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고 싶은 쥬얼리문화, 끈끈한 관련업계 제자들의 오늘
아프리카 奧地나 동남아시아,혹은 동북아시아까지도 여행을 하거나 매스컴에 의하여 보면 간혹 온갖 화려한 장식품을 몸에 두른 여성들을 보게 된다. 아무리 가난해도 몸치장에서마는 정성을 쏟아붓고 또한 누리고자 하는게 東西古今에 공통된 심리였었다. 장신구류의 가치가 아름다움의 필수조건이 되며 빈궁한 삶속이나 지닌 패물속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고귀한 보석들도 섞여 있는 것이다.
현대 물질문명의 혜택을 마음껏 누리고 살아가는 선진 신여성들조차 그러한 샤만이즘(Shamanizm)적인 악세서리에 유혹을 느끼거나 간직하고 싶어하는 원시지향의 유행심리가 사려 있다. 流行心理는 불명한 욕구이며 인간의 역사가 있은 이래, 모든 욕망가운데 한가지로 이는 빼놓을 수 없는 “裝飾(Ornament)문화”일 것이다.
여기에 얽힌 古事가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자의 일생”으로도 위대한 소설가 기 드 모파상( Henri Rene Albert Guy de Maupassant 1850∼1893 )의 작품 “진주목거리”를 어린 시절에 읽고 여간 감동을 받지 않았다. 가난한 여주인공이 중요한 모임에 참석하는 자리에 부자친구의 진주목거리를 잠시 빌려서 목에 걸고 참석하였는데 그만 잃어버리고 말았다. 魂飛魄散한 그녀는 빚을 내여 꼭같은 진주목거리를 마련하여 되돌려 주었다. 그후- 빚을 갚기위한 피나는 고생으로 세월을 보내게 되고 결국 빚을 다 갚게 된 몇 년 후에 옛 친구에게 그런 사실을 고백하기에 이르른다.
“어마 그랬었니? 그때 내가 네게 빌려준 목거리는 가짜 진주였는데~”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한편으로는 여자의 허영심이 부른 아이로니라고도 본다.
프랑스혁명의 원인이 되기도한 루이 14세 시절- 기로친아래서 불귀의 客이된 비극의 왕비 마리 앙뜨와넷뜨가 패용한 물방울 다이아몬드는 종적을 감추었다. 아직도 우리 뇌리에서 살아지지 않는 “장영자부부 사기사건”에서 보는 장영자씨에서 나온 “물방울 다이아몬드”가 그것이 아니었나도 싶다. 아니 大盜 조세형 아무개가 부유층댁에서 훔쳐낸게 그것이었을런지도 모른다. 그만큼 위대한 보석에게는 심오한 마력이 있고 喜怒哀樂을 지닌체 역사는 하염없이 흘러간다.
귀한 보석에게는 起源과 얽힌 사연이 있게 마련이다.
심지언 <보석은 살아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신앙이라고까지 믿었었다.
국가와 시대에 따라 형형색색이긴 하나 히아신스(風信子石)을 갖고 있으면 벼락을 피하고 에메랄드를 벼개밑에 두고 자면 우울을 쫓고 펀안한 잠을 취하며 터키석을 반지에 끼고 있으면 말에서 떨어져도 부상을 입지 않는다. 어떤 보석은 젊음을 오래 유지하고 어떤 것은 평화를 지킨다. 災殃을 부른다는 말은 없었지만~ 글쎄.
예컨대- 다이아몬드는 순수,평화, 아게이트(馬礌)는 건강, 장수, 재물, 아메시스트(紫水晶)는깊고 순진한 사랑, 가아넷(石榴石)은 권력, 품위, 승리, 사파이어는 성실한 마음, 루비는 威嚴, 자선, 사도닉스(紅瑪ꜷ)는 부부의 행복, 진주는 순진한 마음을 의미하기에 그런 특성을 잘 포착하여 마음속에 호소하는 신비한 魔力의 장신구를 만들면 좋을 듯하다.
원래 금,은, 보석을 소중하게 여기는 습성은 騎馬民族,정복민족에게 철저하였다. 일정지역에 정착하는 우리네 같은 農耕민족에게는 취향이 비교적 담백하였다.
Costom Jewelry로서의 Fashion Design이 성행하고 있으며 또한 전문디자이너와 전문디자이너 양성기관에서 배출되는 쥬얼리디자이너가 부존자원이 없는 우리에겐 절실하게 기대되는 것이다.
며칠전에 오랜 제자들이 못난 나를 스승이랍시고 한자리를 마련하였다.
현제 동아쥬얼리아카데미 학장인 한향란, 다미보석대표인 정수택, 그 자리엔 사업차 장기해외체류로 못끼였으나 코아쥬얼리 대표 백경학, 광신통상 사장 최명휴, 원화랑 대표인 원현정이 모두 단국대 대학원에서 지도를 받았었다.
성신여대 금속제자인 김현(단국대 교수) 낭궁영임(박사 겸임교수)와 윤기현은 동아쥬얼리아카데미 교수로서 반가운 邂逅였다. 백경학은 뉴욕으로 아예 옮겨가서 대성업을 이루고 무려 50여만개로 추정되는 온갖 보석을 간직한 정수택은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 겸손하면서도 숨은 재벌인 듯 하다. 성실히 근무한 덕택(?)인지 사업을 몽땅 직원인 최명휴에게 넘겨준 창업자의 뜻을 살리어 오는 崔사장은 역시 중국에 뿌리를 내리며 업종의 확산을 거듭하고 있다. 강의하면서도 현장을 중시하여 각자의 공장과 현장을 순회했던걸 잊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뻗어나갈 수 있는 방향은 역시 부가가치가 높고 손솜씨와 디자인감각(Design Sence)이 월등한 쥬얼리분야라고 믿는 한향란은 김세환박사의 先導 리더로 지금은 비록 힘이들지만 “내일”을 믿고 운영에 정열을 쏟아내고 있다.
국제기능올림픽 세계대회에서 1회부터 기염을 올린 우리네 선수들과 관계인사들을 기억하고 있다 1회에 출제 및 심사위원을 맡았을 때 1위는 아성기업의 이춘성, 2위는 아직도 현역으로 이정훈이지 않았던가. 적어도 금세공분야에서만은 1위를 놓지지 않았다. 현재 얼마나 많은 우리네 금속세공 숙련사들이 일본에서 활약하고 있는지는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
세월은 흘러가도 師弟之間은 끈끈하다.
모두가 産學協同의 일선에서 성실하게 성공하고 있음이 여간 든든하지 않았던 것이기에 醉氣까지 무르 익었다.
젊은 내일의 디자이너를 키우기 위해 개최하여오는 한국현대장신구공모전은 최초에 87.11. 디자인공모전을 개최하면서 한국귀금속공예가협회로 출범하여 (사)한국장식문화예술진흥원,현 회장인 서진환으로 이어지며 장윤우 당시 회장 당시에는 -89한국현대장신구전-大賞 김정후,금상,남궁영임. 입상자..들의 귀금속쥬얼리가 (전시;워커힐 미술관 89.12.1~27.) 지금은 故人이 되신 선경그룹 총수의 사모님- 박계희 관장의 후원으로. 회원전-강찬균,고성섭,김경희,김미연,김상경,,김세환,김승희,김여옥,김재영,김태선,남경숙,노경혜,만병휘,변건호,서영애,서지민,송영주,신권희(故人),엄준상,오원택,오융경,왕지혜,양훈,위경효,윤여옥,이기상,이민석,이은다,임옥수,장미연,장윤우,장혜영,전용주,정주훈,조성혜,최준자,최현칠,추원교,홍경희,홍정실,황인철들이 출품하는 실적을 올리며 사단법인 <한국장식문화예술진흥원>으로 변신 확대 운영되여오는 중이다.
업체의 일선 일꾼들의 (사)한국귀금속디자인협회와는 다르나 이분들도 대단한 실적과 의욕을 지니고 있다. 바야흐로 “디자인만이 살 길이다”
“Design Korea"야말로 김대중정부당시 선포한대로 올림픽보다도 중요한 민족적 課題인 것이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년례행사로 갖는 <2004 Macef>에 나는 문광부산하 한국공예문화진흥원 이사장으로서 선발된 소규모 23명의 공예문화산업체 대표들과 다녀왔다. 제품에는 손색이 없으나 아직 영세한 산업일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 선진 유럽과 해외 정보와 판로개척등의 지원책으로서 왕복 여비,통역,행사장 등을 모두 지원하였다. 특히 “전통과 현대”를 표방하며 참된 우리네 “멋과 맛”을 찾아 세계에 내보이고자 하였다. <산학협동>을 주장해온 나로서는 대학부설 산업미술연구소 소장으로서 중소기업진흥원, 공예협동조합, 노동청, 산업진흥재단에 관계해온 이연이 적지 않고 노력해온 보람이 적지 않다고 본다.
앞으로도 계속사업으로 전국적인 공예문화산업과 활성화로 정착시킬 기획이다. 그런 일환으로 공예산업단지의 클러스터(Cluster)운동을 일으키고 있다. 관공서의부처담당,관광공사의 임직원, 언론계와 업체, 디자이너,학계 인사들과 남양주 연수원, 덕산온천,수안보 파크호텔에서 진지한 토의와 事例발표,분임토의도 가져왔으며 계속될 것이다 공예문화진흥원 CEO최고지도자 과정도 2기를 마치고 3기를 준비한다. 신청자가 넘쳐 모두 수용하지못하고 있다.(문의 02-733-9040~2 전시운영부)
더불어· 산업자원부가 주관하는 B2B (Business to Business)사업에도 우리 진흥원이 참여하여 지금 쥬얼리를 비롯한 문화산업체들의 현황과 영업지원을 위한 전산화,연관된 대량 매출지원을 향하여 지속적인 작업을 꾀하고 있다. 아직 초기 단계이긴하나 혁명적인 유통체계가 수립될 것이다. 앞으로 쥬얼리산업계를 비롯한 전국업계와 소규모공방까지의 동참을 바란다.
(한국공예문화진흥원 이사장/ 성신여대 명예교수,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