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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전라남도 해남군의 선은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번호 : 제154-1번째 지맥산행
산행일자 : 2022년 09월 23일 (금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이른 오전까지 약간의 박무 후 하루종일 맑고 무척 무더웠으나 늦은 오후부터 약간의 바람이 불었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 영상 15도에서 영상 24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진불암 갈림삼거리 시멘트 포장도로 이동통신탑과 이정표(진불암 0.7 Km와 북미륵암 1.4 Km 및 두륜산 1.5 Km, 관음암 1 Km와 경내버스주차장 2.5 Km)-차량통제 바리게이트-좌측
능선진입(시멘트 포장도로와 이별)-산죽등로-땅끝기맥 접속(현위치 4.2, 두륜산 도솔봉 0.6 Km전 안내판)-정리된 산죽등로-바위등로-정리된 산죽등로-너럭바위(바위암봉과 도솔봉 분기점
조망)-잡풀과 잡목안부-바위암릉 너덜등로-바위암봉(조망처)-바위너덜 등로-커다란 바위암봉2-잡목과 잡풀등로-도솔봉(선은지맥 분기점, 672미터 도솔봉 정상석, 군부대 통신시설물)-
지독한 잡목과 바위암릉-통신3사 철망구조물(대둔산 정상은 통신3사가 자리하고 있어 출입금지라 이곳에서 도솔봉으로 복귀)-도솔봉(정상석과 선은지맥 분기점, 군부대 통신시설물)-바위암반
등로-헬기장(억새능선)-633.9봉(세르파님 띠지와 잡목봉)-전망바위-녹슨 철구조물-지독한 산죽터널-산죽과 잡목등로-지독한 산죽터널-시멘트 포장도로-능선진입(높은 콘크리트 옹벽)-잘 정비된
잡목과 산죽등로-612.5미터 연화봉(법광님 띠지와 선답자 띠지들)-암반조망-잘 정비된 산죽등로-바위암릉 조망-산죽과 잡목 및 바위암릉-전망바위-급경사 내리막 바위암릉-무명안부-
512.6봉(법광님과 금곡님 띠지)-잘 정비된 산죽등로-467.6 잡목봉(스틱)-전망바위-444.2 무명봉(굵은 참나무와 산죽)-410.9 무명봉(이재구님 띠지)-바위암봉 우회등로-358.4 공터띠지
무명봉-대흥사 갈림삼거리(세르파님 띠지, 좌측 직진방향)-376.2 혈망봉(이정판, 띠지들, 전망바위)-잡목과 바위암릉-전망바위-바위암릉 우회 너덜등로-뚜렷한 관목의 활엽수 등로-무명묘지-
오도치(224.4미터, 돌무덤 성황당 안부, 땅끝 천년숲 옛길 안내판)-잡풀무명묘지-급경사 오르막 등로-바위암릉-전망바위-467.5 미터 향로봉(이정판)-산죽등로-423.5 무명봉(이재구님 띠지,
잡목과 산죽)-길주의(독도님 띠지, 좌측)-난해한 잡목등로-무명안부(독도님 띠지)-무명묘지들-바위들-341.5봉(법광님과 선답자 띠지들)-바위 너덜등로-지독한 산죽등로-무명묘지-
229봉(법광님 띠지, 길주의=우측)-바위 우회-묵은 비포장임도 안부-길주의 지점(양천 심용보님 띠지, 우측)-92번 송전탑(165.4미터)-묵은 비포장임도-153.3 무명봉(법광님과 다류님 띠지,
좌측)-이장된 묘지터-무명묘지(남향레미콘동부지점 채석장 조망)-이동통신탑-백도치(806번 고산로 2차선 포장도로, 현산면과 삼산면 경계)-능선진입-채석장 조망-묘지지대-215.1
무명봉(고사목)-바위암릉(조망)-308.6 삼각점봉(법광님 띠지와 선답자 띠지들, 인식불가 삼각점, 조망)-산죽등로-268.8 무명봉(스틱)-바위들-잡목등로-바위 무명안부-잡풀 무명묘지-
지독한 잡목과 칡넝굴 등로-급경사 바위암릉과 산죽 오르막 등로-병풍산 갈림삼거리봉(310.4미터 맨발님 띠지)-병풍산(315.7봉, 이정판과 띠지들)-갈림삼거리 복귀-급경사 하산 바위암릉과
산죽등로-길주의 지점(무한띠지, 우측)-지독한 잡목등로-바위암릉 좌측으로 우회등로-291.1봉(금곡님 띠지, 잡목봉)-바위암릉 우회등로-좌측 사면등로-시누대 터널등로-바위암릉 조망-
바위암릉 우회등로-태양산 갈림삼거리(띠지들)-태양산(308봉, 이정판)-산죽과 잡목등로-지독한 잡목등로-227.1 무명봉(굵은 소나무와 잡목들)-223.3봉(청다래 넝굴과 무한 띠지)-
241.3봉(감투봉, 법광님 띠지와 선답자 띠지들)-잡목등로-모시미재(이정판, 안부)-잡풀등로-176.6봉(금곡님 띠지와 선답자 띠지들)-24번 송전탑-바위암릉 로프등로-바위암릉-잡목
무명안부-245 삼각점봉(이정판, 해남446 삼각점)-225.4 무명봉(굵은 소나무와 참나무)-주능선(고사목)-275.6봉(법광님 띠지와 선답자 띠지들)-굵은 참나무 무명안부-259 무명봉(세르파님
띠지)-204.2 무명봉(굵은 소나무와 바위)-작은돌탑 무명봉-구시터널(13번 땅끝대로 4차선 포장도로 통과)-오십치(이정판, 안부)고사목과 잡목등로-207 무명봉(법광님 띠지)-산죽등로-
179.8 무명봉(조진대 고문님 띠지,전망바위)-지독한 잡목등로-165.9 무명봉(해피마당쇠님 띠지, 좌측)-171.7 삼각점봉 갈림삼거리(관목의 참나무놔 스틱)-171.7 삼각점봉(이정판,
완도404 삼각점)-갈림삼거리 복귀-138.7 무명봉(굵은 소나무와 잡목봉)-지독한 잡목등로-폐 민가와 창고건물-비포장임도-시멘트 포장도로-장고개(해남화산로 2차선 포장도로,
이동통신탑, 장고개 버스정류장, 화산면과 현산면 경계 도로표지판)-산행종료
산행거리 : 21.20 Km (진불암 갈림삼거리에서 장고개까지)
지맥산행 : 18.81 Km (도솔봉 분기점에서 장고개까지)
접속구간 : 02.39 Km (진불암 갈림삼거리에서 도솔봉 분기점까지)
산행트랙 :
산행시간 : 12시간 37분 (05시 39분부터 18시 16분까지)
교통 및 숙박편 : 갈때 - 전날 밤 22시 00분 해남 장고개를 향해 집에서 출발
00시 30분 함평나비 휴게소에서 약 2시간 정도 차박
04시 10분 해남읍 편의점에서 미역국과 김치로 간단히 아침식사 후 출발 (16,000.-원)
04시 55분 장고개에 도착 해 산행 준비 후 도착한 화산택시로 대흥사를 향해 출발
05시 39분 택시기사님의 배려로 대흥사 지나 진불암 갈림삼거리까지 택시로 이동(25,000.-원)
올때 - 18시 16분 장고개에서 선은지맥 첫구간 산행 종료 후 배낭 정리
19시 10분 해남읍 반도모텔 도착해 샤워 후 환복
20시 20분 모텔 근처의 한식당에서 삼겹살로 저녁 해결(31,000.-원)
21시 00분 모텔로 돌아 와 사진 정리하고 잔무 처리한 후 곧바로 취침
선은지맥이란?
선은(연화)지맥은 처음에 신산경표에 등재되지 않았던 산줄기였지만 2013년 6월 신경수님 일행에 의해 2016년 1월까지 답사 완료한 산줄기로서 호남정맥 월출산과 두륜산을 지나 대둔산 직전 북쪽 약 370여미터 지점에 위한 고도 667미터인 도솔봉에서 북서쪽으로 분기하여 612.5미터(연화봉), 376.2미터(혈망봉), 오도치, 467.5미터(향로봉), 병풍산, 태양산, 감투봉, 모시미재, 오십치, 장고개, 선은산, 서재재를 거쳐 송평항으로 떨어지는 약 30.2 Km의 산줄기이다.
이 선은지맥이란 명칭은 선답하신 신경수님께서 처음 사용한 이름은 연화였지만 이후 신산경표의 박성태님께서 선은, 만덕, 주읍, 장원의 4개 산줄기를 새로 발견하시면서 이 산줄기를 선은으로 명명하여 신산경표 통일 원칙에 의거해 선은으로 표기하기로 하였다.
생각보다 고도 편차는 심하지 않았지만 난해했던 가시잡목과 한여름 무더위 같았던 날씨로 제법 많은 땀방울을 등로에 흘리며 어렵게 진행하면서도 환상적인 조망을 즐기며 무탈하게 진행했던 해남에서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현존하는 맥 잇기 산행에 대한 수많은 이론과 산행 트랙이 존재하지만 이 산객은 산경표와 신산경표를 보고 맥 잇기 산행을 처음 진행하였기에 가능하면 이 산행 이론에 따라 산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산줄기의 마지막 끝부분이 물과 만나는 지점인 합수점으로 가야한다는 이론 역시 그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아직 정확하게 내려진 올바른 해답이 없기 때문에 이 산객은 옛 문헌에 나타난 이론인 관아를 기준으로 설정된 산줄기를 그 끝으로 하고 문헌에 나타나지 않은 관아 이후의 산줄기는 산행을 하는 산객 각자의 기준에 맞춰 진행하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선은지맥 산행을 한 후 이 산행후기를 기술하면서 전라남도 해남군과 그 주변 지자체에 수록된 지명유래 및 네이버의 지식백과, 다음의 백과사전, 산림청, 한국관광공사의 자료들을 참고하여 정리된 부분들이 있으며 이런 부분들이 혹시라도 지적재산권에 저촉이 되어 삭제나 변경이 필요한 경우 연락주시면 언제라도 즉시 삭제 및 수정해 드릴 수 있음도 알린다.
지난 주 삼신지맥에 들어 예기치 못한 짙은 안개와 이슬비로 지독하게 우거진 산죽터널을 뚫고 진행하면서 너무나 힘들게 마무리하였기에 이번주에는 조금 더 계절에 맞게 진행을 해보려고 찾아 보지만 이제 선택의 여지없이 진행을 해야만 하는 지맥산행들만 남아 있어 다시 가장 먼 선은지맥이 있는 땅끝 해남으로 내려가는데 전라남도 지방의 지맥 산행을 하면서는 좋은 기억보다는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기억들만 많아 걱정이 앞서는 시간이기도 하다.
전날 조금 일찍 산행 준비해 내려가다 함평나비휴게소에서 2시간 가까이 꿀잠을 자고 예약한 택시로 장고개에서 대흥사로 가는데 자주 산꾼들을 픽업해 주셨는지 문이 닫혀 있는 대흥사 주차장 지나 진불암 갈림삼거리 앞 바리게이트가 설치된 지점까지 태워 줘 30여분 이상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다.
새벽부터 기분 좋게 시작한 선은지맥 산행이지만 늦여름 우거진 가시잡목들과 잡풀들 그리고 온몸을 휘감는 수많은 거미줄로 인해 온 몸을 난도질 당해 귀가해 살펴보니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지독했던 가시잡목들과의 사투를 기억하게 만들고 있다.
그래도 너무 늦지 않게 잘 마무리하고 귀가하면서 이틀간 고통속에 힘들었던 시간들은 금새 추억으로 남기고 다음주에는 또 어느곳으로 들어야 하는지 행복한 고민을 하는 자신을 발견하곤 어이없는 웃음만 나오는 순간이었다.
대흥사 주차장에서 걸어 출발할 예정이었는데 택시 기사님의 배려로 진불암 갈림삼거리까지 편안하게 올라 가 7년 전 봄에 지났던 땅끝기맥 마루금에 도착을 해 밝아오는 여명속에 옛추억에 잠겼다 잡목과 잡풀들이 우거진 바위암릉을 우회해 힘들게 오르니 군통신시설과 도솔봉 정상석이 보이는 선은지맥 분기점에 도착을 하는데 좌측인 남쪽 방향으로 가깝게 보이는 인공구조물이 가득한 대둔산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지독하게 우거진 잡목들을 헤치며 잠시 다녀오지만 역시나 철망으로 정상은 만나지도 못하고 뒤돌아 서는 마음이 아쉽기만 하다.
다시 도솔봉 정상인 선은지맥 분기점으로 뒤돌아 와 북북서 방향으로 이어지는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따라 새로운 선은지맥 산행을 시작하니 출발부터 진행 방향으로 펼쳐진 환상의 선은지맥 마루금이 발걸음을 붙잡고 많은 사진과 추억을 남겨 본다.
바로 앞 억새와 바위암릉 지나 연화봉이 솟아 있고 그 좌측으로 흘러내린 마루금 좌측 가장자리 방향으로 혈망봉이 보이며 연화봉 뒷쪽으로 향로봉 지나 채석장이 희미하게 나타나는데 마루금은 저 채석장 우측 능선을 좌측으로 돌아 이어져 좌측 뒤 끝자락으로 솟아 있는 선은산 방향으로 연결되는 오늘 이 산객이 걸어 만나야 할 전지맥 산줄기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잠시 사진에 담으며 그 이름들을 불러본다.
생각보다 숨어 있는 바위암릉이 이어지는 때로는 좋은 등로를 타고 또 때로는 지독한 가시잡목들을 헤치며 진행하다 보니 고도편차는 크지 않지만 산행시간은 예상보다 훨씬 더 걸리는 등로인데 늦여름 잡목과 잡풀들이 가장 무성하게 자라난 시기이기에 어쩔 수 없는 계절적 상황이기도 하다.
약간의 미풍에도 시원한 느낌이 흐르는 땀방울을 말려주고 한여름 폭염보다는 기온이 많이 내려갔지만 여전히 필요한 식수가 많아 무겁게 배낭을 준비하다 보니 백도치를 지나면서 벌써 체력적으로 힘이 든다는 생각이다.
백도치 지나 굉음의 기계음을 들으며 가파르게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거대한 채석장이 내려다 보이고 그곳에서 공사하는 굉음이 들리는데 또 하나의 산자락이 사라지는 모습에 안타까움만 남기고 오르니 바위암반으로 이뤄진 308.6봉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지나 온 남남동쪽을 살펴보니 오늘 이 산객이 걸어 내려온 선은지맥 마루금을 따라 저 멀리 우측으로 인공구조물을 이고 있는 도솔봉과 대둔산이 보이고 그 좌측으로는 연봉으로 솟아 있는 두륜산이 다시 옛추억을 소환하며 다음을 기약하는데 언제 다시 내려 와 조우할 수 있을지 스스로도 궁금해지는 시간이다.
밤잠을 설치면서까지 내려가 진행을 해야만 할 정도로 목표가 있으니 가능한 산행을 위해 오늘도 비어있는 고속도로를 따라 멀고도 먼 해남으로 내려가는데 생각보다 안개가 없어 다행이었다.
호남고속도로 끝자락에 있는 함평나비휴게소에서 꿀잠을 자고 일어 나 다시 국도와 고속도로를 번갈아 타고 해남읍으로 들어가니 새벽 4시가 넘어가고 늘 하던대로 편의점에 들려 산행에 필요한 물품과 음료수 및 빵을 구매하고 미역국에 김치 하나로 새벽 아침까지 해결한 후 산행 날머리인 장고개에 도착을 하니 새벽 4시 45여분이 지나고 있다.
새벽 5시에 화산택시 기사님과 약속을 했기에 등산 준비하고 등산화로 갈아신으니 약속시간보다 일찍 택시기사님이 도착을 해 곧바로 대흥사로 출발하는데 대흥사에 도착하니 문이 닫혀 있어 우측의 우회도로로 가 보니 그곳 역시 문이 굳게 닫혀 있어 그곳 대흥사 주차장에서 내리려고 하니 다시 한번 더 좌측 주도로 방향으로 가 살펴보더니 택시는 통과가 가능하다며 조금 더 바리게이트가 있는 곳까지 태워다 줘 결국 진불암 갈림삼거리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택시비가 21,000.-원 정도 나왔는데 고마운 마음에 25,000.-원을 계산해 드리고 내일 새벽에 송평항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기사님을 돌려 보내고 홀로 산행 준비하고 주위 풍경을 사진에 담은 후 출발하는 시간이 새벽 5시 39분을 넘어가고 있다.
좌측으로는 진불암과 북미륵암 지나 두륜산으로 오르는 도로이고 우측으로는 도솔본 지나 대둔산 송신탑으로 이어지는 도로인데 이 산객은 중간에 능선으로 들어 따읕기맥 마루금과 만나 도솔봉으로 오를 예정이다.
진불암은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두륜산(頭輪山)에 있는 조선후기 극현이 덕호와 함께 중건한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大興寺)의 산내암자이다.
창건연대는 미상이나 1630년(인조 8) 극현(克玄)이 덕호(德浩)와 함께 중건하였고 1693년(숙종 19) 이홍록(李弘錄)이 덕탄(德坦)과 더불어 중건하였으며 1750년(영조 26) 온곡대사(溫谷大師)가 우일(宇一)과 함께 중수하였다가 그 뒤 1740년(영조 16)에 위일(位一)이 1791년(정조 15)에 정능(定能)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응진당과 향적당 및 요사 등이 있는데 응진당은 정면 3칸의 조그마한 전각이고 그 옆으로 약 50년 전에 건립된 요사채가 있으며 응진당 안에는 조선 초기의 그 조각수법이 특이한 목조 16나한상(羅漢像)이 봉안되어 있다.
원래 이 나한상은 50m 상방에 위치했던 고진불암(古眞佛庵)에 있었으며 전설에 의하면 강진에 살던 어부 서씨(徐氏)가 바다에서 고기를 잡다가 서쪽나라의 배를 만났는데 그 배 안에 16나한상이 실려 있었으므로 두륜산방(頭輪山房)에 봉안하였다고 한다.
또한 1709년에 조성한 강희48년 명 동종이 있었으나 폐사될 때 대흥사 부속암자인 청신암(淸神庵)으로 옮겨 봉안되었다가 지금은 대흥사 서산대사박물관에 보관 중이다.
전체 높이 70㎝에 아래 지름 50㎝인 이 종은 조선 후기의 주종수법을 고찰하는 데 좋은 자료로서 종을 거는 용두(龍頭)는 단룡(單龍)으로 나타냈고 종의 사방에는 4보살과 유곽(乳廓)을 표시하였다.
위쪽의 상대(上帶)에는 뾰족하게 앙련(仰蓮)을 조각하였고 그 아래에는 보다 평범하게 다시 연화를 나타내었으며 다시 그 아래는 유두(乳頭)모양의 돌출된 선을 돌려 마감하고 있으며 하부에는 아름다운 당초문을 조각하였다.
지금은 대흥사서산대사박물관에서 보관 중이다. 현재의 규모는 작으나 영곡(靈谷)과 영파(影波), 만화(萬化), 운담(雲潭), 암(兒庵) 등의 고승들이 머물렀던 유서 깊은 암자이다.
진불암과 북미륵암을 통해 두륜산으로 오른 경험이 두번 있는데 워낙 오래된 기억이라 가물거리지만 깊게 쌓여 있는 추억을 들춰보니 조금씩 기억이 되살아 는 부분들도 있다.
잔시 후 차량 통제용 바리게이트를 통과해 계속 이어지는 완만한 오르막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르니 약간의 안개가 드리워져 있지만 지난주 삼신지맥에서 만났던 짙은 안개가 아니고 더욱이 이슬비까지 내리지 않아 날씨로 인한 고생은 없을 듯 보인다.
그렇게 한동안 더 걸어 오르니 도로가 우측으로 크게 휘어져 오르는 지점 좌측 콘크리트 옹벽 위로 어둠속에 선답자의 산행띠지가 보이고 지도와 트랙을 확인해 보니 등로는 이곳에서 우측으로 휘어져 올라가는 도로를 버리고 좌측 콘크리트 옹벽 넘어 산죽지대로 들어가며 이어지고 있다.
도로를 버리고 능선으로 진입하니 산죽 사이로 바위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평이하게 한동안 그 산죽밭을 통과하니 갑자기 키가 큰 산죽들로 변하면서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현위치 4-2 이정판이 보이고 그곳에는 두륜산 도솔봉 전 0.6 Km 지점이란 거리표시도 보이는데 바로 7년 전 봄에 지났던 땅끝기맥 마루금과 접속되는 지점으로서 지나 온 방향으로는 이 산객이 버린 도롸지 0.4 Km 거리 표시도 보인다.
땅끝기맥은 호남정맥상의 국사봉(499m)과 삼계봉(504m) 사이에 위치한 바람봉(노적봉 430m)에서 북쪽으로 분기해서 나주와 장흥 및 영암을 지나면서 영산강의 남쪽 능선을 이루다가 별매산에서 영산강을 버린후 강진과 해남의 주작산과 두륜산 지나 달마산을 거쳐 해남 땅끝 토말에 이르는 총 도상거리 120 km의 산줄기이다.
땅끝기맥에는 바람봉 또는 노적봉(430m), 소반바위산(493m), 계천산(400m), 궁성산(482m), 국사봉(615m), 활성산(498m), 월출산(810m), 도갑산(401m), 월각산(456m), 별매산(465m), 서기산(511m), 주작산(428m), 두륜산(703m), 달마산(470m), 도솔봉(405m), 사자봉(110m)까지 비교적 낮은 산세로 이어지지만 월출산, 별매산, 주작산, 두륜산, 달마산 등 아기자기한 바위산이 이어져 있어 산행의 묘미를 느끼게 되고 그 최고봉은 영암 월출산(810m)이다.
이제 땅끝기맥 마루금을 만나 우측인 남서 방향으로 크게 꺽어 완만하게 이어지는 키가 큰 산죽터널 사이로 진행을 이어간다.
땅끝기맥 마루금에 접속해 우측으로 진행하니 남도 특유의 단단한 활엽수 사이로 바위들이 산재되어 있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가 열리고 그곳 지나 조금 더 전진하니 이제는 키가 큰 산죽밭이 보이는데 등로는 잘 정비가 되어 있어 진행에는 어려움이 없다.
잠시 그 산죽등로를 따라 오르니 갑자기 눈 앞으로 아름다운 풍경과 조망이 펼쳐지고 살펴보니 이제부터 걸어 올라야 할 선은지맥 분기점인 도솔봉으로 오르는 중간에 거대한 바위암릉이 올려다 보이는데 처음에는 저 바위암릉 정상부가 도솔봉이라 착가하며 진행을 하게 되었다.
잠시 사진에 담으며 오래 전 기억을 되살려 보지만 7년 전 땅끝기맥으로 걸었을 땐 짙은 안개로 인해 시야가 제한되어 아쉽게도 이런 풍경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다.
산죽지대를 지난 나즈막한 둔덕봉에서 진행 방향으로 아름다운 암봉과 진행해야 할 등로를 확인하고 완만하게 내려가니 묵은 비포장임도 같은 등로가 나타나는데 여름철 자란 잡녹과 잡풀들이 등로를 막아 진행에 어려움을 느끼는데 키가 큰 나무들도 보이지 않아 키 작은 잡목과 잡풀에 내려 앉은 이슬이 금새 산객의 등산바지와 등산화를 적시기 시박하며 지난 주 삼신지맥에서의 고통이 되살아나기 시작한다.
한동안 키가 큰 산죽과 잡목들이 보이는 오르막 등로로 오르니 바위암릉이 봉기 시작하고 그곳에서 뒤돌아 보니 두륜산과 그 우측 뒤로 억새로 유명한 장흥의 천관산이 보이는데 그 앞으로 흐르고 있을 사자지맥 마루금은 분간하기 어려운 박무이다.
몇장의 사진에 담고 계속 이어지는 가파른 바위암릉과 잡목등로를 따르니 드디어 바위암릉 사이 급경사 너덜등로로 이어지고 곧이어 그 바위암릉 정상에서 뒤돌아 보니 방금 전 걸어 올라온 능선 저 멀리 두륜산괴 좌측 뒤로 고계봉 그리고 케이블카 정류장 건물이 보일듯 마듯 다가와 있다.
두륜산과 그 우측 뒤 저 멀리 장흥의 사자지맥과 억새로 유명한 천관산도 확인 한 후 눈을 우측인 동쪽으로 돌리니 두륜봉에서 우측인 동쪽으로 분기한 산줄기가 길게 이어지고 그 우측 끝자락 방향으로 위봉과 투구봉이 보이고 그 위봉 좌측 뒤로는 여전히 장흥의 사자지맥과 천관산이 위봉 우측 뒤로는 해남과 고금도 사이의 남해바다 위에 고마도와 사후도 같은 섬들이 점점히 떠 있어 또 다른 환상을 노래하고 있어 잠시 그 노래도 들으며 가쁜 숨을 내쉬는 시간은 그저 행복하기만 하다.
다만 일출 시간이 지났는데 하늘을 덮고 있는 두꺼운 구름을 뚫지 못하고 세상으로 나오지 못하는 햇살이 멋진 조화를 이루며 산객의 발목을 잡고 있어 급할 것 없이 조금 더 머물러 본다.
그렇게 한동안 바위암릉 사이에서 아름다운 남도의 두륜산과 장흥의 천관산 및 사자지맥을 살펴보고 좌우측을 보니 거대한 바위암괴가 마치 무등산의 입석대처럼 다가 와 있어 사진에 담고 이어지는 바위너덜길을 따라 오르니 눈 앞으로 또 다른 남근석을 닮아 있는 바위암릉이 나타나는데 이곳은 7년 전 봄 짙은 안개속에 잠시 머물며 사진 한장 남겼던 추억이 있는 곳이라 갈길이 멀지만 잠시 발걸음 멈추고 사진과 추억을 남겨본다.
저 바위암릉 위 저 멀리 선은지맥이란 이름으로 산행을 해야 할 분기점인 도솔봉이 있지만 바위암릉에 막혀 보이지 않아 잠시 후 바위암릉으로 올라 살펴보기로 한다.
남근석을 닮아 있는 바위암릉으로 오르니 다시 환상의 풍경과 조망들이 펼쳐져 있어 잠시 더 머물며 많은 사진을 담으며 그 이름들을 불러본다.
제일 먼저 북북동 방향으로 두륜산이 연봉의 모습으로 옛추억을 들려주고 그 우측인 북동 방향으로는 장흥의 사자지맥 마루금 뒤로 가을 억새가 장관인 천관산이 드높게 솟아 있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오며 그 우측인 동쪽으로는 위봉과 투구봉 지나 장흥과 완도의 고금도가 남해 바다에 떠 있는 펼쳐져 있다.
그 우측인 남동 방향으로는 드디어 작은 섬들 옆으로 많은 추억을 남긴 완도가 한눈에 보이는데 처음에는 생각보다 작게 보이고 그 완도를 가로지르는 산줄기의 길이와 높이가 낮아 보여 완도가 아닌 다른 작은 섬이라 생각해 몇번이나 확인해 보니 완도가 맞다.
완도를 살펴보고 잠시 옛추억을 더듬은 후 눈을 다시 우측으로 돌리니 땅끝기맥의 천태산과 달마산 지나 땅끝마을 방향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는 바로 앞 대둔산의 암릉과 그 정상에 세워진 많은 송신탑들에 막혀 아직은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눈을 남쪽으로 돌리니 선은지맥 분기점인 도솔봉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땅끝기맥 상 대둔산 줄기가 길게 펼쳐지고 그 정상부에는 여러 방송국의 송신탑들이 보이는데 마음은 저곳까지 다녀오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간다고 해도 철망에 막혀 대둔산 정상부는 구경도 못하고 뒤돌아 와야 하기에 고민인데 그 고민은 도솔봉에서 다시 해 보기로 한다.
사방팔방 아름답게 펼쳐진 풍경과 조망들을 즐기고 출발에 앞서 진행 방향인 서쪽을 올려다 보니 잡목과 바위 사이 저 멀리 바위암릉 정상에 인공구조물이 보이는 선은지맥 분기점인 도솔봉이 빤히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오래 전 땅끝기맥 산행을 하면서 들렸던 기억이 벌써 7년 전인데 그때는 짙은 안개속에 보이는 것이 없어 등로 주위의 바위와 정상석을 배경으로 추억을 남겼던 아령한 추억도 떠오르는 시간이다.
선은지맥 분기점인 도솔봉을 올려다 보며 사진에 담고 이제 남근석 같은 바위암봉을 넘어 출발하려는데 등 뒤 동쪽 저 멀리 위봉과 투구봉 넘어 마량항과 강진항 위로 구름속에 갇혀 있던 햇살이 비추며 아름다운 세상으로 떠오르기 시작해 늦은 일출을 가슴속에 담고 진행을 이어간다.
잠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키가 큰 산죽과 관목의 활엽수들이 보이는 사이로 잘 정리된 땅끝기맥 마루금이 이어지고 편안하게 걸어 전진하니 다시 하얀 억새꽃이 만개한 주능선 가까이에 올라 도솔봉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정상에는 군부대 통신시설이 보이고 그 우측 옆으로 아담한 오석의 도솔봉 정상석이 보이는데 통신시설 보호 철망에 종이코팅지로 된 선은지맥 분기점이란 이정판이 걸려 있어 추억 한장 남긴다.
군부대 통신시설 철망에 걸려있는 선은지맥 분기점이란 이정판에서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우측 진행 방향으로 몇걸음 가니 아담한 오석의 도솔봉 정상석이 서 있어 이곳에서도 사진과 추억 몇장 남기고 고민하다 정상은 들리지 못하지만 오래전 추억을 찾아 잠시 남쪽의 대둔산 정상부를 다녀오기로 하는데 생각보다 잡목과 억새가 우거져 고생만 하고 시간만 허비하고 말았다.
그래도 오늘 산행거리가 다른 지맥 첫구간보다는 짧고 고도편차도 심하지 않아 쉽게 생각했는데 장고개에 도착을 해 확인해 보니 산행속도는 전혀 나질 않았는데 늦여름 우거진 가시잡목과 바위암릉을 너무 쉽게 생각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도 해 본 시간이었다.
지도상에는 아무 표시가 없는 선은지맥 분기점에는 672미터의 도솔봉이라는 오석의 앙증맞은 정상석이 세워져 있는데 현지 설치물에는 대부분 두륜산 도솔봉으로 표기가 되어 있으나 일부 산객들은 대둔산 도솔봉으로도 불리고 있는 듯 보이는 곳이다.
그곳에서 좌측인 남쪽으로 빤히 보이는 대둔산 정상부를 잠시 다녀올까 말까 고민하다 오늘 등로가 어떨지 모르겠지만 산행길이가 짧으니 정상은 아니더라도 송신탑 철망까지라도 다녀오며 오래 전 만들었던 인연을 생각해 보기로 하고 바위암릉을 따라 남쪽으로 조금 걸어가니 대둔산으로 이어지는 우거진 잡목 우측 바로 아래 시멘트 포장도로가 보이고 그 뒤로 정상에 많은 인공구조물들을 이고 있는 673.5미터의 삼각점이 박혀있는 대둔산 정상부가 아침햇살을 받아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대둔산 정상부로 가면서 바위암릉에서 이제 대둔산 바로 우측인 남남서 방향을 살펴보니 현산면 황산리 구수골계곡 방향으로 흘러내린 무명의 산줄기가 길게 펼쳐지고 그 뒷쪽으로 땅끝기맥의 달마산 암릉이 톱날 형상을 자랑하듯 펼쳐 보이며 강렬한 햇살을 받아 더욱 날카롭게 빛나고 있고 그 우측 아래인 남서 방향으로는 나즈막한 산줄기가 끝이나며 현산면 마을 뒤로 남해바다가 잔잔하게 펼쳐진 모습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현산면은 전라남도 해남군의 해남반도 중남부에 위치한 면으로서 북서로는 선운산을 경계로 화산면과 경계를 이루고 북으로는 병풍산을 사이에 두고 삼산면과 접하는데 서로는 바다와 닿아 있다.
현산천이 병풍산 일대에서 발원하여 면의 남서쪽으로 흐르며 고현천을 합류한 후 구산천을 만나 바다로 유입하는데 이들 하천의 합류 지점에 넓은 평야가 발달하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해남)에 남쪽으로 처음이 30리이고 끝이 50리이다 라는 기사가 가장 오래된 기록이고 호구총수의 동리를 살펴볼 때 조선 시대에는 현산면(縣山面)과 은소면(銀所面) 및 영암군의 월경지인 송지시면(松旨始面)에 해당하는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이 이루어질 때 현산면과 은소면이 합쳐져서 현산면이 되었으며 현재 12개 법정리를 관할하고 있는데 이들 법정리는 조선 시대의 여러 동리들이 합쳐져서 만들어졌으며 대부분은 지명을 조합하지 않고 한 마을의 이름을 대표로 내세우고 있다.
그들 중에서 고현리(古縣里)는 옛 남해현의 치소가 있었던 것에서 유래하였으며 치소는 940년(고려 태조 23)에 설치되었다가 1409년(태종 9)에 해남군과 진도군이 합쳐져서 해진군(海珍郡)이 될 때 녹산(綠山)으로 옮겨갔다.
백포리(白浦里)는 백방포(白房浦)에서 유래하였는데 백방포는 줄여서 백포(白浦)라고도 하였으며 포구의 이름은 백방산(百房山)에 기원을 두고 있고 백포만(白浦灣)도 같은 기원의 지명이다.
월송리(月松里)의 향교 마을은 고려 충렬왕 때 안향(安珦, 1243~1306)이 백포만으로 들어오는 중국 사신을 맞이하기 위하여 향교를 세운 것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이제 눈을 북서 방향으로 돌리니 잠시 후 대둔산을 들렸다 새로운 산줄기 이름인 선은지맥을 따라 걸어 만나야 할 연화봉부터 저 멀리 채석장 뒤를 휘돌아 좌측의 병풍산과 태양산을 지나 선은산으로 휘어지며 이어지는 산줄기가 눈길을 사로 잡는데 또 저 산줄기를 걸으며 어떤 인연을 만들 수 있을지 궁금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사진 우측 중간쯤에는 하룻밤 묵어야 할 해남읍이 희미하게 보이고 그 뒷쪽으로 어렵게 걸었던 화원지맥의 만대산과 금강산 줄기가 제법 웅장한 자태를 뽐내며 서로가 맹주임을 자랑이라도 하듯 솟아 있어 잠시 옛추억에 젖어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한동안 그 바위암릉 정상에서 사방팔방 막힘없이 펼쳐진 환상의 풍경과 조망을 즐기고 그곳에 배낭을 벗어 둔 채 바위암릉을 내려가니 지독하게 우거진 잡목들과 산죽들이 등로를 막아 한발자국 진행하기도 쉽지 않은 환경을 만들고 있는데 늦여름철이란 계절적 요인과 맞물려 더욱 진행이 어려워 보인다.
그래도 잡목과 산죽잎에 내려 앉은 이슬방울을을 헤치며 등산복을 흥건히 적시다 보니 또 다른 바위암릉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가쁜 숨을 몰아 쉬며 지나 온 북쪽 방향을 살펴보니 방금 전 어렵게 진행해 온 잡목과 바위암릉 지나 선은지맥 분기점인 도솔봉의 군 통신시설이 보이고 그 우측 뒤 저 먼곳으로는 두륜산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는데 가까운 봉우리부터 두륜봉과 가련봉 및 노승봉 지나 오십재로 내려 앉았다가 솟구친 고계봉과 그 좌측 능선 아래 케이블카 정류장도 보이기 시작하고 두륜산 우측 뒤 더 먼곳으로는 주작덕룡의 산줄기들도 박무속에 존재감을 알리기 시작해 잠시 옛 추억에 젖어 본다.
진행 방향으로는 대둔산의 방송국 송신탑들이 조금 더 가깝게 그리고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하고 사진에 담고 등로 좌측인 동쪽을 보니 해남군 북일면의 나즈막한 산줄기들과 마을들이 산재되어 있고 고마도와 사후도란 작은 섬들 지나 고금도와 우측으로 거대한 완도가 살짝 보이기 시작하는데 완도의 전체 모습은 아직도 베일속에 숨어 보여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
고금도와 두륜산 사이로는 강렬하게 떠 오른 햇살이 남해 바닷물에 반사되어 또 하나의 햇살로 보이기 시작하고 그 뒤 저 먼곳으로는 장흥의 사자지맥 산줄기가 둘러 싸고 달리는 억새로 유명한 천관산이 군계일학의 모습으로 주위를 호령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렇게 주위 풍경들을 다시 가슴에 담고 조금 더 전진해 바위위에 올라 진행 방향인 북쪽으로 솟아 있는 대둔산 정상을 살펴보니 이제 방송국 송신탑들이 손에 잡힐듯 깨끗하게 다가와 있고 그 바로 뒷쪽으로 삼각점이 박혀있는 대둔산 정상이 보이는데 갈 수 없는 정상이니 이렇게 눈으로나마 그곳을 확인하는 시간이 아쉽기만 하다.
그곳 바위암릉에서 진행 방향으로 대둔산 정상과 방송국 송신탑들을 확인하ㅣ고 북쪽으로 방금 전 지나 온 등로와 두륜산 방향을 살펴보니 바위암릉 사이로 피어난 하얀 억새가 벌써 가을이 오고 있음을 알리고 그 뒤 저 멀리 바위암릉으로 이뤄진 선은지맥 분기점인 도솔봉은 조금 더 멀어진 모습으로 아름답게 파란 하늘에 떠 있는 하얀 구름과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 우측 뒤로는 여전히 두륜산의 두륜봉에서 가련봉과 노승봉 지나 별도로 독립된 봉우리처럼 보이는 고계봉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이 보이고 그 우측 뒤로는 나즈막하게 흐르는 화원지맥 마루금도 옛추억을 들려주며 산객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그곳 바위암릉에서 잠시 더 머물며 같은 듯 다른 아름다운 풍경과 조망들을 즐기고 다시 이어지는 지독하게 우거진 잡목과 억새능선을 헤치며 조금 더 걸어가니 드디어 우거진 억새풀 사이로 녹색 철망이 나타나고 더 이상 진행이 불가능한 곳이기에 아쉬움만 남기고 사진 몇장 담은 후 뒤돌아 서는데 녹색 철망 좌측 가장자리 방향으로 따읕기맥 산행을 하면서 어렵게 통과한 기억에 피식 웃어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우측 아래인 서쪽 가까운 곳으로 오늘 산행을 시작했던 진불암 갈림삼거리의 시멘트 포장도로가 이어지는 도로가 보이는데 그곳으로 내려가 편안하게 진행하고픈 유혹도 있었지만 벗어 놓은 배낭과 짧은 거리를 편안하게 진행하고 산행 후 후회할 것 같아 어렵게 진행한 잡목 등로를 타고 다시 도솔봉 방향으로 진행하기로 한다.
대둔산(673.5m)은 일반적으로 두륜산까지를 포괄하고 그 어귀에 위치한 대흥사까지도 휩싸고 있으며 대흥사의 원래 명칭은 두륜산 대둔사였는데 이는 대흥사와 대둔산의 깊은 관계를 말해 주고 있다.
대둔산은 기암과 반암으로 절경을 이룬 곳이 많고 완만한 경사지가 드물며 깊고 좁은 골짜기를 형성하였는데 이러한 산세의 조화는 남국의 형상을 자아내고 있으며 또 이곳은 예로부터 만년불패지지로 전해오고 있는데 역사상 전란의 피해가 거의 없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둔산 가련봉 중턱에는 북암이란 암자가 있는데 이 암자에 마애여래좌상과 삼층석탑 1기가 있으며 또한 대흥사는 서산대사의 유적으로 서산대사비가 있고 기타 서산대사와 관련된 유물이 서산대사 유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한편 근세 말에 초의선사와 김정희와의 교유관계가 유명하며 초의의 다신론과 동다송 등 저술이 여기서 이루어졌다.
이런 내용으로 보면 대둔산과 두륜산의 경계가 불명확하게 드러나 있고 두륜산을 대둔산으로 또한 대둔산을 두륜산으로 혼용해 사용되는 듯 여겨지는데 어느것이 맞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대둔산 정상은 만나지 못하였지만 오래 전 땅끝기맥 산행을 하면서 만났던 추억을 더듬으며 아름다운 풍경에 취해 걸으며 대둔산 정상 직전의 녹색 철망에서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 다시 지독하게 우거진 잡목과 억새들 사이로 보이는 바위암릉을 넘어 벗어 둔 배낭에 도착을 해 물 한모금 마시고 다시 선은지맥 마루금이 펼쳐진 등로 좌측인 서쪽을 살펴보니 드디어 내일 만나야 할 선은산 지나 좌측 뒤 끝자락으로 송평항이 남해바다로 이어지는 마지막 모습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잠시 넋을 잃고 살펴보며 많은 사진들을 남겨보는데 그 남해바다 뒷쪽으로도 멋진 산줄기 하나가 희미하게 눈에 들어 와 지도를 살펴보니 바로 진도의 진도지맥 마루금으로서 우측의 점청산과 좌측의 여귀산 줄기만 확인이 될 뿐 개별 봉우리에 대한 구별은 쉽지 않은 시간이다.
대둔산에서 선은지맥 분기점인 도솔봉으로 뒤돌아 가면서도 많은 사진과 추억을 남기며 걸어가니 이제 선은지맥 분기점인 도솔봉이 지척으로 다가와 있고 북쪽 방향으로 조금 더 상세히 살펴보니 바로 앞 암봉으로 이뤄진 도솔봉 지나 좌측인 북서 방향으로 길게 이어지는 선은지맥 마루금 좌측 아래로 대둔산 방송국 송신탑으로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도 보이고 그 우측 뒤 저 먼곳으로는 오늘 어렵게 통과해야 할 채석장 우측으로 휘돌아 다시 좌측 방향으로 돌아가는 선은지맥 마루금의 흐름이 한눈에 들어 와 바쁜 발걸음 멈추고 몇장의 사진에 더 담아 본다.
같은 풍경과 조망들이지만 담는 위치와 담는 사람이 보는 상태에 따라 모두 달리 보이는 모습들을 담으며 천천히 뒤돌아 가니 드디어 다시 군 통신시설이 서 있고 그 뒤로 앙증맞은 오석의 정상석이 박혀있는 선은지맥 분기점인 도솔봉에 도착을 하고 시간을 보니 아침 7시 12분으로 대둔산 앞 녹색 철망까지 왕복 30분이 소요되었다.
마지막 사진 한장 남기고 북서 방향으로 이어지는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지독한 잡목지대 지나 드넓은 억새평원이 펼쳐지고 그 뒤로 연화봉 지나 우측으로 채석장을 우측으로 휘돌아 좌측으로 가는 선은지맥 마루금의 흐름이 한눈에 들어 와 잠시 그 흐름을 살펴보고 사진에 담은 후 진행을 이어간다.
잠시 지독하게 우거진 잡목과 억새지대를 뚫고 내려가니 바위암반이 나타나고 그 바위를 따라 내려가며 등로 좌측인 서쪽을 보니 오늘 걸어 마무리를 해야 할 장고개가 보이고 그 좌측으로 이 산줄기의 이름을 부여하게 만든 주인인 선은산이 솟아 있으며 좌측 뒤 저 멀리 이 산줄기의 끝자락인 송평항도 보이는데 선은산부터 송평항까지는 내일 산행을 마무리하고 귀가하게 될 것이다.
그 선은지맥 마루금 뒤 저 먼 남해바다 건너편으로도 멋진 산줄기가 보이는데 바로 진도로서 지도지맥이 두부분으로 크게 나뉘어 높게 솟아 있는 듯 보여 자세히 살펴보지만 박무와 거리감 때문에 전찰산과 여귀산 이외에는 분간하기도 어려워 보인다.
이어지는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따라 걸어가며 주로 등로 좌측과 진행 방향을 살펴보고 우측으로 두륜산방향을 찾아 보지만 바로 옆 잡목들에 막혀 전혀 보이지 않아 평이하게 진행하니 하얀 억새꽃이 만발한 억새지대가 펼쳐지고 그곳에서 잠시 뒤돌아 보니 선은지맥 분기점인 도솔봉의 군 통신시설이 벌써 저 멀리 멀어지고 있다.
이제 진행 방향인 북서 방향을 살펴보니 연화봉 지나 채석장을 좌측에 두고 우측으로 휘돌아 다시 좌측 뒤로 병풍산과 태양산 지나 장고개로 이어지는 오늘 이 산객이 걸어야 할 지맥 마루금 전구간이 펼쳐지고 남쪽 저 먼곳으로는 방금 전 녹색 철망에서 뒤돌아 나왔던 대둔산 정상의 송신탑들 우측 뒤 저 멀리 땅끝기맥의 달마산 암릉이 마치 톱날처럼 날카롭게 솟아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다시 내일 걸어야 할 등로 좌측인 서쪽으로 선은산과 송평항을 살펴보고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우거진 억새꽃에 파묻힌 헬기장이 나타나고 그 헬기장 지나 진행 방향을 보니 하늘거리는 억새지대 넘어 633.9봉이 부드러운 능선처럼 다가와 있다.
약간의 이슬로 인한 물기가 남아 있어 등산복을 적시지만 지난 주 삼신지맥에서 경험한 물방울에 비하면 애교 수준이기에 올 들어 처음 만나는 환상의 억새밭을 헤치며 가을을 만끽하다 보니 드디어 등로 우측인 북동 방향으로 두륜산 전체가 한눈에 들어 오고 사진에 담으며 그 억새지대를 천천히 통과하니 등로는 다시 완만하게 오르는데 그곳에서 뒤돌아 보니 이제 선은지맥 분기점인 도솔봉 우측 뒤로 대둔산의 송신탑들이 전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하고 그 대둔산 우측 뒤로는 따읕기맥의 달마산 능선도 희미하게 펼쳐져 있다.
많은 사진을 남기고 천천히 걸어 오르니 아름답던 억새가 점점 사라지고 키 작은 단단한 잡목 사이로 산죽들이 보이면서 진행에 어려움을 느끼기 시작하고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오르니 키 작은 잡목 가지에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 몇장이 걸려있는 것이 전부인 도상 633.9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출발한다.
이정판도 보이지 않는 잡목으로 이뤄진 도상 633.9봉 지나 억새 사이로 반짝이는 지나 온 도솔봉과 대둔산을 살펴보고 사진에 담은 후 내려가니 다시 바위암릉이 나타나고 그곳으로 올라 진행 방향인 북서쪽을 살펴보니 바로 앞 용도를 알 수 없는 녹슨 철구조물 뒤로 높은 전망탑이 보이고 그 뒤로 올라야 할 연화봉이 솟아 있으며 연화봉 우측 뒤로는 조금 더 가깝게 다가와 있는 채석장 우측 뒤로 휘돌아가는 마루금이 병풍산과 태양산으로 이어지지만 그 봉우리들은 이제 연화봉에 막혀 보이지 않는다.
채석장 우측 뒤로는 해남읍의 회색 건물들이 희미하게 눈에 들어 오고 그 뒷쪽으로 이어지는 화원지맥 마루금이 잠시 옛추억을 소환하는데 저곳을 진행하면서 온 몸을 난도질 당해 한동안 치료하며 어려웠던 시간도 추억해 본다.
북서쪽으로 이어지는 진행 방향으로 선은지맥 마루금을 살펴보고 그 우측인 북쪽으로 해남읍과 화원지맥도 확인하면서 천천히 걸어 내려가니 사방팔방 열려있는 환상의 풍경들과 조망들이 자꾸만 산객의 발목을 붙잡고 늘어져 산행시간은 무한정 늘어나고 있어 시간에 대한 걱정도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잠시 후 등로 우측인 동쪽을 보니 두륜산에서 우측을 뻗어 내린 땅끝기맥 마루금이 바로 지척으로 보이고 그 넘어 위봉과 투구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넘어 남해바다를 건너면 다시 장흥의 천관산이 우뚝하지만 부드러운 모습으로 솟아 있고 그 우측으로 마량면에 솟아 있는 나즈막한 산줄기와 봉우리들이 부르지만 언제나 만날 수 있을지 기약도 할 수 없으니 그리움만 커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잠시 후 바로 옆으로 녹슨 철구조물을 지나 짧은 억새능선을 통과하니 지독하게 우거진 단단한 활엽수의 잡목들이 앞을 가로막아 힘들게 전진하는데 갑자기 빼곡하게 자라고 있는 산죽터널이 펼쳐져 순간 긴장하며 진입하니 지난 주 삼신지맥에서 고생한 산죽터널에 비하면 짧고 키도 크지 않아 금새 통과한다.
그러고 보니 오늘 짧은 산행 동안 참으로 다양한 구간을 통과했는데 도로와 산죽지대 및 바위암릉 지나 억새와 다시 지독하게 우거진 잡목과 빼곡하게 자란 산죽터널까지 지루할 틈도 없이 긴장하며 진행하는 선은지맥 산행이다.
지독하게 우거진 산죽지대를 짧게 통고하니 다시 눈 앞을 가리는 파란 잎들이 무성한 또 다른 산죽지대가 펼쳐지고 스틱으로 헤치며 그 산죽지대를 지나니 다시 잡목들이 앞을 가로막는다.
힘들게 잡목들을 헤치며 통과하니 다시 빼곡하게 들어 찬 산죽터널이 나타나고 긴장하며 진입하니 생각보다 짧게 끝이나고 직진의 잡목 등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내려가며 진행된다.
잠시 후 대흥사에서 대둔산 방송국 송신소로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나 잠시 편안하게 그 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완만하게 내려가니 진행 방향 저 멀리 올라야 할 연화봉이 올려다 보이고 좌측 뒷쪽으로는 높은 철구조물이 전망대처럼 세워져 있는데 용도는 알지 못하겠다.
직선으로 이어지는 완만한 내리막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가니 도로 양쪽으로는 재질이 단단한 키 작은 활엽수 숲이 우거져 있는데 이곳 남도 대부분의 산행에서 봤던 관목들이라 눈에는 익었는데 이름은 모르겠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도로가 우측으로 약간 휘어지는 좌측 콘크리트 수로 건너 옹벽이 보이고 그 뒤 잡목 나뭇가지에 선답자의 산행띠지가 보여 살펴보니 이곳에서 시멘트 포장도로를 우측으로 버리고 좌측 잡목들이 우거진 능선으로 오르며 진행을 해야 하는 지점이다.
능선 으로 오르기 직전 지나 온 633.9봉으로 이어지는 도로아 마루금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잡목 능선으로 진입하니 이곳 역시 굵은 참나무 아래 약간의 잡목들과 산죽등로가 이어지는데 등로 자체는 누군가 정리를 해 놓은 듯 진행에는 어려움이 없다.
한동안 잡목과 산죽 사이로 나 있는 뚜렷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갑자기 등 뒤로 조망이 열리고 살펴보니 오늘 이 산객이 걸었던 좌측의 암릉지대에서 도솔봉과 대둔산 그리고 다시 선은지맥 분기점에서 이곳 연화봉으로 이어지는 부드러운 내리막 등로 전체가 한눈에 들어 와 사진에 담고 다시 진행을 이어간다.
지나 온 등로를 확인하고 사진에 담은 후 다시 우거진 잡목들을 헤치며 조금은 어렵게 진행하니 갑자기 관목의 활엽수 가지 위에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띠지들이 걸려있는 도상 612.5봉에 도착을 하는데 최근의 다음지도에는 이곳을 연화봉이라 하였다.
혹시나 하여 연화봉을 찾아 보지만 그 어디에서도 자료를 찾을 수 없어 아쉬움을 남기는데 전국 대부분의 연화봉이 연꽃모양을 닮았다던지 아니면 근처에 연화와 관련된 지명이 있어 차용하는 경우가 있어 이곳 역시 그런 연유가 아닐지 추측만 해 본다.
연화봉 우측 뒤 저 멀리 멋진 산줄기와 봉우리들이 보여 살펴보니 향로봉 방향의 선은지맥 마루금으로서 위에서 바라 봤던 모습과는 또 달리 보여 사진에 담고 연화봉을 출발한다.
연화봉을 출발하니 등로 우측인 동쪽으로 두륜산과 고계봉 라인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그 좌측인 북동 방향으로는 해남읍과 그 뒤를 돌아가는 화원지맥이 병풍처럼 감싸듯 흐르는 모습도 한눈에 들어 온다.
다시 진행 방향으로 부드럽지만 앙팡지게 펼쳐져 있는 선은지맥 마루금을 다시 한번 더 살펴보고 내려가니 관목의 활엽수와 잡목들 사이로 산죽들이 보이는데 누군가 등로를 잘 정비를 해 놔 진행에는 전혀 어려움이 없다.
잠시 답답하게 진행하니 갑자기 등로 좌측인 서쪽 방향으로 내일 걸어 만나야 할 선은지맥 마지막 구간이 펼쳐지고 사진에 담으며 전진하니 약간의 바위들과 바위암반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바위와 바위암반을 통과하니 등로는 여전히 산죽지대로 이어지고 곧이어 커다란 바위암릉이 보여 좌측으로 우회하며 통과하니 칼바위능선으로 이어지는데 바위암릉 위로는 키 작은 잡풀들만 보일 뿐 나무 한그루 자라지 못하는 등로이다.
그 칼바위 능선에서 잠시 뒤돌아 보니 방금 전 만났던 연화봉이 벌써 저 멀리 멀어지며 하늘 위로 솟아 있고 그 좌측 뒤 저 멀리 선은지맥 분기점인 도솔봉과 송전탑을 이고 있는 대둔산으로 이어지는 부드러운 산줄기가 이 산객의 시선을 사로 잡는다.
그 칼바위 능선에서 지나 온 연화봉과 도솔봉 및 대둔산을 살펴보고 이제 진행 방향인 북쪽을 살펴보니 바로 앞 키 작은 잡목 뒤로 잠시 후 만나야 할 혈망봉과 향로봉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펼쳐져 있고 그 뒤 좌측으로 채석장이 보이는데 마루금은 저 채석장을 가운데 두고 우측으로 돌아 좌측으로 이어지고 있는 모습도 뚜렷하게 펼쳐져 있다.
그 채석장 우측 뒤로는 여전히 해남읍이 조금은 가까워진 모습으로 보이고 그 뒤를 병풍처럼 감싸고 흐르는 화원지맥 마루금이 잠시 잊고 지냈던 옛추억을 다시 들려주기 시작한다.
그 칼바위능선에서 지나온 방향과 진행해야 할 방향으로 선은지맥 마루금을 확인하고 좌우측으로도 막힘없이 펼쳐진 환상의 조망들을 즐기며 많은 사진에 담은 후 칼바위암릉 끝자락으로 걸어가 좌측인 서쪽을 보니 좌측 가장자리로 현산면 구산제가 내려다 보이고 그 우측으로 아름다운 산줄기 하나가 뻗어 내리는데 지도로 확인해 보니 무명 산줄기로서 그 산줄기 뒷쪽으로는 내일 걸어 만나야 할 선은지맥 마지막 구간인 우측의 선은산에서 좌측 중앙부 방향으로 송평항까지 전 구간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다시 잠시 발걸음 멈추고 그 마루금을 사진에 담아 본다.
천천히 그 칼바위암릉을 지나며 사방팔방 막힘없이 펼쳐진 환상의 풍경과 조망들을 즐기고 많은 사진에 담은 후 천천히 출발하니 이제 등로 우측 앞 북쪽으로 거대한 대흥사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생각보다 큰 그 규모에 놀라는 시간이다.
지그마지 몇번인가 기회가 되어 둘러 봤지만 저렇게 넓고 크다는 생각은 못해 봤는데 역시나 직접 걸어 보는 것과 이렇게 능선으로 올라 내려다 보는 것이 다름을 다시 한번 더 확인도 해 보는 시간이다.
대흥사는 두륜산의 절경을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는 절로서 창건된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대흥사에서는 신라 진흥왕 5년(544년)에 아도화상이 창건한 기록을 따르고 있는데 여러 고승들에 의해 중건을 거듭하며 교종과 선종을 모두 아우르는 대도량이 되었으며 특히 임진왜란의 승병장이었던 서산대사 이후로 사찰의 규모가 확장되었다.
절 입구에서 경내로 들어가는 울창하고 긴 숲길과 계곡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며 절이 번창하는 데 큰 공덕을 세운 서산대사를 비롯한 여러 고승들의 부도와 부도비가 있는 부도밭도 자랑거리다.
두륜산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금당천을 경계로 남원 구역과 북원 구역으로 나뉘고 다시 남원 뒤편으로는 표충사 구역과 대광명전 구역으로 나뉘어 있는 것 또한 대흥사만의 특징으로 대가람으로서의 면모를 짐작하게 한다.
북원 구역에는 대웅보전과 명부전 및 범종각 등이 있고 남원 구역에는 천불전과 동국선원 및 용화당 등의 강원과 승방이 있으며 표충사 구역에는 서산대사의 사당이 있고 대광명전 구역에는 선원으로 사용되는 대광명전과 요사채 등이 있다.
경내에 걸려 있는 현판 글씨는 조선시대의 명필가들이 직접 쓴 것으로 조선시대 서예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는데 특히 대웅보전의 현판 글씨는 추사 김정희와 원교 이광사의 일화로 유명하다.
제주도로 귀양가던 추사가 대흥사에 들러 원교가 쓴 글씨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내리게 하였는데 제주도 귀양에서 돌아오며 다시 걸게 하고 자신이 쓴 무량수전 현판은 내리게 하였는데 제주도 귀양에서 겸손의 미덕을 쌓은 것이다.
구름다리를 지나 두륜산 정상에 오르면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밭 너머로 다도해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오기에 대흥사와 함께 꼭 들러볼만하다.
외조카의 군생활과 아들의 군생활을 했던 곳이기에 산행 이외에도 몇번인가 들려 대흥사를 찾곤 했었는데 이렇게 산정에 올라 여유롭게 내려다 보는 것도 오랫만이라 기억속에 대흥사가 흐릿하기만 하다.
진행 방향 우측인 북쪽으로 내려다 보이는 대흥사까지 확인하고 다시 내려가니 산객의 키 만큼 자란 산죽 등로가 이어지는데 등로는 누군가 잘 정리를 해 놔 이제 막 키 작은 산죽들이 자라고 있어 진행에는 어려움이 없다.
잠시 더 산죽 사이로 재질이 단단하게 보이는 활엽수 잡목들을 확인하며 전진하니 갑자기 바위암릉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그 바위암릉으로 올라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지나 온 칼바위 능선 뒤로 연화봉과 도솔봉 그리고 가운데 가장 먼곳으로 정상에 송신탑들을 이고 있는 대둔산으로 이어지는 보기에는 부드러운 마루금이 길게 펼쳐져 있는데 실제 진행하다 보니 생각보다 편하지 않은 등로이다.
바위암릉에서 진행 방향을 보니 바위암릉 지나 향로봉이 우뚝 솟아 있고 그 향로봉 뒷쪽으로는 해남읍이 조금 더 가깝게 다가 와 있는데 그 해남읍 뒷쪽으로는 제법 높이를 자랑하는 화원지맥의 만대산과 금강산 라인이 옛추억을 되살리며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그 향로봉 좌측 뒤로는 채석장도 붙어 있듯 보이고 눈을 돌려 북서쪽을 살펴보니 채석장 뒤로 병풍산과 태양산 지나 좌측으로 흐르는 선은지맥 마루금이 오늘 산행 날머리인 장고개로 내려 앉았다 좌측 끝자락으로 솟아 있는 내일 만나야 할 선은산으로 솟구쳐 흐르는 흐름이 한눈에 들어 와 다시 많은 사진에 담아 본다.
바로 사진 가운데로는 현산면 덕흥리의 좁고 긴 들판이 누렇게 변해가는 가을이 다가왔음을 알리고 있어 찾아 보니 덕흥리의 자연지형은 논과 들 중심의 평야지역이다.
덕흥리(德興里)의 지명은 점이 있었으므로 거치점 또는 칸바위 더미가 있으므로 덕흥이라 이름 붙여졌으며 덕흥리의 자연마을은 덕흥, 대정, 봉림(농암)이 있는데 농암은 큰 넝바우가 있다하여 명명되었다.
현산면 덕흥리의 좁고 긴 들판 뒤로 이어지는 선은지맥 마루금을 살펴보고 바위암릉을 넘어가니 눈 앞으로 이제부터 진행을 해야 할 선은지맥 마루금이 선명하게 펼쳐지는데 바로 앞 혈망봉 넘어 향로봉이 우뚝 솟아 있고 그 뒤로 채석장과 병풍산 및 태양산이 펼쳐져 있으며 그 좌측으로 이어지는 나즈막한 산줄기가 선은산 방향으로 달려가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다가 온다.
그 향로봉 우측 뒤 저 먼곳으로는 해남읍과 그 해남읍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화원지맥 마루금이 다시 옛추억을 들려주는데 좋은 추억보다는 가시잡목으로 고생하며 난도질을 당한 기억이 더 많지만 지나고 나니 모두 고운 추억이 되었다.
등로 우측 발 아래로는 여전히 대흥사가 보여 사진에 담으며 전진하니 등로 좌측으로는 선은산과 송평항으로 이어지는 마지막 산줄기도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바위암릉 지나 조금 더 진행하니 우거진 잡목과 산죽들이 혼재되어 있는 사이로 뚜렷하게 나 있는 등로가 이어지고 잠시 더 그 잡목등로를 따르니 법광님이 산행띠지에 고도를 적어 둔 도상 512.6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한다.
잡목봉인 도상 512.6봉을 넘으니 여전히 굵은 활엽수 사이로 우거진 산죽등로가 이어지고 그렇게 한동안 별 특징없이 고도차이도 없는 평이한 산죽등로를 따르니 봉우리 같지 않은 능선 상 467.6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그 무명봉을 지나자마자 다시 바위암봉이 나타나 그곳으로 오르니 등로 우측인 동쪽의 대흥사와 그 골짜기 위로 두륜산과 고계봉이 아름답게 올려다 보이고 잠시 사진에 담으며 지맥 산행도 잊은 채 망중한을 즐기며 두륜산을 생각해 본다.
두륜산(700m)은 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과 삼산면 및 북일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소백산맥의 남단에서 남해를 굽어보며 우뚝 솟아 있는데 이 산은 주봉인 가련봉(700m)을 비롯하여 두륜봉(630m), 고계봉(638m), 노승봉(능허대 685m), 도솔봉(672m), 혈망봉(379m), 향로봉(469m), 연화봉(613m) 등 8개의 봉우리로 능선을 이루며 1979년 12월 두륜산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명칭유래로는 원래 두륜산은 대둔사의 이름을 따서 대둔산이라 칭하다가 대둔사가 대흥사로 바뀌자 대흥산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대둔산의 명칭은 산이란 뜻의 듬에 크다는 뜻의 관형어 한이 붙어 한듬이 대듬으로 다시 대둔으로 변한 것으로 풀이되며 때문에 과거 대둔사는 한듬절로 불리기도 했다.
두륜의 뜻은 산 모양이 둥글게 사방으로 둘러서 솟은 둥근머리산 또는 날카로운 산정을 이루지 못하고 둥글넓적한 모습을 하고 있다는 데서 연유한 것이다.
또한 대둔사지에 의하면 두륜산은 중국 곤륜산의 륜과 백두산의 두자를 딴 이름이라고도 한다.
대부분 종주 산행을 위해 들렸지만 두어번은 산 자체가 좋아 즐기며 올랐던 기억이 있는 두륜산이기에 다양한 기억들이 스쳐 지나간다.
바위암릉에서 등로 우측으로 대흥사와 두륜산을 살펴보고 사진에 담은 후 다시 출발하니 관목의 활엽수와 잡목들 그리고 그 사이로 산죽들이 우거져 있는 사이로 뚜렷이 나 있는 평이한 등로가 이어진다.
그렇게 한동안 더 특별할 것 없는 산죽과 잡목 등로를 따르니 굵은 참나무가 보이는 444.2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전진하니 주능선인 우측은 잡목들로 진행이 불가능해 좌측 사면 등로를 따라 진행을 이어간다.
잠시 후 관목의 활엽수와 산죽들이 혼재되어 있는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전지맥 완주를 한 대구의 이재구님 띠지가 반겨주고 곧이어 거대한 바위암봉이 나타나는데 좌측으로 우회하며 통과한다.
한동안 더 산죽등로를 따라 평이하게 전진하니 둘레길 띠지들이 걸려있는 좁은 공터가 나타나고 사진에 담고 조금 더 전진하니 선답자들의 산행띠지들이 걸려있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마루금은 직진의 바위들이 보이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등로 우측으로 대흥사로 내려갈 수 있는 갈림삼거리 지나 전진하니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지독하게 우거진 잡목 등로가 이어지고 힘들게 그 잡목지대를 빠져 나가니 바위암릉이 나타나고 그 바위암릉으로 오르니 이곳 역시 환상의 조망들이 펼쳐져 있어 잠시 많은 사진과 추억을 남기며 보이는 이름들을 불러 본다.
제일 먼저 북쪽을 보니 우뚝 솟아 있는 봉우리 하나가 보여 저곳은 선은지맥 마루금에서 벗어난 봉우리라고 생각을 했는데 지도를 펴 놓고 보니 저곳이 바로 향로봉으로서 등로는 좌측으로 돌아 오도치로 내려갔다 올라야 할 봉우리이다.
뾰족하게 우뚝 솟아 있는 향로봉을 살펴보니 갑자기 숨이 가빠짐을 느끼며 남쪽과 남남동쪽을 살펴보니 오늘 이 산객이 걸어 내려 온 저 멀리 대둔산에서 도솔봉 지나 연화봉으로 이어지는 선은지맥 마루금이 길게 이어져 내려오고 그 좌측인 남동쪽과 동쪽을 보니 대흥사 위로 두륜산과 고계봉 능선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그렇게 많은 사진들을 담고 도상 376.2봉의 이정판과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를 찾아 보지만 보이지 않아 조금은 아쉬운 마음으로 출발하려는데 바위 위 소나무 가지에 준희 선생님의 이정판이 걸려있고 그 주위로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가 걸려있어 사진에 담으며 살펴보니 누군가 이정판에 혈망봉이라 적어 놨고 다음지도를 보니 혈망봉이 맞다.
혈망봉이란 도상 376.2봉에서 많은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출발하니 다시 굵은 소나무와 참나무 사이로 잡목들이 우거져 있고 그 사이로 산죽들이 보이는 난해한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온 몸에 고통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잠시 더 잡목 등로를 헤치며 힘들게 전진하니 다시 바위암릉이 나타나고 그곳에서 대둔산과 도솔봉만 능선 우측 뒤로 살짝 살펴보고 그 우측 아래 뒤 저 멀리 땅끝기맥 상 달마산 줄기가 머리만 살짝 내밀고 있어 사진에 담아 본다.
남서 방향으로는 현산면 덕흥리 골짜기에 대각사가 내려다 보이는데 생각보다 넓어 줌으로 당겨 본 후 서쪽으로 덕흥리 마을 지나 살펴보니 내일 만나야 할 선은지맥의 주산인 선은산과 송평항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그렇게 한동안 더 주위 풍경과 조망을 살펴본 후 서쪽에서 북쪽으로 방향을 바꿔 전진하니 우거진 잡목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고 다시 바위암릉 넘어 바위너덜길이 펼쳐져 있어 조심하며 힘들게 오르는 시간이다.
바위너덜길을 조심스럽게 통과하니 관목의 활엽수들이 펼쳐진 내리막 등로가 이어지는데 갑자기 등로가 사라져 이리저리 방향만 보고 내려가도 희미한 등로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한동안 짧은 알바들을 하면서 방향만 보고 내려가니 드디어 희미한 등로가 보이더니 금새 우측에서 내려 오는 뚜렷한 등로와 만나 좌측으로 편안하게 내려간다.
잠시 후 무명묘지 한기 지나 한동안 특징없는 활엽수 등로를 따르니 갑자기 눈 앞으로 돌탑과 안내판이 서 있어 살펴보니 땅끝 천년숲 옛길이란 안내판으로 지도에는 오도치로 표기된 안부이다.
오도치는 전라남도 해남군의 삼산면 구림리와 현산면 덕흥리 사이의 고개로서 두륜산, 대둔산, 연화봉, 혈망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의 북사면 골짜기에는 대둔사(大屯寺)라는 큰 절이 있는데 그 일대에는 청산암, 관음암, 남암 등의 암자가 산재하고 있다.
고개가 대흥사의 길목에 있어서 넘으면 불계(佛界)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는 뜻에서 붙여진 지명이라고 하고 조선지형도에서 처음으로 지명을 살펴볼 수 있다.
오도치 지나 부드러운 능선으로 진입하니 굵은 소나무와 관목의 참나무들 사이로 약간의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고 그렇게 오를수록 경사도가 점점 더 가파르게 이어지며 잡풀들이 무성하게 뒤덮고 있는 무명묘지 한기도 통과한다.
묘지 지나 준희 선생님의 응원판이 걸려있다고 하는데 응원판은 구경도 못하고 오르니 다시 바위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바위암릉이 보이고 그 주위로 관목의 재질이 단단해 보이는 활엽수들이 반겨준다.
그 바위암릉을 통과해 오르니 다시 빼곡하게 보이는 관목의 활엽수와 잡목들이 우거져 진행에 어려움을 느끼며 온 몸에 극심한 고통을 느끼기 시작한다.
잠시 빼곡한 잡목들을 헤치며 힘들게 오르니 잡목들이 사라지고 관목의 활엽수들이 보이면서 잔망바위가 나타나는데 그곳으로 오르니 이곳 또한 사방팔방으로 시원한 풍경과 조망들이 펼쳐져 있어 잠시 발걸음 멈추고 많은 사진과 추억을 남겨 본다.
제일 먼저 남쪽 방향을 살펴보니 좌측 아래로 오늘 산행을 시작한 대흥사 지난 진불암 갈림삼거리부터 두륜산과 대둔산 사이의 딱밭재에서 땅끝기맥 마루금과 만나 우측의 선은지맥 분기점인 도솔봉으로 오른 뒤 그 뒤로 솟아 있는 방송국 송신탑이 보이는 대둔산을 다녀 와 이곳 향로봉 직전의 전망바위로 이어지는 부드럽게 보이는 선은지맥 마루금이 너무나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데 걸어 지나 온 속살은 전혀 그렇지 않은 겉과 속이 다름은 직접 걸어보지 못하면 알 수 없음을 다시 한번 더 절실하게 느껴 보는 시간이다.
이제 눈을 남동 방향으로 돌리니 더욱 뚜렷하게 내려다 보이는 대흥사와 골짜기 뒤로 두륜산이 보이고 좌측 위로는 고계봉과 케이블카 정류장도 보여 잠시 더 머물러 본다.
이곳 두륜산과 대둔산 산중에는 신라진흥왕이 어머니 소지부인을 위하여 546년(진흥왕 7)에 창건하였다는 명찰 대흥사가 있고 절에는 각종 문헌과 보물 및 유품 등이 많이 보관되어 있으며 대웅전을 비롯하여 천불전, 표충사, 대광명전, 침계루, 북미륵암 등이 있다.
보물로는 탑산사동종(보물 제88호)과 응진전전삼층석탑(보물 제320호), 북미륵암삼층석탑(보물 제301호), 북미륵암마애여래좌상(보물 제48호) 등이 있으며 이 밖에도 명승으로는 능허대, 백운대, 구름다리, 극락대, 학사대, 대장대, 금강굴, 흔들바위, 여의주봉 등이 있어 관광 자원이 되고 있다.
대흥사의 대웅전에서 700m 가량 정상 쪽으로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면 조선후기 대표적 선승 가운데 한 사람이며 우리나라의 다성(茶聖)으로 추앙 받는 초의선사가 그의 다선일여(茶禪一如) 사상을 생활화하기 위해 꾸민 다원(茶苑)인 일지암이 나온다.
초의선사는 이곳에서 유명한 동다송(東茶頌)과 다신전(茶神傳)을 펴냈고 다산정약용과 추사김정희와 같은 석학 및 예인들과 교류하며 쇠퇴해 가는 차문화의 중흥을 도모했던 곳으로 일지암은 한국차의 성지로도 각광받고 있다.
이곳에는 옛 정취가 그래도 살아 숨 쉬는 차나무가 심어져 있고 선다를 음미했던 다정(茶亭)이 있으며 집 뒤의 바위틈에서 솟는 물이 나무대롱에 연결된 돌물확(수조)에 담겨져 흐른다.
이 다천(茶泉)과 돌물확, 차를 끓이던 다조(돌부엌), 위아래의 연못과 좌선석(坐禪石) 등은 옛 모습대로 복원된 것이다.
일지암 편액이 붙어 있는 정자는 1980년한국다인회 회원들이 다도의 중흥조 초의가 기거했던 일지암을 기념하기 위해 복원하여 놓은 것이다.
이제 눈을 ㄴ마서 방향으로 돌리니 대둔산 아래로 흘러 내리는 무명 산줄기 뒤로 땅끝기맥의 달마산 지나 땅끝으로 달려가는 산줄기가 눈길을 붙잡고 그 우측으로는 한산면 마을과 좁은 들판 지나 내일 만나야 할 선은지맥 마지막 지점인 송평항이 보이기 시작한다.
잠시 더 그 전망바위에 머물며 많은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다시 이어지는 바위암릉을 따라 오르니 준희 선생님의 이정판이 걸려있는 도상 467.5봉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기고 살펴보니 서래야 박건석님이 걸어 둔 종이코팅지에 향로봉이라 적혀 있어 지도를 확인해 보니 국토지리원 지도에는 이름이 없지만 현대의 다음지도에는 향로봉이라 되어 있는 봉우리로서 자료를 찾아 보니 보이는 자료는 없지만 대부분의 향로봉은 향로처럼 보여 붙여진 이름이 많은데 이곳도 같은 이유였을지 궁금하기만 하다.
준희 선생님의 이정판이 걸려 있는 467.5미터의 향로봉은 나무들에 막혀 풍경이나 조망이 전혀 없기에 정상에서 사진과 추억 한장 남기고 곧바로 출발하니 관목의 참나무 아래 산죽들이 우거져 진행에 약간의 어려움을 느끼기 시작한다.
한동안 굵은 참나무 아래 산죽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생각보다 등로가 흐릿해 힘들게 전진하니 잠시 산죽이 사라지더니 다시 키가 큰 산죽지대가 짧게 나타난다.
하지만 산죽이 갑자기 사라지고 단단한 재질을 가진 굴곡진 활엽수 등로를 따르니 다시 산죽등로가 이어지고 곧이어 이재구님의 산행띠지가 걸려있는 423.5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하는데 우거진 산죽들이 등로를 침범해 생각보다 힘든 산행이다.
한동안 더 어렵게 키가 큰 산죽들을 헤치며 전진하니 갑자기 산죽들이 사라지고 우거진 잡목등로가 이어지고 곧이어 선답자들의 산행띠지들이 걸려있는 403.7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은 또한 길주의 지점으로 직진의 뚜렷한 등로를 버리고 좌측의 잡목 등로를 따라 진행을 해야 하는 지점이다.
등로 좌측인 북서 방향으로 완만히 내려가니 관목의 활엽수 아래 잡목들이 우거져 있고 등로 자체가 사라져 길찾으며 진행하는 자체가 쉽지 않은 시간이자 등로이다.
제법 키가 큰 잡목들로 앞을 살펴보며 진행하기 쉽지 않은 잡목 등로를 따르니 어느 순간 지독하게 우거진 잡목들이 사라지고 키 작은 잡풀들이 등로에 가득 파란빛을 전해주며 조금은 편안하게 진행한다.
그렇게 전진하니 굵은 소니무 옆으로 관목의 활엽수 가지에 독도님의 산행띠지가 걸려있는 무명안부에 도착을 해 다시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출발하며 완만하게 걸어 오른다.
무명안부 지나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등로 옆으로 거대한 벗나무가 서 있고 곧이어 무명묘지들이 보이는 지점에서 등로는 다시 우측인 북북서 방향으로 바꿔 진행된다.
묘지들을 지나니 굵은 참나무들 아래 이끼 낀 바위등로가 나타나고 곧이어 굵은 소나무 한그루가 보이는 지점 지나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재질이 단단해 보이는 굴곡진 관목의 활엽수들이 빼곡하게 들어 찬 지점에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띠지들이 걸려있는 도상 341.5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출발한다.
도상 341.5봉 지나 조금 더 전진하니 등로는 다시 좌측인 북서 방향으로 이어지고 잠시 바위너덜 등로를 통과하니 빼곡하게 우거진 산죽 등로로 이어지는데 산죽 사이로 등로 자체가 사라져 희미하게 남아 있는 흔적을 찾아 전진하니 선답자들도 제각각 통과를 했는지 산죽들이 제각각 휘어져 있어 짧지만 참으로 힘들게 진행하는 산행이다.
그래도 길지 않게 이어지는 산죽지대가 금새 끝이나고 굵은 소나무와 참나무들이 혼재되어 있는 푹신한 낙엽 등로를 따르니 다시 약간의 잡목 등로가 나타나고 좌측인 남서 방향으로 방향을 바꿔 걸어가니 무명묘지 지나 선답자들의 산행띠지들이 걸려있고 법광님의 띠지에 고도가 적혀 있는 도상 229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잠시 물 한모금 마시고 출발한다.
선답자들의 산행띠지들이 많이 걸려있는 도상 229봉에서 등로는 다시 남서에서 북북서 방향으로 크게 꺽여 진행되고 잠시 더 걸어가자마자 커다란 바위 지나 굵은 참나무와 관목의 활엽수들 그리고 동백나무들이 혼재되어 있는 등로로 이어진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가니 무명안부를 통과하고 몇발자국 걸어가니 묵은 비포장임도 같은 등로가 나타나는데 지도를 확인해 보니 좌측의 해남군 현산면 만안리와 우측의 삼산면 구림리를 이어주는 안부인데 지도에는 아무 표시도 없는 무명안부이다.
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 만안리는 북으로 병풍산(해발 280m)이 있고 동으로는 두륜산(해발 703m)이 뻗어있다.
만안리란 지명은 산속이 되므로 밋라라고 부르던 것이 변음되었다고도 하고 예전에 만안사라는 절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자연마을로는 만안이 있으며 주소득원은 만안 저수지의 농업용수를 이용한 쌀과 마늘이다.
전라면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는 두륜산 앞 평지에 자리한 마을로 작은 하천이 흘러 논농사가 주로 행해진다.
자연마을로는 구림, 절골, 덕촌리, 마당바웃골, 모개나뭇골, 상원암골마을 등이 있는데 구림마을은 본 리가 시작된 마을이고 절골마을은 대흥사가 위치한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덕촌리마을은 덕(언덕) 밑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부르게 된 이름이고 마당바웃골마을은 마당처럼 평평한 바위가 있는 곳이라 하여 칭해진 이름이다.
모개나뭇골마을은 모과나무가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상원암골마을은 대흥사에 딸린 상원암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구림리의 탑산사동종(塔山寺銅鍾)는 보물 제88호로 대흥사 북미륵암 삼층석탑(大興寺 北彌勒庵 三層石塔)은 보물 제301호로 지정되어 있다.
만안리와 구림리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무명안부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제법 키가 큰 동백나무가 등로 우측으로 펼쳐지고 좌측으로는 굵은 참나무 사이로 자복들이 우거진 사이로 뚜렷한 등로가 나 있어 편안하게 올라간다.
잠시 후 갑자기 잡목들과 동맥나무가 사라지고 관목의 활엽수 사이로 더욱 넓고 뚜렷한 비포장임도 같은 완만한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고 그렇게 진행하다 보니 봉따먹기 대가의 빛바랜 띠지 한장이 걸려있고 92번 송전탑이 서 있는 181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등로는 그곳에서 북서로 진행되던 방향을 북북동 방향으로 전환하며 이어지고 있다.
송전탑을 지나니 깨끗하고 뚜렷했던 등로에 잡풀과 잡목들이 자라면서 다시 발목을 잡기 시작하고 잠시 어렵게 잡목들을 헤치며 진행하니 좌측으로 이어지는 원마루금 우측 아래로 사면등로를 걷는 듯 진행되고 있어 확인해 보니 원 마루금은 잡목으로 인해 진행 자체가 불가능해 보인다.
그렇게 잠시 사면치기 하듯 걸어 진행하니 갑자기 몇장의 선답자들 산행띠지들이 걸려있어 지도와 트랙을 확인해 보니 아무 표시도 없는 무명봉인데 법광님은 띠지에 153.3봉이라 적어 놨는데 어느 지도를 보고 고도 표시를 해 놨는지 궁금해 진다.
그곳에서 등로는 다시 북북동 방향에서 북서 방향으로 방향을 틀어 진행되고 있어 길주의 지점이다.
무명봉이지만 법광님 띠지에 153.3봉으로 적혀있고 몇장의 선답자 산행띠지들이 걸려있는 봉우리에서 북서 방향으로 진행하니 굉장히 큰 기계음이 귓전을 때리기 시작하고 잠시 후 이장된 묘지터도 통과한다.
곧이어 편백나무 조림지가 펼쳐지지만 관리가 되지 않아 가시잡목들이 우거져 진행에 어려움을 느끼는데 좌측 앞 나무 사이로 거대한 채석장이 보이기 시작해 소음의 주인이 바로 저 채석장임을 알게 되었다.
다시 무명묘지가 나타나고 약간의 잡목들을 헤치며 전진하니 이동통신탑 지나 다시 채석장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금새 고산로 806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백도치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 역시 좌측의 현산면 만안리와 우측의 삼산면 구림리를 이어주는 고갯마루이다.
백도치는 전라남도 해남군의 삼산면 구림리와 현산면 만안리 사이의 고개로서 조선지형도에 지명이 처음으로 등장한다.
백토가 생산된 것에서 지명이 유래하였다고 하는데 그래서 백토치(白土峙), 백토재, 백톳골재, 점재라고도 하며 과거 백토를 가지고 도자기를 굽던 사기점이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모두 사라진 듯 보인다.
백도치를 건너 다시 능선으로 진입하니 초반부에 약간의 잡목들로 어려움을 느끼지만 금새 동백나무 사이로 뚜렷한 등로가 열려 완만하게 따라 오르니 강력한 기계음의 굉음이 여전히 귓전을 때려 귀가 아플지경이다.
한동안 뚜렷한 등로를 타고 오르니 바위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등로 좌측 옆으로 가 살펴보니 거대한 채석장 내부가 훤히 내려다 보여 몇장의 사진에 담아 본다.
또 산자락 하나가 사라지는 현장에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이겠지만 채석이 끝난 이후에는 제대로 복원을 시켰으면 하는 바램이지만 제대로 복원된 채석장을 기억하지 못하기에 이곳 역시 황폐화 되는 것은 아닌지 벌써 걱정이 앞서는 시간이다.
채석장에 관한 걱정과는 달리 오늘 선은지맥 분기점인 도솔봉에서 멀게만 느껴졌던 채석장을 좌측에 두고 우측으로 휘돌아 진행하는 지점까지 진행했음에 스스로 대견해 하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채석장을 살펴보고 사진에 담은 후 다시 오르니 바위가 나타나고 잠시 따라 올라 온 묵은 비포장임도 같은 등로를 좌측으로 보낸 후 우측 잡목 능선으로 오르니 생각보다 등로가 잘 나 있어 편안하게 오르지만 정오가 가까워지며 기온이 올랐는지 온몸에서 흐르는 굵은 땀방울은 마치 한여름 폭염속 산행처럼 느껴진다.
잠시 후 몇기의 무명묘지들을 지나 북쪽으로 방향을 바꾸니 고사목 지점을 지나 관목과 잡목들이 우거진 가파른 오르막 등로로 변하고 거대한 바위암릉이 앞을 가로막아 우회하며 오르니 많은 바위손들이 보이는 바위암릉 위로 올라 환상의 풍경과 조망들을 만나게 되었다.
제일 먼저 지나 온 방향인 남쪽을 살펴보니 사진 정중앙 우측 뒤로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대둔산 송신탑과 도솔봉 지나 연화봉과 혈망봉 그리고 향로봉 넘어 이곳으로 이어지는 선은지맥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마루금 좌측 뒤로는 두륜산과 고계봉 및 케이블카 정류장이 또 다른 위용을 자랑하며 솟아 있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이제 눈을 좌측인 동쪽과 북동 방향으로 돌리니 제법 넓은 삼산면의 들판이 삼산천을 중심으로 펼쳐지며 황금빛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하고 그 사이마다 민가들이 산재하며 민초들이 살아가는 풍경이 너무나 평화롭게 내려다 보인다.
그 삼산면 들판 넘어 우측으로는 거대한 양촌저수지 뒤로 울퉁불퉁 근육질을 자랑하는 주작산이 펼쳐지고 그 주작산 좌측으로는 덕룡산을 지나 좌측 저 멀리 만덕산 줄기로 이어지는 남도 특유의 암릉이 길게 이어지는 모습도 한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삼산면은 전라남도 해남군의 해남반도 중앙부에 위치한 면으로 해남군의 남쪽과 동쪽은 오소재, 두륜산, 연화봉, 향로봉, 병풍산 등으로 에워싸여 있고 북쪽에는 낮은 산지들이 동서로 이어져 있다.
고도가 낮은 중앙부에는 두륜산과 대둔산에서 발원한 삼산천(三山川)이 서쪽으로 흐르는데 이 하천의 양안에 농경지가 펼쳐져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해남) 등의 지리지와 청구도(24층16면) 등의 고지도에 의하면 조선 시대에는 해남군 녹산면(綠山面)과 진도군의 월경지인 삼촌면(三寸面)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1914년 두 면이 합쳐져서 삼산면(三山面)이 만들어졌으며 지명은 두 면에서 한 글자씩 빌어다가 사용하였다.
주작덕룡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땅끝기맥 마루금을 살펴보고 눈을 다시 좌측인 북쪽으로 돌리니 삼산면 들판과 삼산천 지나 서당산과 호산이 솟아 있고 그 바로 뒤로 해남읍이 펼쳐져 있는데 그 해남읍을 병풍처럼 둘러 싸 흐르는 화원지맥의 만대산과 금강산 라인이 또한 아름답게 펼쳐지며 만난지 얼마되지 않은 추억들을 꺼내 들려주기 시작한다.
지난 봄 진달래꽃이 만발하던 계절에 올라 온 몸에 생채기를 만들었지만 좋은 추억을 남기며 걸었던 마루금이기에 이곳에서 만나는 지금도 그때의 기억이 고스란히 떠 오르는 순간들이다.
이제 진행 방향인 서쪽을 살펴보니 좌측으로 흉물스럽게 깍인 채석장이 큰 입을 벌리고 서 있고 그 바로 우측 뒤로 이어가야 할 병풍산과 우측 뒤로 태양산으로 이어지는 선은지맥 마루금이 보이는데 보기와는 달리 저 능선과 봉우리들을 넘으면서 지독한 잡목과 직등의 가파른 바위암릉으로 인해 많은 땀방울을 등로에 뿌리고 힘겹게 진행을 해야 했다는 사실이다.
그래도 이렇게 채석장을 가까이에 두고 조망을 즐기며 추억을 남길 수 있음에 다시 한번 더 인간의 두다리에 대한 존경심도 가져보는 시간이다.
진행해야 할 서쪽 방향으로 채석장과 병풍산 및 태양산을 살펴보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송평항을 찾아 보지만 송평항은 앞 선은지맥의 마루금에 막혀 보이지 않고 우측 뒤 저 멀리 삼선천이 남해바다로 흐르는 모습만 살짝 눈에 들어 온다.
그렇게 잠시 더 그 바위암릉에 머물며 많은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알고 있는 산줄기와 봉우리들 이름을 불러 준 후 조금 더 걸어 북서 방향으로 진행하니 바위암릉 정상 옆 작은 잡목가지에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띠지들이 걸려있고 법광님이 띠지에 고도를 적어 둔 도상 308.6 삼각점봉에 도착을 하는데 바위 위에 박혀있는 삼각점은 인식이 불가능한 상태로 남아 있어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출발한다.
인식이 불가능한 삼각점이 박혀있지만 이정판은 보이지 않고 선답자의 산행띠지들만 많이 걸려있는 308.6 바위암봉을 내려가니 등로 우측인 북쪽으로 삼산면과 해남읍 방향으로 제법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고 그 한가운데로 넓은 삼산천이 흐르는데 들판은 이제 가을이 다가왔음을 알리며 황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그 들판 뒤로 해남읍과 화원지맥 마루금이 흐르고 그런 모습들을 사진에 담으며 전진하니 진행 방향인 서쪽과 남서 방향으로 여전히 채석장 뒤로 휘돌아 가는 병풍산과 태양산으로 이어지는 선은지맥 마루금이 선명하게 펼쳐져 있다.
남쪽과 남동 방향으로는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선은지맥 분기점부터 이곳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와 대둔산 옆으로 솟아 있는 두륜산까지 다시 한번 더 살펴보고 내려가니 다시 약간의 잡목들이 발목을 붙잡고 곧이어 산죽 등로가 이어진다.
잠시 후 예기치 못한 굵은 벗나무를 지나 조금 더 평이하게 걸어가니 관목의 활엽수들이 보이는 268.8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좌측인 남서 방향으로 방향을 바꿔 이어진다.
제멋대로 자라고 있는 듯 보이는 굵은 소나무와 참나무 사이로 관목의 활엽수들과 약간의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등로는 계속 좌측으로 휘어져 다시 남쪽으로 방향을 바꾸고 곧이어 부러진 나뭇가지들이 말라가는 무명봉도 통과한다.
좋았다가 나빠지는 잡목과 잡풀등로를 따라 어렵게 전진하니 등로 좌측 나뭇가지 사이로 방금 전 환상의 조망을 즐겼던 바위암릉의 308.6봉이 지척으로 보이고 곧이어 바위암릉 사이로 잡목들이 우거진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바위 사이로 뚜렷하고 넓은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지도에는 아무 명칭도 없는 무명안부로서 좌측의 현산면 만안리와 우측의 삼산면 충리를 이어주는 안부이다.
무명안부 지나 오르니 등로는 다시 우측인 남서 방향으로 바뀌고 약간의 바위들을 지나 잡풀이 무성한 무명묘지도 통과를 하는데 이제는 장의 문화도 바뀌어야 할 시점이 아닐까 많은 생각을 해 보는 시간이다.
이곳부터 등로에는 지독하게 우거진 가시잡목들과 칡넝굴들이 나뒹굴고 있어 참으로 난해하면서도 힘들게 진행되고 어렵게 그 잡목등로를 통과하니 이번에는 거대한 바위암릉이 앞을 가로막아 좌측으로 우회하며 오르는데 급경사 오르막 등로에 산죽들이 자라고 있어 이곳 역시 만만치 않다.
이곳에서 남양주금곡님의 전화를 받는데 준희선생님이 마지막 졸업 산행에 참석을 하신다면서 진행 상황을 확인해 보라 하셨다는데 생각만 있지 전화도 드리지 못한 상황에서 괜시리 죄송스럽고 미안한 마음에 발걸음의 무게만 더 무거워진 느낌이다.
너무나 힘들게 그 바위암릉을 우회하며 급경사 오르막 등로를 오르니 보상이라도 해주듯 환상의 풍경과 조망들이 열리고 살펴보니 드디어 이곳이 좌측인 남동 방향으로 솟아 있는 병풍산 갈림삼거리이다.
제일 먼저 북동쪽으로 방금 전 지나온 선은지맥의 308.6봉 방향을 살펴보니 채석장을 우측 아래에 두고 좌측으로 빙돌아 이어지는 마루금의 흐름이 한눈에 들어 온다.
이제 눈을 남동쪽과 남쪽으로 돌리니 좌측 뒤 저 멀리 선은지맥 분기점인 도솔봉과 대둔산 그리고 좌측 가장자리 방향으로 연화봉이 보이고 그 대둔산에서 우측 능선을 따라 내려가면 사진 정중앙 제알 딋쪽으로 땅끝기맥의 달마산 능선이 톱날처럼 날이 선 상태로 펼쳐져 있는 풍경이 눈길을 사로 잡는다.
사진 정중앙부로는 현산면 덕흥리의 좁은 들판이 황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하고 그 가운데 민초들이 살아가는 민가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 또한 친숙하기만 해 잠시 더 머물러 본다.
병풍산 갈림삼거리에서 잠시 머물며 많은 사진들을 담고 보이는 산줄기와 봉우리들의 이름을 불러 준 후 좌측인 남동쪽으로 솟아 있는 병풍산으로 향하는데 이곳 역시 약간의 잡목들이 있지만 진행에는 큰 어려움 없이 금새 준희 선생님의 정상판이 걸려있고 주위로 많은 선답자의 산행띠지들이 걸려있는 315.7미터의 병풍산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 한장 남긴다.
병풍산(315.7m)은 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 만안리와 구시리 및 현산면 원진리와 충리 및 송정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현산천의 지류인 문소천의 발원지이고 이 문소천과 수정동에서 발원한 물은 구시저수지에 유입된 후 현산천으로 유입된다.
명칭유래는 산의 모양이 마치 병풍처럼 생겼다고 한 데서 병풍산 이름이 유래되었다.
병풍산 자락인 남도석산이 있는 골짜기에 조선시대 시가문학의 대표자로 알려진 고산(孤山) 윤선도(1587~1671)가 은거하였던 수정동(水晶洞)이 있으며 고산의 대표작인 산중신곡은 금쇄동(金鎖洞)과 수정동(水晶洞) 그리고 문소동(文簫洞) 등에서 원림을 경영하며 산거생활의 흥취를 노래한 것이다.
금쇄동은 사적 제432호 해남 윤선도 유적 사적지로 지정되었고 금쇄동에는 고산 신도비와 고산 제각이 있으며 풍수지리에서 명당자리라고 하는 고산의 묘가 있다.
병풍산 자락을 돌아보는 길은 백도치에서 병풍산 지나 갓바위봉(308m), 오소재, 철탑, 삼각점봉(243.1m), 금쇄동, 고산 윤선도 묘 입구, 문소동 고산 윤선도 묘, 고산 윤선도 신도비, 산판길, 문소천, 금쇄목장 윤재준 집터, 현산면 구시리 구터마을로 이어지며 약 8시간 30분이 소요된다.
병풍산 정상에서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갈림삼거리로 뒤돌아 나오며 다시 아름답게 펼쳐진 풍경과 조망들을 살펴보며 사진에 담다보니 빛바랜 맨발님의 산행띠지가 걸려있는 갈림삼거리로 복귀해 이제는 좌측인 서쪽 방향으로 산행을 이어간다.
잠시 관목의 활엽수 등로를 따라 편안하게 걸어가니 금새 우거진 잡목과 산죽등로가 이어지고 가지가 많은 관목의 참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무명봉 넘어 재질이 단단해 보이는 활엽수 등로를 따르니 다시 바위들이 보이고 곧이어 선답자의 산행띠지가 걸려있는 지점에서 등로는 우측인 북쪽으로 크게 꺽여 진행되는 길주의 지점에 도착을 한다.
이곳 해남땅은 고산 윤선도와 인연이 깊은 곳으로 윤선도의 본관이 해남이고 자가 약이이며 호는 고산과 해옹이고 시호는 충헌이다.
1612년(광해군 4) 진사가 되고 1616년 성균관 유생으로 권신 이이첨 등의 횡포를 상소했다가 함경도 경원과 경상도 기장에 유배되었으며 1623년 인조반정으로 풀려나 의금부도사가 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낙향한 후 여러 관직에 임명된 것을 모두 사퇴했다.
1628년 42세 때 별시문과 초시에 장원하였고 왕자사부가 되어 봉림대군을 보도했으며 1629년 형조정랑 등을 거쳐 1632년 한성부서윤을 지내고 1633년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문학에 올랐으나 모함을 받고 파직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이끌고 강화도로 갔으나 청나라와 화의를 맺었다는 소식을 듣고 제주도로 항해하다 풍랑을 만나 보길도에서 은거하였지만 병자호란 당시 왕을 호종하지 않았다 하여 1638년 영덕에 유배되었다가 1년 뒤에 풀려나 해남으로 돌아갔다.
1652년(효종 3) 왕명으로 복직하여 동부승지 때 남인 정개청의 서원 철폐를 놓고 서인 송시열 등과 논쟁 후 탄핵을 받고 삭직당했으며 1657년 중추부첨지사에 복직되었다.
1659년 남인의 거두로서 효종의 장지문제와 자의대비의 복상문제를 가지고 송시열이 영수로 있는 서인의 세력을 꺾으려다가 실패하여 1660년 삼수에 유배당하였다.
치열한 당쟁으로 일생을 거의 벽지의 유배지에서 보냈으나 경사에 해박하고 의약과 복서, 음양, 지리에도 통하였으며 특히 시조에 더욱 뛰어났다.
그의 작품은 한국어에 새로운 뜻을 창조하였으며 시조는 정철의 가사와 더불어 조선시가에서 쌍벽을 이루고 있고 사후인 1675년(숙종 1) 남인의 집권으로 신원되어 이조판서가 추증되었으며 저서에 고산유고가 있다.
방향을 북쪽으로 잡아 진행하며 이곳 해남과 관련이 깊은 고산 윤선도를 잠시 생각해 보고 잡목들을 뚫고 어렵게 진행하니 이곳 역시 원 마루금은 우측 바위암릉이지만 잡목들이 우거져 진행이 불가능하기에 좌측 사면 등로를 따라 우회하는 듯 보인다.
그렇게 잠시 더 좌측으로 우회하는 사면 등로를 따르니 굵은 소나무와 관목의 활엽수들이 보이는 곳에 선답자들의 산행띠지들이 걸려있어 확인해 보니 도상 291.1봉인데 이정판은 보이지도 않고 선답자의 산행띠지를 살펴봐도 고도를 적어 둔 띠지가 보이지 않아 확인만 하고 곧바로 출발한다.
아무 표식이 없고 선답자의 산행띠지 몇장만 걸려있는 도상 291.1봉 지나 여전히 성가시게 구는 잡목들을 헤치며 어렵게 전진하니 다시 거대한 바위암벽이 앞을 가로막아 좌측으로 우회하며 힘들게 통과하니 굵은 소나무와 관목의 활엽수 아래 잡목들이 사라진 뚜렷한 등로가 열린다.
잠시 후 키가 크고 우거진 시누대 터널을 만나 걱정을 하는데 생각보다 짧아 쉽게 통과하고 부처손들이 보이는 바위암릉으로 올라 진행 방향을 보니 이제부터 올라야 할 태양산이 생각보다 뾰족하게 솟아 있다.
한동안 관목의 활엽수들이 빼곡하개 등로를 차지하고 있는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드디어 굵은 소나무에 준희 선생님의 정상판이 걸려있는 308미터의 태양산 정상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 한장 남기는데 이곳 태양산에 관한 자료가 보이지 않아 아쉽기만 하다.
현산면과 삼산면 경계에 솟아 있는 태양산과 병풍산 좌측인 남서 방향으로는 해남윤선도 유적지가 있는데 오래 전 가족들과 잠시 들려 고운 추억을 남겼던 곳이기에 기억이 생생하기만 하다.
여전히 관목의 활엽수 등로를 따라 쉽게 진행하니 갑자기 우거진 산죽등로가 나타나고 잠시 후 등로는 다시 북쪽에서 좌측인 서쪽으로 크게 휘어져 이어지는데 굵은 소나무 한그루가 잡목들에 포위당한 것처럼 보이는 무명봉도 통과한다.
그 무명봉을 넘으니 지독하게 우거진 잡목등로가 앞을 가로막으며 온 몸에 또 다른 생채기를 만들기 시작해 그 고통에 신음소리가 절로 나오는 시간이다.
극심하게 전해오는 통증을 참으며 단단해진 잡목가지들을 헤치며 힘들게 걸어가니 산너머 대장님의 빛바랜 산행띠지 한장이 걸려있는 도상 223.3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정판은 물론 다른 ㅅㄴ답자의 산행띠지도 전혀 보이지 않는 잡목봉처럼 보인다.
무한도전의 산너머 대장이 걸어 둔 빛바랜 띠지 한장이 외롭게 걸려있는 도상 223.3봉 지나 여전히 잡목들이 앞을 가로막는 등로를 헤치며 전진하니 굵은 소나무 지나 관목의 참나무 가지에 선답자 산행띠지 몇장이 걸려있고 법광님의 산행띠지에는 241.3봉이란 고도가 적혀 있어 지도를 확인해 보니 바로 도상 241.3미터의 감투봉 정상이다.
이곳 해남의 감투봉에 관한 자료도 찾을 수 없었는데 다른 지역의 감투봉은 대부분 감투를 닮아 붙여진 이름들이 대부분이라 이곳 해남의 감투봉 역시 같은 의미가 아닐까 추측도 해 본다.
도상 241.3미터의 감투봉을 지나 여전히 우거진 잡목등로를 타고 힘들게 진행을 이어가니 그래도 간간히 등로에 걸려있는 선답자들의 산행띠지에 위안을 삼아 보는 시간이다.
잠시 더 전진하니 등로 우측 앞 나뭇가지 사이로 좁은 황금들녘을 뚫고 흐르는 물줄기가 보여 살펴보니 고천암호로 흘러드는 삼산천으로서 전라남도 해남군의 옥천면 첨봉(352m) 남쪽 사면에서 발원하여 서쪽으로 흘러 고천암호로 유입하는 지방 하천이다.
상류에 자경동과 도림 마을이 있으며 도림제가 축조되어 있고 용동리의 이모 마을에서 화내천과 합류하며 양촌저수지를 이룬다.
이어서 면 소재지인 평활리 일대에서 대흥천과 구림천을 합류하고 면 소재지를 지나 서쪽으로 비교적 넓은 평야를 이루면서 화산면 연곡리 일대에서 고천암호로 유입하는데 지명은 면 지명인 삼산면에서 유래되었다.
해동여지도에는 이곳 일대가 진도 삼촌면(珍島三寸面)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이는 당시 삼산면이 진도현의 월경지였기 때문이다.
1409년(태조 9) 영암에 옮겨진 진도현을 현재의 삼산면 일원으로 옮겨 해진현이라 하였고 진도 거류민이 정착한 곳이 삼산면 일부로 진도에 속한 삼촌면이 된 것이다.
1906년(광무 10) 삼촌면이 해남군에 귀속되면서 삼촌면과 녹산면을 통합하여 삼산면이 된 것으로 동일 지도에는 이 하천을 어성천(魚成川)으로 표기하였으며 하구에 삼촌포(三寸浦) 지명이 수록되어 있다.
대동여지도에서는 진도 사포(珍島寺浦)로 기재되어 있는데 이는 삼촌(三寸)을 사(寺)로 잘못 판각한 것으로 보인다.
황금 들녘으로 변해가는 삼산면과 화산면을 가로질러 흐르는 삼산천을 살펴보고 사진에 담은 후 이어지는 잡목 등로를 뚫고 전진하니 등로는 다시 완만하게 내려가고 곧이어 굵은 참나무에 준희 선생님이 걸어 둔 모시미재라는 이정판이 보이는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모시미재에 관한 자료를 찾아 보지만 보이는 자료가 없어 모시미재가 속한 원진리를 찾아보니 다음과 같은 자료들이 보이는데 여전히 모시미에 관한 자료는 보이지 않는다.
원진리(院津里, 원나루, 원진)은 본래 진도군 삼촌면의 지역으로서 원(院)이있는 나루였으므로 원나루 또는 원진이라 하였는데 광무 10년(1906) 해남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목신리와 옹암리 일부 및 녹산면의 원진리와 대흥리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원지리라 해서 삼산면에 편입되었다.
모시미재 안부 지나 이어지는 키작은 잡목과 잡풀지대를 몇걸음 걸어가니 예쁘게 피어난 꿏무릇 몇그루가 산객의 발걸음을 붙잡는데 저 붉은 꽃이 전부 지고 나서야 잎이 펴 상사화라고도 부른다는 슬픈 꽃무릇을 사진에 담고 이어지는 잡목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오른다.
오르다 보니 이곳 등로는 묵은 비포장임도처럼 보이는데 오랫동안 관리가 되지 않아 가시잡목과 잡풀들이 우거져 일반 등로보다 진행하기가 더욱 어렵고 힘든 등로로 변해있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오르니 봉우리 같지 않은 능선 옆 관목의 참나무 가지에 몇장의 선답자들 산행띠지들이 걸려있어 살펴보니 도상 176.6봉으로 금곡님의 띠지를 확인해 봐도 이때는 고도를 적어 놓지 않았는지 깨끗하기만 하다.
별 특징 없는 도상 176.6봉 지나 몇발자국 걸어가다 등로 우측인 북쪽을 살펴보니 바로 발 아래 원진리의 작은 저수지와 마을들 지나 제법 드넓은 황금빛 들판과 삼산천이 펼쳐져 있고 그 바로 뒤 좌측으로는 167미터의 달바위산이 우측으로는 해남읍을 막고 있는 나즈막한 서당산과 호산 뒤로 해남읍이 보이고 그 뒤로 화원지맥 마루금이 펼쳐져 있는데 달바위산과 해남읍 사이 뒷쪽으로도 봉우리 하나가 아름답게 솟아 있어 확인해 보니 316.8미터의 남각산이다.
북쪽으로 해남읍 방향을 살펴보고 몇걸음 걸어가니 24번 송전탑을 만나고 그 송전탑을 지나자마자 바위암릉이 나타나는데 그 암릉에는 굵은 로프가 설치되어 있어 조심하며 따라 오른다.
계속 이어지는 바위암릉에 설치된 로프를 따라 오르니 지나 온 방향인 동쪽으로 제법 옹골차게 솟아 있는 선은지맥 마루금이 연봉을 이루며 줄지어 늘어서 있는 모습인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바로 앞 24번 송전탑 지나 176.6봉이 솟아 있고 그 뒤로 모시미재로 가라 앉았던 마루금이 무명봉으로 솟구친 후 다시 241.3미터의 감투봉과 223.3봉이 붙어 있는 모습으로 눈에 들어오고 그 우측 뒤 저 먼곳으로는 생각지도 못한 화원지맥 분기점인 첨봉과 땅끝기맥 마루금의 주작 덕룡산의 일부 산줄기가 얼굴을 내밀기 시작하는데 약간의 해무가 있는지 흐릿하기만 하다.
바위암릉에서 지나온 선은지맥의 아름다운 마루금을 살펴보고 다시 능선으로 진입하니 관목의 참나무와 소나무 아래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지만 진행에는 어려움이 없는 등로가 이어진다.
이제 등로는 다시 좌측인 남서 방향으로 이어지고 한동안 별특징없는 약간의 잡목등로를 따르니 특징없는 무명안부 지나 완만하게 오르는데 금새 해남446이란 4등 삼각점이 박혀있고 준희 선생님의 이정판이 걸려있는 도상 245미터의 삼각점봉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 한장 남긴다.
삼각점봉은 나뭇가지에 막혀 보이는 풍경과 조망이 없기에 곧바로 출발하니 굵은 소나무와 관목의 활엽수들이 혼재되어 있는 뚜렷한 등로가 열리고 곧이어 약간의 키 작은 잡목들도 등로에 보이는데 진행에는 어려움이 없다.
한동안 별특징 없는 약간의 잡목 등로를 따르니 굵은 소나무와 참나무가 보초를 서 있듯 보이는 225.4 무명봉 넘어 다시 굵은 참나무 한그루가 보이는 무명봉도 통과한다.
그 무명봉을 넘으니 갑자기 등로는 어지러워지기 시작하고 좌측인 남쪽으로 방향을 트는데 등로에는 썩어가는 굵은 고사목들로 널부러져 있어 진행에 주의가 필요해 보인다.
잠시 후 해피마당쇠님이 걸어 둔 신상의 띠지가 보이는 무명봉 지나 지독하게 우거진 잡목들을 헤치며 우측인 서쪽으로 방향을 돌리니 법광님의 띠지에 고도를 적어두고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띠지들이 걸려있는 도상 275.6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긴다.
선답자의 산행띠지들만 걸려있는 도상 275.6 잡목봉을 지나 등로는 다시 우측인 북서 방향으로 이어지고 약간의 바위 지나 관목의 활엽수와 동백나무 등로를 따르니 등로는 다시 좌측인 남서 방향으로 틀어 이어지는데 등로가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방향을 종잡을 수 없게 진행되고 있다.
잠시 후 굵은 소나무와 관목의 활엽수 및 동백나무가 보이는 무명의 안부 지나 다시 완만하게 오른 후 둔덕 넘어 내려가니 굵은 참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무명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여전히 좌측은 현산면 구시리이고 우측은 삼산면 원진리의 경계지점이다.
굵은 참나무가 서 있는 무명안부 지나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굵은 소나무와 참나무들이 보이는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잠시 후 세르파님의 띠지가 걸려있는 지점에서 등로는 다시 우측인 서쪽으로 크게 꺽여 진행되고 있어 주의가 필요해 보인다.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걸어가니 바위들이 보이고 곧이어 굵은 소나무가 잡목과 잡풀들에 둘러 쌓여 있는 듯 보이는 237.3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그곳을 지나니 보라빛 가을 야생화가 지천으로 깔려 있어 잠시 눈맞춤도 해 보고 진행한다.
잠시 후 나즈막한 무명안부 지나 오르니 굵은 소나무와 작은 바위가 보이는 204.2 무명봉에 도착을 해 지도를 살펴보니 바로 앞으로 구시터널이 지나는 곳으로 그 아래 도로를 달리는 차량들의 굉음 소리도 가끔 귓전을 때리고 있다.
무명봉 지나 남서 방향으로 조금 더 걸어가니 굵은 참나무 아래 키 작은 참나무가 혼재되어 있는 내리막 등로가 이어지고 구시터널을 통과하니 그동안 잠잠하던 바람이 불어 와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을 말려주고 있어 조금은 여유롭게 진행하는 시간이다.
그렇게 잠시 더 약간의 잡목들을 헤치며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준희 선생님의 이정판이 걸려 있는 오십치 안부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긴다.
오십치는 전라남도 해남군의 현산면 구시리와 삼산면 원진리 사이의 고개로서 조선지형도에서 처음으로 지명이 등장하며 현산면 북쪽 병풍산에서 서쪽으로 뻗은 산줄기에 있다.
산이 험하고 수목이 울창하며 도둑이 숨어서 행인을 괴롭히므로 50명 정도의 많은 사람이 모여서 넘었다고 한 데서 지명이 유래했다고 전해지며 현재는 이 구간에 구시터널이 뚫려 4차선 도로가 지나고 있다.
관련 지명으로 고개 남쪽에 오시골과 오십리가 있고 오십리는 조선지형도와 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에는 기록되어 있지만 호구총수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다.
어딜 가나 유사한 전설이 내려오는 좌우 양쪽으로 뚜렷한 등로가 보이는 오십치 안부를 지나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관목의 참나무 등로에 쓰러진 굵은 소나무 고사목들이 보이고 조금 더 걸어 오르니 썩어가는 고사목들까지 등로에 널부러져 있어 진행에 주의가 필요해 보인다.
잠시 후 우거진 잡목이 나타나고 어렵게 그곳을 빠져 나가니 다시 고사목들이 등로를 가로막고 불어오는 바람에 더위를 식히며 조금은 여유롭게 능선 등로를 따르니 법광님의 띠지에 207봉이란 고도가 표기되어 있어 지도를 찾아 보지만 국토지리원 지도에는 높이 표시가 없는 무명봉이다.
법광님이 띠지에 207미터로 표기된 무명봉 넘어 평이한 활엽수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빛바랜 신경수님의 산행띠지가 반겨주고 다시 거칠어졌다 좋아지는 관목의 참나무 능선 등로를 따라 조금은 빠르게 전진하니 다시 지독하게 우거진 산죽등로가 보이는데 등로를 찾아봐도 보이는 등로가 없으니 몸으로 밀치며 빼곡한 산죽밭을 통과하여 바위암릉으로 오른다.
그곳에서 등로 좌측인 남동쪽을 살펴보니 방금 전 통과한 구시터널을 지나는 13번 땅끝대로 건너 저 멀리 오늘 아침에 산행을 시작한 대둔산과 선은지맥 분기점인 도솔봉이 보이고 그 좌측 옆으로 울퉁불퉁 근육질을 자랑하는 두륜산 연봉이 함께 펼쳐져 있어 사진에 담고 진행한다.
바위암릉에서 지나 온 선은지맥 마루금과 두륜산을 살펴보고 다시 능선으로 진입하니 산죽등로가 열리고 곧이어 비실이부부님의 산행띠지가 반겨주는데 바람이 세차게 불며 오전보다는 훨씬 좋은 산행 조건을 만들어 줘 산행 막판에 많은 도움을 받는다.
이제 잡목들도 많이 사라진 관목의 참나무 등로를 타고 약간의 잡풀들이 보이는 뚜렷한 등로를 따르니 자연화 되어 가는 묘지처럼 보이는 잡풀들이 무성한 176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약간의 억새 능선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바위암릉이 다시 나타난다.
잠시 후 바위암릉 옆 잡목 가지에 최근에 걸어 둔것처럼 보이는 조진대 고문님의 산행띠지가 보여 사진에 담고 그 바위암릉인 179.8 무명봉에서 잠시 발걸음 멈추고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기고 진행을 이어간다.
제일 먼저 남쪽을 살펴보니 오늘 산행을 마무리할 장고개는 좌측 나뭇가지들에 막혀 보이지 않고 내일 새벽에 올라 만나야 할 선은지맥 마지막 구간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중앙부에 솟아 있는 이 산줄기의 이름을 부여받게 한 선은산으로 이어지는 모습이 한눈에 펼쳐진다.
저 선은산 우측 뒤로 흐르는 산줄기 끝자락이 처음에는 내일 산행을 마무리해야 할 송평항이라 생각했는데 어딘지 이상해 지도를 펴보니 평호리 삼마도선착장으로서 송평항은 선은산 정상 뒷쪽으로 펼쳐져 이곳에서는 보이지 않는 듯 하다.
선은산을 살펴보고 이제 다시 우측인 서쪽으로 크게 방향을 바꾸는 등로를 따르니 바위암반은 여전히 이어지는데 그 안반 위로 자라고 있는 키 작은 잡풀들이 이곳이 흙인지 바위인지 분간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잠시 후 다시 관목의 참나무들과 약간의 키 작은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등로로 이어지더니 갑자기 지독하게 우거진 잡목등로가 앞을 가로막아 진행에 어려움을 느낀다.
힘들게 지독하게 우거진 잡목들을 뚫고 다시 온 몸에 생채기를 만들며 전진하니 해피마당쇠님이 띠지 한장 걸어 둔 165.9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에서 등로는 다시 서쪽에서 좌측인 남쪽 방향으로 크게 꺽여 진행되는 길주의 지점이다.
이제 오후 5시 30여분이 지나면서 산행 날머리인 장고개가 멀지 않아음을 알기에 조금 더 힘을 내 남쪽으로 걸어가니 여전히 굵은 소나무와 참나무 아래 잡목들이 우거져 있고 조심하며 그 잡목지대를 통과하는데 자세히 보면 그동안 선답자들이 지나간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어 길찾기에는 어려움이 없다.
조금씩 뚜렷해지는 잡목 등로를 타고 조금 더 걸어 전진하니 키 작은 참나무들과 잡목들 사이로 좁은 공터가 보이는 157.7 갈림삼거리봉에 도착을 하는데 지도를 보니 우측인 서쪽으로 드디어 오늘 마지막 봉우리인 171.7 삼각점봉을 다녀올 수 있는 갈림삼거리 무명봉이다.
고민할 것도 없이 배낭 내려 놓고 물 한모금 마신 후 곧바로 우측인 서쪽 방향으로 마지막 171.7 삼각점봉을 만나기 위해 출발한다.
서쪽으로 이어지는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는 등로를 따라 들어가니 등로 좌측인 남쪽 방향으로 내일 걸어 만나야 할 구시리 넘어 선은산과 그곳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사진에 담다 보니 금새 주위가 정리되고 관목의 소나무에 준희 선생님의 이정판이 걸려 있으며 그 아래 해남404란 4등 삼각점이 박혀있는 오늘 산행의 마지막 봉우리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을 남긴다.
이곳 정상부 역시 나뭇가지들에 막혀 풍경과 조망이 없기에 정상부만 사진에 담고 곧바로 뒤돌아 나오는데 나오면서 살펴보니 선은산을 중심으로 좌우측까지 황금들판으로 변해가는 풍경들이 눈에 들어온다.
마지막 171.7 삼각점봉을 다녀 와 벗어 둔 배낭이 있는 갈림삼거리봉으로 뒤돌아 내려가며 등로 우측을 보니 선은산 좌측인 남서 방향으로 화산면 마을과 황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들판이 너무나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그 뒤 저 멀리 남해에 떠 있는 작은 섬들 우측 뒤로 진도와 진도지맥 산줄기가 펼쳐져 있는데 진도에서 두번째 높은 458.4미터의 여귀산이 보일듯 말듯 펼쳐져 있어 몇장의 사진에 담아 본다.
이제 눈을 돌려 북서방향을 살펴보니 바로 발 아래 거대한 화산면 연정리의 연화지가 푸른 물을 가득 담고 내려다 보이고 그 바로 뒷쪽으로 무명봉 넘어 170.7미터의 금성산이 솟아 있으며 그 우측 뒤 저 먼곳으로는 지난지 얼마되지 않은 화원지맥의 나즈막한 산줄기가 하늘금과 맞닿아 있는 모습으로 펼쳐져 있어 옛 추억을 떠 올려 보지만 비산비야로 이어지는 황산면 방향의 산줄기에 대한 특별한 기억은 없다.
잠시 더 걸어 진행하며 이제는 남동 방향을 살펴보니 나뭇가지 위 저 멀리 대둔산과 도솔봉 그리고 두륜산으로 이어지는 남성미 넘치는 산줄기와 봉우리들이 마치 하나의 산군을 이뤄 서 있는 듯 아름답게 펼쳐진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그렇게 나뭇가지 사이로 주위 풍경과 조망들을 즐기며 진행하니 등로 우측인 남쪽으로는 여전히 선은산과 그곳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펼쳐져 있고 사진에 담으며 진행하니 벗어 놓은 배낭이 보이는 171.7 삼각점봉 갈림삼거리로 뒤돌아 와 물 한모금 마시고 벗어 둔 배낭 찾아 다시 우측인 남동 방향으로 마지막 진행을 이어간다.
잠시 진행하다 진행 방향 우측 앞을 보니 남동 방향 저 멀리 오늘 산행을 시작한 대둔산과 도솔봉 그리고 그 좌측으로 두륜산이 솟아 있고 그 앞으로는 뾰족하게 올랐던 향로봉이 제법 높은 높이를 자랑하듯 솟아 있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진행 방향인 남동 방향으로 오늘 새벽에 산행을 시작한 대둔산과 도솔봉 및 두륜산이 보인다는 것은 그만큼 선은지맥 마루금이 진행 방향 좌측으로 크게 휘어져 진행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는 듯 하다.
힘들고 고생스럽게 진행한 산행이기에 그 막바지에 접어 드니 시원함보다는 아쉬움이 큰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지나온 마루금을 조망하고 다시 이어지는 지독하게 우거진 잡목들을 헤치며 어렵게 전진하니 이제 등로 우측 진행 방향으로 잠시 후 만나야 할 장고개 방향에서 내일 새벽에 올라야 할 선은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 우측 끝자락에 선은산이 솟아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진행 방향으로 선은지맥 마루금과 선은산을 살펴보고 조금 더 걸어가니 다시 우거진 잡목등로가 나타나고 조심하며 완만하게 내려가니 등로 우측 앞으로 멋진 건물들이 보이고 그 뒷쪽으로 내일 걸어야 할 선은지맥 마루금이 좌측에서 우측으로 이어지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 온다.
잠시 더 잡목등로를 헤치며 내려가니 드디어 그 보였던 건물 뒷쪽으로 내려가는데 자세히 보니 공장 건물이었다가 폐쇄된 상태인 듯 보인다.
흉물스럽게 인적이 끊긴 건물 좌측 옆으로 보이는 비포장임도를 따라 마지막 장고개로 내려가는 발걸음이 가볍기만 하다.
폐쇄된 공장 건물 좌측 옆으로 나 있는 비포장임도를 따라 내려가니 밭경작지 지나 시멘트 포장도로로 변하고 곧이어 이동통신탑과 새벽에 주차시킨 애마가 빤히 내려다 보이는 해남화산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장고개에 도착을 하는데 도롯가에는 장고개라는 버스정류장 표지판도 서 있다.
장고개에 관한 자료를 찾아 보지만 보이는 것이 없어 장고개가 속한 구시리를 찾아 보니 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 구시리는 들과 골짜기가 많은 지형이며 구시리란 지명은 아흐렛날에 서는 시장이 있어서 구시(九市)라고 부르던 것에서 유래하였다.
자연마을로는 구시리, 구터(쟁그렁이, 쟁기동), 대정걸, 상구시, 새터, 선적동, 아래장터, 양짓몰, 원천리, 장구재, 중촌리가 있는데 구터는 원천 북쪽 구렁진 곳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원천리는 수원이 좋아서 생긴 이름이다.
선적동은 일부가 구시저수지에 수몰되었고 장구재도 구시저수지에 잠겨 사라졌으며 금쇗골에는 조선 인조 때의 학자 고산 윤선도의 무덤인 운고산묘가 있다.
현산면 구시리와 화산면 방축리의 경계지점인 장고개에 도착을 해 배낭 정리하고 등산복 상의를 갈아 입은 후 해남의 반도모텔을 예약하고 출발하기 앞서 내일 진행을 해야 할 들머리를 확인해 본다.
장고개에서 오늘 하루 산행을 마무리하고 배낭 정리한 후 해남읍에 있는 모텔까지 예약하고 출발하려다 내일 새벽에 올라야 할 들머리를 살펴보니 도로 건너 지독하게 우거진 칡넝굴이 뒤덮고 있어 초반부터 쉽지 않은 산행임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산행 들머리까지 확인하고 애마를 몰아 해남읍으로 출발하며 구시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 방축리를 찾아보니 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 방축리는 논과 들이 많은 지역이며 방축리란 지명은 방죽이 있으므로 방죽몰 또는 방축이라 부르던 것에서 유래하였다.
자연마을로는 가장, 방축, 석전, 마명, 중앙이 있는데 석전은 석전이 많아 붙여진 이름이다.
방축리 137번지는 백로와 왜가리가 서식하는 곳으로 1968년에 천연기념물 제 210호로 지정된 백로서식지가 있고 전남기념물 제 115호로 지정된 지석묘군이 있다.
산행거리는 길지 않았지만 바위암릉과 지독한 가시잡목 그리고 산죽들로 인해 쉽지 않은 산행을 마치고 해남읍으로 들어가 모텔에서 샤워 후 홀로 삼겹살 2인부에 소맥 몇잔으로 저녁을 해결하고 모텔로 뒤돌아 가 사진 정리한 다음 내일 산행 등로를 확인하고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대부분의 선답자들이 이른 봄에 진행을 한 이유를 절실히 깨달았지만 막바지 지맥 산행을 이어가다 보니 선택권이 사라지고 그저 남아 있는 산줄기를 마무리하다 보니 오늘처럼 길지 않은 등로에서 고생하며 온 몸을 난도질까지 당하는 상황이 되었지만 스스로 좋아 하는 산행이니 후회는 없다.
남아 있는 내일 산행도 무탈하게 마무리하고 조금 이른 시간에 귀가할 수 있기를 희망해 보지만 늦으면 중간에 쉬면서 잠도 자고 느긋하게 잘 마무리나 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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