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내음과 사람내음이 합해져서 永樂이 되었네.
▲용암산 조망바위의 풍경.
◐ 시작하면서 ◑
대륙을 호령했던 광개토왕을 생각하며 문을 엽니다.
연호를 永樂으로 정하고 영원한 낙원을 꿈꾸었던 그.
현대를 사는 우리는 어디에서 그 낙원을 구할 것인가.
그 출입구의 비번을 찾기 위한 간절함이 일어납니다.
자신을 풀어 방목할 단 하루의 해방구를 찾아 나섭니다.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되어 산속을 맘껏 휘젓다 보면,
산내음에 잠긴 웅숭깊은 산속이 永樂임을 깨닫게 됩니다.
산으로 향하는 마음결에 이미 산내음이 갈마들고 있습니다.
◐ 산행 얼개 ◑
▶언제 : 2018년 9월 16일.
▶누구랑 : 대전한겨레산악회 여러분과 함께.
▶어디를 : 월오현-용두산-굴티-복두산-방아재-박달산-봉수산-(용암산)-옛고개(약 19km)
▲전설을 품은 만리산의 옥녀봉이 월오현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오늘의 들머리 월오현.
▲출발하면서 자신에게 말을 건넵니다.
산사랑의 정열로 몸속의 찌꺼기를 모조리 태워보렴.
▲출발지점을 돌아봅니다.
서서히 시동을 걸고 있는 산벗님들의 모습이 자신의 모습입니다.
▲가슴 깊이 퍼져오는 산내음으로 인해 온몸의 신경이 초롱초롱 깨어납니다.
▲귀신에 홀린 줄 알았습니다.
눈 앞에 빨간 물체의 움직임이 포착되었는데 금방 사라졌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산우 한분이 좌틀하지 않고 직진하여 알바작업에 돌입했다네요.
▲온몸에서 뿜어져나오는 저 넉넉한 여유!
▲임도로 내려섭니다.
주변 풍경을 새기듯 찬찬히 둘러보며 걸어갑니다.
▲마루금을 걷는 이 순간, 나의 나라에는 오직 산이라는 절대자만 존재합니다.
▲의롭게 이름을 남기고 간 자만이 死而不死는 아닙니다.
타고 남은 재조차 한줌 없게 정열을 불사른 자, 그가 바로 死而不死.
그렇게 정열을 불사를 대상이 산이라면 더욱 좋겠습니다.
▲해는 중천에 떠 있으되 햇빛은 가려져 있는 날씨.
이런 끄무레한 날에는 가슴속에 타오르는 뜨거움이 제 격입니다.
▲알 수 없는 자기장에 이끌려,
달라붙고 떨어지기를 반복하는 산과 산꾼들입니다.
▲좌측 터진 공간 속으로,
만리산 자락과 우측 건지산이 슬그머니 들어왔습니다.
▲건지산 모습이 전도유망한 청년 같습니다.
▲임당고개.
▲신산스러운 일을 겪을 때
옛사람들은 을사늑약을 빗대 '을사년스럽다'고 했다는데,
오늘 날씨는 그 정도는 아니고 '을씨년스럽다' 정도가 맞을 듯 합니다.
▲내 작은 바람이 있다면, 저 거추장스런 비석들 없이,
내 죽어 이 산에 한 줌 흙보탬이 되는 것으로 족하리라.
▲밤버섯 풍년입니다.
▲산행에서 안전 산행이 최고 미덕.
마찬가지로 인생에선 살아남는 게 최고의 미덕.
▲오늘은 여름산행의 단골손님인
가시덤불의 딴지파가 없어서 천만다행입니다.
▲그 녀석 참.
▲산행은 산비탈이라는 열락의 벽을 비비고 오르는 것.
우리네 삶 또한 불안의 벽을 타고 오르는 것이 아닐까.
▲용두산에서 발원하는 정기를 흠뻑 받아갑니다.
▲성경과 불경의 용어를 다 동원하여 산을 예찬합니다.
우리가 오르는 모든 산은 에덴 동산 같고 니르바나의 숲과 진배 없습니다.
▲이 순간 시간이 녹아버리고,
우리들 사이의 거리도 경계도 녹아버렸습니다.
▲흐리멍텅한 날씨로 인해,
이 제단에 아쉬움만 잔뜩 얹어놓고 갑니다.
▲(용두산 조망 1).
짧은 시계. 눈알 아프도록 힘을 주어 조망거리를 찾습니다.
▲(용두산 조망 2).
▲(용두산 조망 3).
▲산에 몰빵하는 하루라는 시간이 소중함으로 다가옵니다.
▲비록 우중충한 날씨이지만,
마음 속은 고추 멍석 마당에 펼쳐놓은 쨍한 햇살을 생각합니다.
▲습기 머금은 소녀풍이 가늘게 불어오네요.
▲산행은 걸으면서 하는 참선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땀을 비오듯이 쏟아내는 산행이면 더욱 몰입의 효과가 있겠지요.
▲진지하게, 엉덩이 뒤로 빼고, 집중! 집중!
▲선비들이 이런 산길을 걸었을까요.
돈 준다고 해도 선비는 안할랍니다. 그냥 산놈으로 살겠습니다.
▲종교에 귀의한 자는 신을 믿고, 산에 발 담근자는 산을 믿는다.
▲산사람에게 산은 더없는 만찬장.
▲뼈가 징징 우는 외로움에 사무쳐도
산에만 들면 봄바람처럼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건강하고 안전하게 오래 산행하는 것. 이것이 산행 고수의 진정한 가치.
▲세상 이치는 하나로 통하는 법.
마지막에 웃어야 고수. 마지막까지 안전산행해야 고수.
▲임도를 따라 편하게 진행해도 되지만,
하루동안 산에 의탁한 몸, 마음껏 부려먹다 내려가야지.
▲산을 잘 타는 기술자보다는 산을 즐기는 예술가가 되고 싶습니다.
▲돌아보기.
▲아름다움이란 고고하게 세상를 굽어보는 것. 저 나무처럼.
▲산을 찾는 행위는 알 수 없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충전하는 방식.
▲춤추듯이 리듬을 타면서 걸어갑니다.
산행 뿐 아니라 세상의 흐름을 잘 타는 것도 하나의 춤이겠지요.
▲산행은 게으름을 비웃고 흘린 땀에 정직하게 포상해 줍니다.
▲가야할 때 가고 멈춰야 할 때 멈추면
산행은 너무도 행복한 삶의 놀이터가 되지 않을까.
▲산길에 깊이 스며있는 산내음이
가슴 안으로 들어와 번지고 있습니다.
▲산자락에 쪼그리고 앉아 자맥질하는 산의 표정이 정겹네요.
▲해 뒤에 달이 비춰지는 모양, 밝을 明자.
산속에 묻혀있다가 트인 곳으로 나온 우리가
달의 역할을 수행하여 밝음을 견인할 수 있을까.
▲사랑의 페르몬은 길어야 2년이라지만
우리 산사랑의 페르몬은 갈수록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
▲요순시대의 태평성대를 꿈꿔서 요성산인가.
▲굴티고개.
▲자연을 보면서 긍정의 힘으로 에너지를 충전합니다.
▲위수에서 낚싯대 드리우고 때를 기다리는 강태공은 아니지만
산줄기를 훑으면서 마음의 고요시대를 갈망하는 삶을 지향합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스스럼없이 자신을 내놓을 마음으로 산을 찾게 됩니다.
▲돌아보기.
▲내면에 깨알 같은 등불을 켜는 심정으로
바작바작 땀을 흘리며 가파른 비탈을 오릅니다.
▲복두산 직전의 헬기장.
▲어느 시인이 말합니다.
그리움 넘쳐 내 앞에 피는 꽃, 달맞이꽃.
▲이곳이 복두산인 것 같은데. 아무 표식이 없네요.
▲말라가는 나무를 보니, 서글픈 여운이 가슴을 채웁니다.
▲무성한 녹색 이파리들 사이로 자연 아치를 통과합니다.
▲개집은 아닌 것 같고, 새로운 형태의 비박틀인가.
▲곳곳의 출입금지의 문구들이 송이의 계절임을 알려줍니다.
▲마루금은 우측 능선이지만, 나란히 도로를 옆에 끼고 진행합니다.
▲산길과 도로가 살을 섞는 경계를 음미하면서 걷고 있습니다.
▲흐린 날씨이지만,
그래도 우측 트인 공간이 숨쉬는 구멍이 됩니다.
▲우리와 산의 하나됨을 위해,
서두르지 않고 차분하게 마루금을 주파해 갑니다.
▲어떤 분은 여기를 요성산(서요성산)이라던데.... 글쎄요, 입니다.
▲새로운 형태의 송이막사인가 봅니다.
▲벌초가 필요없는 산소도 있군요.
▲방아재.
▲산은 수차례 마지노선을 녹입니다.
봉우리는 거듭 거듭 나타나서, 우리 마음을 담금질합니다.
▲오늘 구간 조망 최고봉인데, 악랄한 훼방꾼은 날씨.
▲(산불초소봉 조망1).
▲(산불초소봉 조망2).
▲(산불초소봉 조망3).
멀리 우측으로 뻗어가는 희미한 줄기는 덕산지맥일 텐데.
▲푸른 이끼 옷을 두른 아카시아나무가 이채롭네요.
▲좌우가 확연히 구분되는 마루금의 오묘한 그림.
칼 날 위에 춤추는 무당의 칼춤을 연상하면서 마루금 칼날을 밟아갑니다.
▲칼날에 베이면 치명상이지만, 베이지 않으면 기적이 일어나는 것.
그래서 마루금 칼날은 우리의 산열정을 담보하는 우리 시대의 아이콘입니다.
▲녹전고개.
▲박달산.
▲무엇일까요? 박달산 고스락에 자생하는 산귤?
▲죽음은 늘 생명의 곁에 있습니다.
쓰러진 나무 옆에 녹색의 향연이 펼쳐져 있습니다.
▲소나기처럼 시원하게 내지르며 산길을 막고있는 노송 한 그루.
▲일명, 달리는 소나무.
▲음양의 문을 열고 자연의 섭리를 들여다봅니다.
▲같은 물이라도 소가 먹으면 우유가 되고 독사가 먹으면 독이 되는 법.
같은 산길이라도 산꾼이 걸으면 마루금이 되고 약초꾼이 걸으면 약초밭이 됩니다.
이 멋진 마루금을 산꾼 흉내를 내며 걸어갑니다. 음유시인처럼 흥얼거리면서.
▲멧돼지 농장 울타리.
▲멧돼지들의 놀이터를 들여다 보았습니다.
▲산 전체를 한껏 들이마시는 기분으로 심호흡을 합니다.
▲봉수산은 또 다른 마루금의 시발점.
문수기맥의 유일한 지맥인 용암지맥의 출발점.
용암산으로 과외산행을 떠납니다.
▲일출사 갈림지점. 일출사 욕심은 접고 용암산으로 향합니다.
▲안내문처럼 조망이 그리 시원치 않습니다. 계절 탓인가.
▲일출정의 조망이 꽝입니다. 삶은 닭이 꼬끼오 할 판.
▲일출정에서 바라본 봉수산.
▲용암산 고스락은 표지석 하나 없네요.
용암지맥의 최고봉 대접이 영 거시기합니다.
▲실질적인 용암산 조망바위는 가도가도 나타나지 않고.
이 지점까지만 일행과 함께 하고, 혼자 바람처럼 달려갑니다.
▲실질적인 용암산 고스락. 일명 용바위봉.
▲흐린 날씨 탓에 말만의 조망바위가 되고 말았네요.
▲천지분간이 안 되는 저 너머.
학가산과 소백산이 허연 환영으로 너울거립니다.
▲環狀彷徨(ringwanderung)도 아니고. 무슨 조화일까.
용바위봉에서 일출정으로 되돌아 간다는 게 직진을 하고 말았으니.
이 알바위가 나타나면서 머리 속이 비로소 정돈되었지요.
용암산 고스락에서 1.5km이상 지난 지점. 되돌아가는 길은 산악마라톤이 되고 말았습니다.
▲일출사 갈림지점으로 돌아왔습니다.
▲일출사 고개에서 송이막으로 가는 사면 산길이 너무 판타스틱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걷고 싶은 욕심이 샘물처럼 솟구칩니다. 언제 같이 한번 와야지.
▲입이 귀에 걸리게 만드는 산길입니다.
▲산행기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송이막터.
▲날머리에 다 왔다고 생각하니, 정신이 물방울처럼 투명해집니다.
▲가지런한 치아 같은 길이면 더 좋겠지만,
이젠 이런 터프한 길도 오감한 길이 되었습니다.
▲안동 방면 휴게소.
▲영주 봉화 방면 휴게소.
▲다음 구간에는 어떤 감동적인 그림이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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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맺는 말 ◑
과학자와 소설가가 함께 쓴 ‘눈 먼 시계공’ 속에서
‘절대고독’이란 말을 충격적으로 접했던 적이 있습니다.
아폴로선이 달 궤도 돌 때 달 뒷면으로 숨어버린 시간.
모든 통신이 두절되고 온 인류와 분리되었던 시간 47분.
‘아담 이후 인류가 경험한 가장 심오한 것’이라고
NASA의 한 직원은 기념비적인 표현을 했다고 합니다.
‘홍시’를 흥얼거리며 허공의 까치밥을 떠올렸습니다.
가지 끝에 호롱불처럼 걸린, 고독함의 상징 까치밥.
NASA 직원의 말이 그 까치밥에 얹혀 대롱거립니다.
내겐 ‘아담 이후 경험한 가장 심오한’ 말이 어머니이고,
내 그 분이 아들 낳았을 때 세상 살아온 년수가 딱 47.
생사 불문하고, 어머니는 과거가 아니라 영원한 현재!!!
어머니 같은 산에 푹 빠졌다 돌아가는 걸음이 휘청입니다.
첫댓글 멋진사진 즐감했습니다.살짝 퍼가겠읍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방카님의 왕성한 체력과 지극한 산사랑으로 산이 훨씬 싱싱해졌습니다.
그 에너지가 같이 산행하는 사람에게 전염되어, 더불어 젊어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용암산 전망바위까지 동행하지 못한 아쉬움이 크네요~ 산을 즐기는 예술가~ 바람처럼 사라지셔서 따라갈 역량이 부족했네요 ㅎ~ 멋진 후기로 감상하니
고맙습니다^^*
용암산 일출봉까지의 동행은 특별한 행복이었습니다.
용바위봉까지의 동행이었다면 금상첨화였겠지만....
브레이크 밟는다는 게 엑셀러레이터를 밟아 알바위까지 눈요기하는 행운도 얻었습니다.
그런 행운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한 산행으로 생활의 에너지가 배로 충전되었네요. 감사합니다.
이번 산행이 깨먼거리인데도 용암산까지 갔다가 알바까지 하고오는 체력이 부러습니다
용암산까지 가자고 했드라면 나도 갔을 터인데 왜 못갔는지 안타깝네요 ㅠㅠ
아무튼 수고 많았어요~~^^
연휴 끝나고 돌아오니 봄비님의 덧글이 올라와 있네요.
새삼 가족, 사랑, 친구의 울타리가 그리워지는 계절입니다.
추석 다음날 안평지맥 한자락 밟고 왔네요.
간만에 쾌청한 날씨를 등에 업고 산에 흠뻑 빠졌다가 간신히 빠져나왔습니다.
건강한 모습으로 다음 구간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엔 나도 꼭 데리고 가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