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장에선 구경만 하고 정작 구매는 온라인으로
쇼루밍(showrooming)
지난 주말 백화점에서 신상 점퍼를 30여만원에 구입한 뒤 같은 날 온라인쇼핑몰에서 똑같은 점퍼가 20% 더 저렴하게 판매되는 것을 본다면 기분이 어떻겠는가? 아직도 단지 인터넷쇼핑몰의 판매제품을 저가 상품으로 생각하고 넘긴다면, 당신은 쇼핑의 하수라는 얘기다. 아님 귀차니즘에 사로잡힌 돈 걱정 없는 사람이던가....
스마트폰이 촉발시킨 ‘온-오프라인 유통융합
요즘 젊은 여성은 물론 3~40대 주부들도 인터넷쇼핑몰 마니아라 할만하다. 똑같은 브랜드 제품을 온라인쇼핑몰에서 20% 더 저렴하게 판다면, 미안한 생각은 잠시 미룬 뒤 오프라인 매장에서 산 물건을 환불 받아 온라인쇼핑몰에서 재구매한다. 더 나아가 아예 처음부터 유명백화점이나 브랜드숍에 들러 마음에 드는 옷이 있으면 입어보고 꼼꼼히 살핀 뒤 주문은 온라인쇼핑몰에서 한다. 오프라인매장은 직접 입어보고 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입어 보는데 돈 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똑같은 제품을 비싸게 구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게다가 온라인쇼핑몰에서는 할인쿠폰 등을 적용하면 최대 반값으로 구매할 수 있다. 이처럼 오프라인매장에서 상품을 보고 온라인을 통해 최저가격 상품을 찾는 경우를 '쇼루밍(showrooming)1)' 현상이라 한다. 말 그대로 오프라인매장은 단지 전시실(showroom) 역할만 한다는 뜻에서 나온 마케팅용어다.
이러한 쇼루밍 구매 현상은 유통업계의 지각을 바꾸기에 충분할 정도다. 최근 통계청 발표 자료에 따르면, 2012년 한해 소매시장 규모는 약 223조원으로 이는 2011년 대비 3.4~3.8% 늘어난 데 그쳤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성장세가 둔화됐던 2008년과 2009년의 5.5~5.6%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문제는 경기불황으로 인해 ‘보다 저렴한 상품을 구매하는 소비성향’이 뚜렷해져 온라인쇼핑몰에서의 구매가 대세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점이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상품을 보고 온라인을 통해 최저가격 상품을 찾는 쇼루밍 현상은 오프라인 매장을 단지 전시실 역할로만 여기는 새로운 소비행태이다. <출처: gettyimages>
2012년 12월 롯데백화점에서 내놓은 소비행태 조사결과, 최근 6개월간 백화점 방문 횟수가 과거보다 줄었다는 비율이 56.3%에 달했다. 그나마 백화점을 전보다 더 찾았다는 고객도 할인행사 때문에 갔다는 의견이 89.3%를 차지했다. 특히 `최근 6개월간 과거보다 이용이 늘어난 곳`으로 가장 많이 꼽힌 곳은 온라인쇼핑몰(34.1%)로, 기존 중산층 중심으로 강세를 보이던 대형마트(33.5%)를 뛰어넘었다. 실제로 백화점 단골들의 매장 이탈현상은 이미 대세로 굳어졌다는 반응이다. 2013년에도 글로벌 경기침체가 당분간 지속되는 상황에서 소비자들의 핵심 쇼핑트렌드는 백화점을 찾지 않고 지갑을 닫는 `소비 회피`와 이를 온라인쇼핑몰에서의 합리적인 소비로 해결하려는 `우회 소비`현상이 예상된다.
쇼핑 선진국은 이미 절반 이상이 쇼루밍 경험
백화점이나 전문쇼핑몰처럼 고급스러운 분위기에서 대접받으며 구매하고자 하는 소비심리는 당연하다. 그래서 한동안 백화점에서 쇼핑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중산층을 대변하는 문화코드로 여겨지며, 백화점에서의 ‘아이쇼핑’이 하나의 트렌드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경기불황이 지속되는 경우라면 가격은 저렴하고 구매량은 최소화하는 등 거품을 걷어내고 싶어 한다. 이미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매장방문고객 중 절반 이상이 쇼루밍을 시도해 봤다고 한다.
이처럼 새롭게 등장한 소비행태인 쇼루밍은 기업들에게 기회이자 위협이 되고 있다. 미국 최대 전자제품 유통업체 베스트바이는 2011년 4분기 17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하는 등 실적 악화에 시달려왔다. 스마트폰으로 무장한 고객들은 베스트바이에 와서 신제품을 구경한 후 스마트폰을 통해 가격을 비교했다. 그리고 정작 구매는 아마존닷컴과 같은 온라인 사이트를 이용함으로써 베스트바이의 실적은 날로 악화되었다. 이처럼 온라인과 모바일을 중심으로 한 경영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데 실패한 책임을 지고 브라이언 던 최고경영자는 2012년 4월 전격 사임하기에 이르렀다.
오프라인 매장들은 매장에 웹 반품센터, 상품 픽업센터나 무료 배송처, 결제부스, 드라이브-스루(Drive- through) 고객센터를 꾸며 온라인 고객을 끌어들이는 전략으로 바뀌고 있다. <출처: gettyimages>
최근 들어 유통업체가 쇼루밍의 공포에서 벗어나 오히려 적극적인 방식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오프라인업체는 온라인으로 주문해 당일 매장에 방문하여 찾아갈 수 있고 바로 반환할 수 있도록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 매장에 웹 반품센터, 상품 픽업센터나 무료 배송처, 결제부스, 드라이브-스루(Drive-through) 고객센터를 꾸며 고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월마트는 고객이 온라인으로 상품을 주문한 뒤 결제는 나중에 매장에서 할 수 있는 서비스를 작년부터 도입했다. 이처럼 온라인으로 주문해 매장에서 상품을 받아가는 방식은 온라인쇼핑몰인 월마트닷컴 판매량의 절반 이상에 달한다. 시어스백화점 고객은 온라인으로 주문한 뒤 휴대전화에 담긴 영수증을 매장에서 프린트해 주문 상품을 받아갈 수 있다고 한다. 노르드스트롬백화점은 고객이 온라인으로 매장 상품을 검색할 수 있도록 통합시스템을 구축했고, 가구전문업체인 컨테이너스토어는 아이를 차에 태우고 오는 고객이 차를 탄 채 상품을 받아가도록 드라이브-스루 서비스를 도입했다.
쇼루밍은 ‘결정에 따른 스트레스’를 줄여줘
같은 조건이라면 조금이라도 더 싼 것을 구매한다는 경제적 소비주체라 하더라도 쇼루밍 현상은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대표적으로 상품 구매와 소비라는 기본적인 경제활동은 단지 가격과 품질 등 이성적 만족 못지않게 쇼핑 자체의 즐거움이나 쇼핑의 사회화라는 측면을 간과한 것이다. 기분이 우울할 때 우리는 쇼핑을 하면서 기분을 달래기도 하며, 굳이 살 목적이 아닌데도 매장을 거닐기도 하며, 매장 직원과의 교감을 통해 감성적인 만족도를 높이기도 한다. 물론 쇼루밍 역시 매장에서 쇼핑이 이루어지지만 단지 구매하지 않기 때문에 감성적인 충족에는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온라인쇼핑몰을 통한 간접구매경험 이면에는 특징적인 소비심리가 자리하고 있다. 온라인쇼핑의 대표적인 이점은 구매 결정에 따른 다양한 스트레스를 줄여주기 때문이다. 구매 결정은 만족과 더불어 후회를 동반하는데 이 후회에 대한 걱정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경험하기 때문이다.
구매 후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심리는 즉각적인 피드백 효과와 관련 있다. 온라인쇼핑몰은 구매결정 버튼을 누르고 결제를 한 후 그 결정에 따른 결과물인 상품은 최소 2~3일 후에 받게 된다. 반대로 백화점 매장에서 구매결정과 동시에 상품을 손에 쥐게 되는데, 이로 인해 직전의 결정이 합리적인지 혹은 잘못된 결정인지를 자꾸 되새기게 만든다. 한마디로 스트레스라는 얘기다. 앨버타대학의 케리 케틀과 제럴드 하우블(Keri Kettle and Gerald Haubl)은 성과에 대한 피드백기간의 길고 짧음이 학습의욕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다. 시험결과에 대한 피드백을 빨리 받을 거라고 예상한 집단이 피드백을 받으려면 최소한 며칠은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한 집단에 비해 월등히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 이유는 즉시 피드백을 받을 거라고 생각했던 참가자들은 실망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더 잘해야겠다는 마음이 커졌기 때문이다. 반면 피드백을 나중에 받을 참가자들은 그만큼 실망에 대한 위협을 낮게 생각하기 때문에 덜 열심히 준비했던 것이다.
시험결과에 대한 피드백을 빨리 받을 거라고 예상한 집단일수록 월등히 높은 점수를 받았는데 그 이유는 실망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더 잘해야겠다는 마음이 커졌기 때문이다. <출처: gettyimages>
더 나아가 즉시 피드백을 받을 경우에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성적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지면서 낮은 점수를 받지 않기 위해 더 열심히 준비한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시험성적과 마찬가지로 구매 후 부조화 여부가 구매 관련 피드백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구매결정에 대한 즉각적인 피드백을 받는다면, 즉 즉각적인 구매 후 부조화 여부를 느낄 수 있다면 구매결정과 관련한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온라인쇼핑몰 구매고객이 직접 매장을 방문하는 고객보다 피드백의 시간적 여유가 더 길다고 느끼기 때문에 결정에 대한 스트레스를 덜 받게 된다. 백화점에서 고심 끝에 구매한 제품일지라도 집에 오는 길에서 바로 구매 후 부조화를 느낄 수 있다.
온라인 익명성의 이점?
또 다른 소비심리는 결정의 철회가 쉽고 어려움에 따른 후회의 크기다. 결정 철회가 어렵다면 후회가 크고 이는 구매 후 부조화의 증가를 가져오게 된다. 그러나 쇼루밍은 구매자의 익명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결정 철회에 따른 심리적 압박감이 적다. 이는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 별로 신경 쓰지 않고 행동한다는 의미다. 이처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나 시선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경우, ‘규범적 영향’에 상대적으로 덜 민감하다고 한다. 프란산스 네르와 스테파니 델란데(Prashanth Nyer and Stephanie Dellande)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다이어트 프로그램을 통해 규범적 영향 여부를 관찰했다. 그 결과 다이어트 목표치를 공개적으로 약속한 집단이 비공개 집단에 비해 다이어트 효과가 더 높았다. 이는 공개적으로 약속한 사람들일수록 그들의 약속 이행여부에 대한 사회적 압력에 더 민감하게 반응했기 때문이다.
온라인에서의 익명성의 효과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례로 미국 로체스터 대학 라이언 맥데비트(Ryan Mcdevitt) 교수에 따르면, 온라인으로 음식을 주문하는 것은 ‘익명성’의 효과로 살찌는 음식을 주문할 확률이 더 높다고 한다. 피자 체인점에서 온라인 주문은 직접 직원에게 피자 주문을 할 때보다 토핑을 33% 더 얹고 칼로리는 6%, 베이컨은 20% 더 많이 주문했다. 그 이유는 사람에게 대놓고 하기는 거북한 주문을 온라인에서는 맘껏 하게 되기 때문이다. 평소 온라인쇼핑몰에서의 구매행동 역시 ‘익명성’ 효과로 주변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유스럽기 때문에 사회적 압력에 덜 민감해진다.
온라인쇼핑몰에서의 구매행동은 ‘익명성’ 효과로 인해 주변사람들의 눈치를 안보게 되고 자유롭게 느끼기 때문에 사회적 압력에 덜 민감해지게 된다. <출처: gettyimages>
타인의 시선에 민감할수록 익명성 뒤에 자신을 숨기기 쉽다. 누군가가 있으면 공중 화장실을 이용한 뒤 손 씻을 확률이 높아지는 이치다. 사람들은 관찰자가 있으면 그 시선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더욱 예의 바르고 친절하게 행동하려는 심리가 있기 때문이다. 영국 뉴캐슬 대학교 멜리사 베이트슨 교수는 이용자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넣고 음료수를 가져가는 상자를 이용하여 실험을 했다. 첫째 주와 셋째 주에는 가격표 위에 꽃 사진을, 둘째 주에는 수줍어하는 여자의 눈 사진을, 넷째 주에는 호전적으로 응시하는 남자의 눈 사진을 붙였다. 그 결과 남자 눈 사진이 붙었을 때 가장 많은 돈이, 꽃 사진을 붙였을 때는 가장 적은 돈이 걷혔으며, 그 금액 차이는 4배 이상이었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못할 때나 그 시선이 가짜일 때조차 반응을 보인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칩 시크’ 상품이 뜬다.
장기화된 불황 속에서 작년(2012년) 백화점 매출은 5% 대의 한 자릿수 성장을 하면서 거의 모든 상품군이 부진한 것은 물론 과거 불황을 모르던 고가 명품군마저 역신장을 기록했다. 반면 신제품보다는 중고품에 눈을 돌려 중고시장은 취급 상품 범위를 확대해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저가격 균일가 점포인 '다이소' 등의 약진도 예상된다. 유통업계는 소비자들의 지갑을 어떻게 열수 있을까? 계속되는 불황 탓에 보다 저렴한 가격에 상품을 구매하려는 저가형 소비 패턴으로 오프라인에서 보고 온라인에서 구매하는 소비자들을 어떻게 매장으로 끌어들일 것인가?
이제 쇼루밍 현상은 단순한 쇼핑행태가 아닌 전반적인 소비행태의 변화를 이끄는 핵심 키워드인 것이다. 새로운 소비행태의 대표적인 사례로 저비용으로 높은 만족을 얻을 수 있는 '칩 시크(cheap-chic)'상품이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프린스턴대학 폴 크루그먼(Paul R. Krugman) 교수는 1997년 아시아 경제위기 때 ‘플랜B’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이는 기업들의 고금리, 긴축 재정정책을 뜻하는 ‘플랜A’의 실패를 만회하고자 준비하는 대안인 것이다. ‘칩 시크’의 확산은 기업의 제품전략에서의 플랜B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저성장 시대의 소비 수요 확대를 위한 플랜B로써의 역할을 의미한다. 즉 ‘칩 시크’ 상품은 싼 가격에 품질, 디자인 등 핵심 가치를 갖춘 브랜드 상품이나 서비스로 불황기에 소비자 지갑을 열게 만드는 효자 상품이다. 불황 때는 합리적인 소비경향이 늘면서 저가 항공사의 시장점유율이 오히려 늘어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저가항공 중 제주항공은 경제성, 편리성, 안전성을 내세워 취항 5년 만에 매출 2000억원, 누적 탑승객 1000만명을 돌파한 말 그대로 ‘칩 시크’상품이다.
부가기능을 제외한 저렴한 세탁기처럼 ‘칩 시크’상품은 싼 가격에 품질, 디자인 등 핵심 가치를 갖춰 불황기 소비자 지갑을 쉽게 열게 만든다. <출처: gettyimages>
제품의 핵심가치인 품질과 디자인까지 고려한 ‘칩 시크’브랜드는 단지 비용 절감차원의 유통업체 PB(private brand)의 노 디자인(no design)이나 동대문식 노 브랜드(no brand)와는 확연히 다르다. SPA 브랜드인 유니클로 등 패션의류와 미샤 화장품 등 소비재로 시작된 ‘칩 시크’ 열풍은 유통, 항공, 금융 등 서비스 업종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복잡한 다기능 고가의 드럼세탁기가 인기였지만 요즘은 부가기능을 빼서 가격거품을 제거한 착한(?) 세탁기를 찾는 고객이 늘고 있다. 한 가지 더, 쇼루밍은 소비자로 하여금 가격에 대한 불안감 해소라는 긍정적인 측면이 간혹 충동적 소비라는 부정적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 백화점에서 비싼 제품은 선뜻 구매 결심을 못하지만 온라인쇼핑몰에서는 가격에 대한 심리적 저항이 줄어들게 된다. 결국 온라인쇼핑몰에서는 소비를 촉진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소비자 입장에서는 항상 비싸든 싸든 계획적인 구매습관이 필요하다.
글 범상규 건국대학교 교수 발행 2013. 02.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