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2일 오늘의 성인♡
===============
성 나보르(Nabor)
성 펠릭스(Felix)
축일 7월 12일
성 나보르와 성 펠릭스(Felix) 순교자는
성 암브로시우스(Ambrosius)가 극찬하고
이탈리아의 밀라노 교회가 특별히 공경하라고
명할 만큼 유명하나 그들에 대한 기록은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그들은 밀라노에 주둔하던
막시미아누스 헤르쿨레우스 부대의 무어인
군인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교 신앙 때문에
북이탈리아의 로디(Lodi)에서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그 외의 사실은 전무하지만
밀라노의 미사 경본에는 이 성인들의 이름이
나오며 북부 이탈리아 전역에서 공경하고 있다.
================================
성녀 마르치아나(Marciana)
축일 7월 12일
7월 12일자 로마 순교록 목록에 기재된
성녀 마르키아나(또는 마르치아나)는 그녀의
순교 장소가 에스파냐의 톨레도라고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아프리카 북서부
대서양 연안 모리타니아(Mauritania)의
성녀 마르키아나(1월 9일)와 중복된 것이
확실하다. 교회 미술에서 그녀는 황소에게
찔린 처녀로 그려진다.
================================
성 바울리노(Paulinus)
축일 7월 12일
성 바울리누스(또는 바울리노)는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Toscana) 지방 루카(Lucca)의 초대 주교이자
수호성인으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그에 대한 전설에 의하면 그는 안티오키아에서
태어나서 사도 베드로(Petrus)에 의해 루카로
파견되었다. 거기서 그는 67년에 그의 사제와 부제
그리고 군인 신자들과 함께 순교하였다고 전해진다.
================================
성녀 베로니카(Veronica)
축일 7월 12일
전승에 의하면 성녀 베로니카는 예수께서
골고타(해골산)로 십자가를 지고 가실 때 예수님의
얼굴에서 흘러내리는 피땀을 닦아 준 예루살렘의
어느 부인이다. 그녀는 자신의 옷으로 성면을 씻었는데
나중에 살펴보니 거기에 주님의 모습이 박혀있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그 여인은 베로니카로 알려졌는데,
‘베로’는 라틴어로 ‘베라’(참, 진실한)이고
‘이카’는 ‘아이콘’ 즉 성화상을 뜻하므로,
그녀의 이름은 그 자체가 그리스도의 ‘참 모습’이란
뜻이 된다.
이 사건 이후 그녀의 운명은 여러 가지로 서로 다른
전설로 전해온다. 그 한 가지 전설에 의하면 그 후
그녀는 로마(Rome)로 가서 자신의 이 유품으로
티베리오 황제를 치유했다는 것이고, 임종 때에는
이 유물을 교황 클레멘스(Clemens)에게 드리라고
유언하였다고 한다.
또 다른 전승에 의하면 그녀는 루가 복음 19장 1-10절에
언급된 세리 자캐오의 부인으로 남편과 함께
프랑스로 건너가서 남부 프랑스인들의 개종을 위하여
헌신하였다고도 한다.
또 “빌라도의 술책”이란 책에는 그녀가 마태오 복음
9장 20-22절에 언급된 여인으로, 12년 동안이나
하혈병을 앓다가 예수님의 옷깃을 만짐으로써 치유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것이 진실인지 자세히
규명할만한 자료는 없는 실정이다.
================================
성 벤노(Benno)
축일 7월 12일
벤노는 독일 남서부 슈바벤(Schwaben)의 뢰린겐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성 헤르만으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그는 곧 건축술에 대한 매력을 느끼고 훌륭한 건축사가
되었는데, 하인리히 3세 황제의 ‘공식 건축사’로
임명되었다. 그의 놀라운 건축술로 지어진 대성당은
1030년에 시작된 스피어 대성당, 1047년에 착공된
힐데스하임 대성당의 학교가 있다.
그런 혁혁한 공로에 따라 그는 1068년에 오스나브뤼크의
주교가 되었다. 그는 주교가 된 뒤에 정치문제에
연루되어 곤욕을 치룬 적도 있으나, 그의 올바른 신심과
교구민들에 대한 사랑이 뛰어나서 우러러보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
성 비벤시올로(Viventiolus)
축일 7월 12일
성 비벤티올루스(또는 비벤시올로)는
콘타트(Condat)에 있는 수도원의 수도자였다가
리옹의 대주교가 되었다. 그는 비엔(Vienne)의
성 아비투스(Avitus, 2월 5일) 주교와 가까운 친구였다.
================================
성 안드레아(Andrew)
축일 7월 12일
안드레아(Andreas)는 인스브루크(Innsbruck) 교외인
린에 살던 어느 농부의 아들인데, 2살 때에 부친이
죽는 바람에 삼촌에게 맡겨져 자랐다.
그러던 중 1462년 7월 12일에 아이가 없어졌다.
그 어머니가 백방으로 찾아 헤맨 끝에 그의 시체가
나무에 매달린 채 발견되었다.
그런데 안드레아는 예리한 칼로 난자당했었다.
결국 이 사건은 어느 유대인이 그리스도인을 증오하여
그리스도인 아이를 살해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주민들은 안드레아의 시신이 발견된 곳을
유덴스탄인이라고 부르는데, 이곳에서 수많은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
1752년 교황 베네딕투스 14세(Benedictus XIV)가
그의 공경을 허락하였다.
================================
성 야손(Jason)
축일 7월 12일
사도행전 17장 5-9에 기록된 대로 성 바오로(Paulus)는
그의 제2차 전교 여행 동안 테살로니카(Thessalonica)에
머물 때 성 야손의 집에 묵었다.
그는 매우 열심한 개종자였고, 로마서 16장 21절에
언급된 사도 바오로의 친척 야손과도 동일 인물인 듯하다.
그리스 전설에 따르면 야손은 타르수스(Tarsus)의
주교였고, 소시바드로와 함께 코르푸(Corfu) 지역에
복음을 전하였다. 또 시리아 전설에 의하면 그는
아피메아 지역에 복음을 전하다가 야수의 밥이 되는
극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
성녀 에피파나(Epiphana)
축일 7월 12일
성녀 에피파나 순교자는 저자가 의심스러운
성 알피우스(Alphius)의 행전에서 언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
성 요한 제오르지아노(Joannes Georgiano)
축일 7월 12일
이베리아(Iberia)의 귀족 가문 출신으로
요한 제오르지아노(Joannes Georgiano)라고도 알려진
성 요한은 중년의 나이 때까지 뛰어난 군사 지도자로서
명성을 날렸다. 그러던 중에 그는 자신의 직책을
사임하고 또 아내와 의논하여 집을 떠났다.
그는 비티니아(Bithynia, 고대 소아시아 북서부 지역)의
올림푸스 산으로 가서 수도자가 되었다.
그의 성덕은 곧 사방으로 소문이 퍼졌고 수많은
제자들이 몰려왔다. 그는 자기 아들과 함께 아토스 산에
이베리아인들을 위한 수도원을 세웠는데,
이것이 유명한 토르니키오스(Thornikios) 수도원의
시작이다. 지금은 이곳 수도자들 대부분이 그리스인들이다.
그는 또 원장직에 연연하지 않고 에스파냐 사람들을
위하여 수도원을 세우려다가 아토스 산으로 돌아와서
평안히 세상을 떠났는데, 그의 아들인 성 에우티미우스
계몽주의자(Euthymius the Illuminator)가 원장직을
계승하였다.
================================
성 요한 괄베르토(John Gualbert)
축일 7월 12일
985년 또는 995년에 이탈리아 피렌체(Firenze)
근처의 비시도미니(Visidomini)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성 요한 괄베르투스(Joannes Gualbertus,
또는 요한 괄베르토)는 어려서부터 가톨릭 신앙이
깊은 집안에서 훌륭한 교육을 받고 자라 기사가 되었다.
방탕한 생활을 하던 형이 파스카 금요일에 살해당하자,
그는 기사로서 형의 죽음에 복수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 여겼다. 그러나 정작 살인자와 마주쳤을 때
그가 땅바닥에 십자가 모양으로 팔을 벌리고 엎드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용서해 달라고 간절히
청하자,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장면을 떠올린 그는
살인자를 용서해 주었다.
이때부터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요한은 부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1013년경
산트 미니아토(Sant' Miniato)의 클뤼니(Cluny)
수도원에 입회하여 수도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는 수도원 원장이 성직 매매로 피렌체 주교가
된 사실을 알고 그 수도원을 떠나 교회를 개혁할 수 있는
금욕적인 수도생활을 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성 베네딕투스(Benedictus)의 수도 규칙을
실천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철저히 따르는 삶을
살 수 있는 곳을 찾던 중, 성 로무알두스(Romualdus)가
창립한 카말돌리 연합회에 잠시 머물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 수도회처럼 은수생활에 치우치지 않고
공주생활과 절충된 수도생활을 하기 위해 새로운
수도원을 설립하고자 결심하였다.
요한은 발롬브로사(Vallombrosa)에서 베네딕토
수녀원으로부터 기증받은 부지에 수도 공동체를
설립하였다. 3명의 회원들로 시작된 이 공동체는 후에
산트 미니아토 수도원에서 온 몇 명의 수도자들과
피렌체 지방에서 온 평신도들로 증원되었고,
1056년에 교황 빅토르 2세(Victor II)에 의해 정식
인가를 받았다. 요한은 발롬브로사 연합회를
성 베네딕투스(Benedictus)의 수도 규칙을 따르면서도
몇 가지 독특한 방법으로 이끌었다.
즉 그의 이상적인 수도생활은 은수생활의 고행과
금욕 그리고 참회의 생활에 공동체 생활을 일치시키는
것이었다. 그래서 발롬브로사 연합회의 체제는 철저히
은둔 생활을 하는 수도승과 행정 전반을 관리하는
평수사로 형성되었다.
그는 가난한 이들에게 베푼 애덕을 비롯하여,
성직 매매자들에 대한 강경한 태도, 기적, 예언 및
영적 지혜 등이 뛰어나 그의 지도를 받으려는 사람들이
늘 많았다.
이 수도회는 주로 이탈리아의 토스카나(Toscana)와
롬바르디아(Lombardia) 지방에 산재해 있다.
그는 1073년 피렌체 교외인 파시냐노에서 선종하였고,
1193년 교황 코일레스티누스 3세(Coelestinus III)에
의해 시성되었다.
================================
성 요한 존스(John Jones)
축일 7월 12일
웨일스(Wales)의 카나번셔(Caernarvonshire)
클리노그 포르에서 어느 가톨릭 신자의 아들로 태어난
성 요한 존스(Joannes Jones)는 프랑스 랭스(Reims)에서
사제로 서품을 받았고, 1587년부터 런던의 마샬 시에서
가톨릭 죄수들을 위하여 활동하였다.
그러나 그가 가톨릭 사제임이 발각되어 위스백 성에
감금되었으나 대륙으로 도망하였다.
그 후 그는 프란치스코회에 입회하여 로마(Rome)의
아라 첼리 수도원에서 서약한 후 잉글랜드(England)로
돌아갈 허락을 받았다.
그는 주로 런던에서 활약하다가 1596년에 재차 체포되어
2년 동안 감옥생활을 하였다.
그는 1598년 7월 12일에 교수형을 받았고, 1970년에
10월 25일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하여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40명의 순교자 중 한 명으로
시성되었다.
================================
성 파테르니아노(Paternian)
축일 7월 12일
이탈리아 볼로냐의 주교(450-470년)였던
성 파테르니아누스(Paternianus, 또는 파테르니아노)의
생애에 대해 현존하는 자료는 없다.
그는 아마도 이탈리아 파노(Fano)의 주교였던
성 파테르니아누스(11월 23일)와 동일인으로 보인다.
================================
성 포르투나토(Fortunatus)
성 헤르마고라(Hermagoras)
축일 7월 12일
전승에 의하면 복음사가 성 마르코(Marcus)가
알렉산드리아(Alexandria) 교회를 세우기 전에
이미 성 베드로(Petrus) 사도로부터 아퀼레이아
(Aquileia)의 사도로 파견되었다.
성 마르코는 아퀼레이아 지방을 두루 다니며
복음을 선포하고 또 수많은 기적을 행함으로써 많은
개종자를 얻었다. 성 마르코가 이 지방의 목자를
임명할 때 성 헤르마고라(Hermagoras)를 선택했는데,
그는 성 베드로에 의하여 아퀼레이아의 주교로
축성되었다.
성 포르투나투스(또는 포르투나토)는 헤르마고라의
부제였는데, 주교의 명을 받은 그는 벨루노(Belluno),
코모(Como), 세네다 그리고 인근 지역에서 설교하였다.
네로 황제는 아퀼레이아에 사절단을 보내어
그리스도교를 반대하는 칙서를 발표케 하고
헤르마고라를 체포하여 투옥시켰다.
그런데 한밤중에 신비스런 하늘의 빛이 지하 감옥을
환하게 비추는 기적이 일어나 간수를 감명시켰다.
그러나 그 간수는 감옥 밖으로 달려 나가서
“헤르마고라의 하느님은 위대하다. 와서 이 기적을
보라”고 소리소리 지르며 다녔다.
많은 군중이 몰려 와서 이 광경을 목격하였는데,
이들은 대부분 개종하였다.
이 사건으로 박해자는 주교와 부제의 목을 급히 베게
하였고, 헤르마고라와 포르투나투스는 순교의
월계관을 받았다.
================================
성 프로클로(Proclus)
성 힐라리온(Hilarion)
축일 7월 12일
성 프로클루스(또는 프로클로)와
성 힐라리온(Hilarion)은 트라야누스 황제 때에
갈라티아(Galatia, 고대에 소아시아의 중앙 내륙 고지대)의
안키라(Ancyra)에서 순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