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조약의 체결 이후 일본에 수신사로 파견된 김홍집은 귀국하면서 <조선책략>이라는 책을 가져왔다. 이 책은 일본에 있던 청나라의 관리인 황쭌센(黃遵憲)이 지은 것이다. 김홍집은 <조선책략>을 정부에 헌납하였고 정부에서는 이 책을 여러 벌 복사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읽도록 하였다. 이에 따라 조정 대신들 사이에 <조선책략>의 수용 여부를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이 전개되었다. 다음은 <조선책략>의 일부 내용과 <조선책략>의 수용을 주장하는 어느 관리의 주장이다.
1) 조선을 위하여 시급히 힘써야 할 일은 러시아에 대한 방비로 그것은 '친중국(親中國), 결일본(結日本), 연미국(聯美國)'하여 자강을 도모함이다.(중략) (미국이) 청국과 조약을 맺은 지 수십 년인데 아직 티끌만한 틈이 생기지 않았고 일본과 왕래하면서도 통상으로 달래고 연병(練兵)을 권하며 조약 개정을 도와주는 것은 만국이 다 아는 바이다. 나라의 강성함은 유럽의 강대국과 같으며 동서 대양에 연결하고 있어서 늘 약소국을 도우며 공의(公義)를 유지하여 유럽 사람들이 악한 일을 함부로 하지 못하게 하고 있고 더욱 상업의 이해 관계에서 동양의 평화를 바라고 있고 최근에 사신을 파견하여 조선과 조약을 맺을 것을 원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들과 연결한다면 가히 화를 막을 수 있다. 모름지기 조선은 3국에 사신을 파견하여 소식을 통해야 할 것이다. <조선책략>
2) 김홍집이 귀국하자 <조선책략> 책자를 헌납하였고 이 날 왕이 이 책자의 시비 및 러시아 세력의 방지책을 물었다. 영의정 이최응이 주장하기를 "이 책의 내용 중 믿을 만한 것은 이를 채용해야 할 것입니다. 소위 사학(邪學)이라 하는 것은 마땅히 물리쳐야 할 것이지만 국규(國規)와 기계, 재용(財用)이 한결같이 옛날과 같지 아니하므로 러시아 방지책은 신하들과 함께 강구해야 할 것입니다. 청국과는 다시 더할 것이 없고, 일본과는 근래 수신사가 왕래하고, 우리나라가 해로 요충에 자리잡고 있어서 미국과 연교(聯交)하는 것은 좋은 정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승정원일기>
윗글에서 알 수 있듯이 <조선책략>은 조선이 러시아 세력의 남하에 대비하기 위해 '친중국, 결일본, 연미국'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그런데 청나라 및 일본과는 이미 외교관계가 수립되어 있었고 <조선책략>이 유포되기 이전에 이미 미국은 조선에 대하여 문호 개방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었다. 또한 이에 대해 개화파와 척사파 사이에 찬반 양론이 진행되고 있었다. 따라서 <조선책략>의 유포는 이러한 논쟁을 더욱 격화시켜 위정척사운동을 더욱 격렬하게 했지만 결국 미국과의 외교관계 수립에 큰 영향을 주었다. 마침내 조선은 1882년 미국과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였다. 이 조약도 치외법권과 관세 자주권의 포기를 인정한 불평등 조약이었다. 미국과의 수교 이후 조선은 독일, 러시아, 프랑스, 영국 등의 문호 개방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