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에세이: <곰팡이 낀 내 문학 오두막에 통풍을 하며> 6
(마지막 회)
운명처럼 찾아온 인연들
긴 세월 방치했던 내 문학의 오두막. 그 폐허의 문고리를 잡고 동동대는 내게 운명처럼 다가와서
도움이 되어주신 귀한 인연들께 무한한 감사를 드리며, 뒤늦게 다시 발 들여놓은 이 멀고도
고독한 문학의 길을 나는 오늘도 숙명처럼 고개 숙이고 따라가고
있습니다
-2006년 3월, Richmond 바닷가에서, 안봉자-
살다 보면, 우연처럼
다가온 것들이 운명으로까지 연결되는 때가 종종 있다.
인연이 필연이 되고, 필연은 또 운명으로 연결되는 이 진지한 삶 앞에서
나는 때때로 전율을 느끼곤 한다.
컴퓨터는 그저 첨단 과학이 만들어 놓은 현대
문명의 이기이고,
젊은이들의 전용물 정도로만
알고 있던 내가,
우연한 계기로 G 인터넷 사이트에 가입한 것이 인연이 되어, 학창 시절에 드나들던 문학이라는 나의 오두막을
다시 찾아 나서는 계기가 될 줄이야.
ㅡ
그러나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뀐다는 긴 세월 동안
버려뒀다가 돌아온 내 문학의 오두막은 곰팡이가 피고 낡을 대로 낡아 있었다. 그 폐허의 문고리를 잡고 동동대는 나에게 운명처럼 다가온 아름다운
인연들: 내게 처음으로 인터넷 사용하는 법을 가르쳐 주신 P 벗님, 끝없이 부족한 나의 시들을 읽어보시고는 그 안에
숨겨진 재능과 가능성을 지적하시며 백배 사기를 북돋아 주신 뒤, 한인
문단으로 오는 길을 안내해 주신
V 시인 목사님, G 게시판에 올리는 나의 글들에 박수를 아끼지 않으시며
용기를 주시고,
내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나의 계획을 일깨워주는 부표가 되어주신
O 교수님과, G 인터넷 사이트에서 만난 이후 각별하게 나를 따르며
돌봐준 N 벗님, 그 외에도 이루 다 이름을 나열할 수 없이 많은 G 사이트의 벗님들… 모두 하나같이 나의 문학의 여로에 없어서는 안
될 징검돌이 되어준 귀한 분들이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매우 중요한 분이 또 한 분 있다. 바로 내가 오늘날 영문英文 시를 쓰는데 직접적인
계기가 되어 주신
M 교수님이시다.
2002년 1월 초의 어느 날, G 인터넷 게시판엔 처음으로 영문의 글이 올라왔다. 마침 토론토에 학회가 있어서 참석 중이시던 M 교수님이 그곳 컴퓨터엔 한글 프로그램이 깔려
있지 않기 때문에 한글 대신 영문으로 올리신 단상이었다.
토론토엔 눈이 많이 왔는데
여기 밴쿠버에도 눈이 오고 있느냐는 내용의 밴쿠버 벗님들께 보내는 글이었는데, 짤막하고 깔끔한 문장이 꼭 한 편의 시를 읽는 것 같았다. 그날 저녁, 나는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영문 詩 한 편을
써서 G 인터넷 게시판에 올렸다. M 교수님의 영문 단상에 댓글 겸 쓴 ’Snow in LotusLand’ 라는 이 詩는 지금 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지만, 나에겐 소위 英文 詩의 처녀작인 셈이며, 이는 또한 오늘 내가 소속되어 있는 세계 시낭송
협회 (World Poetry Reading Series Society) 까지 발을 들여놓게 한, 그럴 수 없이 귀중한 ‘첫걸음마’이기도 했다. 그 후로도 M 교수님은 가끔 게시판에 영문의 글들을 올리셨는데, 나는 그때마다 반갑게, 즐겁게 그것들을 읽었고, 그들 중엔 나의 英詩들에 영감(Inspiration)을
준 것들도 여러 개 있었다.
Snow in
LotusLand
We had snow here in Lotus Land.
Gaily it danced down onto my shoulder
While I roamed about the white dream land.
Sweet as pear blossoms in the spring air.
Soft as cotton fields in the autumn days.
Gently it covered the earth in white
And brought back my jolly laughter of youth years.
Alas, here comes the rain, the “Wet Vancouver Winter”!
There goes the snow of the LotusLand.
Here goes the sweet memory of my yesteryear.
연꽃 마을의 눈
어제는 이곳 연꽃 마을에 눈이 내렸네
내가 하얀 꿈나라 속을 방황하듯 쏘다닐 동안
눈은 내 어깨 위에 즐겁게 춤추며 내렸네
봄날의 배꽃처럼 사랑스럽게
가을날의 목화밭같이 부드럽게
눈은 조용조용 하얗게 대지를 덮고
즐겁던 어린 시절의 웃음을 되찾아 주었네
아, 그러나 비가 내리네, “밴쿠버의 겨울 장마”!
저기, 연꽃 마을의 눈이 모두 녹고 있네
여기, 내 즐거운 추억도 함께 녹네.
*
LotusLand :
아름답고
평화로운 밴쿠버의 애칭.
내가 낡고 곰팡이 핀 내 문학의 동굴에 통풍하기로 맘먹은 지 거의 1년이 되는 2003년 1월, 나는 <밴쿠버 크리스쳔 문인 협회> (현, 밴쿠버 문인 협회)의 ‘신춘문예’를 통해 수필 부문으로 등단, 문단에 첫발을 들여놓았고, 2004년 3월에는 한국의 <순수문학>의 ‘신인상’으로 詩 부문에 등단했다. 또 그해 5월에는 <세계 시낭송 협회> (World Poetry Reading Series Society)라는 이곳 밴쿠버의 영어권 문단에 가입, 세 단계의 절차를 통과한 뒤 10월에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정회원이 되었다. 그리고 지난 3년간 모아온 시들을 묶어서 같은 해 (2004년) 6월에 출판 완료하여, 8월 23일에 드디어 나의 첫 시집 <파랑 날개 물고기>를 세상 밖으로 날려 보냈다.
아직도 내가 다다르고자 하는 문학이라는 영토는
까마득하게 멀다.
그것은 여전히 저 먼
곳에서 신기루처럼 어른거리고만 있을 뿐,
오아시스는 좀처럼 제
모습을 드러내 주지 않는다.
나는 어쩌면 영 그곳에
도달하지 못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안다. 내 앞에 신기루가 저쯤에서 어른거리고 있는 한, 나는 발걸음을 늦추거나 포기하지 않고 이 길을
계속 걸어가리라는 걸.
그리고 그때까지는 나는
꾸준히 읽고, 쓰며 공부해야 하리라는 걸. 그러다 보면, 어느 날엔가 진짜로 오아시스를 만날지도 모르리라는 걸. <끝> 03/16/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