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세종실록' 편찬 경위
'세종실록'은 총 163권 154책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원명은 '세종장헌대왕실록'이다. 이
책은 1418년 8월부터 1450년 2월까지 세종 재위 31년 6개월 동안의 각 방면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연월일 순에 따른 편년체와 각 주요 항목에 대한 세부 기록인 지(뜻 지)로 기록하고 있다.
'세종실록' 편찬 작업은 1452년 2월 '고려사'와 '고려사절요'가 완성된 이후 시작되었다. 편찬
작업의 감수는 김종서, 황보 인, 정인지 등이 맡았고, 허후, 김조, 정창손, 박중림, 이계전,
신석조 등 6명이 재위 기간을 여섯으로 나눠 실질적인 편찬 업무를 주관하였다. 그러나 실록
편찬 작업에 참여한 인물 중에 김종서, 황보 인 등이 계유정난으로 피살되자 정인지 혼자서
감수를 책임지게 되었다. 또한 6방의 책임수찬관 가운데 박중림이 사은사로 명나라에 가게
되어 최항이 그 일을 대신 맡기도 했다.
'세종실록'은 단종 원년인 1452년 정월에 거의 마무리되었지만, 감수 작업은 이듬해 3월까지
계속되어 2년 1개월만에 완성을 보았다. '세종실록'은 분량이 너무 방대하여 처음에는 한
벌만 만들어 춘추관에 두었다가 1466년(세조 12년) 11월 양성지의 건의로 당시에 이미
편찬되어 있던 '문종실록'과 함께 주자로 인쇄를 시작해 6년 후인 1472년 3부를 더 찍어냈다.
이때 간행된 '세종실록'은 충주, 전주, 성주의 사고에 봉안되었는데 임진왜란으로
전주사고본만 남고 모두 소실되었으며, 이 사고본을 바탕으로 1603년부터 1606년에 걸쳐
'태종실록'부터 '명종실록'까지 각각 3부를 다시 간행하였다. 이 당시 최종 교정본을 포함하여
전주사고본과 함께 총 5부를 춘추관, 강화도 마니산, 태백산, 오대산, 묘향산 등에 보관했다.
그 뒤 이괄의 난, 병자호란 등의 난을 겪으면서 춘추관실록이 소실되고 일부 실록이
파괴되었으나 다시 복구하여 인조 대 이후 실록은 정족산(강화도), 태백산, 적상산(전북 무주),
오대산 사고에 보관되었다. 그 뒤 일제 강점기인 1929년부터 1932년까지 경성제국대학에서
태백산본을 저본으로 하여 영인본을 만들었고, 국사편찬위원회에서 1955년부터 1958년까지
영인본을 보급하였다.
'세종실록'은 1권부터 127권까지는 편년체로 구성되어 있으나 128권에서 163권까지는
지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구성을 하게 된 이유는 세종의 재위 기간이 길고 사료의
양이 방대하여 편년체로는 도저히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지(뜻 지)는 일종의 주제별, 사건별 정리 방식으로 오례(128-135), 악보(136-147),
지리지(148-155), 칠정산(156-163) 등으로 되어 있다.
세종 대는 정치, 경제, 군사, 외교, 사회, 제도, 예, 악 및 기타 문화 방면에서 획기적인
사업이 이루어진 시기다. 세종 대는 조선 사회가 전체적으로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발전되어
정착기에 진입한 시기였다. '세종실록'은 이렇게 발전되는 과정을 총체적이고 포괄적으로
기록하고 있어 조선시대 문화와 사회를 연구하는 데 필수적인 자료가 되고 있다.
세종 시대의 세계 약사
세종 시대에 중국의 명은 남경에서 북경으로 천도했으며, 유럽은 1419년 종교개혁 문제와
관련하여 신성로마제국에서 후스전쟁(보헤미안전쟁)이 발발한 이래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
대부분의 국가들이 30년전쟁, 백년전쟁, 도시전쟁 등으로 전운에 휩싸여 있었다. 그 전란의
와중에서 프랑스의 잔다르크가 화형되었으며, 독일에서는 1445년에 쿠텐베르크의 인쇄본이
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