩니다.
♤ 노성산(老城山, 515.5m)/ 3등 삼각점(보은 306/ 1980 재설)/ 면계/ 삼리봉(수한면 차정리, 회인면 건천리 → 송평리)
노성산(老城山, 515.5m)과 또다른 노성산(老城山, 572m)은 충북 보은군의 회인면 송평리, 수한면 차정리에 걸쳐 있는 산이다. 금적지맥에 속한 산으로 경사가 가파르고 급하지만 정상에서의 조망은 양호하다. 벌목지엔 글자를 새기든가 그림을 넣으면 멋진 산아트가 될것도 같다. 소나무에 준희선생님 산패가 높이 매어 있다. 회인면 일대에서 이름난 산이다. 『세종실록지리지』(회인)에 "토산(土産)은 석철(石鐵)로 현의 남쪽 노성산(老聖山)에서 난다."고 기록되어 있어 관련 지명이 처음 등장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회인)에는 "노성산(老城山)은 고을 남쪽 10리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노성산의 '성' 자의 표기가 『세종실록지리지』와 달리 '성(聖)'에서 '성(城)'으로 바뀌어 표기되어 있다. 『여지도서』에는 "현 남쪽 15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고 『해동지도』(회인)와 『대동여지도』(보은)에도 표기자 변화없이 '노성산(老城山)'으로 표기되어 있다. 『조선지지자료』(회인)에서도 "노성산(老城山) 은 동면 노성리에 있다."로 기록되어 있다. 이 산의 다른 명칭으로 노송산(老松山), 좌월산(坐月山)으로도 불리운다. 마을 주민들은 지명에 표기된 한자를 훈차 표기로 풀이하여 노송(老松)이 있어 산 이름을 '노송산'이라 부른다거나, 산 정상에 고려시대 최영 장군이 쌓았다고 전하는 좌월대가 있다하여 '좌월산'이라 부른다고 전한다. 현재 노성산의 동쪽사면에는 수한면 노성리(老城里)가 있어 실제는 차정리에 속한 산이지만 노성산이란 이름을 얻고있다. 국립지리원 지도와 다음, 네이버 지도에 그 이름이 나오는 산이다. 정상에서 우틀로 급하게 꺽어 내려선다.
♤ 갈고산(503.7m)/ 삼각점봉/ 갈고산성/ 삼리봉(회인면 송평리, 수한면 차정리 → 노성리)
무심코 지나는 봉우리이다. 왼쪽으로 사면길도 있어 놓치기 쉽다. 준희선생님 503.7m 산패가 소나무에 매어 있다. 정상에 故한현우님의 비닐코팅 산패가 걸려 있다. 약 50m 진행하면 지맥의 왼쪽이 차정리에서 노성리로 바뀌는 삼리봉이다.
♤ 보은군 수한면 노성리(老城里)
수한면의 동쪽에 위치한 노성리는 사방이 낮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골짜기가 많으며 밭농사를 주로 하는 농촌 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송정, 모개울, 점볼 등이 있는데 송정은 옛날에 노송이 많이 우거졌었다고 붙여진 이름이고, 모개울은 갈고성에서 남쪽 온천으로 나가는 목이라고 모개울이라 하였고, 점볼은 옛날에 솟점이 있었다고 한다. 노성리라는 지명은 노성산 밑이 되므로 노성골, 노성동 또는 노성이라 하였는데서 유래하였다. 마을 뒷산인 태음산(太陰山)에는 우리나라 국민이 3일간은 먹을 수 있는 양식이 있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 큰노성산(老城山, 572m)
큰노성산은 금적지맥 503.7m봉(갈고산성)에서 약 50m정도 진행된 능선분기점(삼리봉)에서 왼쪽으로 0.7km 떨어진 능선상의 산이다. 보은군 수한면 노성리 점볼마을 뒷산이다. 노성리 근처에 있는 3개의 노성산 중 그 높이가 제일 높아 편의상 큰노성산이라 명명해 본다. 국립지리원지도에는 무명봉이나 오록스맵 코리아지도, 다음, 네이버지도 등에 그 이름이 나오는 산이다.
♤ 456.3m봉/ 갈림길
준희선생님 산패가 소나무에 높이 매어 있어 보질 못하고 그냥 가기 쉽다.
♤ 폐광터
넓은 공터에 폐철재물이 방치되어 있는 폐광터가 나오고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왼쪽 직진 방향으로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국사봉쪽으로 이어지는 뚜렷한 임도가 있다.
국사봉을 다녀오려 했는데 그만 갈림길을 지나치고 말았습니다. 야간이라 침착하게 어플을 살피며 진행하는게 쉽지가 않습니다.
♤ 534m봉/ 국사봉 갈림길
예전에 광산이 있었는지 임도와 철구조물이 널부러진 곳을 지나니 안부가 넓게 패인 국사봉 갈림길이다. 지맥에서 오른쪽으로 내려서서 헬기장을 지나 마루금에서 벗어난 국사봉을 왕복하는데 약 1.2km, 40분 소요된다. 지맥길로 조금 진행하면 국사봉 갈림길이 또 나온다.
♤ 국사봉(國師峯, 550.8m)/ 2등삼각점(보은 21/ 1983 재설)/ 무인산불감시시스템/ 면계/ 회인면 - 회남면
2기의 돌탑과 2등삼각점과 무인산불감시시스템이 있고 돌탑에서 20여m 진행하면 자연석 국사봉 정상석이 놓여있고 준희선생님 산패와 백두산악회 산패가 정상에 걸려있다. 국사봉 정상석 인증사진 남기고 처음 돌탑쪽으로 되돌아 나온다. 국사봉은 보은군 회인면과 회남면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노성산과 맥을 같이 한다. 국사(國師)는 대개 국사당을 가리킨다. 국사당은 마을의 수호와 경계를 위해 만든 신당이다. 대개 마을 뒤쪽 높은 산정(山頂)에 위치한다. 지명이 여기에서 유래되었으며 산 정상부에 토축산성의 흔적이 있다.
♤ 545m봉/ 삼면봉(수한면, 회인면 → 회남면)/ 국사봉갈림길
국사봉을 다녀오는 갈림봉으로 지맥의 오른쪽이 회인면 송평리에서 회남면 조곡리로 바뀌는 삼면봉이다.
♤ 보은군 회남면(懷南面)
군소재지로부터 서남쪽으로 23km지점에 위치한 면으로, 동쪽으로는 보은군 수한면과 남쪽으로는 옥천군 안내면이 인접하였으며 서쪽으로는 대전광역시 동구와 북으로는 회인면과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이 경계를 이루고 있다. 서쪽에 샘봉산(461m)·국사봉(國士峰, 315m), 동쪽에 국사봉(國師峰, 551m)·늘치(553m) 등의 산지가 연이어 있으며, 이 두 산지의 골짜기에 하곡(河谷)평야가 발달하여 있다. 서쪽 면계에 금강(錦江)이 흐르고 있으나 심한 곡류천(曲流川)을 형성할 뿐 경지발달은 빈약하다. 밭농사가 우세하여 조·기장·수수·땅콩·고구마·고추·마늘·참외·수박 등을 산출하며, 특산물로 감과 취나물이 있다. 중앙을 군도(郡道)가 남북으로 달리고 있다. 회남면은 대청호 상류에 위치한 댐주변 지역으로, 사과와 대추를 주로 생산하며 대청호의 어업을 통해 생계를 이어가는 산골마을이다. 보은군 소재지 중심에서 다소 먼 거리에 위치한 관계로 개발이 낙후되었지만, 당진-영덕간 고속도로 개설로 발전이 기대되는 곳이다. 대청댐 건설로 인하여 옥토는 수몰되었고 현재는 경사도가 심한 박토만으로 농업 수입이 저조하여 특별한 소득원 개발이 어려운 실정이나 축산업, 과수업을 중심으로 소득원을 개발 중에 있으며 배과수업, 한우 및 젖소 축산업과 어업 및 대청호 주변 음식업을 중심으로 발전을 모색 중에 있다.
♤ 555m봉/ 면계/ 삼리봉(수한면 노성리, 회남면 조곡리 → 광포리)
지맥이 좌틀하며 오른쪽이 회남면 조곡리에서 광포리로 바뀌는 지점이다.
♤ 561.5m봉
지맥길에서 왼쪽으로 100m 떨어져 있어 다녀와야 한다. 준희선생님 산패가 참나무에 매어 있다.
♤ 면계봉(495m)/ 회남면 - 수한면
지맥이 여기부터 면계를 벗어나 직좌틀로 수한면 노성리 내안으로 들어서서 노성리고개를 향해 내려선다.
중노성산은 금적에서 벗어나 있는 산입니다.
♤ 중노성산(老城山, 533.9m)
중노성산은 충북 보은군 안내면 용촌리, 운운리, 판장리에 소재한 산이다. 한편 근처에 노성산이 두개 더 있다. 금적지맥상의 노성산(老城山, 516m)과 또 다른 근처 큰노성산(老城山, 572m)이다.
철조망을 만나면 급경사를 다 내려섰다고 봐도 됩니다. 오른쪽 아래에 동네가 있는지 개가 몹시 짖네요.
♤ 만산(504.5m)
준희선생님 산패가 소나무에 매어 있다. 가야할 거멍산이 바라보인다. 여기부터 급사면의 내림길로 악명이 높다. 거은 다 내려오며 사유지를 알리는 입산금지 철조망을 넘나들어 야간엔 조심해야 한다. 고령신공묘를 지나 내려선다.
금적지맥 약 1/3을 지나왔고 한 시름 놓는 지점입니다. 여기부터 금적산까지 지맥은 보은군과 옥천군의 군계를 따릅니다. 옥천군 안내면 장계리는 장령지맥이 금강과 만나는 마지막 지점이기도 하며 금적지맥은 여기부터 안내면의 경계를 길게 따릅니다.
♤ 노성리고개/ 21번군도/ 용촌차정로/ 군면리계/ 삼리봉(옥천 안내면 용천리, 보은 수한면 노성리 → 동정리)
보은군 수한면 노성리 모개울마을이 있고 수한면에서 회인면으로 이어지는 용촌차정로가 지나는 2차선 포장도로인 노성리고개 이후 지맥의 주봉인 금적산까지 보은군과 옥천군의 경계를 지나게 된다. 길건너 바로 올라서면 소나무 숲길 아래로 길이 반듯하고 부드럽게 오른다. 지맥의 왼쪽이 노성리에서 동정리로 바뀌어 용천리와의 군면리계를 따른다.
♤ 503.6m/ 4등삼각점(보은 421/ 1980 재설)/ 군면리계/ 삼리봉(보은 수한면 동정리, 안내면 용촌리 → 월외리)
황량한 벌목지를 바라보며 몇개의 무명봉을 넘어 올라선 봉우리로 4등삼각점이 있고 준희선생님 산패가 벚나무에 매어 있다. 노성리고개에서 약 20분 올라선 삼리봉으로 지맥이 오른쪽이 보은군 안내면 용촌리에서 월외리로 바뀌어 수한면 동정리와 안내면 월외리의 경계를 따른다.
♤ 541.8m봉
금적은 봉우리를 넘나드는 요철구간이 많다. 가파른 사면을 올라선 봉우리로 중간 크기의 단풍나무에 준희선생님 산패가 매어져 있다. 금적산으로 향하는 지맥의 능선을 눈대중으로 그려 본다. 등로에서 안내면 월외저수지가 바라보인다.
바위에 기대앉아 행동식을 먹었는데 바로 그 지점이 꺽이는 지점이었어요. 잠시 알바로 내려갔다 올라왔습니다.
♤ 453m봉/ 갈림길/ 군면리계/ 삼리봉(옥천군 안내면 월외리, 보은군 수한면 동정리 → 장선리)
암봉에서 월외리저수지를 바라보며 내려선 삼리봉이자 갈림봉이다. 오른쪽으로 내려서며 지맥의 왼쪽이 장선리로 바뀐다.
♤ 보은군 수한면 장선리(長善里)
수한면의 남서쪽에 있으며 서쪽으로 피난봉이 웅장하게 솟아있다. 고추와 벼를 주로 재배하는 농촌 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장선, 감나무골(枾木洞), 궁터골(弓基洞) 등이 있으며, 감나무골은 마을에 감나무가 많았다 하여 생긴 지명이다. 궁터골은 임진왜란 전에는 홍병서라는 사람이 이 곳에서 활 연습을 하였고, 임진왜란 때에는 의병들이 활과 화살을 만들었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장선(長善峴)고개/ 575번 지방도로/ 안내수한로/ 군면계/ 옥천군 - 보은군
묘지를 만나 묘지길로 내려서는 장선고개는 옥천군 안내면 월외리와 보은군 수한면 장선리를 잇는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간다. 인근에 규모가 큰 월외저수지가 있다. 도로 건너 단풍나무 군락지로 들어서고 조림지를 올라 능선에서 좌틀한다.
♤ 309m봉/ 삼리봉(월외리, 장선리 → 질신리)/ 약초재배지
서낭당 안부에서 우틀로 진행하여 올라선 봉우리로 지맥의 왼쪽이 보은군 수한면 장선리에서 질신리로 바뀌는 지점이다.
♤ 보은군 수한면 질신리(秩新里)
보은군 수한면 남쪽에 있는 질신리는 근처에 매봉산과 거멍산이 있어 마을이 비교적 높은 곳에 있다. 담배, 고추, 벼 위주의 경작을 하는 농촌 마을로 자연마을로는 질고지, 새터, 참나무쟁이 등이 있다. 질고지는 산이 길게 뻗어나와 곶을 이루고 있어 긴곶이라 불리던 것이 긴곶 >진곶>진고지로 변하여 생긴 지명이다. 또 지대가 높아서 제일고지라 부르던 것이 변하였다고도 하는데 여기서 질신리의 지명이 유래했다고 하며, 질관리와 신리를 병합하여 질신리가 되었다고도 한다. 새터는 서남쪽에 새로 생긴 마을이란 뜻이고, 참나무쟁이는 참나무가 많아 숯을 구웠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321m봉/ 가재봉갈림봉/ 군면리계/ 삼리봉(보은군 수한면 질신리, 옥천군 안내면 월외리 → 방하목리)
안부에서 올라서면 가재봉(488m) 갈림길이 나오고 지맥길은 왼쪽으로 이어진다. 능선의 높낮이 변화없이 부드럽게 이어진다. 고도가 낮게 내려와 묘지가 간간히 보인다. 지맥의 오른쪽이 월외리에서 방하목리로 바뀌면 지맥은 질신리와 방하목리의 경계를 따른다.
♤ 옥천군 안내면 방하목리(方下目里)
안내면 방하목리는 거명산이 마을을 감싸고 있어 골짜기가 많으며, 중앙으로 흐르는 안내천의 발원지로 밭농사를 주로 하는 농촌마을로 자연마을로는 방하목, 비금터(비금기,삐끔터), 상송정이(삼송정), 정구지밭골, 질구지(제일고지,월경) 등이 있다. 방하목은 지형이 방아의 목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비금터는 임진왜란 때 피난와서 이룬 마을로, 비금산의 이름을 땄으며 상송정이는 옛날 최,황,배 3성의 사람들이 들어와 살면서 각각 소나무를 하나씩 심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질구지는 지대가 높다.
♤ 말목고개/ 군면리계/ 옥천군 안내면 방하목리 - 보은군 수한면 질신리
구릉지를 지나는 곳이다. 말목고개는 안내면 방하목리 정구지밭골에서 수한면 질신리2구(새터)로 넘어가는 고갯길이다. 지도상 고개로 표기가 되어 있으나 지금은 고개 흔적이 보이지 않는 낮은 안부이다. 좌틀하여 희미한 길로 들어서면 아래에 축사가 나오고 뒤로 올라 철사가 둘러쳐진 묘지 위에서 좌틀한다.
♤ 305.5m봉
질신리 우당골 끝머리에 있는 한우목장 우사 오른쪽 뒤로 올라 밭고랑 가장자리를 따라 올라선 봉우리이다. 연리지 사이에 들어선 나무에 준희선생님 산패가 매어 있다.
♤ 307m봉
청주한공묘를 지나고 밭 가장자리로 오른쪽 묘지 뒤로 올라서고 다시 숲속으로 들어선다. 등로가 보이지 않아 왼쪽 밀밭을 가로질러 능선으로 오른다. 길찾기가 어려운 지역이다.
♤ 새터/ 장선소계로/ 허방농장
마루금을 따르면 왼쪽 아래로 민가 가옥이 보이고 앞에 보이는 거목과 대나무숲을 바라보고 마루금으로 진행한다. 도로 인접 우회지점에서 비탈사면으로 진행하고 사유지인 과수원 울타리를 넘어야 해서 장선소계로로 내려서서 도로를 따르는 경우가 많다.
♤ 진둥고개/ 질신리삼거리/ 2차선도로
도로가 마루금이 되는 지형이다. 진둥고개 삼거리 오른쪽의 질신방하목로길을 따라 질신리마을을 지난다. 37번 국도와 575번 지방도가 만나는 질신리 삼거리에서 직진은 보은읍으로 향하고 맥길은 37번 국도를 따라서 옥천군 안내면 방향으로 향한다. 가야할 검운산(儉雲山)/ 거멍산이 바라다 보인다. 도로를 기준으로 왼쪽은 보은군 수한면 질신리이고 오른쪽이 옥천군 안내면 방하목리이다 이 도로가 군계이면서 면계인 셈이다. 버스 정류장을 같이 사용한다.
약 1km 마을길을 따라 걸으며 인가에 들어가 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 도로를 따라 걷다가 안내면으로 향하는 37번 국도를 버리고 거멍산을 바라보며 왼쪽으로 올라섭니다.
♤ 거멍산(黑山, 493.5m)/ 두루봉(甑山)/ kt통신소, 송신탑/ 3등삼각점(보은 308/ 1980 재설)/ 군면리계/ 삼리봉(옥천군 안내면 방하목리, 보은군 수한면 질신리 → 광촌리)
도로에서 접어들어 임도를 따라 30여분 올라선다. 준희선생님 산패가 노간주나무에 매어져 있다. 정상에 묘지 다섯 기와 3등삼각점, 보은군 재난통신 무선 중계기, kt통신 중계탑이 있다. 보은군 수한면 광촌리와 옥천군 안내면 방하목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두루봉과 흑산이란 지명도 가지고 있다. 조선 시대의 고문헌과 고지도에는 관련 지명이 등장하지 않는데 다만 『조선지지자료』에는 "금운산(錦雲山) [언문: 거머산]은 서니면 광촌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당시 서니면 광촌(현 수한면 광촌리) 주민들은 산 이름을 순우리말로 '거머산'이라 불렀으며 이의 음차 표기로 '금운산(錦雲山)'이라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같은 문헌에는 "주봉산(周峯山) [언문:두루봉]은 수한면 양기리에 있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때 '주봉(周峯)'은 수한면 양기리(현 수한면 광촌리 양터골) 주민들이 부르던 우리말 지명 '두루봉'의 뜻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이러한 기록을 통해 동일한 산을 마을 주민들에 따라 달리 부르고 이를 다른 한자로 다양하게 표기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한국지명총람』에는 '두리봉'이 등장하며 이 산의 다른 이름으로 거멍산과 금운산이 기록되어 있다. 당시 마을 주민들은 산의 봉우리가 둥글고 그 흙빛이 검어 두리봉과 거멍산이라 부른다고 기록하였다. 지맥은 거멍산을 지나자마자 급좌틀로 급사면을 내려선다. 지맥길은 오른쪽으로 약간 돌아서서 내려서지만 질러가는 지름길도 있다.
♤ 안내천/ 인포천(仁浦川)/ 화인진(化仁津)
거멍산(두루봉) 서사면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흘러 안내면 인포리(仁浦里)에서 금강 본류에 합류한다. 지명은 하천이 위치한 면 지명에서 유래한 것으로 『여지도서』에 안내면이 처음 등장하는데 『한국지명총람』에는 안내천의 이명칭으로 '인포천(仁浦川)'이 기록되어 있는데, 인포천이란 지명은 하천이 흐르는 인포리에서 유래한 것이다. 인포리는 1914년 전국적인 행정구역 개편 때 기존의 화인리와 걸포리의 한 글자씩을 따서 새롭게 명명한 혼성 지명이다. 조선 시대에는 안내천이나 인포천이란 지명이 쓰이지 않고 주로 '화인진(化仁津)'이란 지명이 통용되었다. 화인진이란 지명은 『세종실록지리지』(옥천)에 "대천(大川)으로는 (중략) 화인진이 군의 동북쪽에 있다."와 같은 문헌(회인)에 "대천은 화인진 하류가 남쪽 지경으로 들어와서 주안현(周岸縣)으로 흘러간다."라는 기록으로 처음 등장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화인진은 고을 동쪽 26리에 있다."와 "화인역은 안읍현 남쪽 5리에 있다.", 그리고 "화인원은 화인 나루의 기슭에 있다."라는 기록이 등장하고 있어 당시 이곳을 화인진이라 불렀고 역원이 존재하는 중요한 길목임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 후기에는 『해동지도』 안내면에 화인진과 화인역이, 『여지도서』에 "화인진은 군 북쪽 26리에 있다. 즉 차탄(車灘) 하류이다.", 그리고 "화인역은 군 동쪽 30리에 있다. (중략) 율봉(栗峯) 소속 역이다." 또한, 안남면에 화인리가 기록되어 있다. 이후 『대동여지도』에도 표기자의 변화 없이 '화인진, 화인역, 화인강진(化仁江津)'이 기록되어 있으며 20세기 초반 문헌인 『조선지지자료』에 마지막으로 '화인진, 화인역, 화인리'가 기록되어 있다가 1980년 대청댐 완공으로 화인진이 수몰되고, 화인역의 흔적 또한, 사라지게 되었다.
♤ 335m봉/ 군면리계/ 삼리봉(옥천군 안내면 방하목리, 보은군 수한면 광촌리 → 거현리)
임도를 지난 문티재를 내려서기 직전 얕은 능선봉으로 지맥의 오른쪽이 수한면 광촌리에서 거현리로 바뀌는 삼리봉이다. 아래로는 문티터널이 지난다.
♤ 보은군 수한면 거현리(巨峴里)
수한면 거현리는 긴 산줄기가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이 산줄기의 고개가 높다하여 거리고개 또는 거현이라 하였으며 보은의 3대 명산 중 하나인 금적산(652m) 정기를 받은 덕대산(573m) 기슭에 자리잡아 북(北)으로는 광촌리, 묘서리, 동(東)으로는 삼승면 선곡리, 남(南)으로는 옥천군 안내면 동대리와 서(西)로는 방하목리와 접해있다. 400여년 전 화순최씨 문중이 자리 잡아 살게 된 것이 마을의 유래가 되었고, 마을입구에는 100년된 거현교회가 있어 마을의 오랜 역사와 함께 마을 주민에게 신앙과 문명개화에 많은 공헌을 했다. 거현2리 느티나무는 언덕 위에서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다. 나무둘레는 5.7m이고 높이는 22m이며 수령은 480년 정도로 추정된다. 1982년도 8월에 군 보호수(10호)로 지정됐다. 문티재로 연결되는 국도가 지금처럼 나지 않았을 때는 아래 문티마을 느티나무 있는 곳으로 소로가 나 있었다. 보은사람들이 옥천 안내장을 보러가고, 안내사람들이 보은장을 다닐 때 마을 둥구나무 옆으로 난 길을 오갔다. 지금의 신작로보다 질러가는 길이어서 걸어다니는 사람들이 이 길을 오갔다. 차편이 귀해 걸어 다니는 사람 천지였던 옛날, 주변은 넓지 않지만 큰 바위가 놓여있어 쉬기에 충분하다. 거현2리 주민들에게 느티나무는 고향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마을의 상징이다.
경주 이씨 묘지에서 마루금은 오른쪽이지만 왼쪽길로 내려서야 잡목숲을 피해 수월하게 내려섭니다. 금적지맥 중간 정도이고 마지막 물 보충지입니다. 여기서 반드시 물을 보충해야 합니다.
♤ 문티재(文峙, 320m)/ 구37번국도/ 동진휴게소, 모텔/ 안내보은로/ 군면리계/ 옥천군 안내면 - 보은군 수한면
옥천군 안내면 방하목리 가래치와 보은군 수한면 거현리 상문치를 잇는 경계로 옥천-보은간 37번 국도가 덕대산을 휘감으며 고개를 지나는데 고개 아래로 터널이 뚫려 차량통행은 뜸한 편이다. 보은군 자료에는 문티(文峙), 문치령(文峙嶺)이나 옥천군 자료에선 문티(問峙)로 기재되어 있다. 조선지지자료에는 "문치(文峙)는 수한면 문치리에 있다."와 문치주막(文峙酒幕)이 기록되어 있어, 이 고개로 사람들의 통행이 잦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편, 『한국지명총람』에는 '문티재'의 다른 명칭으로 '문티령'이 기록되어 있으며, 문티재 동사면으로 상문치와 하문치라는 촌락 지명과 문티벌이라는 지명이 분포한다. 덕대산까지 1.58km로서 토성을 걷는 듯한 편안한 능선길에 굵직굵직한 소나무가 울창한 송림을 이루고 있다. 문티재에서 250여m의 고도차를 극복하며 덕대산으로 오른다. 들머리는 동진휴게소 건너편 '등산로 입구'라고 써있는 양회임도를 따라가다가 오른쪽 사면으로 오른다.
♤ 416.8m봉/ 군면리계 삼리봉(보은군 수한면 거현리, 옥천군 안내면 방하목리 → 동대리)
비교적 편안한 등로를 따른다. 416.8m봉 오르기 직전 지맥의 오른쪽이 방하목리에서 동대리로 바뀐다. 준희선생님 산패가 참나무에 매어 있다.
♤ 540m/ 산불감시탑/ 전망대
문티재에서 30분 오르면, 대청호를 굽어보는 전망대임을 알리는 작은 표지판이 정상을 바라보는 쪽으로 세워져 있는데 조망은 별로다. 이 봉우리는 덕대산장, 육각정 등과 이어지는 갈림길이다.
전망대에서 30여 분 더 올라서고 지맥길은 정상석 뒤편으로 향합니다. 덕대산을 지나 금적산을 향하는 구간이 지루합니다. 상당히 길게 느껴지네요.
♤ 덕대산(德垈山, 575.1m)/ 덕대산성/ 군면리계/ 보은군 수한면 거현리 - 옥천군 안내면 동대리
참나무에 준희선생님 산패가 매어 있고 백두사랑산패도 물푸래나무에 매어 있다. 평지와 비슷한 풍경의 정상에 커다란 묘지 1기가 있다. 덕대산은 옥천군 안내면의 북동부에 솟은 옥천 안내면의 명산이나 키큰 나무들이 다 가려서 조망이 없다. 덕대산의 원래 이름은 '덕대산(德大山)'이다. ‘해동지도(海東地圖)’ (보은)에 보은군 서니면과 옥천군의 경계에 있는 산이라는 설명과 함께 '덕대산(德大山)'이란 이름으로 기록된 게 근거이다. 또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와 ‘한국지명총람(韓國地名總覽)’에도 ‘덕대산(德大山)은 안내면 도율리에 있다.’와 '덕대산(德大山)'이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근래에 이르러 '대(大)' 자를 '대(垈)'로 표기한 기록들이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꽤나 너른 정상에는 아담한 정상표지석 말고도 등산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이곳 덕대산은 보은군과 옥천군의 경계에 놓여있는 산이다. 지맥길은 좌틀하여 정상석 뒤편으로 급하게 꺽여 내려선다.
♤ 덕대산성
옥천군 안내면과 보은군 수한면과 접하는 573m의 덕대산 정상에 위치하며 타원형의 퇴뫼형 토성으로 둘레가 약 150m이다. 덕대산성은 동쪽에 있는 고개인 동대리 쓰리마을에서 보은을 넘어가는 고개를 경계하기 위하여 축성한 것으로 다른 성들과 비교하면 망루형태의 보루형 산성으로 여겨진다.
♤ 알바주의/ 김녕김씨묘
덕대산에서 동쪽 능선길을 7분 정도 내려서면 독도주의 지점인 처사 김령김공병권지묘가 나온다. 무덤을 내려가며 오른쪽 끝의 망주석 아래로 산길이 이어진다. 왼쪽 비석이 바라보는 전면으로 직진해서 내려서면 알바다. 묘를 축조하기 위해 만든 임도형 길이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묘를 지나 급하게 내려서면 왼쪽으로 벌목지가 나오고 가야할 능선과 금적산이 바라보인다. 조망이 트이는 곳에서 속리산 주능과 구병산도 조망된다.
♤ 서낭당 안부/ 군면계/ 보은군 수한면 - 옥천군 안내면
덕대산 정상에서 능선길을 약 20분 걸어 벌목능선에서 부드럽게 내려서면 양방향 길이 뚜렷하고 돌무더기가 있는 옛 고갯길이다. 왼쪽으로는 보은군 수한면 거현리 방향이고 오른쪽은 옥천군 안내면 동대리 방향이다.
♤ 424.5m봉
성황당고개에서 한고비 치고 오른 봉우리로 준희선생님 산패가 소나무에 매어 있다. 진행방향 왼쪽 급사면으로 중장비가 한창 공사를 벌였다는데 지금은 태양열판넬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 531.8m
준희선생님 산패가 소나무에 매어 있고 정상에 봉분이 납작한 금릉 김씨 묘지가 있다. 우회길인 사면길이 있다. 허리길.... ㅋ
삼면봉 오름은 제법 빡신 오름길입니다.
♤ 삼면봉(544m, 옥천군 안내면, 보은군 수한면 → 삼승면)
낡은 리본 몇 개가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특징 없는 밋밋한 봉우리이지만 옥천군 안내면 동대리와 보은군 수한면 거현리, 삼승면 선곡리의 경계를 이룬다. 지맥의 왼쪽이 수한면에서 삼승면으로 바뀌는 지점이다. 이곳에서는 길 찾기에 주의가 요구된다. 왼쪽 수한면과 삼승면 경계를 이루는 지능선으로도 제법 또렷하게 산길이 나있기 때문이다. 마루금은 오른쪽 안내면과 삼승면이 경계를 이루는 능선으로 이어진다. 삼면봉에서는 그냥 위로만 올라가는 모양새이다. 그것도 제법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 보은군 삼승면(三升面)
충북 보은군의 남부에 위치한 면으로 금강 수계인 오덕천이 면의 남부를 관류하다 천남리 부근에서 보청천으로 유입되는데 면의 서부와 남부에는 금적산과 삼승산이 있으며 그 사이로 넓은 들이 펼쳐져 있다. 보은읍과 청산면을 잇는 19번 국도가 면의 중앙을 지나고 있으며, 송시열 유허비가 있다. 현재 원남리, 내망리, 탄금리, 달산리, 송죽리, 선곡리, 천남리 등 11개 법정리를 관할하고 있다. 지명은 관내에 있는 삼승리와 삼승산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며, 조선 후기의 고문헌과 고지도에도 발견되는 면 지명으로 생성 역사가 길다. 현재의 면은 조선시대 보은현 삼승면과 서니면 지역이었다. 조선시대 삼승면은 『여지도서』에 각동리, 삼승리, 석남리 등 9개 리를, 서니면은 송죽리, 황토리, 사각리 등 13개 리를 관할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각 동리마다 관문으로부터의 방향과 거리, 편호, 남녀 인구가 기록되어 있다. 『해동지도』, 『동여도』, 『1872년지방지도』에 모두 삼승면과 서니면이 표기자 변화없이 기록되어 있다. 『신구대조』에는 삼승면을 포함하여 서니면의 10개 리와 옥천군 안내면 오산리의 일부를 통합하여 삼승면이라 하고 11개 리로 개편된 사실이 기록되어 있으며, 현재 면소재지는 원남리이며, 1989년에 옥천군 안남면의 오덕리 일부를 원남리에 편입하였다고 한다.
지맥은 스테인레스파이프가 쳐진 무덤으로 들어서서 우틀로 꺾어서 내려섭니다.
♤ 634.4m/ 무덤봉/ 삼리봉(옥천군 안내면 동대리, 보은군 삼승면 선곡리 → 서원리)
삼면봉에서 고도차 100m를 끌어올리려 약 20분을 치고 오른 봉우리이다. 준희선생님 산패가 참나무에 매어 있다. 정상에 스텐레스원형파이프로 둘러쳐진 봉분이 큰 묘지 1기가 자리하고 있다. 왼쪽으로 이어진 산길은 서원1리 감나무골로 이어지는 능선으로 동절기 미끄러움을 감안하여 설치해 놓은 듯 굵은 로프가 매어져 있다. 명당(明堂)자리 일런가 우틀로 꺽어 내려서니 폐헬기장 아래 또 묘지가 나온다.
커다란 묵묘를 통과하면 준희선생님 힘힘힘 응원메시지가 나온다. 금적지맥을 종주하시는 산님들 힘힘 내세요!
♤ 삼승면 서원리(西原里) 갈림길 이정표
보은군 삼승면에 속해있는 서원리는 남북으로 금적산이 뻗어 있으며 오덕천이 흐른다. 마을 주민의 대다수가 과수재배를 하는 농촌 마을로 자연마을로는 배나무골(이동), 감나무골(시동), 신촌(학교촌), 웃말 등이 있다. 배나무골은 마을 앞에 큰 배나무가 있고, 감나무골은 감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서원은 조선 현종 때 우암 송시열의 아우인 세한재 송시도가 일경당이란 서숙을 건립하고 강학했다 하여 학교촌이라고도 부른다. 서원리는 본래 서원이 있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서쪽의 언저리라는 뜻에서 생긴 지명이라고도 한다.
♤ 보은군 삼승면 원남리(元南里)/ 소재지
원남리(元南里)는 삼승면의 남쪽에 위치하며, 금적산 아래 금송아지 꼬리 부분에 있다. 시골 장터의 모습을 간직한 채 과수와 미곡을 주업으로 살아가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워내미, 송방뜸, 온배미 등이 있으며 워내미는 원남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원남리가 변한 이름이다. 송방뜸은 은진송씨의 집성촌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온배미는 지역적으로 밤에도 따뜻한 곳이라는 뜻이다. 고려시대부터 원남역이 설치되어 있어 원남이란 지명이 생겼다. 특산물로는 황토사과가 있고, 문화유적으로는 우암 송시열선생 유허비가 있다.
조망이 좋아 삼승면과 보은읍이 한눈에 들어오네요. 금적산을 내려서며 노성리고개에서부터 걸어온 옥천과 보은의 경계와 헤어지고 좌우 완전하게 옥천군 안내면으로 들어서서 안내면 동대리와 오덕리의 경계를 따릅니다.
♤ 금적산(金積山, 651.9m)/ 1등삼각점(보은 11/ 1983 재설)/ KBS방송국통신탑/ 평상/ 군면리계/ 삼리봉(보은군 삼승면 서원리, 옥천군 안내면 동대리 → 오덕리)
금적산은 보은군 삼승면 서원리에 위치하여 남으로 삼태기 모양처럼 길게 뻗은 속리산과 구병산 사이에 위치해 있다. 정상에서 동쪽으로는 속리산의 주봉인 천왕봉과 구병산이 한눈에 들어오고, 서쪽으로는 웅장한 대청호반과 장계국민관광지, 북쪽으로는 보은군의 넓은 평야지대가 발 아래로 내려다 보인다. 삼승산 너머로 팔음지맥의 천택산과 팔음산도 조망된다. 산 정상에는 봉수대 흔적이 남아있는데 옥천군 청산의 박달라산에서 연락을 받아 북쪽의 용산점 봉수대로 전하는 봉수였으며(도덕봉과 천왕봉을 매개했다.) 조선시대에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금적산에는 충북 남부지역을 수신범위로 하여 TV, FM라디오, 지상파DMB방송을 서비스하는 방송 송출 중계소가 있으니 예나 지금이나 소식을 주고받는 기능에는 변함이 없어 보인다. 금적산은 예로부터 전 국민이 3일간 먹을 수 있는 보배가 묻혀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보은군에는 보은 삼산(三山)이라 불리는 세 개의 명산(名山)이 있다. 지아비산(夫山)이라 불리는 속리산(천왕봉)과 지어미산(婦山)인 구병산, 그리고 그 둘을 부모로 둔 아들산(子山)인 금적산이다. 하지만 부모와 자식이라는 설정에 어울리지 않게 금적산의 산세(山勢)는 완전히 딴판이다.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바위로 이루어진 두 산과는 달리 금적산은 전형적인 육산(肉山)이다. 또한 금적산에는 애처로운 옛 이야기 하나가 전해져 내려온다. 주인공들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여느 전설(傳說)과는 달리 비극적인 결말이 특이한 이야기이다. 오랜 옛날 이 산에는 금송아지와 금비둘기가 살고 있었다. 금송아지는 금비둘기를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 산기슭에 밭을 일구어 금비둘기가 좋아하는 여러가지 곡식을 가꾸었다. 양지바른 곳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바위아래 옹달샘을 파서 보금자리를 마련한 후 금비둘기에게 청혼하여 둘은 결혼을 하여 내외가 되었다. 금송아지와 금비둘기는 누구나 부러워하는 금슬좋은 한쌍의 부부로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해 불행하게도 금송아지는 밭을 갈다가 넘어지는 바람에 두눈이 멀고 말았다. 그 후 금비둘기는 눈먼 남편을 위하여 열심히 봉양하였으나 금비둘기의 벌이로서는 도저히 금송아지를 충족히 먹일 수가 없었다. 그렇게 몇해가 지나자 아내인 금비둘기는 차차 남편 섬기기가 고통스럽게 느껴져 자연히 짜증을 냈고 둘은 자주 다투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하루종일 남편을 위해 식량을 물어나르던 금비둘기는 마침내 "나두 이젠 도저히 못참겠어요. 당신을 위한 희생도 하루 이틀이지 허구헌 날 날개쭉지가 빠지도록 양식을 물어 날라도 배가 고프다고 아우성이니 이젠 정말 지겨워 못살겠어요. 난 나대로 갈 것이니 당신도 당신대로 살길을 찾아보세요" 하고는 금송아지가 울면서 붙잡았지만 매정하게 뿌리치고는 어디론지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앞을 보지 못하는 불쌍한 금송아지는 그 후 산기슭을 헤매며 아내를 부르다가 지친 나머지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 뒤부터는 금송아지가 죽은 산을 금적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금송아지가 죽을 때 머리는 북쪽으로 두고 꼬리는 남쪽으로 향하였기 때문에 지금도 꼬리 쪽인 옥천군 안내면 오덕리에는 사금(砂金)이 많이 나오고 머리가 있는 북쪽인 보은군 삼승면 서곡리에는 부자(富者)가 많이 난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후 직진은 일반등산로이고 지맥은 삼각점에서 우틀로 꺾으며 금적지맥을 따라 서릉으로 풀숲을 헤쳐야 한다. 정방재까지 임도도 건너고 짧게 오르 내리며 길게 내려선다.
♤ 옥천군 안내면(安內面)
1973년 7월 1일 행정구역 개편으로 용호리, 막지리를 군북면에, 군북면 장계리를 안내면에, 안남면 오덕리와 인포리를 안내면에 편입시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안내면의 동쪽은 보은군 삼승면에, 서는 군북면과 보은군 회남면에, 남은 안남면과 군북면에, 북은 보은군 수한면에 접한다. 1973년 행정구역개편 이후 답양리, 도율리, 도이리, 동대리, 방하목리, 서대리, 오덕리, 용촌리, 월외리, 인포리, 장계리, 정방리, 현리 등 13개 리(里)를 관할하고 있다. 산지와 골짜기가 면소재지를 둘러싸고 있으며 서쪽 금적산이 최고봉이다. 면의 중심부로 안내천이 흐르며 하천유역의 넓은 평지에는 밭농사지대가 발달되어 있다. 과수재배와 밭농사를 주로 하는데 지역특산물로는 옥천 포도가 전국적으로 유명하며 옥수수와 감자, 복숭아를 많이 재배한다. 37번 국도가 남북으로 관통하여 보은과 옥천읍으로 이어지며 유적지로는 의병장 조헌을 추모하는 사당인 후율당이 있고 대청호 인근의 장계관광지가 유명하다. 안읍의 지명유래는 아동혜와 같은 의미를 가지는데, 아(阿)는 ‘수(首)’의 뜻이고 동(冬)은 ‘읍(邑), 또는 고을’의 뜻을 가진다. 그러므로 안읍은 수읍(首邑), 즉 고대부족국가의 통치자가 있었던 고을이라는 ‘왕읍(王邑)’의 뜻을 가진다. 본래 신라 지증왕 6년(505년)에 아동혜현이라 부르다가, 경덕왕 16년(757년)에는 안정현(安貞縣)이라 고치고, 관성군에 부속시켰다가 고려 현종 9년(1018년)에 안읍현(安邑縣)이라 하여 경산부에 부속시킨 후 조선 태종 13년(1413년) 안읍현의 읍내에 있다 하여 안내면이라 고치고 옥천군에 속하게 하였다. 조선시대에 안읍은 옥천의 동북쪽에 위치하여 보은과 접하고 있었으며, 이곳에 안읍창(安邑倉)이 있었고, 문치(文峙)를 넘어 보은에 이르렀다. 동쪽으로는 마달치(馬達峙)를 지나 청산(靑山), 남쪽으로는 화인역(化仁驛)을 지나 옥천과 이어졌다. 안읍은 금강의 지류가 만드는 산간분지로 백두대간의 서쪽 사면을 종단하는 교통상의 요지였다. 당시에는 충주에서 괴산을 지나 호남지방에 이르는 산간도로가 발달하였다.
♤ 옥천군 안내면 오덕리(五德里)
오덕리는 원래 안남면(安南面)에 속하여 있었고 안덕리(安德里)와 오산리(五山里)가 합하여진 마을이다. 안내면 오덕리는 옥천군에서 가장 높은 고지대로써 금적산 아래에 있어서 골짜기가 많으며 마을 앞으로는 오덕천이 흐른다. 오덕소류지가 있는 농촌마을로 자연마을로는 개무티(거무티), 신촌, 안덕, 안지목, 팽정(길목) 등이 있다. 개무티는 개무티 고개 아래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고 신촌은 새로 생긴 마을이다. 안지목은 옛날 안씨가 처음 들어와서 살 때 못을 파고 농사를 지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팽정은 팽나무 정자가 있었다고 하여 생긴 지명이고, 옛날 서울로 가는 길목이었다 하여 길목이라고도 부른다. 마을 사람들이 팽정을 큰길이라 부르는데는 이유가 있다. 중봉 조헌 선생이 청산과 청성에서 모인 의병을 이끌고 보은으로 가기위해 택한 길이 바로 마을 뒷길이었다고 한다. 첫전투를 치르러 가기 전날 팽정에서 하루를 묵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왜적과 맞서는데 요긴하게 쓰인 길이니 또한 큰길이라 불러 마땅하다고 마을 사람들은 생각하고 있었다. 문화유적으로 조천성이 있다.
♤ 532.5m봉
준희선생님 산패가 소나무에 매어 있다. 왼쪽으로 우회 사면길이 있어 스쳐지나기 쉽다.
♤ 460.7m봉
준희선생님 산패가 나무에 매어 있다. 이 봉을 지나자마자 갈림길이 나오는데 잘 살펴보면 오른쪽에 시그널이 많다. 급경사의 내리막길이 기다리고...
♤ 320m봉/ 삼리봉(옥천군 안내면 오덕리, 동대리 → 도이리)
삼리봉인 320m봉에서 지맥의 오른쪽이 안내면 동대리에서 도이리로 바뀌어 건부랑재로 내려선다.
♤ 건부랑재/ 양회임도
양회임도를 만나고 바로 숲으로 들어가지만 왼쪽으로 계속 양회임도가 따라온다. 오른쪽은 옥천군 안내면 오덕리 안덕마을로 내려갈 수 있고 산기슭 아래에 밭이 조성되어 있다. 반대편으로 안내면 도이리 도리골마을로 내려가는 흐린길이 있다.
♤ 346.5m봉/ 삼리봉(옥천군 안내면 오덕리, 도이리 → 정방리)
희미한 길을 올라서니 준희선생님 산패가 벚나무에 매어 있다. 지맥의 오른쪽이 안내면 도이리에서 정방리로 바뀌며 지맥길은 왼쪽의 희미한 길로 진행한다.
방향을 틀어 정방재로 마지막 내려서는 부분 아카시아와 가시나무 잡목숲을 통과해야 합니다.
♤ 옥천군 안내면 정방리(正芳里)
옥천군 안내면 소재지인 정방리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중앙으로 실천이 흐른다. 정방리(正芳里)라 부르게 된 것은 두 마을을 합하면서 정곡리(正谷里)의 정(正)자와 방곡(芳谷)의 방(芳)자를 한자씩 합하여 정방리(正芳里)라 하였다. 정곡(正谷)은 정실이를 한자화하면서 “정”을 바를 정(正)으로 “실”은 골짜기란 뜻으로 골곡(谷)을 써서 정곡(正谷)이라 하였으며, "정실"이란 이 마을에 처음 들어와 정착을 한 사람들이 연일정씨(延日鄭氏)이었기 때문에 “정실”이라 부르게 되었다고도 하며 또는 정실이는 금적산 줄기가 뻗어서 이루어진 명당이라고 하며 정곡과 방곡의 이름을 따서 정방리라 하였다. 산이 곧게 내려왔다는 뜻에서도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마을에 정현준의 처 전주최씨열녀문이 있다. 방곡(芳谷)은 “방골”이라 불리었는데 고려 때 늑천 안선생이 이곳으로 귀양을 와 움막을 짓고 살다가 돌아가게 되면서 이곳 주민들이 인정 많고 덕성스러움을 길이 남겨놓기 위하여 덕행지미(德行之美)란 뜻으로 덕성스러울 방(芳)자와 골곡(谷)자를 써서 방곡(芳谷)이라 하였다 한다. 방곡은 도울 방 내칠 방 꽃다울 방자를 쓰기도 하였다고 한다. 방곡에서 동쪽 오덕리로 넘는 듬재(斗音峙)가 있다. 자연마을로는 광무니, 방꼴(방곡), 정실이(정곡, 증시리) 등이 있는데, 광무니는 전에 광무니 주막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문화유적으로 전주 최씨 열녀문, 정방리 1호,2호 고인돌이 있다.
금적지맥 약 2/3지점이고 여기서 남은 거리 약 20km 입니다. 식수 없이는 완주 불가입니다. 지도상으론 왼쪽(오덕리)으로 멀지않은 거리에 인가가 있습니다.
♤ 정방재(正芳峙, 240m)/ 듬재(斗音峙)/ 듬치재/ 틈티/ 안내삼승로/ 502번 지방도로
옥천군 안내면 오덕리와 정방리의 경계로 안내면 소재지와 삼승면을 잇는 도로가 지나 교통량이 생각보다 많은 편이다. 502번 지방도로는 충북 보은군 회남면 거신교 동단과 옥천군을 거쳐 보은군 탄부면 탄부 교차로를 잇는 충북의 지방도이다. 도로를 가로질러 임도로 오른다.
정방재는 차량 통행이 많은 편입니다. 퍼질러 앉아 배낭을 정리하는 데에도 차가 여러 대가 지나가는군요. 트럭아저씨 한분이 태워주십시요 했더니 그러슈~ 하시네요. 장계교를 건너 옥천 구읍을 지나 육영수여사생가앞 로터리까지 데려다 주시며 여기서 저리 걸어가면 옥천시내라고 알려주시네요. 배가 고파 묵집에 갔더니 브레이크타임이고, 손두부집에 갔더니 옛날 간판이고 한식집이랍니다. 바로 옆이 정지용생가터이군요. 옥천시내에 가서 먹자 하고 삼거리를 지나 걸었습니다. 오늘이 5일장인 옥천 장날이라 장터도 한바퀴 돌아보았습니다. 역에서 대충 발을 닦고 세수를 하고 17시발 열차에 올라탔습니다.
여기에서 맥은 오른쪽 뚜렷한 등로를 버리고 직진의 숲속으로 들어서서 좌틀로 꺽어 조천산성을 지나 큰음달산으로 향합니다.
♤ 357.5m봉
오른쪽 능선이 마루금이지만 편리상 임도를 따른다. 듬재(斗音峙)에서 약 20분 올라서니 덕대산에서 금적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보인다. 357.5m봉을 찍고 다시 되돌아나온다. 여기서 지맥이 왼쪽으로 꺾어서 내려서는데 길이 안보인다. 오른쪽의 뚜렷한 등로를 버리고 직진하여 숲속으로 들어서서 선답자의 시그널이 보이는 쪽으로 내려선다. 덕대산 왼쪽으로 눈에 뜨이는 뾰족하게 보이는 봉우리는 옥천군 안내면에 있는 가재봉(488m)이다.
금적산에서 안내면 내안을 지나온 지맥은 여기에서 다시 안내면의 면계로 올라서고 삼승분맥분기봉인 삼면봉까지 옥천군 안내면과 안남면의 경계를 따릅니다.
♤ 410m봉/ 면계/ 삼리봉(안내면 오덕리, 정방리 → 안남면 도농리)
15분 진행하여 하마산이 갈리는 면계에 올라선다. 오른쪽으로 뚜렷한 등로가 보이나 지맥길은 좌틀로 내려선다. 오른쪽으로 진행하면 하마산갈림봉(378.8m)이 나온다.
♤ 하마산(下馬山, 349.8m)
중봉 조헌선생의 묘소와 신도비 그리고 영정과 위패가 모셔져 있는 표충사 등이 자리하고 있는 안남면 도농리 뒷산으로 산이 높고 험해서 산을 산을 넘으려면 말에서 내려 걸어서 넘어야 했다고 해서 불리어졌다는 하마산은 유래만큼이나 험준한 산세를 갖추고 있진 않지만 전형적인 동네 뒷산의 든든한 울타리 같은 편안함을 주기에 충분하다. 하마산을 오를 수 있는 등로는 정방리와 화학리 마느실, 화학리 농암저수지, 도농리 등 여러곳이 있다. 능선에 돌무더기들이 엉켜있는 화학성지가 있다. 안남면 화학리에 위치한 화학성지는 규모는 그리 크지않을 뿐더러 성에 대한 기록 또한 남아있지 않아 어느 때 어느 나라에서 쌓은 것인지 정확한 자료는 알 수 없지만 쌓은 방법이나 성내에서 출토되는 각종 토기편, 기와편이나 성이 쌓아진 방향등으로 추이해 볼때 신라, 백제간의 뺏고 빼앗기는 역사의 현장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주민들은 이곳을 성재라고 부른다. 성재에 올라 바라보면 안내면 소재지를 비롯 동대리, 정방, 도율리까지 눈에 잡힐 듯이 보이고 대청호의 수면이 그림같이 펼쳐진다.
♤ 옥천군 안남면(安南面)
옥천군 북쪽에 있는 면으로 동쪽은 청성면(靑城面), 서쪽은 안내면(安內面)과 접하고, 남쪽은 금강(錦江)을 경계로 동이면(東二面)과 마주하며, 북쪽은 안내면 및 보은군 삼승면(三升面)과 이어진다. 고려 때는 안읍현에 해당하던 지역으로 현의 남쪽에 있다 하여 안남면이라는 지명이 붙었다. 조선말 지방관제 개편에 따라 20개 리를 관할했으며, 1914년 10개 리로 줄어든 뒤 1973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오덕리와 인포리를 편입하고 현재 7개 리를 관할한다. 1990년 오대리를 옥천읍에 편입시켜 오늘에 이른다. 동쪽 경계에는 국사봉(國師峰:400m) 등 해발고도 300∼400m의 산지가 뻗어 있고, 북쪽 하마산(下馬山) 기슭에 있는 안남저수지의 수로를 따라 넓은 침식분지가 발달해 있다. 금강으로 흘러드는 안남천이 면의 중심부를 지나며, 전형적인 산간분지인 연주리(蓮舟里)는 도농리(道農里)와 함께 벼농사가 활발하고 찰옥수수와 감자, 복숭아, 인삼을 많이 재배한다. 면 일원에서 느타리·오이·토마토 등 시설채소가 많이 재배되는데, 이중 느타리는 군서면과 함께 옥천군의 대표적인 산지로, 대전광역시 오정동 공판장에서 시세를 좌우할 정도로 인정받고 있는 특산품이며, 그밖에 충청북도 보리재배단지로도 각광받고 있다. 제조업은 활발하지 않으나, 동, 서, 북쪽은 산지로 둘러싸여 있고 남쪽은 금강으로 막혀 있는 지역이다. 금강을 건너가는 청마대교를 통해 외부와 연결되며 서쪽으로 575번 지방도가 유일한 길로 교통이 불편하다. 서부 지역으로 보은(報恩)~금산(錦山) 간 국도가 지나고 있어 옥천읍과 대전광역시 방면의 교통은 편리하다. 문화재로는 중봉 조헌 신도비(重峯趙憲神道碑:충북유형문화재 183), 경율당(景栗堂:충북유형문화재 192), 조중봉 묘소(趙重峰墓所:충북기념물 14), 독락정(獨樂亭:충북문화재자료 23), 덕양서당(德陽書堂:충북문화재자료 24), 조천성지(助川城址), 화학리 성지(禾鶴里城址), 강릉유씨 효부비(江陵劉氏孝婦碑) 등이 있고, 그 밖에 청정리·도덕리 등에 선돌[立石]이 산재해 있다.
♤ 옥천군 안남면 도농리(道農里)
도농리는 원래 농막리라 하다가 도성(道城)과 합하여 도농리가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정비 때 도성(道城)과 농막(農幕)을 합하여 도농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농막은 약300여년 전에 마을이 형성되어 용계(龍溪)라 부르다가 농사를 많이 짓는 마을이라 하여 농막이라 부르게 되었다. 안남면 도농리는 평지에 위치하여 들이 넓으며 농암저수지가 있다. 벼농사를 주로 하는 전형적인 농촌마을로 자연마을로는 도성(되재,도티,장촌), 소야(우야), 안말(내촌,황촌), 용계(농막,율정) 등이 있는데 도성은 마을 뒤에 성재가 있으므로 붙여진 이름으로, 처음에 장씨(張氏)가 들어와서 살았다 하여 장촌이라고도 하며 소야는 동쪽에 와우형의 명당이 있다고 하여 우야라고도 한다. 도성은 마을 뒤에 삼국시대의 성터가 있어 성재라 부르다가 되재라고 불러왔는데 한자화 하면서 “되재”를 도성(道城)으로 쓰게 되었다. 되재 주변에는 성재, 밤골재, 삿갓봉, 매봉재, 비루방이 있고 되재 앞 하마산에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 중봉 조헌선생묘소와 표충사, 중봉선생 신도비가 있고 싸리재 입구엔 하마비(下馬碑)가 있다. 농막과 소야 사이에 있는 황촌(黃村)은 장수황씨가 살기에 황촌이라 불리우고 주변에 참나무골, 불탄 터, 응국이, 마름터, 말랑고개, 구렁터, 행낭, 행계, 낙끝자리 등이 있고 마을 어귀에 1998년에 세운 청송심씨 효열비(靑松沈氏 孝烈碑)가 있고, 전주이씨 효열비가 도성마을 어귀에 위치한다. 소야는 마을뒷산 고개가 소의 형상과 같아 재의 이름도 질마재라 하고 소가 누워있는 들이라 하여 우야(牛野)라고 하다가 140여 년 전부터 소야(蘇野)라 부르게 되었다. 소야 주변에는 질마재, 세발, 안산, 말묵재, 번돈, 큰골, 꾀꼬쟁이. 끙개날, 송장나무골, 왕재, 만딩이멧날, 골냄이재, 배나무송골, 백정멧날, 깨진박골, 홍두깨날, 호랭이굴, 광대밭골, 주골, 응고개, 중뫼산, 병풍쟁이들, 숯꽂이들, 덕공제들, 참나무쟁이들이 있으며 소야저수지는 1967년 축조되었다.
♤ 성재산(425.8m)/ 조천산성(助川山城) 표석
옥천군 안남면 도농리와 안내면 오덕리 사이 성재산에 위치한 삼국시대 퇴뫼형 석성으로 둘레 약 460m이다. 정상부를 중심으로 동서로 긴 불규칙한 타원형 산봉의 산성으로 산성의 동.서 부분은 석축이고 나머지 구간은
토축 성벽으로 구간별로 축성 기법이 다른데 남쪽 성벽은 토루의 흔적이 확인되며, 폭은 약 5m로서 2~4정도
있고, 산성 정상에 오르면 안내면과 안남면이 한 눈에 들어오고 있어 적을 방어하기 위해 유리한 위치에 있다.
이 성은 옛날 기록이 한 군데도 나타나 있지 않아 성의 이름이나 어느 때 어느 나라에서 축성했는지 알 수 없으나 성의 축성방법이나 방향 등으로 살펴보아 삼국시대 백제계 성으로 추측할 수 있다. 다만 조천성이라는 이름은 이곳 노인들이 이 성을 가르켜 부르는 말이며 이 산을 성재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큰음달산(426.9m)/ 여수울단맥분기점
조천산성 표석을 지나 평평하게 오면 지나는 능선봉으로 오른쪽 아래로 사면길이 있어 지나치기 쉽다. 안부에서 묵은밭으로 올라서면 잡목은 없다. 백두사랑산악회 산패에는 큰달음산으로 표기가 되어 있다. 지맥은 직진이다.
♤ 여수울단맥
여수울단맥은 한남금북 금적지맥이 금적산을 지나 듬치재(정방재)에서 올라간 큰음달산(426.9m)의 어깨(410m)에서 서쪽으로 분기하여 옥천군 안내면과 안남면의 경계를 따라 378.8m봉(하마산 갈림봉), 여수울산(361.0m), 학촌고개(도로), 238.1m봉을 지나 임도고개(인포)에서 305.4m봉, 376.5m봉, 366.0m봉(인포리산성), 224.5m봉을 지나 옥천군 옥천읍 오대리 오류마을 금강변에서 끝나는 약 12.3km의 산줄기를 말하며 송전철탑(#42)에서 점촌고개, 둔주봉(382.7m)을 지나 고성 금강 대청호변 독락정으로 내리기도 한다.
♤ 411.2m봉
우틀로 꺽어서 급경사로 안부로 내려서는데 멋진 조망처가 나온다. 장령지맥 마지막에서 금강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으로 바라보는 둔주봉과 하마산이 전면에 보이고 그 너머에 식장지맥에서 흘러내리는 환산도 조망이 된다.
♤ 360.4m봉
안부에서 다시 올라선 봉우리이다. 커다란 상석만 있고 봉분이 없는 통덕랑 하동정공 묘지를 내려선 안부에서 살짝 올라 왼쪽으로 꺾어 고만고만한 봉을 지나왔다. 직진으로는 옥천군 안남면 도농리 도재와 농암저수지로 이어지는 뚜렷한 능선이 보이나 지맥길은 이곳에서 급하게 좌틀로 꺽어 내려서야 하는데 무성한 잡목으로 인해 등로가 보이질 않는다. 한동안 잡목과 전쟁을 치르며 맥길을 헤쳐간다.
7번철탑 전후로 한여름에는 돌파하기 지난한 칡넝쿨과 찔레꽃 가시나무 군락지입니다.
♤ 싸리재/ 면리계/ 옥천군 안남면 도농리 - 안내면 오덕리
옥천군 안내면 오덕리와 안남면 도농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도농리에서 원남으로 가는 큰길이었던 싸리재 안부를 올라서면 가시덤불지대를 만나 힘들게 헤치면서 간다. 철탑(7번)의 칡넝쿨 터널지대를 지나 7분 정도 진행하면 안내면 오덕리와 안남면 도농리 이정표가 나오고 통신탑 시설물(산악기상관측장비)이 있는 임도를 만난다. 왼쪽 안내면 오덕리, 오른쪽 안남면 도농리 경계의 임도인데 마루금을 오른쪽에 두고 왼쪽 오덕리 방향의 임도를 따르면 임도파, 마루금을 따르면 정통파라 부른다. ㅋ
지맥은 여기부터 청성면 안으로 들어서는 427m봉까지 안남면과 청성면의 면계를 따릅니다.
♤ 삼면봉(495.6m, 안남면, 안내면 → 청성면)/ 삼승분맥분기봉
넓은 사면길이 있다. 직진이 넓은 임도를 버리고 왼쪽 능선으로 올라서면 그저그런 밋밋한 봉우리이다. 삼승분맥은 495.6m봉에서 분기하여 지령고개-신그령-관모봉(581.5m)-여치-삼승산(576.4m)-만수봉 왕복-비조치-울미산-합수점인 보청천에서 끝나는 약 17km의 산줄기이다. 지맥의 왼쪽이 안내면 오덕리에서 청성면 대안리로 바뀌어 맥길은 직진으로 이어진다.
♤ 삼승산(三升山, 576.4m)
삼승산은 보은군 삼승면, 마로면과 옥천군 청산면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보은군 삼승면 내망리는 삼승산의 정기를 받아 판사를 8명이나 배출했다고 하여 팔판동이라고도 불린다. 내망리의 동남쪽에 위치한 삼승산(574.4m)은 세 개의 연봉으로 이어져 있는 지형적 특징 때문에 지역주민들은 삼정승의 기운을 담고 있다고 믿고 있다. 삼각점(573.9m) 옆에 정상석이 설치돼 있는데 실제의 정상은 삼각점에서 50m쯤의 거리를 두고 있는 576.4m 지점이다. 삼승산 유래는 신선 셋이 승천하여 삼승산(三昇山)이라 하던 것을 한자 표기가 바뀌어 삼승산(三升山)이 되었다 한다. 여지도서 보은현 삼승면 삼승리(三升里) 조에 "관문(官門)으로부터 남쪽으로 20리 거리, 호수(戶數)는 28호, 남자는 31명 여자는 42명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현재 천남 3리의 각골 서남쪽인데 일설에는 삼성이(三姓伊)라 부르며, 강씨, 이씨, 신씨 등 세 사람이 터를 잡아 마을을 이루었다는 설도 있다.
♤ 옥천군 청성면(靑城面)
옥천군 중동부에 있는 면으로 조선시대에는 청산현에 속한 곳이었으나 1929년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면 내 삼국시대 유적인 청산과 굴산성에서 한 글자씩 차용하여 청성면으로 부르게 되었다. 지역의 대부분이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금강으로 흘러드는 보청천이 심하게 곡류한다. 면의 동쪽 산계리에 넓은 경작지가 형성되어 있다. 면소재지를 지나가는 505번 도로가 궁촌재를 넘어 영동으로 이어지며 경부고속도로가 묘금리를 통과한다. 문화재로는 5세기 신라시대 토성인 이성산성이 있는데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굴산성'으로 여겨지는 곳이다. 청성의 오래된 이름이 굴산이었다고 전해진다. 1914년까지 청상현(靑山縣)·청산군에 속하다가 1914년 군폐합에 따라 옥천군에 합병된 뒤, 1929년 청남(靑南)·청서(靑西) 두 면을 합병하면서 오늘의 명칭으로 바뀌었다. 동쪽은 청산면(靑山面), 서쪽은 안남면(安南面)·동이면(東二面), 남쪽은 영동군 심천면(深川面), 북쪽은 보은군 삼승면(三昇面)과 접한다. 동쪽의 삼승산(三昇山:574m)·만월령(萬月嶺, 490m)·천관산(天冠山, 445m)을 잇는 산계와 서쪽의 금적산(金積山, 652m)·국사봉(國師峰)·철봉산(鐵峰山, 450m)을 연결하는 두 산계 사이에 하곡평야가 다소 발달해 있을 뿐, 기타 지역은 농경지가 매우 빈약하다. 면 중부에 보청천(報靑川)이 서류하여 금강(錦江)에 합류하나 경지 형성은 미약한 편이다. 전면적의 68.3%가 임야이고, 논이 13.6%, 밭이 7.7%를 차지한다. 밭에서는 콩·팥·메일 등의 잡곡과, 고추·참깨·들깨·담배·인삼 등의 특용작물이 재배된다. 또 최근에는 포도를 비롯한 과수 재배가 늘어나고, 포도연구소가 입주하는 등 농산물 생산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경부고속도로가 면의 남부를 가로지르고, 북부에는 보은∼영동 간 국도가 지난다. 문화재로는 산계리(山桂里) 성지(城址)·고분군, 산계리와 계하리 북쪽에 걸쳐 있는 저점산(猪岾山) 성지, 거포리 사지(巨浦里寺址), 대안리(大安里) 사지 등이 있다.
♤ 옥천군 청성면 대안리(大安里)
청성면에 있는 대안리는 원래 청산현 서면 마장리에 속해있던 마을로서, 대안리라 부르게 된 것은 한재미라 하여 한은 크다는 옛말이고 재는 고개 즉 티를 말하는바 마을 뒤에는 안남면 도농리로 넘어가는 큰 재가 있어 사실은 대티이나, 질마재라 하여 안티라 부르면서, 대티의 대(大)자와 안티의 안(安)자를 붙여서 대안리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이 청산현이 없어지고 옥천군에 소속되면서 서면이 청서면으로 되고 마장리가 이때 도장리와 대안리로 나뉘어 졌다. 마을 뒤로는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처져 산세가 빼어나며 앞으로는 보청천이 흐른다. 밭농사를 주로 하는 농촌 마을인데 자연마을로는 가래골, 골나미, 귀골(귀곡), 아랫귀골(하귀곡), 안재(안티,질마재), 웃귀골(상귀곡), 지령, 평촌 등이 있다. 아랫귀골과 웃귀골은 각각 귀골 아래와 위에 위치한 마을이다. 평촌은 서남쪽 벌판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안티라는 뜻은 `수레를 끌 때 말이나 소등에 안장같이 얹는 제구의 모양을 한 고개와 같다’하여 질마(안), 재(티)라 부르고 있다. 질마재 밑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귀평(貴坪)은 귀골을 귀곡(貴谷)이라 부르고 평지마를 평촌(坪村)이라 부르면서 귀곡의 귀자와 평촌의 평자를 한자씩 취하여 귀평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대안저수지는 1972년 축조되었다. 자연마을로는 질마재, 골래미(골나미), 평지마, 양지마, 가래골, 소목, 잼마, 귀골, 지렁이(지령이) 등이 있다. 문화유적으로 대안리 산성지가 있다.
♤ 도덕봉(道德峰, 543.4m)
도덕봉은 충북 옥천군 청산면 백운리에 소재한 산이다. 도덕봉이란 이름을 가진 산은 전국적으로 다수인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대전시 유성의 도덕봉, 대구시 북구의 도덕봉, 옥천군 청산면 소재지 북쪽의 도덕봉 등이다. 산정부에 봉수대가 있었다(봉수는 남쪽으로 영동(永同) 박달라산(朴達羅山)에 전달되고, 북쪽으로 보은(報恩) 금적산(金積山)에 전달되는 봉수시스템이다.)고 전하지만 지금은 그 흔적이 남아있지 않다. 청산에 있는 마을 치고 도덕봉이 보이지 않는 곳은 없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멀리 톱날능선 속리산(1,058m), 구병산(877m)이 보이고 동(東)의 팔음산(762m), 남(南)의 백화산(903m) 그리고, 서(西)쪽의 삼승산(576.4m)은 몸 굽혀 도덕봉을 향해 경배한다.
삼승분맥분기봉인 삼면봉에서 10여분 진행하면 만납니다. 오른쪽에 다류님 띠지가 보여 내려서는데 곧이어 홀대모 띠지가 있고... 마냥 내려서다가 오룩스 진동이 울려 바라보니 아뿔싸!! 다시 기올르며 띠지도 회수하였습니다.^^
♤ 403.8m봉/ 4등삼각점(보은 434/ 2003 재설)
희미한 능선길 오른쪽에 있어 사면길을 걸으면 놓칠 수가 있다. 준희선생님 산패에 종전에는 영진 5만 지도에 따라 404.4m로 표기되었으나 지금은 신형 403.8m 산패로 교체되어 엄나무에 매어있다. 지맥은 좌틀이다. 403.8m봉을 내려서면서 지맥의 후반부 능선이 환하게 바라보입니다.
♤ 안남천(安南川)
안남천은 옥천군 안남면 청정리(淸亭里)에서 발원하여 중앙의 들판을 가로질러 도덕리를 지나 연주리에서 금강으로 합류하는 지방하천이다. 금강 수계의 지방하천으로 금강의 제1지류이며 하천연장은 3.6㎞, 유로연장 5㎞, 유역면적 16.18㎢이다. 하천 유역은 임야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고, 비교적 완만한 지세를 나타내고 있으며 하천 상류에는 농암저수지가 위치하고 있다. 하천 중류부는 우안은 주거지 및 상가가 밀집되어 위치하고, 좌안은 농경지로 활용되고 있다. 하상경사는 1/59~1/86으로 경사가 완만하다. 하천 토양은 모래와 자갈로 구성되어 있다.
♤ 387.3m봉/ 능선갈림봉
칡넝쿨이 뒤덮힌 송전탑을 지나 오른 능선갈림봉에서 왼쪽으로 100m 떨어져 있어 잠시 다녀온다. 등로는 비교적 뚜렷하다. 진행하다가 오른쪽으로 조망이 열리며 장령지맥 뒤쪽으로 식장산과 환산의 식장지맥 하늘금이 다가온다.
♤ 성황당고개
묵묘가 있고, 돌이 많이 쌓여 있는 안부를 지난다.
♤ 381.2m봉
우틀로 내려서는 송전탑(60번) 부근의 벌목지가 무성한 잡목지로 변하여 잡목을 헤치며 길마재로 내려선다. 삼승면 건너편으로 삼승산과 관모봉이 조망된다.
♤ 길마재/ 안티고개/ 2차선도로/ 동물이동통로/ 팔각정/ 면계/ 청성면 - 안남면
넓게 형성된 묘지길 따라 5분 내려서면 차선없이 양회임도가 가로지르는 길마재였다. 묘지길은 절개지를 피하면서 오른쪽 사면쪽으로 자연스럽게 길마재로 이어지니 막판 굳이 날등으로 진행할 필요는 없다. 옥천군 청성면 대안리 안재 마을과 안남면 도농리 소야 마을을 잇는 고개로 도농-대안간 도로확포장공사가 진행되었으며 동물이동통로를 조성하였다. 절개지를 올라서면 귀농한 부부가 가꾸는 정우농장을 만나고 이후 490.7m봉까지 길고 가파른 능선을 20여 분 급피치로 올르고, 이후 마루금으로 올라서서 진행한다. 질마재란 고개를 넘을 수 있는 넓은 안부를 말하는데 소나 말의 등에 얹는 길마의 모습과 비슷하다 하여 부르는 이름이다.
♤ 450m봉/ 면계/ 삼리봉(청성면 대안리, 안남면 도농리 → 도덕리)
산패는 없고 선답자님들의 띠지가 대여섯개 매달려 있다. 지맥의 오른쪽이 안남면 도농리에서 도덕리로 바뀌는 지점이다.
♤ 옥천군 안남면 도덕리(道德里)
도덕리는 도근리(道根里)와 덕곡리(德谷里)를 합하여 이루어진 마을이다. 1914년 행정구역을 조정하면서 덕곡리와 도근리를 합하여 도덕리라 하고, 송정리(松亭里)는 청정리(淸亭里)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덕실은 덕양서당(德陽書堂)이 있는 마을로 인평대군의 사부였던 덕곡 유식(德谷 庾拭) 공이 후학을 가르쳤던 곳이며 유석선생 유허비가 있다. 덕이 있는 군자들의 모임인 대동낙원을 꿈꾸었던 마을은 오늘까지 그 맥을 이어 덕이 있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 덕실이라 불리고 있다. 덕실마을 주변에는 갈고개, 모산고개, 구릉고개, 절골, 다락골이 있다. 암수 선돌이 있는 서당골은 상서당, 하서당이 있으며 주변에 새발이, 다락골이 있다. 다락골에는 1935년에 착공하여 1962년에 준공된 누동저수지가 있고 저수지 아래로 덕시구렁, 된쟁이들, 마장들이 있다. 도근이에는 수령 280여년이나 되는 은행나무가 마을의 역사를 지켜보고 있는데, 1982년 보호수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마을앞에는 여흥민씨(麗興閔氏)의 재실인 숭모제(崇慕齋)가 자리 잡고 있다. 도근은 서당골 북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 한양으로 가는 큰길이 있었다하여 길도(道)와 근원이 되는 큰길이라는 자를 써서 도근리라고 하였다. 서당골은 도덕리 서쪽에 있는 마을로 서당이 있었다. 도근이 주변에는 안서당골, 다락골, 승지골, 왜고지들, 횡경재, 중구봉 등이 있다. 홍경재들은 도덕리 앞들을 말하며 옛날 홍경재라는 부자가 살았는데 그들의 땅 이란 뜻이다. 중구봉은 도근이에서 서당골까지 길게 뻗은 산자락을 말하는데 여기에 무송유씨(茂松庾氏)의 선산이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서 지맥은 급우틀입니다. 안부로 내려서서 가파른 매봉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 490.7m봉/ 성터흔적/ 삼리봉(안남면 도덕리, 청성면 대안리 → 구음리)
길마재에서 20여 분 빡시게 올라서고 이후 편안하게 마루금을 따라 올라선 봉우리이다. 도덕봉 너머로 팔음지맥 조망이 있는 봉우리이다. 남쪽으로 우뚝 솟은 서대산(西臺山, 905.3m)도 인사를 건넨다. 오른쪽에 묵묘가 있고 내려서면 짧은 축성 흔적의 너덜지대고 너덜을 지나면 길은 좋아진다.
♤ 옥천군 청성면 구음리(九音里)
구음리는 원래 청산현 서면 황음리에 속해있던 마을로서 후에 거포리와 구음리로 나뉘어 오늘에 이른다. 1929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청서면을 합쳐 하나로 이름 지으며 구비(九飛)의 구(九)자와 황음리(黃音里)의 음(音)자를 한자씩 취하여 구음리라 하였다. 구음1리의 자연마을로는 구비와 숯가마골이 있다. 마을 지명상 신기한 것은 분명 면이라는 행정구역 다른 데에도 불구하고 이곳 구비라는 지명과 안남면 지수2리 수동 마을의 지명 중 하나인 구비와 같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지명인 구비(九飛)란 뒷산의 지형이 비둘기가 날아가는 형국이라 해서 붙었다는 말이 있다. 구음리에서도 수동에서도 모두 뒷산의 지형을 본떠 구비란 지명을 사용하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아홉 구(九)자를 구음리는 뜻을 고려하지 않고 발음만을 취해온 듯한 아쉬움이다. 황음마을 동으로는 적덕을 가지고 온다는 덕고개가 있고, 서로는 불로장생한다는 노방골이 있고 북으로는 말이 오곡을 싣고 온다는 말목재가 있으며 남으로는 보청천이 유유히 흐르고 아암하고 포근한 터전으로 자리잡고 있다. 옛부터 이 마을 입구에는 작은 연못이 있었는데 이 연못에서 말의 울음소리가 아홉번 울기에 동네 사람들이 이상히 여겨 나가보니 옥동자가 강보에 싸여있음을 신기하게 여기고 데려왔다. 후에 이 아이가 자라서 훌륭한 인물이 되었고 연못에서 나왔다하여 지씨(池氏)의 성을 내려 시조가 되어 황음리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으며 약 400년 전 박씨, 이씨, 김씨, 전씨, 유씨, 염씨, 전씨가 모여 마을이 형성되었다. 구음리의 자연마을은 구비, 느름실(황음, 누른소리), 숯가마실(숯을 굽던 마을) 등이 있으며 100년이 넘은 감나무들이 즐비해 곶감 마을로도 알려져 있다. 구음저수지는 1967년 준공되었다.
♤ 안부/ 삼리경계면(청성면 구음리, 안남면 도덕리 → 지수리)
490.7m봉에서 약 10분 내려선 안부로 지맥의 오른쪽이 안남면 도덕리에서 지수리로 바뀌는 지점이다.
♤ 옥천군 안남면 지수리(池水里)
지수리는 지내리(池內里)와 수동리(水洞里)를 합하여 이루어진 마을이다. 1914년 지내리와 수동리(구비, 평촌)가 합하여 지수리(池水里)가 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내리는 못안을 한자화 한 이름으로 주민들은 지금도 이 마을을 모산이라 부르고 있다. 모산은 “못안”을 “몯∨안”→“모단” 으로 끊어 읽지 않고 연음법칙이 적용되어 “모산”이라 부르고 있다고 주민들은 말하고 있다. 마을유래비에는 지금 남평제 자리에 철을 다루는 어모소(於毛所)가 있어서 지내리 모산(毛山)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1739년에 지내리라 불렀고 남평제가 생기기 약 200년 전인데 정말 소류지가 생길 것을 예측하고 못안이라 불렀을까? 소류지는 1930년도에 일제치하에서 만들어지고 남평제라 불렀으니 아마도 남평제(南坪堤) 이전에도 연못이 있었던 것을 재축조하고 붙여진 이름인 것 같다. 지수리에는 이평저수지와 1966년 준공된 세교저수지도 있다. 이평(泥坪)은 진벌을 한자화 한 것으로 진벌은 진흙벌판, 진흙들판을 간략히 부르던 것으로 한자화하여 진흙니자와 들평자를 써서 이평이라 부르게 되었다. 세교(細橋)는 잔다리를 한자화 한 이름인데 세는 작다. 가늘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작은 다리가 있는 마을에서 유래된 듯 하다. 쇠보루(金峴)는 원래 청성면 합금리였으나 지수리에 편입되어 세가구가 살고 있다. 수동(水洞)은 물가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며, 주민들이 안진벌이라 부르는 분치날은 보리밭에 똥을 뿌려 놓으면 꿩이 내려와 먹는 형국같이 생겼다 하여 분치날이라 부르고, 예로부터 진벌 앞산에 묘를 쓰면 왕비가 난다는 전설이 있었는데 육영수여사의 외할머니가 이곳에 묻혀 왕비가 난다는 명당자리임을 증명해 주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옛날에 마을에 큰물이 져, 마을 뒤를 지키고 있던 국사봉 아래까지 물이 차올라 그 물길을 따라 돛대가 산을 넘어 다녔다는 전설이 있다는 이야기와 국사봉으로 이어지는 마을뒷산 줄기를 옛 어르신들은 ‘말잔등’이라 불렀는데 말 등허리 같이 생겼다고 하여 그리 불렀다고 하며 또 산 어딘가에 ‘청돌(새파란 돌)’이라는 큰 돌이 있었는데 거기 새겨진 커다란 사람 발자국이 장수의 발자국이라는 전설도 내려오고 있다 한다 수동주변에는 4가구가 살다가 폐촌 된 옥박골, 도종골, 구비골, 큰대종골, 작은대종골, 투수골, 어둠골, 은은정이(으능정이), 병뱅이골, 잔다리로 넘어가는 사리고개 등이 있고 진벌(질벌)주변에는 경보루, 가는골, 세봉날, 송아지골, 갈벌, 분무골, 사발봉, 단지구멍, 절터골, 분티날, 감동골, 골목재가 있고, 모산 주변에는 재발골, 소뿔봉, 큰달골, 안골과 마을 아래로 남평제(南坪堤)와 마당들이 있다.
갈대가 우거져 여름에는 조그마한 정상석이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이정표를 따라 무심사 가는길로 향합니다.
♤ 매봉(鷹峰, 475m)/ 폐헬기장
코가 닿는 급경사의 고빗길을 올라 오른쪽 나무 계단으로 올라서면 잡초로 우거진 널찍한 폐헬기장이다. 이정표와 헬기장 구석에 화강암 정상석이 있는 곳으로 오른쪽으로 옥천군 안남면 조망이 트인다. 급오름이 끝나면서 힘겨운 오름의 보상이라도 하듯 시야가 탁 트이는 넓은 헬기장이 반긴다. 안남면 뒤로 장령지맥 줄기가 시원하게 펼쳐지고 맨 뒤로 솟은 산이 서대산(西臺山, 905.3m)이다.
♤ 471.8m봉/ 3등삼각점(보은 312/ 1980 복구)
매봉에서 고도차가 없이 이어진다. 준희선생님 표지판에 종전 472.9m봉은 영진 5만 지도를 따른 것이고 지금은 471.8m로 새롭게 교체되었다.
♤ 462.7m봉
준희선생님 산패가 소나무에 매어져 있다. 무심사가는길 이정표에서 직진하여 살짝 올라선 조망이 없는 봉우리로 약간의 공터가 있고 능선은 우틀이다. 약간 진행하니 왼쪽으로는 절벽이고 나무 사이로 팔음지맥(관모봉)이 길게 펼쳐지고 맨 뒤가 백화산 줄기이다.
♤ 400.3m봉
옥천군 청성면 구음리 구비마을에서 올라서는 갈림길을 지나 올라선 봉우리이다. 참나무에 준희선생님 산패가 매달려 있다. 금적지맥은 능선이 편안하지가 않고 오르내림이 지속된다.
♤ 462m봉/ 면계/ 삼리봉(안남면 지수리, 청성면 구음리 → 고당리)
산패는 없지만 전망은 최고이다. 전망이 좋은 국사봉 직전의 전위봉으로 지맥의 왼쪽이 청성면 구음리에서 고당리로 바뀐다. 산속에 폭 파묻힌 청성면 구음리 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 옥천군 청성면 고당리(高堂里)
청성면 고당리는 보청천과 금강의 합수점 산 중턱에 위치하여 자연 경관이 수려하다. 임란 때 유(劉)씨가 처음 이곳으로 피난을 와서 울창한 송림속에 함지박을 만들어 팔아 생계를 유지하였다는 말이 전해온다. 자연마을로는 강촌, 고현(고촌, 높은 베루), 삼베실, 새터, 원당(월꼬지) 등이 있는데 강촌은 금강 상류의 강가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기도 하고, 처음에 강씨들이 터를 잡아 마을을 이루었다고 하기도 한다. 고현은 높은 지대에 위치하는 마을이며, 새터는 고당리에서 새로 된 마을이다. 이 마을은 2005년 옥천군이 옻산업특구로 지정되면서 새롭게 조명받고 있는 마을이다. 꽤 오지였던 마을이 경부고속도로가 개설되면서 새롭게 발전하게 되었고 강가에 여러 군데 별장이 들어서면서 마을도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예로부터 옻나무가 많이 재배되던 지역으로 옻도가가 위치했었다는 강촌을 중심으로 옻나무에 대한 꿈을 키워 키우고 있는 마을이다. 청성면 합수머리가 유명하다.
♤ 국사봉(國師峰, 475.1m)/ 무인산불감시탑/ 안남면 - 청성면
준희선생님 산패와 백두사랑산패가 연두색 휀스에 매어 있다. 힘들게 올랐으나 조망은 없다. 옥천군 청성면 고당리와 안남면 지수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이곳의 유래는 조선 시대 고문헌과 고지도에서 해당 지명을 찾을 수 없고 다만 『한국지명총람』에 국사봉(國師峯)이 소개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마루금은 국사봉을 오른쪽에 두고 왼쪽으로 활처럼 빙 돌아가는 형태이다. 진행하면서 왼쪽으로 조망이 열리면서 금강으로 합수점을 향해가는 보청천과 팔음지맥이 보인다.
♤ 427m봉/ 면계/ 삼리봉(청성면 고당리, 안남면 지수리 → 청성면 합금리)
지맥의 오른쪽이 안남면 지수리에서 청성면 합금리로 바뀌며, 좌틀하여 청성면으로 들어선다. 이제부터 지맥의 좌우가 면계에서 벗어나 완전하게 옥천군 청성면 내안으로 들어서서 고당리와 합금리의 경계를 따른다.
♤ 옥천군 청성면 합금리(合金里)
1914년 행정구역을 일제히 조정할 때 합금리라 하여 옥천군 청남면에 속해있다가, 1929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청남면과 청서면을 하나로 합쳐 청성면이 되면서 이에 속하게 되었다. 합금리라 부르게 된 것은 상금과 하금을 합하여 합금리가 되었다. 상, 하금을 원래 윗쇠대, 아랫쇳대라 불렀는데 한자를 쓰면서 쇠를 쇠금자로 써서 상하금으로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쇠대란 원뜻은 강가에 소를 많이 기른다 하여 소대라 하다가 차차 음이 변하여 쇠대가 되었고 마을이 위에 있다하여 윗쇠대, 아래에 있다하여 아래쇠대라 부른다. 자연마을로는 윗쇠대, 아랫쇠대 등이 있다. 새롭게 변하고 있는 금강변의 아름다운 마을 합금리는 마을 전체가 금강마라톤코스의 통과지점이며, 마을 주민들이 주축이 되어 감나무, 매실나무 등으로 마을을 단장하고 억새숲을 조성하여 민박과 특산품의 판매로 소득 증대를 꾀하고 있다.
♤ 308.9m봉/ 조망봉
오른편 나무 사이로 금강의 가덕교가 바라보인다. 날머리가 가까워 온 것이다. 안부로 내려서서 살짝 올라서면 308.9m봉이다. 팔음지맥과 보청천도 한눈에 들어온다.
♤ 283.1m봉
안부 왼쪽으로는 천길 낭떠러지다. 283.1m봉에서 왼쪽으로 꺽어지는데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줄줄 미끄러진다. 임도로 연결되는 안부를 지난다.
금적지맥의 마지막 잡목 가시지대로 들어서는 지점입니다.
♤ 271.7m봉
참나무에 준희선생님 산패가 매어 있다. 정상을 지나며 직진 코스에 선답자들 띠지가 보이는데 잘못하면 직진하기 쉽다. 지맥길은 우틀로 꺽어져야 해서 독도에 상당히 주의해야 하는 지점이다. 고도를 낮춰가며 서서히 잡목지대로 스며들기 시작한다. 벌목지에 아카시를 심었는지 아카시나무가 많다. 전방 멀리 팔음지맥 앞으로 금강휴게소를 지난 경부고속도로가 조망된다. 등로 왼쪽으로 영동군 황간면 반야사를 품고 있는 백화산이 바라보인다.
♤ 215.3m봉
참나무에 준희선생님 산패가 매어 있다. 고개를 숙이고 가시와 잡목터널을 뚫고 도착하고, 이후로도 잡목과 넝쿨지대를 지나야 한다. 오른쪽으로 금강이 유유히 흐른다.
♤ 열목재/ 열무재/ 원당마을 안부
합금리 열목재골에서 고당리 원당마을을 넘나드는 고개이다. 271.7m봉에서 복분자 가시능선을 뚫고 열목재까지 내려서는데 열목재에서 왼쪽 밭으로 길을 따르면 옥천군 청성면 고당리 원당마을로 내려갈 수 있다. 묘지봉으로 올라서서 칡넝쿨 지대를 지나 다시 왼편으로 고당리로 이어지는 안부로 내려서고 지맥은 직진하여 평장묘지와 농기구 보관창고 사이로 이어간다.
백화산은 팔음, 금적, 장령, 각호, 백하지맥에서 바라보입니다.
♤ 백화산(白華山, 933m)
경북 상주시 모서면과 충북 영동군 황간읍의 경계에 있는 백화산(白華山)은 산 전체가 티없이 맑고 밝다는 뜻 이라고 하며 좋은 의미를 가지고 있기에 우리나라엔 많은 백화산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아곳의 백화산은 한성봉에서 주행봉으로 이어진 능선의 암릉코스로 인기가 많은 곳 이다. 일제시대에 민족정기를 말살 하려는 흉계로 이름도 포성봉이라 바뀌고 지도에서도 삭제가 되는 수모를 겪는등많은 부침을 않고있지만 근래들어 백화산과 한성봉이라는 지명을 되찾고 금돌산성 및 저승골에 깃든 역사적인의의가 부각되고 있는 명산이다. 추풍령에서 황간으로 내려가며 1시 방향의 하늘을 보면 커다란 배가 하늘을 떠가는 모양의 산을 볼 수 있는데, 하늘을 떠가는 배 모양을 한 봉우리가 백화산 주행봉(舟行峰)으로, 우리나라 대부분의 산줄기 흐름과는 달리 동쪽의 포성봉(933m)과 서쪽의 주행봉(874m)으로 이루어진 이 줄기는 북동에서 남서로 뻗쳐있어 작지만 하나의 산맥으로 대접하여 백화산맥이라 부르기도 한다. 백화산맥의 이 특이한 흐름으로 머리가 거꾸로 된 산이라 해서 두역산(頭逆山)이라 부르기도 했는데, 그 이름이 점잖지 못하여 백화산으로 고쳤다는기록도 있다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모든 기록에 백화산으로 되어 있고, 상주쪽에서는 한성봉이라 부르기도 한다. 포성봉이라 부르는 유래는알 수 없으나 주행봉을 현지 주민들은 쌀개봉이라 부르며, 주행봉의 머리를 이루는 바위봉우리 두 개가 옛날 디딜방아의 쌀개처럼 되어 있기 때문이다. 주행봉과 포성봉은 백화산의 쌍벽을 이루는 봉우리로, 기암괴봉과 숲이 아름답다. 특히 주행봉은 쌀개 모양의 등성이 일대와 고스락에서 포성봉쪽 잘록이까지 온통 날카로운 바위로 되어 있고, 기암괴봉과 낭떠러지 등으로 이루어져 있어 경관이 좋으며, 또 이 백화산 줄기와 남쪽으로 마주보고 있는 매우 뾰족하고 우뚝한 지장산(약 670m) 사이에 깊고 좁은 협곡이 있다. 이 협곡을 흐르는 냇물이 석천인데 충북(영동)과 경북(상주) 경계를 이루는 석천의 반야사 위쪽(상류) 일대는 냇물 양쪽이 천길 바위벼랑을 이루고 있으며 이 일대는 굽이굽이 벼루를 이루고 있는 곳이 많아 그야말로 별천지이다.
♤ 308.9m봉
안부에서 완경사로 올라선 봉우리로 능선에 길이 뚜렷하다.
마지막으로 오르는 봉으로 매우 급경사입니다. 그러나 가시가 없다는 것만도 어디인가요.. 한발 한발 올라섭니다.
♤ 합수점 삼거리
갈림길에서 합수점은 왼쪽이고 0.2km, 약 5분 정도 직진해야 삼각점봉에 오른다. 보청천과 금강의 합수점인 원당교를 날머리로 하는 경우 다시 뒤돌아서 내려가야 한다. 합수점을 날머리로 하려다보니 계속되는 능선을 버리고 절벽같은 급경사로 내려서는데 급비탈면을 두고 물줄기를 나누는 산자분수령이라 말하기가 곤란하다.
신 산경표의 산줄기를 따르자면 합금리로 들어서서 능선을 따라 약 3.1km, 1.50h 정도 더 직진하여 합금 하금마을을 날머리로 하는게 맞습니다.
♤ 364.5m봉/ 4등삼각점(보은 473/ 1980 재설)/ 리계/ 합금리 - 고당리
보청천 합수점으로 내려서는 갈림길에서 5분 정도 직진해서 올라선 봉우리로 오른쪽으로 약간 조망이 있을뿐 조망이 별로다. 종전 영진 5만 지도를 따른 준희선생님 365.1m봉 산패가 신형 364.5m봉 산패로 교체되어 있다. 보청천 합수점으로 진행할 경우도 대개는 이곳을 들린다. 나무 사이로 지나온 금적산을 찾아본다.
"등산로" 이정표에서 직진으로 오르면 연화동천이라 써있는 정자가 나오는데 다시 되돌아 나가야 합니다. 왼쪽에 합금리 상금마을에서 올라오는 임도가 있습니다.
♤ 259.1m봉/ 286.5m봉 갈림봉
합금리 하금마을로 향하는 지맥은 거은 오름길은 없으니 부담이 느껴지지 않는다. 산길도 마루금이 뚜렷하다. 5분 후 오래된 묘 1기를 지나친다. 7분 후 다시 묘 1기가 보이는 안부를 통과하고, 259.1m봉에서 우틀로 내려서는데 직진하여 안부로 내려서면 소나무에 매어있는 "등산로" 이정표가 나오고 여기에서 오른쪽 임도로 틀어도 된다. 직진으로 8분 더 진행하여 마루금을 살짝 비켜난 268m봉에 다녀오기도 한다.
삼각점봉에서 하금리 금강변까지 마루금은 지맥 마루금이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가시잡목 지대 두세곳 지나는데 우회길이 있고 그리 길지도 않습니다. 전지가위는 "등산로" 이정표에서 내려선 안부에서 꺼내들었고 이후로 등로를 가리는 가지를 잘라 확장하는 작업을 하며 진행하였습니다.
♤ 286.5m봉
밋밋한 봉우리를 올라서니 한차례 시야가 트이며 금강변 산줄기들이 펼쳐지고 제법 급오름으로 바뀌면서 8~9분 오르면 베어진 송림이 방치되어 있는 286.5m봉이다. 안부로 내려서서 약간 가시잡목 지대를 지나고, 256m봉을 지나 급오름이 끝나는 봉우리이다. 밋밋한 내림을 7~8분 내려서면 잘룩이 안부가 나오고 살짝 오르면 평범한 221m봉이다.
삼각점봉에서 하금리 금강변까지 약 3.1km, 약 1시간 50분 소요되었습니다. 금강변에는 향수3호 나룻배가 묶여있네요. 25분 거리인 합금리 상금마을회관쪽으로 천천히 걸어나갑니다. 버스는 하금마을로 들어갔다 다시나와 상금마을에서 원당교를 건너 옥천으로 나갑니다.
♤ 옥천군 청성면 합금리 하금마을 금강변/ 합금리 하금마을
왼쪽으로 마지막 능선이 갈리는 곳에서 오른쪽을 택해 내려서면 합금리가 내려다보이는 안부가 나오면서 모처럼 금강이 탁 트인 채 펼쳐진다. 그대로 직진하여 6~7분 더 진행하면 넓게 조성된 가족묘가 나오고 바로 아래로 도로가 내려다보이면서 금강이 펼쳐진다. 잠시 후 도로로 내려서는데 여울목휴게소는 폐업상태이고 그 앞 합금로 상에 소나무민박 간판이 있는 곳에서 금강으로 내려서서 금적지맥을 마무리한다.
하금에서 고당리 합수점으로 나가는 합금로가 옥천에서 조성한 자전거향수100리길에 포함되는데요. 장령지맥과 금적지맥 그리고 팔음지맥을 관통하는군요.
♤ 자전거 향수100리길
정지용생가~육영수생가~장계관광지~ 청마리 금강변~금강휴게소를 잇는 총연장 50km의 자전거 향수 100리길이 방송에 나가 유명세를 타며 가족단위 여행과 자전거 여행의 대표지로 각광받고 있다.
♤ 원당교/ 보청천 합수점
트랙을 따라 내려서면 절개지 절벽으로 왼쪽 급경사로 내려서서 화전민 집터 흔적이 있는 곳을 지나서 계곡으로 내려선다. 도로(합금로)에 내려서면 오른쪽으로 보청천과 금강의 합수처와 원당교가 보인다. 원당교는 보청천의 마지막 다리이다. 청성면에서 옥천으로 나가는 막차가 19:15경 원당교를 건너고, 합금리 들어갔다 나오는 버스는 19시경 원당교를 건넌다.
♤ 보청천(報靑川)
충북 보은군과 옥천군에 걸쳐 흐르는 하천으로 금강 수계의 금강 제 1지류이다. 지방1급하천(유로연장 72.11km)과 지방2급하천(유로연장 45.11km)으로 나뉘어져 있다. 길이 69.3km의 하천으로 보은군 내북면과 회인면 경계의 구룡산 부근에서 발원하여 보은군과 옥천군 지역의 남쪽 방향으로 흘러가다가 옥천군 청성면 고당리에서 금강 본류와 합류한다. 옥천군 청성면 장수리 일대 산지를 남북으로 흐를 때는 감입곡류 형태로 흐른다. 하천명 '보청'은 하천이 흐르는 유역의 행정구역인 보은군과 청산면의 첫 글자를 따서 지어졌다.
♤ 금강(錦江)
전북 장수군 금/호남정맥 신무산 북쪽 뜬봉샘에서 발원하는 강이다. 전북 장수군 장수읍에서 발원하여 서해의 군산만으로 유입하는 한국 6대 하천의 하나. 유역면적 9885㎞², 유로연장 401㎞로 남한에서는 한강·낙동강 다음으로 큰 강이다. 본류는 구리향천)·정자천 등의 지류들과 합류하여 북쪽으로 흐르다가 전북 북동부에서 남대천·봉황천과 합류하고 충북에서 송천·보청천과 합류한 뒤 다시 충남 부강에 이르러 미호강과 합류하고 공주·부여 등 백제의 고도를 지나 강경에 이르러 충남과 전북의 도계를 이루며 서해로 흘러들어간다. 『동국여지승람』에는 금강은 공주에 이르러서는 웅진강, 부여에서는 백마강, 하류에서는 고성진강 등으로 불린다고 기록되어 있다. 소백산맥에서 노령산맥이 갈라지는 상류지역은 높이 1000m이상의 산들이 진안고원을 형성하고 있는데 덕유산(1594m)·백운산(1279m) 등 험준한 산들을 깎아 흐르는 많은 지류들은 감입곡류하면서 무주구천동, 영동의 양산팔경 같이 아름다운 계곡을 이룬다. 중·하류는 금산분지·보은분지·청주분지·대전분지 등 분지들과 미호평야·논산평야 등 기름진 충적평야가 발달해 있어 일찍이 우리 민족의 정착지 중 하나였고 백제문화의 본고장이었다. 하류지역은 서해안의 계속적인 침강으로 익곡(溺谷)이 발달하여 하구가 넓고 깊기 때문에 하항(河港)의 발달과 내륙수운 이용에 유리하다. 원래 금강은 호남평야의 젖줄로서 백제시대에는 수도를 끼고 문화의 중심지를 이루었으며 일본에 문화를 전파하는 수로가 되기도 하였다.
♤ 에필로그
곡우 즈음에 오는 봄비는 풍년을 기약하기에 나무랄 일은 아니고 한두 시간 늦춰서 갈 수도 있겠지만 일찍 그친다니 두세시간 우중산행을 각오하고 출발하기로 합니다. 저도 봄비를 맞으면 키가 좀 크고, 마음이 좀 살쪄 원숙해질려나 싶어서요. 부뜰이천왕봉운영자님이 길마재까지 잘 뚫어놓으셨는데 마지막은 제가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시간 계획을 세워보니 문치재가 얼추 거리상 중간이 되겠고, 새벽 5시경 지나게 됩니다. 난도는 노성산을 지나는 첫 구간이 빡시고 후반은 그나마 진정되는 추세라는데 마지막엔 잡목이 한수 거들고 나섭니다. 질신리에서 물을 구할 수 있으니 처음에 2.5리터를 담아 출발하고 문치재에서는 틀림없이 3리터를 보충해야 하겠습니다. 계획대로 잘 될 수 있을지... 2구간 정방재에서 싸리재를 지나며 오른쪽으로 장령지맥을 마주 할 수 있습니다. 국사봉에 가까워 지면서 왼쪽으로 팔음지맥이 다가오고, 12시 방향은 금강휴게소 팔음의 끝자락입니다.
계획은 계획일뿐 1구간은 정방재에서 그치고 상경하여 다시 2구간을 이었습니다. 금적지맥은 깔로 볼 지맥이 아닙니다.^^
서울역에서 05:12분 출발하는 ktx를 타고 대전에서 itx로 환승하면 옥천역에 06:36분에 도착합니다. 역앞에서 왼쪽에 있는 횡단보도를 건너 왼쪽으로 100m 진행하면 시내버스터미널입니다. 여기서 06:40분 보은가는 시내버스 첫차가 출발합니다. 저는 몰라서 1구간에 10분 걸려 직행버스를 타려 시외버스공영정류소로 걸었고, 2구간은 우샤인볼트처럼 뛰어서 06:40분 오덕리로 출발하는 버스를 이용하여 정방재에 내렸습니다. 합금리 하금마을에서 금적지맥을 마치고 보청천과 금강의 합수점을 구경하려 합금로를 따라 약 1시간 걸어나갔습니다. 원당교에서 1시간을 기다려 옥천가는 아저씨의 차를 얻어탈 수 있었습니다. 연세가 73세이신 분이신데 광명 하안동 기아자동차에서 33년을 일하고 고향으로 내려오셨다고 하네요. 동네 할머니 두분을 뒷좌석에 태우고 옥천휴게소 지나 음식점에 외식하러 나가시는 길인데 할머니들 음식점에 내리고 저를 일부러 옥천역까지 태워다 주셨습니다. 너무 감사했습니다.^^ 옥천역 앞에 아바이순대국으로 뒤풀이 하고 itx자유석으로 올라왔습니다.
첫댓글 산줄기에 대한 공부를 참 많이 하셨군요...
주변지역에 대한 역사와 유래를 완전정복. 백과사전 같아요...
감사합니다. 도깨비선배님!^^
지맥을 처음 대하는 사람도 일목요연하게 흐름을 이해할 수 있도록 수회에 걸쳐 보충하고 수정하고 선답자님들 산행기를 취합한 것입니다. 후답자님이 더 좋은 산행기를 만드시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금적지맥 졸업 축하 드립니다
예전 21년 7~8월에 세구간 나누어 했는데 정말 더워서 고생한 기억이 많이 남니다
무더위로 다들 초죽음으로 업.다운도 심하고 잡목 풀들이 무성해서 힘든 여정 이었습니다
그 구간을 연속으로 한번에 마치니 정말 대단한 풍라라님 이네요
어느 지맥인들 힘든 구간이 많지만 그래도 금적지맥 너무 힘들어서 정말 기억속에 지워지지 않네요
마지막 x271.7봉에서 내려서니 칡덩굴 다시 삼각점봉으로 오르는 등로는 보이지 않고 칡덩굴에 엄두가 나지 않았네요
8월15일 덥다 덥다 해서 무더위가 절정을 이룬 날인것 같습니다
그래서 만장일치로 마지막 삼각점도 오르지 않고 원당마을로 하산하여 원당교에서 마무리 한 기억이 생생 합니다
끝까지 오른 진정한 풍라라님 열정에 박수를 보냅니다
수고 많이 하셨고 다시 한번 졸업 축하 축하 드립니다^)^
와룡산선배님!
선배님 산행기도 참고하였고, 띠지 도움도 많이 받았습니다.^^
장령을 하며 날머리를 어디로 할것인지 준희선생님 코치도 많이 받았구요.
하필이면 제일 어려운 한여름에 힘든 금적을 하셨군요.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저는 271.1m봉을 지나 삼각점봉까지 가는데 다행히 전지가위를 꺼내지 않고도 요령껏 가시덤불을 피할 수 있었는데 많은 선답자님들이 길을 만들고자 수고해 주신 덕분에 편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대부분 삼각점봉에서 합수점을 향한다며 지맥 끝머리를 꺽어내리는데 제가 서두에 말씀드린 것처럼 앞으로 진행해야 맞습니다. 지맥 능선이 자연스럽게 살아있고 어렵지 않게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남아 보청천과 금강의 합수점까지 구경하고 옥천으로 나올 수 있었구요. 합금리 하금으로 금적을 마무리 하고 뿌듯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대단히 수고많으셨어요! 퐁라라운영자님
무더위에 주야없이 굴곡도 이만저만이 아닌 산줄기로 정평이 나 있는 금적지맥을 마무리하셨네요.
금적지맥 졸업을 축하드립니다.
처음 이틀간 2/3지점인 정방재까지 진행하시고 남은 구간을 진행하셨구요.
3년 전 이맘때 힘들게 지나던 기억이 떠올려지네요.~
보청천합수점까지 진행하시느라 수고많으셨습니다.
방장님!
3년 전 사무실에서 저에게 상금 마을로 중탈하셨던 금적 후기담을 들려주셨어요.^^
야간 진행으로 국사봉을 빠뜨려 아쉬움이 남구요. 마지막은 합수점으로 가지 않고 하금리 금강으로 끝까지 명확한 산줄기를 따랐습니다.
인근에 팔봉과 각호는 합수점으로 가는군요. 하지만 팔음과 금적, 장령은 강으로 가는 지맥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