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궁중태교법 (koami2012-05)
하늘땅한의원 원장 장동민
왕조국가에서 국왕의 권위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크다. 그리고 그 막강한 권위만큼이나 모든 일상에 있어 최상의 것을 누리게 되어 있는데, 국왕의 건강 또한 그 나라 최고의 의료진이 관리하게 된다. 실제 조선시대 기록을 보면, 내의원 한의사들은 왕의 기상부터 취침까지 일거수일투족을 빠짐없이 관찰하고 기록하였다고 되어 있다. 식사 세수 목욕 운동과 취미 심지어는 대변상태와 부부관계까지 관리하였으니, 지금으로 보면 대통령 전속주치의의 토탈케어 개념이라 할 수 있겠다. 이렇게 모시던 왕이 승하하면 담당 어의가 유배를 가거나 심한 경우 사형에까지 처해졌었다는 기록을 보면, 과연 내의원 한의사들이 철저하게 왕의 건강을 관리하였을 것이라는 사실은 불을 보듯 환한 일이다.
이러한 건강관리는 당연히 다음 대를 이을 원자에게도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왕비가 회임을 했다는 것은, 다음 대를 이을 왕을 맞이하게 된다는 뜻이기에, 예로부터 훌륭하고 건강한 왕을 맞이하기 위해 궁중태교가 필수적으로 실시되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의 왕비 또한 좋은 후손을 맞이하기 위해 뱃속의 아이에게 태교를 하였는데, 이때 궁중의 태교는 태임과 태사라는 중국 여성이 모델이었다고 한다. 유학자들이 성인으로 추앙하는 문왕과 무왕의 어머니인 태임과 태사는 임신하는 순간부터 정결한 생각만 하고 부정한 것은 아예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않았다고 하는데, 이렇듯 태교를 실천한 결과로 문왕과 무왕 같은 훌륭한 아들이 태어났다고 전해진다. 여기서는 <동의보감>을 근거로 한 보다 구체적인 궁중태교를 살펴보겠다.
[1] 임신한 이후에는 음양교합을 피한다.
실제 현대 의학적으로는 태아에게 해가 되지 않는 체위에 한해 부부관계를 허용하고 있으나, <동의보감>에서는 이를 금기시하고 있다. 임신이 불안해지는 태루와 태동의 원인에도 임신 중 부부관계가 한 몫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가급적 인신 중의 음양교합은 피하는 것이 좋다고 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혼인 시에 친정어머니가 새색시에게 임신기간을 대비하여 남자가 외도하지 않도록 구강성교(口腔性交)법을 가르쳐주기도 했다는 이야기도 있는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 있어 부부관계가 해로운 것은 아니다. 두 사람이 기꺼운 마음으로 원하기 때문에 오히려 음양교합을 가짐으로써 엄마의 마음이 더 편안해질 수 있다면, 아기에게 해가 되지 않는 체위를 응용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임신 중의 여성은 부부관계를 꺼리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에, 억지로 스트레스를 받게 하여 아이에게까지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본다. 특히 예민하거나 허약한 여성에게 있어서는 더욱 좋지 않다고 할 수 있겠다.
[2] 금기하는 음식은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다.
<동의보감>에서 금기하는 음식들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서 특별히 술과 버섯종류는 강하게 지목을 하여 이야기하였다. 술은 그만큼 피해가 크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보이며, 버섯의 경우에는 식용과 독버섯의 구분이 명확치 않아 잘못 해가 될까 두려워한 것이 아니었던가 생각된다.
특히 임신한 경우에는 비록 술과 함께 약을 먹어야 하는 경우라 하더라도 물로 대신하라는 조문을 미루어 생각해 보았을 때, 임신 음주를 특별히 더 꺼렸던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최근 연구들에서도 습관적으로 음주한 여성들은 기형아를 출산할 확률이 무척 높아지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어, 이러한 내용이 큰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동의보감>의 또 다른 조문을 보면, ‘마시기는 마시되 다만 취하도록 마시지 말아야 한다.’라는 조문이 있음을 볼 수 있다. 분명히 임신 음주의 위험성을 지적하면서도, 이러한 조문을 같이 실어놓은 것을 보면, 사실 어느 정도의 음주는 허용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필자의 경우에도 꼭 마시고 싶은 경우에는 참지 말고 조금만 먹으라고 권하고 있는데, 실제로 권유해보면 그다지 많이 마시지도 않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마도 본능적인 인체의 자기조절 능력이 작용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3]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는 것을 보지 말아야 하며, 그 중에서도 특히 마음에 놀람이 있으면 안 된다.
자고로 살아있는 생명을 죽일 때는 소위 살기(殺氣)가 발생된다고 하였으니, 실제 심리적으로도 매우 안 좋은 영향을 끼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영국의 한 의학자가 실시한 입체초음파 연구에 의하면, 실제 뱃속의 아기가 무한한 감정표현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비록 엄마의 뱃속에 있지만, 엄마를 통해 느끼는 주위 외부 상황에 대해 아주 민감하게 반응을 보이는 장면들이 촬영되었던 것이다. 심지어 높은 기계음이나 비명 등이 들리면, 순간적으로 태아의 호흡이 중지되거나 심장이 정지되었다가 다시 움직이기도 하였는바, 외부환경에 매우 큰 영향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우리가 흔히 깜짝 놀라면 ‘어이쿠, 애 떨어질 뻔했잖아.’라는 말이 그냥 허투로 나온 말은 아니라 하겠다. 마음의 안정을 취하여 태를 안정시키는 것이 태아의 정서발육과 건강에 큰 도움이 되리라는 것은 당연한 결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 짜증내고 슬퍼하고 괴로워하던 엄마에게서 출생한 아이는 비교적 더 잘 울거나 짜증을 내는 것을 볼 수 있으며, 항상 행복하고 감사하고 건강했던 엄마의 아기는 역시 세상에 나와서도 튼튼하고 건강하게 방긋방긋 웃음 짓는 것을 볼 수 있다.
[4] 과로하게 일을 해서는 안 되며, 자못 무거운 것을 들거나 함부로 높은 데나 험한 곳을 오르지 말아야 한다고 하고, 심지어 너무 높은 변소조차 출입하지 말라
임신을 하게 되면, 건강하던 여성도 건강이 악화되는 경우가 많다. 두 사람 몫의 에너지가 필요하니, 그 기력소모가 무척 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욱이 임신이 진행됨에 따라 태아의 성장발달을 위해 더더욱 많은 영양분과 에너지가 소모되니, 점점 더 몸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하겠다. 따라서 이 조문은 임신부의 기력이 떨어져 문제가 생길까 걱정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높은 곳이나 험한 곳을 오르지 말라는 뜻은, 당연히 혹시나 넘어지거나 떨어져서 생기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그러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집안에만 갇혀 지내라는 말은 아니지만, 태가 불안정하거나 12주 전의 절대 안정 기간 동안은 각별히 조심을 하는 것이 좋겠다.
[5] 함부로 탕약(湯藥)을 먹지 말며 함부로 침과 뜸을 쓰지 말아야 한다.
물론 한약은 인공적으로 조작하여 만들어낸 양약에 비해서 월등히 안전하다. 그러나 한약재 중에도 임신부가 먹으면 위험한 약재들도 있기 때문에 <동의보감>에도 임신 시의 처방은 따로 편제되어 있으며, 모든 병증에 무조건 다 한약을 쓰지는 않게 되어 있다. 따라서 임신 중에 한약을 복용하거나 침 뜸을 시술 받을 때는, 반드시 한의원에 가서 전문가인 한의사에 의해 진단받고 시술받거나 처방받아야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