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천사들이 이르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요20:11~15).
11절.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그러나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푸려 무덤 속을 들여다보았다. “울다”는 헬라어로“클라이오klaio”인데 불확실한 유사어에서 유래한 것으로“울다, 슬퍼하다, 비탄하여 하다, 곡하다”을 뜻한다.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큰 소리를 내어 우는 것을 말한다. 그 여인은 누가 주님의 시체를 훔쳐 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20: 2, 13, 15).
12절.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아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편에 앉았더라.
이때 그 여인은 무덤 속에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있는 것을 보았다. 성경에서 천사가 나타날 때 사람들이 생각하는 날개를 달고(사6장)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보통 젊은 남자로 나타난다. 이런 광경을 처음 목격한 마리아에게는 충격이었고 어리둥절한 가운데 있을 것이기 때문에 복음서 기록자들이 조금씩 차이가 있게 기록한다.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 일치된 기록을 전하는 것이 더 이상할 것이다. 또한 마리아가 전해준 이야기를 제자들의 상상이 포함되어 이렇게 기록되었을 것이다. 마태는 "주의 천사가 하늘로서 내려와"(마28:2), 마가는 "힌 옷 입은 한 청년"(막16:5), 누가는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눅24:4)으로 각기 기록했다.
13절. 천사들이 이르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이르되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천사들이 가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여인은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그들의 질문에 대답했다. 마리아는 예수아 주님의 십자가 처형을 목격하고 그 처참함과 슬픔이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무덤에 둔 예수아 주님의 시체가 없어졌다는 것은 또 한 번의 기막힌 일이었다. 우리는 예수아 주님을 사랑하고 따라다닌 그의 슬픔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천사도 그의 슬픔에 제일먼저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천사가 그가 우는 슬픔을 몰라서 물은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부활을 모르고 슬퍼하느냐”의 뜻이었다(눅24:5, 6).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는 처음에 무덤에 함께 왔던 다른 사람이 있었던 것과 달리 "내가" 1인칭 대명사를 사용하여 아무도 없고 혼자임을 말해준다.
14절.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아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아이신 줄은 알지 못 하더라.
그 여인은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아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그가 새벽이라 어두워서 그랬는지 어떤 소리 때문에 그랬는지 또는 그 사람에게 관심이 없어지인지 모르지만 예수아주님 이신 줄 알지 못했다. 부활하신 예수아 주의 몸은 이전의 몸과는 다른 상태 즉 영적인“썩지 않는 영원한 몸”이었다(고전15:51-53). 마리아뿐만이 아니라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들(눅24:13-16), 해변에서 제자들(요21:4)도 처음에는 그 분을 몰라보았다. 예수아 주님의 제자들이나 유대인들 역시 예수아의 부활 사건의 첫 증인이 그들의 생각에 보잘것없는 한 여인이었다는 사실을 꾸며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5절. 예수아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 가리이다.
예수아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예수아께서도 13절에 천사가 마리아에게 질문한 것과 같은 내용으로 물으셨다. 마리아는 이 때 까지도 동산지기인 줄로 알고 있었지 예수아 주님이라는 사실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이른 아침에 무덤 주위에 있을 사람은 “동산지기”였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주여 당신이 옮겨갔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 가리이다. 여기서 "주여"는 헬라어로“퀴리에Kuvrie로”퀴리오스kuvrio“와 다르다 일반적인 존칭어로 사용되어 그저 주인님이라고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