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편함속의 새둥지
친구를 만나려고 다세대주택 건물 입구에 들어서자 벽면 우편함에는
전에 없던 경고문이 원색의 예쁜 글씨로 붙여 있었다.
“쉿! 조용히! 새가 알을 품고 있어요!”
깜짝 놀라서 우편함 속을 들여다보니 과연 그 속에는 조그만 새 한 마리가
눈도 끔적 하지 않고 알을 품은 채로 빠끔히 밖을 내다보고 앉아있었다.
밤낮을 가릴 것 없이 사람들의 출입이 잦은 다세대 주택 입구를 찾아와서
자리를 정하고 둥지를 틀고는 천연덕스럽게 지금 알을 품고 있는 것이다.
봄을 기다려 보금자리를 마련 할 요량으로 그들은
몇 날을 온 마을을 찾아다니며 터전을 물색한 끝에 장소를 결정하여
둥지를 만들고 털을 벗어 아기 새의 이부자리를 마련하였을 것이다.
두려웠던 사람들이 우호적으로 대해 주어 예정대로 알을 낳아 품고 있으면서
체온이 고르도록 몸을 사리고 발가락을 고물거려 부화를 애타게 기다리는 시간은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과 희망에 부푼 나날을 보냈을 것이다.
궁금증을 참지 못해 다시 찾아갔을 때는 듬성듬성 길쭉한 새끼털이
달린 새끼 새들은 어미가 날라다 먹여 주는 먹이를 다투어 먹고
하루가 다르게 자라면서 꿈도 힘도 키우면서 퍼덕이고 있었다.
깃털 속에서 묻어나는 허연 비늘들을 공중에 날리면서
둥지 난간에 실낱같은 발을 붙들고 퍼덕이며 몸부림치는 광경을 지켜보며
어미 새의 가슴은 얼마나 기쁨으로 콩닥거렸을까.
아이들이 몇 날을 연습하고 몸살을 앓으면서 간신히 보여주던
첫 걸음마 연습이 너무 좋아서 안아주면 신바람이 나서 더욱 기를 쓰고 배우던 모습.
맨 처음 들어보던 서투른 엄마를 부르는 소리에 행복에 젖어
눈시울을 적시던 지난 시절이 번개처럼 뇌리를 스친다.
생명 있는 것들이 한번이라도 오르고 싶은 푸른 하늘.
그곳은 희망과 꿈의 무대며 자유의 신비한 이상향.
화려하게 펼쳐진 봄의 향연 을 자식에게 보여주고 싶은 간절한 꿈으로
차마 잠들 수 없는 밤들을 다독이고 있었을 것이다.
대를 물려가며 나고 자라던 산자락이 모두 알몸을 들어내어 상처 받고
소음과 오염으로 고통스러워도 차마 고향을 떠날 수 없어서
위험을 무릅쓰고 우편함속에 둥지를 틀었던 결과로 건강한 새끼를 기르는데 성공하자
이제 대대로 물려온 생명의 명맥을 이음에 더더욱 기쁨을 참을 수 없어
날마다 그토록 아름다운 노래들을 불렀을 게다.
며칠이 지난 뒤에 기쁜 소식을 방송국에나 알리려고 우편함 앞에 섰을 때는
약간 녹이 슬은 우편함의 문이 열린 채로 있을 뿐 그 속의 산새 가족은 찾을 수가 없었다.
궁금해 하는 내게 들려준 친구의 설명에 억장이 무너졌다.
출입하는 사람을 피해 몰래 우편함 쪽을 쳐다보면서
군침을 흘리는 천적이 있었으니 그건 도둑 고양이었다.
자신들의 고향인 하늘을 찾아가려고 비상(飛翔)을 꿈꾸며
이제는 무섭고 두려운 시멘트벽이 아닌 꽃과 나비와 푸른 하늘과
별들이 바로 보이는 자유를 향하여 내려 뛰었건만 시멘트 건물 벽 아래는
서투른 새끼 새의 추락을 보호해주는 숲이 아니고
육욕(肉慾)에 굶주린 도둑고양이가 단숨에 털을 뜯을 필요도 없이 그냥 삼켜 버린 것이었다.
경고문을 붙이고 숨죽여 내다보던 여학생은 몇 밤을 눈물로 새웠고
몇 개월 동안 둥지를 틀 희망으로 사랑노래를 부르며
신바람 나고 숨 가쁘게 드나들며 먹이를 물고 와서는 무럭무럭 자라는
자식의 탐스러운 모습 앞에 피곤을 모르던 이름 모를 산새는 몇 날 쯤은
아파트 허공을 날면서 슬픈 통곡으로 긴 꼬리를 할딱이듯 위 아래로 흔들다가 어디론지 가버린 것이다.
그제야 이른 아침이면 곱고 맑은 소리로 새 아침이 열리었다고
창밖을 맴돌면서 노래하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았고 그 노래는
어느 날 날벼락처럼 찾아올 비극을 전연 누치채지 못한
행복과 사랑의 메시지였던 것이며 다음 날 부터는 애끓는 노래로
몇 날을 더 울다가 녹색의 깃털이 달린 산새의 아름다운 목소리는 영영 들을 수 가 없었다.
오래도록 애완동물로서 가족적인 사랑을 독차지 하던 자리를 개에게 물려주고
대책 없이 문밖으로 쫓겨나 본의 아니게 도둑의 닉네임을 달게 된 고양이의
야심에 찬 복수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고
그건 현대인이 만들어낸 피할 수 없는 죄업이라고 생각 되었다.
깊은 생각 없이 마구잡이로 대려다가 싫증이 나면 아무데나 버리는
철없는 호기심과 경솔한 생활 습관으로 우리의 아름다운 산과 들
생활주변과 하천 생태계가 얼마나 몸살을 앓고 있는가.
아무 쓸모없이 열려있는 현대인들의 마음의 우편함에
멧새 알 같은 행복의 둥지를 틀어줄 반가운 희망의 두루마리를 기다려본다.
첫댓글 좋은 글 참 잘 읽었습니다...서정시와는 전혀 다른 감동을 주는 것이 수필인가 봅니다...우리네 인간이 저지른 업보로 인하여 더는 들을 수 없게 된 예쁜 산새 지저귀는 소리...슬픕니다...그렇다고 도둑 고양이를 일방적으로 탓할 수도 없네요...칭찬하거나 편 들어 주는 건 아니지만 그 고양이는 정당한 생존 수단을 발휘했을 뿐이고...약육강식의 자연의 법칙에 따랐을 뿐이잖아요?...우리 사람들은 약한 동물을 잡아서 식용으로 먹어도 되는데 그들은 왜 아니 되겠는지요...결국...2010년 현대를 살아가는 슬픈 짐승들은 우리 인간일 수밖에 없습니다...오월을 맞아서 부모 자식간의 인연을 참극으로 맞이한 어린 산새의 명복을 빕니다...^J^
정독하시고 긴 댓글로 위로 주심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생태계와 자연 보호에 우리 시인들이 앞장서야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월의 첫번째 월요일 밝은 마음으로 '우편함 속의 새둥지' 제목도 너무 예뻐 한 눈에 읽었지요. 내용도 너무 아름답고 사랑스러워 행복해 하는 순간 아~가슴이 무너지네요. 눈물도 뚝~ 인간은 자연과 호흡하고 하나가 될 때가 참 행복다는 생각을 합니다. 자연을 거부하고 함께 할 수 없을 때는 화려함의 뒤에는 슬픈 이야기 들이 많지요. 현대인에게 들려주는 좋은 글 고맙습니다.
저 스스로 아름다운 광경이 희망으로 마무리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 까고 아쉬워 했는지 모릅니다. 사실 저의 문장 실력고 모자라고.
아쉬운대로 독자들의 가슴에 무언가 호소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읽어 주심만도 감사합니다.
수필의 맛스러움이 좋습니다....
그 여학생은 매일 남동생과 싸움질 하는 골통이었는데 그 새는 끔찍히 위했어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