五峰山(633m) 富山城 女根谷 洛東正脈 경북 경주
구간 : 송선리 선암사-(50분)-북두암-(30분)-무밭-(30분)-부산성 안내판-(30분) 오봉산은 경주시 서쪽의 건천읍과 서면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오봉산 女根谷 대음순(大陰脣) 부분은 전체 모양을 둥글게 싼 산줄기이며 푸른 소나무 숲으로 덮여 있다. 신평2리 마을 주민들에게 神聖한 곳으로 여겨져 왔다. 여기에는 新羅시대 선덕여왕과 관련된 일화가 있다. 新羅 선덕여왕은 영묘사의 옥문지에서 개구리가 삼사일 동안 울었다는 보고를 받는다. 여왕이 지시한 대로 군사를 파견하자 과연 百濟군사가 여근곡에 매복하고 있었다. 백제군사가 숨어있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신하들이 궁금히 여기자, 그래서 적군이 서쪽에 있음을 알았고, 男根은 女根 속에 들어가면 삼국유사 <선덕여왕 지기삼사>에 기록되어 있는 선덕여왕의 일화다.
현재 여근곡에는 유학사라는 작은 절이 있고, '옥문지' 라는 샘이 있다. 여근곡을 들머리로 오봉산을 오르는 코스도 있지만
송선리의 들머리는 성암사, 작은 대웅전 한 채만 달랑 있어 암자에 가깝다. 오름길은 짙은 숲이다. 등산로는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진 않지만 희미하지도 않다. 쉬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 즈음 작은 마당바위가 반긴다.
얼마간 오르자 꼬추를 내놓은 동자상이 반긴다. 복두암이다. 숨겨진 전망바위의 경치는 오봉산과 따로 논다는 인상을 준다.
이후부터 임도다. 임도 곁 비탈은 고랭지무우밭이다. 임도는 지루할 만큼 길게 이어진다. 갈림길이 많아 고민하며 나아간다. 큰 산이 아니라서 어디로 가든 나무가 높아 산성의 윤곽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렇게 부산성은 스스로 산이 되어 고요히 잠들어 있었다. 신라는 오랫동안 역사를 이어오며 수도 서라벌 방어에 신경 썼는데 그 증거가 부산성이다.
피밭과 개활지가 눈을 시원하게 한다. 풀숲에 가린 부산성안내도를 지나자 주사암은 부산성의 성암사나 북두암, 만교사와는 격이 다르다. 정갈한 경내와 오래된 터... 기류마저도 밀도 높은 불심이 담겨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주사암에는 설화가 전해온다.
병사들이 잡으려하자 노승이 주문을 외웠고 수만의 신병들이 나타나 막았다. 그후 바위 옆에 절을 지어 주사암이라 했으니 바위의 붉은 흔적은 지금도 남아있다. 주사암 오른편으로 들자 암릉이 있는 오봉산 정상이다. 제대로 된 정상다운 맛이 나는 시원한 경치다. 경주시와 영천 일대가 훤하다. 이렇듯 시원한 정상, 주사암과 여근곡, 지맥석 등 중요한 것을 품에 끼고 있다 보니 주사암 뒤로 돌아 서쪽으로 가니 너른 마당바위가 사람을 강하게 끌어당긴다.
하산길은 풀이 높다. 어깨까지 올라오는 풀섶이라 발밑이 보이지 않는다. 시골집 분위기가 나는 만교사에 잠깐 들러 손을 씻고 하산한다.
신라 천년의 향이 담긴 산
오봉산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여근곡이다. 건천읍 신평리에서 오봉산을 볼 때
오봉산은 부산성 성가퀴에 속한 봉우리로 산성은 말발굽형 능선을 따라 둘러있다.
산행은 여근곡쪽으로 올라 오봉산과 주사암, 고랭지채소밭을 지나
오봉산 옆으로 경부고속국도가 지난다. 건천나들목으로 나와
여근곡
주사암
경주 오봉산 ~오봉산(633m·산불감시초소)~임도~주사암~마당바위~잇단 암봉~주사암~주사골~ 서면 천촌동회관
1996년 이맘때 경주 서쪽의 건천(乾川)땅 한 마을 뒷산에 큰 불이 났다. 당시 이 광경을 목격한 한 주민은 "세찬 바람까지 몰아쳐 봉태기만한 불길이 휙휙 날아다녀 반나절 만에 산 하나가 홀랑 다 타버렸다"고 기억했다. 하지만 산의 한가운데 여성 성기를 닮은 독특한 형상의 한 지점은 신기하리만치 火魔를 피했다.
서기 636년. 신라 27대 선덕여왕 5년, 한겨울인데도 개구리 떼가 영묘사(靈廟寺) 옥문지(玉門池)라는 못에서 사나흘 계속 울어대는 괴이한 일이 발생했다. 신하들이 불길한 흉조라고 수근거리자 선덕여왕은 두 장수를 불러 "지금 당장 서쪽으로 가서 여근곡이라는 곳을 찾으면 그 안에 백제군이 숨어 있을 것이니 반드시 찾아 죽이시오"라고 명령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곳에는 500여 명의 백제군이 매복해 있어 출동한 신라군은 적군을 포위해 섬멸했다.
승리하고 돌아온 장수와 신하들이 여왕에게 어떻게 적군의 매복을 알게 됐는지 자초지종을 묻자 여왕은 이렇게 답했다. "성난 개구리는 병사의 상(像)이요, 옥문은 곧 여근(女根)이다. 여자는 음(陰)이고 그 빛은 흰데, 흰색은 곧 서쪽을 의미한다. 해서, 서쪽의 여근곡에 적이 있음을 알았다. 또 남근(男根)이 여근에 들어가면 반드시 죽기 때문에 적을 쉽게 잡을 줄 알았다." 삼국유사 지기삼사(知幾三事) 편에서
드넓은 벌판에 위압감을 주지는 않지만 병풍처럼 남북으로 길게 솟은 산줄기 한가운데 길둥근 모양의 두둑과 골이 절묘하게 조합돼 마치 음문 그 자체를 보는 듯하다. 그 음문을 둘러싸고 있는 지세까지 고려한다면 마치 '여성' 그 자체를 적나라하게 보고 있는 듯해 민망할 정도이다. 오봉산 정상이며 나머지 4개의 암봉이 정상과 합쳐져 오봉산(五峰山)으로 불린다.
유학사 대웅전 좌측에는 '여근곡 청정수'라 적힌 샘터가 있다. 산행은 시작된다. 입구엔 '오봉산, 여근곡 300m'라고 적혀 있다.
송림길이다. 곧 작은 골짝-아마 이 부분이 멀리서 보면 음핵 우측 작은 골이 될듯 싶다-을 지나면 주변 바닥이 눅눅하게 젖어 있다. 여근곡 샘이자 천년 전 백제군이 매복한 장소이다. 샘터 흔적도 있는 데다 등산로 상에 있어 놓치진 않는다. 오래 전 호스를 묻어 샘물을 유학사 경내로 빼내 겨우 한 방울씩 흐를 뿐이다. 대자연이 뿜어내는 음기를 바로 앞에서 직접 체감한다고 생각하니 왠지 묘한 느낌이 스쳐감을 지울 수 없다. 생각보다 힘들지 않다. 산행 전 마을주민들에게 들은 대로 좌우측 골 안쪽에는 화마의 흔적이 거의 없지만 벗어나기 무섭게 불에 그을린 흔적이 자주 눈에 띈다.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20분쯤 힘겹게 오르면 일순간 경사가 거의 없는 길을 만난다. 산길 좌측은 여근곡의 큰 골짝이다. 대여섯 기의 묘지를 지난다. 세 번째 묘지 사이로 잠시 가보자. 반듯하진 않지만 그럭저럭 갈 수 있다. 여근곡의 정점인 일명 '소산'을 확인해보기 위함이다. 국토지리정보원의 2만5000도폭 지형도상의 소산 위치와 산 아래 주민들이 말하는 위치는 다르다.
이어지는 낙엽길은 좌측으로 휘어지며 오름길이 시작된다. 스케일이 아주 큰 지그재그길이다. 걷는 재미도 쏠쏠하다. 길 좌우에는 집채만한 크기의 바위들이 눈에 띈다. 대여섯 기의 묘지에서 27분이면 주능선에 올라선다. 동시에 삼거리 안부이다. 왼쪽은 건천IC 방향, 우측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곳은 사적 제25호인 부산성(富山城). 신라 문무왕 3년 완공된 석성으로 주사산성으로도 불린다. 정면으로 보이는 산줄기 또한 모두 부산성이다.
우측으로 향한다. 능선 자체가 돌무더기로 산성의 흔적이 역력하다. 5분 뒤 멋진 전망대. 남산 마석산 등도 보인다. 전망대 좌측으로 가면 오봉산 정상도 보인다.
이후 50m 정도 산성을 밟고 내려가다 올라선다. 역시 지그재그길이다. 9분 뒤 좌측 전망대에 서면 단석산이 우뚝 솟아 있고 그 왼쪽으로 입암산과 매봉이 확인된다.
이제 11시 방향으로 보이는 정상을 향해 나아간다. 5분 뒤 뜻밖의 임도. 주사암 가는 길이다. 200m쯤 걸으면 우측으로 산길이 열려 있다. 입구에 파평 윤씨묘가 있다.
묘지 좌측으로 오른다. 5분 뒤 세 개의 바위가 키재기를 하고 있다. 제일 가까운 바위는 코가 축 늘어진 코끼리를 빼닮았다. 곧 정면으로 정상이 보일 무렵 우측으로 누운 임신부의 모습을 한 다섯 봉우리가 모두 보인다.
오봉산 정상은 코끼리바위에서 9분. 초소와 무덤이 있다. 하산은 직진한다. 등산로에서 주사암으로 가는 길은 막아 놓아 임도로 내려간다. 주사암은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한 기도도량. 기암절벽 사이로 앉은 터가 절묘하다. 절에서 바로 올라가는 산길이 없어 앞서 왔던 임도로 되돌아가 등산로로 올라선다.
이제부턴 4개의 봉우리를 지난다. 기도터가 있는 연립주택 크기의 바위를 지나면 두 개의 갈림길이 잇따라 있다. 두 번째 갈림길서 좌로 가면 얼추 100명 정도 쉴 수 있는 너럭바위가 나온다. 마당바위 또는 지맥석이다. 건너편에서 보면 사면을 깎아 세운 듯 기가 막히며 직접 끄트머리로 가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찔하다.
이곳은 부산성 일대가 한눈에 보여 이 성이 당시 군사적 요충지였음을 단박에 알 수 있다. 이 안내판 뒤 배추밭은 김유신 장군이 수련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어지는 산길은 내리막길. 낙엽길을 지나 암봉을 우회한 뒤 또다시 낙엽 내리막길을 지나 오르면 마지막 암봉. 결국 정상, 주사암 뒤 암봉, 기도처 있는 암봉, 그냥 우회하는 암봉에 이어 5번째인 셈이다. 능선 끝에는 거의 절벽. 좌측 발아래 마을이 하산할 서면 천촌동. 예전엔 길이 없었지만 최근 누군가 굵은 밧줄을 설치해 놓았는데 일반인이 내려가기에는 아주 위험하다.
산행팀은 주사암으로 되돌아가 계곡길로 천촌동으로 내려설 계획. 주사암 공양간에서 부도를 지나 내려선다. 150m쯤 내려오면 갈림길. 우로 간다. 수북한 낙엽길이다. 이때부터 30~40m 간격으로 좌우 방향으로 산길이 계속 꺾이니 유의하길.
일부 구간은 낙엽 깔린 돌길이 제법 위험하다. '주사암 가는 길'이라 적힌 팻말과 물 마른 작은 계곡도 지난다. 20여 분 뒤엔 우측 머리 위로 마당바위가 잘 보이고 여기서 13분 뒤 정면으로 저수지가 보일 무렵 우측으로 오봉산을 이루는 다섯 봉우리가 뚜렷하게 손에 잡힌다. 5분 뒤 저수지에 닿고, 여기서 16분이면 천촌동회관에 도착한다. 주사암에선 56분 걸린다.
- 여근곡,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성(性) 관련 민간신앙 대상물 직선거리로 500m였다. 경주땅 서쪽 끝에 위치한 여근곡과는 10㎞, 차로 10분 거리이다.
지금 영묘사터에는 비구니 사찰인 흥륜사라는 절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성(性) 관련 민간신앙 대상물인 여근곡과 관련, 새로 부임하는 경주 부윤은 그 모습을 보지 않기 위해 일부러 안강 쪽 먼 길을 마다하지 않았고, 한양으로 과거 보러 가던 선비들은 '보게 되면 재수가 없다' 하여 애써 고개를 돌려 지나갔다고 한다.
한국전쟁 때 파죽지세로 남하하던 인민군이 경주 점령 직전에 한번 브레이크가 걸린 것도, 백제군이 유독 오봉산 여근곡 인근인 건천땅에만 오면 이상하리만치 힘을 쓰지 못한 것도 모두 여근곡 음기 덕분으로 전해온다. 또 한국전쟁 당시 행군하던 미군들이 여근곡을 보며 탄성과 야유를 지르며 야단법석을 떤 것도 모두 이와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또 여근곡 샘을 작대기로 휘저으면 마을 여자들이 바람이 난다 하여 한때 외지 남자들의 접근을 막기도 했다고 전해온다. 여근곡에서 보이는 들판도 원래 이름이 '썹들'이었지만 우스갯소리로 '씹들'이라고 짓궂게 부르기도 한다.
오봉산은 주사산 닭벼슬산 오로봉산 부산(富山)으로도 불린다. 산행 중 만나는 부산성(富山城) 안내판과 주사암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오봉산 건너편 산줄기에도 산성이 있기에 부산(富山)을 오봉산보다 큰 개념으로 봐도 무관할 듯싶다. 부산성의 길이는 7.5㎞에 달한다.
유학사 입구 '여근곡 전망대'는 꼭 둘러보길 권한다. 수석수집가인 주인장 박용 씨가 발품을 팔아 모은 여근과 남근을 닮은 희귀 수석을 비롯한 볼거리가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맛집 흔히 여성을 위한 음식으로 알려져 있지만 신농본초경과 동의보감에 따르면 흑염소 수놈은 남성강화 식품이다. 이 또한 여근곡의 음기와 연관이 있지 않나 싶다. 1인분 1만2000원. 육개장이 아주 맛있다. 건천IC에서 대구 가는 방향 길가에 위치해 있다. 차로 1분 거리.
교통편- 경부고속도로 건천IC로 나와 경주 영천 방향으로 좌회전 ~건천읍사무소 지나~윗장시마을 정류장 보고 좌회전(여근곡 주사암 유학사 팻말) ~철길 건너~원신~여근곡 전망대~유학사 주차장
경주시외버스터미널 옆 고속버스터미널 앞 정류장에서 300번, 305번 좌석버스를 타고 건천읍 윗장시마을 정류장에서 내린다. 15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40분 걸리며 1500원. 날머리 서면 천촌동회관에서 경주터미널행 버스는 오후 2시20분, 4시50분, 6시50분, 7시50분, 8시50분(막차)에 있다. 차를 회수하기 위해선 개인택시(054-751-6478)를 이용해야 한다. 천촌동회관에서 유학사까지 1만2000원. |
출처: 달빛청암의 경주 이야기 원문보기 글쓴이: 달빛청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