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호선 전철안 모습, 한 분도 빠짐없이 핸드폰을 보고 있다. 초상권을 우려해 처리 하였음,
소운의 일요 放談, 소운/박목철
친구,
옛 친구 김희영 시인이 전화를 해 왔다. 문자는 간혹 오기도 하지만 전화는 뜻밖이다.
전화를 받았더니, “전화 정말 잘 받으시네, 옥희가 서울 왔어요, 만나 보셔야죠?”
사실 평소에는 전화를 잘 받지 않는 편이다. 솔직히 표현을 하자면 기다릴 전화가 딱히
없기 때문이다. 소운이 돈 없는 걸 어떻게 아는지, 대출이 어떻고 가 아니면 통신사
이동하면 현금 얼마를 준다는 뻔한 거짓말 전화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오는 전화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나만 그런게 아니라 나이가 들면, 세상의 흐름에서 비켜서는 게 사는 이치
이기도 하다.
옥희, 고등학교 때 친구를 반세기나 지나서 연락이 닿았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꽤 곱던 소녀의 모습이 어떻게 변했을까 하는 궁금증도 더해 당연히 보자고 했다.
발산역, 4번 출구 앞,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낯선 곳이기도 하고 꽤 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를 끊고 컴으로 조회해 보니 생각처럼 먼 곳은 아니었다.
석계역에서 한 시간 남짓, 나이 들고 보니 내 삶의 터전이 주류에선 한참 비켰다는 것을
요즘 절실히 느낀다. 아는 직장 동료들은 대부분이 일산이니 과천이니 분당 등 잘 나가는
동네에 살고 있고, 만남의 장소는 변두리 인생인 소운이 가기에는 늘 부산만큼 먼 곳에
정해지기에 요즘은 모임도 거의 피하고 있다.
처음 보는 사람과 얼굴을 마주하는 장소에 가면 사실 시선 둘 곳이 마땅치 않다.
대표적인 게 전철이기도 하지만 다행히 요즘 전철 안에서 시선을 의식 할 필요는 없다.
전철 안을 돌아보니 거의 100%라 해도 틀리지 않을 만큼 모두가 폰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몇 정거장이나? 소운도 당연히 폰을 꺼내 인터넷 조회를 했다. 출발지 석계- 도착지 발산,
중간에 공덕역에서 갈아타라는 안내에 더해 소요 시간까지 친절하게 알려 준다.
혹시 외계인이 우리의 모습을 본다면, 이놈들이 도대체 뭘 저렇게 열심히 하지?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너나없이 모두 폰 중독이 실감 나는 현장이 전철이기도 하다.
커피숍에서 김희영 시인과 옛 얘기를 하며, 옥희를 기다렸다.
커피숍을 들어서는 중년을 훌쩍 지난 두 여인, 아! 세월에 바래지 않은 것은 추억뿐이구나.
아마 딴 곳에서 만났다면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무심히 스쳤을 것이다.
다소곳하던 소녀의 모습을 더듬어 보려고 한참을 애썼다. 아마 옥희도 그랬을 것이다.
잔잔하게 웃을 때, 곱게 주름진 눈가에서 옛 모습의 그림자가 얼핏 반갑게 스쳐 갔다.
서로의 얘기 중 기억하는 것도, 못 하는 것도 있었지만 모처럼 웃고 떠드는 행복을 맛보았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옥희 동생이 우리 기억에 없는 얘기를 많이 들려줬다.
“오빠, 마르고 키 크고 잘생긴 얼굴이었는데,” “정말?” 모두가 그렇단다.
소운은 스스로 잘생겼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으나 낯 간지러운 덕담에 기분은 좋았다.
“우리 일 년에 한 번이라도 보자, 서울 오면 연락할게,”
일 년에 한 번이라도? 몇 번이나 더 보게 될까, 어깨를 걸치고 사진을 찍으며 왠지 모르게
가슴이 아렸다. 이렇게 살다 가는 게 인생인가?
석양,
요즘은 서울에서 자는 일이 드물다.
푹신한 침대에 환경이 잘 갖춰진 양평에서의 생활이 몸에 익은 탓인지
어쩌다 서울 집에서 자려면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모임이 있거나 한 날은 서울 집에서 자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느끼는 일이지만, 해가 떨어지기 전에 집에 들어서려면 막연한 외로움이
밀려와 문을 열고 들어설 때의 느낌이 싫어서 밖에서 술을 마시게 되기도 한다.
옛 친구와의 만남은 점심을 같이하고 한참을 수다 떤 것으로 끝났다.
어디 가서 차라도, 했으나 선약이 있다고 다음을 기약하자고 했기 때문이다.
석계역 근처는 술 마실 곳이 많다.
집에 가기는 이르고, 고래고깃 집? 한참을 망설이다 안주를 사서 집에서 마시기로 했다.
집에서 혼자 마시는 거야 그렇다 쳐도, 술집에서 혼자 술 마시는 모양은 그림이 그렇다.
석계역에서 집에 가려면, 주민들의 조깅 코스인 도로를 지나야 한다. 차가 다니지 않는 길
이라 운동하는 분들을 많이 보게 된다.
무심히 앞을 보니 할머니 대여섯 분이 앞에서 걷고 있었다. 하나같이 관절이 닳아 오다리
가 되어 구부정한 자세로 걷고 있었다. 오늘은 이상한 날이다.
전철 안에서는 젊은이들이 하나같이 폰을 들고 있더니, 소운의 앞에서 걷는 할머니들의
한결같은 모습은 또 뭐냐? 석양빛이 할머니들의 등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 모든 분이 다 제대로 걸음을 걷지 못하셨다. 거의가 오다리셨고, 세월은 누구도 비켜가지 않는다.
카톡! 김희영 시인에게서 문자가 왔다.
“옥희가 미안하다고 전해 달라네, 한의원 예약 시간 때문에 차 한 잔못하고 헤어졌다고,”
그래, 이제 한약도 먹어야 하고 병원도 다녀야 할 나이이지,
참치 캔에 막걸리를 마셨다. 알딸딸하게 취해서 팍 자야 하는데,
세월, 소운/박목철
유행가 가사가 떠 올랐다
고장 난 벽시계,
세월은 고장도 없다는 한탄,
시간 여행을 했다
반세기 세월 저편으로
곱던 소녀는
고장 난 벽시계 되어 추억 속에 있었다.
첫댓글 [출발지 석계- 도착지 발산,중간에 공덕역에서
갈아타라는 안내]라는 문구를 보니 발산에
거주할 때와 경의선을 타고 공덕에 내려
용산의 박물관으로 향하던 과거가 생각납니다
그리고 "커피숍을 들어서는 중년을 훌쩍 지난
두 여인, 아! 세월에 바래지 않은 것은 추억뿐이구나."
하고 회고하시는 작가님처럼 저도 옛님을 지금
만난다면 단지 좋았던 시절의 추억만을 그리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해봅니다
상단의 화면은 초상권 관계로 흐릿하게
처리하신 것 같은 데 검은 색 계통이라
판화처럼 분위기가 있지만
어두운 광산을 보는 듯하므로 이왕이면
파워캠을 이용하여 밝은 사진으로
바꿔보시는 것도 좋을 듯 하네요
제가 사진을 잘 몰서,
사진을 폰으로 옮겨 잘라내기 등을 하는 수준입니다.
좀 배워야겠다는 생각은 늘 있지만, 하게 되지를 않습니다.
사진과 수필과 시가 어우러지는 수필집을 발간하겠다는 생각에
그렇게 글을 써오긴 했는데, 사진 부분이 부실하다는 생각입니다.
어제 기회 되면 한 수 가르침을 받고 싶습니다.
좋은 시간 되시고, 늘 행복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리피터님,
글을 너무 잘 쓰시네요. 젊고 찬란하던 시절이 지나고 모두들 이렇게 늙어가네요. 그래도 노년에 모두들 늘 행복하고 건강하세요.
고맙습니다.
세월 이기는 장사 없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답니다.
님께서도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시기를 빌겠습니다.
반세기 세월 저편의 옥희씨처럼
사진 속 뒷모습의 저 할머니들도
누군가에게는 추억 속의 소녀들이겠지요.
문득 내 어린 시절 소녀들의 얼굴을 하나씩 떠올려봅니다.
옛 여자 분들은 전부 무릅 연골이 닳아 오다리가 되는 것 같습니다.
사람의 눈 만 나이를 먹지 않나 봅니다. 자신은 늙어도 상대는 젊기를
바라는 마음도 그렇고요, 곱게 늙어야 겠다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됐답니다.
좋은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일상의 한부분을 4B연필로 스케치하시듯, 연한 수채화를 보는듯한 신선함까지듭니다....
작은구름님 글잘보고갑니다. 건강하세요.
좋은 댓글로 격려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더 열심히 노력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