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는 공공기관이 아니라 민간은행이다. 미국뿐 아니라 영국, 프랑스 등 여러 선진국들의 중앙은행도 그 시초는 민간은행이었다.(사진=연합뉴스)
우리는 천민자본주의, 황금만능주의 등의 용어가 유행할 정도로 돈을 숭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정확히는 돈이라 불리는 종이쪽지를 숭배하고 있다.
또한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돈’과 ‘경제’란 단어에 목을 매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해서 한낱 종이쪽지에 지배당하고, 그 종이쪽지에 사회 전체가 얽매여 신음하는 세상에 살게 되었을까? 세계파이낸스는 [안재성의 金錢史] 시리즈를 통해 돈과 금융의 역사에 관해 짚어보고자 한다.<편집자 주>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는 사실 공공기관이 아니라 민간은행이다. 미국뿐 아니라 영국, 프랑스 등 서양의 주요 선진국들 중앙은행은 모두 민간은행으로 출발했다.
다만 영국의 중앙은행인 영란은행과 프랑스의 중앙은행인 프랑스은행은 후일 국유화되었으나 연준만은 아직도 민간은행인 채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어떻게 한 국가의 통화 발행이라는, 중요한 역할을 공공기관이 아닌 민간기업에게 맡길 수 있을까?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다. 특히 국가 주도의 통제경제에 익숙한 한국인들이 보기에 더더욱 그러하다.
그 이유는 중앙은행이 만들어질 당시 서양 여러 정부의 신뢰도가 형편없어서였다. 정부가 발행한 지폐를 아무도 믿으려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민간은행에게 지폐 발행을 맡긴 것이다.
◇재정 부족 메우기 위해 발행한 지폐
전술했듯이 지폐의 탄생 배경, 특히 서양에서 지폐가 대거 유통되기 시작한 배경은 경제 활성화 등 합리적인 목적이 아니라 그냥 사기극이었다.
서양의 여러 정부는 오래 전부터 재정이 위험해질 때마다 국채를 발행했다. 국채는 증세보다 ‘세련된 약탈’이기에 국민을 속일 수 있어서였다.
그런데 국채는 빚이기에 결국 언젠가는 갚아야 한다. 전쟁에 이겨 패전국으로부터 배상금 등을 뜯어낸다면야 한결 부담이 덜해지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문제가 복잡해지곤 했다.
실제로 이런 경우 정부가 돈을 빌리기만 하고 떼먹는 경우가 수두룩했다. 각국의 국왕들은 뻔뻔하게도 금고에 금화가 없다는 이유로 빚을 갚으려 하지 않았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자연히 국채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정부가 새로운 국채를 발행해도 사람들은 더 이상 국채를 구매하려 하지 않는다.
이처럼 국채는 언젠가 갚아야 한다는 부담과 더불어 나몰라라 하더라도 그 후의 국채 발행에 걸림돌이 되는 위험이 존재한다.
그런 부담과 위험을 제거한 ‘보다 세련된 약탈’이 없을까 하고 왕과 귀족들이 고민한 결과가 지폐 발행이었다.
지폐는 종이쪽지 하나를 주고 금화와 은화를 강탈해간다는 점에서 국채와 메커니즘이 똑같다. 다른 점은 빚이 아니므로, “이건 돈이다”라고 사기를 치는 것이므로 나중에 갚을 필요가 없다는 점이었다.
따라서 정부는 재정이 위험할 때마다 지폐를 발행했다. 종이쪼가리를 뿌려준 대신 국고를 금과 은으로 가득 채우니 당장은 만사가 잘 풀리는 것 같다.
그러나 지폐에도 지폐 나름의 약점이 있었다. 이 시기는 아직 신용화폐 시스템이 자리잡기 전이라 종이쪽지를 내밀면서 ‘돈’이라고 우겨봤자 사람들이 믿지 않는다.
그래서 꾀를 짜낸 정부는 지폐를 발행할 때마다 기초자산을 신용의 증거로 내밀었다. 금, 부동산, 채권 등을 기초자산으로 삼아 “지폐를 가져오면 이 기초자산과 교환해준다”고 유혹한 것이다.
특히 기초자산으로 가장 많이 활용된 것은 제일 신뢰도가 높은 금화였다. 때문에 당시 지폐를 주로 금태환 화폐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금화와 바꿔준다”는 정부의 약속을 믿고 지폐로 물건, 용역 등 여러 거래를 했다. 하지만 이는 뻔한 사기극이었다. 국고에 진짜로 금화가 있다면 금화로 재화의 가격와 인건비를 지급하지, 무엇하러 힘들게 머리를 굴려가면서 지폐를 발행하겠는가?
대개 지폐 발행 직전의 국고는 텅 비어 있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 사람들이 지폐를 든 채 몰려들면 국왕은 “그만한 액수의 금화가 없다”며 뻔뻔하게 외면하곤 했다.
◇지폐 발행 전담하는 중앙은행의 탄생
이런 악독한 사기극을 되풀이하니 자연히 정부의 신뢰도는 바닥까지 내려간다. 반대로 민간자본에 대한 신뢰도가 더 높았다.
당시 유럽에서 금화와 은화 외에 지폐에는 아직 법정화폐가 없었다. 때문에 정부가 아니라 일반 은행들도 보유하고 금화(예금)를 담보로 종종 지폐를 발행하곤 했다.
자본가들도 선한 사람들은 아니기에 보유 중인 금화 이상의 지폐를 마구 뿌리다가 은행이 파산하는 경우가 흔했다. 그래도 정부처럼 심한 짓은 하지 않았다. 프랑스 대혁명 시기의 아시냐 지폐는 액면가가 무려 기초자산의 33배나 되는 규모로 발행됐는데, 최소한 민간은행들은 이런 미친 짓은 하지 않았다.
아니 법과 규제가 그들의 악행을 막았다. 권력의 최상위에 위치해 시민들의 분노를 무시해버릴 수 있는 국왕과 달리 자본가들은 사기를 치다 걸리면 감옥에 가야 한다. 이런 점을 두려워해 최대한 양심껏 경영하는 은행도 많았다.
따라서 더 이상 국채도, 지폐도 먹히지 않게 된 정부는 최후의 수단으로 믿을 만한 자본가들을 골라 지폐를 발행할 독점권을 주게 된다. 국가의 지폐 발행을 독점적으로 관장하는 중앙은행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이처럼 최초의 중앙은행은 국가가 만든 은행이 아니라 민간은행이 정부로부터 독점권을 부여받아 지폐 발행을 담당하는 체계였다. 그래서 서양 여러 선진국의 중앙은행은 민간은행으로 출발하게 된 것이다.
영란은행이나 프랑스은행의 탄생 역시 이와 똑같은 시나리오를 따라갔다. 서기 1692년 영국 정부는 프랑스와의 전쟁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국채를 발행했으나 겨우 10% 가량밖에 팔리지 않았다.
주된 이유는 당시 영국 왕 윌리엄 3세가 네덜란드 출신이라 영국 내 정치적 기반이 약하다는 점과 함께 1690년의 비치 헤드 해전에서 프랑스에게 패한 탓이었다.
전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배상금을 받을 수가 없고 자연히 빚을 갚을 가망성이 뚝 떨어진다. 지폐를 만들어 “금화와 바꿔주겠다”는 약속해봤자 이런 상황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
윌리엄 3세와 영국 의회는 고민 끝에 스코틀랜드의 자본가인 패터슨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정부에 필요한 돈 120만 파운드를 빌리는 대신 영란은행의 설립을 허가한 것이다.
영란은행에는 △정부에게 돈을 빌려줄 독점권 △다른 은행을 합작으로 설립할 권리 △영란은행이 파산하더라도 그 채무는 출자금 이하가 되도록 하는 유한책임제 △국채를 담보로 해 지폐를 발행할 독점적인 권리 등 여러 특권이 주어졌다.
특히 국채를 담보로 해 지폐를 발행할 권리는 패터슨 등 몇몇 자본가들에게 거대한 이익을 안겼다. 그들은 정부에 돈을 빌려주고 그 이자를 수취하면서 국채를 기초자산으로 해 마음껏 지폐를 발행했다.
지폐 발행을 독점한 데다 국채라는 담보가 꽤 든든하기에 사람들은 모두 영란은행을 찾았다. 덕분에 패터슨 등은 슬그머니 국채 규모를 능가하는 수준의 지폐를 발행하거나 지폐를 빌려주고 금화로 이자를 받는 등 여러 수법으로 막대한 이익을 누렸다.
이들의 장난질은 정부처럼 막나가진 않았지만 근본적으로 사기극임에는 마찬가지다. 결국 자본가들의 악행을 막기 위해 1946년 영란은행은 국유화됐다.
프랑스은행은 나폴레옹이 ‘대 프랑스 동맹 전쟁’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1800년 설립했는데 시스템은 영란은행과 똑같았다.
아시냐 지폐의 파동 이후 지폐의 신뢰도가 바닥까지 내려간 점을 만회하기 위해 나폴레옹은 정부가 프랑스은행으로부터 빌릴 3000만프랑을 이 은행이 발행하는 지폐의 기초자산으로 정했다. 또 프랑스은행의 출자금 3000만프랑은 전액 민간에서 모집했다.
즉, 중앙은행의 체제를 민간은행으로 사 사람들의 믿음을 산 것이다. 다만 이는 겉포장일 뿐이고 속은 여전히 사기였다. 프랑스은행은 아직 출자금이 다 입금되지도 않은 상황에서도 벌써 돈이 모인 냥 거짓말을 하면서 지폐를 뿌려 이익을 실현했다.
더 놀라운 점은 출자자 중 한 명으로 나폴레옹의 이름이 들어가 있다는 점이었다. 나폴레옹 황제는 이렇게 비열한 수법으로 개인 재산을 불렸다.
미국은 본래 영국인들이 건너가 만든 나라라 제도도 영국을 본뜬 것이 많았다. 연준은 1913년 만들어졌는데 그 시기의 미국 정부는 17세기 후반의 영국 정부처럼 재정이 어렵거나 정부의 신뢰도가 낮지 않았음에도 민간은행으로 만들어졌다.
이는 영란은행을 베낀 것에 더해 당시 미국 금융을 주름잡고 있던 유대인들이 중앙은행을 민간은행으로 만들고 싶어해서였다. 그래야 더 많은 이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여러 선진국들이 중앙은행을 국유화하는 과정에서도 미국은 그런 시도를 하지 않았다. 지금도 연준을 비롯해 월가 등 미국 금융권은 유대인이 지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