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보기 전에 승정원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알아야겠습니다. 승정원은 왕의 비서실로, 소개글을 보면 보통 ‘왕명의 출납을 담당했다’고 쓰여 있습니다. 이것은 왕과 각 부서들 사이에서 소통 역할을 했다는 뜻입니다. 각 부서에서 올라오는 서류를 정리해 왕에게 전하고 왕의 명령을 여러 부서에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지요. 사극을 보면 왕이 ‘도승지는 들라’는 말을 하는 모습을 가끔 볼 수 있는데 도승지란 오늘날로 하면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말합니다. 승정원 일기는 바로 이 비서실에서 왕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 적은 기록입니다. 실록이 나라 전반에 관한 기록을 남긴 것에 비해 일기는 왕 개인에 초점을 맞추어 적은 것입니다. 왕의 동태나 기분까지도 상세하게 적었습니다. 그래서 일기의 기록을 읽고 있으면 마치 현장에 있는 느낌을 받는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영조가 일이 많은 것을 한탄하며 ‘이렇게 일 때문에 골치를 썩는 것은 내 팔자’라고 했던 넋두리까지 적고 있으니 그런 느낌을 가질 수 있겠습니다. 이런 개인적인 기록은 실록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실록과 관계해서 이런 의문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왜 같은 왕조의 역사 기록물이 두 개씩이나 세계유산이 될 수 있었는지 말입니다. 일기는 특히 동북아시아의 근세사에 대한 훌륭한 기록으로 인정받아 세계유산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조선 왕실을 중심으로 중국과 일본, 그리고 서양 각국들이 각축하던 모습들이 아주 잘 기록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일기는 실록처럼 전체 분량이 다 남아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실록의 경우에는 지방 사고(전주 사고)에 있던 것이 보존되어 임란 전 것도 남아 있지만 일기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일기는 경복궁 안에만 있었기 때문에 임란 때 타버리게 됩니다. 임란 후의 것도 다 보존된 것이 아니라 이괄의 난 때 다시 한 번 화재를 입어 그 이후의 것만 남아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인조 대부터 순종 대까지 288년의 기록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세계 최대역사서이니 만일 전체가 다 남아 있었다면 얼마나 거대한 역사서가 되었을지 모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