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다가 받게 된 영세 글 :강금실 에스델
그러니까 30년 전, 내가 대학교 입학시험을 보고나서
제일 먼저 읽은 책은《불교학개론》이었다.
종교에 대한 관심이 어디에서부터 비롯되었는지는 따지기 어려우나,
나는 대학교 들어가서 내내 불교의 경전들, 선(禪)에 관한 해설서들,
그리고 당시 나와 있던 마르틴 부버, 에리히 프롬,
폴 틸리히, 하비 콕스 등의 신학자들 책을 두루 읽었다.
대학교 1학년 여름에는 통도사에서 열리는 3박 4일의 불교수련회에도 갔었고,
법대에 들어가서는 지금 대법관이 된 친구K와 함께
법불회에 들어가서 정기적인 법회에도 참여하곤 했다.
그러나 어찌어찌 세월이 가다 보니 이러한 종교에 대한 열기는
흐지부지되어 맘에 묻어둔 채 세파에 휩쓸려버렸다.
그래도 집안 대대로 종교가 불교이고, 나 역시 정기적으로
절에 다니는 것은 아니지만 불교에서 비롯된 종교적 관심을 유지하고 있어,
종교가 무엇인지 묻는 항목이 있으면 언제나
‘불교’라고 적어넣고 불교 신자임을 자처하여 왔다.
한편 종교에 대한 일반적인 지적 호기심에서 비롯되어
기독교에 대해서는 내내 두 가지 숙제를 풀고 싶은 궁금증이 있었다.
하나는 죽기 전에 꼭 성경만큼은 읽어야겠다는 것이었다.
기독교 신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성경은 인류 문명의 터전이며
엄청난 영향을 준 고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고전교양대회’라는 것이 있어서
그때 간추린 구약과 신약을 읽긴 하였다.
고전 교양교재를 읽고 대회에 나가 시험 치르고 좋은 성적을 거두면
상을 받는 것이었는데, 예의 친구 K와 나는 학교에서 선수로 선발되었고,
나도 무슨 상을 받고 K 역시 상당히 높은 성적을 거두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대회에 같이 출전하게 된 것이K와 내가 친해진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 당시에 읽은 구약의 여호와는 막 화를 내고
벌을 주고 하는 신이라서 참 기이하다는 생각을 했다.
또 하나는 예수의 삶에 대한 관심이었다. 종교의 교주가 스스로
수난을 당하고 십자가에 박혀 비참하게 죽었다는 사실이 특이하게여겨졌다.
기독교는 인간 삶의 육체성, 역사성, 피와 고통 그런 것들 속에
직접적으로 체현되어 있는 종교라는 인상을 받았다.
기독교 신자가 될 마음은 없지만,
예수의 삶에 대한 관심은 마음 한구석에 계속 있었다.
때때로 어떤 문제를 생각할 때 예수를 떠올려 생각해 보곤 하는 그런 것.
예컨대 이러하다. 예수는 언덕 위에 세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
대낮에, 모든 사람이 보는 가운데에서. 비참한 죄수로.
자기 자신이 아주 누추한 자리에서 모두 벗겨진 채 모욕을 당하는
그 수치스러움을 어떻게 이겼을까?
사람이 사회생활을 한다는 것은 서로 관계를 맺는 것이고,
그 관계란 상호 인정과 존중이므로, 모든 사람으로부터
부인당하고 손가락질당하는 그 자리의 수치스러움이란
자기 인정 욕구의 극단적 한계 상황이 아닌가.
나중에 알고 보니 예수께서는 수치스러워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수치스러워하는 관계 속의 상대적인 자리에서 이미 벗어나 있어,
자신을 모욕하는 사람들에게,
“저들을 용서하소서. 아무것도 모르나이다”라고 하였다.
말하자면 나는 부처님과 예수님만큼은 참으로 인간 한계를 뛰어넘은
초인이었다는 존경의 념을 품고 속세의 평범한 삶,
아무리 깨달아 봐야 또 화내고, 슬퍼하고,
불안해하고 하는 별 나아질 기미없는 생활을 이어나갔다.
젊은 시절이 차라리 낫지, 삼십대, 사십대에 접어들면서
사회생활을 어떻게 훌륭한 인격적 태도로 잘 헤아리며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는 학교에서도 별로 배운 적이 없고,
그저 닥치는 대로 당황하며 겪으며 더 힘들어져 갔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던 어느 날, 2002년 8월 초 무렵, 법원장이셨다가 변호사개업을 한
이영애 선배의 권유로 법조인 예비자 교리를 들으러 가게 되었다.
예비자 교리는 가톨릭에서 영세를 받기 전에 들어야 하는 필수 과정인데,
이 원장께서 법조인들로 하여금 성경과 교리를 배우고
영세를 받을 수 있도록 별도의 교리반을 만들어 이제 막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내가 세례는 안 받을 것이지만
성경 공부는 하고 싶다고 하니,
“ 영세는 안 받아도 돼, 와서 성경공부만 해도 돼” 이렇게 말이 오고간 끝에‘
드디어 성경 공부를 하는구나’ 하고 그 교리반에 합류하게 되었다.
교리반을 이끄시게 된 이경상 신부님은 당시 가톨릭대학교
사무처장으로 근무하시어 사무실이 강남성모병원 안에 있었다.
월요일 저녁마다 병원 안 사무실에 모여서 10여 명이
돌아가면서 준비해오는 샌드위치를 먹고 강의를 들었는데,
첫날이었던가, 내가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사가지고 갔더니
이 신부님은 너무나 맛있다면서 두 개 이상 드셨고,
그 다음에도 그 샌드위치를 기다리곤 하셨다.
이 신부님은 인상 좋은 거구에 안경을 쓰셨는데 눈매는 날카로우셨고,
여러 해째 90킬로그램으로 감량하는 것이 목표셨다.
이 신부님은 믿어야만 받아들일 수 있는
종교성(부활, 천당, 하느님의 아들 등)보다는,
평범한 사람이 이성적 생각에서 접근할 수 있는 방식으로 강의를 하였기 때문에
신자가 아닌 사람이 흔히 느끼기 쉬운 거부감 없이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감명 깊었다. 구약성경에서 아브라함은 누구를 낳고,
또 누구는 누구를 낳고 이렇게 계속되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 신부님의 설명에 따르면 이것은 당시 물이 귀하여 우물을 중심으로
형성된 부족 간의 동맹과 결합을 표현한 것일 수 있다고 했다.
광야-사막 체험. 인간 각자에게 주어져 있는 사막,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함으로써 들어올려지는 삶.
예수께서는 ‘먹고 마시는 일’ 을 매우 귀하게 여기셨다.
광야에서 돌아온 뒤 행한 첫 번째 기적은 물을 술로 바꾸는 것이었고,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 마지막 만찬에서도 제자들과 빵, 포도주를 나눠 드셨다.
그리고 저세상에 가서 꼭 다시 만나 포도주로 잔치하겠다고 약속하셨다.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전 맨 마지막에 한 행동도
목이 마르다고 하여 스펀지에 축여준 포도주를 마신 뒤에야
“다 이루었다”고 소리치셨다.
이와 같이 나 또한 즐거워하는 먹고 마시는 일의 관점에서 예수를 바라보니
참으로 친근감이 가고 정말 삶의 진리가 만져지는 듯했다.
그런데 내가 강의를 들으면서 주로 한 것은 기독교적 명상이 아니라
그침 없이 웃는 일이었다. 이 신부님은 거구에 어울리지 않게,
그래서 너무나 웃음을 자아내는 손짓과 몸짓의 액션을 써가면서
쉴새 없이 모든 이야기를 코믹한 우화로 바꾸어 놓는
천부적으로 탁월한 능력을 갖고 계셨다. 땀을 많이 흘리시니까,
어떤 사람이 “신부님, 왜 그렇게 땀을 흘리세요?”하면
1초도 안 되어 바로 “방수가 안 되어서요” 하는 답변이 돌아왔다.
예비자 교리반 강의는 내가 이제까지 태어나서 들은 강의 중
가장 재미있고 웃겨서 나는 아이고 배야, 하면서 만날 웃기만 하였다.
웃느라 다닌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법조인들이 너무나 점잖아서, 그리고 예비자뿐 아니라
이미 독실한 경지에 이르신 전 대법관님 등 선배들도 청강하러 오셨는데
아무리 웃기는 이야기를 하여도 나처럼 깔깔대고 웃지는 않으니,
허허 하거나 미소를 지을 뿐. 나의 혼자 높게 찢어지는 웃음소리가
시끄러운 듯해서 계면쩍었으나 그렇다고 안 웃을 수도 없고!
그렇게 웃다가는 사무실 일이 바쁘고 해서 나중에는 강의도 몇번 빠지고 말았다.
이 신부님께 별도로 인사도 못 드렸는데, 교리반이 끝난 뒤
이 신부님이 내가 꼭 영세를 받으면 좋을 사람이라고 하시니
세례를 받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이 원장께서 연락을 해오셨다.
물론 나는 “아니요, 영세는 받을 생각이 없어요” 하고 버텼다.
종교며, 예술이며, 정치, 집안 살림살이 모두 사람이 주체로 하는 일이라서
결국은 엮어지는 인연을 따라 흘러가게 된다.
아마도 내가 이렇게 흐지부지 헤어진 이 신부님과
다시 만나게 되는 우연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내가 가톨릭에 입문하는 일은 평생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태생적으로 왠지 불교라서, 내가 기독교신자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부활, 천당, 하느님 아들,
이런 보이지 않는 것들을 받아들이기가 어디 그리쉬운가.
이 신부님과의 ‘운명적 조우’ 는 법무부에서 근무할 때 일어났다.
첫해 여름쯤 나는 예측은 하였으나 기대 이상으로 무척 힘든 처지에 놓여 있었고,
자리가 자리인 만큼 정치와 권력, 정치적인 것,
이런 문제들에 대하여 다시금 고민을 하곤 했다. 오래전 읽었던
일본 정치철학자 마루야마 마사오의《현대정치의 사상과 행동》을
다시 꺼내 읽기도 했다. 그는‘권력과 도덕’이라는 항목에서
기독교에 관하여 언급하는데, 로마법이라는 장대한 법의 형식적 지배 체제가
완성된 로마제국 시대에 이르러 그 변방에서 순수한 내면적 심정의
윤리를 가진 기독교가 성장하였다는 사실은
세계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했다.
기독교는 정치 권력의 집대성에 대치되는 윤리와 인격적 차원이
인간에게 가능하도록 열어 보여주는 기능을 한다는 점에서다.
기독교는 권력의 절대화를 영원히 거부하면서도 현세로부터 도피하지 않고
정치 사회의 내면에서 권력을 반대하는 윤리를 제시하는 작용을 한다.
이렇게 해서 권력과 도덕 사이의 긴장이 어느 정도
언제나 재생산되는 결과가 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이 마사오의 지적을 해석하는 방식은, 권력과 정치의
정치적인(진실과 인간다움보다는 이기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작동 방식 속에서 인간이 마땅히 그래야 할
인격적인 생존 방식을 지키는 방법에 대한 고민의 지점이었다.
어느 순간 개혁이라든지, 서로 갈등하는 권력 기관 간의
문제해결 방식에서 이해득실을 따지기보다는 진실을 우선시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인간적인 사랑과 포용을 선택하고,
그럼으로써 더 자기를 비운 역할로서의 공인의 삶을 사는 것,
또한 그것이 권력과 정치의 본질이어야 하는 것. 이를 어떻게 해야하는가.
첫해 여름 나는 이런 고민을 안은 채 모스크바로 며칠 출장을가게 되었다.
모스크바에서 법무부장관을 만나 양국 간의 업무협약서에 사인한 뒤
남은 오후 시간에 러시아 작가들의 그림만을 전시하는 갤러리를 찾았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초상화도 있었고,
주로 사실주의적인 붓 터치로 그린 소박한 서민들의 삶,
기독교의 성서 스토리를 그려낸 그림들이 많았다.
어느 그림은 화면 전체가 시커먼 밤인데, 나무들이 들어선 숲 바닥에
긴 머리를 한 사람이 두팔을 앞으로 쭉 뻗고 엎드려 있었다.
화면도 어두운데다가 엎드려있는 사람의 뒷모습만 있으니
특이한 인상을 주어 옆 사람에게 설명을 구하였더니, 예수님이라고 했다.
이 그림이 깊게 인상에 남아 있어서, 돌아와서는 나의 일을 도와주던
부장검사 K와 이야기하던 중에 우연찮게 질문을 하였다.
그가 가톨릭 신자라고 해서였다.
“ 이러이러한 그림이 있는데 예수님이라네요.”
“아, 겟세마네 동산의 예수 같네요, 마태복음을 읽어보시면 도움이 될 텐데요.”
그래서 내가 처음 자발적으로 성경을 들춰 읽게 되었는데,
겟세마네 동산의 예수가 잡혀가서 하룻밤 만에 재판을 받고
십자가에 못 박히기 바로 전날 밤, 최후의 만찬을 마친뒤,
죽음을 예견하고 너무 고통스러운 나머지 동산에 올라
땅에 엎드려 피땀을 흘리며 밤새 기도하는 장면이었다.
이렇게 기도하다가 예수는 그 동산에서 잡혀간다.
“아버지, 이 독이 든 잔을 치워 주소서. 그러나 당신 뜻대로 하소서.
죽고 싶지 않지만 어쩌겠는가, 운명이라면 받아들이겠다.”
이 예수의 말은 참으로 가슴에 깊이 와박히는 리얼한 절규 같았다.
이렇게 해서 나는 좀 더 본격적이고 적극적으로
성경과 예수에대해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는데,
가톨릭 신자인K부장에게 법무부 오기 전 나의 예비자 교리반 경험을
이야기하던 중에 그의 동생이 이경상 신부와 함께
가톨릭 재단 사무국에서 일한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서로 아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은.
예를 들어 나에게는 중학교 동창인
피아니스트 친구 은주가 있는데 독일에서 오래 살았다.
지금 인권재단 상근이사로 일하는 양영미도 독일에서 오래 살았다.
그러나 은주는 은주대로, 영미는 영미대로 여러 해 따로따로 알고 지내오다가
최근에야 이 두 사람이 같은 시기에 같은 동네 옆집에서 살던
이웃이라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은주와 영미가 만나서 이야기하던 중에
내 이야기가 나와 서로 안다고 맞춰보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이경상 신부님을 한번 모시고 식사하고 싶다는 전언을 하여
11월경 이 신부님을1년 만에 만나 뵙고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다.
그때 이 신부님께서 다시 성경 공부를 권하셨다.
그래서 조그만 모임을 만들어 공부를 해보자고 약속을 드린 후,
12월 약속한 날, 이 신부님을 뵈러 가기 전에 모 호텔 회의실에서
고검장회의를 하다 잠깐 나와 화장실을 찾다가
3층에서 2층 중간까지 계단을 헛디뎌 때굴때굴 굴렀다.
다행히도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얼굴 한쪽 눈두덩이 붓고 다리를 절뚝거렸다.
그런 채로 약속을 어기지 않고 성경 읽기를 하러 갔다.
이 신부님과 두 번 정도 성경을 읽었을 때, 창세기부터 읽었는데,
처음에는 영세를 받지 않고 성경 공부만 해도 좋은 일이라 하시더니,
나의 성경 해석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고 극찬을 해주시더니만 안 되겠다,
영세를 받으라고 하셨다. 종교도 넓은 의미에서의 문화생활이니,
막상 세례를 받고 어느 한 종교를 분명하게 선택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 달가량을 매우 망설였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이미 적극적으로
알려고 노력하여 한번 깊이 느껴지는 어느 한 지점에 가 닿고자 하는
열망이 진행중이었으므로 결국 과감하게 영세를 받기로 하고,
부활절에 강남성모병원 안에 있는 조그만 성당에서
이 신부님으로부터 영세를 받게 되었다. 대모는 물론
나를 이 지경까지 이끄는 데 계기가 되어주셨던 이영애 원장께서 맡으셨다.
영세를 받기 전 서울대 교구 이한택 주교님을 찾아가 뵈었다.
그런데 주교님은 그날의 미사 책을 준비해 놓으시고,
‘ 에스더’ 라고하는 세례명까지 뽑아놓으셨다.
그날은 마침 부활절 전 성삼일중이라서,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잡힌 후 재판을 받는 과정을 강론해 주셨다.
이 주교께서 요한복음 13장을 읽어주셨는데,
최후의 만찬장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는 장면이었다.
성매매 피해여성 상담센터에서 일하던 후배 지용의 말에 의하면,
내소사의템플 스테이에 가서 상담원들이 그 피해자들과
맞절을 하고 그들의 발을 씻어주자 모두 울었다고 한다.
세례를 받던 날, 나는 내가 무척 사랑받는 사람인 것이 느껴진다,
십자가를 짊어진 삶을 기꺼이 따르겠다고 말했는데,
사실 지키기에 참 힘든 약속을 하였다.
세속에서는 우스갯소리로 자신의 십자가가
너무 무거워서 한탄하는 사람들에게
모두 십자가를 내려놓고 제일 가벼워 보이는 것으로 골라가라고 했더니,
결국 자기 십자가를 다시 다 매고 갔다는 이야기가 있다.
십자가의 고통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고,
어떻게 가벼이 너끈하게 짊어지고 갈 것인가,
그 길에 대한 가르침이야말로 성경 말씀이 의미하는 것일 텐데,
받아들이고 실천 속에서 견뎌내는 힘을 키워가는 것이
삶의 성숙한 과정이라 하겠다. 그래, ‘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 하겠다.’
-「서른의 당신에게」中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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