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임재설 (성찬)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날 밤, 떡을 떼며 "이것은 내 몸이라"고 말씀하셨다. 도대체 이 말씀이 무슨 뜻일까? 이 짧은 구절에 대한 해석의 차이가
카톨릭과 개신교의 분열을 가져왔다. 또한 루터파와 칼빈파가 다른 중요한 교리에는 다 합의를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구절에 대한 합의를 이루지
못함으로 하나의 개신교를 형성하는데 실패하였다.
성찬을
보통 크게 4가지 방식으로 설명한다:
카톨릭의
화체설,
루터교의
공재설,
쯔빙글리의
기념설,
개혁교회의
영적 임재설.
안타깝게도
오늘날 대부분의 한국 장로교회는 영적 임재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함으로, 말은 영적 임재설을 따른다고 하면서도 실천에 있어서는 거의 기념설로
이해한다. 그 결과 성찬에 대해서 너무나 피상적인 이해가 교회 안에 보편화 되어 있다. 예수님의 참된 몸을 먹는다는 성찬의 본질은 사라지고,
예수님의 죽음을 생각하면서 자신의 죄와 그분의 은혜를 자각하게 하는 도덕적, 영적 적용이 주가 되어버린다.
이런
잘못된 견해들에 대항하여 개혁신학은 성찬을 영적 임재설로 올바르게 설명하였다. 본인이 항상 강조하듯이 영적 임재설이란 단어 자체가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를 먼저 살펴 보자. 일단 " 영적으로 임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떡에 정확히 무엇이 임하는 지에 대한 분명한 개념이
없다. 대부분, "예수님의 영혼이 임한다" "예수님께서 영적으로 성찬에 임재하신다" "영적인 교제가 이루어진다" "영으로 임하신다" 정도로
희미하게 이해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영적 임재설을 실재적 임재설 (real presence)과 상반되는 개념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예수님의 실재적인 몸은 성찬과 별 관계가 없게 되어 버렸다.
어떤
개혁신학자나 심지어 기본적인 신학교재도 이런식으로 설명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견해가 성도들, 심지어 목사들에게도 보편화 되어 있다는
사실은, 영적임재설이 얼마나 잘못 이해되고 있는 지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영적 임재설에 대한 이러한 희미한 이해는 성찬에 대한 희미한 이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영
적 임재설의 정확한 뜻은 "예수님의 몸이 성령 하나님의 역사를 통하여 실재로 (realis: 원래 이 단어는 res (thing)에서
유래하였다) 혹은 참으로 (vere) 떡에 임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영적 임재설은 전달 내용에 있어서는 실재적이고, 전달 방식에 있어서는 영적이다.
따라서 영적/실재적 임재설이 보다 정확한 개념이다. 임재설에 관한한 논쟁의 핵심은 무엇이 전달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전달되는가이다. 쯔빙글리나
현대의 복음주의자를 빼고, 떡에 임하는 것이 예수님의 실재적인 참 몸이라는 것에 반대하는 교파는 없다. 어떻게 보면 아주 사변적인 논쟁처럼
보이지만, 어떻게 신자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분의 은덕에 참여하는가에 대한 매우 실천적인 논쟁이다.
개혁신학이
이것을 영적 임재설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 임재가 성령님의 사역에 의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영은 성령을 말한다. 또 이
사역은 우리의 몸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에 역사하기 때문에 영적이라고 말한다. 이 점에서 성령의 역사는 이중적이다. 한편으로 성령은 예수님의 몸에
역사하셔서 우리의 영혼이 먹을 수 있도록 역사하신다. 다른 한 편으로, 성령은 우리의 영혼에 역사하셔서 예수님의 몸을 먹을 수 있도록
역사하신다. 이 점에서 성령은 그리스도와 신자를 연결하는 고리이다.
따라서
우리가 떡을 먹을 때, 우리의 몸은 입을 통하여 정말로 떡을 먹듯이, 우리의 영혼은 믿음을 통하여 예수님의 참 몸을 정말로 먹는다. 그래서
믿음을 영혼의 입이라고도 한다. 성경은 "예수님의 몸은 영혼의 양식"이라고 분명히 가르친다. 다시 한 번 분명히 강조하지만, 우리의 영혼이
먹는 것은 예수님의 영혼이 아니라 예수님의 부활하신 몸이다. 여기서 말하는 예수님의 "몸"은 예수님의 육체, 즉 살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점에서 우리는 카톨릭이나 루터교와 명백히 다르다. 부활하신 주님은 자신의 육체가 그대로인 채 자신의 몸을 영혼의 양식으로 만들어 우리의 영혼을
위해서 나누어 주실 수 있다. 마치5병 2어로 5000명을 먹이신 것처럼.
칼빈은
이렇게 비유하였다. 태양은 지구상에 그 자체로 임하지 않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빛을 지상에 있는 생명체에게 전달한다. 즉 지상의 생물들은
태양 자체를 먹는 것은 아니지만, 태양이 주는 빛을 먹는다. 마찬가지로 신자들의 영혼은 예수님의 몸 자체를 먹지는 않지만, 그 몸이 전달하는
영혼에 필요한 양식을 먹는다. 즉, 우리의 영혼이 실재로 주님의 몸을 먹는다. 성찬은 우리의 영혼이 주님의 살과 피를 먹는 채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은혜의 수단(Means of Grace)라고 부른다.
따라서
성찬은 우리 영혼을 위한 식사시간이다. 우리의 몸은 땅에 있지만, 우리의 영혼은 하늘에 올라(Sursum Corda) 주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양식을 먹는, 참으로 즐거운 시간이다. 엄격하게 말하면, 성찬식을 행할 때, 주님의 몸이 이 땅에 임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이 하늘로
들려 올라가 그리스도 몸 앞에 임재한다고 보아야 한다. 이 성찬을 통하여 우리의 피폐한 영혼이 소생함을 얻는다. 성찬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갖게 된다면, 일년에 겨우 2-3차례 실시되는 성찬식과 장례식 비슷한 분위기의 성찬식은 성경의 가르침에서 많이 벗어낫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초대교회는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날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에 성찬식을 주로 행하였다는 사실은 이 점에서 매우 의미 심장하다.
(퍼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