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적 소비](1)왜 ‘착한 소비’인가
입력: 2008년 07월 20일 18:30:58
ㆍ원료·생산·기업정신… ‘상품 이면’까지 생각한다
소비의 기준과 개념이 달라지고 있다. 값싸고 좋은 물건이면 산다는 기존의 ‘합리적’ 소비 개념에서 ‘좋은 기업이, 좋은 뜻으로, 정당한 대가를 주고 만든’ 상품을 사겠다는 ‘윤리적 소비’로의 변화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소비자들이 자신의 신조와 정치적 의식에 따라 상품을 선택함으로써 기업의 생산활동에 영향을 미치겠다는 매우 적극적인 행동이다. 최근 국내에서 주목받는 ‘공정 무역’도 윤리적 소비의 한 단면이다. 그러나 윤리적 소비 개념은 국내 소비자들에게는 아직도 생소하다. 경향신문 특별취재팀이 영국과 미국 등 윤리적 소비운동 현장과 소비자들을 찾아 실태를 취재했다. 한국의 적용사례와 제언 등 6회에 걸쳐 글을 싣는다.
최근 암울한 경제 상황에도 불구하고 유독 연일 상승을 누리며 잘 나가는 주식이 있다. 주황색 봉지라면으로 유명한 삼양식품이다. 삼양식품의 주가는 연일 상한가 행진을 기록하며 2주새 200%가량 급등했다.
삼양식품은 지난 두달간 이어진 촛불 정국에서 가장 큰 수혜주로 꼽힌다. 소위 조·중·동으로 불리는 보수 언론의 논조에 반대하는 네티즌들 사이에서 대대적인 ‘삼양식품 구매 운동’이 벌어졌다. 보수 언론에 반대하기 위해 광고주에 대한 광고 중단을 요구하는 가운데 삼양식품이 네티즌의 의견을 수용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삼양식품을 살리기 위해 라면이나 주식을 사자”는 흐름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삼양 살리기’ 새 소비행태
삼양의 라이벌인 농심의 경우 촛불 정국의 직격탄을 맞은 경우다. 70%를 넘나들던 농심의 라면 업계 시장점유율은 촛불의 불길이 거세진 6월을 전후해 60% 수준으로 떨어졌다. 물론 올 초부터 과자나 벌레 등 이물질이 발견된 탓도 있다. 하지만 네티즌 사이에 퍼진 ‘불매 운동’도 농심의 굳건한 아성을 무너뜨리는 데 한 몫한 것으로 보인다. 삼양과 마찬가지로 광고 중단을 요구받았지만 보수 언론에 광고를 강행할 것이라는 입장을 나타내자 네티즌들이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이들 네티즌이 삼양을 선택하고 농심을 거부한 모습은 최근 전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착한 소비’의 새로운 모습으로 바라볼 수 있다. 착한 소비, 즉 윤리적 소비(Ethical Consumption)는 자본주의의 ‘합리적’ 소비를 거부하고 ‘윤리적으로’ 상품을 선택하는 행위다.
정치·사회적 영향도 고려
|
뉴욕 브루클린의 ‘고릴라 커피(Gorilla Coffee)’에서 바리스타가 커피를 만들고 있다. 고릴라 커피는 100% 공정무역으로 거래된 커피와 차를 취급하는 독립적인 공정무역 카페다. 뉴욕 | 김유진기자 |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를 하려면 상품의 가격과 질, 양 등 수치화할 수 있는 기준을 들이대는 것이 기본이다. 가격 대비 품질이 우수하면 그 상품을 구매하는 것으로 소비 행동은 마무리된다. 회사 이름을 보고 상품을 구매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것 역시 회사의 유명도가 품질을 보증한다는 믿음에서 나온 결과일 뿐이다.
하지만 윤리적 소비는 상품 결과만을 놓고 고르지 않는다. 상품의 원재료에서부터 제조와 완성, 유통 등의 과정과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의 정신까지 하나하나 점검하고 꼼꼼히 따진 후 선택하는 것이다.
이제는 일반인에게도 널리 알려진 공정 무역은 대표적인 윤리적 소비의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공정 무역은 제3세계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정직한 유통과 기업 정신을 살펴보는 윤리적 소비다.
커피에서 시작된 공정무역은 이제 초콜릿과 허브 같은 식·음료품에서 의류와 도자기 같은 수공예품에 이르기까지 넓은 영역에 걸쳐 뿌리내리고 있다.
미국 뉴욕 브루클린의 파크 슬로프 5번가에 위치한 ‘고릴라 커피’ 역시 공정 무역이 자리잡고 있는 현장이다. 이곳에서 취급하는 모든 커피와 차는 100% 공정 무역을 통해 거래된 제품들이다. 카페 내부에 걸린 세계 지도에는 공정 무역을 통해 이곳으로 온 커피 원두들의 생산지가 표시돼 있다.
공정무역 자리잡는 선진국
공정무역 외에도 온실 가스를 줄이는 로컬푸드·푸드 마일리지 운동, 아동을 착취하는 비양심적인 대기업 제품을 거부하는 보이콧 운동 등 착한 소비는 소비자 운동의 여러가지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윤리적 소비가 앞서 나타난 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꾸준한 홍보와 캠페인 덕에 윤리적 소비에 대한 의식이 소비자 사이에도 서서히 뿌리내리고 있다. 의식 변화가 실제 소비 생활의 실천으로 이어지면서 윤리적 소비 시장도 점차 확대되고 있다. 영국 코퍼레이티브 은행(Co-operative Bank)의 조사에 따르면 현재 영국의 윤리적 소비 시장 규모는 323억파운드에 달한다. 1999년 96억파운드 규모였던 것과 비교하면 3배 넘게 성장한 셈이다.
이 같은 소비자들의 의식 변화는 기업의 윤리적 생산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상당히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해 다국적 컨설팅업체 매킨지는 ‘경쟁의 새 규칙 형성’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윤리적 소비자층의 증가세를 보면 기업 이익적인 관점에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시장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실제로 에티스피어 매거진과 포춘이 공동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포춘의 세계 500대 기업 가운데 윤리적 경영을 실천하는 기업의 성장세가 평균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500 지수의 성장률보다 더 높았다. 착한 소비의 수요가 공급의 흐름까지 바꾸고 있는 셈이다.
<특별취재팀|국제부 박지희·김유진·정환보기자>
ㆍ적극구매·불매·제조사기반 구매 등 형태 다양
‘윤리적 소비’ 개념은 소비가 단순히 생계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옳은 삶’을 살아가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인식이 싹 트면서부터다. 1970년대와 80년대 서구, 특히 영국에서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흑백인종분리 정책)에 반대하는 사회적 목소리가 높았다. 이에 대한 사회적 의사 표출의 한 형태로 남아공과 관련있는 기업과 제품의 상품·서비스를 불매하자는 운동이 시작됐다. 이에 기업은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고, 아파르트헤이트는 철폐됐다. 환경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된 80년대 이후에는 기업들이 ‘친 환경적 소비자’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영국 맨체스터에서 발행되는 격월간지 ‘윤리적 소비자(Ethical Consumer)’는 ‘소비’야말로 그 어떤 것보다 정치적일 수 있다고 말한다.
잡지는 ‘윤리적 소비자 입문 가이드’에서 윤리적 소비의 4가지 영역, 즉 △적극 구매 △불매 △제조사 기반 구매 △종합적 접근을 제시하고 있다. 예컨대 지구 온난화가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는 소비자는, 에너지 절약형 전구를 적극 구매하고 연비가 낮은 대형 자동차를 불매하는 것이 옳다. 독재 국가의 민주화에 관심이 많은 소비자는 그 나라에 공장을 세워 독재 권력에 일조하고 있는 제조사가 만든 일체의 제품을 불매한다. 윤리적 소비를 실천하려는 소비자는 자신의 관심영역이나 문제의식이 닿는 항목의 제조사·제품의 윤리점수를 잡지에서 확인해 구매에 도움을 얻는다.
윤리적 소비는 사실 서구만의 것은 아니었다. 일제시대 우리나라의 물산장려운동이나 영국이 통치하던 인도의 스와데시 운동도 윤리적 소비의 전형이다. 이들 나라의 소비자들에게는 ‘반식민주의는 윤리적’이라는 공통의 인식이 있었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는 다소 복잡해진다. 윤리 기준에 대한 개인차와 집단차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소비자 개개인의 윤리 기준이 정교해질 때 제품은 이를 따라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윤리적 소비의 첫 걸음은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윤리적인가’를 생각하는 데서 출발한다. <정환보기자>
=========================================================================================================================
[윤리적 소비](2) 뿌리 내리는 미국의 공정무역
입력: 2008년 07월 28일 03:09:56
ㆍ학교·교회·지역사회를 ‘통로’로 급속 확산
“왼쪽에 있는 농부의 슬픈 얼굴이 보이나요? 이런 가난의 모습이 공정무역을 만나 오른쪽 사진처럼 행복하게 됐어요. 공정무역은 변화를 가져오는 대안적 시스템입니다.”
강사의 말에 비좁은 교회 도서실을 가득 메운 30여명이 귀를 쫑긋 세운다. 강좌의 주제는 ‘공정무역 입문’. 공정무역 바나나 업체 ‘오케 바나나’의 마케팅 담당자 젠 그레이가 에콰도르의 예를 들어 공정무역의 기본 원리를 설명한다. 소비자들이 제3세계 농부들에게 국제 시장 가격보다 비싼 값으로 ‘공정무역 제품’을 구입하는 것이 농부들의 수입 증가는 물론 학교·병원 건설과 같은 지역사회 내 재투자로까지 이어진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사람들의 힘을 키워주는, 인간적이고 사회적인 투자”가 된다는 설명이다.
“인간적이고 사회적인 재투자”
|
미국 최초의 공정무역 협동조합 ‘이퀄 익스체인지(Equal Exchange)’가 판매하는 초콜릿, 차, 커피와 공정무역 커리큘럼, 학교 모금활동 소개 책자 등이 진열된 부스에 시민들이 모여있다. |
지난 5월10일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세계 공정무역의 날(World Fair Trade Day)’ 기념 행사의 풍경이다. 행사장인 하버드대 로스쿨 인근의 작은 교회는 ‘윤리적 소비자’들의 적극적 참여를 바탕으로 미국에서 단단하게 뿌리내린 공정무역의 현주소를 보여줬다. 커피·초콜릿·장신구·수공예품·장미꽃 등 각종 공정무역 제품들을 파는 바자와 공정무역 관련 강좌 등이 어우러진 이날 행사에는 100명이 넘는 공정무역 활동가 및 시민들이 모여 축제 분위기를 연출했다.
인도 캘커타의 빈민 여성들이 만든 공예품이 전시된 부스를 유심히 보던 회사원 크린스 리우는 수제 카드 몇 장을 골랐다. 리우는 “CVS 같은 편의점에서 장당 5달러에 파는 멜로디카드와 가격이 같다. 같은 액수라면 공정무역 제품을 사는 것이 훨씬 더 기분 좋다”며 웃었다.
미국 사회에서 공정무역은 소비자 개개인은 물론 학교나 교회 등 공동체와 지역사회를 터전 삼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미국은 전 세계 공정무역 시장의 약 3분의 1을 점유하는 최대 시장. 공정무역 제품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업체도 500여곳에 이른다. 특히 원유 다음으로 전 세계 교역량이 많은 커피 부문의 성장이 눈부시다. 공정무역 커피는 현재 미국 커피 시장(스페셜티 커피 포함)의 4%가량을 차지한다.
매사추세츠주 웨스트브리지워터의 ‘이퀄 익스체인지(Equal Exchange)’. 1986년 설립된 미국 첫 공정무역 협동조합인 이퀄 익스체인지의 22년간 발자취는 미국 내 윤리적 소비자층의 발전사와 궤를 같이 한다. 커피를 시작으로 차, 코코아, 초콜릿, 견과류 등으로 품목을 넓혀 온 이곳은 연평균 30%씩 성장해왔다. 올해 초에는 경제·경영 전문지 ‘패스트 컴퍼니’ 선정 영리회사 부문의 우수 사회적 기업으로도 선정됐다.
적극적인 주부들이 운동 리더
|
보스턴의 한 교회에서 열린 ‘세계 공정무역의 날’ 기념 바자에서 시민들이 인도 빈민여성들이 만든 수공예품을 보고 있다. |
롭 에버츠 공동대표는 “우리가 추구하는 메시지, 즉 공정무역이 사람들의 공감대를 얻고 있는 것 같다”며 “환경 문제나 노동 착취, 중국산 제품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면서 음식이 어디서 왔는지 신경쓰는 미국인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미 전역 200여개 학교가 이퀄 익스체인지의 제품을 이용해 모금 활동을 벌였다. 미국 공립학교들은 부족한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모금 행사를 여는데, 이때 주로 판매되는 물건이 정크푸드나 일회용품이라는 데 문제의식을 느낀 학부모들이 이퀄 익스체인지의 문을 두드렸다. 공정무역 상품을 팔아 수익도 남기고 빈국의 농부들도 도우면 ‘1석2조’라 여긴 것이다. 모금 프로그램 디렉터인 버지니아 버먼은 “진보적이고 적극적인 주부들이 학교 내 공정무역 운동의 리더”라며 “자녀의 식생활과 건강을 신경쓰는 주부들은 윤리적으로도 민감하고 지역사회, 지구 환경에도 관심이 높다”고 전했다.
학교 내 공정무역 운동은 미래의 소비자가 될 학생들을 위한 교육 차원에서도 성과를 거두고 있다.
아이들이 대안적 소비를 이해하고 또 실제로 참여함으로써 윤리적 소비에 대한 인식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사용하는 수업용 공정무역 교재도 여러 가지 나와 있다.
이퀄 익스체인지도 지난 1월 4~9학년생을 대상으로 ‘공정무역 커리큘럼’을 개발했다. 4개 단원으로 구성된 이 교재는 사회나 경제, 수학 등의 기존 과목과 연계해 학생들이 식품의 생산과 교역 전반 및 공정무역에 관한 이슈들을 두루 익힐 수 있도록 했다.
매사추세츠주 서튼의 한 고등학교 교사 마이클 위티어는 다음 학기부터 사회 과목에서 이 교재를 사용할 예정이다. 위티어는 “내가 있는 학교는 농촌 지역에 있으며 백인이 99%”라면서 “지구촌을 살아가는 학생들에게 넓은 시야를 길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버먼은 “아이들이 초콜릿 노동자가 있고, 제품별로 노동과정 등이 다르다는 점을 배우면 농부와 땅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자연에도 관심을 갖는다”고 말했다.
구매자들 환경·노동에 관심기독교 등 종교단체들도 공정무역 확산에 앞장서고 있다. 보스턴 ‘세계 공정무역의 날’ 행사를 주최한 ‘보스턴 믿음정의네트워크(BFJN)’는 이 지역 40개 복음주의·진보 성향 교회와 사회단체들의 연합체다.
이퀄 익스체인지가 가톨릭, 감리교, 장로교 등 미 전역의 10개 교단과 함께 운영하는 종교간 프로그램도 공정무역이 퍼져나가는 통로다.
교인들은 매주 일요일 미사 또는 예배 후 교제의 시간에 마시는 커피를 공정무역 제품으로 바꾸고 공정무역을 위한 모금 행사를 벌이고 있다. 종교간 프로그램 디렉터인 애나 유텍은 “물질주의가 만연한 미국에서 노동의 의미를 생각하는 것은 쉽지 않다”면서 “공정무역은 노동 과정과 누가 만들었는지, 그 과정과 대우를 질문하면서 소비자 가치를 실현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의미있는 실천’ 가장 쉬운 기회공정무역으로 뭉친 착한 소비자 군단은 단순히 소비 행위를 넘어 사회 변화까지 넘보고 있다. 특히 대학생 등 젊은층은 공정무역을 지구촌 빈곤문제 해결의 한 방법으로도 본다. 인도 빈민 여성들이 만든 제품을 파는 ‘골든트리아츠’의 공동 운영자인 필립 허우는 “의미있는 행동을 하기 원하는 학생들에게 공정무역은 쉽고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BFJN의 레이첼 앤더슨 대표는 “보스턴 일대가 ‘공정무역 마을’로 선정되도록 하는 게 목표”라며 “이를 위해 교회, 대학, 지역사회, 정부와도 협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공정무역?
가난한 제3세계 생산자들이 만든 물건을 정당한 값에 구매해 자립을 돕는 대안적 무역 형태이자 윤리적 소비자운동. |
<보스턴·웨스트브리지워터 | 글· 사진 김유진기자>
[윤리적 소비]“무역관행 바꾸려면 정책변화 뒤따라야”
ㆍ뉴욕시 공정무역연합 활동가 스캇 코디
글로벌 자본주의의 중심지 뉴욕에서도 공정무역을 정착시키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순수 자원봉사자들로 구성된 ‘뉴욕시 공정무역연합(NYC Fair Trade Coalition)’은 4년 전부터 뉴욕시에서 공정무역의 저변을 넓히기 위해 활동하고 있다.
활동가 스캇 코디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5월10일 뉴욕 브루클린에서 열린 ‘세계 최대 커피 브레이크’라는 행사에 참석한 200여명 중 공정무역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며 “뉴욕의 변화가 미국과 전 세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대학생과 종교단체 등이 미국의 공정무역 소비자운동을 주도해왔다고 밝힌 코디는 공정무역이란 이슈 자체가 논란 소지가 적다는 점도 운동의 파급력을 키운 계기가 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상에서 하는 작은 실천(소비행위)만으로도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공정무역에 담긴 메시지의 힘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코디는 “공정무역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라며 “윤리적 소비는 반드시 정책적 변화를 동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정무역은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대안적 경제 틀을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만큼, 궁극적으로는 국제교역의 규칙을 바꾸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특히 스타벅스 등 대기업들의 참여로 시장에서 공정무역 제품을 찾기가 수월해졌지만, 무역 관행이 본질적으로 바뀌지는 않았다고 지적했다. 코디는 “기업과 국가가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며 “구체적으로 북미 자유무역협정(NAFTA) 등의 재협상이나 세계무역기구(WTO) 협정 규제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코디는 “미국과 유럽의 경우 커피가 공정무역 확산의 촉매가 됐다”며 “한국에서도 상황에 맞는 상품을 찾으면 좋을 것 같다”고 조언했다. 또 공정무역은 ‘소비자 주도형 운동’이라고 밝히면서 “기업은 소비자의 요구에 반응하게 돼 있다. 한국 소비자들도 먼저 요구하고, 움직임을 조직하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뉴욕 | 김유진기자>
========================================================================================================================
[윤리적 소비] 3. 기업을 변화시키는 영국의 소비자
입력: 2008년 08월 11일 03:07:02
ㆍ대형마트 ‘보이콧’ 압박…공정무역·친환경 유도
“싼 것, 싼 것, 더 싼 것을 찾는 사람들의 생각이 그렇게 만든 겁니다.”
지난 6월 말 영국 맨체스터에 있는 유기농 식품점 ‘유니콘’의 직원 러셀 니컬슨이 한국의 쇠고기 수입 논란에 대해 던진 말이다. 그는 “값이 싸면 무조건 팔린다는 인식에 근거한 협상 아니냐”고 단순하면서도 명쾌하게 해석했다.
유니콘에서 파는 제품은 모두 유기농으로 재배된 것이다. 자연히 가격은 일반 상점보다 비싸다. 하지만 니컬슨은 “지역 주민들이 제품을 신뢰하고 가격 차이를 합당한 것으로 여긴다”고 했다.
|
영국 런던의 뉴몰든 테스코 매장에 ‘탄소 발자국’ 홍보물이 세워져 있다. 탄소 발자국(작은 사진)은 제품이 만들어질 때까지 사용된 탄소의 총량을 포장에 부착해 놓은 것으로 소비자들의 윤리적 선택을 돕는다. |
-단골손님들이 폐업 상점 살려내-
매장에 들어서니 벽에 붙어있는 ‘테스코에 아니라고 하세요(Say no to Tesco)’라는 문구가 인상적이었다. 테스코는 영국 대형 마트 업계 1위다. 니컬슨은 “영국 소비자가 지출하는 돈의 7분의 1을 테스코가 가져간다. 5년 전만 해도 8분의 1이었다. 테스코가 점점 공룡이 돼가는 동안 문 닫는 지역 상점들이 급증했다”고 말했다. 유니콘도 그 와중에 문을 닫은 경험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유니콘 매장이 상당히 큰 규모이고 평일 낮 시간인데도 손님들이 계산대 앞에 줄을 서 있었기 때문이다. 니컬슨은 “6년 전 인근에 테스코, 아스다 등 대형 마트가 등장하는 바람에 가게 운영이 어려워져 폐업했다”며 “그런데 몇 달 지난 뒤 ‘안전한 식품을 구할 곳이 사라져 안되겠다’는 단골 손님들이 뜻을 모았다”고 말했다. 지역 주민 300여명이 40만파운드(약 8억원) 가까운 돈을 출자했다. 지금은 기부 받은 돈을 다 갚을 만큼 경영이 나아졌다. 지역 주민들이 가게를 살린 것이다.
테스코를 비롯한 대형 마트는 영국 소비자들의 단골 보이콧 대상이다. 2005년 출범한 반 테스코 동맹 ‘테스코폴리’라는 조직까지 있을 정도다. 테스코폴리에는 ‘지구의 친구들’, 신경제 재단 등 7개 NGO가 함께 참여해 활동하고 있다. 테스코의 정책을 지속적으로 감시하다 비윤리적 이슈가 발생하면 적극적으로 보이콧 활동에 나선다. 2005년에는 바나나 문제가 이슈였다. 납품 단가를 적정가보다 30% 이상 낮춘 테스코의 정책이 중남미 플랜테이션 노동자들의 희생을 불러온다는 이유에서 ‘지구의 친구들’을 중심으로 불매 운동과 항의 퍼포먼스가 확산됐다. 한바탕 홍역을 치른 테스코는 지금 공정무역 인증 라벨을 붙인 바나나만 팔고 있다.
런던 남서부에 위치한 테스코 뉴몰든 엑스트라 매장 입구에는 ‘탄소 발자국’에 대한 홍보 부스가 설치돼 있다. 기업 이미지를 환경친화적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다. 탄소 발자국은 제품이 생산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탄소가 쓰였는지 총량을 제품의 겉에 표시한다. 테스코는 자사 상표로 생산하는 전구, 세제, 오렌지 주스, 감자 등 4개 품목에 대해 탄소 발자국을 도입했다.
-테스코, 제품에 ‘탄소발자국’ 표시-
영국 테스코의 케서린 시몬스 지속가능팀장은 “영국 내 전 매장에 부착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전했다. 환경 관련 이슈를 선점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테스코의 이미지를 개선한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테스코 매장은 쓰레기를 버리러 오는 곳이기도 하다. 대형 분리수거 기계가 설치된 매장을 늘리고 있는 중이다. 런던의 아이슬워스 오스털리 테스코 매장의 쓰레기 분리 배출기 앞에 줄을 서있던 닉 로슨은 “분리해서 버려지는 처리과정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 한번 더 환경을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유통업계 2위 기업인 막스앤드스펜서(M&S)는 윤리적 소비라는 트렌드에 적극 호응하고 있다. 런던 킹스톤 지역의 M&S 매장을 찾았다. 매장에는 ‘플랜 A’를 알리는 안내 광고판과 입간판이 곳곳에 설치돼 있었다. “우리는 지속가능한 어업을 믿습니다”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회사가 어류 남획에 참여하지 않으며 희귀어종 보호 캠페인에 동참하고 있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공정한 협력자 : 우리는 지역 사회를 돕습니다” “쓰레기 : 우리는 포장을 줄이고 재생 가능한 봉투를 개발합니다”라는 홍보물도 있었다. ‘플랜 A’는 대안(플랜 B)이 없으니 당장 시행에 나서야 할 계획을 의미한다. 환경을 생각하는 100가지 시급한 과제들을 제시하고 5년 후 완전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M&S는 의류 상표로도 유명하다. 여기에도 플랜 A를 도입했다. 런던 노스워프로드에 위치한 M&S 본사 로비에는 이를 알리는 전시물이 가득했다. 면제품은 100% 공정무역을 거친 원료만 사용하기로 했다. 의류에 사용되는 폴리에스테르는 원유가 아닌 재활용 페트병으로 만들 계획이다. 이미 직원용 유니폼에 이를 도입했다. 유니폼 1벌에는 1ℓ들이 페트병 11개가 사용된다.
|
맨체스터의 유니콘 식품점에 감자·양파·당근 등 이 지역에서 생산한 유기농 야채들이 진열돼 있다. |
-“생산자는 소비 흐름 따르게 마련”-
하지만 소비자들에게 기업과 제품의 윤리 지수를 평가해 주는 잡지 ‘에티컬 컨슈머’의 평가 기록을 참고해 보면 사정은 달랐다. 최근의 변화된 상황을 반영하면 달라지겠지만, 2005년 이들 기업의 점수는 형편 없었다. 20점 만점에 M&S는 5점, 테스코는 2.5점에 불과했다. ‘형편 없는(poor)’ 등급에 해당한다. 평가에 참여한 루스 로셀슨 기자는 “대형 유통 기업은 태생적으로 윤리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설명했다. 노동자 인권 문제와 동물 학대를 대표적 사례로 들었다. 그는 “이들의 1차 목표는 저렴한 가격이기 때문에 노동 비용을 줄이려 애쓴다”고 설명했다. 실제 마트 매장에서 마주치는 직원 대부분은 유색인종들이었다. 아스다, 세인스베리 등 일부 매장에서는 점원 없이 구매자가 직접 계산하는 기계를 도입하기도 했다.
에티컬 컨슈머의 롭 해리슨 편집장은 “이 같은 기업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를 바꾸는 것은 소비자들이다. 점진적이지만 변화를 이끌어 낸 것도 소비자였다”며 소비자의 힘을 강조했다. “윤리적 소비가 소비문화의 주류로 자리잡게 되면 이를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 생산자”라는 것이다. <런던·맨체스터 | 글·사진 정환보기자>
[윤리적 소비]“윤리적 소비는 관심·선택의 기준 있어야”
영국 맨체스터에는 ‘에티컬 컨슈머(Ethical Consumer, 윤리적 소비자)’라는 잡지가 있다. 에티컬 컨슈머는 20년 역사의 격월간 잡지로 기업과 제품을 윤리적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평가해 소비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한다.
롭 해리슨 편집장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윤리적 소비자가 되기 위해서는 ‘관심’이 무엇보다 중요한 출발점이며, 선택에도 익숙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영국 청소년들은 중·장년층과 달리 전통적 개념의 윤리적 소비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게 현실이다. 그는 “젊은이들에게는 브랜드가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광고를 통해 접하는 브랜드의 이미지가 그들의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해리슨 편집장은 그것이 오히려 윤리적 소비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청소년들은 우리 잡지를 통해 나이키, 아디다스, 코카콜라 등 자신들이 항상 관심을 갖는 브랜드와 기업의 새로운 면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걸음마 단계인 한국의 윤리적 소비에 대해 조언을 구했다. 해리슨은 선택의 중요성을 꼽았다. 소비는 결국 선택을 동반하는데 일상적 소비 생활에서 이런 선택의 기준을 정립하는 습관을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그는 ‘윤리적 소비는 비싸다’는 생각도 편견이라고 했다. ‘꽃’ 같은 일부 품목에서는 유기농 제품이 더 싸다는 평가 결과를 제시했다.
해리슨은 연예인을 비롯한 유명인들의 참여도 운동 확산에 큰 몫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대중에게 인기 높은 영국의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가 ‘학교 급식 개선 캠페인’을 진행해 큰 성과를 거둔 사례를 들었다. <맨체스터 | 정환보기자>
=========================================================================================================================
[윤리적 소비](4)일본의 착한 식생활 ‘푸드 마일리지’ |
입력: 2008년 08월 18일 02:32:33 |
|
ㆍ식재료 이동거리·온실가스 일일이 체크
|
일본 오사카의 묘켄자카 초등학교에서 푸드 마일리지 쇼핑 게임이 진행된 지난 6월11일, 하야시 미호 간사(오른쪽 두번째)가 교사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근처 효고현에서 생산된 귤은 별 한 개이지만, 미국에서 온 오렌지는 별이 열 다섯 개, 그레이프후르트는 서른 개랍니다.” “말도 안돼.” “엣, 거짓말.”
지난 6월11일, 오사카부(大阪府) 가타노시(交野市)에 위치한 묘켄자카(妙見坂) 초등학교에서 진행된 ‘푸드 마일리지 쇼핑 게임’ 도중 벌어진 풍경이다. 이 게임에서 나온 ‘별’은 단맛이나 품질을 나타내는 단위가 아니다. 과일이 생산지에서 식탁에 오르기까지 배출된 모든 이산화탄소의 양, 즉 푸드 마일리지를 나타낸다.
식재료의 운송 거리와 이 과정에서 배출된 이산화탄소를 고려하는 푸드 마일리지는 친환경 식생활을 부르는 ‘착한 소비’다. 푸드 마일리지를 의식하고 먹거리를 택할 때 운송 거리를 줄인 그 지역의 제철음식을 먹게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의 경우 국산 아스파라거스를 먹을 때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는 1g에 불과하지만 수입산은 341g으로 늘어난다. 푸드 마일리지를 의식하고 먹을거리를 택한다면 운송 거리를 줄인, 그 지역의 제철 음식을 먹게 된다. 결국 온실가스를 줄이는 것은 물론 지역 농업에도 이바지할 수 있게 된다. 친환경 식생활을 부르는 ‘착한 소비’인 셈이다.
일본에는 2000년대 들어 도입됐지만 이제야 겨우 알려지기 시작한 단계다.
푸드 마일리지 쇼핑 게임을 진행한 아오조라(靑空) 재단의 하야시 미호(林美帆) 간사는 “처음 들을 땐 비행기나 쇼핑처럼 푸드 마일리지도 많이 쌓여야 좋은 것인 줄 착각하는 분이 많다”며 웃었다. 푸드 마일리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문제이다보니 머리로는 이해해도 실천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특히 일본에서는 거품경기 붕괴 후 ‘99엔숍’ ‘100엔숍’이 붐을 이룰 정도로 쇼핑에서 금액이 중시되는 분위기다. 이 때문에 아오조라 재단은 게임과 별을 통해 푸드 마일리지의 이해를 돕는다. 1970년대와 요즘, 봄과 겨울의 계절에 따라 4개의 팀을 나누고 주로 소비되는 식재료 카드로 식단을 만든 뒤 카드 이면에 표시된 별로 이산화탄소량을 비교해보는 것. 별 한개는 이산화탄소 20g만큼을 나타낸다.
이날은 환경 관련 세미나에서 재단의 쇼핑 게임을 접한 나가노 쇼지(永野勝次) 교장의 추천으로 교사 20여명이 참여했다. 가장 이산화탄소가 적은 팀은 생선과 야채 위주로 식단을 짜 9개의 별을 얻은 ‘70년 봄팀’이었다. 대부분의 식재료가 오사카 인근에서 재배된 데다 쇼핑도 도보로 이동, 이산화탄소가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반면 ‘현재 겨울팀’은 별 36개로 앞 팀에 비해 4배나 더 많았다. 식재료 대부분이 외국산이고 자동차로 슈퍼마켓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참가한 교사들도 막상 비교해 본 결과를 보고 예상보다 큰 차이에 깜짝 놀랐다. 5학년을 담당하는 교사 도야마 리츠코(富山律子)는 “매스컴에서 보고 푸드 마일리지라는 단어는 알고 있었지만 사실 개념이 막연했다”며 “교사로서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은 물론 주부로서 쇼핑할 때도 주의하겠다”고 말했다. 하야시 간사는 “푸드 마일리지를 눈으로 비교하면 바로 충격을 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참가자들이 또 한번 놀라는 것은 무조건 근처에서 또 국내에서 재배된 식재료라 해서 푸드 마일리지가 적은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일본 내 홋카이도에서 키운 양파와 뉴질랜드에서 자란 호박을 비교하면 당연히 홋카이도 쪽에서 나온 것이 더 적을 듯하지만 실상은 반대다. 홋카이도에서는 트럭으로 소량 수송하게 되지만 뉴질랜드에서는 비행기로 대량 수송하기 때문에 개당 푸드 마일리지는 오히려 뉴질랜드 쪽이 더 적게 된다. 또 국내산만을 고집할 경우 사계절의 특성상 제철 음식이 아닌 작물을 온실에서 키워야 해 탄소 배출량이 더욱 늘어나는 경우도 생긴다. 교사 이가 오사무(伊賀治)는 “푸드 마일리지를 적용해 안을 들여다보니 우동이나 채소 절임처럼 당연히 일본식 밥상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모두 외국산으로 가득 차 있다는 걸 보고 놀라웠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일본 내에서는 푸드 마일리지와 친환경 식생활과 관련한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다. 지난해 일본의 식량 자급률이 39%로 떨어진 데다 중국산 ‘농약 만두’로 식품 안전 문제가 대두되면서 식생활에 대한 전반적인 반성이 불어닥친 까닭이다. 실제 일본의 연간 푸드 마일리지는 약 9000억㎞로 우리나라(3000억㎞)의 3배, 프랑스(1000억㎞)의 9배에 이른다.
아오조라 재단은 푸드 마일리지의 본격적 실천을 위해 도쿠시마부(德島府) 도쿠시마시(德島市)의 생활협동조합과 협력을 준비 중이다. 생협이 운영하는 매장의 식품에 푸드 마일리지 표지를 붙이는 것. 푸드 마일리지의 홍보와 함께 이산화탄소와 온난화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자는 취지다. 도쿄에서는 ‘대지를 지키는 모임(大地を守る會)’에서 푸드 마일리지 게임의 ‘별’과 비슷한 개념의 ‘포코’를 제안, 홍보 활동을 벌이고 있다. 포코는 식품은 물론 택배 대상 상품에도 표시돼 이산화탄소 감축을 유도하고 있다.
한국의 ‘신토불이’ 운동처럼 자국 내에서 생산된 식품을 소비하자는 ‘지산지쇼(地産地消)’ 운동도 전국으로 확산 중이다. 하야시 간사는 “무조건 외국산 식품을 반대한다거나 도보 쇼핑을 추천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푸드 마일리지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의식할 때, 물건을 사는 일이 단지 개인적인 행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이 있는 행위라는 것을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푸드 마일리지(Food Mileage)? 영국 환경운동가 팀 랭이 창안한 것으로 식재료가 생산·운송·소비되는 과정에서 운반된 거리를 뜻한다. 푸드 마일리지는 인간 활동의 모든 것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의 흔적을 뜻하는 탄소발자국(Carbon Footprint)과 결합, 이동 과정에서 배출된 온실가스의 양까지 포함한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오사카 | 글·사진 박지희기자> |
[윤리적 소비]“원가 부담되지만 지역 농산물 고수” |
입력: 2008년 08월 18일 02:33:38 |
일본에서는 최근 푸드 마일리지를 도입, 적용하는 식당이 늘어나고 있다. 식당에서 사용하는 식재료에 될 수 있는 한 지역 토산물을 사용, ‘착한 소비’에 기여하면서 고객들에게 푸드 마일리지의 홍보 대사도 되는 셈이다.
한국에는 생소하지만, 관혼상제 행사용 배달 도시락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기쓰 우오신(木津うを新)’의 가쿠다 마모루(角田守) 사장(사진) 역시 그 중 한 명이다.
가쿠다 사장은 사실 푸드 마일리지를 알기 전부터 지역의 농산물 사용을 선호해왔다. 자신이 태어난 땅에서 나고 자란 채소를 먹는 생태계의 순환이 사람의 품성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철학 때문이다. 그는 “이 같은 생각을 정리하고 조사하다보니 푸드 마일리지에도 닿게 됐다”며 “될 수 있는 대로 일본의 것, 그래도 안된다면 한국 등 최대한 가까운 곳에서 난 재료를 사용하려 한다”고 말했다.
원칙을 고수하기 위해 메뉴까지 바꿨다. 그는 “국산 성게는 너무 비싸 저렴한 도시락에는 아예 넣지 못하고 있다”며 “중국산 송이버섯은 맛이 좋아 손님들에게 인기가 많지만 과감히 빼버렸다”고 말했다.
대신 인근 교토에서 나는 오이의 일종인 게마큐리, 오사카산 연근, 호박 등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전통 채소들을 선보이고 있다.
하지만 실천이 쉬운 일은 아니다. 농지가 사라져가는 요즘, 도시 한복판에서 전통 채소를 찾으려면 제법 발품을 팔아야 한다. 2%선인 오사카의 식품 자급률이 특히 문제다. 한때 가쿠다 사장의 할아버지와 인연이 있는 농가에서 공급받은 적도 있지만 지금은 이마저도 끊겼다.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도 걸림돌이다. 보통 음식업의 원가는 판매 가격의 40% 전후를 맴돈다. 하지만 이곳의 원가는 60%에 이른다.
경제적인 면에서는 마이너스지만, 전체적인 이미지 향상에는 도움이 됐다. 푸드 마일리지와 지역 토산물을 알리는 노력을 좋게 보는 시선이 늘면서 기업의 대량 구매도 늘었다.
가쿠다 사장은 “처음에는 반대하던 직원들도 이제는 자긍심을 갖게 됐다”며 “가격 위주로 생각하는 소비 문화 대신 환경과 순환을 고려하는 의식이 퍼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오사카 | 박지희기자 violet@kyunghyang.com>
=========================================================================================================================
[윤리적 소비](5)‘지역소비’의 유토피아 英 토트네스 |
입력: 2008년 08월 24일 17:57:18 |
|
ㆍ탄탄한 경제·돈독한 유대 지역화폐 ‘tp’로 산다
“소박하고 아름다운 곳이에요. 평화로운 마을이기도 하지요.”
지난 6월 말 영국 남서부 데본주의 토트네스에서 만난 베스 크레든 할머니의 말이다. 토트네스는 영국의 은퇴 노년층과 보헤미안 스타일의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젊은이들에게 인기있는 인구 8000여명의 소도시다.
|
영국 남서부 토트네스의 상점가인 하이스트리트의 주말 풍경. 토트네스는 윤리적 생산·유통·소비를 모범적으로 실천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영국에서는 보기 드물게 가파른 오르막길에 형성된 중심가인 토트네스의 하이스트리트에는 ‘윤리적 상점’들이 가득했다. 인근 지역에서 생산한 육류와 식료품을 파는 정육점, 야채 가게, 식당은 물론 공정무역 옷가게들도 여럿 보였다.
상점들 3분의2 가량 동참
이들 가게의 출입문에 붙어있는 표지 하나가 눈에 띄었다. 그것은 지역 화폐인 ‘토트네스 파운드(tp)’ 사용이 가능하다는 표지였다. 200m 남짓한 하이스트리트에 있는 전체 상점의 3분의 2가량은 이 표지를 붙여 놓았다. 1토트네스 파운드는 1파운드에 해당한다. 일부 상품과 식당 메뉴만 tp로 계산하면 2~3%가량의 할인이 될 뿐 대부분은 가격이 같다.
환율도 똑같고 가격도 대동소이한데, 지역 화폐를 받는 상점이 많은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화폐를 발행하는 일종의 중앙은행 ‘토트네스 변혁 마을(Transition Town Totnes, TTT)’ 단체의 본부를 찾아 물었다. 답은 간단했다. “토트네스 파운드가 이 지역의 경제를 튼튼하게 하기 때문”이었다.
TTT의 공동설립자 롭 홉킨스는 “지구적 규모의 자본·상품·서비스 순환이 이루어지는 현재 상황에서는 일부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돈이 그 지역을 빠져나가는 것이 일반적 현상”이라고 말했다. 같은 금액을 쓰더라도 지역 내에서 순환하는 화폐를 사용하면 궁극적으로 지역경제를 강화할 수 있다는 논리다. 개인의 지출이 거대자본에 흡수되지 않는다는 것이 지역 화폐의 힘이라는 설명이다.
현재 통용되고 있는 토트네스 파운드는 2007년 3월 TTT가 발행한 것이다. 1tp권 지폐만 발행되며 300tp(약 60만원)로 시작했다. 2년도 안 된 현재 이 지역에는 6000tp(1200만원)가 돌고 있다. 취지에 공감한 주민들의 참여로 토트네스 파운드가 성공적으로 뿌리내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반응에 고무된 TTT는 상점과 상점 간의 거래 편의를 위한 전자화폐 도입을 준비 중이다.
홉킨스는 지역 화폐 활성화가 환경을 살릴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지역 화폐는 지역 상점들만 쓰기 때문에 결국 ‘지역 상점 이용 캠페인’과 다르지 않다. 지역 화폐가 지역민의 생활 속에 자리잡게 되면 에너지 소비의 주범 중 하나인 대형 마트가 설 땅이 사라진다.
대형마트 추방 환경도 살려
|
토트네스 하이스트리트의 한 식료품점에 지역 화폐인 토트네스 파운드로 결제가 가능하다는 표지가 붙어 있다. | 가까운 곳에서 충분히 좋은 상품을 살 수 있는데, 단지 싸다는 이유로 대형 마트를 찾는 것이 일반적인 현대인들의 소비 행태다. 대형 마트는 가격을 낮추기 위해 많은 양의 에너지를 소비하고 탄소를 발생시킨다. 유통 거리와 가격을 맞바꾼 것이다. 하지만 홉킨스의 생각은 달랐다. 당장은 쌀지 몰라도 결국 가격 수준이 오르는 게 대형 유통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가격은 작은 문제일 수 있다. 화석 연료에 의존하는 에너지 구조와 지구 환경 문제는 다음 세대의 생명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홉킨스는 “앞으로는 작은 것이 필수적인 시대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토트네스 파운드는 작지만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하나의 방편이었다.
유로화가 유럽 통합의 상징이듯 토트네스 파운드는 토트네스 주민들의 돈독한 유대관계를 나타내는 상징이기도 하다. 하이스트리트 꼭대기에 있는 ‘비숍스턴’은 공정무역을 거친 인도풍 의류를 판매하는 상점이다. 이곳에서 지난해부터 일하고 있는 홀리 보드머(22)는 토트네스 자랑에 열을 올렸다. 보드머는 “토트네스 태생은 아니지만 이곳은 고향보다 더 고향같다”고 말했다. 특히 지역사회 구성원들 사이의 친밀한 관계가 좋다고 했다. 그는 “이곳의 많은 사람들이 긍정적인 인생관을 갖고 있고 ‘소규모 공동체’를 이루고 있기에 유대관계 형성이 잘 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가게가 공동체 ‘고리’ 역할
|
지역 화폐 토트네스 파운드 | 하이스트리트의 상점은 물건만을 파는 것이 아니라 마을공동체의 연결고리 역할도 한다. 커피와 주스 등을 파는 ‘레몬젤리’ 카페에는 ‘주민 후원 모금함’이 있다. 이번 후원 대상은 여자친구와 베트남 자전거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토비 포트(24)다. 그는 자전거 사고로 중상을 입어 2년여간 병상 신세를 졌고 최근 건강을 회복했다. 레몬젤리 매장에는 그의 완쾌를 축하하는 토트네스 주민들과 관광객들의 메시지가 담긴 방명록이 비치돼 있었다. 이들은 1~100파운드의 후원금을 기꺼이 내놓았다.
하이스트리트 옆에 있는 ‘마켓 스퀘어’에서는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에 장이 열린다. 간이 판매대를 고정적으로 차리는 업체는 11곳 정도다. 모두 장터 인근에 거주하면서 직접 생산한 식료품을 판다. 치즈, 잼, 빵 등이 주로 사고파는 식품들이다. 식품 이외에도 각종 중고제품을 판매하는 벼룩시장도 성행하고 있다. 헌책 판매대에서는 ‘로컬 푸드’와 대안적 삶을 소개하는 책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에는 마을회관에서 ‘직거래장터’가 열린다. 여기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많이 파는 게 목적이 아니다. 사람과 교류하고 직접 만든 식품을 이웃과 나누어 갖는 것이 목적이다. 2000년부터 이곳에서 달걀과 달걀요리를 팔고 있는 리오아나 마티아스는 “내가 만든 음식을 누군가 먹고 싶어한다는 것 자체가 행복하다”고 말했다.
주민들 “삶과 소비는 하나”
장터에 있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활력이 넘쳤다. 삶과 소비가 분리되지 않은 토트네스 주민들은 윤리적 소비를 체득한 사람들이었다. 다음달 TTT 지역행사 준비에 여념이 없는 홉킨스는 달라이 라마가 말한 ‘우리 시대의 역설’을 항상 가슴에 새겨두고 있다. 그는 ‘인류는 달나라까지 다녀왔지만 이웃을 만나기는 더 어려워졌다’ ‘현대인들은 편리하게 살게 됐지만 시간은 더 부족해졌다’고 한 달라이 라마의 말을 전하면서 “토트네스에서의 삶은 여느 현대인들과 다른 삶이라서 행복하다”고 말했다. <토트네스 | 글·사진 정환보기자 botox@kyunghyang.com> |
[윤리적 소비]“소비자 아닌 인간 중심의 가치 추구”
대안적 삶을 찾아 토트네스를 찾는 영국인들이 늘고 있다. 이곳에서 토트네스 파운드를 발행하는 등 지역공동체 운동을 활발히 벌이고 있는 ‘토트네스 변혁 마을(TTT)’의 공동설립자 벤 브랑윈도 그 중 한 사람이다.
브랑윈에게 “토트네스가 윤리적 소비의 모범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면서 일상생활에서 윤리적 소비자가 되려면 어떤 실천을 해야 하는지 물어봤다. 그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다. 그는 대뜸 “소비자는 누구를 말하는 건가”라고 반문했다. 사람에게 ‘소비자’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 자체가 건강하지 않은 사회의 방증이라는 것이다. 그는 “상품에 상표를 붙이는 것처럼 현대 자본주의는 사람들에게 소비자라는 딱지를 붙였다”면서 “사람이 소비자로 분류되는 사회에서 ‘소비자’라는 단어 앞에 ‘윤리적’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 자체가 우습다”는 설명을 이어갔다.
TTT운동은 궁극적으로 ‘행복’ ‘관계’ 등의 인간중심적 가치를 추구한다. 하지만 현대 소비사회는 물질적 가치인 ‘경제성장’을 그 중심에 놓는다. 이 같은 전제 하에 브랑윈은 윤리적 소비 개념 자체에 회의적이다. 그는 “소비에 ‘윤리적’이라는 그럴싸한 단어를 갖다붙인 것은 기존의 경제성장 개념을 확장하려는 시도이며, 패러다임 자체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경제성장이 지고지선인 사회는 항상 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합니다. 하지만 지구는 그것을 모두 충족시켜줄 수 없습니다. 인류는 현재 에너지 정점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으며 다같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를 혁파해야 합니다.”
그는 “토트네스에서도 전체 인구 8000여명 가운데 TTT운동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2000명 정도”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그는 “아직은 부족하지만 실망하지 않는다”며 “단 5%만이라도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이 있으면 인류의 미래에 희망이 있다”고 말했다. 브랑윈의 등 뒤에는 2025년까지 토트네스에서 해야 할 일들이 빼곡히 적힌 연표가 붙어 있었다. <토트네스 | 정환보기자>
=========================================================================================================================
[윤리적 소비](6)참소비 풀뿌리 ‘생협’ 확산 |
입력: 2008년 09월 08일 02:34:11 |
|
ㆍ걸음마 뗀 한국의 ‘윤리 소비’
지난 7월30일 경기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 ‘icoop 안산시민들의생활협동조합’ 7월 마을 모임(오른쪽 사진)이 열리는 정창숙씨(35) 아파트에 주부들이 아이들의 손을 잡고 들어섰다. “자, ‘물품 민원’ 시간부터 진행할게요.” 생협 조합원인 주부 10명과 둥글게 둘러앉은 icoop 안산생협의 김은희 사무국장이 운을 뗐다. 생협에서 구입하는 물건의 품질이나 배달 문제 등에 대해 조합원들이 불만과 건의 사항을 나누는 자리다.
조금 비싸고 번거로워도 기꺼이 ‘친환경 먹거리’ 유통
한 주부가 더운 여름철이라 생협의 유기농 제품이 신경 쓰인다고 하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오프라인 매장이 너무 붐벼서 불편한데 직원 교육이 필요한 것 같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선희씨(41)는 “요즘 계란과 돼지고기 사기가 너무 어렵다”고 했다. 특히 돼지고기는 인터넷에서 모두 동났을 정도다.
김 사무국장이 곡물가 폭등으로 돼지 사육을 포기하는 농가가 늘어난 데다 봄부터 조합원이 큰 폭으로 증가하면서 물량이 많이 부족해졌다고 설명했다.
주부들은 이날 가정에서 수도요금을 절약하는 방법도 논의했다. 물 사용량이 많아지는 여름, 환경과 에너지를 생각하는 알뜰하고 윤리적인 소비자가 되자는 취지다.
정씨는 “우리는 잘 못 느끼지만 세계적으로 물 부족이 심각하고, 식수조차 없어 힘든 나라들이 많다”고 말했다.
물·전기 아끼는 방법도 토론
샤워기나 세탁기 등을 절수·절전형으로 교체하고, 세수나 양치, 설거지할 때 컵이나 대야에 물을 담아 쓰자는 등의 제안이 쏟아졌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직거래를 통해 안전하고 친환경적인 먹거리의 유통을 지향하는 생협. 생협은 소비자들의 자발적인 공동체이자, 윤리적 소비의 풀뿌리 현장으로 볼 수 있다. 조금 비싸고 번거롭더라도 환경과 건강을 해치지 않는 믿을 만한 제품을 사겠다는 생협 조합원들은 한국의 대표적인 윤리적 소비자 군단이다.
자녀가 아토피를 앓고 있어 생협에 가입했다는 강난예씨(45)는 “생협의 물품에는 색소나 항생제, 첨가물이 들어있지 않기 때문에 안전하고 맛도 좋다”며 “일반 가격보다 100~200원 비싸지만 부담된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고 말했다.
지난 5월부터 생협에서 대부분의 장을 보고 있는 최수아씨(34)는 “가족 건강을 책임지는 주부로서 (생협에서 활동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올들어 회원 수 2배 늘어
지난해 9월 처음 시작된 icoop 안산생협 마을모임은 안산은 물론 전국적으로도 활발히 활동하는 모임에 속한다.
경북 포항에서 안산으로 이사한 뒤 마을모임을 시작한 정창숙씨는 “사실은 네살 된 아이가 친구 집에 놀러가서 어떤 음식을 먹을까 염려하는 마음에 주위 사람들에게 생협 가입을 적극 권유하게 됐다”고 밝혔다.
2002년부터 생협 조합원이 된 정씨는 중고 장난감 구입,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 분리수거와 재활용 등에도 적극적이다. 그는 “당장 변화는 없을지라도 환경 파괴를 조금씩 막을 수 있다면 내 아이 세대가 어른이 될 때에는 완전히 바뀔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생협의 역사는 1980년대 무렵까지 거슬러올라가지만, 최근 환경과 식품 안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생협의 인기는 부쩍 높아졌다. icoop 생협연합회(전 한국생협연대)도 올들어 지난 6월까지 회원 수가 지난해보다 200%나 늘어나는 등 폭발적 성장세를 보였다.
특히 유전자변형식품(GMO)의 안전성과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이 불거진 5월 한 달에만 2133명이 신규 가입했다.
icoop 생협의 전수영 조합지원팀장은 “과거 생협이 출자금을 내는 조합원들 중심이었다면, 대기업의 증가와 수입농산물로 인한 타격이 커지면서 좀더 큰 사회운동으로 발전해가고 있다”고 말했다.
‘광우병 위험 쇠고기’나 쌀 시장 개방,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사회적 이슈들에 대해 활발하게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 그 예다. ‘생협 5년차 주부’인 김선희씨는 얼마 전 생협에서 친환경 농가를 방문했을 때 “친환경 농업이 얼마나 어려운지 목격했다”면서 “소비자로서 내가 많은 도움을 받고 있는 게 정말 고마웠다”고 말했다.
생협 외에 공정무역, 기업 보이콧, 책임여행 등 다른 윤리적 소비 형태도 한국 사회에서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공정무역·기업 보이콧 관심
공정무역의 경우 2003년 한국에서 처음으로 공정무역을 시작한 ‘아름다운 가게’가 네팔 공정무역 커피 ‘히말라야의 선물’ 등을 판매하고 있고, YMCA는 동티모르 공정무역 커피를 파는 커피숍 ‘카페 티모르’를 운영 중이다.
두레생협은 2004년 필리핀 네그로스 섬에서 생산된 공정무역 설탕을 출시했고, icoop 생협은 콜롬비아 생산자로부터 사들인 커피와 초콜릿 등을 팔고 있다.
페어트레이드코리아는 의류, 장신구, 도자기, 차 등 120여종의 공정무역 제품을 지난해부터 온라인에서 판매하기 시작한 데 이어 지난 6월에는 서울 안국동에 공정무역 전문 오프라인 매장 ‘그루’를 열었다.
일부 다국적 기업들은 미국 본사에서 공정무역 제품을 팔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참여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최근 일부 국내 대기업이 공정무역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현대백화점은 지난 6월부터 압구정 본점과 무역센터점에서 공정무역연합이 유통하는 공정무역 인증 초콜릿, 잼, 설탕, 코코아 등을 팔고 있다. 보이콧 운동 역시 윤리적 소비 운동의 한 형태로 정착해가는 모습이다. 지난해 7월 이랜드 비정규직 사태가 불거졌을 때 이랜드 계열사인 홈에버, 뉴코아 등에 대한 불매 운동이 벌어졌다.
이랜드가 여성 계산원 등 비정규직을 대량 해고하고 노조를 탄압한 데 반발하면서, 농성 중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지원하자는 의미였다. ‘나쁜 기업 이랜드 불매 시민행동’이 조직돼 인터넷을 중심으로 활발한 캠페인이 펼쳐졌다.
몇 해 전부터 서구에서 윤리적 소비의 하나로 떠오른 ‘책임여행’도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2월 기름 유출 사고로 큰 피해를 본 충남 태안지역에서 단체 봉사활동을 벌이거나,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개인, 가족, 기업 단위로 일부러 태안을 찾는 것 등은 책임여행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 <글 김유진·사진 정지윤기자 actvoice@kyunghyang.com >
[윤리적 소비] ‘착한 소비자’가 되려면
‘착한 소비자’가 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환경과 인권을 배려하는 감수성,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려는 결심만 있다면 일상에서 윤리적 소비를 실천할 수 있는 길은 다양하다.
여성환경연대와 icoop생협연합회의 도움으로 윤리적 소비 수칙들을 모아봤다.
■ 친환경적 먹거리를 선택한다
유전자변형식품(GMO)을 먹지 않는다. GMO는 인체에 유해하고 환경을 파괴하는 것은 물론, 다국적 기업의 독점 체제를 강화시켜 전 세계 가난한 농민들을 더욱 궁핍하게 한다. 대신 생산자를 배려하는 공정무역 제품을 골라 쓴다. 공장식 축산시스템에서 대량의 곡물 사료로 사육된 소, 돼지, 닭고기를 먹는 것도 자제한다.
■ 친환경적 옷차림을 즐긴다
유행에 따라 한철 입고 버리는 값싼 ‘패스트 패션’은 거부한다. 저임금 노동 착취로 생산됐을 가능성이 큰 데다, 옷을 폐기할 때 환경 유해 물질이 방출되기 때문이다. 새 옷을 자꾸 사들이기보다 리폼 등 스타일 변형 서비스를 받는다면 개인과 공동체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
■지역 중심으로 소비한다
대형 할인점보다 가까운 동네 구멍가게를 이용하면, 차량 이용으로 인한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불필요한 충동구매도 막을 수 있다. 해외 여행을 떠나서도 대형 리조트·음식점 체인보다 현지인이 운영하는 숙소나 식당을 이용한다. 다국적 자본이 아닌 현지 주민에게 도움을 주는 ‘책임 있는 여행자’가 될 수 있다.
■소비자로서 적극적 목소리를 낸다
기업에 윤리적 제품의 생산을 요구하고, 식품 안전과 관련된 각종 캠페인이나 학교 급식 감시단 등의 활동에 직접 참여한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직거래를 통해 친환경적이고 검증된 국내 농산물을 공급하는 생협에 참여하는 것도 소비자의 힘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다.
■ 지갑을 열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한다
우리가 사고, 쓰고, 버리는 물건의 양을 줄이는 것이야말로 윤리적 소비의 핵심이다. 필요한 물건인지, 빌리거나 나눠쓸 수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한다. 물건을 다 쓰고 난 후에 어떻게 처리할지에도 신경을 쓴다. <김유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