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에 얽힌 이야기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기고, 범은 죽으면 가죽을 남긴다’는 속담이 있다. 호랑이가 죽은 다음에 귀한 가죽, 虎皮(호피)를 남기듯이 사람도 생전에 보람있는 일을 해서 후세에 이름을 떨쳐야 한다는 뜻일 게다.
하지만 죽은 뒤에 이름 남기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살아 생전에 이름 값만 하고 죽어도 다행이다. 아니 유명한 이름을 남기지는 못해도 惡名(악명)이나 汚名(오명)만은 남기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새삼스레 이름의 중요성을 느끼게 된다.
우리 나라에서 후세에 이름을 남긴 역사적 인물들의 이름에 얽힌 얘기들을 살펴보자.
우리나라 불교 역사상 가장 많은 저술을 남기고, 瑤石(요석)공주와의 사이에서 유학자인 薛聰(설총)을 낳은 元曉大師(원효대사)는 성이 薛(설)씨고 어릴 때 이름은 誓幢(서당), 또는 新幢(신당)으로 불렸으며 원효는 그의 法名(법명)이다.
그가 자신의 법명을 원효라 한 것은 부처님의 해를 처음 빛나게 했다는 뜻이라고 一然(일연)스님은 三國遺事(삼국유사)에서 밝히고 있다. 그런데 원효는 방언이고, 신라 말로는 始旦(시단)이라고 불렀다고 했는데 원효나 시단이나 모두 첫 새벽, 새아침의 뜻이 된다. 이로 미뤄보면 원효대사는 당시 신라 사람들에게 새벽스님으로 불렸던 셈이다. 신라 불교의 黎明(여명)이요, 아니 신라의 새벽을 여는 대선사였음을 그의 법명에서 엿볼 수 있다.
고려 중기의 문신, 학자, 문인이며 三國史記의 저자인 金富軾(김부식)은 그의 이름 한 자를 北宋(북송)의 대문장가요 唐宋八大家(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인 蘇軾(소식)에게서 따왔다. 그의 동생 이름도 소식의 동생인 蘇轍(소철)의 이름을 따 富轍(부철)이라 지었다. 소식은 당송팔대가로 이름을 올린 그의 아버지 蘇洵(소순), 그의 동생 소철과 함께 ‘북송 三蘇(삼소)’라 불렸는데 과거에 모두 합격한 김부식의 사형제는 ‘고려 四富(사부)’라 불러도 좋을듯 하다.
고려 말에 절의를 지킨 三隱(삼은) - 牧隱(목은) 李穡, 圃隱(포은) 정몽주, 冶隱 길재로, 세 사람의 호에 隱자가 들어가 삼은이라 부름 - 의 한 사람이요, 문하시중을 지낸 문신이며, 성리학의 道統(도통)을 이은 대학자인 이색의 경우를 보자.
그의 이름인 穡자만을 보면 곡식을 거둔다, 수확한다는 뜻의 평범한 이름일 뿐이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 이름인 穀 - 그의 호도 심는다는 의미인 稼亭(가정)임 - 자를 결부시켜 보면 아버지가 심고 길러 놓은 곡식(穀)을 아들이 거두어 들인다(穡)는 깊은 뜻을 담고 있다.
아버지 당대에 심고 길러 놓은 것을, 혹은 아버지가 못다 한 일을 아들 대에서 거두어 들임으로써 대를 이어 완성하는 의미가 된다.
사실 아버지도 고려 말에 찬성사 - 요즈음으로 말하면 장관급임 - 벼슬을 지내고 성리학의 맥을 이은 학자인지라 본인 스스로 이름을 남겼다고 볼 수 있다. 거기다 아들 이색도 아버지보다 더 나은 이름을 역사에 남김으로써 가업을 잇듯 부자가 대를 이어 이름을 떨치고 있다는 사실을 두 사람의 이름에서 알 수 있다.
충무공 이순신의 경우 아버지 貞(정)이 아들 네 형제의 이름을 장차 커서 그와 같은 사람이 되라고 중국의 어진 임금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行列字(항렬자)인 臣(신)자 위에 첫째는 三皇(삼황)의 한 사람인 伏羲(복희)씨의 羲자를 따서 羲臣, 둘째는 五帝의 한 사람인 堯(요)임금의 堯를 따 堯臣, 셋째인 충무공은 역시 오제의 한 사람인 舜(순)임금을 따라 舜臣, 넷째는 夏(하)나라를 세운 禹(우)임금을 본떠 禹臣이라 지었다.
이상시대 임금으로 일컬어 지는 삼황오제의 이름을 따서 너무 거창하게 지은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이순신의 경우 聖君(성군)인 舜임금의 이름을 따 聖雄(성웅)이 되었으니 아버지의 뜻대로 이름 값을 톡톡히 한 셈이다.
사육신의 한 사람이요, 훈민정음 창제의 으뜸 공신인 成三問(성삼문)은 태어날 때 하늘에서 “태어 났느냐?”하고 묻는 소리가 세 번이나 들렸다고 해서 三問이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하늘이 점지한 인물임을 이로서 알 수 있겠다.
그의 호도 四君子(사군자)인 梅蘭菊竹(매란국죽) 가운데 매화와 대나무를 택한 梅竹軒(매죽헌)인걸 보면 만고에 독야청청한 그의 절개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현모양처의 師表(사표)로서, 뛰어난 여류 예술가로서, 栗谷(율곡)의 어머니로서 오늘에도 추앙받고 있는 申師任堂(신사임당)은 성만 있지 이름은 없다. 진짜 이름이야 없진 않고 집에서 부르던 아명이라도 있었겠지만 친정 申씨나 시집 李씨의 어느 족보에도, 어떤 역사사전에도 그녀의 이름은 보이지 않고 다만 친정 아버지 命和(명화)의 딸로만 나와 있을 뿐이다.
그녀의 이름처럼 굳어 버린 師任堂은 그녀의 堂號(당호) - 그녀가 살던 집의 이름 - 가 호(별명)처럼 불려지다가 이름처럼 굳어져 버린 것이다. 그녀는 중국 周(주)나라의 聖君인 文王(문왕)의 어머니 太任(태임)을 본받기 위해(師任) 이런 당호를 지은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 聖君중의 聖君인 문왕을 낳은 태임을 본받은 신사임당은 조선의 聖賢(성현)인 율곡 李珥(이이)를 낳았으니 堂號대로 살다가 이름을 남긴 셈이다.
거기다 여자로서는 역사상 처음으로 우리 나라 최고 고액권인 오만원 짜리 지폐에 이름과 얼굴을 올려 오천원권의 아들 율곡과 함께 모자가 두 가지 화폐의 주인공이 되고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그동안 우리 나라 제일의 고액권인 만원권의 주인공으로 인기를 누려오던 세종대왕은 오만원권의 신사임당에게 그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지난 2011년에는 「위대한 탄생, 영웅호걸」로, 그리고 2012년에는 「돌아온 영웅호걸」로 KBS 「인간극장」에 두 번이나 방영된 네 쌍둥이 얘기는 너무나 감동적이다. 그 이유는 시차를 두고 한꺼번에 태어난게 아니라 위로 두 명은 미숙아인 칠삭둥이로 먼저 태어나고, 아래로 두 명은 역시 미숙아인 팔삭둥이로 한 달 후에 태어난 네 쌍둥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극적으로 태어난 네 쌍둥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감명을 줄 일인데 이에 못지않게 그들의 이름 또한 너무 멋져 감탄을 자아내고 있다. 이름하여 英雄豪傑(영웅호걸)! 몸무게 600g에, 인큐베이터, 그리고 몇 차례에 걸친 수술 등 생명이 붙어 있는 것만도 기적인 이 허약하기 짝이 없는 네 쌍둥이에게 천하를 호령하라고 영웅호걸의 이름을 지어주다니 반전도 이런 대반전은 없다.
첫째는 尹泰英(윤태영), 둘째는 泰雄(태웅), 셋째는 泰豪(태호), 넷째는 泰傑(태걸). 이들 네 쌍둥이의 이름을 보면 이순신 장군 형제의 이름을 연상케 한다. 영웅(준)호걸은 그냥 영웅(준)호걸이 아니다. 英은 지략이 있어 만 명을 당해내는 사람을 뜻하고, 俊(雄)은 천 명을, 豪는 백 명을, 傑은 열 명을 당해내는 사람을 뜻한다.
一當百(일당백), 一騎當千(일기당천)이라는 말이 있다. 혼자서 많은 사람을 당해낼 수 있다는 뜻이다. 이들 영웅호걸 네 쌍둥이가 힘을 합치고 뜻을 모은다면 力拔山 氣蓋世(역발산 기개세)의 項羽(항우)도 뛰어넘을게 틀림없다.
칠삭둥이라고 걱정할 필요도 없다. 단종을 몰아낸 세조의 찬탈 - 역사에서는 癸酉靖難(계유정난)이라고 부르지만 - 을 도운 韓明澮(한명회)도 칠삭둥이로 태어난 인물이다. 마흔 살이 넘어 벼슬살이를 시작해서 끝내는 영의정까지 오르고 두 딸을 왕비로 삼게해 온갖 영화를 다 누리지 않았던가?
사람의 운명은 四柱八字(사주팔자)나 관상이 좌우한다고 흔히들 말하지만 이에 못지 않게 이름에도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옛날에는 항렬자를 따라 이름을 지었지만 오늘에는 음양오행이나 항렬자, 획수 따위는 따지지 않고 부르기 좋고 듣기 편한 이름을 선호한다. 그 이름에 좋은 뜻까지 담긴다면 금상첨화일 테다.
이름을 지어준 사람의 의도대로, 이름의 뜻에 따라 열심히 노력하면 이름 값을 하게 되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이름을 남기게 마련이다. 이름을 남기되 famous(좋은 뜻에서 유명한)한 이름을 남겨야지 notorious(나쁜 뜻으로 유명한)한 이름을 남겨서는 안될 일이다.
위에든 역사적 인물들은 다 靑史(청사)에 芳名(방명)을 남겼지만 2011년에 극적으로 태어난 충북 음성군의 영웅호걸의 근황이 궁금해 진다. 그러나 그들이 누구이던가? 영웅호걸이 아니던가? 그들이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나 영웅호걸의 이름 값을 해주길 기대해 본다. 영웅호걸 파이팅!!!
단기 4346년 3월 6일 대구에서 抱 民 徐 昌 植
첫댓글 이곳 찾는이 모두가 개세영웅(蓋世英雄 )이시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