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도 해도 너무 하네
남상선 / 수필가
3월 말경 대전 나진요양병원에 지인 문병을 갔다. 휴게실에 들어서자 거기에는 이집 저집 환자들과 가족들이 무료한 시간을 달래며 TV를 시청하고 있었다. 그곳은 세상사 잡다한 이야기들이 오가는 재래시장 같았는데 그중 하나를 들어 세인의 가슴에 타산지석의 돌을 던져보고자 한다.
몇 달 전에 나진요양병원에 87세 된 할아버지가 입원을 했다. 할아버지 아들은 재력도 있고 사회적 지위도 괜찮은 서울서 사는 사업가였다. 몇 달 만에 사업가 아들은 아내를 어떻게 꼬드겼는지 전례 없이 그 아내가 시아버지 문병 오는 남편 차에 탔다. 남편은 운전을 하고 아내는 말벗으로 옆 조수석에 타고 있었다. 그들은 보통 사람으로서는 엄두도 못내는 비싼 외제 승용차를 타고 왔다. 조수석에는 근사하게 차린 귀부인 티가 나는 아내가 타고 있었다. 화사한 차림의 아내는 수백만 원짜리 명품 가방에 최고급 다이아 보석 반지를 끼고 있었다. 제법 값이 나가는 유명 연예인들이나 하는 목걸이에 최신 의상도 빼놓지 않았다. 거들먹거리고 앉아 있는 폼에 여전히 흐르는 오만 기는 보통내기가 아닌 것 같았다. 오만한 데다 사람 우습게 여기는 보물단지는 어디서 모셔온 명품인지는 몰라도 다이아 보석반지 이상으로 소중히 간직하고 다녔다. 주차는 병원 건물 아래 있는 주차장에 했지만 며느리는 내리지 않고 조수석을 지키고 있었다.
값이 비싼 외제차라 불안해서 그랬던지 외제 명품으로 둘둘 감은 부인은 그냥 조수석에 앉아 차를 열심히 지키고 있었다. 아들만 내려 병원 건물 요양 동으로 가고 있었다. 아들은 건물 7층에 있는 아버지 입원실로 가는 엘리베이터 7층 숫자를 눌렀다. 여느 땐 순서를 기다려야 탈 수 있었던 엘리베이터가 그 아들이 탈 때쯤은 두 세 사람 정도밖에 없었다. 아들을 빨리 보고 싶어 하는 할아버지 마음을 하늘도 헤아려 주시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가족이 그리워 자고새면 복도통로에 휠체어를 타고 나와 창밖 너머로 보이는 고향 하늘 쪽 산만 바라보고 한숨 쉬며 일과처럼 눈물을 흘리다가 오늘 당신의 핏줄인 아들을 만나게 되었다. 오매불망 그리던 당신의 혈육을 만났으니 얼마나 반가웠으랴!
휠체어 탄 할아버지 한 쪽 팔에는 링거 수액이 들어가는 주사바늘이 꽂혀 있었고 다른 한 손은 아들 손을 붙들고 놓을 줄을 몰랐다. 글썽이는 눈물을 주체 못하면서도 손을 놓았다간 다시 헤어진다는 두려움에 손을 놓지 못하는 것 같았다.
가족이 그리워 아니, 당신의 핏줄인 아들이 반가워 손을 놓질 못하는 할아버지는 아들과 이런 저런 얘길 하다 보니 시간이 벌써 30분이나 흘렀다. 조수석에서 내리지 않고 있던 며느리가 10분이 멀다하고 시계를 쳐다보고 또 쳐다보고 하다가 울화가 치미는지 시아버지 입원실에 있는 남편에게 핸드폰으로 전화를 했다.
차에 앉아 있는 며느리가 남편한테 하는 말이
“빨리 갔다 오랬더니 뭐 하느라고 아직까지 안 내려와! 병실서 살 거야 아이 속 터져.... !”
기가 막힌 노릇이었다. 며느리란 존재가 병원 주차장까지 왔으면 입원실까지 가서 시아버지 뵙는 것이 당연지사이거늘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행동이었다. 사람 같은 사람이라면 동네 사람이 입원해 있어도 찾아가 보는 것이 상례이거늘 그 며느리는 딴 남만도 못하였다. 병환 중에 있는 시아버지는 안중에도 없고 남편 안 내려온다고 남편을 풀 먹은 강아지 나무라는 식이었다. 함께 사는 사람이, 사랑하는 남편이라면 그 남편은 할아버지 아들 아니고 하늘에서 떨어진 사람인가!
어찌 사람으로서 이럴 수가 있으랴!
며느리는 말만 사람이지 짐승만도 못한, 집에서 기르는 말만 할 줄 아는 짐승임에 틀림없었다. 차림새는 화려한 귀금속과 돈으로 칠하고 바르기는 했지만 인면수심의 희귀 동물임에 틀림없었다. 겉은 화려한데 심성은 쓸 만한 어떤 구석도 없었다. 그야말로 비단보에 개똥을 싼 격이었다. 사람이라지만 사람다운 모습은 약에 쓸려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우리 주변엔 사람냄새 풍기며 칭송받고 사는 며느리들도 많건만 이 며느리는 보석반지를 대가로 받고 악부(惡婦) 악처를 대역하려고 나온 짐승이련가!
손에 들고, 입고, 바르고 칠한 것에 목과 귀에 매단 일체의 것이 외제명품이었는데 가히 볼 만한 꼴불견이었다. 몸뚱이만 국산인 그 짐승이 얼까지 외제로 바뀌어서 시아버지도 몰라보는 냉혈동물이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산과 들과 집에 사는 짐승들한테서는 짐승냄새가 난다. 이런 논리라면 사람한테서는 사람냄새를 풍겨야 정상이 아니겠는가! 사람한테서 사람 냄새나지 않고 동물보다 못한 역겨운 냄새가 풍기는 세상이 되는 것 같아 가슴 아프기 그지없다.
아니, 냉혈동물이 많이 양산되는 현실 속에 모든 것이 가슴 없는 기계로 동화되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시아버지 입원한 병원 문턱까지 와서 귀하신 몇 발자국으로 시아비 앞에 10원어치만 얼굴을 내밀었어도 냉혈짐승만은 면할 수 있었을 텐데.
해도 해도 너무 하네.
“ 빨리 갔다 오랬더니 뭘 하느라고 아직까지 안 내려와 ! 병실서 살 거야 아이 속 터져....”
이런 말을 하는 짐승이 가슴가진 사람인가, 아니면 더운 피 모르고 사는 냉혈동물인가, 강장동물인가‥ ! ! !
이 며느리가 원래 짐승은 아니었건만 해도 해도 너무 하네
제발 제발, 지구촌의 얘기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첫댓글 한달에 한번
휴가를 나오는 남편이
집에는 안오고
어머니 병실로 발길을!
아이들이 기다리는데
나도 보고 싶은데 어쩌나
할수 있나 내가 올라가야지
그리하여 들린 병실에서
어머니는 안보이고
남편만 바라봤던 제모습이
순간 떠오르네요.
그러던 어느날
불현듯 운전대를 돌려
시어머니와
한 이불을 덮고 잠들었는데,
어머니도 여자
나도 여자인데...
맘이 짠하고 울컥하여
어머니 가슴에 손을 얹고
맘속으로 기도를...
주여
긍휼한 맘 내게 주소서!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많은 우리 사회입니다 이웃을 둘러봐도 그런 사람들이 꽤 있더라구요 조금만 바꿔 생각하면 미움이 애처러움으로 바뀔텐데 그게 그리 힘든가봐요 더운 날씨에 건강 잘 챙기세요
할아버지의 마음과 너무 대조되는 며느리마음을생각하니 할아버지가 무척 안쓰럽고 그 모습을 보고도 뭐라 하지 않는 아들의 모습이 화가 납니다,,사람한테는 사람냄새가 나야하는게 맞는데 그렇지 않는 사람도 있네요,,
정진숙 시인님, 성의모님, 김정아님, 졸작 수필을 애정어린 관심으로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공사간 많이 바쁘실텐데 성원으로 저에게 힘이 돼 주시어 더더욱 감사합니다.
가뜩이나 인간성 상실이 돼가는 시대에 <비단보에 개똥 싼 여인>과 같이
경종의 대상으로 사는 삶은 살지 말아야 겠습니다.
세 분의 관심 사랑에 다시 한 번 고마움을 표합니다.
남상선 수필가님께서 잘 지적하여 주셨습니다
세상이 그렇게 흘러가고 있으니
사람의 마음밭을 바꾼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피보물 된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께로 돌아가 그분의 마음을
닮아야 될줄 믿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수고 많으셨어요
혹시나 저도 그런 며느리가 되어가고 있는건 아닌지 되돌아봤습니다. 정말 사람 냄새나는 사람으로 살도록 더 노력해야겠어요^^
오늘 11시에 아들이 온다했는데 두고 봐야겠습니다. 며느리도 오는지.
봉투라도 두툼이 가져온다면 사람 냄새가 날터이고, 그냥 온다면 그게 며느리가 할짓입니까?
박부기 시인님, 팡세님, 김용복 형님, 세상 걱정 같이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모듀의 걱정이 사람냄새 풍기며 사는 현실에 기여하는 요체로서의
버팀목과 초석이 되어 줄 것을 간절히 소망합니다.
바쁘실 텐데 관심 사랑 주시어 감사합니다.
늘 한결같을 거라고 착각하는게 인간인가 봅니다. 사람 냄새나는 세상... ...
아들 손을 잡고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아버지의 모습을 상상하니 마음이 짠해지네요.
그 며느리는 본래 그런 맘씨를 타고 난 것인지 아님, 차츰 그리 되었는지...
며느리 입장에선...
전 시집을 가서 가족처럼 여기고 섬겼건만 시댁식구들은 그리 생각하지 않음을 느끼고 많이 힘들었습니다.
4년을 시어머님 병간호를 하면서 아이들을 돌보지도 못하고 최선을 다해 했건만 병원 한번 들리지도 않는 시누이들은 자격이 안되서 하지 못하는 임상실험을 제탓인양 니 친엄마 아니냐고 그것밖에 못하냐는 말에 모든 힘이 빠져 병까지 들더군요.. 배신을 당한 듯한 상실감에 빠져 힘겨운 나날들이었습니다. 어째든 나중엔 진실은 밝혀지게 되어 지금은 시댁식구들이 저에게 모두 의지하고 있지만 그때는 무척 힘들었습니다.
어쨌든 선생님 글 속 며느리가 하는 행동은 참 잘못된 것이지요.. 어떤 일이 있어도 시부모에게는 그런 행동을 해서는 안되지요..
더욱 편찮으신 분께는 ...
제 글에 관심과 사랑을 보여 주신 장유라님, 태민 시인님, 감사합니다.
인간성 상실을 걱정하는 세상에 태민 시인님과 같이 귀감으로 사시는 분들이
많아야 할 터인데 ....
장유라님과 같이 착하게 사는 분들이 많아야 보다 밝은 사회가 빨리 올 텐데....
앞으로도 우리 사람냄새 풍기며 사는 현실을 위해 같이 걱정해 주시는
삶이었으면 합니다.
장유라님, 태민 여사님 갑사합니다.
해도 해도 너무한~며느리보다
따스한 마음으로
잘 해드리고 있는 며느리들을 주변에서 많이 보고 있습니다.
작가님 수필 속의 며느리는
아주 드물 걸요.
네 분 다 하늘에 계시지만
저도 돌아다 보았습니다.
더 해드리지 못한 아쉬움이 많네요!
더위에 건강하게 지내시와요.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입니다. 누굴 탓할 수도 난 절대 아니다고 자신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의 며느리, 누군가의 사위로 다들 얼마나 잘하고 사셨는가요? 자신의 입장에서 행동하니 노여움을 가질 필요도, 왜 저렇게 사는지 비난할 수도 없습니다. 자칭 '나는 저렇지 않아' 라고 자신하는 사람 본연도 이기적이기 때문입니다~
정말 싹아지 없는 며느리,
아들이 바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