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알프스(ALPS) 원정기
1. 원정 개요
• 기간: 2026년 6월 18일 ~ 6월 27일 (9박 10일)
• 참가 인원: 김케니 원정대장, 김윤정, 박봉구 (총 3명)
• 원정 대상지
o 그란 파라디조 (Grand Paradiso, 4,061m): 이탈리아 북서부 위치. 전 구간이 이탈리아 영토에 속한 유일한 4,000m급 고봉. 빙하 보행과 암릉 등반을 두루 경험할 수 있어 고산 입문 대상지로 꼽힘. (트레일헤드 1,830m / 샤보 산장(Chabod Hut) 2,750m)
o 푼타 니페티 (Punta Gnifetti, 4,554m): 몬테 로사(Monte Rosa) 산군에 속하며 이탈리아와 스위스 국경에 위치. 알프스에서 10번째로 높은 산으로, 대형 크레바스 통과와 빙하 등반이 핵심인 코스. (트레일헤드 3,275m / 만토바 산장(Mantova Hut) 3,498m)
※ 당초 몽블랑 등정을 계획했으나, 이상 고온으로 인한 심각한 낙석 위험 때문에 대상지를 푼타 니페티로 변경함.
2. 출발 전 준비: 자신과의 싸움
2025년 10월 중순, 알프스 원정 공지가 올라왔다. 내 능력을 걱정하는 악우(嶽友)들의 깊은 염려에 마음속 갈등도 많았지만, '이번 기회가 내 실력과 체력을 기를 수 있는 최고의 경험이 될 것'이라 믿고 도전을 결정했다.
염려가 컸던 만큼 11월부터 곧바로 체력 단련에 돌입했다. 본업에 부업(2nd job)까지 소화하며 주 2~3회씩 체육관(Gym)을 찾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12시간 근무를 마치고 나면 온몸이 천근만근 무거워 눕고만 싶었지만, "딱 1시간만이라도 하자"라며 매번 마음을 다잡았다. 심폐 훈련을 위해 계단 오르기를 30분에서 1시간으로 점차 늘렸고, 상·하체 근력 운동도 틈나는 대로 병행했다. 마지막 한 달 동안은 산행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캣스킬(Catskill) 10마일 솔로 하이킹을 3회 다녀왔다.
격주 토요일 근무라는 직업적 제약 때문에 공식 단체 훈련 스케줄을 맞추기가 가장 힘들었다. 원정 자격 획득을 위해 매달 참가해야 했기에 동료들에게 미안한 소리도 들었지만, 얼굴에 철판을 깔고 "할 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버텼다. 우여곡절 끝에 최종 참여 자격을 획득했을 때 비로소 다리를 뻗고 잠들 수 있었다.
3. 산행 기록
1차 등반: 그란 파라디조 (Grand Paradiso, 4,061m)
• Day 1 (6월 19일) | 날씨: 맑음
o 코스 및 일정: 09:00 가이드 미팅 ➔ 11:30 트레일헤드(1,830m) 도착 및 등반 시작 ➔ 14:00 샤보(Chabod) 산장(2,750m) 도착 (등반 거리 5.8km / 고도 상승 약 900m) ➔ 장비 점검 및 자유시간 ➔ 21:00 취침
o 기록: 아침 9시, 가이드 안나(Anna)와 첫 만남을 가졌다. 아담한 체격에 차분해 보였지만 전문 산악인다운 거침없고 강인한 아우라가 풍겼다. 장비를 점검하며 불필요한 무게를 과감히 덜어냈고, 오후 소나기 예보로 인해 출발을 서둘렀다. 산행 초입은 급경사였지만 아름드리 낙엽송과 잣나무 지대를 지나 고산 초원지대로 이어졌고, 산장이 가까워지자 바위와 자갈 지대로 바뀌었다. 샤보 산장은 4인실 벙크 베드를 배정받았는데, 주식인 파스타와 고기 요리가 아주 훌륭했다. 하지만 시차와 낯선 환경, 방안의 더위와 건조함 때문에 새벽 2시 반까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누워서 쉬는 것도 휴식이다. 오늘만 버티자"라며 스스로를 위안하는 사이 기상 시간이 다가왔다.
• Day 2 (6월 20일) | 날씨: 맑음
o 코스 및 일정: 03:30 기상 및 조식 ➔ 04:30 산장 출발 ➔ 09:30 정상 도착 ➔ 산장 귀환 및 중식 ➔ 16:30 하산 완료 (왕복 거리 약 14km / 고도 상승 약 1,300m / 정상까지 5시간 소요)
o 기록: 헤드 랜턴을 켜고 바위와 슬러시 눈이 뒤섞인 구간을 1시간쯤 올라 빙하(Glacier) 초입에 닿았다. 안자일렌(Rope-in)을 위해 서로를 로프로 묶었다. 가이드 안나는 팽팽하게 로프 간격(3~5m)을 유지하며 수많은 크레바스 구간을 능숙하게 리드했다. 대원들이 한 몸처럼 움직여야만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는 팀워크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오전 9시 반, 드디어 정상 밑 암릉 지대에 정시 도착했다. 안나의 빌레이를 받으며 암벽을 오르는 순간, 문득 먼저 세상을 떠난 조성태 전 회장님이 스쳐 지나갔다. "누나는 마운티니어링을 잘할 것 같다"며 매듭법과 안자일렌을 가르쳐주던 그의 따뜻한 격려가 생각나 목이 메고 눈물이 앞을 가렸다. 정상의 마리아상 앞에 서자 발아래로 펼쳐진 구름과 빙하가 장관을 이루었다. 이상 고온으로 약해진 스노브리지를 피하느라 하산길은 더욱 신중했다. 몸을 낮춰 피켈로 찍어가며 안전하게 하산을 마쳤을 때, 정상을 해내었다는 소박한 기쁨과 자신감이 온몸을 감쌌다.
2차 등반: 푼타 니페티 (Punta Gnifetti, 4,554m)
• Day 1 (6/24) | 날씨: 흐림 (산장 이동 중 소나기)
o 기록: 케이블카를 타고 트레일헤드(3,275m)까지 이동한 후, 고정 와이어가 설치된 암릉과 모레인(빙퇴석) 지대를 1시간가량 걸어 만토바 산장(Montova Hut, 3,498m)에 도착했다. 급하게 일정을 변경한 탓에 유럽에서 가장 높은 마르게리따 산장은 예약할 수 없었고, 만토바 산장의 다인실 2층 침대 아랫칸을 간신히 구해 셋이 나란히 누웠다. 샤워도 할 수 없는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전 세계에서 모인 등반가들이 조용히 질서를 지키며 등반을 준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높은 고도 탓인지 이날 밤도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 Day 2 (6/25) | 날씨: 맑음 (하산 직후 소나기)
o 코스 및 일정: 03:30 기상 및 조식 ➔ 04:30 출발 ➔ 09:00 정상 등정 ➔ 산장 귀환 후 케이블카 하산 (왕복 거리 약 12km / 고도 상승 약 1,160m / 정상까지 4시간 15분 소요)
o 기록: 크레바스 브리지가 약해지기 전 통과하기 위해 새벽 4시 반 정각에 출발했다. 이번 등반은 가이드 1명당 대원 비율을 낮추어, 나와 안나가 1:1로 묶였고 나머지 두 대원은 남성 가이드와 한 팀이 되었다. (비용은 가이드당 1,200유로) 그란 파라디조보다 500m 이상 높아진 고도 때문에 호흡이 가쁘고 발걸음이 무거웠다. 고비 때마다 "이 돈 안 되는 개고생을 왜 하느냐"던 언니의 농담 섞인 충고가 생각나 피식 웃음이 났다. 하지만 고개를 들어 사방으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설산과 빙하를 바라보며 다시 숨을 고르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마지막 30~35도의 가파른 설사면을 치고 오르자, 오전 9시가 되기 전 마침내 정상에 우뚝 섰다. 좁은 눈언덕 정상과 그 위에 자리 잡은 유서 깊은 산장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대원들과 격정적인 하이파이브와 포옹을 나누며 정상의 기쁨을 만끽했다. 하산 길, 가이드 안나가 좁은 설사면에서 연신 "Wider!(발 넓게!)"를 외치며 크램폰 워킹을 교정해 주었다. 안전하게 케이블카역에 도착해 안나와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누자마자 거짓말처럼 장대비가 쏟아졌다.
4. 원정을 마치며 느낀 점 (Alpinism의 핵심: Light & Fast)
• 첫째, 팀워크와 역할 분담의 미학 정상이라는 하나의 공통된 목표를 위해 열흘간 동고동락하며 팀워크의 소중함을 배웠다. 양보와 희생, 그리고 자발적인 봉사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여정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입은 무겁게, 몸은 가볍게, 생각은 긍정적으로" 임하고자 노력했다. 원정을 훌륭하게 이끌어 주신 김케니 대장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 둘째, 철저한 체력 준비와 고산 정신무장 체력은 등반의 기본이다. 이번 원정을 통해 고산에서의 심폐 기능 강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면 만사가 멈춘다. 향후 더 높은 고산을 위해 심폐 중심의 훈련을 한층 더 강화해야겠다는 결론을 얻었다.
• 셋째, 장비의 경량화와 적절한 레이어링(Layering) 유럽 알파인 등반의 핵심은 산장을 거점으로 배낭을 최소화해 빠르게 치고 빠지는 것이다. 변덕스러운 알프스 날씨에 대응할 레이어링 체계가 필수적이었다. 이번에 아끼느라 무거운 클래식 '네팔 부츠'를 그대로 신었는데, 현지 등반가의 95%는 경량 마운티니어링 부츠와 매우 짧은 피켈을 사용하고 있었다. 경사면에서 안전과 체력 안배를 위해 장비의 현대화와 경량화가 필요함을 실감했다.
• 넷째, 철저한 독립성과 기술 숙달 알프스 4,000m급은 결코 만만한 놀이터가 아니다. 크램폰 워킹, 로프 매니지먼트, 안자일렌, 그리고 기본적인 암·빙벽 기술이 내 몸에 완전히 익어있어야만 주도적인 등반이 가능하다. "친한 친구니까 대충 도와주고 당겨주겠지"라는 안일한 마음가짐으로는 다음 원정을 기약할 수 없다는 냉정한 현실을 배웠다.
5. 감사의 글
이번 원정에 아낌없는 후원과 격려를 보내주신 최에릭 부회장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완벽한 훈련 스케줄을 조율하고 원정대장으로서 솔선수범하며 희생해 주신 김케니 대장님, 그리고 힘든 여정을 끝까지 함께 버텨준 동료 대원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이번 알프스 원정의 소중한 경험이 앞으로 더 높고 험한 고산 원정으로 나아가는 단단한 밑거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Punta Gnifetti 정상
가이드 안나(오른쪽) 와 루디
Chabod Rifug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