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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금이 오히려 임도에게 길을 묻다.
▲조항산 오름길에서 바라본 태봉산.
◐ 프롤로그 ◑
봄은 신기루 같은 계절이자 삶에 대한 선물입니다.
봄은 시간의 무게를 버텨온 삶에 던지는 희망의 메세지.
대지에 떨어진 햇빛이 새싹으로 부활하는 3월의 하루!
비록 연습문제 푸는 식의 짧디 짧은 마루금일지라도
마루금을 울타리 삼아 세상을 한번 더 바라보려 합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는 말을 상기합니다.
알다시피 산사람들에게 로마는 산일 수밖에 없는 거고
산자락에서 로마법은 공평하게 퍼져있는 자연법칙이죠.
인간의 법칙이 아닌 자연의 법칙에 맞춰 땀을 흘려 보렵니다.
◐ 산행 얼개 ◑
▷언제 : 2019년 3월 17일.
▷누구랑 : 대전한겨레산악회 여러분과 함께.
▷어디를 : 세계원재-조항산-흰날재-금오산-임도삼거리.
▲여기는 세계원재.
맹목적 산행이 아닌, 영혼이 담긴 산행을 하려고 모였습니다.
▲힘찬 응원가를 불러주고 있는 운제산.
▲오늘 산행의 시작은 산길이 아닌 골목길에서부터.
▲비록, 잠시, 마루금이 골목길로 둔갑했지만,
마루금이 무시무시한 인력으로 우리를 끌어 당기고 있습니다.
▲아아, 마루금은 우리의 상상을 무찔렀습니다.
오늘은 열정의 파도가 골목길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 파도는 마루금이라는 외피를 입고 우리 안으로 흘러들었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포개지면서,
심장과 맥박은 걷잡을 수 없게 뛰기 시작합니다.
▲소용돌이치는 물길에는 중심이 있습니다.
오늘 마루금 여행의 중심에는 운치 가득한 솔숲길이 있습니다.
▲봄햇살 아래에서 땀방울의 무언극은 계속될 것입니다.
▲이 기막힌 산길을 통해서 하루가 더 밝아질 것임을 의심치 않습니다.
▲오늘 산행 구간의 특이점은 도로를 많이 걷는다는 것.
임도라는 명찰을 달고 수시로 산행의 재미를 반감시킬 게 분명합니다.
▲산 밖으로 나오면,
나른함 속으로 서글픔이 밀려올까봐 서둘러 포장길을 건너갑니다.
▲ 저분들은 산불 전문 진화대, 우리는 마루금 전문 산악대,
▲기분 전환이 필요했다면 우리는 운이 좋은 편.
청보리와 봄햇살이 빚어낸 봄기운은 비교불가한 치료약이지요.
▲예상거리가 연습경기처럼 싱겁게 끝날 정도로 짧지만
그 짧음 안에서 알찬 원석을 캐내자고 마음을 다잡아봅니다.
▲마루금상에 자리잡은 통점마을.
▲텅 빈 마을에서 심심했던 견공,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짧은 만남 후 곧 통점마을과 이별합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얻는 것도 없는 법.
이별도 (슬픈)일이라면, 얻는 것은 순리라는 자연의 법칙이리라.
▲마을 끝자락에서 대나무숲 방향으로 좌틀하고,
▲후미진 인생의 뒤안길 같은 마루금이지만,
무시할 수 없는 자연의 분위기와 냄새가 살아 있습니다.
▲오늘 구간은 원 없이 임도를 걸을 것이겠기에,
조금이라도 원마루금에 근접해서 산행을 하고 싶을 뿐.
▲익숙했던 모든 것과 생이별하는 의식은 어떤 것일런가.
가장 아끼는 일, 가장 애장하는 물건,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지는 것.
누군가 이야기 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일은 한번 자살하는 것과 같다고.
비교 대상이 적절한 지는 의문이 일지만 애주가가 절대금주 명령을 받았다면?
▲뚜벅뚜벅. 흔들림 없이 걸어가는 듬직한 뒷모습은 우리의 자화상.
▲야외전시장에 진열된 전시용(?) 군용차량.
▲눈길이 가는 곳엔 생각도 따라가는 법.
좌측 전방 속살이 파인 곳이 우리가 걸어가야 할 방향.
▲떨어져 있음이 이별이 아님을 마루금은 깨우쳐 줍니다.
▲임도는 끝 모르고 이어집니다.
▲우리의 생각을 읽었을까, 임도는 잠시 산길에게 역할을 양보하네요.
▲소중한 산길을 탐구 중인데 핸드폰이 울리네요.
오래 전에 잊혀졌던 벗의 이름이 액정화면에 찍힙니다.
▲지금은 미션 수행중. 그러니 벗이여, 잠시 씹는다.
눈 앞에 펼쳐진 자연의 생채기로도 충분히 아프다는 사실을 아는지.
▲금광석산에는 과연 금광이?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을 풀려고 잠시 발걸음을 팔아봅니다.
▲레드카펫보다 영광스런, 금광석산으로 향하는 황홀한 솔밭길.
▲잔솔밭이 마음을 정돈시켜 줍니다.
▲금광석산에 금광은 없고 정겨운 우리말 하나 캐어갑니다.
'마카다'는 '모두, 전부'를 뜻하는 경상도 방언이라고 합니다.
▲산 닮은 산우님들이 있어 산이 더욱 빛이 납니다.
산자락마다 마음심지를 심는 산우님들이 있어 산이 산다워집니다.
▲마루금으로 돌아가는 산길이 실크로드 부럽지 않습니다.
▲원판의 자연이 더 변하기 전에
부지런히 발품을 팔며 눈에 담아 둘 일입니다.
▲우리 땅 산하가 오염투성이라고 짜증을 내곤 했습니다.
그런데, 오염투성이는 자연이 아니라 정작 나였음을 깨달았습니다.
▲통신시설을 잔뜩 이고 있는 조항산.
▲푸릇푸릇 봄기운이 입맛을 다시고 있습니다.
▲이쯤이 오늘 산행의 백미가 아닐까 싶은데.
▲시야가 홀연히 터진 조망처에서의 잊지 못할 한 때,
마음속 양지녘이 이 때보다 더 맑게 빛난 적이 몇 번이나 있었던가.
▲저 의자에 앉아있으려니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았습니다.
뭉친 것 시원하게 훑어내리는 전율이 온몸을 휘감아 돌았습니다.
▲(조항산 전망대 조망 1). 포항 산행의 백미 운제산.
▲(조항산 전망대 조망 2).
정겨운 산자락 봉봉들이 미세먼지에 완전 포획되었네요.
▲(조항산 전망대 조망 3).
▲(조항산 전망대 조망 4).
▲산행은 산자락 도처에 뿌리내린 인류의 연대표를 탐구하는 과정.
▲산에서 땀 흘리며 느끼는 시원함.
느낌의 차이는 생각의 질의 차이를 가져옵니다.
▲이런저런 설익은 생각들이,
한 방향을 바라보는 님들에게 닿기를 바라는 소망이 있습니다.
▲산이라는 자석이 끌어당기는 대로,
소중한 것 다 물리고 즐겁게 흘러갑니다.
▲누구의 태를 묻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는데.
태봉산이라 알려진 산들의 공통점은 젖무덤처럼 동그랗다는 것.
▲호미기맥의 끝자락에서 호미기맥의 터줏대감 토함산을 바라봅니다.
▲보석 같은 우리말을 캐냈던 금광석산.
캐낸다는 말에서 산 이름이 새삼 새롭게 다가옵니다.
▲나무숲 속에서 방송사들의 중계탑숲이 자웅을 겨룹니다.
▲태봉산으로 향하는 길이 구미를 당기지만....
▲조항산 고스락에도 봄은 빨간 색감으로 도착했습니다.
▲조항산 정상표지판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길가에 밀려나 있네요.
▲산에 대한 갈증을 풀어주려면,
우리의 열정의 높이를 얼마나 더 높여야 할까.
▲수군거림이 산자락 전체로 전염병처럼 번집니다.
국가시설물로 인해 고스락을 밟을 수 없다는 안타까움이죠.
▲제자리에서 밀려난 정상 표지판이 그 안타까움을 대변합니다.
▲철망 사이로 카메라 들이대고 고스락을 담아봅니다.
문득 호미기맥은 우리 산들의 축소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적어도 산이름 측면에서 볼 때는 산들의 집합소. 조항산, 금오산, 태봉산, 운장산....
▲산우님들 사이에는 또 다른 전염병이 돌고 있습니다.
저 분들의 산에 대한 깊이와 넓이를 닮고 싶다는 존경심 말입니다.
▲저 진달래가 온전한 진달래가 아닙니다.
짦은 산행거리를 깔보았다가 큰 코 다친 상태에서 바라보던 꽃입니다.
▲길 잃고 맷돼지처럼 온 산을 짓이기다가,
비로소 정신차려 보니 이 자리에 서 있었네요.
저 중간 봉을 거쳐 우측 통신탑봉으로 흐르는 마루금을 놓치고 말았으니....
▲네 개의 눈알 중 두 개를 잃어버리는 불상사까지 겹쳤고,
다시 한번 벌집 쑤시듯 반복산행을 했지만 눈 알은 오리무중.
마음 비우고 내려오는데 등 뒤로 마눌님의 따발총 소리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늪지대의 안개가 햇빛을 받았을 때처럼,
불편한 마음 말끔히 지우고, 새틋한 기분으로 다시 걸어갑니다.
▲실선이 마루금, 점선은 헛돌이 행로.
▲돌아보기.
▲피 말리는 헛돌이 끝내고 도착한 흰날재!
31번 국도 위의 차소리가 내 귀에는 자장가처럼 들렸습니다.
▲마루금은 꼭대기와 꼭대기를 연결하는 다리.
31번국도 때문에 절단된 마루금을 잇기 위해 다리를 건너갑니다.
▲동서남북의 마루금을 잇기 위해,
수의의 매듭 같은 육교를 성큼성큼 걸어갑니다.
▲좌측 동해면 방향.
▲우측 구룡포읍 방향.
▲돌아보니, 안도와 불안이 동시에 공존하는 마루금입니다.
▲산의 마법에 홀려 거친 짐승이 되었습니다. 야성은 행복의 다른 표현.
▲대패질이라도 한 것처럼, 시멘트길 위로 혼잣말이 수없이 흩날립니다.
▲돌아보기.
▲돌아보기.
빼앗긴 애인이라도 되는 양, 밟지 못한 마루금이 못내 아쉬워집니다.
▲지루한 시멘트 길.
이 길 위의 시간이여, 폭풍같이 후딱 흘러가거라.
▲봄바람이 무미건조한 마루금식탁의 양념이 되어 주었습니다.
▲특이한 형태의 건조장. 바람이 관건이겠지요.
▲사람이나 자연이나 생채기는 아픈 것.
부러진 허리를 움켜잡고 옆지기에게 기댄 포즈가 안쓰럽네요.
▲길 옆에 늘어선 나무들과 부지런히 금실을 감으면서 걸어갑니다.
▲행복의 씨실과 날실로 마루금이라는 천을 자아냅니다.
▲산길은 산사람에게 언제나 기쁨의 원천이 됩니다.
▲고바위를 힘차게 차고 올라가는,
성능좋은 엔진이 그리워지는 시간대입니다.
▲반사경에 비친 자신을 들여다봅니다.
▲봄바람이 동산공원묘지 위를 조용히 훑고 있습니다.
마루금 산꾼도 귀신처럼, 바람처럼, 조용히 지나갈 겁니다.
▲(동산공원 조망 1). 진행할 방향.
▲(동산공원 조망 2).
▲(동산공원 조망 3).
▲(동산공원 조망 4). 조항산 방향.
▲공원묘원은 훌륭한 조망처.
고인들은 마지막까지 산자들에게 선행을 베풀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명산 산행이 관세품이라면,
마루금 산행은 조금은 비밀스럽고 덜 알려진 밀수품.
밀수업자들의 심리상태가 이럴까. 두근두근, 쿵닥쿵닥.
▲마지막 봉우리 금오산으로 향하면서,
맨 후미라는 조바심도, 헛돌이의 피로감도 함께 사라졌습니다.
▲탁 트인 시야로 인해, 공원묘원은 전천후 조망대.
▲산사람과 산은 어떤 관계일까?
산에 대한 소망 때문에 도망치고 싶은 사람이 주저앉게 되는 관계.
▲금오산 오르면서 살짝 눈길을 주었더니 바다가 훅 다가옵니다.
▲앉을 의자를 가져오기는 쉬워도, 의자에 앉아 말을 꺼내기란 쉽지 않은 법.
마찬가지 이치로, 입산하기는 쉬워도 입산해서 즐산하기는 그리 쉽지 않은 법이지요.
▲어느날 산은 능숙한 매력을 발휘해,
잿더미에 불과한 나에게 불을 당겨 불덩이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산은 영혼의 마지막 희망, 산이 그 꿈을 일깨워주었습니다.
▲금오산 고스락에 봄햇살이 공평하게 내리쬐고 있습니다.
▲인생에서 최고의 시절은, 금오산에 오른 바로 이 순간임을 믿으렵니다.
▲(금오산 조망 1). 동산공원묘지를 기점. 시계진행방향순.
▲(금오산 조망 2).
▲(금오산 조망 3).
▲(금오산 조망 4). 호미곶 방향은 소나무 오른쪽 뒤.
▲(금오산 조망 5).
▲(금오산 조망 6).
▲(금오산 조망 7). 말목장성, 응암산 박바위.
▲(금오산 조망 8). 빨간 원은 오늘구간 날머리.
▲(금오산 조망 9).
▲(금오산 조망 10).
▲(금오산 조망 11).
▲(금오산 조망 12).
▲조용히 하산을 시작합니다.
금오산이 미세먼지에 공습 당해 얼이 빠져있는 틈을 타서.
▲복수초.
▲구룡포에 금오산 진달래꽃.
▲만발한 봄꽃들로 인해, 미세먼지에 다친 마음이 조금은 위로를 받습니다.
▲마루금이랍시고 시멘트길을 걷는 이 순간도,
시간의 샘에서 분, 秒가 똑똑 떨어져 흘러가는 소리가 들립니다.
▲돌아보면,
금오산이 오늘의 마루금이 끝날 시간이라는 소문을 뿌리고 있습니다.
▲날머리를 보자마자,
헛돌이의 추억과 안경분실의 허탈함이 말끔히 날아갔습니다.
▲날머리는 반갑지만, 당장 눈 앞에 닥친 이별이 두렵기도 합니다.
▲날머리 주변에 있는 주상절리.
▲금오산을 올려다보면서 다짐합니다.
산이 존재하는 한, 그곳이 우리가 있을 자리임을 새삼 확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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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필로그 ◑
마루금을 훑고 있는데, 귀청을 때리는 얄궂은 전화벨.
오늘의 마루금 식탁 메뉴에 전화벨은 없었는데 누굴까.
궁금증이 파도처럼 몰려오고 옛기억 하나 쿵 내려앉는다.
타다만 불씨 같은 현실 잔상을 깡그리 유배시켜 놓고
지금은 심장에 불이 붙어 호미곶을 향해 발품 파는 중.
그 불길은 발길 닿는 산기슭마다 들불처럼 번질 것인즉,
마음이 연막을 친다. ‘지금은 산과 열애 중, 노터치 요망.’
나침반 바늘을 따라 꼭지점을 이어가는 ‘마루금 여행! ’
이 짧은 다섯 글자가 이리도 무거울 줄은 미처 몰랐다.
벗이여, 누구에게나 태양처럼 빛나던 청춘은 있었다.
마지막인 것처럼 아프게 살았던 과거는 말끔히 잊자.
어제는 없었던 것처럼, 아침이면 다시 해가 떠오르리.
이젠 그 시절 푸름에 마루금을 덧셈하며 살아야 할 때.
올인했던 하루동안의 산과 이별하고 또 하루를 기다려 보자.
첫댓글 범산님
수고하셨고 담 산행에서 또 뵙겠습니다
답글 | 신고
봄햇살이 새털처럼 사뿐히 내려앉은 산자락.
그 산속에 함께 파묻힐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범삼의 마루금여행기'는 늘
산을 향한 연애편지 같아요 ㅎㅎ
산을 향한 불타는 열정~곁에서 함께 걷는이도
훈훈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금주명령 빨리 풀리시길 응원합니당!ㅋㅋ
함께 발자국을 찍었던 산자락에서의 시간들.
그 시간들이 오늘도 긍정적 파장으로 몰려옵니다. 감사합니다.
봄꽃과 함께한 산행 복습산행, 행복하게 잘 보고 갑니다.
노란 복수초가 유난히 눈에 많이 밟혔던 산행이었습니다.
다음 구간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기대가 만발합니다. 감사합니다.
함께 산행할수있어 행복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시간의 쳇바퀴는 돌고돌아 호미기맥도 끝나가고,
지구라는 쳇바퀴는 돌고돌아 산기슭에 봄은 또 왔습니다.
봄과 산의 합작품 속에서의 동행 산행, 참 행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