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렝게티의 반란
최 범 석
아카시아나무 그늘에서 한때의 낮잠이었다
누런 송곳니가 드러나도록 하품하고
하늘에 흐르는 허무를 향해 포효를 날린다
기린은 수신한 굵은 음역대의 파편을 분석하고
움직임 멈춘 임팔라에게, 얼룩말에게 중계한다
수풀 속에서 그림자가 설핏 비쳤다
세렝게티의 초원을 지배한 세월이 어언 칠년
나를 지킨 것은 피에 절은 철퇴였다
하지만 이 또한 영원은 없으니
잘 다듬은 칼날이 하나둘 흔들리기 시작하고
휘두르는 동작은 허방 짚기 일쑤다
오늘따라 지평선에 내려앉는 노을이 무겁다
이제는 때가 되었을까
수풀 속에 엎드려 분노의 갈기를 기른
젊은 그들이 몸을 드러냈다
같이 물어뜯으며 피투성이 환상곡을 연주해볼까
도망쳐서 비루하게 목숨이나 이어갈까
하지만 나는 사자왕 밥 주니어*다
잠시나마 팽팽하게 겨누던 살기를 거둬들이고
달려드는 초원의 철퇴에 몸을 맡긴다
* 밥 주니어 : 세렝게티를 지배하던 사자 왕. 젊은 사자들이 공격해오자 저항하지 않고 죽임을 당했다.
* 시와세계 2024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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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작 시
세렝게티의 반란
최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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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23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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