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릴린 맨슨이란 밴드를 기획, 결성하고 분신처럼 이끌어가고 있는 인물, 미스터 맨슨은 간호사인 어머니와 가구 세일즈맨인 아버지 밑에서 1969년 태어났다. 그는부모님의 강권에 의해 크리스찬 학교에 진학했는데 보수적인 학풍을 견딜 수 없어 퇴학당하기 위해 갖가지 말썽을 일으키고 다녔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10학년까지 무사히(?) 마쳤다. 한편 마릴린 맨슨의 보컬로서 발휘하고 있는 카리스마가 무색하게 친구들이 기억하는 브라이언 워너는 그저 평범한(적어도 음악적인 면에서는) 소년이었다고 한다. 맨슨 자신도 학창시절 매우 내성적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그에게는 남다른 재주가 있었는데 바로 뛰어난 문학적 재능이다(맨슨은 미술에도 소질이 있어 평소 그림을 즐겨 그린다. 마릴린 맨슨의 공식 홈페이지에 가면 최근에 그가 그린 암울한 분위기의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
어려서부터 (현재 마릴린 맨슨 음악의 근간이 된) 앨리스 쿠퍼(Alice Cooper), 키스(Kiss),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 데이빗 보위(David Bowie), 오지 오스본(Ozzy Osbourne), 에이씨디씨(AC/DC), 러쉬(Rush), 이기 팝 앤 더 스투지스(Iggy Pop & The Stooges) 등의 음악을 즐겨 들었던 맨슨은 공연 리뷰가 잡지에 게재된 것을 계기로 칼럼니스트로서 처음 음악씬에 등장한다. 그 이전에는 한때 소닉 유스(Sonic Youth) 스타일을 지향하는 슈게이징 성향의 밴드에 몸담기도 했다고 한다. 저널리스트로 활동할 무렵 그는 후일 마릴린 맨슨의 적극적인 후원자가 되는 나인 인치 네일스(Nine Inch Nails)의 트렌트 레즈너(Trent Reznor)를 비롯해 유명 뮤지션들을 만나 인터뷰한 바 있다.
그러다가 맨슨은 브로워드 커뮤니티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전공중이던 89년에 몇몇 로컬 밴드를 거치면서 기타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던 데이지 버코위츠를 하우스 파티장에서 만난다. 곧 의기투합한 두사람은 밴드를 결성하게 된다. 초창기 밴드의 이름은 마릴린 맨슨 앤 더 스푸키 키즈(Marilyn Manson And The Spooky Kids). 보컬의 마릴린 맨슨, 기타의 데이지 버코위츠 외에 베이스 주자 올리비아 뉴튼 번디, 키보디스트 자자 스펙이 오리지날 멤버였으며 드럼 파트는 드럼머신으로 메꿨다. 하지만 올리비아 뉴튼 번디와 자자 스펙은 불과 몇 달 지나지 않아 각각 기짓 게인과 마돈나 웨인 게이시로 교체되었고 마릴린 맨슨 앤 더 스푸키 키즈는 플로리다의 언더그라운드 씬에서 서서히 명성을 쌓아가기 시작한다.
활동을 개시한지 1년만에 이들은 나인 인치 네일스의 투어에 오프닝 밴드로 초대되었고 공연이 끝난 후 맨슨은 백스테이지로 트렌트 레즈너를 찾아갔다. "예전에 당신을 인터뷰했는데 기억하느냐"며 맨슨은 레즈너에게 밴드의 데모 테이프를 건넸고 가능성을 엿본 레즈너는 이후 전폭적으로 마릴린 맨슨 앤 더 스푸키 키즈를 지원해 준다.
여러 차례에 걸쳐 라이브 퍼포먼스를 벌이는 와중에 보다 자유롭고 창조적인 연주를 위해 드럼 파트를 보강할 필요를 느낀 맨슨은 91년경에 드럼 머신을 버리고 사라 리 루카스를 드러머로 영입하였고 이듬해에는 밴드명을 짧게 마릴린 맨슨으로 바꾼다. 이들은 [Meat Beat Clever Beat], [Big Black Bus]와 같은 일련의 데모 테잎을 자체 제작하여 라이브 공연장과 플로리다 지역의 소규모 레코드샵에서 판매를 개시하고 얼마 후에는 싱글 'Dope Hat', 'Lunchbox', 'My Monkey' 등을 연달아 발표하며 인기몰이에 나선다. 당시 이들의 무대는 "Kill God" 혹은 "Anal Fun" 등의 문장을 말하도록 조작된 장난감과 우리속에 가두거나 십자가에 매단 여성들, 껍질을 벗긴 염소머리 등으로 꾸며졌고 멤버들은 무대 위에서 곧잘 불을 지르고 전라의 차림으로 누드쇼를 벌이면서 엽기적인 퍼포먼스로 주목을 끌었다. 그러는 동안 플로리다의 지역 어워드인 슬래미(Slammie)는 91년부터 수년간 연속해서 이들을 여러 부문에 후보로 지명했고 93년에 이들은 'Best Hard Alternative Band', 'Band Of The Year', 'Best Local Release', 'Song Of The Year', 'Best Vocalist' 등을 수상하며 플로리다의 대표적인 로컬 스타가 되었다. 93년에는 기젯 게인이 마약문제로 밴드에서 쫓겨나고 미스터 맨슨의 오른팔격인 트위기 라미레즈가 암북 아 라드를 탈퇴한 후 새로운 베이스 주자로 마릴린 맨슨에 합류하며 본격적인 마릴린 맨슨 시대를 열어젖힌다.
93년 마릴린 맨슨은 트렌트 레즈너가 설립한 낫씽 레이블(Nothing Label)에 소속된 1호 밴드가 되어 마침내 데뷔앨범 [Portrait Of An American Family](93)를 발표하였다(우연의 일치겠지만 트렌트 레즈너는 이무렵 찰스 맨슨이 샤론 테이트를 살해했던 테이트 맨션을 구입해 지금까지 자신의 스튜디오로 사용하고 있어 여러모로 마릴린 맨슨과는 인연이 깊다). 이 앨범의 프로듀서는 원래 롤리 마시맨(Roli Mossiman)이었으나 맨슨이 그의 솜씨에 불만을 표하자 트렌트 레즈너는 한창 나인 인치 네일스 앨범을 준비하던 바쁜 와중에도 직접 팔을 걷어부치고 처음부터 새로 프로듀싱을 해주는 등 마릴린 맨슨에 대한 깊은 애정을 보여주었다. 뿐만 아니라 앨범 레코딩이 끝난 후 물의가 빚어질 것을 우려한 인터스코프 레이블이 이 앨범의 발매를 망설일 때도 발벗고 나서 앨범발매를 주선했으며 앨범이 공개된 후 쏟아진 보수주의자들의 비난도 앞장서서 무마해 주는 등 마릴린 맨슨에 대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이듬해인 94년 미스터 맨슨은 악마주의 논쟁에 불을 뿌리는 사건을 일으킨다. 평소 악마교에 지대한 관심을 품고 있던 그는 솔트 레이크시 공연 도중 자신의 철학적 스승으로 삼고있던 악마교의 교주 앤튼 래비를 직접 찾아가 만난 후, 래비 교주로부터 악마교의 목사(Reverend) 칭호를 공식적으로 부여받는다. 이 일 이후 마릴린 맨슨은 유타주와 솔트 레이크시에서의 공연을 거부당하고 기독교인들의 거센 비판에 시달리기 시작했다(몰몬교가 번성해 있는 솔트 레이크 공연 당시 무대 위에서 나인 인치 네일스가 한창 땀흘리며 공연에 몰두해 있을 때 공연금지에 묶여있던 마릴린 맨슨은 슬그머니 무대위에 올라가 몰몬교의 성경을 한 장씩 찢어 관객들에게 흩날림으로써 복수(?)를 감행하기도 했다. 이로써 마릴린 맨슨은 영원히 솔트 레이크시에서 공연을 할 수 없게 되었다).
95년에는 콘(Korn)과 함께 댄직(Danzig)의 투어에 참가했는데 이미 이무렵에 마릴린 맨슨의 인기가 댄직을 능가하고 있었다. 한편 한창 투어를 벌이던 도중 드러머 사라 리 루카스와 마릴린 맨슨의 갈등이 점점 심각해진다. 라이브 무대 위에서 두 사람은 물통과 드럼스틱을 서로에게 던지며 내놓고 싸우더니 마릴린 맨슨이 드럼세트에다 불을 지른 사건을 정점으로(이것이 준비된 퍼포먼스였는지 아니면 미스터 맨슨의 악의적인 행동인지는 확실치 않다) 결국 사라 리 루카스가 밴드를 탈퇴하였고 그 공석에 진저 피쉬가 들어왔다. 이로부터 얼마 후 마릴린 맨슨은 유리스믹스(Eurythmics)의 히트곡 'Sweat Dreams'를 괴기스럽게 리메이크하여 수록한 2집 앨범 [Smells Like Children](95)을 발표하여 세계적인 밴드로 성장한다. 한편 마릴린 맨슨 사운드의 핵심이었던 원년멤버 데이지 버코위츠도 미스터 맨슨의 극단적인 퍼포먼스에 난색을 표하다 96년 밴드를 떠나고 새로운 기타리스트로 짐점이 영입된 후 마릴린 맨슨을 단순한 쇼크록 그룹이 아닌 아티스트로 대접받게 해준 3집 [Antichrist Superstar]를 발표한다. 이 앨범은 미국차트에 3위로 등장하여 음악계 내외를 놀라게 했다. 이 해에 마릴린 맨슨은 "Antichrist Superstar/Dead To the World"라는 도발적인 슬로건을 내걸고 전미 투어에 나섰는데 이들이 가는 곳마다 팬들의 열렬한 지지와 기독교인들의 격결한 항의가 동시에 쏟아졌다.
이로부터 2년후 짐점 또한 음악성향의 차이로 인해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한 채) 밴드를 탈퇴하고 존 파이브가 새로 합류함으로써 마릴린 맨슨은 현재의 라인업을 갖추게 되었다. 이무렵 트렌트 레즈너와 결별을 선언한 마릴린 맨슨은 나인 인치 네일스의 인더스트리얼 색채가 빠진 네 번째 앨범 [Mechanical Animals](98)를 발표, 대형 소매점들의 판매 불가 정책과 기독교인들의 대대적인 불매운동에 아랑곳없이 차트 1위로 데뷔한다. 앨범 발표 후 마릴린 맨슨은 "Mechanical Animals/Rock Is Dead" 투어를 벌였으며 99년 이 투어실황을 담은 라이브앨범 [The Last Tour On Earth](99)가 발매되었다.
한편 98년에 자신의 성장과정과 섹스 라이프, 밴드 활동 등에 대한 적나라한 내용을 담은 엽기 자서전 [Long Hard Road Out Of Hell]을 출간한 미스터 맨슨은 현재 자전적인 내용을 담은 영화 [Holy Wood]에 주연으로 출연할 예정이며 사운드트랙까지도 담당한다는 소식이다. 이 영화는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The Wall]과 흡사한 디스토피아적 분위기의 SF 판타지로 만들어질 것이라고 한다. 이밖에 미스터 맨슨은 여배우 로즈 맥고완(Rose McGowan)과 약혼했으며 곧 결혼을 앞두고 있다. 미스터 맨슨은 로즈 맥고완이 맨슨 자신보다 훨씬 지독한 성장 스토리를 가지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 누군가 자신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바로 로즈일 것이라고 한 인터뷰에서 밝혔었다. 대외적인 이미지나 행동으로 봐서도 두 사람은 천생연분인 것 같다.
또한 밴드 마릴린 맨슨은 올해 10월 24일 발매 예정인 5집 앨범의 작업에 한창이다. 새앨범의 타이틀은 [Hoiy Wood (In the Valley Of Shadow Of Death)]. '어른들의 오락이 우리의 아이들을 죽이고 있는가 아니면 우리의 아이들이 어른들의 오락을 죽이고 있는가(...Is adult entertainment killing our children or our children killing adult entertainment?)'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올해 미스터 맨슨은 트렌트 레즈너와 3년여만에 화해하여 함께 라이브 무대에 서는 등 예전의 뜨거웠던 우정을 다시 과시하고 있다. 마릴린 맨슨의 5집 앨범은 트렌트 레즈너의 낫씽 레이블에서 2000년 11월 14일 발매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