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에스더 8장 1~17>
서론: 뒤집을 수 없는 조서, 뒤집힌 운명
알렉상드르 뒤마의 불후의 고전 《몬테크리스토 백작》에서 주인공 에드몽 당테스는 악인들의 교활한 음모와 국가의 엄격한 사법 체계 속에서 '역모죄'라는 누명을 쓰고 샤토 디프 감옥에 종신형으로 갇히고 맙니다. 빌포르 검사가 서명한 문서에 기록된 그의 죄와 형벌은 평범한 방법으로는 결코 취소하거나 번복할 수 없는 법적 사형선고였습니다. 절망의 심연에 갇힌 그에게는 아무런 희망이 없어 보였습니다.
오늘 본문 초반에 직면한 유다인들의 운명이 바로 이와 같았습니다. 음모자 하만은 처형당했지만, 그가 왕의 인장반지로 내린 ‘유다인 학살 조서’는 페르시아의 국법상 결코 취소할 수 없는 절대적 구속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죽음의 날짜는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었고, 그 법 아래서 그들은 완전히 무력하게 갇힌 몸이었습니다.
그러나 당테스가 파리아 신부를 통해 상상할 수 없는 보물과 지혜를 전수받고 '몬테크리스토 백작'이라는 새로운 신분과 권세를 얻어 판을 완전히 뒤집었듯이, 하나님께서는 에스더와 모르드개에게 왕의 인장반지를 쥐어주시고 ‘새로운 조서’를 쓰게 하십니다. 기존의 조서를 억지로 무효화하지 않으면서도, 대적을 물리칠 힘과 합법적 방어권을 주는 새로운 생명의 조서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을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영적 여정과 비교하며,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망의 법 아래 묶인 우리를 구원하시고 운명을 역전시키시는지 그 비밀을 나누고자 합니다.
1. 기록된 사망을 덮는 더 강력한 생명의 기록
아하수에로 왕은 에스더와 모르드개에게 왕의 이름으로 유다인들에게 유익한 조서를 '기록하고(카타브, כתב)' 왕의 반지로 인을 치라고 권한을 위임합니다(에 8:8).
이는 사도 바울이 골로새서 2장 14절에서 선언한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라는 대속의 사건과 연결됩니다. 첫 번째 조서(율법과 죄가 선언한 사망의 조서)는 인간의 힘으로 취소할 수 없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쓰신 '새로운 생명의 언약(기록)'으로 우리를 얽매던 사망의 채무 증서를 완전히 덮어 써 지워버리셨습니다.
에드몽 당테스를 영원한 어둠 속에 밀어 넣었던 것은 빌포르 검사가 조작해 서명한 '기록된 밀고장'이었습니다. 당테스는 이 억울한 기록을 찢어 발기려 분투하는 대신, 파리아 신부의 비밀 유서에 '기록된 보물의 지도'를 손에 넣음으로써 막강한 힘을 가진 '백작'으로 거듭나 기존의 유죄 문서를 완전히 무력화합니다.
데리다의 해체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기록된 텍스트'는 고정된 권력을 가집니다. 첫 번째 조서는 바꿀 수 없는 철필의 기록이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텍스트의 구속력은 또 다른 '더 상위의 권위를 가진 텍스트'의 덧쓰기(Palimpsest)를 통해 해체되고 재구성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 역사의 절망적 기록(사망의 운명)을 지우는 선언적 기록입니다.
오늘날 세상과 사탄은 우리의 과거, 상처, 죄책감이라는 조서를 끊임없이 들이밀며 "너는 유죄이며 파멸할 것"이라고 속삭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내 안에 이미 그리스도의 보혈로 다시 쓰인(카타브) 의인이라는 신분의 조서를 신뢰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세상의 정죄와 두려움의 텍스트에 갇힌 자들에게 복음이라는 새로운 생명의 약속을 써 내려가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2. 스스로 일어서서 생명을 지키는 방어권의 회복
왕의 새 조서의 핵심 내용은 유다인들이 함께 모여 "스스로의 생명을 보호하고(아마다, עמד, 일어서다)" 대적들을 진멸할 권리를 허락한 것입니다(에 8:11).
신약에서 이 일어섬은 에베소서 6장 13절의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Stand) 위함이라"는 영적 무장과 맞닿아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가만히 누워 구걸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구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왕의 조서를 쥐어주시며 원수 마귀에 대적하여 "능히 서라"고 선언하십니다.
샤토 디프 감옥에서 당테스는 바닥에 쓰러져 죽음만을 기다리던 수동적인 죄수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스승의 가르침을 받은 그는 스스로 탈출을 결단하고 바다로 뛰어내려 "스스로 당당히 일어섰습니다(아마다)." 그는 자신을 박해하던 자들의 공격을 묵묵히 받아내던 피해자의 자리에서 벗어나, 그들을 대적할 수 있는 막강한 자원과 주도권을 쥔 주체로 우뚝 섰습니다.
이는 사르트르식의 실존적 주체성 회복과 연결됩니다. 타자에 의해 죽임당할 '객체'로 전락했던 유다인들은, 새 조서를 영접하는 순간 스스로 무장하여 운명을 개척하는 '주체(Subject)'로 거듭납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우리를 수동적 피해자로 방치하지 않고, 운명의 지배자이자 영적 주체로 벌떡 일으켜 세우시는 역동적인 사건입니다.
성도는 세상의 고난과 영적 공격 앞에 무력하게 엎드려 우는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라는 왕의 반지가 주어졌습니다. 이제 믿음으로 벌떡 일어서서(아마다) 죄의 유혹과 사탄의 참소를 대적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마비되어 누워 있는 삶의 자리에서 일어나, 하나님이 주신 영적 권세를 실천적으로 사용하십시오.
3. 절망의 어둠을 걷어내는 찬란한 생명의 빛
조서가 반포되자 유다인들에게는 "영광(오라, אוֹרָה, 빛)과 즐거움과 기쁨과 존귀함이 있는지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에 8:16). 여기서 '영광'으로 번역된 '오라'는 태양빛, 혹은 구원의 서광을 의미합니다.
이 빛은 요한복음 1장 9절의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라고 선포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앉아 죽음의 날짜만 세던 자들에게 생명의 참 빛이 비추어 비참함이 순식간에 영광으로 뒤바뀐 것입니다.
14년 동안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던 감옥 독방의 어둠 속에서 당테스는 서서히 눈이 멀고 영혼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탈출에 성공해 몬테크리스토 섬의 동굴 속에서 눈부신 보물을 대면했을 때, 그의 삶에는 눈이 부시도록 찬란한 '빛(오라)'이 찾아왔습니다. 그 빛은 그의 지난날의 슬픔과 비참함을 단번에 녹여버리고, 그를 귀족 중의 귀족인 영광스러운 백작의 신분으로 세상 앞에 선포해 주었습니다.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에서 어둠 속에 갇힌 죄수들은 벽에 비친 그림자(가짜 조서가 주는 공포)를 실재로 믿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동굴 밖의 참된 태양빛(오라)을 대면할 때 비로소 해방을 얻습니다. 본문의 '오라'는 인간을 억누르던 가짜 죽음의 공포를 단번에 소멸시키는 절대적 진리의 빛, 곧 초월적 은총의 현현입니다.
주님의 빛(오라)을 받은 성도는 얼굴에 어둠을 짙게 깔고 살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 안에 성령의 기쁨과 구원의 감격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사명은 이 어두운 세상 속에 생명의 빛을 발하여, 절망에 빠진 이웃들이 빛 가운데로 나아와 즐거움과 존귀함을 얻도록 돕는 등대가 되는 것입니다.
결론: 기다려라, 그리고 희망하라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결말에서, 한때 부조리한 기득권과 음모의 법 아래 무기력하게 무릎 꿇었던 악인들은 스스로가 팠던 욕망의 함정에 빠져 처절하게 파멸합니다. 반면, 죽음의 수렁에서 건짐을 받은 의인들과 당테스를 신뢰했던 이들은 백작이 예비한 막대한 재산과 영광을 얻고 환희의 축제를 벌입니다. 백작은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이들에게 이러한 편지를 남기며 떠납니다.
"인간의 모든 지혜는 이 두 단어에 속에 있습니다. ‘기다려라, 그리고 희망하라(Attendre et espérer)!’"
본문의 결말 역시 정확히 이 위대한 역전의 메시지를 증명합니다. 유다인을 해치려던 대적들은 도리어 유다인들의 군대 앞에 완전히 무릎을 꿇었고, 하만의 모든 권세와 재산은 모르드개에게 인도되었습니다. 재를 뒤집어쓰고 울부짖던 성읍은 수놓은 옷과 금 면류관을 쓴 모르드개와 함께 기쁨의 축제를 벌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마침내 승리할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어두운 사망의 율법조서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복음조서(카타브, כתב)로 덮여 쓰여 무력화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믿음의 전신 갑주를 입고 당당히 일어섭시다(아마다, עמד).
그래서 비참함과 슬픔의 자리에서 일어나 생명의 찬란한 빛(오라, אוֹרָה)을 발합시다.
지금 당장 눈앞의 현실이 어둡고 세상의 핍박이 거셀지라도, 왕의 인장반지를 쥐어주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다리고 희망하십시오.' 마침내 우리 삶에 부림절의 잔치와 같은 영광스러운 구원의 축제를 완성하실 신실하신 주님을 우러러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