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도량, 산사의 숨결, 마음에 남은 여운...
불기 2569년 10월 18일(토), 가을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이른 아침, 금강사 수월삼거리에 모이신 많은 신도님들이 마음을 정갈히 가다듬고, 세대의 버스에 몸을 싣고 삼사순례길에 오릅니다. 오늘 하루만큼은 일상의 분주함을 잠시 내려놓고, 천년을 이어온 산사의 숨결과, 고요가 깃든 세 사찰의 숨결 속으로 스며드는 여정이 될 것입니다. 고즈넉한 산사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전남 화순의 쌍봉사와, 화순의 신비로운 전설을 품은 운주사, 그리고 조계종의 큰 가람 순천의 송광사에 이르기까지, 짧지만 깊은 울림을 마주할 순례를 위해, 버스는 황금빛 들녘을 가로질러, 그 너머 피어오르는 가을하늘을 시원하게 가르며 차분히 출발합니다.
첫걸음으로 순례단은 전남 화순의 쌍봉사를 찾았습니다. 천년 고찰답게 입구에 들어서부터 고즈넉한 기운이 우리 순례단을 감싸 안습니다. 천왕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서니 바로 보이는 쌍봉사의 대웅전은 흡사 탑처럼 보였습니다.대웅전에 들어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며, 오랜 세월 이곳을 지켜온 부처님의 자애로운 미소 앞에 마음이 절로 고요해집니다. 경내를 거닐다가 야트막한 뒷산에 올라 눈에 들어온 건 국보로 지정된 철감선사탑과 석등, 그리고 오랜 세월 풍상을 견뎌온 조각들의 고요한 자태였습니다. 침묵을 지키며 서 있는 석탑들의 모습들은 오히려 더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듯합니다. 세속의 시끄러움은 멎고 한줄기 향내와 함께 대웅전 앞에 잠시 합장을 하니, 산새 소리와 바람결이 합장한 기도에 스며들어, 그 옛날 찬란했던 불교문화가 지금 이곳에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느낍니다. 문득 사찰의 어느 한편에서 우리 순례단을 지긋한 미소로 바라보고 계실 것만 같은 부처님을 상상하면서, 우리는 다음 여정지인 화순의 운주사로 출발하기 위해 버스로 발걸음을 총총 옮깁니다.
이어 찾은 운주사, 구름이 머무는 절 이라는 이름에 걸맞듯, 이곳은 세속을 넘어선 신비로움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대웅전에 들어 부처님을 친견하고 삼배를 올립니다. 이어서 절 마당에 들어서자 곳곳에 흩어져 있는 석불과 석탑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옵니다. 하룻밤에 천 개의 불상과 천 개의 석탑을 세웠다는 도선국사의 전설이 깃든 곳, 아직 다 다듬어지지 못한 투박한 불상들은 오히려 사람의 손길을 벗어나 자연과 하나 된 듯한 위엄을 풍깁니다. 특히 야트막한 언덕 위에 늘어서 있는 와불을 바라보며 우리 일행들은 한참 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했습니다. 누운 부처님의 너른 품은 세상 모든 중생들을 품는 자비의 상징처럼 각인되고, 보는 이의 마음까지 편안히 눕히는 듯했습니다. 천불천탑의 운주사는 단순한 절터가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천년고찰의 상징임을 새삼 깨닫습니다. 산사 곳곳에 스며든 고요한 시간의 결이 왜 이토록 따뜻하게 다가오는 걸까요? 바람에 실려오는 솔향기와 함께 우리는 다시 다음 순례지인 송광사를 향해 발걸음을 서두릅니다.
순례단은 마지막 여정지로 전라남도 순천의 깊은 산중에 자리한 송광사를 찾았습니다. 천년의 역사를 이어온 조계종의 큰 도량이자, 승보사찰의 위엄과 겸손을 그대로 간직한 송광사, 버스가 산문을 들어서자 차창 밖으로 삼나무 숲길이 길게 펼쳐져있고, 그 길을 오르며 저절로 마음이 경건해짐을 느낍니다. 넓고 단정한 경내에 들어서니 웅장하면서도 따뜻한 기운이 사위를 감돕니다. 대웅보전에 들어 부처님께 삼배의 예를 갖추고 천년을 이어온 수행의 숨결을 고스란히 느끼면서, 그 고요한 울림을 마음깊이 새겨봅니다. 먼저 오늘 하루 순례길의 마무리가 평온할 수 있기를 기도로 채우며, 이곳에서 올린 삼배가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정화하는 기도가 되기를 바라봅니다.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깊은 내공이 배어있는 송광사, 한국불교의 승맥을 이어온 숭엄한 기운은 이처럼 한 시대를 넘어서 고요한 가르침, 깨달음의 시간 속에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었습니다. 순례단은 송광사에서 마지막 여정을 차분히 정리하고, 아쉬움을 뒤로하고 이제 거제로 가는 버스에 오르기 위해 송광사를 나섭니다.
길 위의 여정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남겨진 기도의 흔적.
하루가 남긴 울림! 쌍봉사에서 느낀 고즈넉한 산사의 숨결, 운주사에서 만난 신비와 자비의 기운, 그리고 송광사에서 마주한 깊은 수행의 전통과 승보사찰의 위엄, 세 사찰은 저 마다의 빛깔과 숨결로 순례단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하루를 채워 주었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돌아오는 길, 차창밖으로 이제 막 색동옷을 갈아입을 채비를 서두르고 있는 먼 산의 능선들을 바라봅니다. 가을바람이 천천히 산비탈을 어루만지고, 먼 산의 숲들이 고요히 우리를 배웅할 때, 주지 성원스님의 말씀처럼, 사찰순례란 단순히 절을 찾아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생각과 소리를 마주하고, 스스로를 정화하는 길임을 깨닫습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해가지만, 산사의 시간은 여전히 천천히 흐릅니다. 그 느림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멈추어 서고, 숨을 고르며, 일상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습니다. 짧은 여정이었지만 우리의 마음에 새겨진 울림은 마음속에 오래도록 머물 것 같습니다. 삼사순례에 함께 해주신 주신 주지 성원스님과 등혜스님, 그리고 금강사 모든 신도님들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나무석가모니불~
바람결에 흔들리는 꽃으로, 무심히 내리는 봄비로, 소리없이 스미는 가을바람이 불어올 때, 새벽의 침묵 속, 홀연히 깨어있는 순간, 그렇게 고요히 부처님은 오시리라.
첫댓글 준비 하신다고 수고 많으셨습니다
행복한 시간 이었습니다
처음으로 참가한 사찰순례 너무 멋있었습니다.
내년에도 꼭 참가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