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례문(興禮門)은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과 근정전의 정문인 근정문 사이에 있는 중문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중층 목조 건물이다. 원래는 1426년(세종 8년)에 집현전에서 ‘예禮를 널리 편다’는 뜻의 홍례문弘禮門으로 이름을 지어올렸는데, 1867년(고종 4년)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청나라 건륭제의 휘 홍력弘曆을 피휘하여 지금의 흥례문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경복궁을 처음 건축한 1395년(태조 4년)에는 오문午門이라고 했는데,[주해 1][2] 곧이어 정도전이 정문正門으로 개칭한다.[3] 이후 1426년(세종 8년)에는 집현전 수찬修撰에게 명하여 경복궁 각 문과 다리의 이름을 정하게 하는데, 영제교, 일화문, 월화문, 광화문, 건춘문, 영추문과 함께 이 문의 이름을 홍례문弘禮門이라고 지었다.[4]
이후 임진왜란 당시 경복궁이 불타고난 뒤에 버려졌으나, 고종때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이름을 흥례문興禮門이라 짓는다. 弘을 興으로 바꾼 것은 청나라 건륭제의 이름인 홍력弘歷을 피휘하기 위한 것이다.[5]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 신청사를 경복궁 내에 건축하기로 1912년에 결정됨에 따라, 조선물산공진회가 열린 1915년까지 흥례문 권역을 훼철하고 1916년부터 청사를 건축하며 유구의 파괴가 이루어졌다. 이 때 기별청을 제외하고 유화문과 흥례문 등 모든 유구들이 전부 파괴되었다. 이후 문민 정부 때 총독부 건물을 철거한 후 2001년 10월 26일에 다시 흥례문을 복원하였다. 이 때 근정문과 같은 규모라고 《궁궐지》와 〈북궐도형〉에 기록되었으나 그 세부 측량에서 근정문의 크기와 다른 점도 있었다.[주해 2] 복원할 때에는 유화문과 마찬가지로 유구가 모두 파괴되었기 때문에, 기록보다는 조금 작은 치수일지라도 근정문의 규모와 동일하게 복원했다.[6]:129-130
흥례문 중앙에서 경복궁 안쪽을 들여다보면 영제교를 지나 근정문, 근정전이 차례로 일자로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근정전에 가려 보이지는 않지만 근정문 뒷편의 사정전과 강령전, 교태전도 모두 일자로 배치되어 있다. 다만 경복궁의 정문이라 할 수 있는 광화문은 2006년 12월까지 한쪽으로 틀어져 있었는데, 일제가 조선총독부 건물을 지으면서 철거했던 것을 박정희 대통령이 복원하면서 원래의 위치가 아닌 조선총독부 건물에 맞추어 지었기 때문이다. 구 광화문은 철거되었고 한일 병합 조약 100주년인 2010년 8월 15일에 고종 중건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현판은 2001년에 설치하였다. 서예가인 정도준鄭道準이 쓰고 중요무형문화재 제106호 각자장 기능 보유자인 오옥진吳玉鎭이 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