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본 그 멜로디, 아이들에게는 니나니노니고릴라야~ 라는 노래로 더 친숙한데요. 이 멜로디의 주인공은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 입니다. 자동차 후진할 때, 초인종 누를 때 등등 우리의 가까운 곳에서 만날 수 있지요!
그렇기에 한국인들에게 가장 사랑 받고 있는 멜로디가 아닐까 싶은데요. 어른, 아이 모두 한번쯤은 들어봤고 배우고 싶어하는 피아
노 곡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베토벤과 엘리제를 위하여의 이야기를 잠깐 해보려고 하는데요. 알고 들으면 더욱 감동
적인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이야기 지금 시작할게요. ^^
파란만장했던 베토벤의 일생
'엘리제를 위하여'의 작곡가는 베토벤. 풀네임은 루드비히 반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으로 1770년에 독일의 도시 본
에서 태어났고, 1827년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지금도 오스트리아의 국립묘지에 가면 그의 무덤을 만날 수 있고, 그가 음악활동을 하
면서 곡을 만들었던 생가, 청각을 잃은 뒤 작성한 유서 등 베토벤의 흔적을 오스트리아 비엔나 곳곳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다른
음악가와 달리 유난히 베토벤의 생가를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는 이유는 당시 이사를 많이 다녔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예민한 성격
과 함께 점점 커지는 목소리와 큰 피아노 연주소리로 인해 이사는 불가피했던 것 같습니다.
음악가 출신인 베토벤의 아버지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부유하던 집안이 차츰 기울어지기 시작하며 베토벤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
에 빠져 집안을 돌보지 않아 베토벤이 가족을 부양해야 했다고 하는데요. 당시 베토벤의 아버지는 베토벤을 모차르트와 같은 천재 음
악가로 만들기 위해 4살부터 베토벤에게 음악을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방에 가두어 놓고 하루종일 피아노를 치게할 정도로 혹독하게
가르쳤다는군요. 그리고 음악의 중심지 빈에서 베토벤은 모차르트를 만났고, 베토벤의 즉흥연주를 들은 모차르트는 "저 젊은이를 잘
지켜보게. 머지않아 세상을 놀라게 할 테니까." 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출처: 게티이미지 코리아>
베토벤 작품 초기에는 괴테, 셰익스피어, 실러, 칸트 등의 예술과 사상, 그리고 프랑스 혁명의 이념에 깊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1792
년 22세 때 본을 방문한 하이든에게 인정 받아, 그 해 가을에 빈으로 가서 하이든에게 지도를 받기도 했으며, '비창 소나타'를 작곡했
습니다. 1800년대 베토벤은 난청증세를 보이기 시작했고, 병이 깊어지자 요양을 하러 하일리겐슈타트라는 시골로 간 베토벤. 이 곳
에서 죽음을 결심하며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를 작성하게 됩니다. 그러나 삶에 대한 의지가 강했던 베토벤은 이 난관을 극복하고 '영
웅', '운명', '발트슈타인' 등 자신만의 힘이 넘치는 작품을 작곡하게 되지요.
49세가 되자 베토벤은 청각을 완전히 잃어 의사소통이 힘들어졌고, 더 이상 연주를 할 수 없게 되자 작곡에 힘을 기울이게 됩니다.
그는 오랫동안 산책을 하면서 악상을 떠올리고 그 것을 스케치북에 적어두었어요. 머릿속에 떠오른 곡을 거침없이 써 내려간 후 거
의 수정을 하지 않았던 모차르트와 달리 베토벤은 한 곡을 완성할 때까지 수정을 반복하였는데요. 그래서 그의 악보는 아무도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너덜너덜해졌고, 완성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요. 끝내 병을 회복하지 못한 채 병상에서1827년 3월, 57세 나
이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베토벤의 장례식은 3일 뒤에 치러졌는데, 29일 동안 거행된 장례식에는 무려 2만여 명의 조문객들이 참
석하여 죽음을 애도했다고 합니다.
베토벤의 불멸의 연인
루드비히 반 베토벤의 장례식이 끝난 뒤 유품을 정리하던 비서 안톤 신들러는 유서와 함께 세 통의 편지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는 곧
혼란에 휩싸입니다. 애절한 사랑의 속삭임으로 가득한 편지의 주인공 즉 불멸의 연인이 대체 누군지 가늠할 수 없었기 때문인데
요. 발송되지 않은 그 편지들은 베토벤이 요양차 간 테플리츠에서 쓴 것이며, 신들러는 자신이 오랫동안 보필해온 마에스트로의 연인
을 찾아 그의 음악과 유품을 전달하는 게 사자에 대한 마지막 예의라고 생각하여 찾아주려고 하지만, 지금까지도 그 편지 속의 주
인공이 누군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고 합니다.
* 베토벤의 편지 내용 "나의 사랑, 나의 모든 것, 나의 분신이여. 그대는 내 것이 아니고 나 역시 그대의 것이 아니라고 어찌 얘기할 수 있겠소." (7월6일 아침) "오, 내가 어디에 있건 당신은 나와 함께 있다오. 난 스스로에게 말을 건네고 당신에게 속삭인다오. 아 당신이 없는 삶이란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다오." (7월 6일 저녁) "아직 침대에 누워 있는 동안에도 나의 마음은 그대, 불멸의 연인(immortal beloved)에게로 향하고 있소. 신이시여 어째서 나는 그토록 사랑하는 이와 떨어져 있어야 한단 말이오." (7월 7일 아침) |
누구를 위한 ‘엘리제를 위하여’인가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가장 많이 사랑 받고 있는 '엘리제를 위하여'. 베토벤이 죽고 나서 발견한 악보에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1867
년 초에 처음으로 이 작품을 출판한 독일의 음악학자 루트비히 놀이 친구 브레들의 집에서 베토벤 자필 악보를 발견하게 되고, 1810
년에 작곡된 곡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출판하게 돼요. 워낙에 베토벤의 글씨가 악필이라 테레제를 엘리제로 잘못 읽으면서 '엘리제
를 위하여' 라는 제목의 악보가 출판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추측을 해볼 수 있는데요. 첫 번째는 엘리제 즉, 테레제의 주인공으로 '테레제 말타피' 가 아닐까 추측할
수 있습니다. 두 명의 백작영애로부터 사랑을 거절당한 베토벤이 새롭게 결혼하고자 마음먹었던 18세의 테레제 말타피를 위해서 작
곡한 것이라는 추측인거죠. 하지만 1810년이면 베토벤 나이 40세. 테레제의 나이 18세.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겠쬬. 이 둘의 결
혼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브레들은 이보다 앞서 이 자필악보를 테레제 말파티로부터 선물을 받았다고 하기도 하네요.
두 번째 추측은 '엘리자베스 뢰켈'과 연관된 추측입니다. 베토벤보다 23살 어린 '엘리자베스 뢰켈' 은 베토벤의 오페라 [피델리오]
에서 주인공인 플로레스탄 역을 맡았던 조세프 뢰켈의 여동생으로, 그녀는 1814년 3월 9일 첫째 아이의 세례기록에 자신의 이름을
엘리자베스가 아닌 ‘마리아 에바 엘리제’라고 기록했어요. 이 증거가 바로 엘리제를 위하여의 그 이름과 동일하며 이후 1810년 엘
리자베스가 빈으로 떠나게 되면서 그녀와의 추억을 그린 것이 이 작품이다는 추측인 거죠.
아쉽게도 지금은 '엘리제를 위하여' 친필악보가 남아있지 않다고 해요. 과연 엘리제를 위하여의 진실은 무엇일까요? 아직까지도 풀리
지 않고 있는 엘리제를 위하여의 '엘리제'. 하지만 분명한 것은 베토벤의 마음속에 깃든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는 것 아닐
까요?
▲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 Für Eliese - 피아노 솔로를 위한 바가텔 a단조 WoO 59 / 출처- 위키피디아
남들보다 힘든 어린시절, 음악가로서 치명적인 귓병 등 힘든 우여곡절이 많았던 베토벤. 하지만 몇 십 배의 노력으로 많은 명곡을 만
들어 냈습니다. 특히 지금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5번 교향곡 (운명교향곡) 과 9번 교향곡 (합창교향곡) 은 귀가 완전히 들리
지 않은 이후에 작곡된 곡이라고 하니, 힘든 시련을 극복하고 이렇게 멋진 곡을 작곡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합니다.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지금, 베토벤의 삶을 생각하며 긍정적인 내일을 계획해 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