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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1979년의 문학
1979년, 3월 1일부터 고향의 모교 [문래 국민 학교]에서 근무하였다.
1979년 6월 17일 소년조선일보 [일요동화마을]에 동화 <우체부아저씨>를 발표하였다.
[동화]
우체부 아저씨
“태극기가 바람에… ”
정숙이와 미영이는 오늘 노래를 배웠습니다. 그 노래를 부르며 신작로 왼쪽 길로 두 손을 꼭 잡고 걸어갑니다.
그들 옆에는 나무들이 줄지어 서서 반겨줍니다.
정숙이와 미영이는 올해 1학년. 둘도 없는 친구랍니다. 정숙이는 얼굴이 동그랗고 눈이 큰데다 속눈썹이 길어 다른 사람들이 볼 때마다 예쁘다고 칭찬을 합니다.
한참 노래를 부르며 걸어가고 있을 때 멀리서 “찌릉 찌릉”자전거 소리가 들려옵니다.
“야아, 우체부 아저씨다!”
정숙이와 민영이는 안 봐도 다 알아차립니다. 둘은 학교에 들어가면서 우체부 아저씨를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과 같이 학교 공부가 끝나고 미영이와 정숙이가 다정하게 걸어가고 있을 때죠. 자전거의 벨이 울리며 우체부아저씨께서 정숙이와 미영이 옆을 지나치려다 씽긋 웃으며 타라고 하였답니다.
그때부터 우체부 아저씨는 정숙이와 미영이를 자전거에 태워 주었습니다. 그래서 친한 친구와도 같았습니다.
우체부 아저씨는 꼭 자전거 벨을 두 번 씩 눌렀습니다. 자전거 벨 소리를 들으면 금방 우체부 아저씨인줄 알았습니다.
“우체부 아저씨?”
정숙이와 민영이가 손을 치켜들고 우체부 아저씨에게 달려갔습니다.
“오! 너희들이구나.”
둘은 우체부 아저씨를 바라보았습니다.
“타거라.”
여느 때와 같이 정숙이는 우체부 아저씨 앞에 타고 미영이는 뒤에 탑니다.
“아저씨 등을 꼭 잡아요. 떨어질 염려가 있어요.”
언제나 미영이에게 말씀하십니다. 미영이가 우체부 아저씨 뒤에 탔으니까요.
“정숙인 참 예쁘단 말이야.”
우체부 아저씨는 자전거를 타고 가며 칭찬을 하였습니다. 그 말을 들은 미영이는 약이 바짝 올랐습니다.
“아저씨. 난 안 이뻐요?”
우체부 아저씨는 미영이 말에 한참 동안이나 껄껄 웃으십니다.
“이쁘지, 이쁘고 말고.”
“근데 왜 정숙이만 이쁘다고 하시죠?”
“그 말 안에는 너도 포함이 되어 있는 거란다.”
그제서야 미영이는 기쁜 웃음을 지었습니다.
자전거가 울퉁불퉁한 길을 지날 때마다 정숙이 엉덩이도 미영이 엉덩이도 같이 튑니다.
어느새 자전거는 정숙이와 미영이가 사는 동네에까지 다 왔습니다. 동네 아이들은 얼굴이 탄가루에 묻어 깜둥이 같습니다. 아이들은 부럽다는 듯이 쳐다봅니다. 누런 이가 보이는 아이도 있고 콧물을 훌쩍 들이마시는 아이도 있습니다. 정숙이와 민영이는 절로 어깨가 으쓱해집니다.
“우리 예쁜 공주님들. 자, 이제 내리실까요?”
“고맙습니다. 내일도 태워주세요.”
그 말에 아저씨는 웃으시며 손을 흔듭니다. 그 때 또 ‘찌릉 찌릉’자전거 벨 소리가 두 번 울리고 있었습니다.
(1979년 6월 17일 일요일 소년조선일보)
시 ‘내 고장 정선’ 작품을 쓰다.
내 고장 정선
아이들아
이곳은 우리의 땅
산처럼 큰 힘을 배우자
강처럼 넉넉한 마음을 닮자
그 옛날
피난지였고
유배지였다는 것은
사람이 살 수 있는
생명의 땅이기 때문이란다.
묵은 때를 벗고
묵은 생각을 털고
우뚝우뚝
저 태백산맥의 기상으로 일어서자.
물려 받은 이 땅
이곳은
무릉도원
우리 손으로 우리 힘으로 가꾸고 키우자
살구꽃 복사꽃 흐드러지게 피는
황토길 굽이굽이
내 고장 정선의 얼로 뭉친
장엄한 성을 세우자.
☘1월 6일 소년한국일보에 ‘산과 물로 이어진 정선 그 노래’ 발표하였다. 이 원고의 발표는 박경용 선생의 도움으로 이루어졌다.
산과 물로 이어진 정선 그 노래
1. 조양강
산이란 산마다
하늘에 맞닿아
조양강 맑은 물은
마치 하늘에서 흘러내리는 것 같다.
비단폭처럼
휘어져내리는
저 은은한 모습은
잠이 든 것 같이 보이지만
그 속에
아이들아
아는가?
송죽처럼 푸른
절개를 지킨
우리 옛 조상의 얼이
흐르고 있다네.
잠속에 빠진 것 같은
저 속에
지금도 끊어진 왕조를 섬기려는
고려 충신들의 맥박이
묵묵히 흐르고 있다네.
그러기에 더욱 아름다운 것을,
그러기에 더욱 은은한 것을.
보아라
잠자듯
조용한 조양강을
오늘도 우리들 모습을 지켜보며
오늘을 흐르고 있는 것을.
2. 무릉도원
지금 들에선
우리들 옛 어른들의 굵은 손마디로
쓰다듬어 놓은
옥수수가 자라고
연일 감자밭 너머에서
종다리처럼 노곤한
바람이 묻어든다.
저쪽 옹기종기 모인 집
가장자리엔
새소리로 늙은 미루나무 한 그루가
대궐처럼 우뚝 서서
조용히 마을을 살피고
어린 나무들마다
봄볕 같은 아늑함을
줄줄이 잎으로 드리우는
그 곁에 서면
항상 꿈을 꾸듯
고요히 감도는
정선의 아침
온갖 새소리들이
산속마다 꼭꼭 숨었다가
사시사철 푸른 노래로
서리처럼 고운
노래의 옷을 입히는 고장
산 좋고 물 맑아
인심도 좋아
김삿갓 시인은
이곳 정선에서
떠날 줄 몰랐다네.
그래서 옛날에는
이름도 무릉도원이라고 했다네.
☘조양강: 강원도 정선군을 거쳐흐르는 남한강의 지류
☘무릉도원: 산수가 빼어난 곳을 일컫는 말. 정선은 산수가 아름다워 무릉도원이라 일컬어졌다.
☘김삿갓: 조선 말기의 시인. 본명 김병연(1807-1863)
(「소년한국일보」, 1979. 1. 6. ‘내고장의 노래’ 시리즈 중 ‘강원 정선군 편’ )
(「정선 장학」3호. 1986. 5.1)
∙8월 25일 강릉의 옥천예식장에서 최도규 동시집 출판기념회가 있었다. 이 행사에 참여하여 나는 약력 소개를 하였다. 이 일은 내 생애에서 최초로 여러 사람 앞에서 말했던 순간이었다. 그때 다리가 떨려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것 같았다. 저자에 대한 약력 소개이었는데도 그렇게 떨렸다.
이곳에는 대구의 아동문학가 하청호시인도 참석하였다. 하청호 시인을 뵌 것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 후 2016년 부산의 열린아동문학을 운영하는 배익천씨의 문학마을에서 함께 자며 문학 이야기를 나눈 추억이 있다.
- 다리가 마구 덜덜거리며 떨리던 날
1979년 8월 25일은 내게 있어 꽤 의미 깊은 날이었다. 여러 문인들 앞에 서서 이야기를 처음으로 하는 날이었다.
최도규 선생님의 시집 출판기념회에서 약력을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던 것이다.
나는 당시 문래리(골지리) 문래국민 학교에 있었기에 버스를 타고 강릉으로 내려갔다. 버스 안에서도 줄곳 약력 소개 생각만 하였다. 그리고 말 할 내용을 정리하여 외우기 시작하였다. 아무리 외워도 잘 외워지지가 않았다. 시험보기 전날 중요 내용을 외우던 때보다 더 어려웠다.
드디어 출판기념회장인 옥천예식장에 들어섰다. 말을 하면서도 다리가 더덜더덜 떨렸다. 다행인 것은 앞에 이여기대가 세워져 있었기에 사람들에게 보여지지 않았던 점이다. 어디 다리만 떨렸을까? 말도 떨렸다. 겨울 말을 다 하고 자리에 앉으니 평온해졌다.
그 자리에는 대구의 하청호 시인도 오셨다. 최도규 선생님의 작품 세계를 말씀해 주셨다. 그후, 하청호 시인과는 배익천씨가 하는 문학마을에서 함께 자며 이야기를 나눈 추억이 있다.
1979년 10월 2일에는 <소년한국일보>에 동시 ‘가을 한낮’을 발표하였다.
가을 한 낮
남진원
풀밭 바람이
언덕바지에서
신난다며
단풍빛 바람을 휘몰아오면
“이때다!”
과수원에 있던
사솨빛 바람이
쏟아져나오고
미루나무 속
떠다니던
참새빛 바람도 달려와
코스모스 잎새를
하나 둘 셋 냇 …
엎어보고 젖혀보고 뒤적이다가
한 잎
두 잎
어느새
꽃잎이 되어 나뒹구는
가을
한낮
1979년부터 1981년 까지는 고향인 골지(문래)에서 지낸 기간이다. 첫 발령지인 화전 국교에서 지낸 기간이 만기가 되었다. 주거지가 있는 강릉으로 내려갈 수도 있었지만 생각을 바꾸었다. 어릴 때 공부했던 모교에 가서 후배들을 가르치고 싶었다. 그 생각을 하니 기쁨에 들떠서 잠이 오지 않았다.
1979년 3월1일자 발령은 정선군 문래국교로 났다. 고향에서 3년 동안 근무하였다. 학교 공부가 끝나면 방죽으로 나갔다. 긴 방죽 너머 강물은 조용히 흘러내렸다. 아카시아 나무들과 키큰 포플러 나무들이 길게 그림자를 드리웠다. 아이들은 소를 몰고 나와 개울가에 풀어놓았다. 그러면 소들은 물을 마시며 목울 축이기도 하고 냇가의 잔돌 사이에 난 풀들을 뜯어먹었다. 송아지들은 가끔 ‘음메’하고 고운 목소리를 내기도 하였다. 저녁 무렵이면 노을이 곱게 물들었는데 그 모습이 아름다운 한 폭의 한국화였다.
저녁 강가
남진원
조용한
강가엔
노을이
지고
보일 듯
말 듯
아련한
강둑
그
위에
혼자
흔들리고 선
송아지
울음
( 강원교육 1979. 11. )
내가 황지읍에서 이곳 고향 모교에 오니 김진광 선생의 편지가 왔다. 6월 23일 토요일 놀라온다고 하였다. 마석규 선생과 도규 형, 김진광 선생이 정말 6월 23일 찾아왔다. 냇가에 나가 천렵을 하였다. 민물고기를 잡아 매운탕을 끓였다. 그 맛이 정말 최고였다. 냇가에서 하루를 보낸 즐거운 날이었다.
산제골 소가 있는 그 위쪽에는 넓은 개울물이 흐르고 잔돌들이 섞여 있어 반두질 하기에 좋았다. 반두를 돌 앞에 들이대고 돌멩이를 들어낸 후 반두를 올리면 곧 함성이 터져나왔다. 싱싱한 미꾸라지 꺾지 같은 물고기들이 꿈틀대고 있었기 대문이었다. 골지천에는 늘 고기가 많았다. 귀한 손님이 오면 민물고기를 잡아 대접하는 것이 그곳의 풍습이 될 정도였다.
고향에 와서 한 일은 [물레방아] 개인 회보를 만드는 일이었다. 그리고 전국의 문인들에게 보내었다. 호응도 좋았다. 많은 문인들이 격려의 글을 보내주셨다.
이 중에 함처식 선생과 공재동 선생도 격려의 글을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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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진원 선생님
매번 [물레방아]를 받고 인사를 못 드렸습니다.
좋은 작품을 볼 수 있어 기쁩니다.
알차고 좋은 작품을 이렇게 손수 프린트해서 펴내시는 그 열성에 삼가 경의를 보냅니다.
동시에서부터 시조, 동시조, 양징시조 등 다양한 시조에도 축하를 보냅니다.
언젠가는 선생님의 그 열성과 결실을 보게 되리라 믿습니다.
열심히 사시는 선생님께 멀리서나마 성원을 보냐드리며 이만 줄입니다.
1979. 1. 20. 부산에서
공 재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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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공재동 선생은 서울의 [대교문화 문학상] 심사에서 처음 만나 뵐 수 있었다. 아주 좋은 작품을 쓰는 분이라서 더욱 반가웠다.
나는 [교육자료]와 [새교살]을 통해 보아왔던 공재동 선생님이 추천 받은 동시가 너무 좋아서 외울 정도였다. 그 중 내가 놀라고 감동으로 읽던 동시 한 편이 있다. 지금도 외우고 있는 ‘아지랑이’라는 작품이었다.
아지랑이
공재동
은실
금실
아롱
아롱
그물짜서
걸어놓고
나비야
걸려라
고운 나비
걸려라
[물레방아] 회보를 보낸 후 엄기원, 하청호, 김재수, 이상교, 박두순, 윤이현, 조규영 시인 등 많은 사람들이 응원의 편지를 보내주셨다.
박경용 선생의 소개로 [소년한국일보]에 <강원 정선군 편> ‘산과 물로 이어진 정선 그 노래’ 라는 시를 발표할 수도 있었다.
산과 물로 이어진 정선 그 노래
1. 조양강
산이란 산마다
하늘에 맞닿아
조양강 맑은 물은
마치 하늘에서 흘러내리는 것과 같다
비단폭처럼
휘어져내리는
저 은은한 모습은
잠이 든 것 같이 보이지만
그 속에
아이들아
아는가?
송죽처럼 푸른
절개를 지킨
우리 옛 조상의 얼이
흐르고 있다네
잠속에 빠진 것 같은
저 속에
지금도 끊어진 왕조를 생각하는
고려 충신들의 맥박이
묵묵히 흐르고 있다네
그러기에 더욱 아름다운 것을
그러기에 더욱 은은한 것을
보아라
잠자듯
조용한 조양강을
오늘도 우리들 모습을 지켜보며
오늘을 흐르고 있는 것을
2. 무릉도원
지금 들에선
우리들 옛 어른들의 굵은 손마디로
쓰다듬어놓은
옥수수가 자라고
연일 감자밭 너머에서
종다리처럼 노곤한
바람이 묻어든다
저쪽 옹기종기 모인 집
가장자리엔
새소리로 늙은 미루나무 한 그루가
대궐처럼 우뚝 서서
조용히 마을을 살피고
어린 나무들마다
봄볕 같은 아늑함을
줄줄이 잎으로 드리우는
그 곁에 서면
항상 꿈을 꾸듯
고요히 감도는
정선의 아침
온깆 새소리들이
산속마다 꼭꼭 숨었다가
사시사철 무른 노래로
서리처럼 고운
노래의 옷을 입히는 고장
산 좋고 물 맑아
인심도 좋아
김삿갓 시인은
이곳 정선에서
떠날 줄 몰랐다네
그래서 옛날에는
이름도 무릉도원이라고 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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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양강: 강원도 정선군을 거쳐 흐르는 남한강의 지류
* 무릉도원: 산수가 빼어남 곳을 일컫는 말. 정선은 산수가 아름다워 무릉도원이라 일컬어진다.
*김삿갓: 조선 말기의 시인. 본명은 김병연(1807 – 1863)
(1978. 1. 6. 소년한국일보)
이 무렵 ‘휴지통’이라는 시도 썼다. 이 작품은 『강원문학』7집에 발표한 시였다. 어느 날 문인들의 모임에서 김원기 시인은 이 작품이 매우 좋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휴지통
남진원
쓰다가 버린 것들 모두 모여서
세상에 버린 것 끼리
모여 사는 동네
만나는 것마저
버린 것들이
버린 것 끼리 만나서
만남을 알고
정마저 잊어버린 것들이
버린 것끼리 만나
정을 나누고
쓰다가 버린 것들 모두 모여서
세상에 버린 것 끼리
모여 사는 동네
( 『강원문학』, 제[7집. 1979.]
1979년엔 [물레방아] 개인 회보 발간이 특징이었다. 그리고 시의 소재는 아침, 숲 등 신선하고 밝은 이미지에 집중하는 일이 계속 이어졌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만큼 내 마음 상태가 ‘솟아오르는 아침의 모습과도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년』에 발표한 다음의 작품 ‘숲속에 서면’ 도 이런 일련의 생각 속에 쓴 작품이었다.
숲속에 서면
남진원
숲속에 서면
누군가의 생각들이
질 고운 바람소리로 모여들고
쉬임없이 오고 가는
저 귀여운 속삭임
바로 그건
숲의 설레이는 마음이래요
봐요,
나무는 나무 끼리
손을 붙들고
풀잎은 풀잎 끼리
손을 붙들고
새들을 날려 보내는
나무들의 모습을
풀잎들의 모습을
포롱포롱 포르르릉
하늘로 하늘로
햇살인냥
마냥 번져가는
싯푸른 저 새소리 떼
오, 그건
푸른 새들의 소원
하늘 가득히 쌓이는
새의 마음이래요
나도
여기 숲속에 서면
한 마리 새처럼
한 그루 나무처럼
이 숲속에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
이름 모를 바람의 목소리로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
( 『소년』 , 1979. 5월호 )
나는 ‘지구의 허파’인 숲에 들어서면 나무들과 나뭇잎들의 속삭임, 바람의 말을 듣는 소년이 되어 있었다. 새들의 노래 또한 숲을 아름답게 가꾸는 한 가족인 것을 알았다.
숲속에 서면 나는 싱그러움과 풋풋한 즐거움을 느끼는 숲의 소년이고 싶었던 것이다.
숲에 대한 사랑은 [아동문예]지를 통해서 ‘숲의 아침’이란 제목으로도 발표하였다.
봄이면 앵두꽃이 피고 살구꽃이 핀다. 앵두꽃 피고 살구꽃 피는 마을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선경(仙境)의 세계가 따로 없다. 그런 이미지를 담은 시를 『열매』지에 발표하였다.
마 을
남진원
앵두꽃 잠든 마을
지켜 보던 해가 누워
꽃 꿈 빨아 먹다
저도 누워 잠이 들면
시냇물 실어나른다
햇살에 익는 봄빛을
살구꽃 조는 마을
지켜보던 바람이 앉아
향 내음 맡아 보다
저도 앉아 조을면
꾀꼬리 물어 나른다
바람에 익는 봄빛을
( 『열매』, 1979년 6월호 )
1979년 『샘터』지에 시조 ‘늦겨울 아침’을 발표한 이래 [보험뉴스] 신문에 ‘백자’,『열매』지에 ‘ 마을’을 발표한 작품들은 모두 많은 돈은 아니었지만 원고료를 받았다. 원고료를 받은 것이 신기하고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작가라는 자부심과 긍지를 갖을 수 있었던 것이다.
1977년 8월 29일 화전 국교에 있을 때에 아들을 낳았다. 그리고 정선의 고향에 온 1979년 첫 동화 [우체부 아저씨]를 발표하였다. 개인 문학 회보 [물레방아]를 등사하여 전국의 문인들에게 보낸 일도 특기할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기쁜 일이 있었다. 귀여운 딸 아이가 태어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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