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번 ‘유동성 조절’은 동구 궁동 11번지에 있다. 금남로공원 주변에 서면 다갈색 동굴 같아서 한눈에 잘 뜨이는 설치작품이다. 공원 모서리의 지하상가 출입구 두 군데를 둥그스름하게 표현하였다. 날씨가 좋다면 작품 주변에 앉아서 벗과 함께 정담을 나누며 해바라기를 해도 좋을 듯하다. 지하도로 내려가 대인동 출구 쪽으로 나간다. ‘예술의거리’ 입구를 지나 동구 궁동 1-6번지 사거리에 도착한다. 길 건너에 있는 높다란 건물 ‘한화생명’이 보인다.
7번 ‘광주사람들’이 있는 곳은 건물의 모퉁이와 두 개의 횡단보도가 있는 지점이다. 버스를 타고 지나다닐 때는 이 설치물이 답답하기 그지없고 산만하게만 보였는데 막상 지상에서 살펴보니 오히려 느낌이 더 낫다. 수많은 강철 마디가 연결되어 구름덩이처럼 뭉쳐져 공중을 받치고 있는 형상이다. 그 사이로 살아있는 가로수를 품고 있어 멋스럽다. 앞에 아주 오래되어보이는 이발관이 있었는데 취재를 거부하였다. 중앙초등학교 담장을 따라 개미장터입구 쪽으로 올라간다.
8번 ‘서원문 제등’이 나온다. 동구 궁동 78번지 ‘김재규경찰학원’ 앞에 있다. 다른 폴리에서 보이지 않던 글귀가 보인다. “道可道非常道 말할 수 있는 도는 늘 그러한 도가 아니다”라는 글귀가 설치물에 붙어 있다. 이 작품의 아래쪽에는 이 장소가 ‘5·18민중항쟁 사적 광주MBC옛터’임을 알리는 표지가 있다. 폴리가 사적표지를 품고 있는 모양새이다. 별로 높아 보이지는 않으나 7개의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니 건너편의 전남여자고등학교와 버스 승강장과 도로가 폭넓게 들어온다. 서원문은 광주읍성의 동문이었다. 그것을 알리는 ‘서원문 터’ 비가 버스 승강장 위 횡단보도 시작점에 서 있다. ‘공북문 터’가 작은 돌비였던 것에 비하여 규모가 크다. 경찰학원 아래층에는 ‘광주518점’이라는 설명이 붙은 카페가 있다. 5·18과의 연관성이 궁금하여 들어가보았는데 전혀 무관하다는 답변이다. 서울에도 같은 간판이 한 군데 있다고 한다.
9번 ‘소통의 오두막’은 동구 장동 62번지 장동로터리에 있다. 공중에서 흘러다니는 유연한 곡선 활용이 오두막이라는 느낌보다는 시원스럽고 활달한 물길의 느낌을 준다. “소쇄원과 한옥의 굴뚝 이미지에서 영감을 얻어 자연과의 공존과 열린 공간에 중점을” 두었다는 작가의 제작 의도에 공감한다. 물건을 진열하거나 앉아 있기에 좋을 넓적한 직사각형의 크고작은 돌판도 설치되어 있어 재미있는 작은 장터가 열릴 수도 있겠다싶다. 좀더 넓은 광장에 설치되었다면 더 좋았을 테지만 이로서도 나쁘지 않다. 아름다운 조형물이다. 다음 폴리로 이동하는데 시야에 들어오는 길 건너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모습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10번 ‘잠망경과 정자’는 동구 서석동 45-15번지 ‘대성학원’ 앞에 있다. 이 폴리는 “지상 25m에서 내려다보는 탁 트인 시야를 선물”한다기에 얼른 잠망경에 두 눈을 갖다 댄다. 안 보인다. 이것도 고장이다. 아쉬움을 안고 시계를 본다. 오후5시 30분이 좀 넘었다. 2시 10분에 시계탑을 출발하였으니 여기까지 3시간 20분이 걸린 셈이다. 일단 여기서 오늘 탐험을 마치고 팀은 해산하기로 한다.
11번 ‘푸른길 문화샘터’는 동구 동명동 25번지 일원에 있다. 서석초등학교를 지나 동명동 ‘동구행복나눔텃밭’의 채소 구경도 하면서 ‘창억떡집’을 지나 ‘고래집’을 지나니 ‘동명동주민커뮤니티센터’가 나오고 ‘산울림’도 보인다. 폴리에 도착하니 오후6시쯤이다. ‘잠망경과 정자’에서부터 해찰하며 싸목싸목 걷는 데 30분쯤이 소요되었다. 작품이용안내문에 녹이 묻어날 수 있다는 주의사항이 보인다. 계단을 올라가니 만들어진 지 얼마 안 된 다리다. 이름이 ‘동지교’다. 동명동과 지산동을 잇는다는 것 같다.
광주읍성을 따라 설치한 1번부터 10번까지의 폴리와 푸른길 농장다리를 형상화한 1개의 폴리를 찾아 걸었다. 오후6시 10분이 넘었다. 2시에 출발하였으니 4시간이 좀 더 걸렸다. 단지 돌아보는 데만 걸린 시간이니 물건을 사고 맛있는 것을 먹고 차를 마신다면 시간은 배로 소요될 듯하다. 읍성 동서남북의 방향에 있었던 서원문, 광리문, 진남문, 공북문의 위치를 가늠하여 본 이 길 위에서, 광주읍성의 역사성 인식은 물론 최근 새로운 화두로 떠오른 도시재생 문제와도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길이 품고 있는 의미를 길을 걸으면서 생생하게 깨달았다고나 할까. 다음에는 야간에 나와볼 생각이다. 조명이 켜지면 폴리들은 또다른 생명체로 모습을 바꾸어 새로운 이야기를 전해줄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