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을 수 있고, 숨쉴 수 있음에 감사
(주혜 김정숙 / 수필가)
요즘 몇 달 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내 몸과 마음이 조금 우울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드니 자꾸 내 몸의 여기저기서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난다. 마치 고장 난 로봇처럼 말이다. 혹시나 나의 이런 우울한 마음들이 다른 독자들에게 전염될까 두려웠던 것 같다. 그래서 더 펜을 들고 싶지 않았다.
솔직히 나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내 얼굴의 나이가 들어가는 것은 별로 두렵지 않다. 그냥 시간의 흐름대로 내 모습이 바뀌어 가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일 테니까······. 그런데 건강이 나빠지는 것은 많이 두렵다. 그렇게 두려워지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큰 이유는 나의 가족에게 짐이 되기 싫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능력이 많은 사람보다, 건강한 사람들이 가장 멋져 보인다. 예전에는 떨어지는 은행잎과 그 풍경이 참 운치 있고 멋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최근에 나는 그런 은행잎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코끝이 시큰해지고 눈가에 이슬이 맺힘을 느낀다. 이젠 정말 나도 나이가 들어가고 있나 보다. 새해가 되어 내 나이도 벌써 지천명(知天命, 50세)에 이르렀다.
이런 나의 이야기를 들으면, 60~80대의 연장자분들은, ‘아직도 한참 젊은 사람이 못하는 말이 없네’라고 호되게 훈계하실 듯하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그분들의 마음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사람의 나이는 첫째는 몸의 나이와 비례하고, 둘째는 마음의 나이와 비례한다고 생각한다. 옛말에 ‘나무는 뿌리가 먼저 늙고 사람은 다리가 먼저 늙는다(樹老根先枯 人老腿先衰, 수노근선고 인노퇴선쇠)’는 말이 있다. 요즘의 나는 그렇게 나의 다리가 늙는다는 걸 조금씩 느껴가고 있다는 뜻이다.
어머니께서 나를 임신하셨을 때 교통사고를 크게 당하셔서, 나는 태어날 때부터 약골로 태어났다. 물론 몸무게는 우량아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어머니도 나도 몸이 많이 부어있었다고 한다. 그 사고로 인해 어머니는 40~50대부터 각종 사고 후유증과 관절근육통으로 고생을 많이 하셨다. 그래서 그런지 나 역시도 뼈와 관절, 척추 등의 건강이 별로 좋지 못하다. 그건 나의 친언니들도 마찬가지여서 언니들도 각종 척추 관련 질병으로 많은 고생을 하고 있다.
7~8년 전쯤에도 과로로 인해 허리디스크 통증이 심하게 왔다. 겨우 회사에 출근을 했지만, 도저히 의자에 앉을 수 없을 만큼 큰 통증이 왔다. 할 수 없이 월차휴가를 낼 수밖에 없었고, 나는 등 굽은 할머니처럼 허리를 구부린 채 거의 기어가듯이 한의원에 도착했다. 그 한의사 선생님은 나의 다리를 뒤로 젖히시고 엉덩이까지 다리를 뒤로 꺾으셨고, 나는 수많은 통증에 절규했다. 그렇게 긴급치료를 몇 번 받고 나서야, 조금씩 자연스럽게 걸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도 몸을 좀 과하게 쓰거나 책상에 너무 오래 앉아 있으면 그런 증세들이 가끔 나타나곤 한다. 예전에는 달리기도 좋아하고, 운동도 참 많이 좋아했었다. 그런데 출산 이후 육아와 직장생활을 병행하면서 몸을 제대로 돌볼 시간 없이, 내 몸을 너무 많이 써 버렸나 보다.
그리고 오래 전에 둘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 한여름 감기를 심하게 앓았던 적이 있었다. 그 이후 기관지가 계속 약해진 탓인지 찬바람 부는 겨울만 다가오면 잔기침이 번번이 같이 올라왔다. 이 병원 저 병원 다니면서 아무리 양약을 복용해도 기침이 낫지 않았다. 결국 나는 나 스스로 한의원을 찾아갔다. 평소에도 어깨와 등이 많이 시린 느낌을 받았었다. 아무래도 기초체력이 너무 약해진 듯하여 내 몸의 근본적인 치료가 필요함을 절박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에는 이틀에 한 번 꼴로 한의원에 가서 침 맞고 부황 뜨고 피 빼고 뜸 뜨는 일을 일상처럼 하고 있다. 또한 한의원에서 처방한 한약도 계속 복용하고 있다. 그래도 다행인 게 어느정도 효과를 보는 것인지 잔기침들이 근본적으로 많이 치료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몸이 안 좋아지니 더 많은 감사들이 생각났다. 코로나로 인해, 산소포화도가 떨어져서 호흡도 힘들었을 때에는 그저 제대로 숨쉴 수 있는 것만으로도 무척 감사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응급차에 실려 병원에 입원할 때에는, 평범한 일상을 보낼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범하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그때 더욱 절실히 깨달았다.
그런데도 우리 인간들은 어쩔 수 없이 현실적이고 망각적인 사람들이다. 그래서 내가 소중한 것들을 누리고 있을 때에는 그 소중함을 잘 깨닫지 못한다. 그것을 잃어보거나, 잃을 위기에 처했을 때 비로소 그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나 역시 그렇다. 제대로 숨쉴 수 없는 곤경에 처해보니 숨 쉴 수 있는 것조차 감사했다. 제대로 걸을 수 없으니 자연스럽게 걸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크게 감사해야 할 일인지 깨닫게 되었다. 허리 디스크로 고생해 보니 허리를 자연스럽게 움직이며 걸을 수 있다는 것도 얼마나 대단하고 기적같은 일인지 절감했다.
내가 정말 마음 깊이 존경하는 남상선 선생님은 늘 그렇게 말씀하신다. “감사는 더 많은 감사와 기적을 불러온다”고······. 그러니 매일 일상에서 더 많은 감사를 해 보라고 말씀하신다. 정말 맞는 말씀같다. 성경에서도 수많은 구절에서 ‘감사하라’는 말을 수없이 강조하고 있으니 말이다.
나의 큰 아들이 다니는 대신중학교에서는 학교에서 직접 ‘감사노트’를 만들어 학생들 전체에게 배포한다. 그래서 1년 내내, 하루에 3~4가지 만이라도 감사제목을 찾아 매일 기록하라고 권면한다. 이 지역에도 다양한 학교들이 있고 각 학교마다 각각의 장점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도 나는 대신중학교의 그런 학교 방침이 너무나 고맙게 느껴진다. 우리 아이들이 공부를 열심히 해서 미래를 좀 더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인생을 어떤 가치관과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훈련 시켜주는 이 학교에게 더욱 고마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언제가 나는 큰 아들 덕분에 대신 중·고등학교의 이사장이 쓰신 <교육이 있는 학교, 교육이 없는 학교>라는 책을 읽어 본 적이 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그분의 교육철학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더 많이 공감했고 더 많은 지지를 마음 깊이 보내게 되었다.
우리의 삶의 모습들은 각자 다르다. 하지만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지는 하루 24시간에 대해 더 많은 감사를 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더 많은 감사를 발견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하다 보면 내 인생의 작은 영역들도 조금씩 더 긍정적으로 바뀌리라 생각된다. 그리고 또 그 작은 몸짓이 나중에는 자신의 인생을 역동적으로 바꿔주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프랑스 작가이며 수필가인 폴 부르제(Paul Bourget)는, “생각하는 대로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조만간에 살아온 대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 정말 공감되는 말이다. 매일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24시간이 주어지지만, 그 삶 속에서 무엇을 건져낼지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 자신들의 몫이다. 그러므로 평범한 삶 속에서도 진주같은 '감사'를 매일 찾아낼 수 있다면, 우리의 삶들은 그 자체로도 더욱 의미있고 가치있는 시간들이 되리라 생각되는 것이다.
첫댓글 주혜님, 글에 깊이 공감합니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저도 최근에 겪었던 일로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심각했던 그 시간에 가졌던 나의 간절하고도 애탔던 마음이 그 심각한 일이 해결되자 마자 거짓말처럼 일순간 변해버리는 과정을 목도하면서 나란 인간은 참으로 간사하구나 느꼈습니다. 처음 가졌던 그 마음 절대 잊지 말자고 오늘도 기도하며 다짐합니다. 주혜님 말씀하신 '감사'를 일상에서 찾아내면서, 또 다시 내 삶을 새로움으로 채우면서 한 길을 걸어가고자 하는 나의 정신을 흐트러지게 만들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글 감사해요.
저의 소박하고 작은 글이, Beatrix님에게 감사와 묵상의 시간을 드릴수 있었다니, 저에게는 큰 영광입니다.
일상에서 주어지는 작은 것들에서부터 감사가 넘친다면, 더 큰 은혜와 기쁨들이 맑은 샘물처럼 님의 삶속에서 더욱 흘러 넘치리라 믿습니다!
Beatrix님도 늘 강건하시기를 마음 깊이 기도드립니다!!
남상선 선생님을 가장 존경 하시는군요.
반갑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댜.
네, 댓글도 감사드리고, 서용선 선생님께서도 남상선 선생님을 존경하신다니 저도 더욱 반가운 마음이네요!
남상선 선생님은, 한없이 부족한 저에게 마음을 다하여 글을 쓰는 자세도 알려 주셨고,
또 성심을 다하여 인생을 사는 삶의 자세도 알려주신 분이네요.
그것도 선생님께서 매번 직접 많은 본을 보여주시면서 말이죠...
그래서 더욱 존경할 수 밖에 없는 분이네요^^*
서용선 선생님의 삶도 남상선 선생님의 가르침으로 인해, 더욱 풍요로운 삶을 살고 계시리라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