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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 세상의 소금과 빛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는 주님께서 명하신 교회의 사명을 다함으로써 하
나님께 영광을 돌림에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교회는 도리어 하나님의 영광
을 가리고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지금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위기는 벌써 우리 곁
에 다가와 있었지만 우리만 그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제야 우리가 백척간두에
서 있으며, 이 위기는 남의 탓이 아니라 우리 탓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너무 늦은 감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한국교회는 소망이 없다고 말합니다.
썩어도 너무 썩어서 치유불능상태에 빠져버렸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
나 우리는 아직도 우리 앞에 소망이 있음을 믿습니다. 우리를 고쳐서 온전케 하시
는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하여 제96회 총회의 주제를 “그리스도인, 세상의 소금과 빛:착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마 5:13-16, 벧전 2:11-12)이라고 정했습니다. 세상
속에서 세상을 변화시켜 나가는 복음의 능력을 믿으며,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께서
제96회 총회로 모이는 우리를 새롭게 하실 줄 믿으면서 이런 주제를 정한 것입니
다. 이제야말로 우리가 세상의 소금이 되고, 세상의 빛이 되어 세상을 변화시켜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잘못을 깨닫고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기를 소원하며, 그리스도인다운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하여 우리의 자세를
4 그리스도인, 세상의 소금과 빛
바꾸기만 하면 우리를 고쳐서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2012년은 총회 창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입니다. 100년이 지나오도록 우리
총회를 인도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할 뿐 아니라, 우리 총회를 향하신 하나
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어 나가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하는 역사적인 사명이 우리 모
두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우리 총회는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교단으로서 어떤 모습
으로 우리나라와 민족을 섬길 것인지, 그리고 세계교회 속에서 우리의 사명을 다할
것인지를 깊이 고민하면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나아가 어떻게 해야 주님의 지상
명령인 땅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할 것인지를 생각하면서 함께 기도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습니다.
우리 총회는 한 회기 동안 2013년에 개최될 제10차 WCC 부산총회를 한국교회
와 함께 준비해야 합니다. 이 일을 계기로 한국교회의 하나 된 모습을 세계교회에
보여 주어야 할 것입니다. 나아가 교단 간에 실질적인 협력과 그리스도 안에서 일
치를 만들어 냄으로써 민족과 역사 앞에 우리의 하나 된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분단된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고, 나아가서 민족의 통일을
이루어 내는 실질적인 노력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 회기 동안 제96회 총회의 주제를 확정하고, 이 주제를 교단 산하 8,000교회
가 삶의 현장에서 실천할 수 있는 「제96회 총회 주제 해설집」을 만들기 위하여 수
고하신 주제연구위원들과 이 책을 발행하기 위하여 수고하신 한국장로교출판사 사
장 채형욱 목사님을 비롯한 직원 여러분에게 총회와 전국 교회를 대신하여 감사드
립니다.
2011년 9월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장 박위근 목사
발행사 5
발 행 사
교회는 언제나 세상 가운데 거하면서 그 시대를 향한 교회의 위치를 고민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펼쳐 왔다. 한국교회는 세계적으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
을 정도의 급성장을 해왔고, 그로 인해 이제는 선교 초기에 비해 양적으로나 질적
으로 또는 영향력에 있어서 대단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
는 오히려 그 영향력이 점차 쇠하는 듯한 느낌을 교회 안팎에서 감지하게 된다.
이와 같은 때에 제96회 총회가 금년의 주제를 “그리스도인,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정하고 세상에서의 교회의 위치를 새롭게 결단하게 되었다. 이는 일부 그리스도인
들이 복음의 본질을 상실하여 반 기독교정서가 사회에 보편화되려는 시기에 가장
적절한 논의라고 할 수 있다.
제96회 총회의 부제는 “착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이라고 정했다. 이는 그리
스도인들이 세상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회복함을 통해 세상에서 복음의 권위와
본질을 회복하자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주제 성구로 정해진 마태복음 5:13~16
과 베드로전서 2:11~12의 말씀은 두 가지 공통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말하는 것으로서 그리스도인은 ‘거류민과 나그
네’같은 존재로 이 땅에 목적을 두고 사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기독교의 힘은
이 땅에서의 성공이나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땅에서 고난과 역경을 만난다
6 그리스도인, 세상의 소금과 빛
고 할지라도 그 시민권이 하늘에 있기에(빌 3:20) 탐욕과 이기심을 이길 수 있었
고, 자기 비움을 통해 진정한 복음의 가치를 높일 수 있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할(착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
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소금이나 빛은 자기를 녹이고 태움으로 세상을 밝히고 맛을
내는 것을 말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 많은 기적과 능력을 행하셨던
분이시다. 그러나 그분은 자기를 위해서는 단 한 번도 기적을 사용하신 적이 없으
셨다. 그리스도께서 언제나 자기를 비우고 섬김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셨듯이 오
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자기를 녹이고 섬기는 삶을 통해 복음을 비방하는 사람들에
게 하나님의 선한 일을 보여 주라고 강조하고 있다.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라고 했다(마 5:13).
그리스도인들이 자기의 사명을 바르게 감당치 못할 때 세상 사람들에게 외면을 당
하리라는 예고는 오늘 우리가 귀담고 가슴에 새겨야 할 주님의 말씀이다.
그런 의미에서 금년 제96회 총회의 주제는 그리스도인의 본질을 회복하고 섬김
과 선한 행실로 점차 추락하는 교회의 권위와 복음의 능력을 회복하자는 시대적
요구가 반영된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총회주제연구위원회는 “그리스도인,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는 주제를 좀 더 심층적으로 이해하고 구체적인 방향성을 제시하기
위해 몇 분야로 나누어 주제를 해설했다. 먼저는 신학적 이해로 세상의 소금과 빛
이 가지는 정의를 신학적인 바탕에서 우리가 어떻게 소금과 빛이 될 수 있는가를
설명했고, 착한 행실이 가지는 교회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 그리고 교회의 사회참
여와 교회 성장과의 관계를 역사적인 관점과 윤리적 차원의 해석으로 보충 설명했
다. 앞으로의 신학은 통전적 신학으로 가야 한다. 이는 신앙과 삶을 나누고 이원화
하는 잘못된 이원론을 극복하고 신앙과 삶을 하나로 묶는 신학의 추구요, 교회의
방향성을 말한다. 이것이 우리 교단이 지향하는 신학적 방향성이기에 이를 첨가하
면서 주제해설을 했다.
끝으로 “착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빛과 소금의 삶을전개해야하는가? 이를 구체화하려고 교육 신학적
차원, 선교적 입장, 사회봉사를 통한 사회적 성숙성(societal generativity)의 차원
을다루었다. 이러한여러모형을 통해기독교의사회에대한 섬김과봉사를극대화
하고 이를 통한 교육적(pedagogical)인 차원과 사회 치료적(social-therapeutic)
부분을 바르게 감당하기 위함이다.
지금 이 시대의 최대의 화두는 소통과 나눔이다. 그동안 교회와 세상이 나누어
발행사 7
지고 담이 생겨 소통되지 못했던 일을 돌이키고 나누면서 섬기지 못해서 생겼던
오해들을 이번 총회를 기회로 세상에서 새롭게 해결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본 교단 8천 교회와 300만 성도가 총회의 주제를 바르게 이해하고 실천해 간다
면 이것이 우리 개인과 교회, 그리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기회와 도전이 될
것이다.
2011년 9월
총회주제연구위원회
발행사 9
그리스도인, 세상의 소금과 빛
제96회 총회 주제해설서
C ‧ O ‧ N ‧ T ‧ E ‧ N ‧ T ‧ S
권두언 _ 3
발행사 _ 5
제1장 성경적 이해 11
1. 들어가는 말 2.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3.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4. 착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5. 나가는 말
제2장 교회사적 이해 22
1. 들어가는 말 2. 서구 기독교가 자리잡기까지 3. 한국 선교 초기의 사회봉사
4. 1930년대 이후의 사회봉사 5. 해방 후의 사회봉사운동 6. 교회는 지금도
한국사회의 빛과 소금인가?
제3장 신앙과 삶을 하나로 묶기 30
1. 들어가는 말 2. 잘못된 이원론의 극복을 통해 신앙과 삶의 괴리를 바로잡기
3. 나가는 말:영과 육의 하나 되는 통전적 신학의 추구
제4장 그리스도인, 세상의 소금과 빛:교육 40
1. 들어가는 말 2. 교육신학 3. 교육내용 4. 교육방법 5. 나가는 말
10 그리스도인, 세상의 소금과 빛
제5장 지역교회의 빛과 소금의 사명:선교와 지역사회봉사 49
1. 교회와 선교 2. 지역교회의 선교적 역할로서의 사회봉사 참여 3. 소금으로,
빛으로
제6장 그리스도인, 세상의 소금과 빛:착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58
1. 들어가는 말 2. 본론 3. 나가는 말
주제를 위한 설교 67
1. 소금으로, 빛으로 살게 하소서 2. 성직자의 길
제96회 총회 주제해설서
제1장 성경적 이해 11
제1장
성경적 이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
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
라”(마 5:13-16).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
의 정욕을 제어하라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
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
이라”(벧전 2:11-12).
1. 들어가는 말
마태복음 5:13 말씀은 산상보훈의 새로운 면을 보여 주고 있다. 지금까지 추상
적인 진리를 말씀하시던 예수님께서 구체적이고 기능적인 말씀을 하신 것이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라고 하셨다.
이종윤 목사
12 그리스도인, 세상의 소금과 빛
16절에 묘사된 선한 행실을 수행하므로 소금과 빛이 된다는 것이 아니라 이미
3~12절에 묘사된 하나님과 천국의 관계된 자이므로 원리상 천국시민의 사회적 책
임을 다해야 하는 그리스도인이 소금이요 빛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천국에 들어가
기 위한 조건으로 특징된 계명이라기보다 구원받은 백성으로 하나님 나라에 참여
한 자라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다. 그리고 베드로전서 2장에서는 너희 착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하셨다.
2.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마 5:13)
1) 소금은 방부제 역할을 한다
고대 사회에서(심지어 오늘까지도) 소금은 방부제로 사용되고 있다. 냉동시설이
없던 사회에서 그것도 중동지방의 열대성 기후 속에서 소금의 중요성은 재론의 여
지가 없다.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을 떠나려는 세상은 죄로 인해 부패해질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세상의 부패를 막으려면 그리스도인들이 소금과 같은 사명을 감당해
야 한다.
① 사람들은 세상이 본래 선하지만 그리스도인의 사회활동을 통해 더 좋아지고
완전해진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상은 본래 타락했고 영적으
로는 죽은 상태로 보셨다. 결국 영혼 떠난 육신처럼 이 세상은 죄의 세균으로 인한
악취 때문에 접근할 수 없는 부패된 시체처럼 변한다는 것이다.
② 사람들이 생각하는 또 하나의 오류는 세상이 타락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
은 가능한 한 세상과 격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수도원이나 교회
의 보호막 속에 숨으려 한다. 세상은 지옥에 떨어질 것이므로 나와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③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이 이 세상에 보내 주신 자리에서 모든 성도들은 소
금과 같이 방부제 역할을 감당해야 할 것을 가르치신다. 소금은 선반 위에나 있어
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 고기 속에 침투해 들어가야 한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
들은 세상에 침투해 들어가야 한다. 가정, 일터, 정치현장, 사회현실 속에서 그리
스도인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④ 어떤 이는 소금을 그릇에서 꺼내 주변에 뿌리고 용해시켜야겠다고 한다. 그
렇다. 그때에 효과를 나타내시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⑤ 우리 몸이 땀을 흘려 소금을 방출하지 않으면 수분으로 인해 몸은 붓게 된다.
제1장 성경적 이해 13
교회가 소금처럼 방부제 역할을 하지 않으면 교회는 스스로 절망적인 상태로 빠지
고 말 것이다.
2) 소금은 맛을 내는 조미료 역할을 한다
① 음식물에 소금이 없으면 제맛이 나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 없는 세상에는
만족스런 기쁨이 없다. 일시적인 기쁨은 있으나 영혼의 기근과 기갈을 채울 수는
없다. 아무리 훌륭하고 다듬어진 사회라 해도 그리스도인들이 없으면 그 사회나
단체는 의미와 활력과 맛이 없다.
② 맛없는 세상을 살맛이 나게 하고 눈물, 한숨, 저주와 고통이 변하여 소망, 환
희와 감사가 되게 하고 반복되는 지루함과 뜻없는 세상에 가치, 보람과 생명을 불
어 넣는 것이 그리스도인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가진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
해 세상에 맛을 내고 복음을 실천함으로 모든 피조물이 제값을 하도록 해야 한다.
③ 예술, 문화, 교육, 경제, 정치, 산업 모두에게 그리스도 예수를 넣어 주면 제
맛이 날 것이다. 그러나 그 맛 잃은 소금처럼 영향력 없는 그리스도인들은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멸시받고 버림받듯 밟힐 뿐이다.
3) 소금은 갈증을 일으키게 한다
① 사람마다 생수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갈망해야 한다. 불신자들은 그리스도를
찾거나 열망하지 않고도 스스로 족한 줄 안다. 그러나 천국시민은 그리스도를 닮
고, 가까이 가고, 함께 가기를 갈망한다.
② 유대인들은 장막절 동안에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로 하여금 매일 실로암에
가서 물을 동이로 떠다가 성전 제단에 붓는 일을 행했다. 이 같은 일은 장막절 동안
7일간 계속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일곱 번 반복했다. 이때에 예수께서 주
신 말씀이 있다:“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요 7:3738).
예수님이 인간
영혼의 갈증을 풀어 주신다는 말씀이다.
③ 당신은 자신의 갈증문제를 스스로 만족스럽게 해결할 수 없다. 그러나 목마
른 자를 주님께 데려올 수는 있다. 또한 당신은 다른 이로 하여금 물을 찾게 만드는
소금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
14 그리스도인, 세상의 소금과 빛
4) 소금은 해독제 역할을 한다
“엘리사가 물 근원으로 나아가서 소금을 그 가운데에 던지며 이르되 여호와
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이로부터 다시는 죽음이나 열매 맺지 못함이
없을지니라 하셨느니라 하니 그 물이 엘리사가 한 말과 같이 고쳐져서 오늘에
이르렀더라”(왕하 2:2122).
① 공산주의 이데올로기 독소는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들만이 제거시킬 수가
있고 인간의 더러운 사욕, 절망과 거짓의 독소는 십자가 부활을 믿는 성도만이 해
독시킬 수 있다. 청소년 범죄, 마약, 알코올, 살인, 강성범죄, 투기, 사치, 과소비,
배금사상, 권력만능주의, 향락주의 등이 날로 확산되고 있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소금의 사명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②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희생, 진리, 사랑이 무엇인지 깨달은 자
가 이 악한 세상의 독소를 제거할 수 있다. 따라서 성도는 소금처럼 이 세상의 해독
제요, 정결제(겔 16:4)이다.
5) 소금은 언약의 표시로 사용된다
①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소금 언약으로 이스라엘 나라를 영원히 다윗과
그의 자손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알 것 아니냐”(대하 13:5). 소금언약(Covenant
of Salt)은 언약을 맺을 때 식사를 함께했고 그때 음식물에 소금을 친 데서 생긴
말로서 소금은 부패하지 않고 변하지 않기에 영원불변의 언약이라는 뜻이다(민 1
8:19, 레 2:13).
② 하나님이 언약의 표시로 주신 소금을 예배 시 사용하듯 우리는 하나님께 구
원받은 자녀로서 자신을 바치겠다는 언약을 지키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6) 소금은 값비싼 것이 아니다
① 소금은 우리 일상생활에서 어디서나 찾을 수 있고 사용된다. 예수께서 ‘너희
는 세상의 다이아몬드다’라 하지 않으시고 ‘너희는 소금이다’ 하신 것을 감사하자.
어리석고 연약하고 보잘것없는 소금과 같은 우리를 하나님이 부르신 것을 감사하
자(고전 1:26-29).
② 하나님은 에덴동산에서 인간을 먼지(흙)로 지으셨다. 그러나 그에게 호흡을
제1장 성경적 이해 15
불어넣어 주심으로 생령이 되게 하셨다.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은 타지 않는 불붙은
가시나무 가운데서 계시하셨다. 블레셋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은 다윗
의 물맷돌을 사용하셨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베들레헴 말구유 위에
나셨다. 하나님은 항상 작은 백성, 작은 것을 사용하신다. 나와 당신 같은 별 볼
일 없는 것들을 통해 하나님은 일하고 싶어 하신다. 당신이 더 작아질 때 하나님
의 일은 더 효과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금테 두른 사진틀이 아니라 빈 틀만 준비
하고 있으면 하나님은 거기에 그리스도를 끼워 주시고 당신은 사람들로 예수 그
리스도를 보게 하면 된다. 소금처럼 보잘것없는 나를 주님은 보배롭고 크게 사용
해 주신다.
7) 소금은 자기희생을 한다
①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자기를 철저히 버리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였다.
녹아버리는 희생이 없이 소금은 소금이 될 수 없다.
② 인체 내의 혈액, 위액, 세포막에 이르기까지 소금이 필요할 뿐 아니라 노폐물
을 배설해 내는 생리작용을 돕는다. 그러므로 우리에겐 매일 적당량의 소금이 필요
하다. 이 같은 소금이 공급되지 못하면 노폐물이 축적되어 신진대사에 지장이 오고
몸에는 병이 생긴다.
③ 소금이 인체 기능에 절대 필요하듯 그리스도인들도 이 세상에서 반드시 필요
한 존재다.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물론 이 세상에서도 없어서는 안 될 필요
한 인물이다. 자기희생을 통해서만 이 일은 가능하다.
이와 같은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그리스도인들이 그 맛을 잃어버리면 밖에 버
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라 하셨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영향력을 방출하지
못하면 그들에게는 천국에서의 장래가 없다. ‘밖에 버려져’는 매우 의미심장한 것
이다. 그렇다고 선한 행실이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이 된다는 것이 아니다. 선행은
천국백성의 증표인 것이다.
3.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 5:14)
우리로 빛 되게 하신 목적은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라고 한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와 이 세상
에 관한 말씀이면서 동시에 그리스도인의 삶을 가르치고 특히 빛 되신 주님과 가깝
16 그리스도인, 세상의 소금과 빛
게 교제하는 삶을 요구하는 말씀이다.
1) 어두움의 세상
주님께서 주신 말씀의 첫 번째 의미는 이 세상은 영적으로 어둠 속에 있다는 것
이다. 비극적인 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빛보다 어두움을 더 좋아한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셨을 때 그는 세상의 빛이셨다. 오늘날 그리스도를 따르는
성도들은 이 세상의 빛이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기준에 맞는 완전하
고 거룩한 삶보다 불완전하고 죄악된 삶을 더 좋아하고 있기 때문에 빛으로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어두운 세상으로부터 환영받기보다 미움과 시기의 대상이 된다.
현대인들의 대부분은 빛 되신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신이 죄인이라는 생각보다
는 오히려 훌륭한 의인이라고 스스로 간주하고 있다. 인공적으로 만든 X-레이, 전
깃불, 촛불, 성냥불과 같은 불이 있는가 하면 자연세계에 있는 태양빛, 달빛, 별빛
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빛은 영원한 빛의 근원이 되시는 그리스도 예수의 빛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배터리 세 개를 넣은 전등이 두 개를 넣은 전등보다 밝은 빛을
비출 수 있으나 그리스도 예수의 의의 빛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심으로 우리의 본성이 얼마나 어둠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지가 드러나
게 된 것이다.
2) 어떻게 빛이 될 수 있을까?
그리스도가 빛이시고 세상이 어둠이라면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빛이 될 수 있
을까?
① 그리스도인은 등불(lamp)이나 촛불(candle)과 같다. 성도의 빛은 빛의 근원
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비쳐 주심으로만 비출 수 있는 것이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
은 세례요한을 비추는 등대로 묘사했다. 그의 빛은 그리스도의 빛을 반사한 것이
다. 그리스도 예수 때문에 그는 빛을 비출 수 있고 그 빛이 존재한 것이다.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는 태양과 같다면 태양이 진 후 나타난 달은 교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의 성도는 그리스도의 빛을 반사하는 빛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
다. 달(교회)은 자신의 빛이 아닌 태양(그리스도)의 빛을 반사할 때만 빛을 비출
수가 있다. “나는 세상의 빛이라”(요 8:12) 하신 예수님은 세상에서 우리를 건져
내시고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 5:14) 하셨다. 이 말씀은 오늘날도 세상은 어
두움 속에 있다는 것이다.
제1장 성경적 이해 17
교회에 루터, 칼빈, 웨슬리, 주기철, 손양원 같은 이들이 있을 때 만월(full
moon)처럼 어두운 세상을 밝힐 수 있을 것이다. 때로는 초생달이나 그믐달처럼
작은 빛줄기를 비출 경우도 있으나 그 모든 것도 태양과 같은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우리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참 빛을 반사할 때만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출 수가 있다.
② 예수 그리스도처럼 우리가 빛의 사명을 감당한다면 당신의 존재의미가 분명
해질 것이다. 빛을 비추면 이 세상의 악과 어둠은 폭로된다. 정직하지 못한 비즈니
스세계에 빛을 비추이면 정계와 사회 속에 숨겨진 부정과 부패가 그리고 인간적
편견과 이기심이 적나라하게 노출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성품이 계시되므로 세상(불신자)의 어둠과 더러움은 더
욱 분명히 나타날 것이다. 빛이 비칠 때 산 위의 동네를 숨길 수 없듯이 모든 것을
드러나게 함으로 진리를 진리되게 하고 거짓과 불의를 물리치게 된다.
③ 믿음이 연약한 이들의 신앙 성장을 도울 수 있을 것이다.
어두운 동굴 속에 있는 식물이라도 충분한 빛을 비쳐 주기만 하면 식물이 성장
하듯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배울 수만 있다면 환경이 나쁘고 어렵다 해
도 믿음은 성장할 수가 있다. 당신의 가족이 그리고 우리 교회 성도들이 비록 곤고
한 지경에 처한다 해도 우리가 그리스도의 생명의 빛을 그들에게 비쳐 줄 수 있다
면 그들의 신앙 성숙을 도울 수가 있을 것이다.
④ 당신의 증거를 통해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오게 할 수 있다.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본 후 그 얼굴에서 광채가 났다. 그가 산에서 내려
올 때에 사람들은 그를 바라볼 수가 없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3:4에서 우
리도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때 이와 같은 영광을 나타낸다고 가르쳤다. 다른 사람
들은 우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된다(고후 4:6 참조). 당신 안에 계신 예
수 그리스도를 사람들이 볼 수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문화, 문학, 지나
간 역사 속에서 찾기보다 당신이 예수처럼 보일 때, 즉 당신이 그리스도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당신에게 비쳐진 그의 빛을 당신의 생활 속에서 반사할 수 있을 때
사람들은 예수를 당신 안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일들은 특별한 그리스도인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
도 안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 적용되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는 말씀을
들은 모든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빈부귀천 남녀
노소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상관없이 그리스도의 빛을 반사할 책임이 있다(고전
18 그리스도인, 세상의 소금과 빛
1:27-29 참조). 당신이 어떤 종류의 사람이든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신은
당신 주변에 있는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빛을 반사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
을 기억하고 이를 행하라.
3) 빛 가운데 행하라
당신이 빛 가운데 행하면 그리스도의 빛은 당신을 사랑과 은혜와 의 안으로 인
도할 것이다. 그리고 어둠과 깨어지기 쉬운 세상의 타락에서 건짐을 받게 될 것이
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좇지 아니하면 빛을 상실한다. 그가 움직일 때 움직여야 한
다. 내가 빛보다 앞서 가면 내 앞에는 항상 어둠의 그림자가 있다. 그러나 빛이 내
앞에 비쳐지면 어둠의 그림자는 이미 지나간 내 뒤에 있을 뿐이다.
인류 역사상 불과 바퀴의 발견은 문화창달을 위한 가장 큰 하나님의 선물이라
할 수 있다. 빛이 있으므로 분별력이 생기고 자신을 아름답고 선하게 할 수 있다.
우리는 빛의 근원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받아 어두운 세상을 밝혀 ‘하나님 보
시기에 좋았더라’ 하는 세상을 만드는 일꾼이 되자.
4. 착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벧전 2:11-12)
베드로는 바로 앞부분에서 가르친 내용을 적용하는 문제로 나아간다. 하나님께
서 선택하셔서 자신과 특별한 사귐의 관계로 부르신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그리스
도인의 신분을 강조한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는 제사장 나
라이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그들의 제사장직을 행사하게 하려고 그
들의 신분을 상기시키고 있다. 그뿐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 남을 섬기는 낮은 마음
을 갖도록 준비시키고자 한 것이다.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기 때문에 그들은 종이
될 수도 있다. 섬기러 오신 예수님을 베드로는 염두에 두고 이 말씀을 했을 것이
다. 그리스도인들은 빛의 자녀로 부름받았기 때문에 자유하다. 그러나 그들의 자
유는 소명에 구속 받는 자유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자유한 것이
다. 그리스도인들은 동료 그리스도인들을 사랑하는 데 거침없이 자유하다. 죄악
되고 이기적인 암매는 사라지고 그리스도인은 사랑하는 데 자유하다. 믿지 않는
자들도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존중하며 각자에게 주신 권력의 역할을 존중하는 자
유인이다.
베드로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선포한다. 우리의 자유는 하나님 아래 있는
제1장 성경적 이해 19
것이므로 객관적인 가치 표준이 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시켜 하나님의 은
혜의 때(희년)에 자유를 선포하시기 위하여 죽지 않으셨다면 자유란 존재할 수 없
었을 것이다.
우리가 가진 자유는 필연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어야 한다. 바울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부름받은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하였다. 우리도 동료 그리
스도인들을 섬기고 세상에 속한 사람들에게 적절한 섬김을 실천하도록 부르심을
입었다. 여기서 베드로는 하나님을 섬기고, 교회를 섬기며, 세상을 섬기는 섬김의
자유를 설명한다.
1) 하나님을 섬기는 자유:하나님을 두려워하라
① 하나님의 종들이 이 세상에 살면서 누리는 자유는 외국인과 행인의 자유다.
그래서 베드로는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육을 제어하라”(벧전 2:11)라고 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서 잠시 머무는 나그네요(순례자) 행인이므로 이 땅의 풍속을 좇지 말고 가
치 기준과 생활양식을 전혀 달리 하라는 것이다.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이요 거룩한
나라로서 자신들의 행실로 빛의 나라를 보여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베드로는 나그네를 향한 애정의 표현으로‘사랑하는 자들’이라고부른다. 이말은
그들이 하나님께 속한 자임을 표현한다. 그들이 사랑받는(agapetoi) 자들인 것은
베드로에게뿐 아니라그들의 소유주인 주님께대해서도 그렇다. 나그네들이세상으
로부터 멀어진 것은 그들이 하나님께 사랑받는 자들이기 때문이다(요 17:16; 요
일 2:1516).
베드로가 사랑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아들로 입양된 하나님의 사랑
하는 자들이다(롬 1:7; 엡 5:1).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자녀요 세상에서는 나그네들이기 때문에 그들은 영혼
을 거스르며 싸우는 육체의 정욕의 공격을 분쇄하는 용사이기도 하다. 베드로는
육체의 정욕과 영혼의 선함 사이에 일어나는 적대관계를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이것은 영혼은 본래 선하고 육은 본래 악하다는 뜻이 아니다. 사도는 그리스도인들
에게 세상, 즉 성을 자극하는 음악, 성의 유혹을 일으키는 TV 광고, 포르노 영화나
잡지들의 변태성욕 등의 충동적 모습들에서 나오라고 외친다. 마귀는 육체적인 유
혹으로 생명을 준다는 약속을 하지만 정작 그가 하는 일은 생명을 죽이는 일이다.
마귀는 우리 영혼을 삼키려 한다(5:18).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으나 세상에서 살아야 한다. 베드로는
20 그리스도인, 세상의 소금과 빛
육체의 정욕을경고하면서육체의남은때를어떻게 살아야할지를교훈한다(4:2).
베드로는 일반적인 윤리 문제를 말하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종이 되어야 할 것과 그러므로 자신들을 기꺼이 복종시켜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
도록 고난까지도 받아야 한다고 권고한다.
② 그래서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
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
라”라고 했다(벧전 2:12).
불신자들은 하나님을 거역하므로 선입관을 갖고 그리스도인의 선행조차 비방한
다.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는 그리스도인들은 혐오를 받아 사람들이 싫어한 존재
들이라 했다. 수에토니우스는 네로의 그리스도인 박해를 인정하면서 그리스도인
들은 기발하고 유해한 미신으로 길들여진 사람들의 무리라 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중상모략 가공할 만한 거짓 공격을 받을
뿐 아니라 재판정에 끌려가고, 옥에 갇히고, 죽임을 당할 것을 알고 있었다. 베드
로 사도도 헤롯의 칼날은 피했으나 네로의 사악한 증오는 피하지 못했다.
이와 같은 이교도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예나 지금이나 그리스도인은 세상 앞에
서 그 영향력이 상실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므로 내놓는
선한 행실을 보고 그들을 비방하고 미워하던 자들까지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행하심으로써 그의 종들의 신실한 삶을 인정하시
고 이로써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2) 다른 사람에게 복종하는 자유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종으로 살면서(2:16) 기꺼이 다른 사람에
게 복종해야 한다. 베드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라고 했지 “사람을 두려워하라”
라고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노예가 되라”라고도 하지 않는다(2:18에서는 노
예 대신 사환이라 한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낮은 존재라 해서 다른 사람 앞에
서까지 자신을 낮추라고 요구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로 하나님 앞에서 우리
를 제사장, 성도, 아들, 딸로서의 위치를 강조한다.
우리가 세상을 위하여 자신을 복종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의 선한 행실이 그들에
게 증거가 되고, 그들의 악함이 드러나게 함으로 회개케 하려 함이다. 베드로는 13
절 이하에서 그리스도인의 의무를 다루면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복종의 삶으로 묘
사한다. 이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서로서로에게 그리고 특별히 믿지 않는 자들에게
제1장 성경적 이해 21
복종하는 삶을 말한다.
3) 세상을 섬기는 자유(2:13-14, 18-20)
베드로는 13절 이하 내용의 주제를 순복하라로 잡는다. 즉, 시민은 통치자들에
게 복종해야 하며(2:14), 종은 그 주인에게(2:18), 아내는 남편에게(3:1), 남편
은 아내에게(3:7),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서로서로에게 복종해야 한다(3:8).
사랑의 봉사라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양식의 특색은 고난에까지 복종하는 것이
다. 고난은 불가피한 것이 아니라 주께서 부르시는 것이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희생적 사랑으로서 그리스도인의 삶(소금과 빛)의 완전한 새로운 차원을 보여 주
고 있다. 이방인들에게 선한 행실을 보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그리스도인
들은 국가와의 관계나 믿지 않는 주인과의 관계에서 선을 보여 주라고 말씀하신다.
5. 나가는 말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름을 받았으니”(벧전 2:21), 즉 그리스도인들은 어두운
데서 하나님의 기이한 빛으로 부름을 입었다(2:9).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택
한 자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고 그의 복을 유업으로 받을 자들이다(2:9). 이를 위
하여 부르심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가 남기신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몸에 채우기를 소원한 사도 바울처럼(골 1:24) 이 세상에서 소금과 빛
의 사자로 살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Soli Deo Gloria!
22 그리스도인, 세상의 소금과 빛
제2장
교회사적 이해
1. 들어가는 말
기독교에 대한 반대는 끊임없이 있었다. 1884년 기독교 선교로부터 1950년대에
이르기까지 교리적이며 정치적인 이유에서 반대가 있었으며, 이 시기에 한국교회
는 순교로 맞서서 이겨냈다. 그리하여 한국사회에서 기독교의 위치는 확고해지기
시작하여 최소한 1970년대까지는 한국사회를 이끌어 가는 주 종교로 자리를 굳혔
다. 그러나 종교연구가 혹은 종교사회학자들의 분석에 의하면 개신교는 1980년대
부터 한국사회에서 선호하는 종교의 순위에서 상당히 뒤로 밀려나기 시작하여 근
래에는 반(反)기독교 단체까지 결성되어 있다고 한다.1)
이러한 반기독교적 정서의 확산에는 교회의 사회적 관심, 사회적 참여, 사회적
봉사 등에서 일반인들과 비기독교인들의 눈에 회의적인 요소가 많이 보이기 시작
하였다는 점을 어느 정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교회의 사회성이란 참으로 중요한 주제이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사회의 변화를
따라가지 않았다. 그리하여 1869~1870년 사이의 제1차 바티칸(Vatican I)으로부
1) 반기독교 단체는 기독교에 대하여 8가지로 비판하고 있다. 배타성, 지나친 전도강조, 반사
회성, 광신성, 교회의 분열, 교회건축과 헌금강요, 교회운영의 비민주성, 교파와 목사의
과다 등이다.
차종순 목사
제2장 교회사적 이해 23
터 100년이 지난 1963~1965년 사이의 제2차 바티칸(Vatican II)에서 비로소 교회
와 사회를 분리함으로써 사회를 인정하게 되었다. 그 결과 로마 가톨릭교회는 사회
의 각종 문제에 참여하기 시작하여 1995년 한국 종교인구 조사에서 295만(6.62%)
의 신도 수가 2005년도 조사에서는 514만(10.93%)을 넘어서 4.31% 증가한 반면
에, 같은 기간에 개신교는 876만(19.6%)에서 861만(18.31%)로 1.3% 감소하였다.
오늘날의 시대적 정서와 통계적인 수치를 감안할지라도 본 교단에서 한국사회
를 향한 교회의 위치를 고심하기 시작하였으며, 제96회 총회는 “그리스도인, 세상
의 소금과 빛착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이라고 확정하였다.
이는 매우 적절한 논의의 시작으로 한국에 기독교가 처음 전달되었을 때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교회의 사회 참여와 교회성장과의 상호관계를 교회사적으로 살
펴보려고 한다.
2. 서구 기독교가 자리잡기까지
기독교가 로마제국에 전달될 당시의 사회적 현상은 로마서 1:18~31 사이에 간
접적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요약하면 하나님 거부, 우상숭배, 성적문란, 동성연애,
그리고 21가지에 달하는 각종 사회적 비행이었다.2)
로마사회에 이러한 병폐들이 가득할 때에 로마에 전달된 기독교는 어떠하였는
가? 사도 바울은 로마에서 재판을 받으면서 살아가던 그 사이에 기독교에 대한 변
론, 예배, 말씀선포, 그리고 이어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기적적인 각종 표적과 더불
어 기독교인의 거룩한 삶으로 로마인들을 개종시켜 나갔다.
여기에서 말하는 초기 기독교 전파 당시의 기독교인들의 거룩한 삶이란 ‘순교’라
말할 수 있다. 스토어 철학자들의 순결한 자결보다도 십자가형틀에서도 하나님께
찬양하는 기독교인들의 순교는 가장 차원 높은 거룩한 죽음으로 보였으며, 특히
상류층 지식인들의 개종을 이끌었다. 그 다음으로 남의 빚 갚아 주기, 노예의 값을
치르고 자유인으로 하기, 포로로 잡혀간 사람을 속신하기 위하여 자신이 대신 포로
2)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
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
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그들이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24 그리스도인, 세상의 소금과 빛
되기 등이었다.
이상의 기독교인들의 거룩한 삶 가운데에서도 가정을 지키는 일은 중요하였다.
이 당시 로마사회에서는 부부가 서로 혼외정사가 빈번함으로써 부부 사이에서 태
어난 친 자녀들에게 재산을 물려주기보다는 손자, 손녀 혹은 조카 등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일이 성행할 정도였으며, 이러한 바탕에서 나온 용어가 ‘조카 편들어 주
기’(nepotism)이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어떠한가? 부부가 자녀들의 손을 잡고, 일부일처에 만족
하면서 아내와 자녀들을 지키는 모습이 기독교 전파의 큰 수단이었다. 그렇기 때문
에 사도 바울도 로마서를 비롯한 각종 서신서에서 먼저 기독교 교리에 대하여 말하
고, 그 다음으로 삶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빛과 소금이란 다름 아니라 기독교인의
삶을 의미하였으며, 초기 기독교인들의 윤리적인 삶을 통해 결국 로마에서 국교화
되기까지 기독교가 성장할 수 있었다.
3. 한국 선교 초기의 사회봉사
1893년 1월 장로교선교협의회는 “선교의 대상을 하층민과 노동자와 부녀자와 아
동으로 삼고, 빠른 시일 내에 성경을 번역하고, 학교를 세워서 가르치며, 병원을
세워서 입원 치료에 치중하고, 사회와 정치문제에 대해서는 간섭하지 않는다.” 등
의 10가지 선교 방침을 결정하였다.
이 결정에 따라 각 지역에 선교거점인 선교부(mission station)를 세우고, 교회
(local church)와 선교학교(mission school)와 선교병원(mission hospital)을 세
워서 한국인들에 대한 봉사를 시작하였다. 기독교 선교가 1884년 시작된 이래로
2011년까지 127년 동안 한국사회에 끼친 영향력을 한마디로 한다면 그것은 ‘방’
(放)이다.
첫째, 교회는 영적인 해방을 주었다. 서재필이 1897년에Korea Repository에
기고한 글에 의하면 한국의 일 년 예산이 450달러인데 무속과 주술행위에 사용한
돈이 1,200만 달러라고 하였다. 교회는 한국인들을 정령숭배(animism)의 속박에
서 해방시킴으로써 영적인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하였다.
둘째, 교회는 인권의 해방을 주었다. 선교사들은 1888년 영아소동(baby riot)이
일어난 이후로 임금으로부터 ‘시어대’(是御待)라는 교지를 받아서 신변의 보호를
받아 높임을 받음으로써 교회로 몰려든 하층민을 보호할 수 있었다. 이 사건의 뛰
제2장 교회사적 이해 25
어난 사례를 바로 1895년 10월 승동교회의 최초의 교인 백정 박성춘을 비롯한 전
국의 30,000여 명의 백정들이 일반 상민(常民)으로 신분이 바뀌는 차별제도의 철
폐와 인권의 획득에서 찾을 수 있다. 이에 따라 종 제도가 철폐되고, 모든 국민은
동등한 입장에서 관리가 될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리는 평등사회로 바뀌었다.
그뿐인가? 백정을 포함한 사회의 하층민들의 자녀들이 선교학교에서 공부하기
시작하여 1900년 서울에 있는 4개 선교학교(배재/이화, 경신/정신)에 재학하는 학
생의 상당수가 백정의 자녀였으며, 1920년에는 백정의 자녀 가운데 학교에 다니는
숫자가 40%나 되었다. 백정 박성춘의 아들 박순양이 세브란스 제1회 졸업생으로
한국에서 최초의 서양의술을 익힌 의사가 되었고, 딸은 정신여고 졸업시 고별사를
낭독할 정도로 우수성을 나타냈다.3)
이와 같이 선교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하층민들의 자녀들이 1900년대로부터 정
부의 각종 부서에 취직하여 관직을 갖기 시작하였다. 감리교 전도부인의 아들로
태어나 배제학교를 졸업하고 세관근무를 하다가 목포와 광주에서 선교학교의 교사
로, 광주 양림교회의 장로와 목사로, 평양신학교 교수로, 그리고 본 교단의 총회장
을 지닌 남궁혁 목사는 이를 나타내는 좋은 사례이다. 교회는 하층민과 여성, 그리
고 아동들의 인권을 회복시켜 주고 사회로 진출할 수 있는 통로였다.
선교병원은 어떠한가? 1895년 콜레라의 창궐로 서울에서 하루에 100명씩 그리
고 전국적으로는 12,000명이 죽어 갈 때, 언더우드의 가르침대로 새문안교회 교인
들이 팔에 적십자 완장을 차고 가족들도 꺼리는 환자를 마포에 세운 피난처
(Shelter)로 이송하고, 당시 한국에 도착한 의사 선교사 웰스(Dr. Wells)가 제조한
살롤(salol)이라는 장청소제를 투여한 후, 따뜻한 온돌에서 쉬게 하고 깨끗한 물과
음식을 제공함으로써 65%의 치료율을 보였다. 이것이 당시 희망이 없던 한국사회
를 밝히는 빛이었고, 사람을 살리는 소금의 결정이었으며, 이로써 기독교에 반감
을 가졌던 한국사회에 선교의 문을 열게 하였다.
빛과 소금의 역할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절정은 한센병 환자들을 돌본
것에서 찾을 수 있다. 1909년 4월 3일 남편 오웬(Clement C. Owen)이 죽은 다음
에 부인은 “나환자와 선한 사마리아인”(The Leper and the Good Samaritan)이라
는 제목으로 보고하였다.
3) Martha Huntley, To Start A Work, 차종순 역,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서울:쿰란출판
사, 2009), pp. 381, 389.
26 그리스도인, 세상의 소금과 빛
Dr. Owen의 치명적인 질병을 상의하기 위하여 광주로 오라는 전보를 받고
광주로 오던 Dr. Forsythe는 광주로부터 13마일 떨어진 곳에서 길가에 누운
나환자 여인을 보았다. 자신에 대한 위험을 생각하지도 않고, 주님께서 행하신
일을 하기 바라는 마음에서, 그는 여인을 자신의 말 위에 들어 올렸으며 광주
까지 걸어서 왔다. 진료소에서 이틀 밤을 지낸 다음에 Dr. Wilson은 옛 벽돌
가마에 그녀를 위한 임시 거처를 마련하였다. 이 나환자 여인은 머리는 수년
동안 감지 않았으며, 옷은 걸레이며, 더럽고, 발과 손은 부어올랐으며, 참을
수 없는 냄새를 풍긴다. 발은 짚신을 한짝에 다른 짝은 두꺼운 종이판을 두르
고 있다. 10년 동안 이 여인은 나환자였다. 4년 전에 남편이 죽고, 친척도 없
다. 그때로부터 문전걸식하였으며, 어떤 대접을 받았겠으며, 어디에서 쉬며,
육체적 고통은 어떠하였겠는가? 상상에 맡길 뿐이다. Dr. Forsythe 와의 만남
이 그 여인에게는 어떠한 의미를 지니겠는가? 한국인 교인들과 선교사들이 그
녀에게 예수님에 대하여 말하였다. 이곳에 온 이후로 2주 이후에 그녀는 자유
를 얻었다(죽었다).
한국의 한센병 환자 선교는 이렇게 시작하여 1909년 10월에 부산, 1913년 대구
에 각각 한센병 환자 집단치료소가 세워졌으며, 광주 집단 치료소에 거주하면서
생활과 치료를 병행하던 환자들은 1927년에 “사람이 살지 않는 섬으로 간다.”, “육
지로 나오지 않는다.” 등의 서약과 함께 오늘날의 여수 애양원으로 이주하였던 것
이다. 그리고 이들을 또다시 수용하기 위하여 1932년부터 소록도가 세워지기 시작
하였으며, 1958년부터는 완치된 음성나환자들의 자활정착을 위한 집단 마을이 전
국적으로 세워졌다.
교회와 선교병원과 선교학교는 한국사회에 희망이었다. 기독교인들의 깨끗한
삶은 그 당시 사회에 만연하던 부도덕성과는 크게 달랐으며 새로운 희망이었다.
한국사회의 빛과 소금이었다. 그리하여 이광수는 1917년에 “야소교가 조선에 준
은혜”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인신을 매매하고 남녀가 주색에 침륜하고 심지어 어린아이까지 노름에 빠져
있는 이 사회에 실로 새로운 도덕을 일깨워 준 것은 기독교였소.
초기 선교사들의 눈에 비쳤던 ‘게으르고, 더럽고, 거짓말 잘하는’ 한국인들이 기
독교를 통하여 ‘부지런하고, 단정하고, 깨끗하고, 정직한’ 사람으로 변하였다. 기
제2장 교회사적 이해 27
독교는 새로운 정신이었으며, 기독교인은 한국사회의 빛과 소금으로서 새로운 사
람을 의미하였다. 이것이 초기 기독교 선교와 확장의 큰 매체였다.
4. 1930년대 이후의 사회봉사
1919년 3·1만세운동 이후 한국사회에는 1917년 제1차세계대전의 종결과 함께
퇴폐주의, 허무주의, 쾌락에 찌든각종병폐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때에등장한
운동이한국사회에대한기독교인의참여였고, 그대표적인기관이YMCA/YWCA였
으며, 기독교대한부인절제회, 독신전도단 등의 사회봉사활동에 전념하는 기관들이
세워져 한국사회를 밝히는 빛이 되고, 정화시키는 소금이 되었다.
첫째는 마약을 반대하는 운동이었다. 한국교회는 일찍이 1901년 4월 4일자 「그
리스도인의 신문」에서 “아편 금할 일”이라는 논설을 발표하여 마약의 심각성을 경
고하였으나, 일제는 1919년에 3,000에이커(3,750,000평)의 아편 재배지를 확보하
고 미화 182,000달러를 집행하였다. 그러다가 1930년부터 갑작스럽게 증가시켜
1930년에 1,255정보, 1931년에 5,104정보, 1932년에 6,835정보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조선예수교장로회는 마약을 퇴치하기 위하여 ‘모루히네 방독회’를 전국적으
로 조직함으로써 한국의 젊은이들을 밝은 길로 인도하려 하였다.
둘째는 기독교대한절제회운동으로 술과 담배와 공창제도를 반대하는 운동이었
다. 일제가 한국인들의 정신을 무너뜨리기 위하여 술·담배를 보급시켰으며, 술과
담배소비는 증가하여 1917년에는 국가 세수총액의 11.49%, 1919년에는 33.1%,
1920년에는 39.98%, 그리고 1921년에는 34.52%로 증대되었다. 이에 따라 한국교
회는 1928년 1월 21일자 「기독신보」에서 금주에 관하여 이렇게 주장하였다.
조선에서 일 년간 술·담배로 소비되는 돈이 총합 103,893,824원이요. 해
마다 소비되는 술·담배 값만으로도 백 평 되는 집터를 사서 열 칸 기와집을
짓는다면 일 년에 94,448채를 지을 수 있다. 일 년간 소비되는 술·담배 값만
가지고도 800개소의 소학교 600개소의 고등학교를…….
곧바로 금주·단연운동은 곧바로 공창폐지운동으로 이어졌다. 「기독신보」는
술, 담배, 아편, 색은 하나의 동일선상에 있는 것으로 파악하면서 “술과 색은 먼저
담배로부터 시작되는 것이요, 그로부터 아편까지도 먹게 되는 것이며 동시에 수음,
28 그리스도인, 세상의 소금과 빛
남색, 창기 집 출입 등 모든 성적 죄악을 범하게 되는 것이다.”라고 강조하였다.
세 번째는 빈민구제운동이었다. 이 시기에 한국사회의 변화와 발전을 위하여 한
국교회는 빈민구제운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동사자, 아사자, 집 없는 사람들을 보
호하기 위하여 YMCA에서는 “3일 동안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하는” 삼동회(三同會)
를 운영하였다.
네 번째는 농촌부흥운동이었다. 1928년에 배은희 목사는 강순명과 함께 ‘독신전
도단’을 조직하여 교회가 없는 마을에 들어가 교회를 세우고 곧바로 노약자 보호,
화장실과 도로 청소, 부녀자와 무학자 야학, 그리고 기술교육 전수 등을 실시하여
부락민의 마음을 얻은 후 교회를 부흥시키는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 운동이 해방
후 고아원과 양로원운동으로 연결되었다.
5. 해방 후의 사회봉사운동
1930년으로부터 시작한 일제의 착취와 신사참배 강요, 그리고 해방 후 건국시기
의 어지러운 이념대결과 3년에 걸친 한국전쟁은 한국사회에 도덕성을 떨어뜨린 결
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해방 후 해외에서 돌아온 재외국민들, 전
쟁으로 인한 집 없는 고아들과 전재민의 증가, 생산시설의 미확충, 사회기본시설
의 낙후, 미군들의 퇴폐문화 등 한국인들에게는 희망이 없어 보였다.
이때에 기독교는 어떠하였는가? 해방 후 그리고 전쟁 후 되돌아온 선교사들과
손을 잡고서 교회는 한국사회의 약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하여 영적인 에
너지를 주었고, 고아원과 양로원을 운영하면서 쉼터를 제공하였으며, 선교병원에
서는 자선치료와 더불어 결핵환자 치료와 격리수용에 앞장서서 건강증진에 기여하
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농업입국의 꿈을 가지고서 국민의 의식계몽을 추구하는 가
나안 농군학교와 비슷한 유형의 농업학교, 농업교육기관이 세워졌으며, 이 운동이
결국 1970년대의 새마을운동으로 이어져서 한국의 경제부흥의 발판이 되었다. 이
운동의 핵심이었던 김용기 장로와 맨발의 성자 이현필에게 깊은 감화를 받았던 김
준은 다같이 철저한 기독교 평신도 지도자였다.
6. 교회는 지금도 한국사회의 빛과 소금인가?
요사이 교회 밖에서 들려오는 기독교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지나치게 정치적
제2장 교회사적 이해 29
인 색채를 띠고 있어서 감안할 점이 있다고 할지라도, 교회는 이 부분에서 겸손해
져야 한다. 그리고 교회 내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사뭇 의미심장하다.
첫째는 교회의 메시지가 복음적이어야 한다. 어두운 죄를 드러내려면 예수 그리
스도의 복음의 빛이 선포되어야 한다. 과연 우리는 설교 중에 예수님을 얼마나 많
이 언급하고 높이고 있는가 반성해 보아야 한다.
둘째는 교회와 교인들이 지역사회로부터 도덕적 표준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교
회와 교인들이 지역민들로부터 신뢰할 수 있는 표준인가, 흔히 말하는 틀림없는
사람인가라고 질문해 본다. 교인과 목회자 사이에서 그리고 교인과 교인 사이에서
서로의 도덕성을 믿지 못하면 그 종교의 앞날은 어떠하겠는가?
셋째는 교회가 사회봉사와 섬김에 앞장서야 한다. 감리교 신학대학의 종교사회
학 이원규 교수는 교회의 기능을 크게 선교적, 교육적, 친교적, 봉사적으로 나누어
조사하였는데, 그 가운데에서 선교적 기능은 25.3%, 교육적 기능은 25.6%, 친교
적 기능은 5.9%, 그리고 봉사적 기능은 43.2%로 대답함으로써 사회봉사에 대한
교인들의 관심이 크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4)
교회의 재정여유 활용방안에 대하여서도 교회건물의 확충 0.9%, 교육관 수양관
건축 4.1%, 교회 프로그램 강화 8.5%, 교회 안 불우이웃 돕기 17.7%, 고아원, 양로
원 등 사회복지 시설보조 18.4%, 개척교회 설립 5.4%, 농촌목회 보조 14.9%, 빈민
구제 27.5%, 기타 2.5%로 대답함으로써 구제 및 보조 등을 합치면 66.6%에 이른
다.5) 이러한 내용을 더욱 강력하게 시사하는 설문으로 재정적 여유의 활용영역을
물었는데, 교회유지 5.0%, 교육 8.5%, 교회적 봉사 17.7%, 사회적 봉사 45.9%,
선교 20.3%, 기타 2.5%로 대답하였다. 여기에서도 봉사를 합치면 63.6%가 된다.6)
이상과 같은 조사는 이미 1990년대로부터 시작하였으며, 2000년대를 넘어서
2011년인 금년에도 한국교회에 대한 각종 통계조사를 실시하고 있으나, 그 결과치
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교회 내에서 교회 지도자들에
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말해 주는 좋은 사례이다. 한국교회는 이제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복음적 사회봉사, 헌신과 섬김이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수행할 때
에 한국사회에서 존속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4) 이원규, 「한국교회의 현실과 전망」(서울:성서연구사, 1994), pp. 276277.
5) 위의 글, p. 281.
6) 위의 글, p. 282.
30 그리스도인, 세상의 소금과 빛
제3장
신앙과 삶을 하나로 묶기
1. 들어가는 말
금년 제96회 총회의 주제가 “그리스도인, 세상의 소금과 빛:착한 행실로 하나
님께 영광을!”로 정해졌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
하고 그렇지 못한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교회의 정치가 세상에서의 정치와 같이
부패하게 되었으며, 교회의 리더십은 여러 면에서 멍들어 가고 있다. 우리의 착한
행실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이 돌려지기보다는, 신자의 나쁜 평판이 주님의 이름에
흠집을 내고 있는 것이 오늘의 상황이다. 이러한 차제에 총회가 위의 주제를 정하
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려 하고 있는 중이다. 이런 우리의 노력들이 잘 결실하여
세상의 어두움에 빛을 비출 수 있는 교회가 되길 기대한다.
교회가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지 못하는 여러 이유들이 있겠지만, 필자는 그것
을 오늘 우리 교회 내에 팽배하여 있는 그릇된 이원론에서 찾고자 하였다. 신앙과
삶의 분리,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분리, 소명과 직업의 분리, 선교와 사명의
분리, 기도와 행동의 분리, 영과 육의 분리 등의 잘못된 이원론이 오늘 우리의 행
실이 바로 서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이 글은 그러한 잘못된 이원론을 극복하여
세상에 빛이 되는 교회를 만들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1)
1) 본글은필자의책, 「영성과윤리」(서울:한국장로교출판사, 2000)를여러부분참조하였다.
노영상 목사
제3장 신앙과 삶을 하나로 묶기 31
2. 잘못된 이원론의 극복을 통해 신앙과 삶의 괴리를 바로잡기
1) 신앙과 삶의 분리 극복:미쁜 말씀을 실천하는 신앙
잘못된 이원론은 우리의 신앙이 삶에 바로 연결되지 못하게 한다. 개신교의 이
신칭의 교리, 곧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믿음을 통한 칭의 교리는 일면 신자의 행동
은 아무래도 되냐는 질문을 야기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바울은 로마서에서 “그런
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롬 3:31)라고 언급하였다.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지 행위로
구원받는 것은 아니지만, 사도 바울은 우리의 삶에 있어 율법의 요구에 따라 바르
게 행동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개신교의 이신칭의의 교리가 기독교인의 행동의 중요성을 경시하는 것
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종 믿음에 따른 바른 삶의 중요성을 간과하곤 한
다. 칼빈(John Calvin)은 「기독교 강요」에서 순서상 중생, 곧 성화를 먼저 다루고
의인과 칭의의 문제를 그 후에 위치시키고 있다. 칼빈은 기독교인의 삶에서 선행을
간과하고 믿음과 칭의만을 강조한다는 개신교에 대한 가톨릭의 비판에 맞서, 칭의
앞에 성화를 둠으로써 이러한 비난을 극복하려고 하였다.2) “하나님의 자비에 의하
여 값없이 의를 얻는 믿음의 칭의는 회개와 성화의 노력을 부정하지 않는다”
(Ⅲ.3.1). 이러한 그의 주장에서 우리는 칼빈이 일방적으로 칭의(justification)만
을 강조하고 성화(sanctification)를 간과한 신학자가 아니었음을 다시 파악하게
되는 것이다.
디도서 1:9은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
훈으로 권면하고 거슬러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한다. 이 본
문에서의 미쁜 말씀(the faithful word)이란 우리가 신뢰할 수 있는 말씀을 가리킨
다(딛 1:16, 2:14, 3:8, 3:14).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의 하신 말씀을 성실히
이루시는 분임을 알고 그를 믿는 것인 바, 그의 말씀은 미쁜 말씀이 된다. 이에 있
어 세상이 우리를 신뢰하도록 하려면 우리도 우리의 말을 다른 사람이 믿을 수 있
도록 먼저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 세상에 대한 우리의 가르침의 권위는 미쁜 말
씀을 실천하는 우리의 능력에 달려 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 말씀을 진정으로 믿는 것이라 할 수도 없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2) 빌헬름 니젤, 이종성 역, 「칼빈의 신학」(서울:대한기독교서회, 1982), p. 128.
32 그리스도인, 세상의 소금과 빛
믿음이다(약 2:26).
기독교인의 도덕적인 삶과 영적인 삶의 상관성을 오깊(Mark O’Keefe)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3) “우리는 보통 기독교인의 도덕적 삶과 영적 삶은 구별하지만,
매일매일의 기독교인의 일상적 실존에 있어 이 두 가지의 삶은 하나이다. ‘영적
삶’(spiritual life)에서 분리된 ‘도덕적 삶’(moral life)이란 있을 수 없다. 기독교
인이 그들의 삶을 현실적으로 영위해 나감에 있어 죄를 피하며 기도 안에서 성장하
는 것과 선한 도덕적 결단을 내리며 덕을 함양하려는 노력들은 서로 연관되어 있
다. 우리의 오늘의 경험이 나타내고, 기독교 공동체의 수집된 영적이며 도덕적인
지혜들이 그것을 분명히 하는 바와 같이, 그것이 사적이든 공적이든 기도 안에서
주어지는 은혜의 도움이 없이는 우리의 삶 속에 있는 심각한 죄에 대한 지속적 승
리란 있을 수 없다. 역으로 심각한 죄의 극복과 선한 도덕적 삶으로의 성장 없이는
기도의 지속적 습관과 성향이 성장할 수 없는 것이다.”
오깊은 이런 영성과 윤리의 통합성을 기독교 역사를 통해 추적하고 있다.4) 먼저
구약성경은 하나님과의 언약(covenant)과 그에 따른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
으로서의 헌신(commitment)을 서로 분리하지 않는다. 특히 십계명은 하나님에 대
한 언약과 그의 말씀에 대한 순종으로서의 도덕적 삶을 하나로 묶고 있다. 신약성
서 또한 이 양자를 연결하는 바, 특히 요한은 그의 책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서로 연관하면서, 도덕적 분투와 영적 분투가 하나임을 강조하였다. 이와
같이 기독교인의 신앙과 영성은 그의 행함과 도덕성에 깊이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2) 수직적 영성과 수평적 영성의 통합: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하나 됨
야고보서 1:27은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
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본문은 기독교인의 경건에 대해 설명하면서 세 가지
의 요소를 말한다. 먼저는 ‘하나님 앞에서’라는 요소이며, 다음은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것’이고, 마지막으로는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이다. 수직적인
하나님에 대한 경외는 수평적인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누구든
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고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이는 거짓된 사랑일
3) Mark O’keefe, Becoming Good, Becoming Holy:On the Relationship of Christian
Ethics and Spirituality(New York:Paulist Press, 1995), p. 9.
4) Mark O’keefe, Becoming Good, Becoming Holy, pp. 10ff.
제3장 신앙과 삶을 하나로 묶기 33
것이다(요일 4:20).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이원론적으로
분리해서는 안 된다.
칼빈에 있어 경건(pietas)이란 개념은 철저히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성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러한 수직적 의미의 하나님에 대한 경외로서의 경건은 우리
의 삶의 스타일(life style)을 변혁한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은 십자가를 지는
삶으로서의 자기부정과 순례적 삶의 스타일을 가져오게 한다. 이러한 삶의 스타
일의 변화는 우리로 하여금 선행을 야기하는 원동력이 된다. 곧 하나님에 대한
경건(pietas)은 우리의 삶의 스타일을 변환하고, 그것을 통해 우리는 선행(good
work)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칼빈에 있어서의 수직적 경건도 그러한
수직성만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그러한 경건의 수직성은 우리 삶의 변혁을 불러
일으켜 인간상호 간의 관계에서의 선행을 야기하는 것이다. 곧 하나님에 대한 경
건은 이 지상에서의 이웃에 대한 사랑의 행동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 그러한 이웃
사랑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발현된다는 것이 칼빈의 주장인 것이다. 칼빈
도 수직적 영성과 수평적 영성의 통합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서의 칭의와 우리의 삶에서의 성화는 칼빈에 있어 둘이 아니고 하나이다. 하나님
에 대한 수직적 경건은 자연스레 이웃을 향한 수평적 사랑으로 뻗어나가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칼빈의 경건을 수직적인 영성으로만 파악해서는 안 된다. 그 경
건은 이웃 사랑으로서의 수평적 영성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주기도문을 통해 기도의 전형을 제자들에게 알려 주셨다. 주기도문
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뉜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름, 2인칭 단수 부분, 1인칭 복수
부분과 송영이다. 2인칭 단수 부분에서는 헬라어 ‘쑤’라는 ‘당신’이란 단어가 반복
되며, 1인칭 복수 부분에서는 헬라어 ‘헤몬’, 즉 ‘우리의’라는 단어가 반복된다. 2인
칭 단수 부분은 위로 향한 하나님에 대한 기도이며, 1인칭 복수 부분은 땅을 향한
이웃 사랑의 기도이다. 주기도문의 기도는 위의 것만 바라며 이 땅의 것이나 보이
는 것을 경시하지 않으며, 땅과 이웃에 대한 배려의 내용을 그 안에 포함한다. 주
기도문은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달라고 기도한다.5) 하늘뿐만 아
5) 우리가 외우는 주기도문은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로 되
어 있다.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라는 구문이 “뜻이 이루어지이다”라는 문장만을 수식
하는 것과 같이 생각된다. 그러나 원어 성경에서는 이 부분이 일종의 독립된 구문같이 위
치되어 있다. “……뜻이 이루어지이다.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번역이 가능하다. 곧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라는 구문이
2문단과 3문단 사이의 연결하는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34 그리스도인, 세상의 소금과 빛
니라 땅도 중요하다. 일용할 양식에 대한 간구도 동일한 방향성을 갖는다. 육체를
위해 양식이 있어야 한다. 영성이 충만하다고 해서 먹지 않고 살게 되는 것이 아니
다. 기독교 영성은 육체의 문제를 배제하지 않는다. 기도자는 땅과 빵을 외면하지
않는다. 그는 이 땅에서 하늘을 맛보고, 물질적 빵에서 종말적이고 성례전적 모습
을 느끼게 된다. 하나님을 향한 영성(spirituality)과 이웃을 위한 헌신과 투신
(commitment)은 서로 반대되는 개념이 아니다.
3) 소명과 직업의 이원론 극복:소명(der Beruf)으로서의 직업(der Beruf)
루터는 이전 수도원 운동의 이원론적 신학을 극복하려 하였다. 성과 속을 구분
하여, 교회를 세속적 사회의 일들에서 분리시키려는 수도원 운동의 신학에 대해
종교개혁자들은 저항하였다. 종교개혁자들은 오히려 이 세상의 일과 직업들을 하
나님의 소명(Beruf)으로 말함으로, 그것들을 영적인 차원의 일들로 승화시켰다.
이와 같이 종교개혁자들은 관상의 삶(vita comtemplativa)과 행동의 삶(vita
activa)을 이원화하지 않았던 것이다.6) 관상과 행동에 대한 수도원적 이해는 헬라
철학의 전통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헬라철학은 일종의 영지주의적 이원론을 기독
교사상에 유포하였다. 하나님을 보는 것으로서의 관상이 우선이며, 세속적인 일
(secular work)은 관상의 일로 우리를 인도하는 부차적인 역할만 갖는 것으로써,
그 자체는 고유한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는 것이 당시의 수도원 운동가들의 입장이
었다. 루터는 이러한 이원론을 극복한 자로서 그의 입장을 볼프는 다음과 같이 설
명하고 있다.
루터는 믿음만을 통해서만 죄인을 의롭게 하시는 자비로운 하나님에 대한
발견과 함께 관상적 삶에 우위성을 두는 중세적 경향에 대해 극복하였다. 이것
은 기독교인의 소명에 대한 그의 견해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 그는 수도승을
포함한 모든 기독교인들이 하나의 소명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는바, 그 소명은
이중적인 것이었다. 그는 그중의 하나를 영적인 것으로 불렀다. 그 영적
(spiritual) 소명이란 복음의 선포를 통하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초
청하는 것으로서의 부르심이다. 또 다른 소명은 외적(external) 소명인데, 그
6) Miroslav Volf, “Worship as Adoration and Action:Reflections on a Christian Way
of Being-in-the World,” D. A. Carson, ed., Worship:Adoration and Action
(Carlisle:The Paternoster Press, 1993), p. 203.
제3장 신앙과 삶을 하나로 묶기 35
소명은 세상 속에서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도록 하는 하나님의 부르심으로서의
소명이다. 루터에게 있어서는 감자를 생산하는 것, 복음을 선포하는 것, 국가
를 다스리는 것 등의 모든 직업으로서의 일들이 하나의 거룩한 부르심에 의한
것이었다. 이에 하나님은 모든 유형의 일들에 우리를 부르신 바, 인간의 일들
에 있어 하나의 계층구조는 있을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관상과 행동은
근본적으로 하나의 동등한 가치를 갖는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양자를
위해 우리들을 부르셨기 때문이다.7)
루터는 우리의 모든 직업을 하나의 성직으로 생각하였다(벧전 2:9). 물론 이러
한 루터의 신학이 이 세상에서의 행동만 중하고, 하나님에 대한 관상은 필요 없음
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순종을 세상에서의 윤리적이며 정의
로운 행동으로 환원할 수 없으며, 또한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 우리는 기독교의
수직적 구원을 수평적 구원의 차원으로 감축하거나, 수평적 구원의 차원을 수직적
구원으로 환원하려는 모든 시도들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취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인간의 노동을 생계유지를 위해 수행하는 직업(occupation) 활동만으로
생각해서는 안 되며, 일면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바탕에서 수행하는 소명(vocatio
n)8)으로서의 직업 활동으로 생각하여야 한다. 한글의 직업이란 말은 ‘職’과 ‘業’의
합성어로 ‘직’은 직무관직이란 뜻과 직분을 맡아서 수행한다는 사회적 역할을 의미
하고, ‘업’은 생계유지를 위하여 하는 일이라는 뜻을 갖는다. 직업이란 한 사람의
사회적 책무로서의 직무성과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과업을 수행하는 노동 행위라
는 이중적 의미를 갖고 있다.
개신교는 모든 직업적인 일이 생계를 위한 일임과 동시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통
한 소명의 일임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직업과 소명은 서로 분리되어질 수 없는 것
으로, 우리는 우리의 직업을 통해 주님께 영광 돌리는 성스러운 소명을 성취하여야
할 것이다. 이에 그 소명(Aufgabe)으로서의 직업은 우리의 힘으로 감당되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하늘의 은사(Gabe)를 통해 감당되는 것임을 잊지 않아
야겠다(벧전 4:11).
7) Miroslav Volf, “Worship as Adoration and Action:Reflections on a Christian Way
of Being-in-the World,” p. 204.
8) 영어 ‘vocation’에 해당하는 독일어는 ‘Beruf’인 바 이 단어는 소명이란 뜻과 직업이란 뜻을
동시에 갖고 있다.
36 그리스도인, 세상의 소금과 빛
4) 사명과 선교의 분리 극복:사명(mission)으로서의 선교(mission)
미국 프린스턴신학교의 선교학 교수인 대럴 구더(Darrell L. Guder)는 그의 책,
「교회의 계속적 회심」(The Continuing Conversion of the Church)에서 교회의
선교에 대해 반성하고 있다.9) 구더는 이 책에서 성경의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의 선
교의일을 검토한다. 그는그러한 성경에나타나는선교의사역과우리가현재하고
있는 선교의 사역을 비교하면서, 오늘의 교회가 선교의 일에 있어 감축주의
(reductionism)적인 경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언급한다. 선교가 하나님 중
심이 되지 않고 교회 중심적이 될 때 교회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 복음을 길들이려
는 경향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교회 편의주의적 발상은 오늘의 교회에
있어 구원론을 감축시키는 결과를 야기하였다. 하나님의 이 세상을 향한 선교는
개인의 영적인 구원뿐 아니라 이 세상과 자연 모두를 포괄하는 것임에 비해, 교회
조직의 확충을 목적으로 하는 선교는 신자를 얻는 것에 집중하는 개인구원
(personal salvation)으로의 감축주의적 경향을 나타낸다고 구더는 설명한다. 이에
교회는 이런 하나님이 하시는 선교에 비추어 자신의 현재의 입장으로부터 회심
(conversion)할 필요가 있음을 그는 강조하였다.
선교(mission)는 ‘mittere’(보내다, 파견하다)라는 라틴어 동사를 어원으로 한
다. 그리고 그 동사의 명사형인 missio는 ‘내보냄’(sending out)을 의미하는 바,
그런 의미에서 선교는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 부름을 입은 사람들
이 그 목적의 성취를 위하여 보냄을 받은 것으로 정의될 수 있다.10)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나름의 선교(mission)적 사명(mission)을 갖고 이 땅에 보내심을 받는다는
것이다. 선교란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신성한 소명으로, 우리는 우리의 삶
에서 이 같은 하나님의 사명을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여야 한다. 선교는 교회의 확
장수단이나 영혼구원의 사역만으로 감축되어서는 안 된다. 선교는 기독교인이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목표하여야 할 거룩한 사명인 것이다. 선교는 이 세상의 구원
을 위한 하나님의 일로서, 이 세상의 모든 일이 하나님의 선교를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우리는 우리의 하는 모든 일을 선교적 정신을 가지고 감당할 필요가 있다.
9) Darrell L. Guder, The Continuing Conversion of the Church(Grand Rapids:
Eerdmans, 2000), pp. 97ff.
10) 이광순, 이용원, 「선교학개론」(서울:한국장로교출판사, 1993), p. 18.
제3장 신앙과 삶을 하나로 묶기 37
정치외교, 경제생활, 교육, 의료행위, 사회봉사 등 모든 우리의 실천들이 선교의
정신으로 무장된 일들이 될 때 세계는 더욱 밝아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모든
정치는 한 국가의 이익만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이 땅 위에 주님의 나라를 성취하
는 데에 목적을 두어야 한다. 자기 나라만이 잘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나라들이
잘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정치와 외교활동이 요청된다. 우리의 기업 활동
도 마찬가지다. 자기가 경영하는 기업의 이윤만을 추구하는 근시안적 기업운영에
서 벗어나 하나님에 대한 영광과 인류와 전 피조물의 복리를 생각하는 선교적 정신
에 따른 기업운영이 필요하다. 다른 나라에 물건만 팔려고 할 것이 아니라 그 나라
모든 백성들이 잘살 수 있도록 배려하는 무역과 기업 활동이 중요하다. 전 세계의
사람들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병원이 운용되며, 전 지구적 평화와 샬롬을 위해 학
생들이 대학에서 연구하고 공부하는바, 선교적 정신으로 무장된 삶의 활동들로 전
환되어야 할 것이다.
개인과 기업과 국가의 모든 일들이 선교적 입장에서 진행되어, 개인의 영혼을
주님 앞으로 인도할 뿐 아니라 국가와 세계를 위해 봉사해 나아갈 때, 이 세상이
보다 아름다워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선교적 견지에서 한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고 사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하여 우리의 삶의 목표를 분명히 정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신의 사명(mission)으로서의 선교(mission)를 우리의 노력을 다
해 이루어 나갈 때 주님의 나라가 이 땅에 선취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5) 기도와 행동의 분리 극복:기도가 곧 노동이요 노동이 곧 기도다
중세 수도원 운동은 수도자들에게 크게 두 가지를 강조하였다. 기도와 노동이
다. 이 두 가지가 수도자가 정진하여야 할 두 가지의 내용인데, 문제는 기도에 집
중하다 보면 노동을 간과하게 되고 노동을 강조하다 보면 기도를 소홀히 하게 된다
는 것이다. 양자 간의 갈등 속에서 수도자들은 이 양자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
하였다. 이 같은 문제에 직면하여 고대교회의 신학자 아우구스티누스는 유명한 선
포를 한 바 있다. “기도가 곧 노동이요(Orare est laborare) 노동이 곧 기도다
(Laborare est orare)”라는 말이다. 포천에 있는 장신대 경건훈련원의 입구에는
이 말이 적혀 있는 바 영성훈련의 본질을 잘 나타내는 어귀이기도 하다. 기도는
우리를 행동으로 이끌고, 행동은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게 한다.
우리 기독교회의 영성은 기도함으로써 마무리되지 않는다. 그 기도가 우리의 인
격을 바꾸고 우리의 행동을 변화시켜 이웃 사랑의 행동을 하게 될 뿐 아니라 이런
38 그리스도인, 세상의 소금과 빛
행동들을 통하여 이 세상을 변혁케 되는 것이다. 기독교의 영성은 이런 일련의 과
정들을 포괄하는 것으로, 그 안에서 하늘과 땅이 하나로 묶여지게 된다. 기독교인
은 묵상(meditation)기도를 통해 그리스도의 말씀과 성령 안에서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묵상을 통해 주님의 시야를 갖게 된 신자는 주님의 전망에서 자기
와 사물들을 다시 보게 되는 바, 가톨릭에서는 이 과정을 관상(contemplation)의
단계로 언급하였다. 기도의 깊이에서 우리는 먼저 하나님을 만나게 되며, 주님의
시야를 통해 나 자신과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을 다시 보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과
하나될수록 이웃의 어려움과 곤궁함이 눈에 또렷이 들어오게 된다. 주님과 하나
될수록 이웃의 고통에 공감(compassion)하게 되어 그들을 위한 행동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3. 나가는 말:영과 육이 하나되는 통전적 신학의 추구
잘못된 이원론의 극복으로 우리는 우리의 신앙과 행동을 바르게 묶을 수 있을
것이다. 수직적 영성과 수평적 영성,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마음과 몸, 영과
육, 물질과 정신, 이성과 감성, 교회와 세상, 땅과 하늘, 성과 속, 남과 여, 해방과
영성, 개인구원과 사회구원, 기도와 행동, 신자의 양육과 사회적 행동 등의 양극을
이원론적인 견지에서가 아니라 통전적 관계성 속에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
독교의 영성은 통전적인 것으로 우리는 육을 떠나 영의 문제를 취급하려는 이원론
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기독교의 영성은 육을 무시하는 금욕주의적인 것이거
나 타계주의적인 것이 아니며, 오늘의 역사와 현실을 강력히 긍정하고, 열심히 사
회정치적 맥락에 참여하는 내용을 포괄한다. 김경재 교수는 이르기를 “새로운 영
성신학은 하늘을 얻기 위하여 땅을 버리는 정신주의, 내세주의, 타계주의, 신령주
의를 거절하며, 땅을 온전히 얻기 위하여 하늘을 부정하고 땅에만 매몰되는 물질주
의, 현세주의, 세속주의, 경험적 실증주의를 또한 거절한다. 그것은 풍요롭고 충만
한 하나의 현실로서의 세계를 둘로 쪼개어 분리시켜서 한쪽을 버리고 한쪽을 취하
든지 혹은 한쪽을 위하여 다른 쪽을 도구와 방편으로 전락시키는 인간성의 정신분
열 증세이다.”라고 하였다.11)
우리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측은 통합적이며 통전적 신학(wholistic theology)
11) 김경재, 「영성신학서설」(서울:대한기독교출판사, 1985), p. 62.
제3장 신앙과 삶을 하나로 묶기 39
을 추구한다. 한 사이드가 아니라 중심에 선 성서적 복음주의를 우리 신학은 표방
하여 왔다. 행동은 필요 없고 기도만 하면 된다는 입장이나, 기도는 필요 없고 행
동만이 제일이라는 양자의 주장들을 우리는 모두 지양한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오늘의 현실 속에서 행동으로 나타나는 그런 신앙을 추구한다. 죽은 믿음이
아니라 산 믿음으로서 인간과 사회를 변혁하는 신앙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릇된
이원론적 전망을 갖고서는 바른 행동에 이를 수 없다. 기독교인과 교회가 이 세상
의 진정한 빛과 소금이 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정신분열적인 이원론을 극복하고
온전한 신앙의 길로 매진하여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40 그리스도인, 세상의 소금과 빛
제4장
그리스도인, 세상의 소금과 빛:교육
1. 들어가는 말
한국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 ‘기윤실’(기독교윤리실천운동)의 “2010한국교회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에 의하면 한국교회를 신뢰한다는 응답자
는 17.6%에 불과한 반면, 불신한다는 응답자는 48.4%였다. 비기독교인의 응답을
살펴보면 한국교회를 신뢰한다는 응답자는 8.2%에 불과한 반면, 불신한다는 사람
들은 55.4%였다. 주목해 볼 것은 점점 기독교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져 간다는 응
답은 4.6%인데 비해 점점 신뢰도가 낮아져 간다는 응답은 30.8%나 된다는 점이
다.1) 한마디로 말해서 오늘의 세상은 기독교를 외면하고 있고, 시간이 갈수록 점점
그 도가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세상 사람들의 눈에 점점 교회는 ‘세상을 위한 교회’가 아
니라 ‘교회를 위한 교회’로 비쳐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오늘의 한국교회
는 자신만을 위한 이권집단인 것처럼 보이는 일들이 많아지고 있다. 교회가 지나치
게 자기 몸집 불리기에만 몰두하고 있고, 교회가 마치 개인 소유인 것처럼 목회자
대물림 현상이 일어나고 있으며, 교회의 지도자 선출 과정에 혼탁한 금권선거가
횡행하고 있다. 또한 전도와 선교도 세상에 사랑을 전하는 과정이 아니라 전도는
1) “2010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 kr.cemk.org/ 기윤실 자료.
박봉수 목사
제4장 그리스도인, 세상의 소금과 빛:교육 41
교회의 양적 성장의 도구요, 선교는 기독교세 확산의 수단으로 비쳐지고 있기도
하다. 이로써 교회가 세상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게 되었고, 점점 자기들의 영역
안에 게토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답은 자명하다. 주님의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이
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
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3-16). 그리스도인들이 교회
의 소금이 아니고 세상의 소금이요, 교회의 빛이 아니라 세상의 빛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교회는 세상 한복판에서 거룩한 영향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임을 자각하고 잃어버린 맛을 되찾아야 할 것
이고, 세상에서 그 빛을 비쳐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교인들을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세워서 세상에 나가서 그 사명을 감당하도록 파송해야 할 것이다.
본고는 특히 교육적 관점에서 이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즉, 교인들을 어떻게 세
상의 소금과 빛으로 세워 갈 것인가 하는 점에 초점을 맞춰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서 우선 교육신학적 문제를 짚어보고, 다음으로 다루어야 할 교육내용과 실천을
위한 교육방법의 문제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2. 교육신학
오늘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소금과 빛으로 그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
게 된 것은 한국교회의 신앙교육의 방향설정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할 수
있다. 사실 한국교회의 신앙교육은 기독교의 사사화(privatization)를 극복하지 못
하고, 오히려 이에 편승해 온 측면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즉, 한국교회의 신앙교육
은 사회에 공적으로 영향을 미치도록 이끌기보다는 사적인 차원의 문제에 치중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신앙교육이 터전으로 삼아 온 신학적 기초, 즉 교육신학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교육신학의 근거가 되어 온 기존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
가와 부활 사건이 하나님의 백성 개개인에게 어떻게 구원을 가져다주는가에 초점
을 맞춰 왔고,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도 교회의 부흥과 성장에 초점을
42 그리스도인, 세상의 소금과 빛
맞춰 왔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기독교 신앙을 사적인 영역에 치중하게 만들고,
신앙공동체를 사적 존재(Private Being)로 축소시켜 버렸다. 이제 그리스도인들을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세워 가려면 교육신학 자체에 변화가 필요하다.
그러면 교육신학은 어떻게 변화되어야 할 것인가? 근자에 새롭게 논의되고 있는 ‘공적신학’(Public Theology)이 하나의 대안으로 모색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공적신학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근본을 두고 있는 하나님의 공동
체로서 교회는 이 세상 속에서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 것일까?”라는 물음에 답을
하려는 신학적 노력을 말한다.2) 이것을 일반 신학적 개념으로 정의해 보면, “공적
인 논쟁들이나 문화, 사회, 과학기술, 경제, 정치에 관한 문제들을 다루고자 하는
신학의 한 종류이며 또한 비기독교 전통들이나 사회과학, 역사과학들과 더불어 비
판적 대화를 하고자 하는 신학의 한 종류”이다.3) 그리고 이것을 성경적으로 정리해
보면, 예수님의 산상설교에 나타나는 팔복을 개인 인간 심령의 내면성의 문제로서
만이 아니라 사회가 공동체적으로 추구해 가야 할 그리스도인 윤리의 ‘마그나 카르
타’라고 고백하는 신앙과 신학을 말한다. 결국 공적신학은 신앙을 개인의 영역이나
교회 내부의 영역에 머물러 있지 않도록 하기 위해, 신앙의 공공성을 강조하고 기
독교 신앙이 사회에 대해 영향력을 미칠 수 있도록 도덕적이고 영적인 에토스를
형성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을 훈련시키도록 안내해 주는 신학적 노력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 공적신학에 기초한 교육신학이 교회의 신앙교육에 어떤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인가? 근자에 공적신학을 주도하는 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스택하우
스(Max Stackhouse)의 제안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교회는 그리
스도의 삼중직의 대리자로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준비시키고 위임하는 것이 교회의
임무 중의 하나라고 역설하였다.4) 그가 주장한 내용의 일부를 살펴보면 이렇다. “우리는 루터가 말한 것처럼 ‘만인 제사장’일 뿐 아니라 일부 청교도 종교개혁자들
이 주장한 것처럼 ‘만인 예언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황제와 군주들뿐만 아니라
모두가 ‘시민이자 정치 참여자로서 왕이신 그리스도의 왕직’을 수행하여야 한다.
신자들은 시민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대사, 통치자, 그리고 대리인의
2) Max Stackhouse, 심미경 역, 「지구화. 시민사회. 기독교윤리」(서울:Paster’s house,
2005), p. 15.
3) Ibid.
4) 새세대교회윤리연구소 편, 「공공신학이란 무엇인가」(서울:북코리아, 2007), p. 40.
제4장 그리스도인, 세상의 소금과 빛:교육 43
역할을 맡아야 한다.” 결국 스택하우스는 세상의 소금과 빛의 삶이란 그리스도의
삼중직을 세상 한복판에서 수행하며 사는 삶이라고 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 한복판에서 만인 제사장직, 만인 예언자직, 그리
고 만인 정치적 직위를 감당하며 사는 삶이라는 것이다.
이런 스택하우스의 제안은 교회의 신앙교육에 중요한 통찰을 제공해 준다고 할
수 있다. 즉, 교회는 교인들을 세상 한복판에서 그리스도의 삼중직을 수행할 수 있
도록 준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 만인 제사장직이다. 세상과 그 안에 거하는
사람들이 하나님과 화해할 수 있도록 이끄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야
할 것이다. 둘째, 만인 예언자직이다. 세상 안에 불의와 부정을 고발하고 이를 바
로 잡기 위해 헌신하도록 준비시켜야 할 것이다. 그리고 셋째, 만인 왕직이다. 세
상 안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시민으로서의 삶을 성실하게 사는 것은 물론이고, 사회
의 구체적인 현안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최선을 다
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야 할 것이다.
3. 교육내용
교회가 교인들을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세워 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가르쳐야 할
것인가? 우선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올바른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도록 정체성에
관련된 내용을 가르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세상 한복판에서 그리스도의 삼중직을
실현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삼중직의 내용을 가르쳐야 할 것이다.
1) 정체성 확립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과 관련해서 두 가지 중요한 점을 가르
쳐 주고 있다. 하나는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빌 1:
27)라는 말씀이다. 여기서 ‘생활하라’는 말은 원어로는 ‘폴리튜에인’(politeuein)이
다. 이 말은 도시국가를 의미하는 ‘폴리스’(polis)에서 나온 동사이다. 그래서 이
말을 어원에 맞게 다시 번역해 보면 “폴리스의 시민으로 살라”라는 뜻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빌 3:20)라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자칫 세상과 동떨어진 초월적 신앙의 기준만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3:19에서 세상적 가치로 끊임없이 행하는 사람들을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다”라고 비판함으로써 초월적 신앙의 기준에서 이 세상적 행동을 비판하려는 적
44 그리스도인, 세상의 소금과 빛
극적인 태도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결국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은 폴리스의 시민
임과 동시에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
리고 이것은 그리스도인이 초월적 가치를 따라 폴리스의 시민으로 살아가라는 삶
의 대원칙을 선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성경의 가르침에 기초해서 교회는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폴리스의 시민
임과 동시에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라는 통합적 정체성을 가질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할 것이다. 이것은 소명이라는 관점에서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의 부르심과 폴리
스의 시민으로서의 부르심을 함께 받고 있는 존재라는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또한 이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을 섬기고 봉
사하는 차원의 ‘제자직’(discipleship)뿐 아니라 세상을 섬기고 봉사하는 ‘시민
직’(citizenship)을 함께 감당해야 하는 사명을 받은 존재라는 사실을 가르쳐야 한
다는 것을 말한다.
2) 그리스도의 삼중직 실천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요 폴리스의 시민으로서 부르심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구체적인 사명을 그리스도의 삼중직을 실천함으로써 수행할 수 있다. 교회의 신앙
교육은 이 점을 가르쳐야 할 것이다.
(1) 만인 제사장직
제사장은 속죄를 위한 제물과 제사를 드리도록 임명되었다.5) 그리스도는 인류의
죄를 위해 바쳐질 희생양으로 세상에 오셨으며 또한 그는 자기 자신을 완전하고
받으실 만한 제물로 하나님께 바치는 제사장이었다. 심지어 완전한 제사가 단번에
드려진 후에도 그는 계속하여 하나님과 자기 백성을 중보하고 중재하는 제사장적
사역을 수행한다.
깔뱅은 “제네바 신앙문답서”의 43문에서 이렇게 묻고 있다.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은 우리에게 무슨 유익이 있는가?” 그리고 “그리스도의 이 직분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와 화해되었다는 것,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우리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것과 함께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칠 수 있는 길을 얻게 되었
5) “제사장은 여호와 앞에서 그를 위하여 속죄한 즉 그는 무슨 허물이든지 사함을 받으리라”
(레 6:7).
제4장 그리스도인, 세상의 소금과 빛:교육 45
다는 것”이라고 답하였다.6)
이렇게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께서 수행하신 제사장직을 세상 한복판에서 수
행해야 한다. 이때 만인 제사장으로서 그리스도인들은 먼저 예수님을 따라 자기
자신을 제물로 바치는 희생 제사가 계속 요구된다(롬 12:1). 그리고 원수를 포함
하여 우리 이웃에 대한 용서가 우리의 권리이자 의무가 된다. 교회는 그리스도인들
에게 이 점을 가르쳐야 할 것이다.
(2) 만인 예언자직
구약의 예언자들의 의무는 교지, 권면, 훈계, 그리고 영광스러운 약속과 준엄한
책망의 형식으로 하나님의 뜻을 사람들에게 계시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예언자적
사명은 불의하고 악한 세상을 향하여 정치적 참여, 경제적 투쟁, 문화적 비판 등을
통한 사랑을 담은 용기 있는 목소리를 포함한다.
깔뱅은 “제네바 신앙문답서”의 44문에서 이렇게 묻고 있다. “그리스도의 예언자
직은 우리에게 무슨 유익이 있는가?” 그리고 이렇게 답한다. “그리스도는 백성들의
주와 교사로서 아버지의 진리에 대한 참된 지식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심으로써 우
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의 학생들이 되게 하시려고 하는 것이다.”7)
이렇게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께서 수행하신 예언자직을 세상 한복판에서 수
행해야 한다. 이때 만인 예언자로서 그리스도인들은 우선 상황을 올바로 파악하고,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적절한 방법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고 알려야 할 것이다. 이때 지혜롭게 그러나 용기 있게 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점을 가르쳐야 할 것이다.
(3) 만인 왕직
그리스도의 왕직은 권능의 통치, 즉 우주에 대한 권능의 통치와 그의 몸 된 교회
에 대한 은혜의 통치로 나누어진다. 그의 중보자적 왕권은 그가 구속과 화해를 성
취하였을 때 하나님이 부여하셨다.
깔뱅은 “제네바 신앙문답서”의 42문에서 이렇게 묻고 있다. “그리스도가 다스리
는 왕국은 우리에게 무슨 유익이 있는가?” 그리고 이렇게 답한다. “그분을 통해서
우리의 양심이 죄에서 해방을 받고 그분의 영적인 풍요함으로 충만해져서 의롭고
6) 요한 칼빈, 「제네바교회 신앙문답서」(서울:지민, 2010), 제43문.
7) Ibid., 제44문.
46 그리스도인, 세상의 소금과 빛
거룩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고, 우리 영혼의 적인 악마와 죄와 육과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게 되었다.”8)
이렇게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께서 수행하신 만인 왕직을 세상 한복판에서
수행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만인 왕직을 수행할 때 무엇보다도 세상의 모든
일의 열쇠는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있음을 선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인
들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이 세상의 모든 일에 구체적으로 참여해야 할 것이
다. 이때 성실한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점을 가르쳐야 할 것이다.
4. 교육방법
교회가 교인들을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세워 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가르쳐야 할
것인가? 세상에서 소금과 빛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지식을 갖는 것만으로는 불가
능하다. 복음으로 행동이 변화되어야 하고, 삶으로 복음 메시지를 담아 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식 전달위주의 교육방법은 지양되어야 한다. 대신 행동변화와
삶을 통해 메시지를 드러내도록 이끌어 줄 교육방법이 모색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기독교교육학자 토마스 그룸의 방법이 중요한 대안으로 제시될 수 있
을 것이다. 그는 기독교교육의 방법을 ‘공유된 기독교 프락시스’(Shared Christian
Praxis) 방법이라 불렀다. 그는 이 공유된 기독교 프락시스가 다음의 세 차원 또는
세 순간의 변증법적 통합으로 구성된다고 보았다.9) 첫째는 시간과 장소 안에서 행
위적 주체의 모든 의도적이고 역사적 활동을 포함하는 행동적 차원이다. 둘째는
이 행동을 분석하고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성찰적 차원이다. 그리고 셋째는 보다
옳은 행동으로 이끌어 주는 창조적 차원이다.
그는 이 공유된 기독교 프락시스 방법이 기독교교육에 적용되기 위해서 하나의 ‘초점 활동’(focusing activity)과 다섯 후속 ‘교육적 운동’(movement)으로 이루어
진다고 설명했다.10) 이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8) Ibid., 제42문.
9) Thomas Groome, Sharing Faith:A Comprehensive Approach to Religious Education
& Pastoral Ministry(New York:Harper Collins, 1991), pp. 148-154.
10) Ibid., pp. 146-148.
제4장 그리스도인, 세상의 소금과 빛:교육 47
ⓛ 초점 활동
이는 사람들로 하여금 시간과 공간 내의 자기 자신의 존재에 대해 그리고 그들
의 현재의 프락시스에 관심을 기울이고, 이로써 커리큘럼을 위한 초점을 형성할
수 있게 하는 활동을 말한다.
② 운동 1:현재의 프락시스에 대한 표현
이는 사람들이 그들의 역사적 컨텍스트 안에서 현재의 프락시스에 참여하고, 또
이를 경험했을 때 초점화되어진 주제를 중심으로 자신과 사회의 ‘현재의 행동’을
어떤 형식으로 명명하거나 표현하도록 초대하는 것을 말한다.
③ 운동 2:현재의 행동에 대한 비판적 성찰
이는 위의 운동 1에서 현재의 행동으로 표현된 것에 대해 비판적으로 성찰하도
록 참여자들을 격려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비판적 성찰이란 참여자들이 비판적
이고 사회적으로 생각하고, 분석적이고 사회적으로 기억하고, 그리고 창조적이고
사회적으로 상상하는 것을 말한다.
④ 운동 3:다가갈 수 있는 기독교 이야기와 비전 형성
이는 학습 사건의 주제와 상징에 적합하게 ‘기독교 이야기’와 ‘기독교 비전’의 다
가갈 수 있는 표현들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기독교 이야기란 기독교 공동
체의 신앙생활을 상징화한 것을 말하고, 그리고 기독교 비전이란 기독교 이야기로
부터 생겨난 약속과 요구를 성찰한 것을 말한다.
⑤ 운동 4:참여자의 이야기와 비전에 기독교 이야기와 비전을 수용시키는 변증
법적 해석학
이는 참여자들이 변증법적 해석학 안에서 주제 및 상징과 중심의 현재의 프락시
스에 대한 그들의 비판적 이해를 기독교 이야기와 비전과 함께 위치시키는 것을
말한다. 이 변증법적 역동성이 충분히 표현되기 위해서 참여자는 다음의 질문을
던지게 된다. “어떻게 기독교 이야기와 비전이 현재적 프락시스를 넘어 우리를 증
거하게 하고, 묻게 하고, 그리고 부르는가?” 그리고 반대로 “어떻게 현재의 프락시
스가 운동 3 안에 다가갈 수 있게 된 기독교 이야기와 비전을 증언하고, 또 비판적
으로 수용하는가?” 또한 “어떻게 하나님의 통치의 비전을 향해 보다 충실히 살아야
하는가?”
⑥ 운동 5:체화된 기독교 신앙을 위한 결단/응답
이는 참여자들에게 세계 안에서 기독교 신앙대로 살 수 있는 방법에 관해 결정
할 수 있는 분명한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을 말한다.
48 그리스도인, 세상의 소금과 빛
5. 나가는 말
오늘의 한국사회의 주어진 상황과 한국교회가 당면한 문제들을 종합해서 고려
해 볼 때, “그리스도인,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는 주제는 시의적절하다고 할 수 있
다. 이제 이를 기점으로 한국교회는 구체적인 변화의 몸부림을 시작해야 한다. 더
이상 자책과 자성의 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그리고 더더욱 절망하며 포기
할 수는 없다. 비록 힘들고 아프더라도 과감하게 버릴 것은 버리고, 새롭게 시도해
야 할 것들을 시도해야 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올바로 교육하여 세워
나가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소금이요 빛으로 세상 한복판으로 나아가
고 그리고 그 자리에서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살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교회교
육이 새롭게 변화되어야 한다.
교회교육의 변화는 교육신학의 변화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신앙의 사사화를
극복할 교육신학의 대안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 공적신학의 통찰을 받아들여서
과감하게 ‘신앙의 공공성’을 교회교육 안에 반영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교회교육
내용에도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의 정체성을 새롭게 확인해야 하고,
세상 안에서 그리스도의 삼중직을 실천해 갈 수 있도록 훈련하는 내용이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교회교육 방법에도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단순한 지식 전달 위주
의 교육이 아니라 프락시스로서 삶과 행동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방법이 도입되어야 할 것이다.
제5장 지역교회의 빛과 소금의 사명:선교와 지역사회봉사 49
제5장
지역교회의 빛과 소금의 사명:선교와
지역사회봉사
1. 교회와 선교
1) 선교란 무엇인가?
신구약 성경을 관통하고 있는 핵심 주제는 하나님 나라이다. 하나님 나라는 하
나님이 다스리시고 하나님이 일하시고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나라이다. 하나님
나라의 임함과 하나님 나라의 이 땅에서의 실현은 곧 하나님의 일하심이다. 선교란
무엇인가? 많은 정의가 있을 수 있지만 선교란 하나님의 일하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땅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모든 일의 총체가 곧 선교이고, 선교의 내용이고, 선
교의 범위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선교는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서 이루어
가며 펼쳐 나가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와 선교는 개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끊을 수 없
도록 연결되어 있으며, 각기 상호 간에 존재의 근거가 된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개념의 지평을 넓히고 잘 이해하는 것은 곧 선교의 지평을 넓히는 일이고, 신학적
추구가 학문적 영역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사회와 인간의 삶 가운데로 그
의미가 확장되고 실천되어지는 것이다.
성경은 역사와 우리의 삶 가운데 행하시는 하나님의 일들로 가득 차 있다. 하나
님의 말씀인 성경은 하나님 나라를 보여 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일하심, 선교를
조재호 목사
50 그리스도인, 세상의 소금과 빛
보여 주고 있다. 그러므로 성경은 곧 선교의 책이고, 하나님은 선교하시는 하나님
이시다.
2) 우리 교단의 통전적 선교
우리 교단은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에 따라 교회가 ‘하나이며, 거룩하고,
보편적이며, 사도적인 교회’임을 고백할 뿐만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부름 받아 하
나님 앞에 모이는 교회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과 사회를
위해서 보냄 받은 공동체임을 믿는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께서 나
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21)라고 우리를 교회 밖으로 파
송하셨다. 이는 곧 부름 받은 그리스도인이 다시 세상으로 흩어져 복음 전도뿐만
아니라 사회 각 분야에 소금과 빛의 역할을 잘 감당함으로 그리스도의 가치를 실
현하고 더 나아가 창조 질서를 보전하며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켜야 한다는 당위
성을 천명한 것이다.
존 스토트(John Sttot)는 전통적으로 상반된 선교적 접근방식을 확대시켜 통합
하려고 했다. 그는 선교를 개인 구원을 위한 전도(evangelism)와 사회봉사(social
service)를 합친 것으로 재해석했다. 여기에서 교회 사명의 균형 잡힌 새로운 양
날개가 나타나는 것이다. 마치 하늘을 날아오르는 비행기가 오른쪽 날개와 왼쪽
날개가 동일하게 균형을 잡아야 날아오르고, 새들도 두 날개가 있어야 날아오를
수 있는 것과 같다. 이 땅에서의 하나님의 교회는 한 영혼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한
복음 전도의 날개와 가난한 자, 병든 자, 연약한 자의 삶을 돕고 삶의 구조를 개선
해 주는 사회봉사 참여의 날개로 날아오르는 것이다. 비행기나 새들의 양 날개는
따로따로 존재하지만 결코 나눌 수 없는 것처럼 교회의 복음 전도와 사회 복지는
다른 것이지만 나눌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교회의 사명(선교)에 대한 통전적 접
근(holistic approach)이다.
통전적 선교(holistic mission)는 예수 그리스도의 두 가지 명령, 즉 이웃을 사
랑하라는 사랑과 섬김의 위대한 명령과 가서 복음을 전하고 제자 삼으라는 전도의
지상 명령을 목회와 교회 안에서 균형 있게 실천하는 것이다. 사회봉사는 개인 구
원인 전도의 영역과 분리될 수 없으며 그렇다고 동일시되는 것도 아니다. 다른 한
편으로 사회봉사의 참여는 복음 전도를 위한 단순한 수단이 되어서도 안 되고, 복
음전도의 결과로 주어지는 것이어서도 안 된다. 둘은 서로 독립적이지만 서로에게
속해 있다. 우리는 이러한 상관관계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하게 된다.
제5장 지역교회의 빛과 소금의 사명:선교와 지역사회봉사 51
존 스토트는 말하기를 “우리의 이웃은 그의 영혼만을 사랑해야 하는 육체 없는
영혼이 아니며, 반대로 육체의 보살핌만을 요구하는 영혼 없는 육체도 아니고 사회
로부터 고립된 영육의 존재도 아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셨는데, 그는 나의
이웃이며, 공동체 안에 영육을 지닌 존재로 창조하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웃을
하나님이 그를 만드신 대로 사랑하려면 불가피하게 그의 전체적인 행복, 즉 그의
영혼과 육체와 공동체의 잘됨에 다 같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라고 했다.
한국교회는 100여 년 전 선교 초기 시대부터 복음 전도 혹은 교회 개척뿐만 아니
라 사회봉사 활동을 함께 전개해 왔다. 한국교회의 초기 역사에 나타나는 의료선
교, 학원선교, 사회계몽활동, 긍휼활동 등은 지금까지도 사회 각계각층에서 깊숙
이 그 결실을 맺고 있는바 중요한 교회의 사회봉사 사명이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
은 이 시대의 과제를 새롭게 품고 나아가야 할 것이다.
2. 지역교회의 선교적 역할로서의 사회봉사 참여
1) 사회봉사의 성경적 기초
지역 교회의 사회봉사의 근거와 뿌리는 신구약 성경에 있으며, 하나님 나라를
이 땅 위에서 실천하기 위한 중요한 길이다.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그 창조
된 세계를 다스리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시기만
하고 그 이후에 창조된 세상을 가만히 내버려 두시는 무관심의 하나님이 아니라,
창조의 질서를 따라 운행하시고 간섭하시고 일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바로의 압제 밑에서 겪고 있는 고난과 고통을 보시고
그들의 한숨과 근심을 아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의 삶의 고통을 멀리서 보고만
계신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오셔서 그들을 구체적인 계획에 따라 건져내시고
하나님이 계획하신 가나안 복지로 데려가려고 작정하셨다(출 3:7-8).
출애굽과 약속의 땅 가나안 복지로 향하는 40년간의 노정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가 억압당하고 헐벗고 고난 중에 있는 하나님의 피조물을 향한 복지적
삶으로의 과정인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고, 과부와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인간의 삶을 돌아보시고 나아지
도록 만들기 원하시며, 우리 가운데 명령하시고 간섭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마침내 하나님은 인간의 고통과 삶의 고난에 동참하고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가운데 보내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하시며 당신의 정체성과
52 그리스도인, 세상의 소금과 빛
사명 선언을 이렇게 나타내셨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
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
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눅 4:1819).
예수님은 구약의 레위기 말씀(19:18)을 인용하면서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
셨으며 이것은 둘째로 큰 계명이라고 말씀하셨다.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에 많은
내용이 포함되어 있겠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신 핵심은 선을 행하는 것이다. 예수님
은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가지시고 병든 자, 굶주린 자, 빼앗긴 자, 억눌린 자들
에 대한 긍휼과 동정의 마음을 가지고 계셨다. 연약한 이웃이 잘되기를 위하고, 그
들이 어려움 속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적극적으로 내어주며 헌
신하고 봉사하신 것이다. 하늘의 하나님이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것같이 예수님도 이 땅에 오셔서 그리스도인을 세상에 보내신다. 봉사의 사역을
맡기셔서 지역의 교회들을 지역 사회로 보내시는 것이다. 예수님이 종으로 오셔서
섬기셨던 것처럼, 지역 교회도 종의 자세와 정신을 가지고 섬김과 봉사의 자리로
내려가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시며 유대인의 회당에서 가르치시고(teaching),
천국 복음의 핵심인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으며(proclaiming), 사람들의 모든 병
과 약한 것을 고쳐(healing) 주셨다(마 4:23, 9:35). 이러한 예수님의 3중 사역
은 오늘날의 교회도 온 세상에 두루 다니며 주의 사랑과 삶의 새로운 윤리와 가치
관을 가르치고, 구원의 복음과 죄 용서와 하나님 나라의 임함을 선포해야 하며, 더
나아가 죄 지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약함과 고통의 짐을 나누어지고 새롭게 고쳐
주는 사역을 이어 가야 하는 사명을 말해 주고 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사회봉사는 단순히 시대의 요청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계
획 가운데 있는 신앙적인 요청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봉사는 선교적 차원에
서 성경적 근거를 가지게 된다.
2) 사회봉사의 현장과 실천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이 살고 있는 한국 사회는 급격하게 변화되고 있다. 이
는 목회적 환경의 변화뿐만 아니라 선교적 실천의 장의 변화이다.
첫째는 급격한 도시화 현상이다. 우리 사회는 1960년대 이후로 중화학공업을 중
심으로 한 산업화 과정을 급격하게 거치면서 농촌에서 도시로의 인구 이동이 일어
제5장 지역교회의 빛과 소금의 사명:선교와 지역사회봉사 53
났다. 산업의 구조가 1차 산업인 농수산물 생산에서 2차 산업인 각종 상품 생산으
로 변화함에 따라 도시마다 공단들이 들어서게 되고 인구 집중현상이 일어남으로
근로자 문제에서부터 도시 빈민의 문제까지 대두되었다. 대도시 근로자의 문제는
노동 조건과 환경 문제가 집중적으로 부각되었다. 도시화 과정에는 반드시 청소년,
저소득 극빈자, 노인 등 소외 계층이 생겨나게 되고, 이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이다. 이러한 도시화 과정으로 말미암아 농어촌은 농어촌대로 도시는 도시
대로 사회 계층적이고 가정적인 여러 가지 문제들이 표면적으로 표출되게 되었다.
둘째는 사회 계층의 경제력 양극화 현상이다. 우리나라는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
서 세계에서 유래가 드물 만큼 경제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1970년대 주요 수출 품
목은 가발과 섬유였으나 1970년대 후반 중화학공업을 육성하기 시작하면서 철강
과 선박이 주력 수출품으로 떠올랐다. 우리나라 경제는 꾸준히 변화하고 성장하여
이제는 반도체, 자동차, 석유제품, 선박, 휴대전화 등을 통한 국가 경쟁력 강화가
나타났다. 그러나 이런 고도 산업화 과정은 이 사회에 빈부격차를 심화시켰으며,
경제력의 양극화는 사회 구성원들의 갈등, 교육문제, 주택문제, 문화 혜택 등 삶의
질 문제들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셋째는 고령화 사회이다. 전체 인구 중에서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차지하는 비
율로 나라를 구분하면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 4% 미만은 유년 사회, 7% 미만은
성년 사회, 7% 이상을 고령화 사회(aging society)라고 부른다. 우리나라는 2000
년에 이미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으며, 연구에 의하면 2019년에 가서 노령 인구 비
율이 14%를 넘어 고령사회(aged society)로 진입하게 된다. 특이한 것은 우리나라
의 고령화 진행 속도가 다른 나라에 비해서 빠르게 일어난다는 것이다. 노인 인구
의 급증은 한 가정의 일이 아니라 사회와 국가의 문제가 되었다. 노인 인구 급증에
따른 의료보험제도, 복지 재정 확충 문제, 경제적 뒷받침에서 더 나아가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일까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현상들이다. 한편 고령화 사회에서 고령
사회로 진행된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유아 출생률이 떨어지고 젊은이의 인구 비율
이 저하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넷째는 다원화(다문화) 사회이다. 세계화의 과정 속에서 우리나라는 이른바 3D
업종을 중심으로 외국인 노동자의 유입을 요청했다. 외국 국적을 가지고 우리나라
에서 노동력을 제공하는 이주 노동자(migrant worker)뿐만 아니라 주로 동남아
저개발국 출신의 국제결혼이민자, 국내체류 조선족 동포, 이주 노동자와 결혼 이
민자 가정의 2세 등이 우리 사회가 일찍이 겪어 보지 못했던 새로운 사회 모습을
54 그리스도인, 세상의 소금과 빛
만들어 가고 있다. 이주 노동자들에게서 주로 나타나는 복지 차원의 문제들은 장시
간 노동, 저임금, 욕설이나 폭행 등 인권유린 내지는 무시, 산업재해 등으로 요약
된다. 한편 여성 결혼 이민자들에게는 문화적 갈등과 가정 폭력, 불안정한 가정 구
조 등이 심각한 문제로 등장한다. 우리 사회는 더 이상 단일민족, 단일문화의 사회
라고 부르기 어려운 문화적, 인종적 다양성을 나타내는 사회로 깊이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봉사선교의 장으로서의 현 사회의 이러한 변화 상황을 잘 파악
하고 적절하고 조직적이며 다양한 섬김과 실천의 내용들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3) 지역교회의 사회봉사 내용과 과제
사회복지 분야를 인구집단별로 구분하면 아동, 청소년, 노인, 장애인으로 나눌
수 있고, 사회문제별로 나누면 빈곤, 마약남용 및 오용, 알코올 중독, 청소년 비행,
주택 문제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사회복지 분야는 사회보장, 빈곤문제,
아동복지, 가족복지, 노인복지, 장애인복지, 의료사회사업, 산업복지, 학교사회사
업, 교정사회사업, 여성복지, 자원봉사 등으로 구분된다.
그리스도인의 사회복지 참여를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빈곤복지사
업, 장애인복지, 노인복지, 아동복지, 청소년복지, 자원봉사로 구분해서 실천영역
에 따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⑴ 빈곤복지사업
빈곤복지사업은 크게 생계지원사업과 자활지원사업으로 구분할 수 있다. 생계
지원사업은 교회에서 빈민들의 생존을 보호해 주기 위해서 생계에 필요한 후원금
이나 의식주 관련 재화나 서비스(도시락 배달, 푸드뱅크 등)를 제공해 주는 사업을
말한다. 자활사업은 단순한 구제가 아니라 빈민들이 자신의 힘으로 자립, 자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으로 빈민들에게 자영업을 할 수 있도록 사업자금을 대여해
주거나 직업훈련을 통해서 사회가 필요로 하는 기술을 습득하거나 취업의사가 있
으나 기회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취업을 알선하는 노력들을 말한다.
⑵ 장애인복지
장애인 복지서비스는 하나님의 형상회복이라는 근본이념과 사회통합을 바탕으
로 한다. 장애인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비장애인과 똑같이 귀한 존재이며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존재로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존중되어야 한다. 장애인들이 비
제5장 지역교회의 빛과 소금의 사명:선교와 지역사회봉사 55
장애인과 같은 환경에서 교육받는 통합교육과 함께 예배를 드리며 서로 교제하는
통합예배를 통해 장애인은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통합되어 갈 수 있다. 아울
러 교회에서는 노동능력이 없는 장애인에 대한 생계지원 서비스, 장애인 재활을
위한 지역사회와 연계한 의료적 서비스, 장애인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서비스를
실시할 수 있다.
⑶ 노인복지
노인들은 육체적으로 쇠약해질 뿐만 아니라 사회활동의 감소와 경제적 활동의
축소로 정서적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리스도인의 사회복지 활동에
서 참여가 활발한 분야의 하나는 노인복지로 사회활동과 다양한 인간관계가 축소
되는 노인들을 위한 경로대학, 어르신 초청 잔치 등을 통해 삶의 활력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으며 노인들의 건강을 지원하는 의료서비스, 식사제공과 같은
영양보충 지원서비스, 홀로 생활을 하는 독거노인들에게는 급식배달, 우호방문 서
비스와 함께 상담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⑷ 아동복지
교회의 사회복지에 있어서 가장 일반적인 아동복지사업은 보육사업으로 핵가
족화된 현대 사회의 가정의 아동들이 부모가 직장에서 근무하는 동안 안전하게
보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나아가 아동이나 아동의 가족들이 지니
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상담서비스와 방임되거나 학대받는 아동들을 위한 보호
사업을 제공할 수 있다. 그리고 정부를 통해 공적부조서비스를 받지만 여전히 경
제적으로 취약한 위치에 있는 소년소녀가장세대에 대해서는 후원결연사업을 실
시할 수 있다.
⑸ 청소년복지
미래사회의 주역으로 밝고 능동적으로 성장해 가야 할 청소년기는 자신에 대한
정체성을 확립해 가는 매우 중요한 시기로 안전한 환경 속에서 자기발전을 추구해
갈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 청소년을 위해 교육적 지원을 제공할 수 있으며, 빈
곤한 청소년을 위한 장학사업을 실시할 수 있다. 또한 지역사회에서 성서적인 인성
교육을 통해 형제애를 강조하고, 학교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접근을 할 수 있으며,
문제를 갖고 있는 청소년이나 가족에게는 상담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56 그리스도인, 세상의 소금과 빛
⑹ 자원봉사
자원봉사(Volunteerism)의 사전적 의미는 지역사회 내에서 자선적, 교육적 또
는 가치 있는 활동들을 위해 자신의 시간이나 재능을 자발적으로 제공하는 실천
활동이나 정책을 말한다. 교회는 성도들이나 지역사회 주민들을 대상으로 자원봉
사를 양성하는 사업을 시행할 수 있으며, 자원봉사를 안내하며 연계 후 봉사가 적
절히 잘 진행되고 있는가에 대해 지원할 수 있다. 교회의 사회복지에서 신앙적 가
치를 갖고 적극적 참여를 가능하게 하는 자원봉사활동은 자원봉사자들을 배치하는
데 있어 그들의 관심과 욕구를 고려하고, 자원봉사활동에 대한 보람과 만족이 있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1세기의 한국교회는 시대적 상황과 지역사회 요구에 따라 사회복지의 역할을
담당해야 할 중요한 위치에 있다. 교회가 이를 실천하기 위한 과제는 다음과 같다.
① 목회자에 대한 사회복지 관련 교육의 강화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교단과
지역사회 단위에서 목회자들에 대한 사회복지 대학이나 기관에서의 재교육을 통해
지역주민이 필요로 하는 보다 많은 복지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지역사회 봉사활동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② 목회자의 교인들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사회복지에 대한
인식제고와 노력이 요구된다. 목회자는 사회복지 관련 설교 등을 통해 교인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호응을 유도하여 봉사활동에 참여하도록 독려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은 결국 사회복지활동을 위한 예산 증액으로 연결되어 더욱 활발한 사회복지
활동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③ 교회의 사회복지활동 지원체계의 전문성을 가져야
한다. 대부분의 교회에서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시행하고 있지만 그 효과
는 아주 미미하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교회의 사회복지활동이 지역주민에 대한 욕
구조사부터 체계적인 계획수립과 시행, 평가에 이르기까지 전문성이 요구되는 활
동임을 명확히 인식하지 못하는 데서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이제는 전근대적
인 구제와 자선의 차원에서 벗어나 지역주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전문적 사회
복지 기능과 역할을 해야 한다. ④ 교회의 사회복지활동 지원체계의 협력이 요구된
다. 교회가 사회복지를 실천하는 데 있어서 정책적으로 개(個)교회 중심의 사업을
탈피하고 지역 간, 혹은 교단 간의 연합적 실시를 통한 교회 사회복지활동의 효과
성과 효율성을 증폭시킬 필요가 있다. 교회 사회복지활동의 연합적 실시를 구상할
때 고려해야 할 점들은 교회의 인접성, 교단, 교회 규모 등인데 도시교회와 농촌교
회의 연합모델이나 도시교회 가운데서도 대형교회와 소형교회의 연합, 교단이 다
른 지역사회 근접교회의 연합, 노회 단위의 연합사업체 구성 등 다양한 형태를 구
제5장 지역교회의 빛과 소금의 사명:선교와 지역사회봉사 57
축할 수 있다.
3. 소금으로, 빛으로
한국교회는 선교 120년을 지내며 세계적으로 전례가 없을 정도로 가장 모범적이
고 성공적인 복음전도의 결실을 이루었으며, 초유의 축복이었다는 찬사를 받아 왔
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그런 긍정적 평가를 뒤로하고 심각한 위기감을 느끼며 살
아가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끌어올랐던 복음의 열기는
어쩔 수 없이 짧은 시간 안에 식어질 수밖에 없는 것인가 하는 자문을 하게 된다.
한국 기독교의 위기감은 한두 해 전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잉태되었
으며, 그 위기감의 출처는 교회지도자들로부터 일반 평신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
하고, 그 위기의 내용들도 선교로부터 교권, 교회재정 운용, 평신도들의 일상의 삶
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교단을 비롯한 한국교회가 전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선교적 문제점은 다음
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한국 기독교와 교회를 보는 사회의 눈이 많이 달라
졌다는 것이다. 세상의 매스미디어나 비기독교인들의 교회 평가는 냉혹하다. 높은
교회의 울타리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무관심에서, 이제는 전반적인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비기독교, 더 나아가서는 반기독교적인 모습을 보게 된다.
두 번째는 우리 교회 자체가 가지고 있는 영적 역동성의 상실이다. 이 역동성은
하나님의 교회를 교회답게 만들어 갈 뿐만 아니라 교회 울타리를 넘어가서 사회를
섬기고 정의를 나타내는 힘이었다. 지난 기독교의 역사를 보면 교회에 남아 있는
강력한 힘은 성령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능동적 힘인바, 이것이 교회 내부적으로
는 자정의 힘으로 작용하고, 외부적으로는 정의의 목소리로 혹은 사회봉사와 희생
의 섬김으로 나타나는 것이었다.
세 번째는 그런 결과로 오는 교회의 대사회적 영향력의 상실과 교회 성숙, 성장
의 퇴조이다. 이런 시점에서 한국교회는 지역사회 속에서의 교회의 본질과 그리스
도인의 사명을 새롭게 발견하고, 착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생명력 있는
복음의 능력을 되찾아야 한다.
58 그리스도인, 세상의 소금과 빛
제6장
그리스도인, 세상의 소금과 빛:
착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1. 들어가는 말
현대인들에게 테러, 강간, 폭력, 그리고 살인 같은 부정적인 사회현상들은 어느
덧 일상적인 것이 되어 가고 있다. 특히 한국은 OECD 국가 중 자살 증가율 1위로
2009년 한해 총 1만 4,413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하루 평균 42.2명이 죽어 가는 ‘세계최고의 자살국’이라는 오명을 가지고 있다. 이혼현상 또한 꾸준히 증가하여
지난 10년 동안 7배 증가하였다고 통계청은 보고하고 있다. 이처럼 사회는 점점
혼란과 어두움에 빠져들고 있고 사회가 어두워질수록 종교에 대한 기대는 커지기
마련이다. 사회의 어두움에 빛을 비춰 주는 종교적 역할을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때 한국교회에 대한 사회적 이미지는 부정적이다. 한국교회의 미
래를 준비하는 모임에서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한국의 비신자(기독교인이 아닌 사
람)중 87.6%가 ‘교회가 사회활동을 안 한다’라고 응답하여 현대교회의 사회활동에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신자들의 눈으로 볼 때 기독교인
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지만 이중적이고 이기적인 사람(53%)으로 보일 뿐이다. 위
기의 때에 기독교는 다른 주요 종교에 비해 가장 신뢰할 수 없는 종교로 전락하고
있다.
2010년의 종교신뢰도 조사 결과, 가톨릭 41.4%, 불교 33.5%, 개신교 20%로 나
황해국 목사 / 차광호 목사
제6장 그리스도인, 세상의 소금과 빛:착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59
타났다. 기독교에 대해 많은 비신자들이 외면하고 냉소하고 있는 이러한 현실은
한국교회의 미래에 암울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특히 젊은 층이 한국교회에
대한 관심이 가장 적고 가장 신뢰하지 않는 집단으로 조사된 것은 교인 수가 갈수
록 줄어들 수 있다는 경고이다. 그렇다면 사회는 기독교에 대해 어떤 역할을 기대
하고 있을까? 사회는 기독교인들이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기를(34.9%), 또한 사
회에 대한 봉사와 구제활동을 할 것을 기대한다(48.2%)(「국민일보」2009년 11월
6일자, 2010년 12월 15일자).
따라서 기독교에 대한 추락된 신뢰도를 높이고 복음화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서 기독교는 섬김과 봉사의 공동체적 책임을 새롭게 하고, 실제적인 섬김과 봉사의
실천에 대한 자각을 하여야 한다. 본 연구자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기독교의
사회에 대한 섬김과 봉사의 실천을 성찰해 보고자 한다.
2. 본론
1) 기독교의 사회에 대한 섬김과 봉사의 책임
그레이엄(Larry K. Graham, 1992)은 하나님의 사랑을 수혜받은 자(receiver)
는 그 사랑을 이웃에게 베푸는 시혜자(agent)로 기능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이처
럼 기독교인은 세상에 대한 책임을 부여받은 이들이다. 이 책임은 예수로부터 계승
한 것이다. 예수는 그의 제자들에게 ‘자신이 한 일보다 더 큰 일’(요 14:12)을 맡기
셨는데, 여기에서 예수의 일(에르가 ἔργα)은 하나님의 능력과 특성이 인식되는 행
위로서 세상 사람들을 향한 섬김과 봉사의 사역이므로 예수의 길을 뒤따르는 그의
제자의 맡은 바 직분 또한 봉사의 일이 된다. 교회와 믿는 자가 사회현상에는 무관
심하고 오직 자기 몸 불리기에만 급급하여 섬김과 봉사의 직분을 소홀할 때 세상은
신음하고 탄식한다.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롬 8:22)하
게 되는 것이다. 맥페이그(Sallie McFague, 1993)는 이를 믿는 자의 분수를 넘는
것, 또는 청지기의 직분을 남용하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따라서 현 사회의 문
제의 원인과 책임은 기독교의 역할 상실과 무책임으로 환원될 수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은 이제라도 현 사회의 문제의 심각성에 책임감을 가지고 사회의 폐해를
바로잡고 좋은 사회가 될 수 있도록 봉사하여야 한다.
60 그리스도인, 세상의 소금과 빛
2) 봉사를 통해 지향하는 성숙한 사회의 모습
봉사를통해지향하는좋은사회의모습은‘성숙한사회’이다. 성숙(Generativity)
이란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개인주의를 넘어서 타인이나 다음 세대의 복지
를 위한 관심과 돌봄의 책임성을 실천하는 삶의 모습을 말한다(Erikson, 1964;
McAdams&Aubin, 1998). 성숙한 개인은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 대하여 삶의
적극적 투자를 이룬다. 그것은 때론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의 에너지일 수도 있고,
구체적으로 보이는 도움의 행위일 수도 있다. 이는 의무감과는 다른 타인을 향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생의 에너지이다. 이러한 성숙성은 심리학적 현상일 뿐 아
니라 사회학적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이는 사회의 고통하고 신음하는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의미이다. 사회적으로 확장된 성숙성은 타인의 고통에 참여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론을 구상하게 한다. 이러한 ‘사회적 성숙성’(황해국, 2010)은
후손을 포함한 타인들의 고난과 궁핍에 대한 책임과 통렬함을 가지고 형제자매로
연합하여 이들의 웰빙을 위한 사회경제적 부흥에의 추구운동으로 행동화하는 것이
다. 스미스(Archie Smith, 2004)는 타인의 고통에 참여하여 동참하고, 연합하여
변혁의 일꾼이 되는 것이야말로 예수의 형제·자매요, 고통 가운데 거하는 자들의
형제가 되는 방법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사회화되는 성숙성은 희생이 불가피하다. 예수는 헐벗고 고통당하는 세
상을 구하기 위하여 하늘의 보좌를 버리고 성육신하셨다. 예수의 사역을 계승하는
기독교인들과 교회는 세상의 고통을 경감하기 위해 지교회중심주의와 이기적 탐심
을 버리고 타인과 사회의 복지를 위해서 희생하고 봉사하도록 요구받고 있으며,
성숙한 사회를 이루어 가도록 기대되고 있다.
코트르(J. Kotre, 1984)에 의하면 성숙한 사회의 사회문화적 특성은 다음의 다
섯 가지이다.
첫째, 서사시가 있는 사회문화이다. 해방, 과학적 진보, 영적 계시, 전쟁 영웅,
예술의 혁신, 정치적 혁명 등의 형태를 띠고 있는 서사시는 그것을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더 넓게 의미 있는 소속감’을 느끼게 해 주고, 위대하고 강렬한 어떤 것을
제공해 준다. 이 위대한 이야기를 통해서 젊은이들과 성인들은 그 위대함의 일부분
이 될 필요성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위대한 서사시가 있는 사회문화는 그 안에
속한 이들이 편협한 자기중심주의를 넘어서 그러한 위대한 길을 따르고자 하는 성
숙성에의 갈망을 불러일으킨다. 영웅의 이야기가 들리는 사회는 성숙한 사회이다.
영웅이란 자기 삶을 자기보다 큰 것에 바친 사람을 일컫는다. 즉, 자신을 버려서
제6장 그리스도인, 세상의 소금과 빛:착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61
자신을 더욱 높은 목적, 혹은 타인에게 주는 사람이다.
둘째, 서사시와 관련된 근원신화가 있는 사회문화이다. 성숙한 사회를 위하여
필요한 것으로 서사시와 관련된 근원신화가 있다. 이는 종교적 신앙이 신념으로
계승될 수 있는 사회이다. 사회근원신화는 세상이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고 선조들
이 무엇을 하였는지, 왜 우리가 새로운 사람들로서 허락되었는지를 보여 준다. 가
족이나 공동체, 그리고 나라는 근원신화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종교적이고 원초
적이다. 그러나 근원신화와 같은 ‘거대한 이야기들’은 포스트모더니즘 사회에서 점
점 신용을 잃어 가고 있다. 위대한 이야기가 없는 문화 속에서 개인은 자기탐닉에
빠지게 되고 사회는 길을 잃어 간다.
셋째, 현실 이야기이다. 현실 이야기란 위대한 미덕을 위해서 다투는 보통사람
들이 때로는 실패하고 때로는 성공하지만 어떻게든 미덕에 존중을 표하는 이야기
를 의미한다. 실패하고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을 비웃거나 짓밟는 것이 아니라 도움
과 존중의 손길을 내밀어 일으켜 주는 삶의 이야기이다.
넷째, 우화이다. 우화란 세계의 문화에서 나오는 교훈을 주는 이야기이다. 우화
에서 나오는 캐릭터들은 위대하거나 평범하기도 하며 그들의 행동은 의도적으로
역설적일 때도 있지만 대체로 명백하다.
다섯째, 경고 이야기이다. 경고 이야기는 길을 벗어나 결국에는 문화적 이상을
버리는 이야기나 문화 자체가 길을 벗어난 것 등이다. 경고 이야기는 성인들이 후
세대인 젊은이들에게 멘토 역할을 하는 것인데 사회문화적 환경이나 젊은이들의
의식수준의 변화에 민감하지 못한 구태의연한 어른노릇이나 헌신은 오히려 해악적
인 것이 될 수 있다.
3) 성숙한 사회를 향한 기독교의 실천적 방법론
(1) 영웅 이야기의 발굴
성숙한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묻혀져 있는 영웅들의 이야기가 깨어날 수 있어
야 한다. 인물을 배출하는 것이 인색한 문화일수록 이기적인 사회가 된다. 따라서
기억 속에서 잊혀져 있는 위대한 이야기들을 발굴해 내어 그 위대한 이야기들 안에
내포된 위대한 서사시가 들려져야 한다. 영웅의 이야기가 들려지고 그들의 위대한
서사시가 드러나게 되면 더 이상 후세대는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이제 혼자 모
62 그리스도인, 세상의 소금과 빛
험의 위험을 감수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시대의 영웅들이 우리를 앞서 이 여
행을 했기 때문에 미궁은 이제 더 이상 낯선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후세대
들을 위해 위대한 영웅들의 이야기와 그들의 모험 이야기를 발굴하고 들려주어야
한다. 성경과 사회의 묻혀져 있던 위대한 남녀 영웅들의 이야기들을 발굴하여 교육
하여야 한다. 이처럼 시대의 멘토가 될 수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들리면 후세대
들은 이들 지도자들을 인생의 영웅으로 삼아 그들의 길을 따라가고 모방함으로써
이기주의적 자기중심적인 탐닉의 삶으로 실패하지 않고 타인과 보다 넓은 이야기
를 위해 자신을 헌신함으로써 성숙성의 길을 갈 수 있는 것이다.
(2) 대중매체의 역할을 견제
현대사회의 대중매체의 지대한 영향력을 감안할 때 대중매체가 문화적으로 주
도함에 있어서 보다 소시민적 삶의 영웅성, 즉 평범함 속에서의 비범함 찾기의 노
력이 필요하다. 영웅 이야기는 영웅들의 현실 이야기이기도 하다. 현실 이야기란
위대한 미덕을 위해서 다투는 보통 사람들이 때로는 실패하고, 때로는 성공하지만
어떻게든 미덕에 존중을 표하는 이야기를 의미한다. 현실 이야기 속에는 정직과
힘든 현실, 그리고 개인적 희생과 가족에의 충실이 그려진다. 이러한 이야기의 주
인공은 머나먼 선조가 아니라 동료 여행자로, 매우 인간적인 사람이 된다. 서사시
에 나오는 강력한 인물과는 대조적으로 현실 이야기의 주인공은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사람이다. 위대한 주인공과 평범한 주인공이 많은 사회문화가 성숙한 문화이
며, 건강한 사회이기에 기독교는 대중매체가 병리적인 이야기보다는 건강한 영웅
이야기들을 많이 들려주도록 견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3) 신비로움과 상징이 가득한 예배의 제공
성숙한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신화적 이야기들이 설득력 있게 들려져야 한다.
종교가 외면받는 이유는 상상력이 부족하기 때문이고 상상력을 논리화, 과학화할
수 있는 신선한 방법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J. Campbell, 2004). 신화가 제 힘을
얻으려면 현대인들의 지성과 감성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한다. 진리를 무가치하게
만드는 상상력의 부족을 회개하고 설득적인 상상력으로 다가갈 수 있어야 한다.
현대인의 무뎌진 영성을 깨울 수 있는 신비로움과 상징이 가득한 제의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제6장 그리스도인, 세상의 소금과 빛:착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63
(4) 멘토링 운동
성숙한 사회는 후손들을 이끌어 주는 멘토들이 많은 사회이다. 멘토는 자기보다
나이 어린 청소년을 따뜻하게 바라보며 “너는 혼자가 아니야.”, “너는 할 수 있어.”,
그리고 “난 너를 믿어.”라고 말해 주는 사람이다(John A. Sanford&George Lough,
1988). 멘토들은 후손들에게 교훈을 준다. 멘토들은 어린 후손들에게 인류 운명을
결정짓는 모든 신비한 힘의 지식을 요약해 주고 삶이 무기력해졌을 때 어떻게 견뎌
내는지를 가르쳐 준다. 또한 성숙적 갈망을 위한 지혜와 안내를 가져다준다. 길을
벗어날 때는 경고를 해 주기도 한다. 코트르는 성숙한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 멘토
들의 역할인 교훈, 지혜, 안내, 경고의 이야기들이 필요하다고 말하였다. 교회의
장로들과 성인들, 그리고 청년들은 한국 사회의 방황하는 수없이 많은 청소년들의
멘토들이 되어 주어야 한다. 교회 안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일대일 멘토-멘티의
관계맺기를 하거나 인근 중고등학교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멘토링 활동을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
(5) 소외된 이웃에 대한 봉사:기부
성숙한 사회는 이웃에 대하여 책임을 갖는 사회이다. 현대에 들어서 이웃을 사
랑한다는 표지를 측정할 수 있는 도구 중 하나가 기부이다. 현재 우리나라 개인기
부 비율은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낮은 20% 정도에 그치고 수동적이거나 일시적인
기부가 많은 실정이다(홍선교, 2006, 26). 그러나 생존권과 관련되어 필사적인
지원이 필요한 저소득층에게는 사회적 기초생활보장제도조차 합리적으로 운영되
지 않아 불이익을 당하고 있는 형편 속에서 누구라도 이웃을 돌아보는 성숙성의
행동이 간절한 실정이다. 교회는 작은 기금이라도 정기적인 기부에 참여하여야
한다. 정기기부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모든 교인들에게 동참을 호소하여 기부
활동이 널리 퍼져 나갈 수 있는 가교역할을 하여야 한다. 교인들을 격려하여 이웃
을 위한 기부와 자원봉사에 적극 참여하여 성숙한 사회를 이루는 데 기여하도록
하여야 한다.
(6) 소외된 이웃에 대한 봉사:다문화적 소외계층(이주여성들)을 위한 봉사
알리(Alli, 1999)는 작은 자 중에 가장 작은 자에 대해 목회적 실천이 이루어져
야 한다는 포괄적 관점(umbrella perspective)을 제시한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작은 자는 다문화적 배경의 이주노동자나 이주여성들로 보
64 그리스도인, 세상의 소금과 빛
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 이유는 현재 베트남, 동남아시아 등에서 팔려온 신부 문제
가 이슈화되고 있고, 다문화의 사각지대, 한국의 인권사각지대로서 100만 명 외국
인들이 거주하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남성과 결혼한 국제결혼 이주여성들은
가난한 계층으로서 일을 해야 하며, 적절한 한국문화나 언어를 배울 기회가 없고,
국제결혼 가족 중 52.9%가 최저생계비 이하의 소득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18세
미만의 아동이 있는 가구의 경우 절대 빈곤율은 57.7%로 빈곤의 문제는 더욱 심각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경제적인 가난과 한국 사회의 단일민족 신화에 의해 타 민
족으로서 배척당하고 차별당하는 폭력성 속에 내몰리고 있다(송민애, 2007). 그러
므로 한국 사회에서 이주여성들은 예수가 무한한 사랑으로 바라본 우리 사회의 가
장 가난하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마 11:28)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가난한
자들이 지고 있는 짐은 이중으로 무겁다. 그들은 타 민족으로서 주류 한국인들로부
터의 경멸을 견뎌야만 했으며 또한 지지체계 없이 소외되어 하나님으로부터 구원
을 얻을 소망이 없음을 견뎌야만 한다(J. Jeremias, 1992, 173-174). 그러므로 교
회는 성숙한 사회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이들에 대한 섬김과 봉사를 위한
다양한 돌봄의 방법론을 강구하여야 한다.
3. 나가는 말
성숙한 사회를 위한 기독교인의 봉사는 ‘밀알’의 의미이다. 이 밀알의 희생을 토
대로 성숙한좋은 사회, 즉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진다. 여기에서 밀알(seed)은마가
복음 4:30~32; 마태복음 13:31~32; 누가복음13:18~19에 나오는겨자씨 비
유11)에 근거하는 이미지이다. 예레미아스(J. Jeremias, 1992, 141-148)는 예수의
겨자씨 비유에서 초점은 하나님 나라인데 이 경우 하나님 나라는 새들을 보호할 만
큼크게자란가지와도같다고설명한다. 이는보잘것없어보이는작은 씨앗을바라
보며갖는 ‘큰확신’이다. 교회가 사회를 향해봉사할때 이러한 봉사와헌신의몸짓
을통해하늘나라가 이루어져 간다. 묵묵히 세상을향해봉사하며예수의일을한다
는 것은 아주 작은 미미한 시작에서 오고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이다.
11) “또 이르시되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교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까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풀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나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
(막 4:30-32).
제6장 그리스도인, 세상의 소금과 빛:착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65
[참고문헌]
「국민일보」2009년 11월 6일자, 2010년 12월 15일자.
송민애. “다문화사회에서 이주여성의 몸 경험.” 연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7.
홍선교. “민간 NGO의 기부문화 발전을 위한 제언.” 한국비영리학회, 추계 학술대회, 2006.
황해국. “삼애 배민수 목사의 사회적 성숙성:심리전기적 방법론을 중심으로.” 연세대학교 박사
학위논문, 2010.
Archie Smith. Siblings by Choice:Race, Gender and Violence. St. Louis MO:Chal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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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1984.
Larry K. Graham. Care of Persons, Care of Worlds. Nashville:Abingdon Press, 1992.
McAdams & Aubin. Generativity and Adult development. Washington, D. C:Americ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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