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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북알프스와 후지산 등반기(10)
10) 2007. 8. 29(수)
어제 저녁식사를 마치고 비에 절어 엉망이 되어버린 옷을 일부는 빨아 널고 신발에 화장지를 잔뜩 쑤셔 넣어 말리는 등 법석을 떨다 보니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지치기도 했지만 내일 또 산행이 있기에 밖에 나가 술 한 잔 하고 싶은 마음을 접었다. 대신 룸서비스를 불러 두꺼비 3형제끼리 맥주 대여섯병 마시고 있으니 옆방에 있던 마피아님과 산들바다님이 합세해서 북알프스 산행에 대한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웠다.
아침 4시00분에 일어나 대충 세면을 하고 짐을 챙겨 로비로 내려갔다. 8월말의 섬나라 일본은 습기가 눅눅하여 밖에 널어놓은 빨래는 마르지도 않았다. 차라리 방안에 걸어둔 옷은 밤새 에어컨의 제습력 때문인지 뽀송뽀송해서 입기가 좋았다. 도시락 두 개를 받아 배낭에 넣고 4시 40분경 전세버스를 타고 후지산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버스는 새벽의 어둠을 헤치며 구불구불 산길을 돌아 해발 2,305m 지점에 있는 五合目에 05:30분 도착했다. 채 어둠이 가시지도 않은 상태였지만 하늘은 맑은 것으로 보였다. 조금 있으면 후지산 일출을 볼 수 있을 거라는 등반대장의 말을 듣고 잔뜩 기대했다.
가와구치고구치고고메에서의 후지산 등산로 입구, 어둠이 남아있지만 하늘은 맑고 푸르렀다.
후지산은 도쿄에서 100km 떨어진 시즈오카현과 야마나시현의 경계에 위치한다. 높이가 3,776m, 산정 화구의 지름이 약 700m, 깊이 약 240m의 일본 최고봉으로, 후지 화산대의 주봉이며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원뿔형의 성층화산이다. 저지에서 솟아 있으므로 화산체 그 자체가 높고 밑면은 지름이 35∼40km에 달한다. 후지산에 접근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고 등산코스는 출발점을 기준으로 카와구치고구치고고메(河口湖口五合目 2,304m), 스바시리구치고고메(須走口五合目 2,000m), 후지노미야고고메(富士宮口五合目 2,400m), 고텐바구치(御殿場口 1,440m), 요시다구치(吉田口 ?m)가 있는데 가와구치고코스는 요시다코스와 만나고 요시다코스는 다시 스바라시코스와 만나기 때문에 정상에 이르는 길은 3가지 코스로 크게 나눈다. 각각의 코스는 올라가는 길(登山道)과 내려오는 길(下山道)이 따로 구분되어 있다.
끝내 해돋이를 보여주지 않았다. 하늘은 비교적 맑은 편이었으나 발아래로는 구름이 잔뜩 끼어있어 해는 구름에 가렸고 등산 중간중간에 가끔씩 얼굴을 내밀었을 뿐이었다....
후지산은 밑에서부터 정상까지를 10등분하여 1합목에서 9합목과 정상으로 구분해놓았는데 등산은 대대개 5합목에서 출발한다. 내가 출발한 곳은 가와구치고구치 五合目으로 六合目(2,390m)까지는 평범한 코스여서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화산재가 날아와 쌓여있는 검정색 흙길을 걸어 고산지대에서 볼 수 있는 주목나무 군락지를 벗어나자 정상을 향하는 길이 지그재그로 나타났다. 출발할 때 발아래 있던 구름이 우리를 추월하여 먼저 오르는가 하면 어느새 사라지고 또 맑은 날씨가 나타났다. 멀리 앞서가는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다가도 다시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까만 화산재 위에서 주목나무등의 고산지대 나무가 빽빽이 들어서 있다.
출발한지 약 1시간을 조금 넘겨서 07:00 칠합목 일출관(七合目日出館 2,700m)에 도착하여 도시락으로 아침식사를 했다. 08:05 칠합목동양관(七合目東洋館)을 지나 08:25 팔합목태자관(八合目太子館 3,100m)을 지났다.
08:40 Horican을 지나는데 안개비가 내려 비옷을 입었다. 비가 내릴 조짐을 보이자 휴게소의 일손이 바빠졌다. 휴게소 앞 큰 물동이의 뚜껑을 열고 지붕의 처마 끝에 물받이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평상시에는 바람과 화산재 때문에 처마 끝의 물받이를 제거하여 창고에 보관하고 비가 오기 시작하면 설치해서 깨끗한 물을 받는 것으로 짐작되었다. 화산지대라 샘물도 없고 비가와도 물이 고이지 않기 때문에 후지산의 모든 휴게소는 빗물을 받아서 사용한다.
지그재그 등산로를 따라 휴게소가 줄지어 있다. 각각의 휴게소는 칠합목 일출관(七合目日出館 2,700m), 칠합목동양관(七合目東洋館), 팔합목태자관(八合目太子館 3,100m), 팔합목백운장(八合目白雲莊 3,200m), 팔합목원조실(八合目元祖室 3,250m) 따위의 이름이 붙어있다. 휴게소에는 물과 산소 및 빵, 음료수, 기념품 등을 파는 상점과 화장실, 숙식이 가능한 대피시설, 기념품 나무 지팡이에 불낙인을 찍어주는 곳 등이 있다. 모든 등산객들이 휴게소 앞마당을 반드시 통과해야만 하고 다른 우회로는 없다.
후지산에 오르는 사람들은 다양했다. 어린 아이를 앞세우고 가족끼리 올라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정한 연인끼리 오르기도 하고 청춘남녀가 떼를 지어 오르기도 했다. 단체 외박나온 듯한 미군들도 한 30여명 왁자지껄 하면서 올라 가고 있었다. 노인네들도 많았다. 후지산은 일본인들이 일생을 두고 한번은 오르고 싶어 한다는 영산이며 상징적인 산이라고 한다. 산이 비교적 단순해서 날씨가 좋으면 누구나 가벼운 옷차림으로도 쉽게 오를 수 있다. 다만 3천 미터 이상 올라가면 고산증이 올 수도 있는데 고산증만 이긴다면 그리 어려운 산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간혹 길가에 쓰고 버린 산소통이 버려져 있었는데 휴대용 가스렌지에 사용하는 가스통 크기만한 것이 한통에 1,200엔이고 휴게소 마다 판매하고 있었다.
아직도 갈 길은 먼데 안개는 수시로 몰려왔다 사라졌다. 사진 오른쪽 중간쯤에 보이는 것은 목책으로 위에서 굴러오는 돌이나 자갈을 막아 등산로와 등산객을 보호하기 위하여 설치해 놓았다.
팔합목백운장(八合目白雲莊 3,200m)을 지나면서 경사가 심한 돌길을 올라갔다.
09:30 팔합목원조실(八合目元祖室 3,250m)에 도착했다. 이제 8부 능선까지 왔다는 것인데 분화구가 바로 위에 있어야 하지만 올라가도 올라가도 끝이 없었다. 하지만 후지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인 것만은 틀림없었다. 지난번 북알프스 등반시의 첫날과 마찬가지로 3,000미터 부근부터 느끼기 시작한 두통이 살짝 다가왔다 사라지곤 하는 것이 영 기분 나빴지만 결국 시간이 해결해 주리라 생각하고 한걸음 한걸음 천천히 올랐다.
해발 3,250m의 팔합목 원조실 앞에서 한......... 등뒤로는 짙은 안개가 깔려있다. 등산로상에 있는 모든 휴게실은 후지산을 오르는 등산자들이 반드시 통과해야 하게끔 휴게소 바로 앞으로 길이 나있었기 때문에 휴게소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에는 공간이 턱없이 좁았다.
정상으로 갈수록 풀 한 포기 없고 길은 용암이 식어 굳어버린 형태로 남아 여기저기 바위덩어리가 거칠게 나뒹굴고 있었다.
정상부근의 한국어 안내판. 한국인들이 그 만큼 많이 찾아오기 때문이라고 이해하고 싶었다. 그러나 진정 한국인을 위한 안내판이라면 ‘후지산은 어쩌고 저쩌고, 여기는 oo인데, 저쩌고, 저쩌고’하는 등등의 정보를 제공해주는 안내가 아니고 주의사항이라는 것에 주목을 하니 부끄럽기도 하고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5가지 부탁말씀에 약간의 저의가 있다고 느껴지지 않은가? 1. 버리지 않기 하면 될 것을 몰래 버리지 않기, 2. 쓰레기는 되가져가기 대신 <모두> 되가져 가기 등등..........어차피 일본 땅에 버려야 할 것인데 쓰레기통이나 충분히 만들어 둘 일이지........지들은 안버리나? 지들도 돈 안내고 화장실 사용하는 넘들 많기도 하더만.......... 나쁜 쉐이덜..............
11:30 드디어 분화구에 볼 수 있는 정상부위에 올랐다. 후지산 정상은 분화구를 둘러싼 테두리 중에 기상대가 서있는 곳이다. 분화구의 모습은 한라산 처럼 분화구 밑부분이 전체적으로 움푹 패인 것이 아니고 분화구안의 1/2에 해당하는 면적은 비교적 편편하고 정상으로 향하는 길이 나 있었으며 나머지 절반은 깊이 패여 있었는데 물한방울도 없고 풀한포기도 없고 다만 녹지 않은 눈이 화산재와 섞여 시커멓게 남아있을 뿐이었다. 아름다운 백록담의 모습을 생각하니 대실망이었다.
후지산 분화구에 도착하여 분화구의 일부를 배경으로 한 컷 찍었다.
후지산 정상지점의 표석, 근처에 있는 일본인 학생에게 어떻게 읽느냐고 물어보니 ‘닛뽄다이고호후지야마(日本最高峰富士山)’라 알으켜준다. 기상대는 표석 바로 앞에 있는데 실제 운용을 하는지 안하는지 잘 모르겠다.
후지산 분화구, 정말 별 볼일 없다.
12:10, 드디어 일본 최고봉인 3,776미터의 후지산 정상지점에 도착했다. 간식을 먹고 사진을 찍고 한참을 쉬다가 다시 12:40분경 하산하기 시작했다. 하산 길은 등산길과는 다르게 화산석 자갈길로 발길이 닿으면 아래로 밀려나며 기왓장 부숴 지는 소리가 났다. 나는 계속되는 강행군에 지치기도 했지만 올라올 때부터 아프기 시작한 두통이 묵직하고 약간 메스껍기도 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점심도시락을 먹지 않고 계속 물만 마셨다. 때문에 힘이 빠지고 다른 일행들과 사진을 찍어가며 여유있게 하산할 수 없었다. 때마침 카메라 배터리가 거의 바닥수준이어서 사진찍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후지산의 하산길은 지그재그 길이었다. 정상까지도 올라가는 궤도차량이 후지산 등산로상의 시설물이나 휴게소의 물건 운반을 위하여 운행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올라올 때처럼 급경사도 없고, 용암이 굳은 커다란 화산석도 없었다. 비록 포장은 되어있지 않지만 잘 닦여진 도로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거리로는 등산길의 3배 이상 길게 느껴졌다.
후지산 하산 길, 끝까지 이런 지그재그 길로 신발을 끌면 먼지가 자욱이 일어나 뒷사람에게 불편을 주기도 했다. 성질 같아서는 바로 직하강하고 싶은데 다른 샛길이 전혀 없다. 저 밑에 머물러 있던 안개가 순식간에 몰려와 시야가 2~3미터밖에 되지 않았다.
얼마동안을 아무 생각 없이 걸었는지 모르겠다. 스틱 두 개를 양손에 쥐고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발길을 내딛었다. 안개가 순식간에 몰려와 옷을 적시기 시작했다. 그래도 별 생각없이 내려가고 있는데 내 앞에 한 여자가 약간 다리가 불편한 폼으로 걷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아까 떼거리를 지어 올라가던 미군들중 한명이었다. 키는 나보다 약간 큰 175Cm 정도, 약간 통통했지만 그런대로 봐줄만 했고 콧날은 오똑하지만 화장하지 않은 맨얼굴에는 죽은깨라든가 기미가 약간 끼어 있었으며 머리카락은 약간의 금발끼가 보이는 듯한 갈색머리카락이 눌러쓴 모자 밖으로 삐져나와 있었다.
내려가는 길이 너무 지루한데 잘 됐다 싶어 말을 걸었다. 그녀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왔고 미해군에 근무하고 있으며 현재 배가 도쿄항에 정박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 상급자 및 동료들과 후지산에 왔다는 것이다. 가벼운 운동화에 거의 운동복 차림수준으로 올라왔는데 발이 아파서 위에서 놀고 있는 일행들보다 먼저 내려가는 길이라고 했다. 23세에 결혼을 해서 현재 5년이 됐는데 아이는 없고 신랑은 샌프란시스코에서 무슨 가게를 운영하는데 뭐라고 말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마 집을 수리하거나 관리하는 데 필요한 장비나 도구들을 빌려주기도 하고 팔기도하는 뭐 그런 종류의 사업체로 짐작이 되었다. 걷기가 많이 불편한 것 같아서 내 스틱 두 개를 그녀의 키에 맞게 조정하여 빌려주고 대신 그녀가 짚고 있던 나무지팡이 기념품을 내가 짚으면서 영화 이야기, 군대생활 이야기, 미국여행 이야기 등등 이런 저런 이야기를 손짓, 발짓, 더듬더듬 이야기하면서 세시간 정도 내려왔다. 다행이 그녀와 나는 목적지가 같은 가와구치고구치 고고메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이었으므로 끝없이 이어지는 지그재그길을 지겹지 않게 내려올 수 있었다. 오합목에 도착해서 작별인사를 하고 그녀는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전세버스로 나는 나를 기다리고 있는 전세버스로 각각 제 갈 길을 갔다.
나는 평소에 여행은 여행이고 산행은 산행일 뿐이라고 생각해 왔다. 여행하면서 또는 산행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만 웬만해서는 그런 인연을 연장해서 가져가지는 않는다. 그냥 그때의 인연과 느낌을 소중히 간직할 뿐이다. 그러다가 세월이 지나면 잊어버리기도 하고 아주 희미하게 기억하기도 한다. 정말 인연이라면 살아있는 동안 잠시라도 스쳐 지나갈 수는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15:30 출발지점에 도착 산행을 끝마쳤다. 오늘도 10시간의 산행을 하였다. 후지산은 3개의 현에 속한 거대한 산인데 멀리서 바라보면 멋있는 산이지만 들어가 보면 재미없는 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등산로는 능선도 없고 계곡도 없어 오르락 내리락하는 맛이 전혀 없고 오로지 올라가기만 하는 지그재그길은 지루함의 연속이다. 그렇게 힘들게 올라갔는데도 분화구는 그야말로 별 볼일이 없다. 잿빛에 붉은 화산석들로만 이루어져 있어 대형 공사장의 언덕을 가는 삭막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일본에서는 후지산을 두고 ‘일생에 한 번도 올라보지 못한 사람은 바보, 그러나 두 번 올라가는 사람은 더 바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이로서 북알프스 2박3일에 이어 후지산 등반은 모두 마쳤다. 4일동안 매일 거의 10시간 또는 그 이상을 산행하면서 많은 것을 보고 느꼈지만 내 표현력이 부족하여 제대로 글로 옮기기에는 많이 부족함을 느꼈다. 다음에도 이런 기회가 온다면 기쁘게 다녀 올 생각이다. 그리고 보다 상세히 기록하고 관찰하고 싶다. 특히 카메라 밧데리는 충분히 가져가자.................
첫댓글 그동안 매우 재밌게 잘 읽었고, 많은 참고가 되었네. 고맙고.. 역시 프로는 시공을 초월해서 대상을 가리지않고 작업을 하는구만...
작업은 무슨 작업입니까요? 실컷 그래봐야 헛물만 켜는디요.
우리집 액자에 후지산 사진이 있다. 그런데, 퍼즐로 짜 맞춘 것이다. 지금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약 1000 조각으로 구성돈 것이다.정상이 하얗게 눈에 덮혀 있는데... 신혼때 마눌이랑 둘이서 맞춘 것이다
신혼때 한 퍼즐을 아직도 보관중?? 대단하십니다!! 형수랑 알콩달콩 퍼즐맞추기?? 잘 상상이 안되는데요~~
후지산은 정상부근에는 흰눈이 덮혀있고 중턱에는 녹음이 짙은 사진이 제일 멋있던데요 혹시 그런 그림사진인가요?
한병희 수고 많았네. 산행기만 읽어도 다녀온 기분이네. 감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