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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쌍/둥이] Triplets. 세 쌍둥이 - # 191 Written by. love
누군가가 그랬다.
인생은 예측할 수 없어 살만한 것이라고...
# 191
“ 혜성아~ ”
“ 응? ”
진로 상담을 위해 상담실로 간 민우가 교실로 들어오자마자 내 어깨를 살짝 쥐고는 다정하
게 내 이름을 불러주었다. 사실 민우가 상담실에서 무슨 말을 했을지 너무 너무 궁금하지
만, 민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로 결정을 하면 가장 먼저 내게 말해주기로 했으니까, 안
물어보기로 했다. 헤헤-.
“ 다음은 너야. ”
“ 나? ”
“ 응. ”
민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일어나 복도로 나가자, 민우는 날 따라 나왔다. 이미 자습
이 시작된 복도는 조용하기만 했다. 내가 상담실로 못 찾아갈까 봐 걱정이 된 건지 날 따
라 나온 민우에게 어색하게 웃어주고는 진로 상담실을 향해 몸을 돌리자. 민우는 나의 어
깨를 가볍게 잡아 돌려 미소를 지어주고는 말했다.
“ 내 결정. 좋아했으면 좋겠어. ”
민우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어 고개만 갸우뚱-하는 사이 민우는 내 앞머리를 가
볍게 쓸어 올려주고는 웃으며 교실로 들어갔다.
무슨... 뜻이지?.....
- 똑똑-
“ 들어와라. ”
상담실로 들어가자 뭔가 묵직한 서류 뭉치를 보고 계신 담임선생님께서 앉아계셨다. 선생
님은 내가 들어가자 고개를 들고는 앉으라는 손짓을 하셨고, 선생님 앞에 놓인 의자에 앉
자마자 선생님께서 웃으며 물으셨다.
“ 혜성이 이번 2학기 수시에 쓸 거지? ”
“ 네. ”
“ 물론... S대 의대? ”
“ 어? 어떻게 아셨어요???!!! ”
난 한번도 선생님께 말한 적이 없는데, 선생님께서 그걸 알고 계셨다니 너무 너무 놀라워
서 난 큰소리를 내버렸다.
“ 뭐... 혜성이 성적이면 당연히 S대 일테고,
또 아버지 병원 물려받으려면 의대 일테니까... ”
우웅... 그런 거 아닌데.....
“ 그래. 혜성이는 성적도 최고고, 또 집안 대대로 의사셨으니까 잘 할 꺼다. ”
“ 저기... ”
“ 응? ”
나의 말에 고개를 숙이고는 끄덕이며 기록부에 뭔가를 적으시던 선생님께서는 의아한 표정
으로 날 올려보셨다.
“ 전 아빠 병원 물려받으려고 의대 가는 거 아닌데요?
우웅- 병원은 작은 아버지도 계시고, 또 형들도 있고요...
게다가 S대 가기로 한 것도 S대는 국립이라서 학비가 싸다고 해서
그래서 가려고 하는 건데... ”
“ 어? 아... 그래... 하하-... 뭐, 그럴 수도 있겠구나.....
아무튼 친한 민우랑도 계속 같이 다니게 되서 선생님도 안심이다. ”
“ 민우요???!!!! ”
“ 왜? 민우가 말 안 했어? 민우도 S대 의대 2학기 수시 본다는 거? ”
“ 민우도 S대 의대 봐요???!!! ”
나의 말이 이상했는지,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물으시는 선생님의 말씀에 깜짝 놀라 자리에
서 반쯤 일어나며 소리쳐 버렸다.
“ 그래. 사실 한 학교에서 같은 학교 같은 과 수시를 동시에 쓴다는 게
흔한 일은 아니지만, 너희 둘은 모두 성적도 좋고 논술도 잘하니 걱정은 안 한다. ”
“ 그럼... 저희 둘 다 S대 의대 갈 수 있단 말씀이세요??? ”
생각지도 못한 선생님의 말씀에 가슴이 설레여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 시험이라는 게 항상 결과 발표 될 때까지 확신은 할 수 없는 거지만,
혜성이야 전학 오면서부터 줄곧 전교 1등이었고,
민우도 1학년 때까지도 전교 10등 밖으로 나간 적이 없긴 했지만,
2학년부터는 거의 항상 5등 안에 든 데다가 3학년 올라와서는
혜성이, 란이랑 같이 전교 1등 다툴 정도니까, 뭐 걱정은 안 한다.
게다가 민우, 논술은 특히나 잘하잖아? ”
“ 네. 민우는 논술 너무, 너무 잘해요. 헤헤- ”
민우는 책도 많이 읽고, 생각도 많이 해서 글도 잘 써... 헤헤- 멋있다... 헤헤-
“ 그래. 그러니까 선생님은 별 걱정 안 한다. ”
“ 그럼, 저 나가봐도 돼요? ”
민우에 대한 이야기가 사실인지 얼른 민우에게 직접 확인받고 싶어서 더 이상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들썩이는 엉덩이를 지금까지 붙이고 있기도 힘들어 얼른 선생님께 물었다.
“ 응? 아... 그래. 그럼 란이 좀 불러 주겠니? ”
“ 네~~~ ”
당황한 듯 했지만 고개를 끄덕이시는 선생님의 대답을 듣자, 얼른 민우한테 정말인지 정말
로 민우도 의대에 가고 싶은지 묻고 싶어서 가슴이 뛰었다. 어쩌면 대학에 들어가면 지금
처럼 민우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많이 슬펐는데... 민우랑 대
학도 같이 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까, 정말 정말 설레여서 더 이상은 앉아 있을 수 없었
다.
민우에게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기 위해 복도를 뛰어가던 중, 문득 아까 민우가 한 말이
생각났다.
- 내 결정. 좋아했으면 좋겠어.
아!... 그 뜻이었구나...
헤헤-
난 좋아.
민우가, 민우가 항상 옆에 있다면... 그렇다면 난 좋아. 너무 너무 좋아.
.
.
.
“ 에헤- 수여 가아. 수여. 에에- (헤헤- 수염 같아. 수염. 헤헤-) ”
“ 이잇- (에잇-) ”
“ 이잉~ 잉우아~ (히잉~ 민우야~) ”
“ 으어잉애 우아 나항데 엉이애? (그러 길래 누가 나한테 덤비래?) ”
양치질을 하는데 입가에 하얗게 치약 거품이 묻은 민우의 모습에 웃어대자 민우는 내 입가
에 묻은 치약 거품을 내 볼에 묻혀버렸다. 볼이 화끈거리는 느낌에 칭얼대자 민우는 물 묻
은 손으로 내 볼을 닦아주며 칫솔을 물은 입으로 계속 혼을 냈다.
나란히 서서 양치질을 하는 건 학교에서는 자주 있는 일이었지만, 학교나 집이 아닌 곳에
서는 정말 오랜만의 일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 잘~들 한다. 씻고 나오라니까 아주 소꿉놀이를 한다. 소꿉놀이를... ”
“ 애엉아~ (재원아~) ”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돌아보자 재원이가 팔짱을 낀 채 벽에 비스듬히 기대어 서서는 웃고
있었다.
“ 저게... 형들한테 까불고 있어. ”
“ 그런 꼴로 협박 해봤자 하~나도 안 무섭네요~
빨리 나와요. 다들 기다리고 있어요. ”
“ 웅~ ”
모처럼 창조부와 대학생 선배님들 몇 명이 단체로 찜질방에 모여서 지민 형이 이번에 찍은
드라마를 보기로 했다.
대충 씻고 하얀 티셔츠와 반바지로 갈아입고 목욕탕과 연결된 탈의실 한쪽에 있는 문을 열
고 나가자 우리와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많이 많이 있었다.
“ 혜성아. 여기야~ ”
그런 낯선 모습에 정신이 없어서 민우의 티셔츠 끝자락을 꼭- 붙잡고 민우를 따라가자 한
쪽에서 익숙한 란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들리는 쪽을 바라보자 이미 먼저 나온
정혁이와 란이, 동완이, 선호, 재원이, 승호 형, 우혁이 형, 희준이 형, 정이 형, 호우 누나,
아리 누나 모두들 하얀 반바지와 반팔 티셔츠로 갈아입고는 커~다란 TV 앞의 여기저기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 저 자식은 지가 가수지 개그맨이야? 왜 저렇게 말이 많아? ”
“ 헤에- 지민이 정말 재미있다. 학교에서보다 더 재미있어~ ”
“ 지민이 녀석이 말을 잘하긴 잘한다. 옆에 앉아있는 개그맨이 다 편집되잖아.
저 녀석 전공을 잘못 택한 거 아냐? 가수가 아니라 개그맨 해야 한다고... ”
“ 에이~ 오빠. 저 얼굴에 개그맨 하기는 얼굴이 아깝지... ”
“ 뭐 어때? 요즘은 개그맨도 아주 잘생기거나 아주 못생겨야 뜨는 법이라고... ”
TV 앞에 모여 앉아 지민 형에 대해서 시끌-거리는 소리에 화면을 바라보자, 지민 형이 나
오고 있었다.
“ 와아~ 지민 형이다~~~ 벌써 시작했어요? ”
“ 아냐. 그 전에 하는 쇼프로 재방송. 좀 이따 시작해. 앉아. ”
“ 야~ 드디어 나왔네. 민우랑 때가 아니라 살이라도 벗기고 나왔냐?
뭐 그렇게 오래 걸려? ”
“ 둘이 얼굴에 치약 묻혀가면서, 놀고 있던데요? ”
TV 화면에 나오는 지민 형의 모습에 돌로 된 듯한 바닥에 주저앉으며 묻자, 란이는 친절하
게 설명해주었고, 장난스럽게 내 볼을 쭉- 잡아당겨 묻는 정이 형의 말에 어느새 선호와
함께 빨대가 여러 개 꽂힌 기다란 통들을 들고 다가오는 재원이가 말했다.
“ 큭큭... 그럴 줄 알았다.
너희는 매일 보면서도 아직도냐?
근데 확실히 PDP가 좋긴 하다.
이렇게 해 놓으니까, 완전 극장이다. 극장. ”
희준 형은 재원이의 말에 웃으며 우리를 놀리고는 재원이 품에서 얼른 음료를 받아들며 말
했다. 희준 형이 통을 받아들자 모두들 선호와 재원이에게 다가가 통을 받아들었다.
“ 그래. 그래. 저 화려한 화면, 완벽한 음향시설~ 캬아~
호우야. 우리 결혼 할 때 다른 거 하지 말고 이렇게 만들까? ”
“ 그래. 아~무 것도 사지 말고,
그냥 TV위에서 자고, 스피커에 계란 익혀 먹으면서 살자~ 응? ”
호우 누나의 무릎에 누운 정이 형의 말에 호우 누나는 정이 형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어린
아이를 어르듯 말했다. 그 모습에 모두들 소리 나지 않게 웃고 말았다. 늘 느끼는 거지만,
정이 형과 호우 누나는 참 사이가 좋다. 늘 싸우지도 않고 사이가 좋다고 한다.
헤헤- 나도 늘 민우와 저렇게 행복하기만 했으면...
“ 아직 시작 안 했지? ”
“ 어? 어떻게 왔어? ”
“ 안 바뻐? ”
“ 지민아~~~ ”
뒤에서 들리는 반가운 목소리에 돌아보자, 어느새 우리와 같은 흰 반바지와 티셔츠로 갈아
입은 지민 형이 웃으며 걸어오고 있었다. 그 모습에 모두들 반가운 표정으로 놀랐고, 주변
에 있던 사람들은 지민 형을 알아봤는지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 지민 형~~~~ ”
“ 어이. 우리 꼬맹이. 나 보고 싶었지? ”
예상치도 못한 지민 형의 모습에 달려가 형의 팔에 매달리자 형은 날 꼭- 끌어안은 채 물
었다. 난 그렇다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형의 단단한 가슴에 묻혀서 대답할 수 없어 겨우 고
개만 끄덕였다.
“ 어이~ 바쁘신 분이 어떻게 오셨어?~ ”
“ 방금 전까지 너 나온 쇼프로 보고 있었다. ”
“ 방금 TV 나오신 분께서 언제 여기까지 날아오셨어? ”
“ 큭큭... 내가 또 슈퍼맨 아니냐?
어때? 나 잘 나왔든?
드라마 시간 맞춰 오느라 정신없어서 모니터 못했다. ”
날 꽉- 끌어안은 지민 형이 바닥에 안자 시끄럽게 지민 형을 반기는 말들과 지민 형을
무섭게 바라보고는 내 팔을 꽉- 쥐고는 확- 잡아당기는 민우의 모습에 지민 형은 시원스
럽게 웃으며 바닥에 놓인 음료수를 단번에 마시고는 물었다.
“ 너 가수 말고 개그맨이나 해라. 노래보다 이게 나은 거 같다. 짜식- ”
“ 안 그래도 우리 사장님이 요즘 나 쇼프로 못 내보내서 안달이시다.
다른 소속사에서는 앨범 많이 팔리라고 내보내거나,
드라마 홍보하라고 내보낸다던데,
어떻게 우리 사장님은 나가서 많이 웃기고 들어오라고 하시는지... ”
그렇게 투덜투덜- 말하며, 피곤한 듯 다리를 쭉- 뻗으며 말하는 지민 형은 즐거워보였다.
그리고 지민 형의 말에 형의 뒤에 앉아 란이와 함께 계란을 까먹고 있던 아리 누나가 한마
디 더 했다.
“ 너희 사장님 독특한 거야, 하루 이틀 일도 아닌데 뭘 새삼스럽게 그래? ”
“ 아리 누나가 좀 말려봐~ 와아~ 맥반석 계란. 내가 이게 얼~마나 먹고 싶었는데~ ”
“ 야. 시작한다. ”
정이 형의 말에 모두들 몸을 돌려 지민 형의 정식 첫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 너 누가 지민 형이 그렇게 끌어안는데도 가만히 있으래? ”
“ 헤헤- 민우야아~~~ ”
모두들 드라마의 첫 장면에 정신이 팔린 사이, 내 옆에 앉아 짐짓 화가 난 듯 말하는 민우
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매달려 애교를 부리자 민우는 결국 웃고 말았다.
“ 어얼~ 생각보다 꽤 하는데?~ ”
“ 큭큭... 캐릭터가 딱 너다. 너야. ”
“ 그래. 그래. 완전 유지민이네. 왜 이름도 유지민으로 하지 그랬어?
그럼 완벽한 네 학교 생활일텐데... ”
“ 농담들 하지 말고... 나 정말 심각하단 말야.
조연이라는 말에, 또 대본 읽어보니까 나랑 비슷해서 하긴 했는데...
아무래도 난 연기 체질은 아닌가 보다. 영 어색하다... ”
드라마가 끝나자 모두들 가볍게 지민 형에게 말을 건넸고, 지민 형은 정말 긴장한 듯
부끄러운 듯 말했다.
“ 연기는 아직 미숙하지만, 캐릭터가 완전 너라서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 같아.
역할이 좋아. 점차 나아지겠지. 몇 회 까지 촬영한 거야? ”
“ 아. 3회. 내일 4회 촬영 있어.
아... 비평가 아리 누나가 그렇게 말하니까 왠지 안심되는데? ”
“ 잘해봐. 누가 뭐래도 딱 니 이야기잖아. 가수 지망생인 고등학생. ”
“ 응. ”
“ 지민이 멋있어. 헤에- ”
“ 정말. 정말~ 지민 형 멋있어요~~~ ”
“ 고마워. ”
우리의 칭찬에 지민 형은 그때서야 안심이 되는지 편한 미소를 지었다.
“ 맛있다. 헤헤- ”
“ 그래. 천천히 먹어. ”
“ 웅. 웅-. ”
지민 형의 드라마가 끝나고 그 다음 프로에 또 지민 형의 촬영 장면과 인터뷰가 나온다는
옆의 여학생 말을 듣고는, 토크쇼를 보기 전에 다같이 늦은 야참을 먹었다. 메뉴도 많이 있
었다. 나와 민우는 그 중에서 비빔밥을 먹었는데 맛있었다. 내가 한 숟가락 먹고는 맛있다
며 민우에게 말하자, 민우는 손을 들어 내 입가에 묻은 밥풀을 떼 주고는 얼음을 띄운 냉
국을 한 숟갈 떠 먹여주며 말했다.
“ 자. 반찬도 먹어가면서... ”
“ 야! 그건 내 반찬이야. ”
한참 밥을 먹고 있는데 민우가 정혁이 백반의 반찬을 집어 내 숟가락에 올려주자, 정혁이
가 발끈-했다. 정혁이는 보기에는 안 그래 보이는데, 다른 사람이 먹을 걸 빼앗아 가면
다른 사람 같이 군다.
“ 넌 살 좀 빼. ”
“ 내가 뺄 살이 어디 있다고??? ”
“ 그건 뱃살 아니냐? 합격했으면, 운동도 좀 하지 그래? ”
민우가 정혁이에게 살을 빼라고 말하자, 정혁이는 뺄 살이 없다며 민우에게 덤벼들었고,
민우는 정혁이의 배를 꼬집으며 말했다.
“ 이건!!!... 씨이- 나 안 먹어!!! ”
결국 정혁이는 숟가락을 놓고 나가 버렸다.
“ 민우야... ”
그런 정혁이의 모습에 놀라 민우를 돌아봤다.
“ 괜찮아. 정혁이 쟤 보기에는 안 그래도, 밤 늦게 많이 먹으면 꼭 탈나.
그래서 민우가 일부러 그런 거야. 그러니까 걱정 마. ”
나의 걱정스런 모습에 정혁이 옆에 앉아있던 란이가 미역국을 떠먹으며 말했다.
“ 그런 거야? ”
헤헤- 그럼... 민우가 얼마나 착한데... 헤헤-.
란이의 말에 난 잠시 민우를 오해한 게 너무 미안해 졌다.
“ 흐음... 형. 솔직히 말해봐. 정말 그래서 그런 거야?
아님 그냥 정혁이 형 반찬이 맛있어 보여서 그런 거야? ”
“ 혜성이가 계란말이 좋아해. ”
하지만 란이의 말에도 란이의 옆에서 우리와 같은 비빔밥을 열심히 먹고 있던 재원이가 밥
을 다 먹었는지 숟가락을 내려놓고는 물을 마시고는 묻자, 민우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정
혁이 반찬 그릇에 남아있던 계란말이를 모두 우리 비빔밥 그릇에 옮기며 말했다.
“ 큭큭- 그럴 줄 알았어. ”
“ 뭐야? 그런 거야? 암튼 이민우 많~이 달라졌다. ”
“ 야. 야. 진짜 안 하던 놈이 더하다더니... ”
민우의 말에 재원이는 웃어댔고, 선배들은 민우를 놀리기 시작했다.
“ 왜? 여기 더한 녀석도 있는데...
지는 콩나물 먹지도 못하면서 승호가 좋아하니까,
콩나물 산같이 넣어서 비빈 거 봐라. 그거 골라 먹으려면 안 불편하냐? ”
“ 별로... ”
지민 형의 말에 우혁 형은 표정도 바꾸지 않고 휴지를 들어 승호 형의 입가를 닦아주었다.
“ 헤헤- 맛있어. 우혀가- ”
“ 많이 먹어. ”
“ 어떻게 우혁이 너는 똑같은 재료로 밥을 비벼도 더 맛있냐?
정말 신이 내린 손이다... 캬아- ”
우혁 형이 승호 형에게 많이 먹으라는 말을 하기가 무섭게 지민 형은 우혁 형과 승호 형의
양푼에 담긴 비빔밥을 크-게 한 숟가락 퍼먹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런 지민 형의 모습을
디카에 담은 재원이는 신나게 웃기 시작했다.
“ 지민 형- 나 이거 인터넷에 올려도 되지? 캬아~ ”
“ 야!!! 안돼!!!!! ”
그렇게 우리의 주말 밤을 깊어만 갔다.
[세쌍/둥이] Triplets. 세 쌍둥이 - # 192
순수 배양된 화초.
필요한 것 이외에는 주어지지 않아, 어쩜 현실에는 적응하지 못할지도 모르는 꽃.
정상적으로 자란 열여덟 살의 남자아이라면 당연히 알아야할 것을 모르는 꽃.
순수 배양된 화초.
# 192
“ 헤헤- 떨려. 왠지 정말 많이 떨려... ”
“ 뭘 떨어? 면접이랑 구술고사면 모를까, 1차 합격은 거의 확실한데. ”
겨우 지원서를 접수하면서 바들바들 떠는 아가의 모습에 동그란 콧망울을 톡-치며 말했다.
그러자 코끝을 살짝 찡그리며 부우-하는 소리를 내고는 하는 말.
“ 부우- 그래도 난 이런 거 처음 해보니까..... ”
왠지 점점 고집불통에 떼쟁이가 되어가는 녀석인지라 예전에는 하지 않던 짓을 하곤 한다.
내게 심술을 부린다던지, 전같지 않게 떼를 쓴다든지, 선배들이 나를 놀릴 때면 깔깔거리며
같이 놀린다던지, 또 엄마와 짝짜꿍이 되서는 나만 쏙-빼놓고 둘이 무언가를 하곤 하던지.
하지만 그런 변한 모습들이 모두... 사랑스럽기만 했다.
“ 큭... 누구는 입시 두 번째 해보나??? ”
“ 히잉~ ”
무슨 의도로 말하는 건지 뻔히 알면서 장난을 치니 금방 ‘히잉~’하고는 애교를 부려온다.
요즘 들어 애교가 부쩍-늘어버린 모습에 기분이 좋으면서도, 어쩌면 지난번 아버지 일 때
문인 것 같아 한편으로는 마음이 불편했다.
여전히 일주일에 한번씩 외가에 가서 외가식구들, 부모님과 식사를 하고 오는 혜성이지만,
그 이외의 다른 시간은 거의 나와 함께 지낸다. 이제 혜성이의 입시가 끝날 때까지 완전히
외가로 들어가신 어머니와 병원 근처의 집에서 지내시는 아버지. 그리고 그 넓은 집에서
혼자 지내는 혜성이.
그런 혜성이가 혼자 있는 시간을 없애기 위해... 그리고 이제는 한시라도 떨어져 있으면 왠
지 금방이라도 혜성이가 사라져 버릴 것만 같은 기분에 난 한시도 혜성이와 잠시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하루 종일 공부를 하고, 밥을 먹고, 잠을 드는 순간까지 우
리는 늘 함께 했다. 때로는 내가 혜성이네 집에 가서 자기도 했지만, 많은 날은 혜성이가
우리 집에 와서 자곤 했다. 그 덕분에 엄마는 더 많은 시간을 즐겁게 보내시곤 했다.
지원서를 접수한 이후로 혜성이와 내가 하는 일은 학교에서는 PC실에서, 집에서는 혜성이
의 컴퓨터로 나란히 앉아 면접과 구술고사 자료를 조사하고, 신문 사설을 수집하고 읽는
일이었다. 일주일에 두 번씩 면접과 구술고사 대비 수업이 있기는 했지만, 각자 다른 학교
를 준비하는 것이었기에 스스로 준비할 것들이 더 많았다. 이런 핑계덕분에 우리가 항상
붙어 다니는 건 오히려 당연해 보이기까지 했다. 여름방학이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가을. 우리는 이렇게 또다시 가을을 보내고 있었다.
[세쌍/둥이] Triplets. 세 쌍둥이 - # 193
누군가가 그랬다.
인생은 예측할 수 없어 살만한 것이라고...
# 193
“ 와아아아아~~~~~ ”
합격자를 확인하자마자 민우에게 안겨 펄쩍펄쩍- 뛰자, 민우 역시 나를 숨 막히게 꼭-
안아주었다.
“ 이제 또 같이 다닌다~~~ 와아아아~~~~ ”
“ 그래. 그래... ”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던 민우인 듯 했지만, 난 안다. 민우가
얼마나 노력했고, 또 그래서 얼마나 많은 기대를 했는지...
그래서 우리의 합격이 더 값지다는 것을 난 안다.
중압감에 정말 힘들던 시간.
지원서를 접수한 9월 가을부터, 1단계 합격자 발표가 났던 9월말일. 겨울의 문턱에 들어서
서 있었던 면접과 구술고사. 정말 내가 고3이라는 것을 실감하던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런 결과...
행복해-.
.
.
.
“ 헤헤- 너무 좋다-. ”
“ 그렇게 좋아? 직접 등록하고 싶을 만큼? ”
“ 응. 응-. 등록은 꼭 내 손으로 해보고 싶었어. 왠지 어른이 된 거 같잖아~ ”
“ 쿡-. 그래. ”
대신 등록해주시겠다는 김비서님의 말씀에도 난 직접 민우와 함께 등록을 하러갔다. 학교
생활도 제대로 못하던 내가 그렇게나 바라던 학교, 바라던 학과에 합격했다는 사실이 믿기
지 않아서 믿기 위해 내가 직접 하고 싶었다.
찬 바람이 스미는 코트 깃을 단단히 여며준 민우가 내 오른손의 장갑을 쏙- 벗기더니 민우
의 코트 주머니 속으로 집어넣었다. 아- 따뜻해-.
“ 따뜻해-. ”
“ 손난로야. 자. ”
그러고는 내 반대쪽 주머니에 넣어주는 파란색 주머니.
“ 뭐야? 그건 왼손용.
마음 같아서는 그냥 코트 주머니에 손난로랑 같이 넣고 다니고 싶어.
이렇게 추운데... ”
“ 헤헤- 민우야아~~~ ”
날 예쁘다고 말해주는 민우가 좋아서 민우가 사준 하얀 털모자를 쓴 머리를 민우의 코트에
부비자 민우가 팔을 내 어깨에 둘러 날 안아주었다. 민우에게 반쯤 안겨 걷는 길은 포근하
고 행복했다.
.
.
.
“ 등록은 잘했어? ”
“ 네. ”
집으로 들어오자 여전히 고운 차림을 하고 날 맞이하신 엄마.
합격자 발표를 하는 날 다시 집으로 돌아오셨다. 그 누구도 내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내 입
시 때문에 줄곧 외가에 가계셨다는 걸 난 알고 있었다.
내 손을 잡아끌어 주방으로 데리고 들어가서는 따뜻한 핫초코를 건네주신 엄마가 내 맞은
편에 앉으셔서는 내가 핫초코를 마시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시다가는 망설이듯 내 이름을
부르셨다.
“ .......... 혜성아. ”
“ 네? ”
“ ......... 이제..... 유성이 방. 정리하자꾸나. ”
“ 네???!!!!! ”
느닷없는 엄마의 말씀에 난 잔을 소리 나게 식탁에 내려놓고는 멍-하니 엄마를 바라봤다.
“ ......... 그래야할 것 같아.
떠나야 하는 애를... 내가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던 것 같아.
이제는 편히 보내줘야지... ”
“ ... 엄마..... ”
“ 이제 그만 하려고. 유성이를 위해서도, 너를 위해서도, 또... 나를 위해서도... ”
엄마의 눈에는 이미 눈물이 맺혀 있었고, 그 모습을 본 나의 눈 앞도 흐려지기 시작했다.
“ ......... 제가 천천히 치울게요.
아직 보고 싶은 것도 많고, 또... 여러 가지로 할 게 많을 거 같으니까...
제가 천천히 치울게요... ”
“ 그래. 그러렴... ”
“ 그리고 엄마... 그렇게 억지로 형을 지우려고 하지 않으셔도 돼요.
한때는 형과 날 착각한 엄마가 많이 밉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지만...
지금은 아니예요.
차라리 그렇게 해서라도 엄마가 덜 아플 수 있다면... 난 괜찮아요... ”
“ 혜성아..... ”
“ 억지로 형을 지우려고 하지 마세요.
자식은 부모를 무덤에 묻고, 부모는 자식을 가슴에 묻는 다잖아요.
엄마의 여린 가슴에 형을 묻는 건 너무 힘드니까... 나도 그거 아니까...
천천히... 천천히 하세요... 네? 엄마. ”
“ 그래... 그래...
그래. 우리 아가..... 그래... ”
여전히 젖은 눈으로 앉아 계신 엄마의 손을 꼭 잡고는 그렇게 말씀드리고는 모자를 벗어들
고는 2층 형의 방으로 올라갔다. 늘 깨끗하게 청소가 되어있는 방이었지만, 사람의 온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건 며칠 전 이집의 대부분이 그렇기도 했다.
형의 침대 머리맡에 걸린 우리 삼형제의 사진을 보자, 처음 그 사진을 볼 때와는 또 다른
기분이 들었다. 가슴 찡-하지만, 그때와는 다른 무언가가... 느껴졌다.
“ 형. 현성아. 나 보고 있어? 어때? 많이 자란 거 같아?
나... 늘 어린애 같았잖아...
형인 주제에 늘 현성이보다 어린애처럼 굴고... 그랬었잖아...
그런 내가 대학에 합격했어. 그리고 내 손으로 등록도 했어.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도 생겼어.
형이 없어도... 현성이가 없어도 이 세상을 열심히 살아갈 이유가 생겼어...
어때?... 나... 많이..... 자랐지?..... 흑...... 나..... 흐흑.... 정말......
....... 흑...... 많이 자랐지?...... 흐흐흑...... 그렇지?........... ”
날 내려다보는 형과 현성이는 웃고 있었다.
내 눈에는 형과 현성이의 밝은 미소가 보였다.
[세쌍/둥이] Triplets. 세 쌍둥이 - # 194
순수 배양된 화초.
필요한 것 이외에는 주어지지 않아, 어쩜 현실에는 적응하지 못할지도 모르는 꽃.
정상적으로 자란 열여덟 살의 남자아이라면 당연히 알아야할 것을 모르는 꽃.
순수 배양된 화초.
# 194
“ 이거야? ”
“ 응. 헤헤- 멋있지? 형이 직접 만든 건가 봐... 헤헤- ”
“ 그래. 멋있네... ”
혜성이가 내민 카드를 자세히 들여다보자, 두해 전 나와 함께 커다란 문방구에 가서 고른
재료로 만든 것을 알 수 있었다. 두꺼운 색도화지에 물감으로 그려진 겨울 바다와 겨울 산.
날카로운 평소와는 달리 크리스마스만 되면 시적이고 감상적으로 변하는 녀석에게 어울리
는 카드였다.
어제 저녁에 느닷없이 전화해서는 근사한 걸 발견했다며 신나하던 혜성이가 발견한 것은
두해 전, 유성이가 떠나기 전에 그 해 크리스마스 선물로 준비한 것들...
한 상자에 모아 놓은 것을 혜성이가 발견하고는 내게 보여주었다.
“ 애들한테는 아직 비밀로 했어. 민우한테만 먼저 자랑하려고... 헤헤-. ”
“ 쿡- 그래? ”
“ 응. 자. 이거는 민우 꺼야. 예쁘지? ”
“ 응. 예쁘네... ”
아가가 전해주는 카드 하나를 받아들고는 유성이가 떠올라 감상에 젖어있자, 아가는 연신
이것저것을 꺼내 놓으며 계속 종알거렸다.
“ 이건 란이꺼. 이건 정혁이꺼. 이건 동완이꺼. 이건 재원이꺼. 이건 선호꺼. 이건..... ”
그렇게 한참을 꺼내놓은 선물과 카드가 박스로 한 가득이었다.
“ 이건 지숙이꺼야. 헤헤- ”
“ 지숙이? ”
왠지 낯설지 않지만, 별로 기분이 좋지도 않은 이름에 미간을 살짝 구기고는 되물었다.
“ 응. 현성이 친구. 헤헤- ”
“ 아... ”
그때서야 예전 그 여자애가 생각났다. 현성이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징징대던...
“ 형도 지숙이를 알고 있었나봐. 역시 형이야... 헤헤-
이것도 지숙이한테 꼭 전해줄 거야. 헤헤- ”
“ 그래. ”
사실 별로 마음에는 들지 않았지만, 이렇게 행복해하는 아이의 기분을 망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런 상관없는 사람들까지 챙기던 유성이의
모습에 새삼 그 녀석이... 보고 싶어졌다.....
“ 이거 이번 크리스마스 파티 때 모두에게 이번 크리스마스 선물로 줄 거야.
다들 좋아하겠지??? ”
“ 그래. 좋아하겠네. ”
혜성이 외할아버지이신 회장님께서 준비해주신 장소에서 유성이의 추모식을 겸해서 모처럼
크게 열기로 한 크리스마스 파티를 상상하는 건지 기분이 좋아져서는 연신 종알대는 그 모
습을 그냥 웃으며 지켜보기만 했다. 마냥 웃고만 있었지만, 가슴은 울고 있는 걸 가장 잘
알고 있었기에...
“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되었으면 좋겠어. 헤헤- ”
눈 내리는 겨울 산이 그려진 카드를 든 혜성이가 기분 좋은 듯 말했다.
“ 그래. 화이트 크리스마스. ”
“ 하지만...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되지 않아도 민우와 함께라면 좋아... 헤헤-
그리고 내가 이번에 민우에게 줄 크리스마스카드는 직접 만들었어. 헤헤- ”
“ 그래?~ 기대되는데? ”
“ 헤헤- 민우가 좋아했으면 좋겠어. 흐응~ ”
콧소리를 내며 내게 매달려오는 그 귀여운 유혹에 눈보다 더 사랑스러운 녀석을 그냥 둘
수 없어 살며시 끌어당겨 입을 맞추었다.
너무 너무 사랑해.
죽을 만큼 사랑해.
널 생각하는 것만으로 심장이 폭주해 그대로 터져버릴 것 같아.
이렇게나 사랑스러운 네가 날 사랑한다니...
너무 행복해.
하지만... 너무 너무 행복해서 느껴지는 가슴 한 켠의 불안함은... 단지 나의 기우겠지?.....
[세쌍/둥이] Triplets. 세 쌍둥이 - # 195
누군가가 그랬다.
인생은 예측할 수 없어 살만한 것이라고...
# 195
“ Marry Christmas!!!!!~~~~~ ”
- ........ 쿡.... Surprise Event 야?
“ 응. 응... 행복한 크리스마스에 내 목소리를 처음 들려주고 싶었어~~~
민우는 아직 잠이 덜 깬 듯 허스키한 목소리였지만, 이른 아침의 모닝콜이 그리 싫지만은
않은 듯했다. 그런 민우에게 최대한 밝고 발랄한 목소리로 아침 인사를 해주었다.
- 아... 좋긴 좋다. 네 목소리로 모닝콜 받으니까...
“ 응. 늘 민우가 내게 해주니까... 나도... 한번쯤은 민우에게 해주고 싶었어. ”
- 쿡... 난 아침마다 우리 아가 잠에 취한 귀여운 잠투정 듣는 거 재미있는데,
네게서 그런 재미를 빼앗을 생각이야?
“ 헤헤-. 하지만 민우 잠에 취한 목소리도 귀여운 걸??? ”
- 뭐야???
“ 오늘 선물 기대해~ ”
- 쿡... 얼마나 근사한 선물이길래 그렇게 자신해?
“ 민우가 좋아할 거 확실해!!! ”
- 물어도... 대답 안 해 줄 거지?
“ ....... 우웅.......
하지만 난 늘 민우가 물어보면 결국 대답할 수밖에 없어지는 겉 같아.... ”
- 쿡... 그래. 그럼... 뭐야?
“ .......... 우웅......... ”
- 대답하기 곤란한 거야?
“ ..... 부끄러워.......... ”
- 쿡... 점점 더 궁금해진다...
“ .................게..... ”
- 응? 뭐라고? 잘 안 들려. 다시 말해봐.
“ ....... 날..... 줄게... ”
- ................................
“ ......... 미..... 민우야?...... ”
나의 부끄러운 고백에 아무 말도 없는 민우가 이상해서 전화가 끊어졌는지 확인했지만,
전화기에는 통화시간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 ..... 너...... 그게 무슨 뜻인지 알고 하는 말이야?..........
“ ..... 그게...... 저.... 저기......... ”
- ..... 너...... 그게 무슨 뜻인지 알고 하는 말이야?
“ ..... 그게...... 저.... 저기......... ”
그리고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낮게 깔린 목소리.
소리를 지르는 거 보다 더 무서운 그 목소리에 말을 더듬어 버렸다. 한번도 들어본 적 없
는 무섭도록 화가 난 듯한 민우의 목소리가... 정말 너무 낯설어서... 두려워졌다.
- ........... 진심이야?...........
“ 민우가 싫으면.... 흑...... 미안해........ 흐흑......... ”
미안... 미안해...
난... 난 민우도 나랑 같은 마음인 줄 알고...
내가 좋으면... 민우도 좋을 거라고 생각해서...
난 민우 사랑하니까... 모든 함께 하고 싶어서.....
그래서.....
영화 속 여주인공이 자기 애인에게 이렇게 말하니까, 그 애인이 너무 행복해 하길래...
그러기에 나도.... 나도 그냥.......
흑..... 미안.... 미안해.... 미안해. 민우야.....
- 맙소사.... 아가.... 울지마... 울지마...
그리고 설마... 내가... 싫을 리가 있겠어???
또 누가 너한테 이상한 말해서... 그래서 그러는 거 아닌가 하고.....
또 정혁이 녀석이 이상한 말 한 거 아냐???
“ ..... 흑.... 아냐..... 그런 거 아냐...... 난 민우 너무 좋고, 또.... 또....... ”
- 그래. 그래. 울지 마. 울지 마.....
나 없는 곳에서 울면 나 마음 아프다고 했지? 응???
“ .... 훌쩍.... 응. 안 울게. 안 울어..... ”
- 사랑해. 사랑해. 세상 누구보다 널 사랑해. 사랑해. 아가야...
“ ....... 흑...... 나도.... 나도 민우 너무 너무 사랑해...... ”
전화기를 타고 들려오는 민우의 목소리가 그 어느 순간보다 절실하게 느껴졌다.
정말 사랑해.
대체 이 넘치는 감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엄청나게 사랑해.
정말.... 너무 너무 사랑해......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심장이 터질 것 같은데...
네게 사랑을 받는다면 아마 심장이 터져 죽는 게 아닐까?......
- ............ 네 진심이면..... 나도 좋아.....
“ ... 미... 민우야..... ”
- 나도 너... 사랑하니까..... 나도 남자인데...
내가 사랑하는 녀석 안고 싶지 않다는 거... 거짓말이겠지.....
그래. 실은 나도 너 안고 싶어 죽을 거 같아. 그거 참느라고 정말 죽을 뻔 했어.
그러니까... 나도... 나도 하고 싶어.....
전화기 너머로 더듬더듬- 들려오는 민우의 쑥스러운 듯한 말투에 웃음이 나 버렸다.
“ 민우야~~~ ”
- ....... 그... 그만 하자. 자꾸 이런 말 하니까, 내가 꼭.....
“ 잘할게. 내가 열심히, 열심히 해서 민우 좋게 해줄게.
내가 잘할게. 헤헤- ”
- ... 저기... 혜성아..... 그건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게.....
“ 헤헤- 기대된다. 민우야... 헤헤- ”
- ..... 하... 하.... 나도... 나도 기대되... 하하-.......
나의 말에 말을 더듬는 민우가 너무- 너무- 귀여웠다. 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