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에서 남긴 작은 흔적들
-수원체신청 시기
지산 윤 범 식
체신청장은 의전에 남달리 관심이 컸다.
새로 부임하는 도단위道單位 기관장 예방 시에는 서무과장이 현관문 앞에서 영접 하되 “청장실은 4층입니다.” 그리고 2층 첫 계단을 올라 설 때 “이 건물은 아직 엘리베이터를 설치하지 못해 걸어 올라가시게 하여 죄송합니다” 라고 말해야지 1층에서 미리 말해버리면 4층까지 올라오는데 지루하다. 라던가. 내방來訪하는 손님에게는 a. b. c 급으로 미리 구분하여 준비한 기념품을 증정한다. 기념품은 타월, 재떨이, 골프공, 곽 인삼, 같은 것 들이었다. 또한 새로 부임하는 판, 검사에게는 밤늦게 사택을 방문 명함과 함께 부임환영 기념품을 청장을 대신하여 전달했다. 장관 순시 때는 예비군인 직원들에게 군복을 입혀, 현관 복도에 도열했다가 장관이 들어오는 순간 “받들어 총!” 하고 큰 구령에 예기치 못한 감명을 받도록 하는 상황을 연출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고 관내 기관장들의 애경사에도 그냥 지나쳐버리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때때로 이들 애경사에 청장을 대신하여 참석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어느 날은 재직 중 별세한 기관장의 조문을 가게 되었다. 그는 나보다는 20여년의 연상이신 분이었는데 나와는 오래 전부터 잘 알고 지낸 터였다. 사교성이 뛰어나 경기도내 우체국 직원들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비교적 나와는 각별히 친하게 지냈다. 이따금 나와 만나면 그는 나에게 자기 속내를 숨김없이 털어 놓았었다. 한 직장에서 40여 년간 있다 보니 알고 지낸 사람들은 줄잡아 수 천 명은 좋이 되고도 남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친소관계를 떠나 여러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화재의 인물들이 꽤나 있다. 그중에서도 소문난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서울에서 동쪽으로 100여리 춘천 쪽으로 가다보면 아직 시市로 승격되지 못한 조그마한 군청 소재지 변두리에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 태어나 근근이 소학교를 마치고, 누구의 도움으로 우체국 견습생見習生으로 들어가 열심히 일을 배우고 익혀 오래근무를 하다 보니 우체국에서 하는 일을 다 터득하고 정식 직원이 되었다. 그때는 공개채용 시험제도라는 것이 없었던 시절이니까 줄만 잘 서면 얼마든지 공무원으로도 채용이 가능했다.
본래 성품도 좋은데다가 똑똑해서 일 잘하기로 소문도 났지만, 타고난 사교술에는 당해낼 사람이 없었다. 서기에서 주사로 승진이 되어 군郡 소재지 우체국장까지 되었다. 그렇게 십수년 간을 우체국장으로, 지방 기관장에 토박이 유지로 행세를 잘 해왔는데, 5.16 직후 군수는 사무관에서 서기관으로 군청 소재지 주사우체국장은 사무관으로 직급이 한 급식 승격되었다.
큰일이 난 것이다. K씨는 주사에서 사무관이 되어야 그 자리를 유지 할 수 있는데 총무처에서 시행하는 사무관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면 면소재지 우체국장으로 내려 앉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체면이 영 말이 아닌 것이 이제까지 그 지역에서 군수, 서장과 같이 기관장 행세를 해왔으니 말이다.
사무관 시험에 응시하려면 일정한 응시 자격을 갖추고서도 상위 순번으로서 결위缺位의 3배수를 총무처(현, 행자부)로 올려 경쟁시험에 합격을 해야만 사무관이 될 수 있다. 쉽게 말해 10자리가 비었으면 1000명중에서 위로부터 30명을 뽑아 시험을 보게 해서 그 중 10명을 사무관으로 임용하는 것이다. K씨로서는 하늘의 별 따기다. 정해진 규정의 순번으로서는, 두 번 죽었다 깨어나도 불가능 하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우선 기발한 작전계획을 세웠다. 당분간 주사국장으로서 사무관국장 자리에 직무대리로 연장해 앉아있는 것이다. 그리고 대외적으로 활동은 더욱더 활성화하여 주사나 사무관이나 서기관이나 똑같이 동격으로 처세하였다. 2∼3년이면 교체되는 다른 관서기관장들, 새로 오는 기관장들의 첫 번째 부임인사는 의당 고참 기관장인 우체국장에게 먼저 오는 것이 관례로 되어버렸다. 주위에 주둔한 부대의 군단장이나 사단장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 시절에는 지금처럼 차車가 많지 아니할 때였으니까 K씨가 서울 출장 나들이 할 때에는 늘 다른 기관장 차를 빌려 타고 다녔다. 어떤 때는 군용 지프차나 별이 달린 차도 타고 내가 근무 했던 체신청에도 왔었다. 물론 주사우체국장에게 관용차가 배정 될 리 없었다.
체신청에 올 때마다 가까운 다방에 주문해 체신청 전 직원에게 차 한 잔씩을 배달 시켰다. 그래서 사람보다 차茶가 먼저 배달되어 오면, 또 K국장이 왔다는 것을 알아챘다. 여직원들에게는 별도로 껌 한통씩이 보너스로 주어져 인상을 남겼다.
그 무렵 군軍 출신, 신임 체신부장관 P씨가 각 도청 소재지 국을 순시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K국장은 시간을 맞추어 전 기관장들과 지방유지 군단장 사단장들을 우체국장실로 불러 대기 시켜놓고 군악대까지 동원, 우체국직원들과 함께 큰 길 앞에 도열해 있다가 P장관이 지나치려할 무렵 ‘받들어 총’과 동시에 군악대의 팡파르 주악이 울려 퍼졌다. 어이없어 하며 차에서 내린 P장관에게 커다란 화환이 목에 걸렸다. “저의 우체국은 순시 대상우체국은 아니오나 행차하시는 관문에서 잠시 멈추시어 저의 국에 들러주시어 차라도 한잔 대접 할 수 있는 영광을 베풀어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어느 장관인들 그냥 마다하고 지나칠 수 있었겠는가?
우체국장실 입구에 들어서며 처음 눈에 뜨인 것이 솔방울로 크게 만든 멋진 독수리 “그것 참! 잘 만들었군!” 하며 들어서자 기관장들의 환호와 박수 소리, 그리고 얼마 전까지 군에서 같이 근무한 휘하 군단장 사단장들을 만났으니 어이 아니 반갑고 인상적이지 아니 하였겠는가! 예정에 없던 우체국장실에서 차 한 잔을 마시고 떠나가는 P장관의 차 트렁크 속에는 솔방울 독수리와 그 고장 특산물 잣 한말이 이미 실려 있었다.
차떼기 정치자금이 오가는 세상에 비해 그 옛날 고무신 막걸리 선거를 할 때 이야기야 이 시대에 사는 사람들은 이해가 잘 안가는 말이겠지만 옛날 이었으니까, 인상에 짙게 남았던 P장관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K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당신 소원이 무어야?” 하고 물으니 “네. 저요, 그냥 여기에 오래 있는 것입니다” 그리 대답하니 “그것이 무슨 소원이야! 정말로 소원을 이야기 해 보라니까” 아무리 반복하여도 소원이 아무튼 이 자리에 그냥 있는 것이라 하니 “알겠소”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 이튼 날 출근 하자마자 간부회의에서 무조건 “아무데 K국장은 본인이 원 할 때까지 그 자리에 그냥 두도록∼ 지시 하시오!” 하니 어느 부하가 ‘런 것이 아닙니다’ 하고 이의를 제기할 수 있었겠는가. 더욱이나 5.16 직후 군사정권하에서. 그래서 K국장은 주사가 사무관 직급 우체국장 자리에 그냥 직무대리로 머물면서 군소재지 기관장을 한참 지속했다. 지방 최고참 유지여서 여당 국회의원 당선에도 크게 영향력을 주기도 했다. 그의 입지는 더욱 공고해져갔지만 그러나 숙제는 남아 있었다. 빨리 사무관이 되는 것이었다. P장관이 언제까지 장관으로 머물러 있을지는 미지수니까.
그는 사무관이 될 가망이 있는 길을 찾아냈다. 총무처 사무관 시험에 단독 추천되어 혼자 시험을 볼 수 있는 특별규정을 찾아내어 그 길을 열어 냈다. 혼자 추천을 받아 시험을 쳤다. 아무리 혼자 보는 시험이라 할지라도 답안지에 글자라도 몇 자 쓰여 있어야지 백지위에 어찌 점수를 줄 수 있었겠나! 맨 땅에다 헤딩을 한다고나 할까 낙방은 당연지사였다. 시험과목이 헌법, 행정법, 행정학, 경제학이었다. 언제 한 번도 그 내용을 들어 본적도 없었던 것 들이었다. 대학 4년 간 전공한 사람들도 간혹 떨어지는 판국인데.
돈과 빽 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한번 낙방한자는 1년간 응시 자격이 제한된다. 서울의 고시학원 유명강사를 과목별로 골라 불러들였다. 과목별 단독 과외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본인 말로는 엉덩이가 짓무르도록 죽을 똥을 쌌다고 그랬다. 1년이 지났다. 족집게 강사의 예상문제를 찍어 준 것이 출제가 되었는지 합격을 했다. 가문의 큰 영광이 찾아왔다. 옛날이면 고을 원님 급이고 5.16 전까지만 해도 군수 급인 사무관이 된 것이다. 떠들썩한 동네잔치에 소와 수많은 돼지가 희생 됐다. K국장은 이렇게 해서 그 자리를 계속 지켰고, 아들, 딸, 사위도 우체국에 들어와 그의 후광을 입었으나 K국장은 몇 년 뒤 정년을 얼마 안남기고 유감스럽게 백혈병으로 파란만장한 일화를 남긴 채 흙으로 돌아갔다.
아마 내가 그분들의 혜안과 사교술을 반만이라도 닮고 태어났더라면 장관까지는 몰라도 차관쯤은 되지 아니했을까하는 생각을 어렵사리 해 본다.
첫댓글 윤범식 선생님의 글을 보니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