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뻗정다리
최은경
부화기 나올 때부터
엎드린 병아리
일어서지 못해도
눈빛 총총하다
내 두 손 병아리 다리되어
아침이슬 부리에 대면
“쪽 쪽”
돌아가신 할머니
엉덩이 밀고
방에서 나오신다
일어서 앉을 때마다
철퍼덕 궁둥이뼈 내리앉아도
댓병 끌러 소주 한 잔이면
“달디 달다”
이슬 쪼은 병아리
내 손 안에서 흡족하다
할머니 생각 저절로 가슴 환하다
*뻗정다리 : 마음대로 구부렸다 폈다 하지 못하고 늘 벋기만 하는 다리.
수필
개와 닭과 강아지와 병아리와
최은경
지금 우리집에는 이쁜이라는 암캐 한 마리와 질풍이라는 강아지와 오골계 수탉 한 마리와 노란 암탉 두 마리와 아빠를 닮은 까만 중닭 여섯 마리 해서, 총 2마리의 개와 9마리의 닭이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마리 수가 아니다. 이 짐승들이 마당을 어슬렁(?)거리며 살아가면서 벌어지는 생과 사의 삶의 현장에서 펼쳐지는 에피소드가 재미있다. 그리고 이야기는 시골에서 동물을 키우는 낭만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가 될 수도 있으니 끝까지 보셔야 한다.
먼저, 제일 연장자인 이쁜이를 소개하자면, 나이는 세 살. 풍산개 아빠와 진도개 엄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런데 어미, 아비에 못미치는 그냥 잡종이다. 게다가 아주 곤란한 특기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낯선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갈 때까지 끝까지 짖는 것이다. 엄마, 아빠 개는 상황판단을 할 줄 알았었는데, 이놈은 무조건이다. 주인이 있어도 상관하지 않는다. 사실 이 점은 이쁜이의 생사여부가 달려있는 중대사가 되어버렸다.
사건은 집을 구례군 마산면에서 문척면으로 이사하면서 생겼다. 이쁜이는 새집으로 오기 전까지 혼자서 1년 가까이 빈집을 지켰다. 기다림 끝에 주인과 상봉하고 드디어 벚꽃나무 그늘 아래 빨간 지붕집과 함께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그날부터 우리 부부는 괴로워졌다. 어미, 아비를 끝까지 못키우고 과수원집에 주어버린 과거가 있어서 이 녀석은 끝까지 책임져주려 하였건만, 이쁜이의 짖기 실력은 며칠 안되서 목이 세어버릴 정도였다. 물 셀틈 없는 방어만이 최고의 문지기의 조건일 순 없었다. 고양이 한 마리, 지네 한 마리는 용납못하더라도, 적어도 지나가는 마을 어르신들은 알아서 모셔
야 했는데, 이 녀석은 싸가지가 없었다. 특히 모자 쓰고 지팡이 짚고 가는 어르신한테는 오히려 더 날카롭게 짖어댔다. 결국, 우리 부부는 정말 심각한 지경이 되고 말았다. ‘저 개를 어찌하나?’ 쇳소리가 들릴 지경인 저 소음을 견디는 건 둘째치고 마을 분들의 눈치가, 특히 해질녁에 지팡이 짚고 지나가시는 할아버지는 짖어대는 이쁜이에게 지팡이로 삿대질까지 하셨다, 살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개장수한테 팔아?’ 저놈 하나 때문에, 사람들이 겪는 소음을 생각하면 그것이 정답일 듯 했다. 어느 곳에도 저 화상을 맡길 수 있는 집은 없어보였다. 마음은 아프지만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결국 나는 고민을 운조루 며느리한테 털어놓았다. 그이는 작년 봄 내게 병아리 7마리를 분양해주고, 달걀들도 부화시켜준, 내가 닭박사라고 부르는 친구이다. 내가 닭에 대해 물어볼 때마다 척척박사처럼 답을 말해준 이 친구는 개에 대한 내 고민에까지 답을 주었다. “응, 개를 없애고 강아지를 키워. 내 친정 강아지 한 마리 갖다 줄게.” 그리고 강아지가 왔다. 나는 아직 개를 없애지 못하고 있었다. 첫날, 하얀 강아지를 안고 차에서 내리는 나를 보고 이쁜이가 짖었다. 나는 강아지를 땅에 내려놨다가 무서워 강아지를 덥석 안고 말았다. 그리고 강아지가 이쁜이 옆으로 가지 못하도록 보듬고 다니거나 넓게 원을 그리며 다녔다. 자연히, 이쁜이는 더욱 찬밥이 되었고, 주인의 사랑을 듬뿍 받은 강아지는 기세등등하게 작은 덩치로도 이쁜이를 보고 같이 짖어댔다. 그 사이 남편이 말을 했는지 개장사를 아시는 마을 분이 한 번 다녀가셨다. 개장사가 지금 구례구역에 있다고 했다. 나는 저 녀석이 짖어대는 게 마을 분들한테 죄송해서 그렇지 사실은 없애고 싶지는 않다고 털어놓았다. 그분은 개가 짖는 것은 당연하다며 “우리야 잠깐 지나가는데…”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씀해주셨다. 그래서 나는 용기를 내어 저 개가 저렇게 짖지 않을 수 있게 길가 아닌 산쪽을 바라보게 비가림을 하면 어떻게 자리를 옮길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고 아저씨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냥 가셨다. 남편은 ‘왜 개장사가 안오지?’ 혼잣말을 하곤 했다. 남편은 남한테 이만큼도 소리를 듣고 싶어하지 않는 성미였다. 질질 끄는 성격인 나때문에 그동안 속 꽤나 썩은 건 미안하지만 나는 모르는 척 했다. 우리의 불편한 마음이 이쁜이에게 전해졌는지, 이 개는 눈병에도 걸려 눈꼽에 백태까지 끼고, 점점 더 사나워지고 강팍해져 보였다. 사실은 자기가 가진 두려움 때문에 꼬리 내리며 끝까지 짖고 있다는 것을 우리 부부는 알고 있었다. 함께 살던 엄마, 아빠 개가 어느날 갑자기 떠났고, 혼자서 빈집에서 1년을 지냈으니, 정서불안증이 생기고도 남을 조건이었다. 그렇게 나는 남편을 속이고 대책없이 이쁜이를 이렇게도 저렇게도 못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우연히 이웃에 사는 여운이와 정은이가 강아지를 보러 왔다. 둘이는 질풍이를 구경하고는 목줄을 잡고 강아지랑 산책을 가자고 하였다. 집 앞 섬진강변에 자전거도로가 있었다. 그때, 여운이한테 질풍이를 맡기고, 나는 이쁜이를 떠올렸다. 그리고 오랜만에 줄을 바꿔 채웠다. 아이들은 이쁜이는 무섭다고 데려가지 말자고 했지만 여운이는 질풍이를 잡고, 이쁜이는 내가 잡고 강변으로 갔다. 이쁜이는 미친 듯이 강변을 달리고, 그 뒤를 질풍이가 따라왔다. 그리고 산책에서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다음날 변화가 생겼다. 마당에 나온 질풍이가 꼬리를 치며 이쁜이에게로 다가가는 것이다. 나는 주먹만한 강아지를 물어버린 큰 개를 본 경험이 있었다. 무서움이 스쳤다. 이쁜이가 질풍이를 어떻게 할까? 어쩔 수 없다. 같이 살려면 언제가는 맞닥뜨려야 할 일이다. 나는 직면하기로 하였다. 이쁜이는 꼬리치며 달겨드는 질풍이를 물어뜯지 않았다. 자기도 꼬리를 치면서 어미처럼 똥꼬를 핥아주었다. 그리고, 엄마와 아들처럼 할퀴고, 물어뜯으며 놀았다. 질풍이는 심심하면 슬리퍼 한짝을 물고 이쁜이 집으로 놀러간다. 둘이서 이쁜이 집속에서 술래잡기를 한다. 이쁜이가 짖으면 질풍이도 따라짖는다. 질풍이가 밥을 먹으면 이쁜이는 기다린다. 질풍이가 다 먹어 버릴 때도 많다. 이렇게 이쁜이에게 질풍이라는 어린 친구(?)가 생기면서 이쁜이가 조금씩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예전처럼 사람이 사라질 때까지 끝까지 짖지 않는다. 짖다 멈춘다. 짖다가도 질풍이가 오면 같이 장난을 칠 줄도 안다. 같이 짖다가도 질풍이는 “이리온~오요요” 소리를 들으면 지나가는 사람한테로 꼬리를 치며 간다. 질풍이는 다 짖는 게 아니라 자기가 짖고 싶을 때만 짖는다. 그러다가도 상대방이 다정한 소리를 해주면 금세 꼬리를 치며 반긴다. 이리하여 이쁜이는 개장수한테 팔려갈 운명을 면하고 질풍이와 화기애애한 시절을 보내고 있다. 안약을 넣어주었더니 눈병도 낫고, 꼴도 제법 사랑스러워졌다. 개나 사람이나 사랑을 받으면 예뻐지는 모양이다.
그리고 남편의 태도 또한 달라졌다. 하루는 집에 갔더니, 이쁜이 집 주변 길가에 차광막을 담처럼 쳐두는 공사를 해놓았다. 짖어대는 이쁜이만 탓하는 게 아니라 이쁜이의 시야를 가려주는 노력을 시도한 것이다. 비록 태풍 볼라벤이 와서 애써 고생한 차광막이 이틀 만에 다시 내려앉아버렸지만, 이쁜이 얼굴에 서린 공포와 불안이 질풍이와의 장난으로 녹아내리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아, 아직, 닭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는데, 이야기가 길어진다. 제목에서 병아리와 닭을 빼야 할까? 동물을 키우는 일은 힘도 든다. 먹이주고, 물주고, 똥치우고, 일이 깔렸다. 아침을 깨우는 수탉의 우렁찬 울음소리, 중병아리의 ‘꼬요요’ 설익은 울음연습이 유쾌한 아침을 깨우지만 귀찮을 때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꼬오요” 병아리에서 중닭이 된 수탉이 새벽을 깨운다. “꼬오요” 어설픈 울음에 자다가도 웃음이 나온다. 수탉들도 처음부터 멋진 울음을 뽐내는 건 아니구나. 그래도 “꼬~” 이렇게만 울던 때보다는 조금 발전한 것같다. 아비 장닭이 한 번 울어준다. “꼬오끼오오오~” 새벽을 깨울만큼 의젓하다. 새끼도 메아리를 보낸다. “꼬오요”
시골에 살게 되면 꼭 해보고 싶은 일 중의 하나가 마당에 강아지 키우고, 닭장에서 방금 낳아 놓은 유정란을 꺼내먹는 재미가 아닐까? 처음 병아리 7마리를 분양받았을 때 언제 저 병아리 키워 알을 받아 먹을까 아득했다. 그리고 병아리를 닭이 될 때까지 살릴 수 있을까도 자신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알도 받아먹고, 새끼들까지 나와서 오계 장닭 한 마리와 암탉 두 마리, 까만 중병아리 6마리 해서 총 9마리로 닭이 늘었다. 처음에 나는 닭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병아리를 준 친구가 시키는 대로 그대로 따라 했다. 모르면 친구한테 전화를 했고, 친구는 닭박사처럼 정확하게 답을 알려주었다. 노란 컨테이너박스에 신문지 깔고 병아리 넣고, 사료통과 물통을 넣었다. 물통 안에는 징검다리 삼아 넓적한 자갈을 깔았다. “병아리는 물에 약해. 아직 털이 보온이 안되거든.” 물 먹을 때 자갈을 밟고 올라가 먹으니 턱에 물이 묻지 않았다. 병아리들은 자기들끼리 무럭무럭 자랐다. 아침 저녁으로 먹고 싸고, 물 한모금 먹고 하늘 한 번 쳐다보고, 잘 때는 엎어진 사료통 위에서 일곱 마리 꼭 붙어서 잤다. 금세 솜탈 사이로 새털들이 돋아나기 시작하면서 박스가 좁아졌다. “2-3주 지나면 뒤에 꽁지가 길게 나오는 것이 수컷이야.” 정말로 신기하게 뒤에 꽁지가 길게 나오는 녀석들이 있었다. 수탉 3마리에 암탉이 4마리였다. “수탉은 여러 마리 있으면 싸운다. 한 마리 남겨놓고, 없애.” 두 마리 수탉을 어쩌지 못하고 있을 때, 개 이쁜이가 해결사 노릇을 해주었다. 마당에 늘어져있는 수탉을 발견하고 전화를 했다. “먹으려면 피 빼야 하니까 피가 굳기 전에, 얼른 잡아야 한다. 안그러면 못먹는다” 그냥 밭에 묻어주었다. “닭들은 습한 데서 못산다. 적어도 땅에서 50센티는 위로 올라오게 홰를 달아줘.” 나는 둥그런 고무통에 입구를 뚫은 개집을 녹색그물망으로 문을 달아 닭장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홰가 없었지만, 세탁기 받침대로 쓰는 나무 선반이 개집에 앉혀 있어서 습한 기운을 막아주었다. 닭들은 비좁은 환경에서도 잘 커주었고, 어느날은 문을 열어주었더니 한 마리씩 바깥으로 나와서 지들끼리 놀며 이것저것 헤집고 다니고, 몸도 말리며 놀다가 해가 저물면 알아서 제 발로 집에 들어왔다. 6~7개월 지나 산란용 사료로 바꾸고 암탉들이 곧 알을 낳았다. “한 마리가 한달에 20개 쯤 낳은다고 보면 돼.” 달걀 색깔도 닭들 색깔에 따라 약간 씩 달랐다. 뽀오얀 피부색, 약간 짙은 색, 더 투명한 색, 누구 알인지는 가끔씩 달걀에 묻어있는 닭털을 보고 알 수 있었다. 달걀 어미를 아는 일은, 병아리를 까려고 할 때 필요했다. 아무튼 반찬없는 날 아침, 우리집 비상식량은 닭장에서 나온다. 닭장에서 두어 개 알을 꺼내와 달걀말이를 부친다. 노른자에서 비린내도 나지 않고 고소하다.
새끼들은 병아리에서 중닭이 되었다. 부화기에서 나온 병아리들이라 어미 아비는 얘네들을 손님 취급한다. “닭은 닭손님 못본다.” 먹이만 먹어도 쪼아대고, 다른 곳에서 먹어도 와서 자리를 뺏어버린다. 그래도 새끼들은 지들끼리 씩씩하게 잘도 자란다. 이상, 우리집 동물 가족들의 이야기를 마친다. 또 재미난 이야기가 생길 때까지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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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은경씨 수고 했어요~~~~
가축에 대한 글을 썼군요. 나도 더러 집에서 기르는 닭을 보면서 짧은 글을 쓰곤하는데 . 언제 한번 은경씨에게 보여야겠네요.
재미지네요~~계란 먹으러 쳐들어 가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