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9장 1~2절을 보겠습니다.
1 예수께서는 이 말씀을 마치시고, 갈릴리를 떠나 요단 강 건너편 유대 지역으로 가셨다.
2 많은 무리가 예수를 따라왔다. 예수께서는 거기에서 그들을 고쳐 주셨다.
18장에 기록된 말씀을 마치시고, 예수님이 갈릴리를 떠나 유대지역으로 가셨답니다. 지금까지는 예수님이 어릴 때부터 자라나셨던 갈릴리 지방을 중심으로 사역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중심지인 유대지역으로 가십니다. 이제 유대지도자들과의 본격적인 갈등이 시작될 것입니다. 옛 질서와 새 질서의 충돌이 일어날 것이고, 예수님은 거대한 기득권 세력의 저항에 부딪히게 될 것입니다. 3~9절을 보겠습니다.
3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께 다가와서, 그를 시험하려고 물었다. "무엇이든 이유만 있으면,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
4 예수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셨다. "너희는, 창조주께서 처음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5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남자는 부모를 떠나, 자기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되어야 한다' 하신 것을 아직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6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 놓아서는 안 된다."
7 그들이 예수께 말하였다. "그러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써 주고 아내를 버리라고 명령하였습니까?"
8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모세는 너희의 마음이 완악하기 때문에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해 준 것이지, 본래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음행한 까닭이 아닌데도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에게 장가 드는 사람은, 간음하는 것이다."
이혼문제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마태복음 5장의 산상수훈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유대사회에서 이혼문제는 남자만 제기할 수 있었고 여자에게는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의 시각에서는 분명히 공평하지 않은 남존여비시대의 산물입니다. 본문은 그런 시대적인 한계 안에서 시작합니다.
당시 율법학자들 가운데 대표적으로 두 학파가 있었습니다. 힐렐학파와 샴마이학파인데, 힐렐학파는 무슨 이유이건 남자가 이혼을 원하면 이혼할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샴마이학파는 아내의 부정이 있을 경우에만 이혼할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니까 이 본문은 내용상으로 샴마이학파의 가르침에 동의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논쟁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집니다. 제자들이 물음을 이어갔기 때문입니다. 10~12절을 보겠습니다.
10 제자들이 예수께 말하였다. "남편과 아내 사이가 그렇다면, 차라리 장가 들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11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누구나 다 이 말을 받아들이지는 못한다. 다만 타고난 사람들만이 받아들인다.
12 모태로부터 그렇게 태어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들어서 된 고자도 있고, 또 하늘 나라 때문에 스스로 고자가 된 사람도 있다. 이 말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받아들여라."
이혼에 대한 문제가 독신문제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산상수훈에서 이미 논의된 이혼문제를 마태가 다시 들고 나온 이유는 이 말을 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하늘나라 때문에 스스로 고자가 된 사람도 있다. 이 말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받아들여라.’ 라는 내용입니다.
통설에 따르면, 예수님은 결혼을 하지 않고 30세가 넘도록 활동하시다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도 많은 사람이 독신으로 지냈습니다. 그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져 가톨릭 사제들은 독신으로 지내면서 사목활동에 집중합니다. 반면에 개신교 목사들은 가정을 갖는 것을 오히려 장려합니다. 독신으로 지내는 목사는 거의 없습니다. 어느 쪽이 옳고 틀린 것은 아닙니다. 장점과 단점이 각각 있습니다. 본문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선택권을 부여합니다. 이 말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받아들이라고 했으니까요.
19장의 후반부는 또 하나의 중요한 논쟁에 관한 기록입니다. 16~22절을 보겠습니다.
16 그런데 한 사람이 다가와서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내가 영생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
17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너는 나에게, 선한 일을 묻느냐? 선한 분은 오직 한 분뿐이시다. 네가 생명에 들어가고자 하거든, 계명들을 지켜라."
18 그러자 그는 예수께 "어느 계명들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살인하지 말아라, 간음하지 말아라, 도둑질하지 말아라, 거짓으로 증언하지 말아라,
19 부모를 공경하여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하는 계명들이 있지 않으냐?"
20 그 젊은이가 예수께 말하였다. "나는 이 모든 것을 다 지켰습니다. 아직도 무엇이 부족합니까?"
21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고자 하거든, 가서 네 소유를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주어라. 그리하면, 네가 하늘에서 보화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22 그러나 그 젊은이는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면서 떠나갔다. 그에게는 재산이 많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예수께 다가와서 “선생님, 내가 영생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묻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찌하여 너는 나에게 선한 일을 묻느냐? 선한 분은 오직 한 분뿐이시다.” 라고 대답하십니다. 선한 일에 대해서 물었는데, 선한 분은 한 분 뿐이랍니다. 어색하지 않습니까? 선한 일에 대해서 물었으니까, 선한 일이 무엇인지를 말해야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선한 일에 대해 답하는 것이 아니라, 선한 분에 대한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답하신 말씀을 다시 보겠습니다. “어찌하여 너는 나에게, 선한 일을 묻느냐? 선한 분은 오직 한 분뿐이시다.” 이 본문의 원본은 마가복음 10장인데, 해당되는 내용인 17~18절을 보겠습니다.
17 예수께서 길을 떠나시는데, 한 사람이 달려와서,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예수께 물었다. "선하신 선생님, 내가 영생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18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너는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하나님 한 분 밖에는 선한 분이 없다.
마가복음의 이 본문에는, 한 사람이 예수께 ‘선하신 선생님’ 이라고 부르면서 영생의 길을 묻고, 예수님은 “어찌하여 너는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하나님 한 분 밖에는 선한 분이 없다.” 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선하신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말에 ‘선한 분은 하나님뿐’이라고 답한 것입니다. 이 대답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니까 마태복음의 본문은 마가복음의 기록을 가져오면서 자기 신학에 맞추어 내용을 수정하다 보니 표현이 어색해지고 만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신앙에서 완전히 선하신 존재는 오직 한 분뿐입니다. 사람도 선한 사람이 있지만 존재 자체로 선한 분은 하나님뿐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은 훗날 기독교 신학에서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죄인이라는 원죄론으로 발전합니다.
마가복음의 원본에는, 예수님은 훌륭한 선생님이지만 예수님 또한 인간이기에 하나님처럼 존재 자체로 선할 수는 없다는 것을 예수님 스스로 인정한 것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예수에 대한 신격화와는 거리가 있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에는, ‘선한’이라는 형용사를 예수님이 아니라 일에 갖다 붙여서, 무슨 선한 일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고 묻는 것으로 바꾸어버렸습니다. 선한 분은 한 분 뿐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마가복음에서는 자신을 하나님과 분리시켜서 자신에 대한 신격화를 거부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마태복음에서는 이런 흔적을 지워버린 것입니다.
마가복음은 서기 70년을 전후해서 쓰여졌고,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서기 80년대에 쓰여졌다고 여러 차례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니까 마태복음의 이 본문은 1세기 말엽부터 예수에 대한 신격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음을 나타내는 증거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어지는 본문에서는, 예수님이 이 젊은이에게 율법에 기록된 계명들, 특히 십계명을 언급하면서 그 계명들을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젊은이가 그 계명들을 다 지키며 살아왔노라고 대답하자, 이번에는 가진 재산을 다 팔아서 가난한 이웃들에게 나누어주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을 들은 젊은이가 근심하며 떠났다고 본문은 말합니다.
계속 이어지는 본문에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대화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23~30절까지 보겠습니다.
23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
24 내가 다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지나가는 것이 더 쉽다" 하시니,
25 제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매우 놀라서 "그러면,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26 예수께서 그들을 눈여겨 보시고, 말씀하셨다. "사람은 이 일을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무슨 일이나 다 하실 수 있다."
27 그 때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우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선생님을 따라왔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무엇을 받겠습니까?"
28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새 세상에서 인자가 자기의 영광스러운 보좌에 앉고 만물이 새롭게 될 때에, 나를 따라온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서,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심판할 것이다.
29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녀나 논밭을 버린 사람은, 백 배나 받을 것이요, 또 영생을 상속받을 것이다.
30 그러나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부자 젊은이의 질문으로 시작되는 이 이야기 전체는, 서기 30년대에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아니라, 재산과 가족까지 버리고 예수를 따랐다고 자부하는 서기 70~80년대 예수공동체 사람들에게, 고난의 세월을 끝까지 참고 견디라고 독려하기 위해, 당시 교회지도자들이 예수님의 입을 빌어 말한 것이라고 현대 신학자들은 해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