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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틀니
2004년, 아버지의 76회 생신(음10월 26일)을 이틀 앞두고
가족들이 그래도 많이 참석할 수 있다는 12월 5일 일요일
점심시간에 날을 잡아 상주시 버스터미널 옆 청기와 식당에,
올 수 있는 식구들은 다 모였다.
졸업생인 청기와 식당 이춘호 사장은 나를 은사님이라며
직각으로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며 어찌나 깍듯이 대하는지.
갈 때마다 반드시 육회 한 접시씩 그리고 사이다 콜라를
상마다 정성스레 대접하는 통에 참 고맙기도 하고
선생 노릇을 제대로 하는 것도 아닌데 미안하기도 하고 그렇다.
아니 어쩌면 선생 노릇 제대로 하시라고 충고하는 것도 같아
사람 사는 도리를 다시 생각해보고 자세를 가다듬게 된다.
스포츠머리에 앞치마를 두르고 항상 직원들과 동고동락하며
자신을 낮춤으로써 오히려 자신이 더욱 돋보이는
이런 멋있는 사람이 나를 아주 예의바르게 모셔주니,
나도 덩달아 선생 노릇하는 게 체면도 서고 그래서 참 폼 난다.
어떤 식당에서는 졸업생이며 사장인데도 대충 건성으로 인사만 하고
왜 그러는지 내다보지도 않는 사람도 있는데 말이다.
새까만 정장 차림의 VIP들이 항상 자리하던 청기와 식당의 그 안쪽 방에
선생님 식구 분들이 오신다고 자리마다 등받이 의자가 반듯하게 놓여있고
참으로 귀한 손님을 모시듯 정성스럽게 음식상을 세팅해놓았다.
딸애들은 사촌지간에 모처럼만에 만나서 그런지
옆자리에 나란히 앉았는데도 각자 휴대폰만 만지작거리고
대화도 별로 없이 가끔씩 서로 엇갈리게 곁눈질만 한다.
어른들 드시기에 제일 좋은 소고기로 잘 부탁한다고 주문을 하고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는 사이 선생님께서 어르신을 모셨다고
한 접시에 만 오천 원씩 하는 육회를 세 접시나 들여놓고
애들이 있는 자리에는 사이다와 콜라까지 서비스로 제공한다.
다른 식구들도 그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이래도 되느냐고 고마워하는데,
사장이 직접 와서 더 필요한 것 있으면 말씀하시라며
또 깍듯이 허리를 꺾어 인사를 하고 간다.
아버지께서는 그렇게 좋아하고 즐겨 드시던 소고기 육회를
한 젓가락 입에 넣고 열심히 씹으시는데
윗니 아랫니가 따로 노는 것 같고 다가닥 다가닥 소리가 나면서
소가 되새김질하듯 위아래 입술이 어긋나고
입놀림이 한참 동안을 분답기만 하시다.
육회를 드시는 횟수보다 소주를 더 자주 드신다.
입에 아주 착착 감기는 듯 아주 맛있게 소주잔을 연거푸 비우신다.
신경이 쓰이고 좀 불안하다.
술은 좀 천천히 드시구요, 육회를 많이 잡수시지요,
육회 맛이 어떻습니까?
재단에서 운영하는 대구의 편대장 영화식당의 육회 생각이 나서 한 말씀드려봤다.
그래, 많이 먹고 있잖아, 그래 좋으네. 마캉 같이 좀 먹지 그래.
육회를 쳐다보면서도 손은 소주잔으로 향하신다.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으려니 어머니가 민망하셨든지,
너 아부지 틀니를 야매로 했는데 싼기 비지떡이라고 잘 맞질 않아서
툭하만 흔들리고 잇몸이 아프다고 나한테 생 짜증을 내고,
애만 날보고 욕을 해재키고 혼자 보기 아깝지 왜!
아버지께서는 얘들 있는 데서 빌 씰데 적은 소리를 한다며
뻑 소릴 지르고 어머니를 노려보신다.
저 봐라 저 봐, 내가 무신 말만 하만 누가 있든동 마든동 소릴 지르고
도실고 보는 거 봐, 눈 티 나올까 봐 겁나지 왜
혼자 보기 아깝다니까, 내가 어대 지이(지어) 내는가 봐라.
그키 아푸만 가까운 데 기차역 앞에 박치꽌가 뭔가, 병원엘 가보든동,
내 말이라카만 개방구만치도 안 여기고, 가라캐도 가시도 안하미, 짜증을 내쌌고,
아이 그러만, 아푸단 소릴 하지 말든동, 내가 몸써리나는데 뭐.
어머니는 얼근하신 김에 다들 모인 자리에서 하소연 삼아
말씀에 힘이 들어가고 길어지신다.
어머니는 평소 맺힌 가슴을 이번 기회에 화악 쓸어내리기라도 하듯이
맏사위인 배서방이 따라드린 소주를 대참에 한잔 들이키곤
빈 잔을 상위에 탁 소리가 나도록 당당하게 작심하고 내려놓으신다.
우리들을 믿고 너무 과하게 나가시는 것 같다.
자알 한다, 잘 하는구만. 할마이가 참 자알 한다, 되는 집구석이구만!
아버지께서는 옳게 닦지도 않아 뿌연 안경 너머로 여전히 어머니를 노려보신다.
내가 못하는 기 뭐라, 응, 이 집구석에 시집와서 내가 뭘 못했어요?
내가 아들을 못 낳았어어, 뭐 내가 이 집구석에 와서 재산을 줄구길 했나
재산이라고 머가 있어야지 줄구든동 마든동 하지, 이 정도로 일가놨으만 댔지,
우리 집구석이 머 어때서, 아이고 나 참, 나만큼만 하라카소, 개코나!
그동안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고생고생 지나오신 어머니,
거기다가 최근 아버지의 술 드신 후의 가끔씩 이상한 행동을
어머니 혼자 감당하시는 힘겨운 모습이 눈에 선하다.
차라리 들에 나가 일을 하든지, 앞집에서 꼬치 꼬다리를 따고 앉았는기 낫지
집에 들어오기가 겁이 나고 가슴이 벌렁거린다며 안타까워하시지만,
장남으로서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그것도 월요일 저녁시간에
어머니께서 집에 계시어 준비된 날은 식사도 함께 하고
번번이 놔두라며 사양하시는 아버지 손에 약간의 용돈도 쥐어드릴 겸
집에 들를 때마다
주방에서 어머니의 하소연을 잠시 조용히 들어드리는 걸로
언제나 함께 걱정만 하다가 그것으로 그냥 그만이었다.
모든 시선이 집중되고 한랭전선이 좀 불안정하다.
오늘은 이런 게 아닌데, 우째 분위기가 좀 영 그렇다.
거기다가 아들 운운하시니 집사람도 그렇고 제수씨도 민망해하는 눈치다.
큰딸인 대구의 배실이가 아이구 이 좋은 날, 왜 이러세요오, 엄마, 좀 참으세요.
봐라, 그래. 너 아바이가 내가 무신 말만 하만 날 잡아먹을 것같이 도실기 보고,
백지 그래 소릴 지르잖아. 그기 뭐 그리 해로운 소리라고.
이 나이가 대도록 무신 노무 팔자가 그래 내 피잉생(평생)에, 하안(한) 핑생을
그래 이카고 산께 이건 뭐 사는기 사는기 아이라, 쯧, 사는기 고만 따악 지겹다!
어머니 눈에는 눈물이 핑 돌고 서둘러 만만한 소주만
고개를 젖혀 설움과 함께 쭈욱 들이키신다.
질끈 감은 두 눈가로 눈물이 방울 밀려나왔다.
아이구 차암네, 왜 자꾸 이러세요, 이 좋은 날, 민망하게시리.
엄마가 좀 못들은 척 하시만 되잖아요, 하루 이틀 들으신 것도 아닌데.
그리고 엄마도 참 어지간해요, 자꾸 아버지 부예(부아)를 채우시잖아요, 뭐.
하필 올 같은 날 뭔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그래에.
분위기를 바꾸려 애를 쓰지만,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의 대화는 항상, 평생을 이런 식이었다.
꽁치 정도는 대가리부터 통째로 씹어 드시고
웬만한 닭 뼈다귀도 그냥 다 씹어 드시는 우리 아버지셨다.
금복주나 환타의 뚜껑도 입에 갖다대고 두어 번 이리저리 돌리시다
간단하게 수월하게 순식간에 따던 분이시다
우리집에는 아버지만 계시면 병따개가 따로 필요 없었다.
사실 또 웬만해선 촌에 오프너라는 병따개가 귀하기도 했었다.
어머니는 젊어서부터 이가 좋지 않아 일찍이 틀니를 하셨다.
화장실에서 틀니를 빼서 공용으로 쓰는 바가지에 밤새 담가 두기도 하고
식사 후 틀니를 빼서 바가지 물에 설렁설렁 흔들어 씻으시는 통에
음식찌꺼기가 바가지 안에서 휘휘 돌아가고, 주변 사람들이 기겁을 하곤 했다.
아이구, 더럽구만 왜 그러세요오,
같이 쓰는 바가지에다 그러시면 다른 사람은 우째라고 그러세요.
그래도 그때뿐 눈만 돌아가면 여전히 그러시곤 한다.
아마 물을 아끼려 그러시려니 좋게 해석도 해보지만
볼 때마다 틀니가 징그럽기도 하고 눈살이 찌푸려진다.
자식이 4남매나 되고, 그것도 맏아들이 중등학교 교감인데
복지국가에서 싼 맛으로 하신다는 야매라니,
아직까지도 불법시술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도 신기하고
아버지께서 야매로 틀니를 하셨다는 사실도
장남으로서 오늘에사 처음 알았다.
다른 가족들 보기도 민망하고
음식이 꺽꺽 가슴 한복판에 걸리는 것 같아
조용히 자리를 떴다.
나는 아버지의 치아는 언제까지나 튼튼하실 줄 알았다.
아직까지도 웬만한 닭갈비 정도는 아작아작 잘도 씹어 드시는 줄 알았다.
교무실에서 입버릇처럼 변화變化를, 제행무상諸行無常을 이야기하며
우리 아버지는 예외라고 생각했다, 아니 아예 생각조차 없었다.
그런 아버지가 내일 모레면
남아 있는 이라곤 몇 개뿐인 팔순 노인이시란다!
소변기 앞에서 볼일은 억지로 약간 찔끔거리고
애꿎은 꼭지를 꾹꾹 눌러 아까운 물만 여러 차례 흘려보내며
한참을 서 있다가,
손을 씻으며 거울을 들여다보다 깜짝 놀랐다.
어둠침침한 저 쪽 편에 유독 왼쪽 볼이 더 쏙 기어 들어간 듯한
이기적이며 무능하고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 사내가, 한 집안의 장남長男이
당당하지도 못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낯설게 서 있었다.
2004년, 아버지의 76세 생신일에 즈음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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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부모님 생각에 눈물이 핑 도네요,이세상에 안계신 분들이지만, 보고싶고.. 좀더 자주 찿아 뵙는게 효도하는게 아닐까 생각 드네요...
생신일에 아옹다옹 다투시는 노부부의 정다운 모습이 눈에 서언하게 그려집니다. 경상도의 정다운 친구들이나 부부의 모습을
외지 사람들이 본다면, 싸우는 것으로 오해하기 딱 좋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 경상도식 애정표현이지요.
부모님의 건강과 장수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