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선생님.
고 노무현대통령에 관해 쓰신글을 읽고 저도 한국이 직면한 여러가지 난제에 대해 다시한 번 생각하는 계기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짧은 저의 생각을 선생님을 붙잡고 하소연 하듯이 거칠게 적어봅니다. 다소 표현의 과격함이 있더라도 너그럽게 읽어주십시요.
언급하신대로 박근혜대통령 개인으로는 큰 잘못이 없겠지요. 그녀는 평생을 일관적인 모습을 보였으니까요. 모자란 언변, 소통능력부족, 잘못된 역사인식, 부족한 지능과 통찰력, 원칙무시, 꼼수, 헌법과 민주주의 대한 이해부족은의 모습을 우리는 대선 TV토론이나 매체를 통해여 그러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걸 보고도 그녀에게 표를 준 한국국민의 과반은 독재의 향수가 그리워 찍은 것일테구요.
하지만 선생님, 한국은 더이상 독재국가가 아니며 그도 민주적 절차에 의해 선거로 당선된 대통령입니다. 한사람의 군주가 통치하는 왕권국가가 아니기에 한국의 현재 당면한 상황을 이명박근혜만의 닥질 때문으로 돌리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들이 문제의 근원이었다면 박근혜의 임기가 끝남과 동시에 문제도 사라진다는 논리가 되니까요.
같은 논리로 저의 비난의 초점은 기득권에도 있지 않습니다. 기득권이 전체 부와 권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법 위에 군림할려는 속성은 선생님 말씀대로 어쩌면 인간의 본성의 문제가 아닐가 합니다. 기득권층은 어디에나 존재합니다. 문제는 더 많은 부와 권력이 더 적은 수에 몰리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으며 이때문에 사회는 망가질 것입니다. 성장일변도의 경제기조 그리고 신자유주의를 고수하는 한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입니다.
그 기득권을 제어할 수 없다는 것이 한국이 당면한 문제점이라고 봅니다. 이것은 사회정의가 분쇄 소멸되었기 때문입니다. 비상식이 상식을 이기는 것이 당연시 됨을 너무 오랬동안 겪어 왔습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말대로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가 붕괴되고 있습니다.
한국은 시민의식이 성숙했던 적이 있었던 가요. 도대체 우리의 시민의식은 무었일까요. 우리의 시민의식은 김대중 노무현을 만들어낸 시민의식일가요. 이명박근혜를 만들어 낸 시민의식일까요. 6.29를 통해 대통령 직선제를 얻어낸 시민의식은 박근혜의 만행을 보고도 탄핵을 묻지 못하는 시민의식으로 전락한 것일까요.
금방 분노하고 찰나동안만 결집했다 금새 잊어버리고 제대로 된 토론은 한 적도 없고 어떻게 하는 지도 모르구요. 조금만 복잡한 문제에는 머리아파하고 얘기하자면 도망가고 권위로 찍어 누르고 비판없이 받아들이다가 결국 나 하나 먹고사는데만 신경쓰겠다는 시민의식인지요.
돌아가는 뽄새로 보아 차기정권은 반사이익으로 야당이 잡을 것 같습니다. 무능한 야당은 혈기좋게 시작했다가 한나라당에 이리 휩쓸리고 저리 휩쓸리고 우왕좌왕 5년 흘러보내고 정권은 다시 한나라당 손에 들어가서 다시 후퇴를 거듭할까 우려됩니다. 이게 광복, 경술국치, 거슬러 조선 중기때부터 지속되어 온 우리의 시민의식, 주체가 되지 못하고 역사를 인식하지 못하는 우리의 의식입니다. 중국의 눈치를 보고, 나라가 망하면 일제를 찬양하고, 미국에 빌붇고, 해방 후에는 공산당을 때려잡으면서 독립운동을 폄훼하고, 육형제를 굶어죽이고 안중근의 후손을 귀화시키고 친일파의 후손들이 번영하는 나라의 시민의식은 안타깝게도 김대중 노무현 정권때에도 배운 것이 별로 없습니다.
경제를 부르짖는 위정자들은 가짜입니다. 그들이 부르짖는 경제는 표심을 얻기 위한 미끼일 뿐입니다. 경제는 그들이 죽이고 살릴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경제정책이란 것도 전부 허상입니다. 어떻게 경제민주화가 새로운 정책이 될 수 있단 말입니까. 경제민주화는 국가성립의 기본요건입니다. 경제세력의 부패와 양극화를 견제하는 최소한의 장치를 우리는 예나 지금이나 공약으로 걸고 있고 지켜지지도 않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경제를 지탱하는 것은 새벽에 일터로 나가 밤늦게 들어오는 노동자들이며 그들의 만들어낸 재화때문에 국가의 경제부도를 근근히 막고 있는 실정입니다. 선생님, 세계 경제의 역사는 재화의 역사입니다. 산업혁명의 유럽이 그랬고 값싸고 질좋은 물건을 만들어 내었던 20세기 미국이 그랬고, 제조 강국이었던 일본이 그랬고 박정희 시대에 우리가 그랬습니다. 어떠한 형태이던 유형의 물건을 만들어 유통하는 것은 정상적인 경제구조입니다. 신자유주의의 등장과 동시에 멸종한 '낙수효과'라는 것도 이 시절의 이야기이지요. 재화의 선 순환이 자리잡으면 등장하여 피를 빨아먹는 세력이 금융이고 매판자본입니다. 금융이란 무형의 재화를 여기서 끌어다가 저리로 돌리고 이리 저리 굴려 중간에서 발생한 이익은 반드시 그 사회를 좀먹습니다. 리만브라더스가 그랬고 일본의 버블경제가 그랬고 아이슬란드가 그랬고 한국의 아이엠에프가 그랬습니다. 부동산, 주식, 금융상품으로 폭리를 취하는 곳의 반대편은 반드시 썩어서 곪아가고 있는 것이지요. 실체가 없는 것이니 제살을 파 먹어 배를 불리니 몸이 성할리가 없는 것이지요.
경제는 정치와는 별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를 일으키겠다는 정치인은 백 퍼센트 사기꾼입니다. 왜냐하면 경제는 정책으로 일으키거나 주저앉힐 수 없는 성질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경제는 인위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안정'하는 것입다. 안정의 절대적 시간이 필요하므로 우리는 자주 독재정권에서 경제가 성장하는 착시를 목격합니다. 박정희가 그랬고 카다피정권의 리비야가 그랬고 이집트 무바락 정권이 그랬습니다. 혁명에 잇따른 후속플랜이 없기 때문에 독재와 맞바꾼 민주주의는 자주 혼란과 배고픔이 동반됩니다. 독재가 민주주의보다 더 달콤하게 여겨지는 착시도 여기서 기인합니다.
국가의 역할이란 불공정 거래를 막고 노동의 권익을 보장하고 매판자본 금융의 폭력정도만 막아도 더 이상 할 일이 없습니다. 한마디로 정의 구현입니다. 성숙한 시민들의 상식을 가지고 정의만 지키면 경제는 알아서 흘러갑니다. 여기에 경제전문가는 필요없습니다. 미국,일본,유럽이 경제적으로 번영하던 시절에 교과서처럼 읽혔던 경제서적을 지금 보십시요. 지나간 분석은 끼워 맞춰 맞은것이 많아도 앞으로의 예측은 전부다 틀렸습니다.
상식과 정의가 통하는 사회는 한결같이 부유합니다. 정치인은 박봉이고 부패는 없으며 인권을 넘어 동물과 자연의 권익을 논합니다. 이 사회의 구성원은 종교도 갖지 않습니다. 이들 정부는 오로지 성숙한 시민의식의 상식에 기초한 '정의', 이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분배'에만 초점을 두지 '성장'의 이야기는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성장'이 앞서 설명한 기득권, 즉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지요. 인간의 본성은 끊임없는 욕구와 그 실현과정입니다. 상식과 정의만 통하면 인간은 스스로 성장을 꽤하게 되어 있습니다.
노무현 정신은 그가 정의가 실현되는 정상적인 사회를 꿈꾸었다는 것이지요. 그의 방법은 미숙했으며 그의 꿈은 산산조각이 났고 부작용은 끔찍합니다. 그의 조각난 꿈을 다시 붙일 수 있을까요. 우리는 노무현 같은 지도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면 안 됩니다. 그는 미숙하고 무능했습니다. 노무현정신을 계승한 노련하고 유능한 정치지도자가 나온다면 우리 사회는 바뀔까요?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가 더 굳건해 질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노무현정신이란 지극히 상식적인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가 너무 비상식적인 세상에 길들여져 그의 상식이 신기하게 받아들여진 것이라고 봅니다. 상식이 새로울 수가 없듯이 그의 주장에는 단 한가지도 새로운 것이 없습니다.
노무현의 정신은 우리 모두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인 시민 각자가 노무현이 되는 것입니다. 그가 펼치려던 상식과 정의를 갖는 것이지요. 노무현의 메시지는 본인이 사력을 다해 하였던 기득권을 내려놓고 기득권과 싸우라는 것을 우리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매우 어렵고 위대한 일이며 그도 실패하였습니다. 노무현정신은 상식과 정의가 통하는 성숙한 시민이 되라는 단순한 메시지입니다. 그렇게만 되면 박근혜보다 더 무능한 지도자가 등장해도 무서울 것이 없습니다. 적법한 절차로 끌어내리고 상식과 정의가 있는 사람을 민주적 절차로 세우면 되니까요.
지선생님,
우리는 이럴 수 있을까요. 노무현이 될 수 있을까요.
불행히도 저는 매우 비관적입니다.
우선 전쟁을 겪은 세대에서는 희망을 볼 수가 없습니다. 전쟁의 트라우마로 멸균 반공분자들이 되어 있으니까요. 얼마전 힐러리 클린턴과 도날드 트럼프의 토론을 보았습니다. 그가 쓴 단어는 '멕시코' '차이나' 그들이 국경을 넘어와 우리것을 빼았는 다는 것뿐입니다. '북한'과 '좌파'의 위협으로부터 '경제'를 살린다고만 반복하면 우리는 주저없이 표를 던질 것입니다.
전후세대와 젊은세대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요사이 젊은이들은 모두가 대학을 가고 졸업을해서는 모두가 공무원준비를 하거나 대기업취직이 인생의 목표입니다. 태어난 수저색으로 인생이 결정되는 사회는 우리세대와 민주화세대보다 더욱 끔찍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출신과 스펙과 자산에 따라 계급이 결정됩니다. 의 분화는 더욱 더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모두가 공무원이 되려고 하고 대기업에 들어가고 의사와 변호사가 되기를 바라는 사회는 한동안 계속될 것입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란 노래는 이제 용공분자들만의 전유물이 되었습니다. 북한의 독재와 남한의 독재는 남북이 분열되어 있는 한 체재의 안정을 꾀할 수 있습니다.
정의로우면 도태되는 세상, 상식을 갖추면 밥굶는 세상, 정권의 비위를 맞추는 언론과 검찰, 그리고 이들이 득세하는 세상. 연구개발을 하면 가로채고, 기술이 있으면 천시받고, 외모로 평가하고 나이로 평가하고 출신대학으로 평가받는 세상, 노인과 청소년은 자살로 죽어가고, 기초과학은 가장 비인기학과, 자영업자들의 무덤, 남북으로 갈리고, 영남호남으로 갈리고, 여혐과 남혐으로 갈리고....
선생님,
정의와 상식이 없는 것이 어쩌면 당연합니다.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성숙한 의식이란 말이 현 시대만큼 공허하게 들린 적이 없습니다.
어디서 부터 꼬인 것이며 어디서 부터 풀어야 할까요.
첫댓글 장문을 쓰느라고 수고가 많았습니다.
개인적으로 노무현과 함께 활동을 했던 경험이 있는 내 입장에서 한 가지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그는 '지나친 이상주의자' 였다는 것 입니다. 나는 청와대 입성후 참모들과의 회식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었습니다. 투쟁의 현장에서 부를 노래를 집권자가 불렀으니....
저도 그분을 생각하면 고맙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밉기도 합니다. 그렇게 인간적인 대통령은 없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지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